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게
네 메일을 읽으면서 오래 전 선생님의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소개팅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무르익는 연애 중인 친구였지. 어느 날 친구가 그러는 거야. “얘, 얘, 이 남자 좀 이상한 거 같애. 우리가 벌써 만난 지가 얼만데 아직 내 손도 잡지 않아. 남자 맞어? 혹시 날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닐까? 내가 먼저 확 손잡아 버릴까?” 선생님 역시 연애학 박사를 따기 한참 전이라(^^;) 어설픈 맞장구를 치며 그 남자의 속마음에 대해 헷갈려했었어. 이 글을 쓰기 전에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때 일을 얘기하고는 서로 킬킬거렸단다. 결혼 10년 차가 넘었으니 이제 와 떠오르는 그런 추억은 웃음이 나올 뿐이지. 은혜에게 도움을 좀 줄 수 있을까 해서 그 친구에게 '왜 그리 오래도록 손도 안 잡고 그랬대냐?' 물어봤어. 남편이 뭐라고 대답을 하긴 했는데 대답이 시시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는구나.
그런 문제라면 J에게 직접 묻고 둘이서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만 어려운 일이겠지? '왜 요즘 도통 내 몸에 손을 대지 않냐? 손도 잡으려 하지 않는 거냐? 내가 싫어진 거냐?' 이렇게 직접 물어보는 것 말이다. 그래, 은혜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정말 마음이 식어서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두려운 마음, 여자로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 자존심 둘 다일 것 같애. 지난 번 메일에서 선생님이 스킨십에 대해선 둘 사이의 솔직한 대화가 중요하다는 일장 설교를 했었잖니. 이번 은혜의 메일을 보면서 교제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너희들에겐 그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겠다.


말 못할 속병
선생님 메일을 받고 '두 눈 똥그랗게 뜨고 키스한다는 정신'으로 데이트를 했다구? 그러다 너무 강하게 스킨십을 거절하는 제스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J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는 거지? 그게 당혹스럽고 자꾸 불길한 상상을 하게 되니 힘든 거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 좀 기다려보면 J가 스스로 입을 열어줄 것 같기도 한데…. 그것 외에 전화하고, 대화하고, 데이트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니 하는 말이다. 은혜가 우려하는 것처럼 은혜에 대한 마음이 식어졌다면 단지 손을 잡지 않는다거나 키스하지 않는 것만으로 그 변화된 마음이 드러날까? 일단 선생님이 J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네. 은혜가 지난번 선생님의 코치에 심하게 몰입해서 이런 저런 상황설명 없이 J를 밀어냈다면 J 역시 당혹스러웠을 거야. 다시 스킨십을 시도하는 게 적잖이 부담이 되겠지. 헌데 단지 그것만도 아닐 것 같아. 선생님이 보기에는 의식적인 노력이지 싶다.
어찌됐든 은혜의 거절에 대한 배려이고 어쩌면 배려 이상의 자기 결단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결국 두 사람 다 '목적이 이끄는 연애'를 위해서 애써 노력하는 듯 보이거든. 헌데 같은 문제에 봉착한 두 사람이 각자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지금 서로를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건 당사자인 너희 둘이니까 어렵더라도 대화로 맞장 뜨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용기를 내서 대화해 봐. 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좋은 기회가 온 거야. 그러니 잘 될 거야, 은혜야.

사랑의 몸부림
언젠가 남자 후배에게 농담 같지만 솔직한 얘기를 들었어. “누나! 남자들에게 성에 대한 강박관념이 어느 정도로 작용하는지 아세요? 젊은 남자들은요 평균 10분마다 성적인 생각과 느낌을 갖는대요. 솔직히 10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과히 틀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 나이에 싱글인 저는 정말 죽음이겠죠? 우허허허허….” 이게 사실이라면 연애를 하면서 키스를 참고, 그 이상의 스킨십을 참는 남자들에게 정말 높은 점수를 줘야 할 것 같지 않니? 그러니까 '너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널 만지는 거야'보다는 '너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네 몸에 손을 대지 않는 거야' 이 말이 훨씬 더 힘 있는 고백인 것 같아. 최근 J가 보인 행동을 그런 의미로 본다면 오히려 은혜에게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더 잘 사랑하기 위한 몸부림일 테니 더 큰 사랑이라고 해석을 하고 싶구나.


현대판 암논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니? 조금만 눈을 맑게 뜨고 보면 이 얼마나 감각 중심, 느낌 중심의 세상인지 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로맨틱과 순결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최소한의 갈등의 끈을 놓지 않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몸매가 날씬한 것은 단지 '예쁘다'는 미의 기준을 넘어서 '착하다'는 도덕적 잣대로까지 표현되는 예우를 받고 있지 않니? 여성들의 날씬한 몸매(결국 섹시한 몸매?)가 착한 몸매인 세상이니 형제들이 자매들을 전인적으로 바라보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인지.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자신이 사귀고 있는 여자에 대해서도 전인격적인 관심보다는 자연스레 여친의 몸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는 것 아닌가 몰라. 교회 안의 형제들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더라. '애정전선에 어찌 고리타분한 성경의 원리 원칙만 고스란히 들이댈 수 있냐? 좀 더 시대에 맞는 이성 교제론이 필요하다'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슬쩍 신앙과 행동을 분리시키는 형제들이 많지 않니? 아닌가?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하나 엮어보자면 여자의 몸에만 지대한 관심을 두던 남자가 결국 여자의 몸을 얻고 나서 관심과 흥미가 급하강하게 되는 것은 꼭 다말을 강제로 얻은 암논 같은 경우라고 보면 될듯해. (시대가 달라졌어도 남녀 관계의 역학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는가보다. 사무엘하 13장을 쉬운 성경으로 한 번 읽어보겠니?) 자신의 몸을 허락하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금방 자신을 떠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또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를 간절히 원하는데 외면할 수 없어서) 내어줌으로 결국 남친의 마음까지 잃고 마는 신파조의 스토리는 드라마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 결국 여자의 입장에서도 좀더 높은 사랑의 길은 지킬 건 지키는 마치 뒤떨어져 보이는 방법이라는 거지. 과감히 거절하고 '내가 그렇게 쉬워 보여? 나 어려운 여자야. 오빠!' 하며 애교 만빵의 미소 한 번 날려 주는 거야.^^


지킬 건 지키기
한창 뜨거운 커플에게 이런 얘길 하는 게 좀 그렇지만, 혹 헤어지게 될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서도 피차에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연애는 결혼도 전제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결혼하기 전까지는 헤어짐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 같거든. 마음으로는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꼭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 같지만 남녀 관계는 결혼식장에서 딴∼딴따단∼ 하며 입장하는 걸 봐야 아는 거라고 하잖아. 행여 너희 둘이 그럴 일이 없을 거라 믿고 바라지만 가능성을 제로로 둘 수는 없는 것 아니겠니. 이런 인식은 데이트에 목숨 거는 것을 막아주면서 어떤 면에서는 더 건강하게 데이트하도록 도울 수도 있어. 육체의 깊은 친밀함은 헤어지고 났을 때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 같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헤어질 것을 염려하여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모든 태도를 주춤거리란 얘기가 아닌 건 알지?


키스하고 싶은 걸 참는 사랑, 다 허락하고 싶지만 자신을 통제하며 상대방을 다독이는 지혜, 둘 다 말로 할 수 없이 귀한 거다. 특히 참을 줄 아는 남자를 애인으로 뒀다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참을 줄 아는 남자는 믿을만한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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