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7월 12일
오디오 옆에는 98년 7월 12일에 지휘봉을 들고 있는 내가 있다.
CD를 찾는라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를 98년의 신실이 언니가 잡아 끌었다.
아니, 98년의 용선이가 말을 걸어왔다.
9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많이 추웠다.
그 전 해에 청년부 교재로 공부했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함몰 웅덩이' 체험이었다.
사귀던 남친과 헤어졌고,
내 존재감을 확인하던, 내 젊음의 에너지를 거의 쏟아 붓고 있다 자부하던
교회 청년부에서는 고립감을 느꼈다.
열심히 하던 모든 것들이 다 잘못했던 것, 나쁜 것이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여러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후배들과는 모두 단절된 것 같았다.
그 어떤 때보다 적극적이고 대놓고 주도적으로 힘을 발휘하던 20대 후반이었다.
그때 흘렸던 눈물은 그저 억울함과 회한의 눈물일 뿐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눈물을 흘리면 씨를 뿌린 것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의 함몰 웅덩이는 오늘의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때 꺾인 날개는 완치되지 않아 이제 내 몸의 일부같은 통증으로 함께 하고 있다.
나서고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과하게 긴장하고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
겉으론 당당한 척 하지만 마음으론 팥죽을 끓인다.
너무 나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끊임 없이 점검한다.
그 날개를 어여 고쳐서 제대로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작년 쯤에 들었다.
깊은 함몰 웅덩이에서 나와 조금씩 생기를 되찾아 갈 무렵에 용선이에게 받은 것이다.
그림과 거기 적힌 글귀를 보면서,
'아직도 청년부에 나를 생각해주는 후배가 있다니!'
이런 느낌이 스쳐지나가서 좋기도 민망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오늘 액자 속 용선이의 글귀가 새롭게 말을 걸어왔다.
98년? 내가 나를 몹시도 싫어하던 그때,
나를 바라봐주던 이런 선한 눈길이 있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구나!
내가 나를 못마땅히 여겨 괜히 나를 찌르고 때리고 흘겨보는 순간에도
결코 거두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 사랑의 눈길이 아주 가까이 느껴졌다.
오늘 아침 기도는 20 여년을 넘나들며 폭풍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