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8


 
받는사람
   육미                                                             
  참조사람   일경, 이석, 삼진, 사라, 오필, 칠규, 팔수, 구민


내 안의 유형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육미로 시작한 유형 이야기가 사라까지 해서 다 끝났구나. 궁금하던 것들이 조금 풀렸니? 유형 설명을 들을수록 더 헛갈린다는 뒷담화들이 내 귀에까지 들리던데. 이런 명강의를 듣고도 헛갈린단 말이냐!^^ 이런 혼란이니? '분명 난 7유형인데 가만히 듣다 보니 성공지향적 3유형도 내 얘기 같고, 남을 돕는 것으로 인정받으려는 2유형의 모습도 내 안에 있고, 매사에 근심걱정인 6유형도 딱 내 얘기네!' '어, 내가 5유형이라는데 9유형처럼 갈등을 피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기도 하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려고도 하는데… 나 정말 5유형이 맞는 거야? 역시 사람을 아홉 개 틀에 맞춰 넣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기타 등등….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1, 2, 3…9유형이 다 있지? 어, 그럼 내가 바로 그 다중이?
각 유형의 생존방식은 무의식 차원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성격유형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진 않아. 그러니 이건지 저건지 헛갈려서 당장에 유형이 찾아지지 않는다고 조급할 필요는 없어. 에니어그램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 방식에 숨겨둔 의도를 혹시 알겠니? 모두 한자리에 모아서 일사천리로 설명하고 질문지를 통해서 번호를 찾아 찍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일 거야. 물론 나도 가끔 '이 녀석들 빨리 잘 알아듣고 자신의 유형을 인정하면 좋겠다' 싶어서 조바심이 나기도 해. 그러나 내가 조바심을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이 여정의 진짜 보물은 골인지점이 아니라 거기까지 찾아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이야.

 


'날개'는 무엇인가
자, 이제 자신의 유형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인 '날개'에 대해서 알아보자. 날개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성격을 좀 더 명확하게 보게 해줘. 또 같은 유형이라도 많이 달라 보이는 이유 역시 날개의 선택에 있어. 날개는 자신의 유형 양쪽 옆에 있는 성격유형을 말해. 6번의 날개는 5번과 7번이고, 1번의 날개는 9번과 2번이 되겠지. 두 날개는 우리의 '느낌'과 '행동'에 영향을 미쳐. (자신의 본래 유형은 '동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기억하지?) 날개는 대체로 20대 후반에 하나가 펼쳐져 굳어진다고 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주된 날개를 갖게 되는데 주로 쓰는 날개에 따라 같은 유형이라도 크게 달라 보이는 거야. 예컨대, 6번 날개를 가진 5번은 의심이 많고 분석적인 반면, 4번 날개를 가진 5번은 좀 더 정서적이고 화려해 보이지. 또 날개를 펼쳐 쓰더라도 그 날개에서 가져다 쓰는 면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번호 백 사람 안에 100개의 유형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리고 세상을 대할 때 자신의 실제 유형보다 날개의 성격을 내보이기도 해. 이것도 번호가 헛갈리는 이유 중 하나겠지.

'날개'는 무슨 역할을 하는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성격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알게 돼. 관계의 문제가 갑자기 크게 불거진다든지 할 때일 거야. 이웃해 있는 성격을 보면 내가 고착돼 있는 유형과 반대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갈등이 찾아온 갈림길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웃유형의 성격을 자신도 모르게 발달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날개야. 각 유형별로 보자.
이하 유형별 설명은 한국에니어그램 연구소 <내적여정 Ⅱ>에서 참고

1유형이 자신의 성격에 고착되면 작은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까다로워지면서 남을 비난해 갈등 유발의 갈림길에 서게 되지. 그때 있는 그대로를 관대하게 받아주면서 느긋한 9번 날개를 발달시키든가, 사랑과 동정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2번 날개를 취하게 될 거야.

2유형
은 자기를 희생자라고 여기면서 주기만 하고 받는 건 극구 사양해서 타인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부담스런 존재가 되는 갈림길에 서. 여기서 철저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분명한 1번 날개나, 자신감이 넘치고 일처리가 효율적인 3번 날개 중 하나를 취하게 되지.

3유형
은 끊임없이 성공을 추구하고, 어떻게든 남을 이기기 위해 모든 감정을 차단하고, 이리저리 둘러대며 자기 자랑을 해. 이런 성향으로 어려움에 처하면 남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배려하고 도와주는 2번, 자신의 감정을 돌보고 진실을 추구하는 4번 중 하나의 날개를 취하게 되겠지.

4유형
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또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 등으로 어려움이 생기지. 그럴 때 활동적이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3유형, 매사에 객관적이며 분석적이고 수용적인 5유형 중에 하나의 날개를 선택하게 돼.

5유형
은 자신의 생각만을 의지하며, 현실적인 혼란에 개입하지 않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 우월감을 느껴. 이런 5유형들로 인해 힘들어 하는 주변 사람과 갈등이 일어나면 정서적이고 동정심이 많은 4유형의 성향을 가져다 쓰거나, 공동체에 협조적이고 조화를 추구하는 6번 쪽 날개를 펼치게 될 거야.

6유형
은 모든 것을 두려워 해. 때문에 너무 고분고분하거나 공포에 대한 최선의 방어로 지나치게 공격적이 되기도 해. 이런 성향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게 되면 스스로 답을 찾으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5번 쪽 날개를 펼치거나, 낙천적이고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7유형의 긍정성을 가져다 쓰게 되겠지.

7유형
은 익살을 떨며 환상적인 것을 찾아다녀. 한 가지에 투신하지 못해서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지. 그러다 보면 역시 갈등을 일으키게 될 거야. 옆 번호인 6유형의 충실하고 미리미리 대비하며 일을 처리하는 성향을 발달시키거나, 추진력 있고 결단력 있게 힘으로 끌어가는 8유형의 성향을 쓰면서 날개를 펼치게 되겠지.

