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일상301 꽃을 샀어 저녁 산책을 했어. 그냥 걸었어. 꽃집이 보이더군. 소국을 사야겠다, 싶었어.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다시 나와 걸었어. 음, 소국을 사야겠다, 마음이 좋아지겠어, 생각했어. 며칠 내로 소국을 사야겠다, 하며 또 걸었어. 아파트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아빠 품에 안긴 어떤 아이가 소국 다발을 들고 있는 거야. 성화 봉송하듯 높이 들고 있었어. 나도 소국을 사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가 든 소국을 어디서 샀는지 알겠는 거야. 상가 뒤편에 무인 판매 꽃가게가 있었어, 참. 꽃다발 무인 판매라니 참으로 부조화로군!하며 지나쳤던 것 같아. 가봤어. 세상에, 색깔도 고운 소국이 딱 한 줌씩 묶여 있었어. 키오스크로 소국을 샀지 뭐야. 오천 원으로 생기를 샀어. 아이처럼 성화 봉송하듯 들고 걷고 .. 2025. 10. 28. 명절 손님 손님이 되든지, 손님을 맞든 지. 명절은 그런 날이다. 손님이 되지 못하고, 손님을 맞지 않는 명절은 좀 쓸쓸하지. 7남매 맏이신 아버님 중심의 명절에는 전날부터 엄청난 시간이었다. 송편 한 말, 전 열두 가지. 스케일이 이 정도였지. 시가 명절 끝나고 친정 명절 시간만 기다리며 지낸 명절 하루는 얼마나 길었던지. 명절 풍경이 바뀌고, 또 바뀌고, 바뀌다 시가 명절 친정 명절도 없어지고 네 식구 명절이더니... 올해는 두 식구 명절인데... 급기야 '나 혼자' 명절 저녁이 되었다. 그래도 손님이라면 책 손님?! 몇 권의 책 손님으로 쓸쓸함을 달랜다. 현재의 나를 설명하는 세 단어를 찾아라, 한다면 "고통, 글쓰기, 여성"일 텐데. 《홀로코스트에 맞선 네 여성》은 세 단어를 아우른다. 에디트 슈타인, 시몬.. 2025. 10. 6. 비와 나, 비와 당신 스르르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너무나 반가워 벌떡 일어나 창문 앞에 섰다. 자동 반사로 폰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좋은 것을 보면 카메라에 담는 이유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또 좋은 것을 보면 좋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진짜 좋은 것에는 이유가 없지! 드라마 에서 익준과 송화가 "지금 비 와" 이 한 마디에 창가로 달려가 딱 달라붙는 장면이 그래서 좋다. 그 마음 내가 아는데... 이유 없이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내게도 있었으면 싶어서 부럽기도 하고. 주책맞게 그 사이에 끼어서 함께 비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었다. 내내 돌아가던 바흐 음악을 끄고 이무진이 부른 을 여러 버전으로 듣는다. 하이고, 좋다! 비 오는 날. 2025. 9. 16. 달님 엄마 어제저녁에 zoom 강의 시작 전 짧은 산책을 했다. 달이 어디 있나, 고개를 쳐들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이 낀 탓이다. 오늘 새벽, 잠에서 깨어 그대로 누운 채로 창 밖 하늘로 고개를 돌리다 눈이 딱 마주쳤다. 밤새 떠 있었을 달이다. 비몽사몽 폰을 더듬어 찾아 사진을 찍었다. 달은 여성이고, 엄마이다. 내가 자는 사이 엄마 같은 하나님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셨구나! 나도 잠에 들며 아이들 생각을 했다. 깨어서 학교에 있을 채윤이와, 깨어서 근무할 현승이를 생각하며 기도하다 잠에 들었다. 설핏 잠에서 깨면 다시 "주님, 지켜주세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리 아이들과, 낮에 중보기도 모임에서 기도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중언부언 음냐음냐... 했다. 나도 아이들에게 달 엄마인 밤이었다.. 2025. 9. 10. 잠긴 문 안으로 제자들은 (...)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요 22:19) 해가 떨어졌으니 그래도 좀 낫겠지. 밖으로 나갔다. 곧 있을 꿈모임을 위해 zoom 방을 미리 열어 두고는 틈새 산책을 나갔다. 더운 바람을 각오했는데, 생각보다 선선하고. 습관처럼 땅바닥을 보며 걷는데 째재잭, 고개를 들라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이렇게 예쁜 애가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 꽁꽁 닫아둔 마음이 활짝 열렸다. 하늘엔 환상적인 구름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기 둘을 등에 업고 날거나 헤엄치는 엄마 거북이 같기도 하고... 그분은 이렇게 훅 들어오신다. 문을 닫아걸어도 소용이 없다. 닫힌 문으로 들어오셔서 인사하신다. "너에.. 2025. 7. 30. 