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istory-photo-1




[크로스로] 정신실의 일상愛,  다섯 번째 이야기.


오래 마음의 항아리에서 묵힌 글입니다.
오래 전 스캇 펙의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은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다.'
이 한 문장에 시간을 두고 오래오래 마음에서 곰삭았습니다.
'가정예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부모'라는 산을 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 부모의 산을 넘는 것이 나 스스로 부모되어 가는 일과 동떨어지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부모'라는 산을 얼마나 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힘들게 오르거나 걸었던 길들을 멈춰 서 되돌아 보듯 바라볼 수도,
가끔은 이렇게 글로 풀어낼 수도 있으니 한 봉우리 정도는 넘었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낳아놓은 글인데 어느 글인들  마음이 담기지 않았겠습니까만은,
유난히 애정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



우리 집에는 가정예배 대신 ‘Family day'가 있다. 큰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고 엄마 아빠의 일하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시들해지기도 했지만 우리 집 ’Family day‘는 이런 day. 엄마도 아빠도 아이들도 해야만 하는 일과, 각자 좋아하는 일을 놓고 넷이서 가까이 마주 앉는다. 보통은 아빠의 기타소리로 시작된다. 아빠가 기타를 뚱땅거리면 한 놈씩 달라붙어 신청곡을 외치고, 같이 부르고, 화음을 넣어서 부르고, 춤도 추고하는 약간의 난리 부르스식 찬양시간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나눔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가족들에게 불편한 마음(이건 거의 엄마 성토장이 되곤 하지만), 최근의 걱정거리, 기도제목 등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게 된다. 가끔은 촛불을 켜서 밝히고 우리 자신 안에, 우리 거실에, 세계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순서도 있다. 그리고는 2부 순서로 함께 보드게임을 하거나 놀이를 하는데 Family day의 하이라이트는 맨 마지막이다. 넷이 한 방에서 자는 것이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꼴지가 먼저 가장 좋은 자리를 선택하고, 1등으로 이긴 사람이 마지막 남은 잘 자리를 얻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이 날을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린다. 예배라 부르기엔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이것이 우리 가정의 예배 행위이다.말하자면 열린 예배라 불러도 좋을 우리 집 표 가정예배는 나의 어릴 적 가정예배에 대한 기억과 그에 대한 반작용의 선택인 것 같다. 어릴 적에 매일 저녁마다 가정예배를 드렸다. 수요일과 주일이 좋은 이유는 엄마 아버지가 저녁 예배를 가시기 때문에 (동생과 둘이 집에 있으려면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가정예배가 없다는 것이었다. 저녁 먹고 TV시청에 불이 붙는 시간, 가장 재미있는 그 시간이면 성경찬송 갖고 와라. 예배드리자.’는 부모님 중 한 분의 목소리. 그리고 여지없이 TV를 꺼야했다. 네 식구가 돌아가면서 예배인도를 하느라 약간의 부담이 있는 인도자가 된 날을 제외하면(아니 그 날도 별다를 것은 없다.) 그 시간은 버티는 시간이었다. 하루 한 장 씩 성경을 읽는데 시편을 읽는 시즌은 어찌나 행복한지. (그러나 119편을 읽어야 하는 날도 있으니 복불복이다.) 그 지루한 시간은 부모님 몰래 동생과 장난을 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부모님께는 들키지 않고 동생을 자극해서 웃음보를 터지게 해놓으면 예배 마치고 동생이 혼나는 걸 보게 된다. TV보다는 재미없지만 나름 스릴 있는 놀이였다. 어린 시절 가정예배는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날까?’어떻게 하면 티 안 나게 동생 허파에 바람을 집어넣는가?’ 두 가지 고민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어도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적어도 내게는 가정예배라는 말이 좋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소 폭력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주일에는 돈 십 원도 쓰면 안 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일 예배에 빠져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목사 딸이니까 무엇이든 일단 양보해야 한다는 부모님식 율법에 매인 자로 양육된 탓이다. 내게 있어 가정예배는 그런 신앙교육을 대표하고 상징한다. 청소년기가 되면서 나름대로 반항을 해보기도 했지만 모태로부터 새겨진 율법이니 반항이 거셀수록 죄책감 또한 크게 자리 잡곤 하였다. 신앙의 여정에서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바리새적인 종교성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을 때, 암흑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고 고백하던 그 분의 사랑을 가슴으로는 전혀 믿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이라니. 가정예배 시간에 눈 뜨고 장난치는 것을, 못마땅한 친구를 속으로 미워하는 것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는 분이 내 마음 속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며 주일을 성수하고 섬기며 살았는지.