8유형
역시 호전적이고 공격적이며 정서에 둔감하고 모든 걸 주도하는 성향으로, 타인을 위협하게 되면 갈등에 맞닥뜨리겠지. 그러면 쾌활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7유형의 성향을 발달시키든지, 느긋하고 화를 잘 내지 않는 부드러운 9번의 날개를 취하게 돼.

9유형
은 집중력이 부족하며 우유부단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듯 보이는데, 그것이 오히려 수동적으로 공격하게 되어 갈등을 피해갈 수 없을 거야. 그 갈림길에서 8번의 정열적이고 활기 넘치며 단호한 성향을 취해 날개를 펼치거나, 공과 사가 분명하고 꼼꼼하고 철저한 1유형을 차용해 1번 날개를 쓸 수도 있겠지.

날개, 또 다른 나의 공로
내 얘기를 해 볼게. 내가 아는 나는 딱 7번이야. 긍정의 힘으로 칠렐레 팔렐레 재미있는 것만 찾아다니고 지루하고 구질구질한 것은 기가 막히게 피해 다니지. 헌데 주변에서 '너는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하잖아'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가 있어. 살짝 당황스럽지. 또 내 마음에선 늘 책임을 피해 도망하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 같은데 많은 경우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이 낯선 모습은 뭘까?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이 들어 생활력 없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아야 했어. 좋은 게 좋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욕구 충만한 7유형의 모습 그대로 살기가 어려웠지. 그래서 일찍이 6번 날개를 발달시킨 거야.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스스로 지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돈을 벌지 않은 적이 없었어. 대학 다닐 때는 물론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밤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까. '돈 벌지 않는 나'는 상상할 수도, 허용할 수도 없었던 것 같아. 결혼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어. 형편상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하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마음 밑바닥에선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내내 내려놓지 못했던 거야. 지나친 책임감으로 어떤 분야에서는 융통성을 잃기도 한다는 6번. 그 6번의 날개를 펼쳐서 여느 6번보다 더 6번스럽게 살고 있었던 거지.
몇 년 전 음악치료사로 일하는 내겐 치명적이랄 수 있는 '성대결절과 파열'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어. 거기다 턱관절염까지 겹쳐서 노래는커녕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그 진단을 받고 돌아와 한없이 심란했던 저녁, 침대에 누워서 발치에서 까불고 노는 두 아이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주르르 흐르며 이런 푸념이 저절로 나왔어. '하나님, 짐이 너무 무거워요. 이제 일은 할 수 없는 건가요? 아직 공부 중인 남편, 어린 아이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죠?'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마음에서 울리는 거야. '책임감 내려놔. 내가 책임져줄게. 내려놓으란 말이다. 아이들도, 일도, 경제적인 것도 다 내게 맡겨.' 고분고분 이 말을 들을 리 없는 자아의 목소리가 '어떻게 내려놔요. 남편 공부가 끝나는 내년이면 또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주 수요예배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는 마태복음 11:28-30말씀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
7유형인 내가 6유형의 날개를 펼치면서 세상에 좀 더 적응이 되었을 거야. 겉으로 보기엔 6유형으로 7유형의 약점을 보완하여 꽤 그럴듯한 성숙한 모양새로 보였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날개 역시 스스로 나를 지키겠다고 애쓰는 나의 노력이며 공로였다는 거야. 날개를 펼친 것이 잘못이 아니고, 자기 유형의 힘으로 사는 것도 잘못이 아니야. 내 유형이든 날개든 우리가 벗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은혜를 받으면 잠시 내려놓았다가 어느새 또 쓰곤 할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쓰는 날개를 가지고 내가 실제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 결국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여정이 '내가 이렇게 애쓰고 있구나'를 바라보고, 거저 주시는 그분의 사랑 앞에서 꽉 쥔 마음의 주먹을 풀고 무장해제해 나가는 과정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앞으로 유형별 하나님상과 기도, 유형과 어린시절 등 각 유형을 더 다양한 각도로 살펴 볼 거야. 끝까지 파이팅이다∼!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5


헤이즐넛 커피에는 헤이즐넛이 없다


이석아, 집에 잘 들어갔지? 오늘 만남 정말 유쾌했다. 좋은 친구들이 모여서 떠들며 울고 웃다 보니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어. 물고기가 파닥거리는 듯 생기 넘치는 수다, 정말 오랜만의 경험이야. 한 발 물러서서 너희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가끔 나이를 잊고 끼어들어 주책을 부리는 것도, 노인네처럼 간간이 꼰대 멘트 날리는 것도 즐거웠다. 모임에 초대해줘서 고마워.

지하철 기다리며 잠깐 나눴던 얘기, 특히 지난번 2유형에 관한 대화 이후에 깨달았다고 했던 것들 말이다. 대견하고 흐뭇해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참에 빨리 진도 빼서 자기들 얘길 들려달라던 3번 삼진이와  4번 사라의 재촉을 살짝 모른 척하고 다른 얘기 하나 주절거려야겠어. 핑계 김에 이 늦은 밤에 커피 한 잔을 또 내렸네. 제대로 짙고 쓴 맛이 당기는 지금, 마침 코스타리카 볶아 둔 게 있어서 딱이다. 하아, 커피 좋다!
아까 칠규가 그럴 듯하게 떠들어대던 헤이즐넛 커피 얘기 너무 재밌었지? 원래 헤이즐넛 커피 종이 따로 있다며 허풍을 떠는 게 어쩜 그렇게 진짜 같애? 그런 커피는 없고 커피에 인공 헤이즐넛 향을 입힌 거라는 불편한 진실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결코 당황하지 않고 인공적인 향이 담아낼 수 없는 자연의 향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떠들어대는 칠규! ㅋㅋ 코스타리카와 헤이즐넛 중에 어느 게 진짜 커피 같으냐고 물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십중팔구 헤이즐넛을 꼽을 거야. 헤이즐넛을 비롯한 향커피들이 인공 향인 줄도 모르고, '아, 커피 향 쥑인다∼' 하면서 한동안 우리가 얼마나 열광을 했었냐?