오늘이 선물이다 나가서 밥 먹을까? (싫다는 대답을 할 기력도 없음)지금은 안 되겠다. 다들 좀 쉬었다가 나가자. 당신은 가서 한잠 자. (가서 잠)나가자, 뭐 먹을까? (몸보신을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음)그래, 누룽지백숙 먹자.(잠결에 내가 제안한 것 같기도 하고)와, 배부르다. 카페 갈까?아니야, 아빠. 배 불러서 카페 못 가. 드라이브나 하자. (조수석에 실려 가는 드라이브도 할 기력이 없다고 말할 기력도 없어서 드라이브를 당함) 그리고 익숙한 퇴촌, 양평 길을 다니는 중이었다. 어머, 우리 차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야? 차창 밖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들꽃 천지, 개망초가 흐드러진 이런 환상적인 곳이라니! 습도와 온도가 함께 높아 차 밖으로 나가 걸을 날씨가 아니었고, 나는 목발도 챙기지 않아 불안.. 2025. 7. 12. 놀이터에 설레는 마음 엄마, 누나 사춘기 아니야. 완전히는 아니야. 애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 "놀이터다!" 그럴 때 "어디, 어디?" 하면 아직 애들인 거야. 누나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아직 놀이터에 설레. 그러니까 사춘기는 아니야. 오래전에 현승이가 어린이 감별법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경험에 의거해 청소년 감별법도 내놓았지. "맥날(맥도날드)" 간판에 설렌다면 아직 청소년...) 그렇다면 나는 어린애가 된 것 같다. 깁스하고 나서 놀이터에 그렇게 설렌다. 정확히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이 아파트는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데... 젊은 부부와 함께 아이들이 천지삐까리이다! 이 동네 아이들은 왜 이리 인사도 잘하는지 "안녕하세요?" 청명하고 말랑한 목소리를 상시로 듣는다. 이런 아파.. 2025. 6. 30. 꽃밭에서 죽으란 법이 없더라고. 깁스하고 가장 큰 박탈감은 '나가서 걷지 못함'이었는데. 나가서 들꽃에 눈 맞추고 귀를 간지르는 새소리에 노래하고, 바람에 마음을 맡기는 그런 '걷기'를 할 수 없다는 게 절망적이었는데. 되더라고. 아파트 정원 정도는 얼마든지 누리겠더라고.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지는 못해도 답답한 발 내밀고 인증샷은 가능하더라고. 6주 지내는 동안 봄꽃 가고 여름 꽃들이 피는 걸 다 보게 되더라고. 내일 모레 깁스 풀기 전 마지막 산책이려니 하고 아침부터 나갔어. 오후부터 내일까지 비가 온다기에... 수국이 한창이야. 두 발로 걸으며 수국을 즐기게 될 거야. 오늘은 목발 짚고 한 번에 2천 보를 찍었어. 계단도 잘 오르내리고 네 발걸음이 완전 빨라졌거든. 고맙더라고. 네 발로라도 이렇듯 좋아하.. 2025. 6. 24. 1년의 거리 아침으로 구운 계란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아, 소금! 소금이 없네. 식탁에서 싱크대까지가 구만리라 “에라, 그냥 먹자…” 했다. 막상 먹으려니 안 되겠어서 힘을 내서 일어났다. 서너 걸음 걷기 위해 목발 챙겨 일어나는 시간이 더 걸린다. (발목 골절상 입고 깁스 생활 중) 끙끙 소금 통을 가져와 다시 식탁 앞에 앉아 접시에 뿌려보니 소금이 아닌 통깨다. 머나먼 싱크대까지 다시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아 심난하게 통깨 통을 바라보며 눈물로 간을 해서 먹었다. (울었다는 것은 아님) 그러고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1년 전 추억을 보여주는데. 몇 걸음 이동이 이렇게 어려운데, 저 먼 곳을 걷고 누렸다는 것이 내 기억인데도 믿기질 않는다. 앨범을 들추어 1년 전 사진에 푹 빠졌다 나왔다. 이랬다고? 여길 이렇게 .. 2025. 5. 26. 계속 걷기: 네 발로 목발 생활, 할만하네! 약속된 강의만 어떻게 해결하면 한 달은 얼마든지 살겠네!... 싶었지. 목요일 밤에 다쳤고, 금요일 오전에 가서 깁스했고, 그리고는 주말이었다. 월요일은 원고 마감 날이었고. 그러니까 금, 토, 일, 월 내내 원고에 붙들려 있었다는 것이다. 화요일 아침 원고를 보내고 나니 그야말로 '현타'가 왔다. 냅다 밖으로 나가 걸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경안천이든, 앞산이든 어디든! 아, 원고가 끝났고 할 일이 없는데 걸을 수가 없다. 목발 생활은 할 만한 게 아니었다. 책이랑 넷플릭스랑 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열어둔 창문으로 솔솔 바람이 들어오는데 참을 수가 없다. 백팩에 책 몇 권과 커피를 담아 넣고 따아~악 짊어지고 삐걱삐걱 목발을 짚고 나섰다. 멀리는 못 가지만, 동 앞이 바로 예쁜.. 2025. 5. 21. 이전 1 2 3 4 ··· 3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