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inari 2021. 11. 1. 09:16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6

 

시어머니 자서전을 써드렸다

 

     책 표지를 들여다보고 앞뒤로 매만지며 자꾸 말씀하셨다. “아휴, 참 그 어머니 복도 많으시다, 복도 많으셔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 앞에 놓인 귤껍질을 찢고 또 찢어 쌓았다. 시어머니 자서전을 써드렸다. 최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일에 관심이 지대하셨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며, 어머님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되겠다고 추켜세우기도 하셨다. 말은 안 했지만, 나도 딴엔 대단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힘든 줄 모르고 작업을 했다. 며칠에 한 번 노트북 들고 어머님을 만나 시기별로 인생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프로필 사진을 새로 찍어 표지 이미지로 넣었다. 어설프지만 책의 모양을 갖췄다. 선생님께서도 꼭 한 권 달라고 당부하셨기에 가져가긴 했지만, 마음은 영 불편했다. “선생님, 나중에 보세요. 아니, 안 보셔도 돼요. 안 보셨음 좋겠네요.” 툭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아니, 왜애? 공들여서 이렇게 잘 만들어놓고?” “, 실패예요.” 속마음이 아니라 내가 모르던 마음까지 나와버렸다. 실패, 실패구나!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어느 병원에 가서도 이렇다 할 진단을 못 받으시는 시어머니시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셨지만 강한 정신력과 신앙으로 고난에 지지 않고 잘 살아오셨다. 정신으론 승리한 인생이지만 그 대가를 몸이 치르고 있는 것일까. 이 병원 저 병원 모시고 다니는 것이 한동안 내 몫이었다. 자녀 된 도리, 의무감도 없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어머님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것을 알았기에 함께 무엇이든 해드리자는 뜻도 있었다.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심리상담과 이런저런 치유 프로그램에도 모셔보았다. 몇 년 전 갑자기 시아버님께서 소천하신 이후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더욱 허약해지셨고, 나로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낸 것이 자서전 쓰기였다. 배움에 대해 결핍감을 가지고 계시지만, 타고난 활자 지향 성향의 어머니께는 딱!이라고 생각했다. 한발 물러서서 당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삶을 구술하시는 동안 새로운 관점이 생길 거라 믿었다. 치유 글쓰기의 진수를 경험하시게 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나 스스로 대견해서 신이 났다.

 

     뭔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원고를 완성하고, 편집을 도와주던 선배 언니가 말했다. “자기야, 이 책 좀 위험해. 등장하는 분들이 읽으시면 어머니가 더 힘들어지실 수도 있겠어. 자기가 서문 격으로 해명하는 글을 하나 써라원고를 쓰면서 나도 우려하는 바였다. 거의 모든 내용이 억울함과 자기 연민의 독백이었다. 어머님 자신이 얼마나 의로웠고 외로웠는지, 헌신했는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몰라줬고. 얼마나 억울하신지. 나야 늘 듣던 이야기라 무감각했는데 제삼자의 눈엔 그렇구나 싶었지만. 다시 쓸 수도 없고, 다시 쓴다고 다른 내용이 될 리도 없다. ‘어머니만의 기억과 해석이니 널리 양해해 달라는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의 해명 글을 붙여 책을 찍었다.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선배 언니의 예상처럼 돌아오는 반응이 싸늘했다. 힘이 빠졌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느낌 지울 수 없었는데, ‘실패라는 말을 내뱉고 나니 더욱 실패감이 밀려들었다.

 

책 한 권 쓴다고 인격이 달라져요?

 

     팔려고 만든 책도 아닌데 실패는 무슨 실패? 이런 책에 실패가 어딨어?

     없나요? 그죠? 없죠. 실패가 어딨어요…… 하아, 그렇지만 아무튼…… 읽지 마세요. 선생님. 읽으실 내용도 없어요. 그냥 뭐 저희 어머니께나 기념이죠.