'나는 싫은 소리 못해요'의 불편한 진실

이석이가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니 참 대견해. 단지 거절하는 걸 배우겠다는 결심 때문이 아니라 그 다음 고백 말이야. 사람들의 부탁이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나 싫은 소리 못하는 걸 은근히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저는 거절을 잘 못해요' 라는 말은 '저는 착한 사람이에요' 라는 뜻이었다고 했지? '나는 거절을 잘 못하고 싫은 소리는 안 하는 착한 사람이다'라며 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 발견했다는 거지.

너는 별것 아니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별것'이고 굉장한 통찰이다.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유형을 찾고 내적 여정을 걸어가는 거… 대단한 게 아니야. 유형을 안다고 해서 모든 어두운 것들을 확 벗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렇게 자기 자신도 모르던 속마음을 하나씩 알아가고 인정해 가면 되는 거야. 나조차도 속아 넘어가던 마음의 숨은 동기를 하나씩 발견해 사랑의 빛 앞에 비추는 것, 그것이 에니어그램을 통해 안내하고 싶은 마음의 여정이란다.


이미지에 죽고 이미지에 살고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있다.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기'(또는 결코 못하는 것)를 방어기제로 쓰는 2유형만 그러는 게 아닌 것 같아. '나는 딱 부러지게 거절을 잘한다. 할 말 다 하고 산다'는 사람이 그리 흔한가? 거의 못 본 것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과 상관없이 자신은 거절을 잘 못하고 부정적인 얘기는 더더욱 못(안)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 대표선수가 바로 이 모님이시다.

내가 영성지도를 받으며 감정에 관해 공부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야. 강의를 듣고 바로 수련활동을 하는데,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마주 앉으래. 그러더니 마주 앉은 짝과 서로의 매력적인 점을 얘기해주라는 거야. 좀 오그라들긴 했지만 시간이 길지만 않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 다음 활동으로 서로의 싫은 점, 못난 점 등 부정적인 얘기를 해주라는 거야. 당황!! 마주보는 짝들이 서로 어색한 웃음을 웃거나 서로의 눈을 피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분위기가 됐지. 지도자의 엄한 한마디에 계속 진행을 해야 했는데, 아… 정말 고통스럽고 진땀나는 시간이었어. 상상만 해봐도    음이지?^^
마주앉은 짝에게 칭찬이나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과 그 반대의 경우 중 어느 것이 더 쉽겠어? 나 역시 부정적인 얘기 못하는 걸 꽤 대단한 인격적 자랑으로 여겼거든. '지적한다고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좀 긍정적인 편이라 웬만하면 이해하고 수용을 잘 해요.'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 헌데 이 날 수련활동을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부정적인 얘기 못하는 건 '내 이미지 구겨질까 봐'가 정직한 답이었어. 타인을 배려해서 싫은 소리 안.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내 (착한, 교양 있는, 사람 좋은) 이미지 망가질까봐 못.하.는.것.이었더라고. 내 이미지 구기지 않고 내 스타일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하는 지극히 자기애적인 발로였으면서 거기에 온갖 좋은 해석을 끌어다 붙여 놓았던 거야. 뼛속 깊이 새겨진 자기기만의 습관이지.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혼을 내기도 하고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있어. '너 아까 왜 인사를 제대로 안 했어? 어른들께 왜 그리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해!' 씩씩거리며 언어의 포탄을 투하하는 거지. 헌데 이런 경우 내가 그렇게도 화가 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애 교육을 엉망으로 시켰다는 소리 듣는 거 아냐?' 이런 데 걸려 있더라고. 아이들 교육 제대로 못한 엄마로 비쳐지는 게 싫은 거야. '바르게 양육한다'는 건 허울 좋은 명목이고, 그럴싸한 명목에 제일 먼저 속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더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울고 웃고 좋아하고 걱정하는 많은 이유가 사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이거야. 조금 전에 내가 자기애라는 표현을 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기애도 아니고 단지 '나의 이미지 보존'에 대한 관심뿐이더라니까.


끝까지 붙드는 아홉 개의 자아 이미지

에니어그램 아홉 유형의 자아 이미지는 우리가 붙들고 있는 그 많은 이미지 메이킹 놀이에서 끝까지 내려놓지 않는 마지막 카드일지도 몰라. 조금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거야.


1유형
(뭐든 올바르게 해야 해. 올바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는 없어.)
 그래! 나는 올바르고 착한 사람이야.

2유형
(절대 이기적이거나 불친절한 사람으로 비치지는 않게 할 거야.)
 그래! 나는 도와주고 봉사하는 친절한 사람이야.

3유형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실패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겠어.)
 그래! 나는 유능한, 성공한 사람이야.

4유형
(보통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따르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게 할 거야.)
 그래! 나는 남다른, 특별한 사람이야.

5유형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어리석은 바보처럼 보이게 하진 않을 거야.)
 그래! 나는 많이 아는, 현명한 사람이야.

6유형
(무책임하거나 일탈행동을 해서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겠어.)
 그래!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내는 사람이야.

7유형
(재미없고 지루하거나 불행해서 꾀죄죄한 사람으로 보일 수는 없어.)
 그래! 나는 행복하고 멋진 사람이야.

8유형
(어떤 경우에도, 누구한테도 약한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 거야.)
 그래! 나는 힘이 있는 강한 사람이야.

9유형
(문제를 일으키거나 갈등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보이긴 싫어.)
 그래! 나는 평화로운 사람이야.


유형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이 유형에도 좀 속하는 것 같고, 저 유형 얘기도 내 얘기 같고 그렇지? 결국 아홉 유형이 우리 안에 다 있는 거라고 봐. 평화롭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치? 내 안에 다 있지만 그 중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자아 이미지, 그걸 내 유형이라고 하는 거지.


