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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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가장긴장례식

마지막 말

lari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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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둔 마지막 인사가 있었다.

"엄마, 고마워. 엄마 딸이라서 정말 좋았어."

식상하지만 사무치고 절절한 말이다.

 

마지막 말만 준비된 것이 아니다. 그 인사를 어떻게 할지도 생각해 뒀었다. 엄마의 죽음을 오래 준비해왔다. 39년 동안 늘 준비하고 있었다. 어려서는 무의식적으로, 마음공부와 내적 여정을 한 이후에는 의식적으로 준비했다. 내적 여정으로 치유의 눈을 떠가는 중 오래된 상복을 발견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떨결에 입었던 상복, 초록색 스웨터를 입고 그 위에 입었던 무섭도록 낯선 옷이다. 그것을 내다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의 서랍 깊숙이, 그러나 언제든 쉽게 찾아 꺼내 입을 수 있게 기억하며 간직하고 살았던 것이다. 쾌활함으로 위장한 우울, 당당함으로 감췄던 불안, 가족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이 거기서 기인한 것 같았다. 앎이 즉각적으로 치유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화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상실과 애도 과정에 함께 하면서 엄마만은 잘 보내드려야지, 늘 생각했다.

 

아버지 목회를 도우면서 교우들의 죽음을 돌보던 엄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들의 임종을 의연하게 지키고 진두지휘 했던 엄마다. 엄마가 일부러 외워준 것은 아닌데 하도 여러 번 들어서 생각이 난다. '옆에서 울고 그러면 안 된다. 찬송 불러 드려야 한다. 마지막 숨을 넘기는 일은 매우 힘들다. 그때는 물을 한 숟가락 준비하고 있다 한 방울을 입에 넣어 넘기도록 해드리면 수월해진다.' 매뉴얼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축복 속에 고요히 마지막 호흡을 내쉴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엄마의 사랑받은 이들이 모여 찬송 부르는 동안 잠자듯 눈을 감으시는 것을 상상했고 기도했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고마워, 엄마 딸이라 좋았어." 이 말 외에 없었다. 

 

"가, 엄마 이제 가, 나는 괜찮으니 이제 가 엄마......"

39년 준비가 무색하다. 마지막 말이었다. 내가 엄마 귀에 대고 뱉은 말이. 그것도 절제하지 못한 통곡과 함께. 호흡기도 차고 있었고,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의식이 또렷하고 다 알아듣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며칠 전 밤에 이 생각이 났다. 엄마의 호흡이 너무 힘겹게 느껴졌다. 한 번 한 번 호흡을 끌어올리는 일이 힘겨운 고통이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혹시 엄마가 나 때문에 버티고 있는 것이라면 마음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 격리된 상태로 외롭게 보내는 엄마의 시간이 견딜 수 없었다. 엄마에게는 더 큰 고통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실은 엄마의 빛나는 영혼이 무너지는 육체 안에 갇혀 있지 않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전날, 엄마와 마지막 통화였다. 엄마와 연결되는 유일한 끈은 전화기에 대고 부르는 찬송이었다. 행여 엄마 귀에 들리지 않을까 큰 소리로 불러야 하는데, 목소리를 크게 낼수록 울음도 함께 커지니 드레스룸 구석에 머리를 파묻고 통곡하며 불렀다. "성령 감화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세상 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가는 날 천국 가게 하소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호흡기에 막힌 엄마 숨소리만 들리는데, 엄마가 너무 힘겨워 보여서 엄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안심시키고 싶었다. 이제 신실이가 다 컸고, 김서방도 있어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편히 가라고. 하지만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엊그제 늦은 밤. 책을 읽고 몇 줄 글을 남기려다 "숨을 거둔 후에도 청각은 한참 더 남아 있대" 하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엄중한 사랑의 태도로 임종을 지켜야 하겠느냐, 그런 의미를 담았었다. 우리 엄마는 존경과 사랑에 둘러싸여 평화로운 마지막 숨을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무엇. 마지막 말이 저거였다고? 엄마가 저걸 들었다고? 저 말을 듣고 끝이었다고?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 씻어낼 수 없는 죄다. 자책감이란 말도 과분한 감정으로 가슴이 다시 죄어드는 것 같았다. 내 몸을 어떻게 해버려야 할 것 같은, 나를 가만 둘 수 없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감정이 격해질 때는 동생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동생도 그랬을 것이다. 피차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알기에 각자의 몫을 감당할 뿐, 서로 더 아프게 하면 안 되었다. 참지 못하고 전화했다. "엄마랑 내가 마지막 통화할 때 내가 엄마한테 했던 말 기억하니?" 못 들었길 바랬다. 울음이 전부였기 때문에 못 알아들었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복기해보니 내가 그 말을 할 때 얼른 동생이 말을 가로채고 전화를 끊었었다. 상황을 파악한 동생이 '그때 누나 편하라고 엄마가 찬송 다 듣고 따라 불렀다고 했는데 사실 그때 엄마 의식이 거의 없었어. 찬송도 못 알아듣고 누나 말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는데 확인사살과 같았다. 그랬구나. 정말 내가 엄마 귀에 대고 한 마지막 말이......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되돌릴 방법이 없다. 차분히 찬송 부르고 "엄마 잘 자. 곧 보러 갈게"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입에 발린 말이라도 "사랑해. 또 전화할게" 할 일이지. 비록 몸으로 함께 하진 못했지만 엄마가 늘 말하듯 찬송을 불러드렸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는데. 새롭게 견디기 어려운 밤이었다. "어머님이 당신 마음을 듣지, 말을 들으셨겠냐" 몸부림 하는 나를 끌어안고 남편이 하는 말도 위로되진 않았다. 어떤 늪으로, 죄책감의 구덩이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느낌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늪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긴한 건가. 

