요즘은 '읽을 책 또 읽기'로 쏠쏠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가까이는 몇 년 전, 
가장 오래된 책은 20년 전.
읽을 때마다 무슨 자동녹음 장치처럼 남편의 귀에 대고 반복 play다.
'대체 그때 이걸 이해나 하고 읽었던 거야? 뭘 읽었던 거야? 도대체'


오랜 시간 내 젊은 날에 대해서,
아니 지금 이전의 나에 대해서 속으로 부정하고 지우고 구박하며 살아왔다.
물론 그럴수록 외적으론 더욱 나의 과거를 과대포장하며 과도한 자부심을 놓지 못했다.
한동안은 그런 젊은 시절을 싹 다 지워버리고 싶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싫었던 어제의 내가 조금씩 덜 부끄러워지는 것도 
나이들며 내게 생기는  참 좋은 변화 중 하나다.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지적인 허영심에 눈으로만 읽은 책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뭐라도 배웠기에 지금 이 모양이라도 되어 있겠지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다시 보려고 꺼내보니 1993년에 읽은 책이다.
20년이 더 넘었다.
책 안쪽에 보니 친구와 카페에 앉아 노닥거리며 끄적인 낙서가 있다.
'내 친구 미애는,
김현의 비평을 재미있는 척,
쉬운 척 읽는 아이.
신통력 있는 척'
이라고 내가 적었고.
'모든 지성은 한미애로부터 나오고....
동시대 식사문화의 시작과 끝에는 정신실의 감성이 꿈틀대고 파도를 쳤다.'
친구가 적었다.


그때 우린 KFC에 앉아서 치킨을 뜯으면서
왜 시대가 우리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다 진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물론 진짜 이유는 그날 직작상사에게서 기분 나쁜 소릴 들었다거나
그지같은 소개팅남과 (나도 별로 맘에 안 드는데)
괜히 지가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전화통화를 하고난 탓이었을 것이다.
나름 귀엽긔. ㅎㅎ
연애강의를 하며 얻은 보석 중 하나가 젊은 날의 나와 화해하기이다.
중년 이후의 삶의 여정은 모든 과거와의 화해의 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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