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랑 한강에 한 번 갈래?" 그렇게 둘이 한강에 나가서 손을 잡고 걸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내가 지금 어른 남자와 얘기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 통하는 아이 현승입니다. 방학 하자마자 할머니 댁에 다녀왔는데 혼자 계신 할머니께 선물을 잔뜩 드리고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얘, 현승이가 뭐래는 줄 아냐? 나랑 같이 한강에 나갔는데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그러는 거야. 할머니, 저랑 같이 걸으니까 외롭지 않고 좋지요? 무슨 애가 그런 말을 하니?" 그렇게 들뜬 어머님 목소리 오랜만에 들어봤어요.   


현승이에게 덕소는 텔레비젼이 있고 컴퓨터 자유이용권이 있고 왕자대접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 할머니가 계셔서 좋은 곳입니다. 이번에는 더욱 설레는 일이 있으니, 처음으로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오는 미션이었기 때문입니다. 방학식 하고 와서 둘이 점심을 먹는데 쫑알쫑알 쫑알쫑알 하다가 "엄마, 엄마는 지금 흥분되지도 않아? 아들이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할머니 집에 가는데 대견하고 자랑스럽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같애" 하고는, 다시 쫑알쫑알 쫑알 쫑알.


지하철 역까지 가서 태워보내려고 했더니 역까지 차로 태워주면 혼자 내려가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같이 가서 자기 혼자 들어가고 '엄마 갔다 올게'하고 인사를 하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나쁜 아저씨들이 '쟤가 혼자 어딜 가는구나' 하고 알아채서 잡아갈 수도 있다는 거지요. 합정역에 내려서 후다닥 지하철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그때 비로소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뭉클했습니다. 가는 사이 중간중간 문자를 주고받다가 최고의 난코스 환승역 미션수행을 잘해서 중앙선까지 가서는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엄마, 나 이제 덕소 가는 지하철 기다려. 잘 왔어. 여기까지 오는데 잘 모르겠어도 일부러 아는 것처럼 씩씩하게 걸었어" (이유는 어리바리 하고 있으면 나쁜 아저씨들이 잡아갈까봐.ㅎㅎㅎㅎ)


가서 이 녀석 티브이에 컴퓨터 게임에, 할머니 휴대폰으로 하는 게임까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의 시간을 보냈음이 안 봐도 비디오지만 그 이상을 누리고 온 것입니다. 아무런 통제없는 사랑에 1박 2일 정도 잠기는 행복 말이지요. 사실 늘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힘이 빡 들어간 엄마가 그런 사랑 주기가 어디 쉬운 일이어야죠. 어머님이 행복한 목소리로 현승이 어록을 끝도 없이 늘어놓으시기에  "현승이는 참 행복한 애예요" 했더니 어머님이 더 행복해 하시며 어쩔 줄을 모르시네요. 할머니 좋고, 손주 좋고, 그 사이에 낀 며느리 좋고! 여러 사람 좋은 1박2일 덕소여행.


난생 처음 혼자 지하철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녀온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현승이의 마지막 논평은 이랬습니다 "엄마, 할머니가 지하철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인사하고 손 흔들 때 너무 마음이 슬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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