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고 싶(지 않)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며 ‘사랑’과 ‘성장’을 체험했던 기억(좋았던 때든지 어려웠던 때든지)을 돌아보십시오.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성장하도록 도와준 사람을 떠올려보고 나눠보겠습니다."
에니어그램 집단여정 중에 나눔을 위해 던지는 질문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혼자'라는 외로움에 자주 빠져들곤 하지만 대개는 결정적인 사람 한 둘은 가지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 함께 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금 지속되는 만남일 수도, 과거의 만남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을 던지며 내가 기대하는 바는 자신의 인생여정에서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상처만 받고 살았다고 여기지만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예외없이 바로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뭉클하여 울컥하다 또 다른 질문에 다다르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소망한다.'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사랑을 일깨워줬던 그 사람들을 찾아 일일이 인터뷰 해보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수혜자와 수여자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았다고 사람은 기억하는데 대개 준 사람은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했어? 기억이 잘 안나는 거 보니 깊이 생각했던 것 같진 않은데... 내가 그때 밥을 사줬어?'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번 세미나에선 함께 참석한 두 분이 저 대사를 딱 읊어주셨다. 이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 '사랑'으로 느껴야 사랑이다. 준 사람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라고 울부짖어 봐야 소용이 없다. 대체로 '어떻게 해줬는데!!!!' 하며 준 것들은 공포의 배려이기 마련이다. 사랑과 배려로 '통제'하겠다는 (본인도 모르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서 가 닿는 것이지 쥐어 짜내서 주는 것일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일 때의 이타심, 또는 융의 '자발적 희생' 원형에 대한 지상 강의를 늘어놓고 싶으나 일단 꾹 참고!)
글이나 강의, 대화를 통해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그것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말겠다는 꿈(도 야무져!)이 있었다. 그 꿈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불안했다. 누가 나보다 더 통찰력 있는 강의를 하나, 글을 쓰나 이글거리는 경쟁심과 질투로 혼자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한다). 집착인데, 집착인 줄 아는데 잘 내려놓지 못했었다(못하고 있다). 다행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어 야무진 꿈은 자주 아작나고 있다. 강의든 글이든 상담이든 사랑이든 그렇게 힘이 빡 들어간 채로 제공하는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것을 아프게 배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생이 되고 싶은 욕망은 은밀히 꿈틀댄다. 사랑이든, 가르침이든 내 그릇에 가득차서 넘쳐 흘러 넘치는 것만이 진정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고 내 입으로 강의하면서 내 마음은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억압된 욕망은 과도한 자기비판의 칼날로 대체되어 이중 삼중으로 나를 괴롭힌다. '나만이 답을 알고 있는 태도로 강의한 건 아닐까.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살아내고 있는 체 하지는 않았나' '적게 듣고 많이 말한 것은 아닐까. 들어주면 될 것을, 너무 가르친 것은 아닌가' '고도의 교만을 겸손과 솔직함으로 위장하는 글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날 건져내랴.
지나친 겸손도 아니고 과도한 자기확신도 아닌 절묘하여 아름다운 지점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금요일 우리 동네를 경유해서 출퇴근 하는 D와 아예 동네 주민인 Y가 지나가 들른 느낌으로 집에 왔다. 얘들이 손에 뭘 하나 씩 들고 왔다. 떡볶이 앞에 놓고 수다수다를 했다. 돌아가고 나서 들고 온 예쁜 꽃바구니를 들여다보다 생각하니 작년 이맘 때도 만나서 꽃다발을 받았었다. 아, 얘들이 스승의 날을 생각하고 온 거구나. 작년에도 올해도 우연히 그냥 놀러온 게 아니었구나. 선생이고픈 욕망을 용케도 잘 누르고 있는데 떡하니 받은 꽃바구니에 대놓고 뭉클했다. 마주앉아 수다를 떨다보니 몇 년 전 주일 파리바게뜨에서 딱 이 멤버로 앉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요원한, 또는 어려운 연애 얘길 했었다. 허허. 어느 새 그녀들은 예비엄마, 예비신부가 되어 있다. 어쩌다 이젠 아이를 키우는 얘기를 하염없이 늘어 놓았다. 역시나 가르치는 영이 충만한 나는 (게다가 기분까지 들떠서) 적게 듣고 많이 주절거렸다. 몇 년 전 파리바게뜨에서 커피를 마시던 날 우리가 우연히 만났었단다. 둘이 걸어가는데 내가 차 타고 지나가다 '야, 타!' 했단다. 그런 거다. 애쓰지 않고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는 그때 그때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거다. 만남의 기회가 주어질 때 반갑게 마음을 나누는 거다. 그게 가르침이고 배움이고 사랑이다. 암튼, 고맙다.
(질투의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은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