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베이글 샌드위치'는 우리 집 조식의 시그니처 메뉴다. 아이들 친구가 집에 와서 자는 날, 손님 접대용으로 해주는 아침 특별 메뉴다. 현승이 친구가 와서 자는 덕분으로 특식 아침이 되었다. “도시락으로 싸갈까, 아침으로 먹을까" 고민하던 채윤이가 결국 우적우적 먹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걸로 저녁까지 버텨야지." 양재동 작업실로 연습 가는 첫날이다.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제 피아노를 사고, 오래 알아보고 발품을 팔아 작업실을 계약했다. 어제는 아빠와 함께 피아노를 들이러 다녀왔다. 복도가 좁아 들어가려나 어쩌려나, 방이 좁아서 피아노와 키보드가 함께 들어가려나 어쩌려나 걱정이 많았다. 결국 자리를 잡은 피아노 앞에 앉은 채윤이 영상이 가족 단톡방에 올라왔다. 연주하는 채윤이가 아니라 우는 채윤이다. 나는 식사 약속이 있었고, 만난 분이 화장실 간 사이 영상을 확인했는데 덩달아 눈물이 나 수습하느라 혼났다.

 

연어가 듬뿍 든 럭셔리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채윤이는 궁상맞은 소리를 한다. "이걸로 저녁까지 버텨야지!" 그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채윤이는 학기 중에도 용돈 아끼기 위해 삼각김밥으로 떼우거나 쫄쫄 굶고 집에 와서 먹기도 한다. 양재동 작업실까지 신분당선을 타면 교통비가 어마어마하다며 분당선을 타고 조금 돌아서 다녀야겠단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용돈을 넉넉하게 책정해본 일이 없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인상 협상'을 각오하고 있다. 또래에 비해 용돈이 턱도 없이 적다는 걸 알기에 요구만 하면 올려줄 텐데 그런 일이 없다. 삼각김밥을 먹네 어쩌네 하는 말 듣기 싫어서 용돈을 올려줄게, 해도 "알았으니 일단 한 번 이번 달 더 살아보고 얘기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돈도 잘 모은다. 없는 중에도 돈을 잘 모으는 건 날 닮았다. 암튼, 저렇게까지 굶어가며 용돈을 아끼는 채윤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은 그런 채윤이가 몹시 대견하면서 동시에 안쓰럽고 가슴이 저릿하니 아프다.

 

피아노만 해도 그렇다. 제 음악을 하기 위해 제 악기를 가질 때가 되었고, 요구하면 어떻게든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헌데 당연히 제가 사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어렸을 적 세뱃돈부터 시작하여 최근 아르바이트비까지 모은 통장을 털어 중고 야마하 피아노를 샀다. 난생처음 제 피아노를 가지고, 제 연습실을 가진 채윤이가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보다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역시 너무나 대견하고, 대견한 만큼 아프다. 어릴 적부터 워낙 독립적인 아이였다. 내가 그렇게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타고난 아이였다.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겠다는 뜻으로 내가 했던 일은 주로 채윤이에게 상처와 결핍이 되었고, 제 가진 존재의 힘으로 상상보다 더 독립적인 어른이 되었다. 

 

나 대학 들어가던 해 엄마가 사준 영창 피아노가 있었다. 말하자면 대학 입학 선물이었다. 내가 음대를 간 것도 아닌데... 엄마 딴에는 아버지 대신 준 선물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 그 겨울, 서울 가시는 아버지의 중요한 계획은 피아노 구입이었다. 목사관을 새로 지어 내 방이 생겼다. "요번에 서울가믄 신실이 피아노 알아보고 오갔다우" 하셨었다. 그러고는 젠장, 피아노가 아니라 아버지 몸이 피아노처럼 나무 상자에 담겨 돌아왔다. 대학 입학 선물로 엄마가 피아노를 사준 건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내 마음은 1도 몰라주고 아버지 생각만 했던 엄마. 그 비싼 피아노를 안방에 떡하니 들여놓고 대학생 된 딸에게 구두 한 켤레 사주지 않았다. 그 피아노는 결과적으로 채윤이 것이 되었다. 소리 나지 않는 피아노로 바꾸는 기계를 달아 예중 입시 연습용으로 제대로 잘 썼다. 그다음부턴 채윤이 격에 맞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채윤이가 새로 피아노를 사기로 했으니 저 피아노를 처분해야겠는데 엄마 괜찮겠냐고 물었다. 괜찮고 말고,라고 했지만 피아노 치우는 모든 과정을 내내 모른 척했던 건 괜찮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일이 자꾸 떠오르는 건 감정이 고여 있는 탓이다. 대학원 준비하며 과외 알바를 하던 시절이었다. 중고생 과외로 돈이 쑥쑥 모아졌다. 그때 집에 오래 쓰던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고치는 비용이면 새 것 사는 게 낫다는 엄마 말에 모은 돈을 내놓았다. 순순히 내놓았다. 순순히 내놓았으면 기억에서도 지울 일이지, 그 시절 나를 생각하면 안쓰럽기 그지 없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를 팔아 냉장고를 살 걸 그랬다. 제가 모은 돈으로 제 피아노를 사는 채윤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데 왜 이 시점에 그 일이 떠오르는 걸까. 피아노 앞에 앉아 우는 채윤이가 채윤이로만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너는 엄마 아빠가 있는데 왜 사달란 말을 안 해? 나야 아버지는 아예 없고 엄마는 힘이 없어서 내 살 길 내가 찾아야 했으니 그렇지. 넌 엄마도 아빠도 있잖아. 이런 지점에서 맴도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택도 없는 견줌이다. 제게 꼭 필요한 것을 위해 제 손으로 장만하는 일은 안쓰러운 것이 아니다. 채윤이의 독립성은 어쩔 수 없었던 나의 독립성과 다르다. 하지만 오늘 채윤이의 피아노는 내 피아노와 닿아있다. 내 것이었지만 채윤이 것이 되었다가 처분한 그 피아노와 닿아 있다. 채윤이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그 피아노를 두들겼고, 이제 이 피아노를 두들겨댈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사주려 했던 피아노, 그때 아버지가 사줬으면 참 좋았을 피아노, 아버지 대신 엄마가 사준 피아노, 엄마가 사줘서 결코 선물이 되지 못했던 피아노. 그 피아노를 내 마음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쉬운 일인데, 내게 남은 부모님의 흔적과 그것이 채윤이에게 흘러간 것들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것 나쁜 것 따질 수 없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님도 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느껴진다.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은 좋은 것으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좀 나쁘게 느껴진다. 그냥 가슴이 좀 띵하게 아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