가면을 벗고 내쉬는 숨

인공의 헤이즐넛 향을 입힌 커피가 더 그럴듯해 보이는 것처럼 사랑받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쓴 거짓 자아가 더 그럴듯한 나같이 보여. 유형의 페르조나를 쓰고 이미지와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때 오히려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느낀다는 거야. 자아 이미지에 부합하는 노력을 하니까 뭔가 사랑 받을 만하다고 느끼며 안심하는 거지. 그러다 자기가 만든 이미지일 뿐인 얼굴이 '진짜 나'라고 믿게 되는 거야. 내가 만든 가면을 쓰고선 가면이 나라고 믿는 거지.

아까 그랬지? 이석이 자신이 왜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모습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밤중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이석이라는 후배의 말에 완전 뿌듯하다고 했었지? 친구들의 궂은 일을 내 일처럼 함께 해주는 이석이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참 좋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살맛이 나면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열심히 몸을 아끼지 않고 돕게 될 거야.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 메말랐다고 느낄수록 더 열심히 돕고 친절을 베풀며 애를 쓸 수도 있을 거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통해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 이에 부합하는 행동을 열심히 해서 다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으로 확인받고…. 이런 패턴이 반복되겠고, 그럴수록 점점 견고해지겠지. 이 패턴 속에서 거절을 하거나 부정적인 얘기를 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이석이뿐 아니라 각 유형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렇게 왜곡된 자아 이미지를 고착시켜 가게 돼. '자아 이미지'가 '자아'가 되어 버리는 거지.
이러다 보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조차 이 가면을 벗지 못하는 거야. '있는 모습 그대로 와라. 빈 손 들고 와서 십자가를 붙들어라.' 하시는 음성이 가면으로 인해, 막힌 귀로 인해 들리지가 않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조차도 올바른, 긍정적인, 책임감 있는, 평화로운, 강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거야. 그런데 이석이가 정직하게 자신을 성찰했을 때 '아, 내가 내게 속고 있었구나'를 깨달았잖아. 그 순간이 은총인 것 같아. 그렇게 알아차린 순간에 자아의 왜곡된 패턴이 끊어지며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스러운 자신'을 힐끗 보고 진리로 인해 자유의 숨을 쉬어보는 거거든. 참 감사하다. 한 번의 경험이 두 번이 되고 그러면서 영원에 잇닿은 자유의 호흡 또한 조금씩 길게 내쉴 수 있게 될 거야. 주님께 감사, 이석이에게 사랑을 담아 안녕!^^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5






육미 : 모님, 드디어 오늘이 왔네요. 어젯밤에 살짝 잠 설쳤어요.

모님 : 왜? 모님 독대할 생각에 설레여서? 호호.

육미 : 네? 네, 물론 그렇기도 하구요. 좀 떨리기도 하구요. 6유형에 대해서 설명도 해주실 거지만 저도 말을 잘 해야 할 텐데. 혹시 제가 6유형이 아닌데 6유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고.

모님 : 6유형일까 봐 걱정, 6유형이 아닐까봐 걱정? 걱정근심 주식회사 사장님! 걱정 잠시 접어 두시고 커피 한 잔 드십시다. 아침에 커피 마셨니?

육미 : 네. 그런데 또 마실래요. 잠도 깨야겠구요.

모님 : 너 두 잔 마시면 심장 뛴다고 안했니? 부드럽게 까페라떼 해줄까?

육미 : 좋은데……. 번거롭지 않으시겠어요? 그냥 아무거나 주셔도……. 카페라떼 주세요. 흐흐흐.


6유형

자아이미지 :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충실하다

집 착 : 안전

회 피 : 일탈

근원적인 죄 : 두려움(공포)

방어기제 : 투사

성숙의 열매 : 용기

 

육미 : 감사합니다. 아, 부드럽고 커피향도 너무 좋은데요.

모님 : 직장에선 무슨 일로 그렇게 마음이 복닥거렸어?

육미 : 실은 해외지사에 자리가 하나 났어요. 제가 전부터 해외근무 하고 싶어 했던 것 아시죠? 저랑 친한 팀장님이 그 자리에 제가 갈 수도 있다고 귀띔을 해주시더라고요.

모님 : 그래? 잘됐네. 충직하고 성실한 육미를 알아봐 주는구먼. 육미로 말하자면 책임감 있고,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 공동체에 충성을 다하는 변함없는 사람 아니니. 비오는 수요일에도 수요예배 빠지지 않는 사람, 육미! 하하하. 잘됐다. 좋겠네.

육미 : 그런데 좋지가 않아요. 과연 가서 잘할 수 있을까 싶고, 특혜라고 동료들이 뒤에서 뭐라 하지 않을까, 이제 막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중간에 가야하면 책임감 없는 행동이잖아요. 이래저래 불안해 죽겠어요.

모님 : 게다가 정말 가게 되기는 할까도 걱정되고? 가서 잘못되면 여기서 근무하는 것보다 못하게 될까 싶고, 또…….

육미 : 어? 어떻게 아셨어요?

모님 :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잘못되고 실패할 모든 경우를 나열하면 육미 마음!^^

육미 : 그.그렇죠. 아……. 저는 왜 이럴까요? 모님!

모님 : 에니어그램의 각 유형마다 끝끝내 놓지 못하고 붙드는 집착이 있어. 6유형에겐 그게 ‘안전’이야. 어떤 의미에서든 6유형은 어린 시절에 ‘신뢰감’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키워나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해. 부모가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분이었거나, 아이에게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거나, 냉정했거나 했거나……. 각각 경험은 다 다르겠지만 6유형에게는 ‘안전하지 못함’에 대한 뼈아픈 기억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해야겠지.

육미 : 안전이라는 말이 제 심금을 울리는 말이기는 하죠. 저는 예나 지금이나 아빠가 무섭긴 하지만 ‘신뢰감이 형성이 안됐다’ 이런 건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모님 : 같은 유형이라고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이 똑같지는 않아. 같은 경험에도 어린 시절의 내가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해서 내면화 했느냐가 문제니까. 정직하게 마음에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해.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져보자. 암튼, 6유형들은 안전하고 확실한 것만 추구하려고해. 그런데 인생살이가 어디 그렇게 안전하기만 하냐고. 세상은 너무 위협적인 곳 아니냐.

