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의식이 수면 위에 올리진 못했으나 예전부터 안희정이라는 사람이 궁금했었다.

아마도 일단 그이 가끔씩 화면에서 볼 때마다 느껴진 그의 강한 내향적 포스 때문이었으리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 그가 카메라를 향해서,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검찰, 조중동! 당신들이 원했던 게 진정 이거였습니까?' 하고 내뱉을 때도 사실 강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절제된 그러나 결국 감출 수 없는 떨림으로 그저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고나 할까?

저 사람은 누굴까?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저 사람. 배울만큼 배운 사람, 알 만큼 아는 사람이 그 누가 인생을 '측근'으로 살고 싶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으로 인해서 감옥을 사는 것조차 감내하고도 여전히 '측근'인 저 사람을 도대체 누굴까?

대통령 서거 후 미공개 동영상에서 안희정씨의 출판을 축하 메세지를 전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메세지를 전하다 울먹하며 말을 못 잇고, 결국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눈물을 쏟아놓은 다음에야 말을 이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저를 위해서 그렇게 희생을 했는데 그 희생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질 않아요. 누군가 그렇게 희생을 했으면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당연히 부담이 되는 것이거든요. 근데 이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는 법을 아는 사람이예요'

그 영상을 보고나서 더 궁금해졌다. '자전적'이라는 분위기의 책들을 그다지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 얼른 이 <담금질>을 주문했다. 읽어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줄을 서 있지만 얼른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구나. 광주항쟁을 접하면서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사람 죽이며 정권을 잡은 사람들)' 싶어서 대학생들을 찾아가 따라다니다 결국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던 때가 고딩시절이었다. 강하고 강한만큼 뒤를 돌아보거나 타협을 하는 것, 또 자성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청년 안희정의 인간 담금질 이야기. 가장 쎈 '담금질'은 대학생 시절 잡혀가 고문을 받으면서, 결국 거기에 굴복하여 친구들의 이름을 대고 나왔던 그 때라고 여겨진다.

그 때 이후로 안희정은 깨닫는다.  자신이 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에 대한 실망,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달려왔지만 결국 별 거 아니라는 인식 끝에 방황하고, 나락에 떨어지고, 희망을 잃은 채 생각없이 사는 세월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로인해 가장 안희정다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로 그 자신의 말대로 '양심 찾고, 의리 찾고, 돈이 안 돼도 함께 걸어가야 할 사람의 도리를 강조하는 길'을  걸으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비록 가난했고, 고난이었고, 희생과 포기의 길이었겠지만.  '측근'일 뿐이었지만...
안희정에 대한 내 의문은 여기서 풀렸다. 그가 어떻게 '측근'으로 만족하고, '측근'으로 충실하게 일관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살 수 있는지 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리 훌륭해도 '나는 결국 대단하지 않다. 나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고 비판하는 저 사람과 결국 본성상 크게 다르지 않다' 라는 뼈아픈 자각 없이는 정말 훌륭한 인격이 될 수 없다. 그 자각이야말로 측근으로서의 정치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여정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남편이 신학을 시작하기 직전에 느헤미야를 묵상하면서 그랬다. '여보, 여태까지 나는 모두들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헌데 생각해보니, 나는 성벽의 여기서 저기까지 한 구역을 맡은 벽돌 쌓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름 없는 한 사람의 노역꾼. 그거면 되지 않을까?' 자신의 길에 확신을 가지고, 지금 자신이 하는 벽돌쌓기 단순노동이 무너진 하나님의 성을 쌓는 일임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끊임없는 역사의식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쓰면 마치 내가 이 책을 다 읽은 것 같지만 사실 결정적인 부분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 읽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페이지 83 쪽에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이 시작되는데 이 장의 제목만 보고도 울컥하여 차마 눈이 가는 한 걸음을 뗄 수가 없다. 언제쯤 이 슬픔이 내면에서 가라앉아 83쪽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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