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일상

겨울 실내악

larinari 2025. 1. 28. 10:40



겨울 실내악(室內樂) / 김현승

잘 익은 스토브가에서
몇 권의 낡은 책과 온종일
이야기를 나눈다

겨울이 다정해지는
두꺼운 벽의 고마움이여
과거의 집을 가진
나의 고요한 기쁨이여

깨끗한 불길이여
죄를 다시는 저지를 수 없는
나의 마른 손이여

마음에 깊이 간직한
아름다운 보석들을 온종일 태우며

내 영혼이 호올로 남아 사는
슬픔을 더 부르지 않을
나의 집이여

 

하염없이 눈이 내리니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시간을 덮어버려 명절이 사라졌다. 갑자기 주어진 두둑해진 시간으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원고와 여러 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근심과 기도를 하면 될 텐데... 갑자기 진공상태가 된 듯하다. 모니터 앞에 앉아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키스 자렛의 피아노 소리로 충분한 것 같기도 하고. 뭐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클레어 키건의 소설 두 권을 클리어한 남편이 "클레어 키건의 다른 소설도 사면 안 돼?"  하면서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뒤적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영상이라도 남겨 볼까? 어... 이 남편, 그새 사라졌네.

 

김현승의 시 <겨울 실내악>에 이 모든 것, 그리고 그 이상이 담겨 있어서 자꾸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