육미 : 그렇죠! 그러니까 항상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 살아야지요.

모님 : 그래 항상 대비하니깐 대비가 되시든가요?

육미 : 네? 아, 하하하……. 대비가 되도록 해야죠. 갑자기 이렇게 예상에 없는 문제를 내시면 당황이……. 그러고 보면 저는 규칙과 정해진 틀어 벗어나 갑자기 생기는 일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게 약한 것 같아요.

모님 : 그래서 안전에 붙들린 6유형이 극구 회피하고자 하는 ‘일탈’이라는 거야. 6유형들은 규범, 법, 정해진 대로, 상식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잘 지키지. 그런데 그 동기가 뭐냐? 위협적인 세상에서 이런 외적 권위라도 부여잡고 있으면 그나마 안전하지 않겠냐는 거야.

육미 : 그래서 그런지 뭔가 정해진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걸 보면 화가 나는 것 같아요.

모님 : 정도에서 벗어난 ‘일탈’이라는 것은 6유형들이 그렇게도 목숨처럼 지키고 싶은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니까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의 일탈도 봐줄 수가 없겠지.

육미 : 제가 그래서 ‘다워야 한다’라는 말을 좋아하나봐요. 학생은 학생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목사님은 목사님답고……. 제발 그렇게 각자 지킬 것은 지키는 세상이었음 좋겠다고요. 아, 나 왜 이리 흥분을 하지. 저 좀 흥분했죠? 흐흐흐…….

모님 : 그러게 말이다.

육미 : 아, 어제 운전을 하고 가는데 집 앞 도로에서 어떤 고딩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차도로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옆에 버젓이 인도를 놔두고 말예요. 순간 너무 너무 화가 났어요. 클락션을 빵 울리니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는데도 계속 화가 가라앉질 않는 거예요. 아우, 그런 인간들 때문에 속이 부글거리는 게 한 두 번이 아녜요.

모님 : 단지 인도 놔두고 차도로 걸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거야?

육미 : 아니, 그러니까 거기가 커브였는데요 제가 못 봐서 칠 수도 있었잖아요.

모님 : 그 짧은 순간에 벌써 머릿속에선 교통사고 났고, 119 부르고, 응급실까지 갔구먼.

육미 : 헤헤헤……. 보험처리까지 끝났죠.

모님 : 그러니까 그 순간 치밀어 올랐던 감정은 차도로 걷는 고딩 때문이 아니라 육미 안에 있었고 순간적으로 건드려지고 증폭된 ‘두려움’ 때문이라는 거지. 그것이 6유형의 근원적인 죄야. 늘 걱정, 근심, 불안, 공포에 시달리는데 문제는 이것이 어디서 오느냐? 밑도 끝도 없는 온다는 거고, 이유 없는 두려움이라는 거지.

육미 : 으아, 밑도 끝도 없지는 않아요. 모님. 사고가 날까봐 그런 거잖아요.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시면 좀 억울한데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다…….라는 말씀이죠? 아, 좀 혼란스러운데……. 이런 기억이 있어요. 어렸을 적에 어느 날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서 아빠한테 무지 혼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놀다가 또 늦은 거예요. ‘오늘 집에 가면 죽었구나’하고 각오를 하고 들어갔는데 아무 일이 없었어요. 이상하게 혼날 예상을 하고 들어가면 안 혼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면 혼나는 거예요. 이 때 부터 저는 일이 잘못되는 최악의 경우를 끝도 없이 상상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요. 실은 그 상상 속 불안과 공포 속에 있는 게 차라리 편한 것 같아요. 어, 이게 지금 뭐라는 거지? 암튼, 그래서인지 제가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려 하거나 나쁜 뜻이 있는 게 잘 보여요.

모님 : 하하, 정말 그럴까? 물론 6유형들은 부조리한 것과 의심스러운 것을 감지하는 육감이 있다고 해. 그런데 이게 항상 맞겠느냐는 거지. 6유형이 쓰는 주된 방어기제는 ‘투사’야. 자신 안에 있는 부정적인 동기가 타인에게도 있다고 상상하는 거지. 그래서 타인들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배후에 감춰진 것을 찾아내려 하지. 또 자신이 읽어낸 게 진실로 맞다고 생각하는 게 투사야. 좀 과장하면 6유형들 ‘음모론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늘 의심하고, 뭔가 음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하는 거 말이야.

육미 : 허거걱! 그…….그게 투사군요. 왜 이리 얼굴이 화끈거리죠?

모님 : 자신의 유형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면 에니어그램이 주는 선물의 더 깊은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은 거야.

육미 : 모님, 저의 두려움이 죄라는 말씀에 대해서 한 번 더 설명해 주세요.

모님 : 여기서 말하는 근원적인 죄란 도덕적인 죄가 관계적인 죄로 이해해야 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진짜 너 자신과 단절시키기 때문에 죄지.

육미 : 두려운 건 그냥 두려운 거잖아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모님 : 그렇지. 말 잘했다. 두려워하니까 사람이야. 애초부터 혼자 힘으로는 안전할 수 없는 존재가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잖아. 자신의 안전을 자신이 지키겠다고, 지켜야만 한다고 온 몸에 힘을 주고 사는 사람이 단적으로 6유형이라는 거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붙들고 씨름하는 거나 다름없지. 게다가 언젠가 네가 말한 것처럼 불안을 더 큰 불안으로 해결하려고 하잖아.

육미 : 그렇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죠. ㅜㅜ

모님 : 밑도 끝도 없는 정체불명의 두려움은 하나님을 믿지 않음이고, 꺼진 불 다시 보고 또 보고 단속하고 또 단속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거라는 환상 또한 하나님 노릇하겠다는 것이니 이것이 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육미 : (울먹) 모님, 저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모님 : 두려움을 더 큰 두려움으로 피하지 말고 하나님께 피해야지. ‘걱정 근심 안전제일’ 시스템이 자동 테이프처럼 돌아가는 걸 알아챌 때마다 ‘어, 내가 또 이러고 있네.’ 하고 멈추는 거야. 멈추는 순간 우리 안에 이미 계시는 성령님의 안전한 품으로 피해야지. 네가 있는 그 곳, 성령님의 내미는 손을 붙잡기만 한다면 언제나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야.