     뭐 이렇게 심드렁해졌어? 그렇게 신나서 열심히 하더니. 큰일 해치우고 나니 허탈하신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요, 뭐 그냥. 저 혼자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

     무슨 기대가 그리 크셨길래? 뭘 기대했는데, 무슨 실망을 하셨을꼬?

     그러게요. 친척분들이나 어머니 친구분들이 불편해하시겠다는 예상은 했었구요. 그렇죠 뭐. 아무래도 오롯이 어머니 입장이니까요. 같은 경험을 다르게 기억하실 분들이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더 반응이 쎄하더라구요.

     그러기도 하겠다. 그럴 수 있겠네. 그런데 반응이 차가운 게 정 선생에게 그리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아니요. 예상했던 건데요……. 그러니까요. 예상했던 일인데 뭐가 이리 불편한 거죠? 좌절감이 들고…… 이제 더는 방법이 없겠구나, 싶어요.

     방법이 없다니? 무슨 기대가 따로 있었나?

     실은요, 선생님. 몇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어머님의 신체화된 증상들이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몇 번 상담도 시도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어머님 말마따나 화병이라면요. 그러니까 오래오래 쌓인 감정에서 오는 거잖아요. 그 오랜 감정들을 오직 분노, 원망으로만 드러내시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 은혜로 살았다, 감사한 것뿐이다고백도 하시지만, 일상적 대화에서는 남 탓과 비난을 주로 하세요. 물론 표현은 부드럽지만요. 표현은 부드럽지만, 알고 보면 비난과 원망인 것이 더 문제인지도 모르겠어요. 자서전을 빌미로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시며 감사, ! 언젠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감사 요법이요.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건망증이 심해져도 나쁜 기억은 오히려 끝까지 남는다면서요? 나쁜 기억으로 인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억울함과 자기 연민 같은 걸 잘라내는 방법이 감사라고 하셨었죠? 자서전을 쓰기를 통해 인생을 돌아보며 감사를 발견하셨으면 싶었어요.

     (책장을 휘리릭 넘기며) 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좋은 며느리네. 나는 그저 글 쓰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선물로 책 한 권 만들어드리나 했는데. 그 노인네 부럽다아!

     아니에요, 선생님. 좋은 며느리는요. (울컥) 쓸데없는 짓 해서 불화만 만든 것 같아요. (갑자기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려니 목소리가 떨린다.)

     (등을 토닥이시며) 정 선생 마음고생이 크구나.

     대단한 칭찬을 바랬던 건 아닌데. 친척분들은 물론이고 남편 형제들도 굳이 왜 불행한 과거를 들춰서 책까지 내냐는 식인 데다, 어머님은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성찰은커녕 책 자랑에만 여념이 없으시니…… 제가 뭔 짓을 했나 싶어요.

     뭔 짓은? 아름다운 짓을 했지. , 80년을 살아온 노인네가 책 한 권 쓴다고 갑자기 인격이 확 달라져요? 심리 치료하는 사람이 그렇게 순진해? 사람이 그렇게 쉽사리 바뀝디까?

     아뇨, 선생님. 글쓰기 작업은 좀 달라요. 제가 여성들 치유 글쓰기 모임하고 있잖아요. 상담이나 심리치료와 다르다니까요.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놀랍게 관점 전환이 되더라고요. 제가 농담으로 그런다니까요. , 글쓰기의 이런 효과가 알려지면 상담사들 다 굶어 죽겠다.

     에잇, 소문내지 마. 나 굶어 죽기 싫어.

     헤헤, 선생님. 상담으로 돈도 못 버시면서요.

     아하, 웃었다! 이제야 웃네.

 

     그제야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 부풀린 꿈이 컸던 것 같다. ‘책이 만들어질 즈음에 어머니는 분노와 남 탓을 내려놓고 한결 편안해지겠지. 어머님의 달라진 태도를 보는 가족들은 내게 얼마나 고마워할까…… 앞으로 나도 편해질 거야. 탓하고 비난하는 말씀 덜하실 테니 전화 통화가 훨씬 편해질 거야.’ 어머님 자서전을 쓴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썼던 거다. 선생님 앞에 주절거리다 보면 절로 알아지는 내 마음이 있다. 정작 선생님은 몇 마디 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것이 내공인가? , 배우고 싶다.

