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봄
봄에게 참 미안하게 됐다. 매일 마주 보면서 이렇듯 가까이 다가온 줄 몰랐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비가 오는 주일, 이 날이 지나면 벚꽃은 끝이라는 얘기라 자꾸 들렸다. 잠깐 벚꽃 아래를 걸어보기도 했으나 존재를 알아보지는 못했었다. 눈을 맞추지 못했었다. 거실 책상 앞에서 매일 보는 산이 어느새 연둣빛을 띠고 흰색과 분홍 토핑이 얹혔는데, 도통 가 볼 수가 없네... 이렇게 올봄은 끝이야, 하고 있었다.
주일에 저녁 먹고 나니 6시, 해지는 시간 7시 몇 분. 우박에 눈에 춥고 난리가 난 날씨였는데, 어느새 맑아진 하늘이었다. 다짜고짜 일어났다. 그냥 나섰다. 경안천을 염두에 두었으나 발길이 자꾸 오른쪽으로 향한다. 산이다. 5 분이면 흰색 분홍색 토핑 얹어진 지점에 이를 것 같다. 젖은 산길 오르니... 어머, 여기가 이런 곳이었어?!!! 갈색 겨울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진달래 동산이었다. 절정이었을 때는 더 좋았겠으나, 꽃잎 지고 난 초록잎을 보는 것으로도 좋았다. 내가 내년 봄에 살아 있다면 세심하게 눈 맞춰 맞아줄게!
연구소 리뉴얼과 함께 <뉴스앤조이>에 "신앙 사춘기 너머" 연재하는 일로 봄을 잃었었다. 시작 예배 마쳤고, 세 번의 글을 써서 적응도 되었으니 다행이다. 이사 온 동네가 좋다고 좋다고, 노래를 부르던 겨울이었는데. 갈수록 '뭐, 동네 별 거 없네. 산도 좀 힘들기만 하고 걷는 맛이 없어. 경안천까지 나가는 길이 너무 길어...' 시큰둥해졌었다. 볼 '눈'이 없어진 것이다. 마음이 흐려지면 눈이 흐려지고, 눈이 흐려지면 보지 못한다. 겨우 정신 차려 봄의 끝을 보았다. 다행이다.
3월 28일, 장 보러 나갔다가 스르르 발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서 마트 뒤 동산에 닿았고, 거기서 망울 터트리는 진달래를 보긴 했네! 피어나는 분홍색은 저렇게 진하며 선명하구나. 어제 본 떨어져 누운 진달래와 이렇게나 다르구나.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