육미 : 알 듯도 모를 듯도 하지만 아주 작은 빛이 마음에 비치는 것 같기도 해요. 감사해요. 모님, 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또 찾아뵐게요.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3

 

 

 

최근 리더모임을 하면서 팔수칠규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 그 이후 둘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해결을
이석이가 중간에서 애를 썼나보다. 결국 셋이서 모님의 거실을 방문했다.

 

모님 : 팔수와 칠규 어려운 걸음 해줘서 고맙다. 내키지 않는 자리일 텐데 함께 와줘서 고마워. 이석이가 중간
에서 애를 많이 썼구나. 아무튼 이렇게 같이 얼굴 보게 되어 다행이다.

칠규 : 모님, 뭐 너무 심각하게 생각 안하셔도 돼요. 저희 뭐 거의 다 풀었어요. 팔수가 또 마음이 넓잖아요.
안 그러냐? 팔수! 하하하하.


팔수
: 됐거든. 내가 모님 명령이라 왔다. 이석이 얼굴도 있고. 나 너랑 농담하고 그럴 기분은 아니다. 알겠냐.


이석
: 야야야……. 이제 그만 해라. 모님, 저희 커피 주시는 거죠?


모님
: 그래, 오늘 기가 막힌 커피가 있어. 평소에 잘 못 마셔보는 커핀데 블루 마운틴 생두를 선물 받았단다.
 너희 주려고 공들여서 볶았지. 커피의 맛은 보통 신맛, 쓴맛, 단맛의 조화로 설명하는데 블루마운틴은 세 가지
 맛이 조화롭기로 유명해. 커피 준비할게.





< 장 중심 >

8 : 외면화된 유형
9 : 핵심유형
1 : 내면화된 유형

무게중심 : 하복부와 소화계
주요관심 : 자신의 의지와 욕구, 힘과 정의
지배적 정서 : 분노

< 가슴 중심 >

2 : 외면화된 유형
3 : 핵심유형
4 : 내면화된 유형

무게중심 : 심장과 순환계
주요관심 : 타인 눈에 비친 자기 이미지
지배적 정서 : 불안

< 머리 중심 >

5 : 내면화된 유형
6 : 핵심유형
7 : 외면화된 유형

무게중심 : 대뇌와 신경계
주요관심 : 객관적 이치, 논리
지배적 정서 : 두려움





모님 : 햐아, 커피맛 좋다. 커피의 맛은 어떤 커피냐 보다는 누구와 마시느냐에 좌우되는 것 같아.
이렇게 너희 셋과 함께 마시니 진정한 의미에서 ‘조화’의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다.

 
이석
: 캬, 세 가지 맛의 조화라. 커피 맛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의미가 좋네요. 모님. 그렇지, 얘들아.

팔수, 칠규 : (힐끗 서로를 바라보면 뻘쭘)


모님
: 오늘은 에니어그램의 9유형을 설명하기 전에 3중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자신의 ‘유형’을 찾
는 것보다 먼저 ‘중심’을 찾는 것이 순서라고 볼 수 있어.

칠규
: 아까 읽어보니까 3중심이 장중심, 가슴중심, 머리중심이라는 거고, 저는 머리중심인가보네요. 이석이는
 가슴중심, 팔수는 장중심인가보죠? 장중심은... 보자... 분노라... 장팔수, 이거야. 이거. 너의 그 폭발하는 분노
에 내가 아주 죽겠다니깐. 너 진짜 거 아무데서나 버럭 하는 그 성질 좀 죽여. 너는 진짜…….


팔수
: 야 임마! 너 진짜 꼬치꼬치 따지고 들고 말 많은 거 질색이야.

이석
: 어우... 야... 너희들... 자자... 커피 마시자. 모님! 말씀해 주시죠.


모님
: 호호호. 이석아!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얘네들 하고 싶은 말은 하도록 둬라. 너희들 10년 지기 친구고 서
로 신뢰하는 사이잖아. 본론으로 가자. 장(본능), 가슴, 머리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 원래 하나님께선 조화로운 세 원천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어. 헌데 이 중 한 곳에 에너지가 고착된
 것이 3중심이란다.


팔수
: 아, 또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냥 장중심이 어떤 사람인지, 고칠 점이 뭔지 그냥 간단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머리중심 두칠규가 왜 사사건건 저를 물고 늘어지는 지도요.

칠규 : 그건 그래요. 저도 장팔수가 왜 저렇게 단무지(순, 식, *)인지가 궁금해요.


팔수
: (순간 주먹 불끈)

칠규 : (얄미운 미소 한 자락 팔수를 향해 날리면서)모님! 제가 머리형이면 머리를 잘 쓴다는 얘기고, 가슴중심
 이석이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느낀다는 뜻인가요?


모님
: 좋은 질문이다. 중심, 또는 센터라고 하나 이것은 잘 발달했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결.핍.으로 이해를
 해야 해. 결핍을 느껴서 거기에 고착이 되었다는 거고, 때문에 너무 매여 있어서 그 중심마저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는 거다.


이석 : 저... 저... 모님, 제가 가슴형 이라면서요? 그럼 제가 뭐 애정결핍이나 이런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모님 : 애정결핍 그러면 환자같이 느껴지지? 결핍이라는 말이 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을 거야. 들어봐라. 3중심
의 결핍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어. 장중심의 사람들은 생애 첫 경험이 본능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고 기억하
는 사람들이야.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울었는데 누가 와서 젖을 물려주지 않더라는 거야. 용을 쓰면서 핏줄이 터
지도록 울었더니 그제야 엄마가 젖을 물려줬어. 아이는 판단하는 거지. ‘아, 세상 만만한 곳이 아니구나. 웬만큼 울어서 밥 얻어먹는 게 아니구나. 내 밥그릇을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채워주지 않아.’라며 욕구, 힘에 매인 장중심
이 되는 거지.


