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실의 내적여정

작고 작은 이 세상

larinari 2023. 4. 22. 07:51

 

모 선교단체 전국간사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이 있었다. 강사로 내부자 아닌 외부자를, 무엇보다 신학도 하지 않은 여성을 부르는 것도 의외라 여겨지기에 늘 그렇듯 부담이 컸다. 그래도 흔쾌히 수락하고 기쁘게 그 시간을 기다린 것은 몇몇 얼굴이었다. 내적 여정의 벗이라는 말로도 조금 부족한데, 어쨌든 내게 가장 소중한 얼굴은 '내적 여정, 내적으로 연결된' 이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의자에 앉았던 내게 일어날 기회도 주지 않고, 기습적으로 패밀리 레스토랑 직원처럼 자세를 낮추고 다가와 인사를 건넨 간사님과는 그 어정쩡한 자세로 안고 반가움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렇게 저렇게 아는 얼굴이 많다. 나를 단체에 자주 부르신 시니어 간사님은 "여기서 삼분의 일은 소장님이 만나셨던 얼굴일 것"이라고 하셨다. 신입 간사 훈련으로, 아니면 간사 재교육으로 내적 여정을 여러 그룹 진행했으니 그럴 만하다.

 

광고시간에 기수별 소개 시간이었는데, 죽 나와 서는 여섯 명이 지난 해 짧지 않은 '내적 여정'을 함께 했던 신입간사단이었다. 앞에 나와 섰는데 내가 왜 울컥하고, 든든하고, 자랑스럽고, 뿌듯한 거지? 삼분의 일을 알아도 내 마음에서 가까운 것이지,  찾아와 인사 나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몇 번 강의 들었다고, 나이 많은 강사에게 찾아가 인사하고 그러진 못한다. 그래도 나는 지난 수요일 이후로 마음이 꽉 채워진 느낌이다. 내적 여정으로 만난 분들은 많은 경우 나를 에니어그램을 가르친 '강사'로 기억하겠지만, 내 마음엔 그들이 '수강자' 이상으로 남아 있다. 나눠준 어떤 이야기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고, 가끔은 "잘 살고 있을까?" 떠오르면 짧은 기도를 드리게 되기도 한다.

 

이상하게 그 날 이후로 "작고 작은 이 세상,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이란 노래가 마음 어디서 자꾸 울린다. 내 마음이 작고 세상이 작다. 작은 마음에 들어오는 이들은 진실한 것을 나눴거나 나눌 것 같은 사람인 것 같다. 적절하게 차려입고, 적절한 말을 주고받으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마음에 남는 만남은 포장지 걷어내고 함께 시간이다. 양量의 문제가 아니라 질質의 문제라고 할까?  '질'의 시간, 진실의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은 그가 나를 기억하건 말건, 내 마음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생각해 보니 가사가 이렇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  오, 이거였구나! 내적 여정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공포'를 꾸미지 않고 나누는 자리이다. 

 

브레넌 매닝은 "참된 삶이란 말이나 개념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당장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진실하게 경험하는 것만이 진정한 삶이고 세상이라면, 세상은 작고 작은 것이 맞다. 나이 들수록 더욱 작고 작은 세상을 살아가야지, 마음먹게 된다. 그래서 자꾸 이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