 

하지만 아침이 되니 괜찮아졌다. 밤에 했던 남편의 말을 복기해보면 이해도 되고 수긍도 되었다.  무엇보다 그런 위로의 말이 필요치 않게 말짱하다. 말짱한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엄마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말짱해지는 것이냐. 밤이 와 슬픔의 파도가 밀려올 때 그 파도를 부풀리고 부풀려서 그 안에 갇혀버리고 싶다. 그렇게 슬픔에 머무르는 것이 엄마와 함께 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엄마를 잊을까 봐, 나조차도 엄마의 존재를 잊어버릴까 두려운 건지 모른다. 엄마가 죽었는데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것이 잔인하다 했으면서 숲이 연둣빛으로 변하는 것에 다시 설레다니. 그 숲에 안기려 하다니. 일상의 감각을 되찾는 나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어떤 사실을 일부러 지우고, 나를 고통에 빠트릴 것만 붙들려고 한다.

 

사고 나던 날 응급실에서 보고, 바로 요양병원으로 간 엄마를 처음 면회한 날은 2월 24일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라 엄마가 더 보고 싶어 돌아서면 자꾸 눈물이 났다. "면회는 못하겠지만 병원 앞에라도 갔다 올까?" 말해준 남편 덕에 병원에 갔고, 눈물로 엄마 안부를 묻다 면회를 허락받게 되었다. 아직 엄마가 호흡기 달기 전이었다. "엄마, 오늘 내 생일이야. 엄마, 나 낳아줘서 고마워. 잘 키워주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엄마랑 함께 울었다. 얼굴 보고 나눈 마지막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다했다. 많은 마지막이 있다. 입관식에서 엄마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 말도 있다. 그것도 마지막이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에서 둘의 차이를 '자기 비하'로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국가, 자유, 이상 등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추상적인 것을 잃은 것에 대한 반응'이 애도라고 했다. 대상의 상실을 자기 비하의 감정 없이 극복하는 과정이라면 우울증은 극단적인 자기 비하로 상실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현상이라고. 정확히 그 밤의 내 태도이다. 하지만 일말의 자기 비하와 죄책감, 후회 없이 애도의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까? 그때 그 말은 하지 말 걸, 그저 "엄마, 전염병 끝나면 보러 갈게" 하고 말 걸, "우리 딸 보고 싶다" 하면 바로 달려가서 얼굴 보여줄 걸, 더 많이 엄마 얘기 들어줄 걸...... 후회 없이 이 시간을 지날 수 있을까. 떠나보내야 하지만 붙들고 싶기도 한 내 마음을 어쩔 것인가. 프로이트의 통찰이 주는 유익이 있다. 그에 힘입어 애도에 대해 강의도 상담도 했다. 하지만 그리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밤 "엄마, 가!" 이 말이 떠올라 다시 늪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 말이 마지막 말이라고, 그 말만이 마지막 말이라고 내게 우기겠지. 엄마와의 마지막 말은 끝나지 않았다고 믿기도 한다. 요즘 자기 전엔 밤마다 기도를 하거나, 엄마에게 같은 내용을 부탁한다. "엄마, 꿈에 나와줘. 꿈에 나와서 엄마가 지금도 어딘가에 있다는 것,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 이 말이 엄마와의 마지막 말일 수도 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며 아직 적응 안 된 엄마 없는 날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오락가락해도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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