팔수
: 푸하하하... 내 밥그릇 내가 챙기자. 정글에서 살아남자. 이거 제 좌우명인데요.
 

모님 : 그래, 장형들에게 있어 세상은 험난한 정글이야. 가슴형 이야길 해보자. 이들은 정서적 보살핌이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 결핍을 느꼈다는 거야. 배고픈 아이가 자연
스런 표현으로 울었더니 먹을 것을 안 줘. 그런데 어쩌다 방실방실 웃었어. 그러니까 엄마가 뒤로 넘어가면서
‘아고 이쁜 내 새끼’ 하면서 젖을 주더라는 거야. ‘아, 세상은 뭔가 사람들에게 애써야 사랑받는 거구나’ 하는 거
지. 그래서 애정관계가 이들의 가장 중요한 욕구가 되고 감정중심이 발달하게 돼. 그것이 고착화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 인정, 관계를 갈구하는 무의식적 패턴을 형성하게 되는 거야.


머리중심의 인간형은 어린 시절 경험 속에서 일찍부터 사고센터를 발달시킨 사람들이야. 예를 들면, 배고파 울
었는데 어떨 때는 왜 우냐며 따귀를 맞고 어떤 땐 젖을 얻어먹은 거지. 일관성 없는 부모나 불안한 환경 또는 어
떤 이유에서든지 자라면서 ‘아, 인생 상황판단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 라면서 사고기능을 중시하고
발달시키게 되는 거야.


칠규
: 저희 부모님이 그렇게 일관성 없는 분은 아니셨던 것 같은데 제가 머리형인 건 같아요. 뭔 일이 있으면
머리부터 돌아가거든요.


모님
: 하하하. 팔수와 칠규가 지난 번 회의 때 부딪혔던 패턴을 3중심의 관점에서 얘기해 볼게. 장형들에게 회
의란 ‘내 뜻’이거든. ‘내 뜻은 이거니까 할려면 이걸로 해’ 이거야. 장형들은 대체로 말도 짧고 분명해. 헌데 머리
형들은 밑도 끝도 없이 뱃심을 들이대는 장형들을 이해할 수 없지. ‘왜? 그러니까 왜?’를 자꾸 따져 묻거든. 회
의를 통해 이치와 논리를 찾겠다는 거지. 그러다보면 말이 말아지고 회의가 길어지는 거지 그러면 장형은 바로
버럭 하는 거야.


칠규
: 아, 바로 그거였어요. 모님! 그 날... 아니다. 그 날 뿐이 아니라 저랑 팔수랑 늘 그렇게 붙어요. 크흐흐흐.


팔수
: 그니까... 너는 왜 이리 따지고 드는 게 많냐? 머리에 든 건 많아가지고. 재수 없지만 사실 쫌 부럽다. 임
마.

모님 : 그러면, 그 때 그 순간에 이석이는 어떻게 느꼈고 행동했니?


이석
: 저는 심장이 벌렁벌렁 했죠. 일단 상황을 좀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아서 쉬면서 차 한 잔 하고 다시 시작하
자고 했지요. 사실 저는 그 때 뭘 논의했었는지 기억도 안나요. 별로 관심도 없고요. 그냥 우리가 서로 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모님
: 들었니? 장형과 머리형 사이에 끼인 가슴형의 고백이야.


칠규
: 3중심이 결핍의 결과라는 건 이제 이해가 되는데요. 그러면 정말 좋은 환경에서 완벽한 부모를 만났다면
결핍을 안 느끼는 건가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모님
: 역시, 두칠규스러운 질문! 생애 첫 경험이라고 하는 그 자리에서 어린 아이가 느낀 결핍이라는 것 말이
다. 그건 부모가 안 줬다기보다는 그 때 그 어린 아이의 해석이야. 부모가 되어보니 더 절감하는 건데, 내가 아
무리 최선을 다해 사랑해도 100점짜리 엄마가 될 수 없더라. 분명히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피곤한 몸이
안 따라주고, 메마른 마음이 허락을 안 할 때가 많아. 가정의 다른 환경도 마찬가지일거야. 어쩌면 그 결핍이라
는 것은 원죄의 유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다면, 그 결핍의 자리는 힘을 쓰거나, 머리를 쓰거
나, 인간의 사랑을 받아 채워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거야. 그걸 내가 다 채워보겠다고 할 때 하나님 대신 내가
내 마음의 왕 노릇 하겠다는 거지.


팔수
: 아이구야, 점점 더 어려워지는군요.


모님
: 들어봐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결핍감의 소산으로 하나의 중심에 매여 있는 나 자신
을 보고 인정 하는 거야. ‘어라, 내가 머리를 써야하는 순간인데도 배짱을 들이대고 있네. 어라, 내가 애정본능
을 일깨워야할 순간에도 머리만 돌리고 있네. 어라 내가 힘으로 버텨내야할 순간에 애정에 호소하고 있네!’ 라
고 말이다.


이석
: 인정만하면 끝인가요?


모님
: 아니지. 진짜 왕에게 내가 애쓰던 자리를 내어드려야지. 이것이 우리가 매일, 매 순간 그 분께 정직하게
나가야할 이유이고. 여기서부터는 우리 각자가 그 분의 손을 잡고 가야하는 길인 것 같아. 내가 너희들 밖에서
안내할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일거야.


이석
: 모님, 감사합니다! 얘들아, 우리 나가서 얘기 좀 더 하고 가자. 이제 우리 셋이 얘기하면 블루마운틴의 조
화로운 향이 막 뿜어져 나올 것 같지 않니?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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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문턱에 들어서 에니어그램을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내적여정 2단계 연수를 마치고 된통 마음을 한 번 앓고나서 흐릿했던 것들이 많이 명료해졌습니다. 1단계 연수에서 얻은 새로운 통찰들이 마냥 좋았고 뭔가 멋진 도구를 손에 쥐게 될 것 같아 부풀기만 했었습니다. 2단계 연수 내내 나와 같다고 규정되는 7번 유형 사람에 대한 거부감에 힘들었습니다. 


