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사람

교회를 확신했던 시간들

larinari 2023. 9. 28. 12:13

엊그제 <꿈과 영성생활> 집단 여정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내게 교회란?" 질문을 가져온 분의 답은 "엄마 아빠를 대신한 곳, 엄마 아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준 곳"이라고 했다. 교회 아닌 어디에서도 주목받거나 칭찬받지 못했는데 칭찬받고 사랑받았던 곳이라고. 비슷한 답을 하는 분들이 있었고, 내게도 교회는 그런 곳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을 보낸 교회에 다녀왔다. JP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은 곳이다. 두루두루 큰 사랑을 받았고 열정을 다해 사랑했던, 그러다 깊이 절망하고 상처를 안고 떠나온 곳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늘 예측불가, 설명불가라... 좀 놀라운데 그냥 "다녀왔다"라고 쓰겠다. 모님이 강의하러 오신다고 다른 교회 다니고 있는 부러 수련회에 참석해 준 친구들이 큰 격려가 되었다. 

 

그 시절, 사랑을 많이 주셨던 권사님들 뵈어서 울컥했다. 사랑받았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권사님 아이들을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내 나이 스물 여섯 청년 시절에 만났으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스물여섯 청년이었던 나를 예뻐하시더니 권사님들을 이제 곧 스물여섯이 될 채윤이도 알고 기억한다. 제 나름의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돌아보면 교회를 확신하는 시절이었다. 확신의 근거는 사랑받고 사랑했던 사랑의 유통이었고. 한때 받은 사랑이 몸에 축척되어 있어서 교회를 확신할 수 없던 메마른 날에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확신'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어야 하는 건가. 확신 없는 날을 견디게 한 것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이라면, 확신도 사랑이고, 확신 없음도 사랑인가?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영상이 있다. 6월에 찍고 8월에 방송에 나왔는데, 어쩌다 "교회의 딸"이란 캐릭터를 잡았다. 태어나보니 교회의 딸. 교회에 대한 확신은(사랑은)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였나. 나는 교회의 딸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인가? 오글거려서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영상을 뒤늦게 공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