 

신앙 좋다는 교인들이 제일 어려워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어려운 거지만. 노인네 감정은 더 그래. 단순해서 더 복잡해.

     네? 감정요?

     그래요, 감정, 어쩐지 그 어머니 마음 알 것도 같아서.

     에이, 무슨요! 두 분이 다르세요. 선생님은 평생 마음 다루는 일 하셨잖아요. 저희 어머닌 신앙은 뜨거우신지 몰라도 정말 당신 마음을 모르세요. 그게 어려운 거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신다니까요.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된 거고요.

     자기 마음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다고? 허허, 자기는 자기 맘 알어?

     네? ... 제 마음. 모르죠. 하지만 그래도... (, 방금 전까지 내 마음 나도 몰라 헤매고 있었지!) , ... , 잘 몰라요. 헤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자서전을 쓴다, 내 자서전을 쓴다고 생각하면 일단 기승전결 따라가 멋진 결말이 떠올라. 결말은 당연히 하나님 은혜로 살았다, 이렇게 되겠지? 흔히 상상하는 이야기 틀인데. 어쩐지 당신 시어머니 자서전이 솔직해서 재밌잖아. 나는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나를 몰라준 사람들아, 세상아! 내가 너한텐 이게 섭섭했고, 또 그 옆에 있는 너한텐 이것 때문에 억울했다! 이런 말 속 시원히 한 번 하는 것도 좋겠잖아.

     하, 선생님. 지금 병 주고 약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자서전을 쓰고 곤혹을 치루고 있다니까요.

     곤혹은 당신 일이고. 나는 그런 상상 해본다고. 나도 그렇게 한 번 써 볼까? 하하. 내가 제일 억울하다! 내가 제일 열심히 살았다! 내가 제일 착하다! 하하. 내가 제일 잘났다! 이거 뭔가 통쾌한데.

     하하하하, 선생님, 진짜. 아닌 게 아니라 편집해주던 선배 언니가 그런 표현을 했어요. 제게 해명 글을 하나 써서 덧붙이라면서 그러더라구요.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의 모든 나쁜 X들아!’라고요. 저는 실은 그게 제일 힘들고 속상했던 것인데, 그래서 요 며칠 잠도 잘 못 잤는데,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평생 상담하면서 내가 제일 어려웠던 내담자가 신앙 좋다는 교인들이에요. 믿음이 좋은 건 백 번 귀한 일인데. 그것이 참 미묘해요. 믿은 좋은 사람은 미워해도 안 되고, 화내도 안 되고, 심지어 슬퍼해도 안 되고, 우울해도 안 된다 여겨.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잖우. 좋을 때가 있으면 미울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가 있고. , 왜 성경에 예수님도 슬퍼 눈물 흘리시고, 화도 내시고, 욕도 하고 그러던데. 감정 자체는 옳고 그른 게 아닌데요. 신앙의 이름으로 감정을 누르고 억압하는 것이 병이 되는 거, 잘 알잖아. 상담하다 보면 왜 방어기제라는 게 있잖우. 제일 힘센 방어기제가 하나님이야. 자기 문제를 봐야 할 즈음이 되면 하나님 뜻, 하나님 은혜로 퉁 치고 도망가는 거야. 그러니 뭐 마음의 핵심 문제를 어떻게 다루겠어? 모르긴 해도 정 선생 시어머님도 그러실 거야. 그렇게 어려운 인생 살아오셨으면 당연히 억울한 것이 많고, 섭섭함도 쌓여 있겠지. 신앙 때문에 미운 사람 제대로 미워하지 못하고, 사랑하자 사랑하자 덮고 오셨겠지만. 몸이 제일 정직하다고. 몸이 더는 그 억압을 버티지 못한다니까. 자서전 덕분에 세상에 대고 야이, 나쁜 년들아!” 한 번 하셨으니 잘하셨네. 며느리가 판을 잘 깔아드렸어.

