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예수님!
일부러 생각한 건 아닌데 당신의 십자가와 고난을 생각하면,
당신의 골고다로 향하신 그 아픈 발걸음을 떠올리면 요즘 말로 '엣지'라는 단어가 맴돕니다. 엣지 예수님.


2년 전 이 즈음의 일기장을 펼쳐보았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당신의 고난의 순간순간을 묵상하며 그런 제목을 달아 일기를 썼었더군요. '담담히 고난 받으신 주님' 이라고요.
억울한 누명, 배신, 모욕.... 아 이렇게 언어로 늘어놓으니 당신이 맞닥뜨리셨던 그 현실들이 현실감 없이 다가오는군요. 아무튼, 한 때 당신이 베푸신 사랑, 그 기적의 떡과 물고기를 좋아라 먹었던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하던 종교지도자들의 온갖 부추김에 당신을 등지던 그 때요. 바로 그 사람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던 그 사람이었을테니까요.
믿음이 연약한 제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을 이유는 많지만 십자가를 향하시던 그 밤에 보여주신 당신의 담담함 입니다. 저라면 빌라도가 준 그 발언의 기회에 '이 때다. 마지막 설교를 할 때다' 하면서 온갖 교훈을 빙자한 자기변호를 떠들어댔을테지만 당신은 침묵을 지킬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침묵이 비겁함이지 않음은 가장 결정적인 질문,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물음에 거짓없이, 두려움 없이 답하셨습니다.
이런 태도가 '총독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마27:14)'라고 기록되었는데 제 마음에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모욕의 순간에 흐트러짐 없이,
저자세도 고자세도 아닌 정자세로 걸으신 당신의 갈보리 길은
엣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엣지 예수님! 당신의 깊은 내면의 엣지를 닮고 싶습니다.


2년 전엔 없었던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 옆의 성경'이 제 손에 주어진 올해 고난주간입니다. 유진피터슨님의 '메세지' 덕에 당신의 고난을 맑은 눈으로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주간을 제대로 고난을 겪으며 보냈던 남편이 했던 수요예배 설교가 마음 깊은 곳으로 풍덩 들어와 고난의 현장에 서 있는 저를 발견하게 했습니다.


고난을 묵상하던 남편이 그랬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살인의 광기로 술렁였던 것 같다구요. 어느 핸가 월드컵 우승후보였던 콜롬비아(맞나?)에서 예선탈락을 하고나서 온 나라를 휩쓴 분노의 광기가 자책골을 넣은 선수를 총살하는 결과를 낳았다더군요. 그것과 흡사하다고 했습니다.
군중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눈을 가리고 머리를 때린 후에 '누가 때렸게? 맞춰봐.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아, 하나님의 아들이고 유대인의 왕이라면 왕복이 필요하겠군. 옷을 벗겨서 왕을 상징하는 붉은 천조각을 걸치게 하고, '왕관도 있어야지' 라며 가시로 만든 왕관을 머리에 씌웠습니다. '왕이라면 홀을 들고 있어야지' 라며 갈대를 손에 들게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절하고, 절하고 나서 때리고, 때리고 나서 침 뱉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대제사장들도, 로마군인들도 한결같이 조롱합니다.
'왕이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맞아서 억울하면 어서 당신의 힘을 보여. 당신 자신을 구원하라니까.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우리에게 복수해봐. 어서.어서 실력을 보이라구.  하하 저 자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더니 자기는 구원을 못하는군!  아,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다 믿을텐데 말이야. 가만둬봐봐. 저 자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나 지켜보자구.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구해주나 보자 ...(마27:27-49)'


군중들의 당신을 향한 저 파렴치한 광기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만 당신의 존재가 백성들에게 제대로 밝혀지면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군중들의 눈을 멀기 하고 있지요.
군중들의 광기는 무엇일까요? 불과 일주일 전 예루살렘이 입성하는 당신을 향해 '호산나, 호산나'하면서 환호했던 군중들 말이지요. 저들의 구원에 대한 기대가 처참히 무너진 탓인가봐요. 로마의 폭정에서도 구원하고, 삶의 고통에서도 구원할 당신을 드디어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로마의 폭정은 물론이고 떡 다섯 개로 그 많은 사람을 먹이신 당신만 있다면 먹고 살 걱정도 없고, 다시 몸이 아파도 한 방에 낫게 하실 당신이 있어서 안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진짜 구원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허약하신 예수님! 이럴 수가 있어요?
그런 당신이 그렇게나 약한 모습으로 잡히다니요. 잡혀서도 그렇게 유약하게 끌려다니다니요. 세상에 구원자가 그럴 수 있습니까?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당신을 팔아 자신의 안위를 공고히 하는 저 못된 인간들을 처단하셔야지요. 제 문제를 해결하셔야지요. 배신과 분노로 들끓는 저 군중들 속에 제가 있어요.  


제가 외치고 있어요. 2000년 전 그 군중 속에서 오늘의 제가 막 당신께 당신께 퍼부어대고 있어요. 그러면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못 박으시오! 저런 메시아는 소용없어요!'
하고 있어요.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우는 자칭 영적인 지도자들, 당신의 십자가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지도록 하기 위해 왜곡된 말씀 해석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하는 지도자들이요.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땅을 당신께 바치고 당신께 바친 그 땅의 구석구석을 포크레인으로 긁어대며 상처내어 땅과 그 땅의 사람들에게 피눈물 흘리게 하는 영적이지 않은 지도자들.
그들을 왜 그냥 두시냐고,
그들로 인해서 눈물 흘리고 고통당하는 당신의 어린양들을 왜 그냥 두시냐고,
또 나의 이 현안들은 왜 해결해 주시지 않냐고? 내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수는 언제쯤 해주실지.....
기도제목이라는 미명하에 당신에게 기대했던 많은 것들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당신께 쏟아부었던 제 분노들이예요. '빨리 능력을 보여주세요.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하나님이시니깐 빨리 좀 제 삶을 어떻게 해보시라구요!'


이제야 알겠어요.
그러면서 나 또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었다구요.
그걸 알고나니 당신의 사랑이 또한 다시 가슴 벅차게 밀려와요. '하나님, 저 명일동 정신실을 용서하십시요. 쟤는 지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몰라요. 몰라서 저러는 거예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순히 하나님의 분노를 재우기 위한 응징으로 지신 십자가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당신 자신이 스스로 당신의 육신에 '죄의 근원' 그 자체를 뒤집어 쓰시고 죄와 맞닥뜨리셔서 변치않을 승리로 이끄시며 제게 당신의 '능력' 아닌 ''을 보이셨어요. '능력'을 구하는 저는 죽을 때까지 '자유'를 얻을 수 없지만 '사랑'을 알 때는 그 사랑을 한 번 힐끗 보기만해도 저를 자유케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요....


엣지 예수님!
죽을 곳으로 힘없이 끌려가시는 허약하신 예수님!
당신의 엣지의 근원,
그게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십자가 그늘에서 당신의 사랑을 알아, 사랑의 진리를 알아,
참자유의 삶을 살기 원해요.
제가 또 당신께 능력을 구하면 저를 옥죌 때 오늘 쓴 고백을 읽으며 다시 십자가로 가까이 갈께요. 부활의 주님을 기다려요.



사진설명 :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두물머리 생명평화 미사에서 forest님이 찍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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