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러니까 내가 우울의 끝자락에서 바닥을 치고 있을 즈음의 이야기.
채윤이 단원평가, 현승이 받아쓰기 시험 점수 합해서 딱 100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많이 속상한 건 아니었다. 채윤이 성적 늘 그래왔고, 그래도 그녀는 행복했으니깐.
현승이도 받아쓰기 공부 안하고 간 거니까 모, 제대로 선생님 불러서 한글교육 한 번 안하고 읽고 쓰는 게 어딘가? 많이 속상하진 않았지만 괜히 우울한 감정을 쏟아낼 곳이 생긴 것이다.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너희 둘 정말 이러면 엄마가 속상해서 어떻게 사니....$&$*%#$^%^...' 이런 식의 넋두리? 를 읊어대면서 화를 내고 있었나보다.


자, 티슈남의 반응을 먼저 보자.

눈물이 그렁그렁 해가지고 엄마 허리에 달라붙어서 '엄마, 엄마 마음 풀어. 내가 이제는 결심했어. 앞으로는 받아쓰기 꼭 90점 이상만 맞을거야. 그러니까 엄마 속상해 하지말고 맘 풀어....엉엉엉어.....엉.....'


책꽂이에 기대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투사녀 김채윤은 자기 방으로 확 들어가더니...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발을 쾅쾅거리며 엄마에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엄!마! 내!가! 엄!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라며 도전적으로 나오더니 퍼붓기 시작.


'엄마, 엄마 왜 그렇게 변했어? 엄마 내가 1, 2학년 때 받아쓰기 못해도 괜찮다고 했잖아. 그리고 늘 시험성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 그런데 현승이한테 왜 그래?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거지 성적으로 뭐라고 하면 안된다고 엄마가 그랬잖아. (살짝 목소리 톤 다운되면서) 물론 내가 쫌 열심히 안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엄마가 이런 식으로 성적으로 뭐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돼? 나도 다른 애들처럼 똑같이 시험 못봤다고 엄마한테 혼나겠다고 걱정하고 벌벌 떨고 그래야 돼? 앞으로 나도 그래야 돼? 다른 애들처럼? 그러면 내가 앞으로 무서워서 시험을 어떻게 봐?'


나 이 투사녀 진짜..... 투사녀의 말로 쓰는 대자보의 중간 쯤에서 이미 빵터져 버려서 웃음 참느라 혀깨물고 있느라 죽을 뻔. 엄마로서의 자존심은 있어서 끝내 웃음 보여주지 않고 위기의 순간을 넘겼는데. 바로 수요예배 가서 기도하고 나서는...


두 녀석에게 '엄마가 잘못 한 거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그걸로 엄마가 너희한테 뭐라고 한 거는 잘못인 것 같애'라고 또 다시 굴욕 사과를 하였다는 얘기.


아,  내 양육 철학은 '굴욕의 교육학'ㅠㅠㅠㅠㅠㅠ



* 사진은 물론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 분의 작품.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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