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중에 입학한 채윤이는 예고의 교복이 그렇게나 예쁘다며 꼭 입고야 말겠다고 했습니다. 예고 교복 예쁜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아름다움(물론 채윤이는 이런 표현을 알지 못합니다. ㅋㅋㅋ)이라며, 그 교복엔 백팩을 매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숄더백(물론 이런 용어도 모르기 때문에 '엄마, 가방 중에 그런 거 있잖아. 줄이 두 갠데 좀 길고 그래서 어깨에 매고 그러는, 회사 다니는 언니들이 매는 그런 가방'이라며 기나긴 설명을 합니다만)을 매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완전 대박! 등교가 아니라 회사 출근하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암튼, 예고 교복은 입고야 말겠다고!

 

# 채윤이 선언

 

2학년 어느 날 채윤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나 예고 가지 말아야 할까봐. 우리 인성 시간에 장래희망 이런 거 써내고 얘기 했는데.... 피아노과 애들이 장래 희망이 다 똑같애. 뭐게? 피아니스트, 땡! 모두 다 교수야.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모두 다 서울대 교수야. 엄마 그게 말이 돼? 서울대 피아노과 교수가 몇 명이나 된다고. 휴유, 나 예고 가지 말까봐."

 

이 말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같은 꿈을 가졌다는 것은 새롭지 않은 놀라움이긴 하지만요. 그렇다고 예고에 가지 않겠다니. 제가 아는 채윤이는 친구들이 모두 그러겠다면 '아, 그게 답인가보다! 그럼 나도 일단 서울대 교수!' 이럴 애 거든요. 얘가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서 고민을 하거나 딱히 의식이 있는 중딩도 아닌데. 오히려 채윤인 그 누구보다 학교라는 체제에 순응하여 그 틀로 자기를 바라보며 주눅이 들다가도 사소한 성과 하나로 과도하게 교만해지는 그런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말이 더 가관입니다. "엄마, 우리가 아직 중학생이고 아직 3학년도 아닌데 선생님들은 너네 예고 못 가면 대학 못 간다, 이러면서 자꾸 한 가지 얘기만 해. 대학교를 간다 못 간단 얘기만 하는데 너무 이상한 거 같애. " 뭔가 문제의식을 느꼈나봅니다.

 

# 엄마 당황(하지 않고 일단 무시하기)

 

엄친딸, 그러니까 제 친구의 딸인 은율이가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가기 전에 안식년으로 1년 쉬었단 얘길 듣고 그거 한 번 해보면 좋겠단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채윤이 상황은 조금 특수했지요. 이왕 예중에 입학한 거, 프로필에 예중 예고 나란히 써주는 게 순리라는 입장 또한 분명했습니다. 예고를 안 갈까보다, 하는 채윤이 말은 그러다 말겠지 싶었고. 어린 것이 다시 입시를 치르고 예고 3년을 빡빡하게 보낼 생각하면 마음은 짠했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짝 당황했지만 일단 응응, 해주고 무시하기!

 

# 채윤이 생각

 

3학년이 되고 학교 분위기가 입시체제로 돌입하였습니다. '향상음악회'라고 친구들 앞에서 연주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곡을 들고 무대에 서는 것이 반복되자 가뜩이나 꾸깃꾸깃한 자존감이 반듯하게 펴질 날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구겨지고 다시 구겨지고....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닌데 뭔가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 같았습니다. 급기야 레슨 선생님께선 "처음 만났을 때 반짝이던 채윤이가 없어졌다. 무엇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 통 못 알아듣는다" 하십니다. 다그칠수록 채윤이는 더욱 위축되어 음악이고 마음이고 꽉꽉 막혀있는 듯 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자꾸 무너져 내렸습니다. 채윤인지, 내 자신인지, 선생님인지, 아니면 이 현실인지 무엇엔가 화가 났습니다. 피아노가 안 되는 것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반짝이던 채윤이를 잃었고 어디 가서 찾아야할 지를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적보다, 성격보다, 그 무엇보다 가장 지켜주고 싶었던 채윤이다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은 아득해질 뿐이었습니다.