 

그 모든 것의 혐의를 가정예배로 대표되는 부모님의 신앙교육에 덮어씌웠다. 그러니 형식이 강조된 예배에의 반작용으로 자연스레 형식을 무너뜨린 열린예배를 선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날 때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예배 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최소한 가정예배를 좋아하고 기대하게 하는 소기의 목적은 이룬 것 같다. 아이들 입에서 오늘 월요일인 거 알지? 오늘 패밀리 데이야. 잊지 마.’ 하는 말이 나오곤 했으니까. 성경의 이야기를 도덕의 옷을 입혀 들려주지 않으려 애썼고, 기도든 예배든 마음, 중심에서부터 나오는 것만이 진짜라고 강조하고 있다. 가끔씩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신학적 질문과 고백들을 보면서 역시 내 방법이 틀리지 않았어.’ 혼자 조용히 뻐겨보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충천한 자부심에 타격을 가하는 일이 발생했다. 서서히 아이돌 가수를 섬기기 시작한 큰 아이가 TV 가요 프로그램 생방송을 방청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그게 주일이었고, 하필 주일학교 예배 시간과 겹쳤다. 아이는 엄마, 나 오전에 엄마랑 같이 예배드리고 보러 갈 거야. 그래도 되지?’란다. 당황되었다. 비록 엄마 아버지의 율법주의적인 주일성수 교육에 넌더리를 내며 자랐지만 율법주의가 문제였지 주일성수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일에 가요 프로그램을 보러 가겠단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해 본 선택을 하는 딸을 보며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이라니. 이렇게 저렇게 아이와 타협은 됐지만 나는 엄마로서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생을 두고 엄마가 내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살아야 헌다.’였다. 아무리 사랑의 하나님을 가슴으로 느껴보려 해도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가슴과 몸에 새겨진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엄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엄마를 용서하는 과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마음으로 느껴가는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선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엄마가 나를 사랑한 방식이었음을. 무엇보다 내 젊은 날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신앙의 유산의 빛을 붙들고 의기양양하게 살아왔다면, 그 이면의 어두움을 보면서 더 깊은 신앙의 여정을 내딛게 되었던 것이다. 모조리 부정해버리고 싶었던 내 안에 있는 엄마식 신앙은 어떤 때는 빛으로, 다른 때는 그림자로 나를 자라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니 우리 엄마의 한계를 가지고도 더 크신 엄마인 하나님은 나를 그나마 이 정도로 사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가 그려놓은 밑그림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앞으로는 더 많아 질 것이다. 주일성수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자발적으로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로 커줄 것을 기대했다. 주일 낀 일정으로 가는 수학여행은 당연히 가지 않겠다고 선택했던 내 청소년 시절보다 더 좋은 선택이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우리 엄마보다 더 세련된 신앙교육을 하고 있으니까. 강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방식으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교육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 아이는 율법의 목 조름이 아니라 자발적인 사랑의 선택으로 예배를, 이웃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

 

생각해보면 나는 성경 먹이는 엄마’, ‘매일 아이들과 앉아 큐티 하는 엄마는 되기가 어렵다. 나의 기질 때문이고, 기질이라는 것에는 앞에서 말한 트라우마의 작용도 있을 것이다. 나와 남편이 고안해 낸 ‘Family day'에는 우리 부부의 강점과 약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런 의미에선 우리 부모님이 선택하신 가정예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부부의 최선이 ‘Family day'라면 엄마 아버지의 최선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가정예배이다. 내가 율법주의를 넘어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머나먼 여정을 걸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 역시 나름대로의 긴 신앙의 여정을 가야 할 것이다. 그 여정에서는 엄마로서의 내가 가진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때로 아이들은 나의 양육방식으로 인해 감사하고, 더 많은 날 고통스러워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래 전 스캇 펙의 책을 읽으며 밑줄 그은 한 문장이 계시처럼 떠오른다.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다.’ 엄마의 딸이며, 딸의 엄마로 중간에 끼어 무기력해지는 내게 위로가 되는 말이다. 내 신앙의 공로로 아이들의 큰 믿음을 담보할 수도, 내 불신앙으로 아이들의 연약한 믿음을 속단할 수도 없다. 내가 그 분의 사랑스런 자녀인 것처럼 내 아이들 역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분의 딸이며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다.’ 는 이 말은 부모 된 나에게 위로와 더불어 거룩한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내 아이의 신앙, 인생을 내가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다. 그 아이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분의 자녀두 아이 앞에서 나 역시 그 분의 자녀로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일 터. 새털처럼 가벼운 책임감으로 오늘 저녁 오랜만에 패밀리 데이를 준비하자. 매일 내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작은 형제, 자매님과 더불어 축제 같은 가정예배를 드려보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