예, 저 7유형입니다. ㅠㅠ


7번 유형의 자아이미지는 '나는 행복하고 멋지다' 입니다. 긍정적인 특성이라고 한다면 쾌활하고 명랑하며 낙천적이고,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천진난만. 기발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에다가 이상주의자로 사심없고 자발적이고 활동적이라죠.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특징은 결국 7번의 집착이 되기도 하죠.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 '쾌락'과 '재미'니까요. 지루한 것은 견디지를 못하죠. 한 가지 일이나 한 사람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어렵고요. 부풀린 긍정주의 낙천주의로 피상적인 삶을 산다는데 맞아요. 고통에 직면하는 것 너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게 오토메틱이예요. 그러면서 저는 한 때 이걸 믿음이라고 생각했다죠. 자신에 대한 과장된 견해를 가지고 자기도취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거 이거 '자아팽창' 이라는 거죠. 다 내가 한 일 같고, 다 나 때문에 좋아진 것 같고, 내가 빠지면 모임이고 찬양이고 뭐고 다 안될 것 같다는 이 자아도취 말예요.

고통, 인생의 슬픔 이런 것들은 악덕으로 여겨서 멀리하고, 회피하고 십자가를 피해서 곧장 부활로 달려가고 싶어한답니다. 고통, 아주 조금만 와도 직면하기기 어려워서 죽을 것 같다고 과장해 버립니다. 마구 극단적으로 과장해 버려서 고통의 실체를 보지 않는 거예요. 분위기는 다 띄워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치고 빠지는 야비함이란....제가 이런 사람이라니까요.

7번의 어린시절은 유복하과 행복한 환경이 갑자기 깨졌거나 큰 정신적인 충격을 겼을 사람들이 많다네요. 아마도 사춘기가 막 시작하던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경험이 제게는 큰 치명적인 충격이었겠죠.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삶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아버지 한 사람 돌아가셨는데 우리를 대하는 교인들, 친척들의 태도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변했다는 건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건강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험이었어요.

7번유형이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는 '건전한 기쁨'이라죠. 저같은 7번들은 '나는 참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날이 많고,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하는 찬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정작 '진정한 기쁨'은 모른다는 거예요. 요즘은 '의식성찰 일기'라는 것을 쓰면서 '진정한 기쁨' 에 대해서 구하고 찾고 있으며 찾아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키(key)가 하나 더 있습니다. 

6번의 날개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7번의 설명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7번이라 하기에는 제게는 '완벽주의자 스러운' 구석이 있었거든요. 제 동생이 언젠가 하는 말이 '그래도 누나는 한 번 맘 먹은 거 끝까지 해내는 그런 게 있잖아' 하길래 코웃음을 쳤습니다. '내~애가 그런게 어딨어?' 자꾸 생각해보니 뒷심 없는 7번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6번 날개였습니다. 6번의 자아 이미지는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한다' 라는데요.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이후 저는 더 이상 7번의 페르조나(가면)만을 가지고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엄마와 동생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돌아보니 중고등 시절에 공부도 '책임감'으로 한 것 같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해. 우리 엄마가 젤로 치는 직업이 초등학교 교사니깐 서울교대를 가서 선생님이 되가지구 엄마를 기쁘게 해야하고, 무엇보다 가정에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어야해' 이거 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지금껏 돈을 벌지 않아본 적이 없다는 것도 최근 생각났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물론이고 대학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도 밤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깐요. '돈 벌지 않는 나'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상상도 안되고 허용도 되지 않았지요. 결혼 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상황이 그렇고,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 구석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내내 내려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나친 책임감으로 어떤 분야에서는 융통성을 잃기도 한다는 그 6번. 6번의 날개를 펼쳤던 거예요.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나면 최악의 경우까지 상상하고 대비하는 안전제일주의자가 되어 있었지요.

2,3주 전 병원에서 말하지 말라는 진단을 받고는 최고로 심란한 상태에 있었던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엄마 아프다고 걱정을 심하게 하더니 애들은 애들이라고 금새 잊고는 침대 발치에서 까불고 놀고합니다. 두 아이를 지켜보며 '너무 무거워요. 몸이 아프고 이제 일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하나님, 너무 무거워요. 저 아이들 어떻게 키워요.' 하고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어요.' 그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마음에서 울렸죠. '책임감 내려놔. 내가 책임져줄께. 내려놓으란 말이다. 애들에 대한 책임감 일에 대한 책임감, 사람에 대한 책임감 다 내려놔.' 고분고분 이 말을 들을리 없는 자아의 목소리가 '어떻게 내려놔요. 내년이면 또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제가 내년에는 좀 내려놓으려고 했었죠' 하네요.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그 주 수요예배 가서 기도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는 말씀이 생각나서 뜨거운 눈물이 났어요.

최근에 읽던 몇 권의 책 <융, 중년을 말하다> <하나님을 갈망하다>들은 지성과 영성을 일깨워 스스로 정리가 되도록 도와주었어요. 어제까지 위에 적은 내용들이 하나 씩 정리가 되면서 턱과 목이 아프던 것들도 거의 통증을 못 느낄 정도로 좋아졌어요. 그 책임감의 짐을  내려놓고 '쉽고 가볍다'고 하는 그 분의 멍에로 바꿔서 메는 중에 있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의 멍에'인듯 해요. 이제부터는 사랑에 항복하고 참 쉼을 얻을 일만 남았네요.

이렇게 6번 날개를 가진 7번은 그렇게도 무겁던 책임감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기로 했답니다.
다 내려놓고 왔는데 다시 그걸 만지작거리러 돌아가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요.

흐린 날이 지나고 맞는 파란 하늘과 햇살은 유난히 밝고 유난히 따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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