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inari 2020. 11. 27. 22:07

 

 

 

때마침 두 권의 책이 도착했다.

예정대로라면 기도 피정 첫날 밤을 지내고 있을 시간이다. 예정대로라면 어제 그제는 연구소 지도자 과정 종강 피정을 진행했어야 했다. 글에 파묻혀 살던 11월을 연이은 피정으로 마치고 다음 월요일 쯤 두 다리 쭉 뻗을 예정이었다. 

 

이승우 작가 신작 소설 『사랑이 한 일』은 두 다리 쭉 뻗을 다음 주 쯤 받아 읽으려 했었다. 읽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연이은 피정들이 취소되고, 책이 배송되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세상에 무려 선생님의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모은 책이다. 실은 나도 이번 주에 에필로그를 써서 송고했다. 책 한 권 낼 때마다 가장 어려운 글이 프롤로그 또는 에필로그이다. 어려운 이유는 하나. 멋지게 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초고를 써놓고 하루 이틀 지나 다시 들여다 보면 '허세'가 그득하다. 못마땅하고 부끄러운데 쓰는 방법 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쓰고 만다. 글이 안 풀릴 때 하는 딴짓 중 하나가 책 검색 놀이이다. 그 놀이를 하다 발견한 박완서 선생님 책이다.  이걸 읽고 나면 내 에필로그는 한 자도 쓸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보관함에 담아 두었었다. 붙들고 읽자면 내가 쓴 에필로그가 떠올라 조금 괴롭겠지만 그 괴로움보다 읽는 행복이 더 클 것. 

 

꼼짝없이 다시 집콕의 시간이다. 때마침 두 권의 책이 도착했다. 때는 사실 내가 맞췄다. 바이러스가 침범해 망가진 시간표는 어쩔 수 없지만, 이미 망쳐진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늘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은 때에 맞춰 수정하면 되니까. 천만 시민 멈춤에 동참하여(서울 시민은 아니지만) 모든 일정 취소(당)하고 기분이 좋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