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박 8일 간 집을 비웁니다. 코스타 강의 차 시카고에 갑니다. 곡절 끝에 참석하기로 결정된 지난 2월 부터 묵직한 걸 속에 넣고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고 축하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하디 흔한 일도 아닙니다.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처음엔 '내가 무슨 코스타? 내 깜냥에' 라는 생각도 했고, 한편으론 '사람이 있는 곳이고, 사람을 만나서 내 얘기를 풀어놓았을 때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뭐가 문제냐?' 싶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양을 치던 다윗을 이끌어내어 이스라엘의 목자게 되게 하셨다는 시편의 말씀이 마음에 맴돕니다.


2.
작년 여름 살인적인 더위가 한창이던 때 어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정말 괜찮은 분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어쩌다 에어콘 얘기가 나왔는데 어느 분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에어콘 없이 어떻게 살아요?' 평소 그 분의 말과 글을 볼 때 이것은 거의 100% 좋은 뜻의 얘기라고 믿습니다. 걱정해주고 더위와 싸우다 분노에 찬 나를 위로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실은 그 순간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으라 했다든가, 케잌을 먹으라 했다는 마리앙뜨와네뜨 생각이 났습니다. 무슨 대답을 할 수 없었고 마음으로 이만큼 멀리 물러나 앉았습니다.


3.
어떤 것에 대한 '결핍감'은 그것의 실체에 대한 과장된 인식을 낳습니다. 걱정의 말에 마리앙뜨와네뜨를 떠올리는 비약이 일어나는 것처럼요.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시카고 여행은 첫 해외여행이 되는 셈입니다. 이것 역시 어떤 결핍의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을지 아시겠지요. 머리로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된장성 해외여행들을 비웃어주는 것으로 내 당당함을 증명하고자 했지만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속여 무엇하겠습니까.


4.
오늘 예배에 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는데 첫 마디가 툭, 이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 내일이네요. 저 잘 다녀올께요' 그러자 '미친 거 아냐? 너만 가냐? 나도 가'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맞아요. 내가 가면 주님도 가시는 거지. 다녀오긴 어딜 다녀 온다고. 사실 순간적으로 펑, 가슴팍을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주님이 거기에 계시고, 무엇보다 내가 가면 그 분이 같이 가신다는 그 사실을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요. 성가대 찬양을 하는데 찬송가 '돌아와 돌아와' 편곡이었습니다. 테너 솔로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오라'


5. 그 찬양을 듣는 순간 확 왔습니다. 정신 없이 헤매고 다녔던 지난 몇 주간 나의 영혼. 내 영혼이 편안한 집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결핍감이 어마어마한 두려움으로 변질된 지점에서 낯선 길에 홀로 남겨진 느낌과 더불어 이 곳에 다 밝힐 수 없는 더 복잡한 마음으로 여기 저기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와 한다는 말이 '주님, 다녀오겠습니다'  이제껏 그렇게 주님 없는 곳으로 골라 헤매고 다녔으면서 어딜 더 다녀오겠다는 건지. 주님 없는 어딜 가서 뭘 하고 오겠다는 건지.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모습이 동시에 오버랩 되었습니다.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오라. 주께 오라'


6. 
징징거리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것에 일일이 답을 해주며, 뭐든 물어보라고 안내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어리버리 뿌빠빠 하고 있는 동안 비행기표 일일이 알아봐는 친구도 있고요. 며칠 앞 두고 급하게 제작해야 하는 명함,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빛의 속도로 만들어 주시며 '미국 가는 선물!' 하시는 분, 내 부끄러운 속내를 다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주고 커피를 건내주는 친구, 집까지 찾아와 코스타 참석 경험 들려준 어린 친구, '평소대로 하세요' 하시며 어떻게라도 격려하시려는 교회 목사님 한 분. 바쁜 와중에 뭐라도 힘이 되어주려고 애쓰는 남편.
결핍감으로 인한 두려움의 큰 웅덩이, 그리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은 '사랑'으로만 메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까 낮엔 이 사랑이 한꺼번에 인식되어 뭉클했습니다. 결국 이런 사랑들이 나를 다시 아버지 집으로 안내합니다.



7.
강의에 관한 얘기를 하는 중에 남편이 그랬습니다. '당신은 전문 강사도 아니잖아. 당신은 생활인이야. 생활하고 묵상하고, 글쓰고. 그러다보니 일상에서 청년들과 가장 많이 나눈 얘기가 책으로 나오거고.... 강의 전문가 되지 마. 정신실은 생활 전문가야' 일상의 연장선에서 다녀오겠습니다. 강의를 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하고 오겠습니다. 처음 타는 국제선 비행기 따위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요. 다 예습했어요. 비행기, 신발 벗고 타는 거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덥다고 창문 열지도 않을께요.
'어그러진 세상, 자유케하는 복음(Set Free into Fullness)'이 이번 코스타 주제랍니다. 살짝 바꾸고 오려고요. '어그러진 세상, 연애케 하는 복음 (Set Free into Holy Dating)'으로요.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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