 

맥도날드에 앉아 채윤이와 기나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보니 절망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채윤이를 잃어버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채윤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채윤이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 하시던 지점을 채윤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거기를 포르테로 치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생각할 때 포르테가 아니라 피아노가 되어야 할 것 같다구. 선생님 생각과 내 생각이 너무 달라.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져. 그래서 나도 힘들어." 그럴 때 선생님께 채윤이 생각을 말씀 드려보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당연히 안 된답니다.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자기보다 음악을 더 잘하시는데 말해도 소용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당장 내일이 향상(음악회)인데 그런 얘길 해서 뭐하냐는 것이지요. 연습을 할수록 더 안 된답니다. 엄마는 자꾸 어렸을 적 내 얘기만 하는데 그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안 된다고. 내년에 안식년 할 생각도 있었으니까 입시는 포기하든지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 엄마 깨달음

 

채윤이 얘길 들으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채윤이는 자기 음악을 찾는 중입니다. 채윤이는 자기 생각이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헤매고 있고, 그걸 죽이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의 잣대로 보면 무지무지 음악이 안 되는 학생이지만 뭔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후 엄마 마음에 왠지 확신이 생겼습니다. "채윤아, 포기해도 돼. 그런데 입시 끝나고 포기하자. 너는 피아노, 선생님은 포르테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선생님과 토론하고 논쟁하고 그래서 배워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엄마가 알기로 우리 나라에서, 특히 너가 가는 길에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엄마는 네 생각을 지지해. 음악에 답이 어딨어! 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거지. 엄마가 지금 채윤이 얘길 듣다가 확신이 생겼어. 너 학교에서 꼴찌해도 돼. 그리고 왠지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 그것이 너무 너무 중요해. 그게 있어서 다행이고. 그러나 채윤아, 딱 일 년만 그렇게 그냥 이대로 지내보자. 네 생각 소중하게 간직해서 딱 1 년만 넣어둬. 아냐, 1년도 아니네. 이제 몇 개월이야. 그리고 입시를 마친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 입시나 성적 자체가 중요하지 않지만 엄마는 네가 이런 학교와 환경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누구에게? 세상에게!) 중학교 생활을 마쳤으면 좋겠어. 엄마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교수님 레슨도 받고 연습실도 구해줄게. 돈 많이 들어도 돼. 입시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 봄바람

 

1년이야.

1년만 딱 그렇게 하고 우리 더 좋은 길을 찾자. 계속은 안 되겠지만 1년은 할 수 있겠지? 

 

맥도날드 야외석에 앉아 있었는데, 아직 3월인데 이상하게 춥지가 않았습니다. '이느무 지지배 멍청해서 선생님 말씀도 못 알아듣고. 생각은 어디 가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피아노만 쳐댄다고 연습이 되나. 어쩌다 이렇게 멍청한 게 됐나. 이걸 그냥!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려버릴라.'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대화였습니다. 그 춥고 딱딱하던 마음에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대화하면서 '학교. 예술전공, 우리 교육의 현실, 그 안에 있는 채윤이'의 상황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넘사벽 앞에 선, 자기답게 음악을 하고 살고 싶은 아이,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로 혼란스러워 하는 채윤이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길이 보이는 것 같았고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 같은 것이 생겼고, 무엇보다 채윤이를 진심으로 더 사랑하고 응원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 내가 이 아이 엄마지. 끝까지 너를 지켜줄게. 어디선가 이 노래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삶의 막막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의 말씀이, 삶의 답답함 가운데 빛이 되시는 주님이 말씀이 내겐 봄과 같아서 내게 생명을 주고 내게 신선한 바람 불어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네"

 

 

* 1편에서 예고해 드렸던 제목과 다릅니다.

이유는 1편의 반응을 보니 구독률이 좀 나오겠다 싶어서,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연재 횟수를 최대한 늘리기로 자체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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