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천자문에 빠져있는 현승이랑 놀아주던 아빠가 '작을 소'를 읽어주면서 '현승아! 큰 대의 반대말을 뭘까?' 하면 현승이는 '대 큰!' 이렇게 자신있게 외칩니다.
평일의 반대는 '일평'이 아니고 '휴일'인데 휴일은 휴일답게 평일하고는 반전이 있는 오전이 되었습니다. 오랫만에 네 식구가 함께 맞이한 휴일 오전은 확실히 '평일의 반대'였습니다.

#1
우리 집에서 젤 먼저 자고 젤 늦게 일어나는 현승입니다. 평일 아침에 식구들이 밥 다 먹도록 침대에서 뒹굴거나, 겨우 깨워 놓으면 머리를 베개에 쳐박고 엉덩이를 쳐들고 다시 잠들어 있는 현승이죠. 어쩌다 잠으로 치자면 막상막하인 아빠가 새벽기도 갔다와서 자기보다 늦게 일어났다 치면 '내가 제일 조금 잤잖아' 하면서 억울해서 죽을려고 하는 현승이죠.
휴일 아침에 9시가 되도록 식구들이 자고, 방 안 가득 햇살이 비쳐 훤해졌을 때 현승이가 젤 먼저 정신이 들어서는 '어? 아침이네. 식구들~ 일어나!' 하면서 1등을 일어났다죠.

#2
평일에 7시부터 혼자 일어나서 밥 하고, 국 끓이고 분주하던 엄마가 일어나서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이 아빠와 채윤이가 빵을 굽고, 우유를 따르고 상을 차리기에 분주합니다. 차려 놓은 상을 제일 먼저 받고는 부랴부랴 밥 먹고 학교 가는 채윤이랑, 엄마의 뚜껑이 열리기 직전까지 침대에서 뒹굴다 나오는 아빠가 엄마 역할을 대신하는 반전. 역시 평일의 반대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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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틀어주면 들을 줄만 알았던 아빠가 새로 산 음반을 꼼꼼히 읽으면서 여우를 부립니다.
식탁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잠시 나는 틈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아빠가 오랫만에 학교 숙제와 관련없는, 전공과 관련없는 책자를 들고 있습니다.

웬일인지 식사를 마치고 여유가 생겼다 싶으면 베란다로 나가서 온갖 장난감을 끌어다 늘어놓고 상상놀이를 하고 있어야할 채윤이가 거실 탁자에 조용히 공부모드로 앉아있습니다.
'마티스 그림 따라잡기' 책을 어디서 찾아와서 열심히 색칠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덩달이는 역시나 누나랑 마주 앉아서 어설픈 그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평일 저녁마다 숙제며 일기를 하느라 몸을 베베 꼬면서 엄마랑 싸움을 싸워가며 앉아 있는 거실 탁자가 휴일 오전에 아주 차분한 놀이터가 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엄마빠 조용히 음악 들으면서 차를 마실 여유도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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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틀어주는 음악을 다 듣기고 하고 휴일은 이렇게 늘 똑같던 일상과 다른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휴일이 가진 그 힘은 아마도 '여유' 일 것입니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필요한 것은 한 템포만 쉬어가는 여유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원래 일과 생활에 쫓기면서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을텐데요...
우리 일상은 매일 일에 쫓기고, 공부에 쫓기고, 해야만 하는 많은 것들에 쫓기며 사네요.

휴일오전을 보내고 집 앞에서 종로 가는 좌석버스를 타고는 시내의 서점에 나갔습니다. 시내 나가면 이상하게 많이 걷게 됩니다. 밥을 한 번 먹으려해도 한참을 걷고 기웃거리게 되고...서점에 가서도 한참을 걸었습니다. 결국 엄마 아빠는 유아, 아동 코너에서 힘을 다 빼고 '우리 둘이 저 놈들 맡기고 나중에 따로 한 번 나오자'는 약속 아닌 약속을 중얼거리면서 서점을 나왔지요. 그러고보면 평일이 있어서 평일의 반대 휴일이 있으니 평일도 사랑해줘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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