     그, 그렇게 되나요?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깔아드린 판은 말하자면 감정 토로 그만하시고 성찰하고 감사하시라는 판이었죠. 그런데 말씀 듣고 보니 어머님께 필요했던 건 성급한 성찰이나 감사로 끝나는 매끈한 결말이 아니었단 생각이 드네요. , 선생님 그러네요. 치유란 면에서도 그렇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신앙의 용어로 괜찮다고 덮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어머님 몸을 아프게 했던 것인데요. 실은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죠.

     우울이나 분노 슬픔 같은 부정적이라고 불리는 감정들이 우리에게 없어야 할 것처럼 여기잖아요. 없어야 할 것이니 당장 썩 물러가라! 한다고 사라져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느껴야 하고, 표현해야 하고, 거기다 공감을 받아야 해요. 노인의 감정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잘했어. 며느리가 당신 얘기를 들어주고 써주는 그 자체가 치유였을 거야. 당장 큰 변화는 없어도 분명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르게 보여요. 정말 보람이 1도 없다, 괜한 짓을 했다 싶었거든요.

 

화석이 되어 가는 회고적 감정

 

     진정한 감사로 가기 위해서는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마주하는 게 필요해요.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의 감정은 과거로 향할 수밖에 없어. ‘회고적 감정이라고 하지.

     아, 회고적 감정이요?

     응, 회고적 감정. 모든 감정이 그렇지만, 정 선생 시어머니가 늘 느끼던 것, 그래서 결국 책에도 그리 담길 수밖에 없었던…… 아까 뭐라고 했지? 본인만 의로웠고, 외로웠고, 그걸 몰라줘서 서럽고 억울하다고 그랬나? 그런 감정들이 과거를 향하는 감정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뿌리 깊다는 거예요.

     그렇죠. 뿌리 깊죠. 일종의 집착 같다는 생각도 해요. 어떤 방식으로 느끼겠다, 작정하신 것 아닐까 싶어요. 섭섭해서 섭섭한 것이 아니라 섭섭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섭섭하달까? 그런 틀을 좀 깨야 당신 마음도 편해지고 몸도 덜 아프시지 않을까 하는 거죠.

     말 잘했다. 어떻게 느끼기로 작정한 바가 사람마다 있다니까. 80 평생 굳어져 온 감정의 패턴이 있고, 거기에는 그 시엄마의 인생이 담겨있을 거야. , 왜 눈 온 날 길에 자동차 길 생각해봐요. 한 대 두 대, 지나가기 시작해서 바퀴 길이 나면 뒤에 오는 차들은 저절로 그 모양 위로 가게 되거든. 감정에 길이 난 거야. 80년 그 모양대로만 다녀서 다져지고 다져졌으니 다르게 느끼는 걸 못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자서전 쓴다고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말씀하시고 싶은 거죠? 오래오래 쌓여서 지금 모양이 된 어머니의 감정 패턴이, 회고적 감정이라고 하셨나요? 바뀔 리 없다니 다시 힘이 빠지네요. 히잉, 아주 선생님 제 감정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시네요.

     하하, 딱히 그 말만은 아닌데. 내 얘기는 정 선생 너무 애쓰지 말라는 거야. 마음은 알겠다. 자기가 하는 일로 시엄마 돕고 싶은 거. 마음의 병으로 몸까지 아픈 시어머니 고쳐보겠다는 뜻도 보기 드물게 귀한데. 잘하려 하다 생기는 부작용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부작용요?

     그래, 부작용. 오늘 부작용이 증상이 심한 것 같은데? 하하. 사람 마음, 그러니까 감정 말이야. 안 바뀌어. 생각을 바꾸는 건 그나마 빠르지. 하긴 뭐 노인네 생각이 바뀐다면 그게 기적이지만. 아무튼! 정 선생 내 말 한 번 따라와 봐. 눈을 감고 5초 후에 기쁜 감정을 느껴 봐. 센다. , , , , . , 기쁜 감정이 됐어?

