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치지 못한 감사 편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란 신비하다. 침묵 속에서 만나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서도 고유한 성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말이 아니라 침묵 속 만남이라 더 또렷해지는 존재의 향기일지 모르겠다. 봉쇄수도원의 침묵 속에서, 마음에 한 여인을 품고 왔다. 피정자 돕는 문지기 수녀님은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을 하고 "아, 알죠. 개신교인이신 것" 하고 맞아주셨다. 며칠 째였던가, 수도복 아닌 작업복에 장화를 신으시고 털모자를 쓰고 내 방 문을 두드렸다. 밝고 맑은 얼굴과 목소리로 "식사하세요!"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안아버릴 뻔했다. 식사를 해라 말아라, 기도를 해라 말아라 간섭이 있는 곳이 아니다. 새벽에 있었던 열쇠 해프닝(매뉴얼을 따르지 않는 피정자로 인해 다른 피정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에 대한 사과 또는 도움 요청은 담당 수녀님들 몫인 것이 안타까운, 그런 일이었다.)에 대한 미안함 또는 고마움을 전하려 함인가?
작년 피정에서는 80을 넘기신 노 수녀님을 선물처럼 만났다.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쓰신 박사논문이 12세기의 작품인 <황금서간>이고, 그 책을 번역하신 수녀님이시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매일 일곱 번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던 차. 선물처럼 면담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봉쇄수도원이니,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만남이었고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생생한 향기로 남아 있다. <황금서간>, 그 깊고 어려운 고서를 번역하셨기에 다소 젊고 지적인 수녀님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봉쇄수도원에 들어가신지 50년이 넘었다는, 80을 넘기신 할머니 수녀님이셨다. 그때 나눈 몇 마디 대화가 내 어떤 부분을 바꿨고, 여전히 바꾸고 있음이 신기하다.
매 시간 기도하면서 수녀님들은 멀리 앉아 계시고,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계시고, 나는 안경도 안 끼고 있어서 도통 누가 누군지 가늠이 되지 않으니... 수녀님, 잘 지내셨어요? 1년 만에 또 왔어요. 감사합니다, 수녀님. 여기 계셔주셔서... 마음으로 인사하고 기도할 뿐이었다. 이렇듯 침묵 속에서 마음으로 건네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때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 동그란 얼굴의 귀여운 젊은 수녀님께는 참지 못하고 이름을 땄다. "수녀님, 성함이...?(속닥속닥)" "저희는 세례명이라고 해요. 사라 수녀예요.(속닥속닥)" 사라 수녀님... 기도 자리도 바깥쪽 끝자리여서 잘 보인다. 수녀님들이 들고나고 하실 때마다 축복하며 기도하게 되는데, 특별한 만남의 특별한 수녀님을 위해 특별히 기도했다. "사라 수녀님의 몸과 영혼이 당신 안에서 행복하게 해 주세요."
떠나오는 날 아침에 사라 수녀님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런 시도 자체가 기도에 분심을 더하는 일이 될까 싶었지만, 일단 쓰기는 했다.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편지를 전하기는커녕 인사도 못하고 올라왔다. 나타나주지 않으면 만날 도리가 없으니, 이 수녀님도 새를 닮았다. 그대로 집에 가져온 편지이다. 전하지 못한 감사편지는 오래도록 감사의 기도가 될 예정이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울은 그 절망의 심리 기제다.
앤드루 솔로몬 <한낮의 우울>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경미한 우울감이 몇 개월 째 이어지고 있다. 피정에 들어갈 때도 여전히 다소 우울했고, 마치고 나올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우울감 속에서도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만남과 일들이 반짝이고 있다. 사라 수녀님에게 전하지 못한 감사 편지처럼, 편지보다 더 깊고 큰 감사의 마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낀다. 소장님 보고 싶다는 말이 생각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깜짝 영상을 찍어 전송했다. 모든 감사 인사, 모든 그리움의 인사는 사랑의 인사다. 부치지 못한 감사 편지는 두고두고 긴 감사의 마음이 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절망의 마음이 우울이라면, 오늘의 이 우울은 내일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