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실의 내적여정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larinari 2020. 5. 21. 22:11

 

 

연구소에서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다. 

 

이 한 문장에 담긴 세월을, 허튼 꿈이라 조롱하는 목소리를, 양 옆에 책의 성을 쌓고 읽고 또 읽던 외로운 밤을, 두려움으로 문을 닫아걸고는 아무 말을 쓰고 또 써 쌓인 노트들을 당신은 모른다. 2008년, 에니어그램 지도자 과정의 수강자가 되어 낯설 길에 들어섰던 날로부터 오늘까지. 나는 얼마나 먼 길을 걸어온 것인가. 마흔 되기 전부터 시작된 영적 방황이었다. 나를 잃고 신앙을 잃었으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신앙을 찾아야 다시 숨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전의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찾아지지 않았다.

 

에니어그램, 가톨릭 영성의 길로 맘 먹고 들어선 2008년 지도자 과정이었다. 과정을 마치고 연구소 식구로 초대받았을 때의 기쁨도 당신은 모른다. 강의를 하지만 모두 자원봉사다, 라 해도. 돈도 명예도 무엇보다 따스한 받아들임조차 없는 곳에 뛸 듯 기쁘게 투신했다. 오직 배움 때문이었다. 충분히 쌓인 음악치료사의 경력과 학위, 개신교 안에서 이미 알려진 프로필도 아무것도 아닌 곳인데, 그곳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황송하기만 했다. 나를 어떻게 대하든 그곳에 가서 강의를 듣고, 연구원들과 뒤풀이 하며 내적 여정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였다. 

 

길을 잃었고, 나도 잃었고, 신앙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오래된 새로운 길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길이, 그러나 딱 봐도 내가 가고자 했던 거기로 이어질 길이 있었다. 그 생소한 문화, 생각보다 언어가 너무나 달랐던 그곳에서 반만 알아듣는 바보처럼 앉아 있었다. 모든 걸 적고, 모든 걸 기억하고, 집에 오면 복습하고, 책을 찾아 읽고 기록했다. 갑작스레 연구소와의 인연이 끊어졌다. 함께 마음을 나누던 선생님들은 "너는 버려진 거야. 인정해"라고 했지만, 정말 바보 같게도 함께 한 시간을 주어졌다는 것만으로 여전히 감사했다. 상실감은 너무나 커서 며칠 몸이 아팠고, 연애하다 헤어진 것처럼 마음에 찬바람이 많이 불었다.

 

홀로 떨어져 나왔다는 것, 내 마음을 알아들어 주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이 슬플 뿐이었다. 그때부턴 혼자였다. 혼자, 그 누구도 모를 가톨릭 영성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기도하고 그랬다. 책이 책을 안내하고, 또 다른 책이 안내한 절판된 책을 찾아 중고서점을 헤맸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 긴 시간을 보냈다. 에니어그램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냈다. 친구를 만났다. 믿어주고 도와주는 영혼의 벗들과 손을 잡고 우리 집 거실에서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시작했다. 욕심 없이 나처럼 목마른 사람들을 초대하고 만났다. 왔다 떠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한 번 왔다 결코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다음 단계 여정을 열고, 또 그다음 단계 강의를 준비했다. 내가 준비되니 사람들이 다가왔다. 나처럼, 꼭 나처럼 목마른 사람들은 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 세미나 전 과정을 듣고, 다른 집단 여정에서 만나고, 소식이 끊어졌다가도 또 이어지고.

 

2018년 12월, 기적처럼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가 생겨났다. 믿기 어려울 만큼 준비된 네 사람이 내 곁에 든든하게 서 있다. 역시 목말랐던 사람들, 얼마나 목말랐으면 이렇듯 계산 없이 자기를 던져 이 샘의 물을 사겠는가. 연구원 네 사람이 없다면 지도자 과정을 개설하는 오랜 꿈이 마침내 꿈으로 끝났을 것이다. 내게 없는 것들을 기가 막히게 가진, 가진 것을 사심 없이 내놓는 사람들과 이 어려운 걸 해냈다. 공간이 작아 더 많은 사람을 뽑을 수도 없다. 지도자 과정 1기 6명이 우리에게 왔다. 얼마나 목말랐으면, 얼마나 자기를 찾고 진실되게 하나님을 찾고 싶었으면 이 구석진 곳까지 왔다. 

 

나를 잃고, 신앙을 잃고, 길을 잃었을 때 빛이 왔다. 구원의 빛이 왔다.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왔고, 어두운 밝음으로 왔다. 쓰디쓴 달콤함으로 왔다. 자랑거리를 내려놓는 지점에서 왔고, 내가 쌓았던 착한 행실과 헌신과 섬김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왔다. 내가 기나긴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른 것처럼, 자기 아픔과 그림자를 만나며 고립의 시간을 통과했던 사람들이 오늘 지도자 과정에 온 것이다. 미루어 짐작은 되지만 결코 안다 말할 수 없는 자기의 시간을 통과해서 왔다. 에니어그램 나부랭이에 빠져서 내면이나 파고 있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는 조롱의 소리를 거스르고 왔다. 착해 보이고, 멋져 보이는, 똑똑해 보이는 포장지를 벗어야 환영받을 수 있는 곳임을 알면서 왔다. 

 

2008년, 지도자 과정 수강자로 앉아 뛰던 가슴을 기억한다. 정호승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나도 사랑한다. 내가 연구원 넷, 지도자 과정 1기 여섯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 오늘 남모를 떨림과 고마움을 사랑하는 이유는 시인의 말과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