     아, 아니요. 어떻게 5초 안에...

     좋아 그러면 5초 후에 선생님 집 식탁을 떠올려 봐. 그 위에 올려져 있는 것들도. 어때?

     이건 떠오르죠.

     이거야. 생각은 그나마 바뀌는데 감정은 쉽게 바뀌지 않아. 특히 의지로 바뀌지 않아요. 무슨 말인가 하면, 정 선생이 애초 도달하지 못할 목표를 세워놓고는 거기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금 자책하고 있는 거라니까. 냉정하게 말하면 당신 시어머니 안 바뀌어.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끝내 원인 진단 못 받고 그 정도 고통 지니고 사실 거야. 마음에서 기인한 신체화된 통증, 그것 역시 어머니 인생에 대한 회고적 반응일지 몰라요.

     아...

     자서전 써드린 건 정말 잘한 일이야. 모르긴 해도 당신 시엄마는 책 쓰는 게 좋았던 게 아니라 며느리가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토 달지 않고 얘기 들어주는 것이 좋았을 거야. 실은 노인네에게 필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우. 나는 사실 당신 시엄마 무척 부러운데, 책 하나가 부러운 건 아니다. 이런 며느리 있는 게 부럽지. 에잇, 질투나! 내가 질투 나니까 너무 잘하지 마. 살살해. 좋은 며느리, 착한 며느리 하려고 너무 애쓰다 과부하 걸리면 다 집어치우고 싶어 진다. 하하.

 

     도달하지 못할 목표. 이 말이 마음에 콱 박혀 며칠 떠나질 않는다.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자주 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내가 뭘 그렇게 잘하려고 애쓴다고 저러시나, 싶었는데 조금 알 것도 같다. 맞다, 첫 만남에서 선생님이 나에 대한 인상을 그렇게 말씀하셨었지. 강의 들으면서 어깨에 힘을 빡 주고 키보드 두드리며 노트 필기 하더라고. 힘을 빼고 노화의 강에 몸을 맡기라고 하셨었다.

 

     어머니 자서전이 불러일으킨 감정이 복잡하다. 바뀌지 않는 어머니로 화가 나고, 바꾸지 못하는 나로 인해 실패감에 절어 있었는데, 어머니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돌아봐야겠구나. 80년 쌓인 회고적 감정, 그것도 내 마음 아닌 어머니 마음 바꾸겠다고 끙끙거릴 것이 아니구나. 그나마 아직 석회화가 덜 된 내 몸과 감정 돌아보기를 시작해야겠구나. 언젠가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 ‘좋은 노년은 없다. 좋은 중년의 결과일 뿐이다도 다시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치유적 자서전을 쓸 골든타임은 노년이 아닌 노년 초입, 즉 중년인지 모르겠다. 어머니께 기대했던, 자신의 생을 성찰적으로 돌아보며 감사의 열매를 찾아내는 것 말이다. 내가 지금 해야, 지금 시작해야 그 열매를 따 먹는 노년을 살게 되지 싶다.

 

     선생님의 노년이 어떻게 이렇게 지혜롭고 평온하시냐고 다시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 치실 것이 뻔하다. 추측할 수 있다. 50대쯤에 겪으셨던 삶의 위기,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방향의 전환이 크게 있었다는 것을. 아마, 그때로부터 선생님은 당신의 회고적 감정을 적극적으로 마주하셨을 것이다. 감정을 건강하게 대하시는 비결도 조금 안다. “에잇, 질투 나!” 그때그때 감정을 숨기지 않고, 꾸미지 않고 내보이시는 것. 실은 이 모습이 가장 닮고 싶고 멋져 보인다. 이 말씀도 자주 하셨지.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 그거 별거 아냐. 자기 진짜 감정을 아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가장 편안하고, 그런 사람에겐 자꾸 다가가 말 걸고 싶거든.” 다루지 못한 회고적 감정이 쌓이고 쌓여 화석이 되기 전에, 오늘 지금의 진짜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야지! 그래야겠다.

 

시니어 매일성경 2021 11-12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