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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에 구운 통오징어.
이 단순한 요리에 저리도 델리킷트한 제목이 붙은 이유는 무얼까?
이 장황한 얘기를 들어보시라~~~~

주구장창 일을 할 때는 몰랐는데 쉬면서 수술을 하고 나서는 몸을 달래가며 쓰는 방식에 대해서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날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 주일. 그리고 아침 8시부터 아주 밀도있게 보내고 난 주일 오전은 확실이 에너지 소진이 엄청난 일이다. 그전에는 주일날 마치면 어디라고 가볼까? 놀아볼까? 하는 게 먼저였지만 지금은 아님.
일단 집에가서 쉬어줘야 한다. 목 수술후 배운 가장 큰 것은 '몸을 달래가며 쓰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주방봉사까지 겹쳐있는 날이라 오후에 집에 와서 온 식구가 쓰러져 잠에 빠져 오후를 다 보냈다. 예전 같으면 '이 귀한 시간에 잠을 왜 자?' 하던 내가 젤 먼저 넉다운이 되었다.

암튼, 그렇게 늘어지게 자고나니 저녁 6시인데....
저녁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아닌가? 외식이나 시켜먹는 걸 슬쩍 제안해 보지만 남편이 '밥 하기 힘들어?' 하면서 우회적으로 반대를 하신다. 이런 날은 웬만하면 '당신 힘드니 시켜먹자'고 하는 분이니까. '밥 하기 힘들어? 나가서 먹으려면.... 당신 돈 있어?' 하는 얘기는
매우 강력하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동실에 이마트에서 사다 놓은  실한 오징어 다섯마리가 2350원 딱지를 붙이고 꽁꽁 얼어있다. '짜쉭들......얼기는....' 하고 꺼내서 늘상 하던 오징어 덮밥을 하려했는데 바로 그 때. 요리의 신이 임하신 것이다.
십 수 년 전에 어느 댁에서 먹어본 통오징어 구이다. 바로 오징어 손질해서 대충 양념해서 오븐에 구웠다.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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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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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양념은 좀 재워야 맛이 나는데 너무 속성으로 해서 '맛은 장담 못한다' 며 냈는데...
식구들이 흡족해하며 맛있게 먹어줬다.

어제 목장모임에서 여성들의 삶에 관한 얘기가 주제로 등장했다. 잘 나가던 아니 뭐 꼭 잘 나가진 않았어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위해 집에 있는 자매들. 육아에 매몰되어 같은 날이 반복될 때 자기 정체성을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똑같이 일을 해도 밖에서 일하는 남자들을 한 달에 한 번 돈으로 보상을 받으니 이 물질적은 세상에서 자연스레 비교되고, 그러다보면 '내 삶은 뭔가' 싶을 밖에....

2350원 어치 오징어 다섯 마리를 가지고 저렇게 있어보이는 요리를 만들었다.
저걸 식당에서 사 먹으면 얼마쯤 할까? 한 마리에 8000원은 하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면 피곤한 주일 저녁 몸을 약간 움직여서 만든 요리는 (나를 포함함) 이 세대가 모든 가치 척도로 들이대는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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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오붓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에 '야! 니들 거실에 차려줄 테니까 놀면서 먹어' 했는데 순순히 말을 들을 리 없다. 바로 '자~자, 손님들 배달 갈테니까 음식 주문해 주세요' 하고 식당버젼으로 가니까 김채윤이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여기요 104동 101혼데요. 오징어 두 마리 배달해 주세요. 네 빨리 갖다 주세요' 한다. 그리고 내내 거실에서 체스를 하면서 먹어줬고, 저런 가식적인 표정으로 촬영에도 응해줬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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