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1

 

대학 1학년 때 전공 과제로 읽어야 했던 '[또하나의 문화] 제1호_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가 나의 대학생활을 결정지었다. 이것을 읽고 2호, 3호.... 찾아 읽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비공식적으로, 자체적으로 '여성학과'로 전과하여 대학 4년을 다녔다. 전공은 D를 맞으면서 여성학 관련 책은 손에서 내려놓지 않고 지냈다. [또문]에서 나오는 모든 책을 읽어 버리는 심정으로 20 대를 지내면서 결코 시도해보지 않은 책이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이었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정보를 습득하는데 빠른 감각형 'S'(Jung의 심리유형론 또는 MBTI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라서인지 어렸을 적부터 신화 같은 것에 그리 끌리지 않았다. 게다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가 동시대를 바라보는 창이 된다니! 잘 이해 되지 않았다. 또 게다가 심리학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때 쳐다보지도 않았던 <여신> <남신>을 최근 꿀을 빨며 읽었다.  어쩌다 심층심리학과 영성 관련 공부를 삶의 가장 큰 낙으로 살고 있으니 20대 나였다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책들을 붙들고 있다. 꼭 심리학 공부가 아니더라도 S(Sensing)보다는 N(iNtuition)을 필요로 하는 정보가 의미있게 느껴지니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나! 중년을 넘어가면서는 생애 전반부에 쓰지 않았던 기능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발달이라고 하는 Jung 선생님의 가르침을 몸으로 따르고 있는 것인가 하여 괜히 뿌듯하다. 20대에 주로 읽었던 여성학, 사회과학 책들이 책꽂이 여러 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 옆에는 최근 10여 년 읽었던 영성, 융심리학, 꿈에 관한 책들이 줄을 서 있고. 20대의 나와 40대의 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느낌으로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중.

 

화해 2

 

어디나 라이벌은 있다. S여대에 음악치료대학원이 1997년에 생겼고, 그 다음 해에 E여대에도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괜한 앙숙이었다. 나는 S여대에 97년 2학기에 입학하였다. 학교 다니던 내내, 그 이후에도 괜한 집단적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상대 학회에서 하는 행사는 약간 우습게 여겼고, 상대 학교의 교수에 대해서는 폄하하는 일이 잦았다. 개인적으로 보면 딱히 그럴 일도 없었고, 이렇게 저렇게 폄하할 논리적 근거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무심한 듯 민감하게 E여대 음악치료대학원에 대해 뭔가 텁텁한 느낌으로 살아오고 있다.

지난 주 월요일에 E여대 음악치료대학원 학생들에게 연애강의를 하고 왔다. 학과장 교수님과의 인연이었는데. 그 어느 강의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갔다. 이제는 20여 년이 지난 일이라 S여댄지, E여댄지 그런 건 난 모르겠고! 그저 음악치료사 후배들을 만난다는 기대로 사실 많이 들떠 있었다. 그렇다고 강의가 썩 마음에 들게 진행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남만으로도 좋았다. 이유도 묻지 않고 편을 가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의 경계 바깥 쪽에 세워두었던 어떤 집단, 어떤 사람들과 화해한 느낌? 그 느낌으로 역시 흐뭇해 하는 중.

 

화해 3

 

뜬금포 MBTI를 던지며 사람 얘기 하는 걸 지양하려 하는데. 이 글 초반부터 떠들떠들 했으니 그냥 쭉 가자. MBTI의 네 가지 기질 중 NF는 내게 참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중고등 시절 제일 친했던 두 친구가 둘 다 NF였는데도 그렇다. 그중 NF1 친구와는 커서 어른이 되도록 단짝 친구였고, NF2 친구와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연스런 절교를 하게 되었다. NF2 친구는 문학평론가가 되었는데 그 친구의 글이 그렇게 읽히지가 않았다. 나름 한겨레 21 같은데 기고도 하곤 하는 잘나가는 젊은 평론가였는데 말이다. 나는 일단 이 친구의 글을 읽고 나서는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느꼈다. (비단 이 친구뿐 아니다. 대체로 평론가의 글이 해독이 안 되는 경험을 아지고 많이 하는데 이게 평론가의 위엄이려니 한다) 암튼 친구의 글은  너무 현학적이서 불편했고, 심지어 좋은 글재주로 말장난만 한다고 느꼈다. 그 외에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참 달랐고. 아니다. 시각이 아니라 각자 본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해야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NF의 어떤 부분을 못 견뎌하는 내 스타일이 결별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일찍이 글로 잘나가는 친구에 대한 질투심도 있었겠지만서도)

 

또 하나의 NF 후배. 얘는 NF3이라고 하자.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친밀한 집단에 있었다.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얘는 NF라서 힘들었던 것이 아니고 인성 문제였는데 나는 기질차이 문제라고 여겼다.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더욱 대놓고 NF를 내게 유해한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때 이후로 단지 NF라는 이유로 마음의 문에 안전장치를 달아 최대로 열려도 얼굴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MBTI월드]에서 나와 [에니어그램랜드]에 입장하고 나서 만난 NF들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모험과 환상의 나라 NF 세상이랄까? 실은 NF라 이름 붙이며 내 삶에서 배제시키고자 했던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으이그, 저 NF!'하는 이름표 붙이기를 멈췄을 때 얻은 선물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NF가 많고 제일 힘들어 하는 사람 중에도 NF가 많다. 아무튼 그렇게 NF와의 화해는 시작되었다.

 

작년과 올해 내가 MBTI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첫사랑을 회복하여 강의하는 중. NF들의 모호한 언어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운 것이다. 깊고 심오한, 그리하여 스스로 복잡하다고 느끼는 그네들의 내면을 어떻게든 표현해주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안타까움이었다. 그 와중에 올초 내 MBTI 강의를 듣고 참 좋아해주신 어는 NF님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다. 자존감 상승은 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NF에게 인정받는 강의를 했다는 것에 나도 모르는 자존감 향상이라는 결과는 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NF들을 질투하고 있었다는 것, 열등감을 깊이 느꼈다는 것을 말이다. NF(또는 NT)들의 눈으로 내 글과 강의를 바라보면서 괜히 위축되곤 했다. 미주알고주알 떠벌이기.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닫힌 표현. 일상적인 얘기만 떠들어대기. 묻지 않는 말을 깨알같이 쏟아놓기..... 열등감은 다른 것이 아니라 NF들에게 있는 것이 내겐 없다는 느낌이다. 경계를 세우지 않고 무한 열어 놓은 감수성, 지질한 얘기도 있어보이게 하는 상상적이고 은유적인 표현, 깊이 있는 통찰  같은 것들.  Jung식으로 말하자면 내 안에 없는 것이 나오진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타자의 어떤 점이 부럽다는 것은 내 안에 그것이 이미 있다는 것이다. 없으면 부러워할 수도 없다는 것. 그 말이 믿기로 했다. 그 믿음이 헛되다 하더라도, 즉 내게 NF들이 가진 좋은 것이 없더라도 괜찮다 여길 만큼 되었으면 싶다.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져야 한다는 것이 욕심이며 교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지. 아직은 믿기로 작정할 뿐이지만, 시간이 꽤 걸릴 이 작업은 그 어떤 화해보다 깊고 의미 있을 예정이다. 어쨌든 화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감사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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