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는 어느 분을 만났드랬습니다. 저는 내심 많이 기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딱히 그 분을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던 자리라 책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눠보려고 했습니다. 헌데... 몇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자리였는데 그 분은 핸드폰인지, 아이팟인지, 전자수첩인지... 저로서는 잘 모르는 무슨 물건을 가지고 게임을 하시는지, 문자를 보내시는지 저로서는 역시 모르는 무슨 놀이에 빠져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조차 안쓰는 듯 보였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였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서문에는 공원에서 나란히 한 방향을 보면서 앉아 있는 외로움의 극에 달한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건 의자를 돌려 앉자는 겁니다. 서로를 향해서, 서로의 눈과 서로의 외로움을 향해서 몸과 마음을 돌리자는 겁니다.  헌데, 함께 있는 시간 내내 그 분은 자신의 놀이에 빠져 있었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특히 저만 그 분하고 잘 모르는 사이라서...)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어떤 부분에 그렇게 감동했을까? 그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 이후에 어떤 점이 달라졌거나, 달라지려고 하는 중일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역모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사역자 입니다. 그 분이 사역모드일 때는 아마 공동체에 대해서 역설하는 이 책이 감동이고, 설교나 가르칠 때 적용시킬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느꼈을지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같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사.역.자.들이었기 때문에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따위는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곳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정정도의 페르조나(가면)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역할이라고해도 무방합니다. 아내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직업인이기도 하고... 기타 등등. 헌데 중요한 것은 페르조나는 '내'가 아닙니다. 필요에 의해서 때로는 필요하지도 않은데 나 혼자 뒤집어 쓴 페르조나가 여럿이지만 분명한 건 나는 페르조나 이상입니다.


사역자는 직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역자를 직업으로 생각해서 직업정신으로 교회와 사람들을 섬기다고 하면 이거 진짜 심각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장사하시는 분이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서 사실 고객이 그렇게 존경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아도 아주 친절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들이 직업정신으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듯 보인다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사역자는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건 사역자만의 사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헌데 자칫 사역자는  친절하고, 사랑하고, 관용하는 페르조나를 직업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사하시는 분이 고객 앞에서는 온갖 친절함과 온유함으로 하지만 집에 가서 사춘기 자녀에게 또는 고용한 점원에게는 그 가면을 집어치고 있는대로 화내고 관용하지 않는다면..... 그거야 뭐, 어쩌겠습니까.


헌데, 사역자라면 다른 것 같습니다. 사역자의 정체성은 -친절함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도, 자기의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모든 사람향한 사랑 자체, 그리고 그 사랑의 전파에 있습니다. 때문에 친절함과 관용과 사랑의 가면을 필요에 따라서 썼다가 벗었다 한다면 그건 큰 일 입니다. 성도들에게, 또는 전도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온유하지만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는, 또는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한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데 이렇게 심각한 일이 오히려 자연스러움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자신은 죽을 길로 가는 일인듯 합니다.


남편을 따라 목회의 길에 들어선 지 얼마 안되는 풋내기 사역자 사모로서 저는 몹시 두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의 길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하여 죽도록 '사랑하는 척' 하다가 '진정한 사랑'은 날이 갈수록 잊어버릴까봐서요. 처음에 예수님 사랑, 그것이 좋아서 사역자의 길에 들어섰는데 어느 새 예수님의 사랑을 팔아서 내 입지를 다지고, 나 살 궁리를 하는 사람이 될까봐서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조금이라도 확장시키자고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지상에서 가장 위험에 곳에 서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두렵고 떨리고 슬플 뿐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