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사(史)를 공부하며 수도원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보니 <베네딕토 수도 규칙>은 뼈대 같은 것이었다. 각각 다른 수도원들의 영성을 하나로 묶는 것이기도 하고, 이 수칙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느냐에 수도회의 고유함이 결정되기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한 문서이지만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인용된 것으로 충분했다.  '규칙' 같은 말에 대한 거부반응이 본능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잘하던 일도 '너 이거 꼭 해야 해!' 강압으로 주어지면 안 하고 싶어 하는 못된 아이 같은 마음 말이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규칙을 잘 지키고 성실하면서, 강압하고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빠르고 지나치게 과민반응 해버리는 면이 있다. 규칙, 규칙서. 이런 것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수도원 순례를 결정하고 꼭 읽어야겠다 싶은 것이 <베네딕토 수도 규칙>이었다. 뒤늦게 순례 참여를 결정한 남편은 수도원 관련 책을 쌓아두고 읽었다. (아니, 결정하기 위해서 이미 쌓아 두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규칙서만 잘 읽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베네딕토 수도 규칙> 머리말부터 빠져들었다. 2장의 "아빠스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부분에는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규칙서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빠스에 관한 권고들이다. 아빠스는 대수도원장( Abbas)을 일컫는 말로 아람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아빠(Abba)"에서 왔다고 한다.
 

수도원을 돌보기에 적합한 아빠스는 항상 그의 호칭을 기억하여 행동으로써 으뜸이란 명칭을 채워야 한다.(아빠스는) 수도원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믿어지며, 그분께 (바치는) 호칭으로 불리어진다.

 
2장 "아빠스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호칭을 기억하라! 아빠스라 불리는 호칭을 기억하고, 행동으로 명칭을 채워야 한다니. 이보다 분명하고 준엄한 지침이 있을까 싶다. "나는 아빠다!" "나는 엄마다!" 이 말이 담은 책임감의 무게, 그 무게를 견디는 기쁨... 나는 이것을 안다. 그리고 이 문장을 좋아한다. '자녀를 위한 어머니 기도회'가 내 아이만 잘 되라는 이기적 욕망을 부추긴다 여겨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 썩 내키지 않았던 어머니 기도회 강의에 가서 본 문구가 마음을 건드렸었다. "주님, 제가 엄마입니다!" 엄마이고 아빠인 정체성을 생각하는 것, 그에 합당한 행동으로 엄마와 아빠로 불리는 그 호칭을 채우는 것의 감미로운 고통이란. 
 
누가 내게 <베네딕토 수도 규칙>을 한 두 문장으로 요약하라 한다면, 이 규칙서는 수도승들을 위한 것이기보다 아빠스를 위한 것이라 말하겠다. 그리고 한 문장을 뽑아 내라 한다면 물론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이겠지만, 내 맘대로 2장의 저 첫 문장을 꼽겠다. 베네딕토는 한 번도 일반 수도승인 적이 없고(은수동굴 3년을 수도승이었겠다) 시작부터 아빠스였다. 사람들을 모은 적이 없으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배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위해 수도원을 세우기 시작했으니 시작부터 아빠스였다. 그래서 아빠스에 관한 규정들이 유독 더욱 준엄했는지 모르겠다. 성 베네딕토든 아빠스의 정체성, 즉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베네딕토가 로마로부터 물러나 수비아꼬로 가기 전에 유모와 함께 기거했던 '아필레(Affille) 마을에 들렀다. 아필레는 성 베네딕토의 첫 기적 장소라고 한다. 유모가 이웃집의 채를 빌려다 썼는데 잘못해서 그것을 깨트렸다고 한다. 그것을 붙들고 통곡하고 있는 유모를 보고 베네디토 성인이 기도를 하자 그 채가 다시 붙어 원래대로 되었단다. 이 기적이 소문이 나자 베네딕토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길을 떠났고, 그 떠남이 은수처인 수비아꼬에 닿았다. 성인전에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기적이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의미 없는 기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쪼개진 채가 붙고, 물이 포도주가 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의미는 제거하고 기적만 바라는 마음이 참된 신앙이 될 리 없다. 아빠스 베네딕토를 향한 씨앗은 이미 이 첫 기적에 담겨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유모는 누구인가. 유모는 엄마 대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다. 베네딕토의 가정이 부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로마로 유학을 떠나는 베네딕토를 돌보기 위해 유모가 따라갔다. 로마를 떠나 머무를 곳에서도 유모가 함께 한다. 이 기적을 행하고 길을 떠나면서 베네딕토는 유모와 결별한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에서 스스로 돌보는 어른으로의 떠남이기도 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돌보던 베네딕토를 혼자 보내야 하는 유모의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얘는 나 없이 아무 것도 못해요." 엄마가 이렇게 말하며 운다면, 나는 같이 울고 말 것이다. 이웃집에 채를 돌려줄 수 없으면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나 보다. 그러니 통곡을 했겠지. 절박한 유모 한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첫 기적이었다. "어머니, 저는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강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안심하세요." 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속세를 떠나게 된 것은 아닐까. 
 

 
아빠스가 되기 위해서, 돌봄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돌보는 존재, 그것도 하나님을 찾는 많은 이들을 돌보는 아빠스가 되기 위해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떠나야 한다. 떠나되 이제는 나보다 약해진 부모를 안심시키고, 그를 축복하고 떠나야 한다. 규칙서에서 아빠스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엄마인 나를 비추고, 내적 여정을 동반하는 나를 비추고, 연구소를 이끄는 나를 비춘다. 나도 모르게 한 구절 한 구절 자꾸 읽게 된다. 내가 아빠스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을 맡은 자이기에 그렇다. 하나님께서 내게 두 아이를 맡겨 주셨고, 그 아이들 앞에서 어른으로 살라고 하셨다. 연구소로 모여든 사람들의 영적인 여정을 동반하는 자로 책임을 맡겨 주시고, 소장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아빠스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셨으나, 예수님께 부름 받은 우리 모두는 그분의 대리자이다. 그렇게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 아닌가.
 

아빠스는 집주인이 양들 가운데서 별로 이익되는 점이 없음을 발견하거든 그것이 목자의 탓인 줄로 알아야 한다. 

 

아빠스는, 자기가 제자들에게 부당하다고 가르친 바든 무엇이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자기의 행동으로 가르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은 가르치면서도 자기 자신은 버림받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며...

 

아빠스는 수도원 안에서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선행과 순명에 있어 뛰어나지 않은 한 어떤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지 말 것이다.

 

아빠스는 자기의 지위를 늘 기억하고 명칭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많이 맡겨진 이에게는 많이 요구됨을 알아야 한다.

 

그는 영혼들을 다스리고 많은 사람들의 기질을 맞추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순하게 대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책벌해야 한다. 또 각자의 성질과 지능에 따라 모든 이에게 순응하고 알맞게 해줌으로써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손해가 없도록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착한 양들의 수효가 늘어나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빠스는 맡겨진 양떼에 대해 장차 받게 될 목자로서의 심문을 항상 두려워하고, 다른 이들에 대해 바칠 헴을 조심하는 동시에 자신의 헴에 대해서도 염려할 것이며, 자신의 훈계로 다른 이들의 잘못을 고치게 할 때에 자기의 결점도 고칠 것이다.

 
 
 

 

아주 작은 기념 성당이 있고, 성당 주변으로는 무덤이 있었다. 키가 큰 사이프러스가 인상적이다. 무덤가에는 이 나무가 주로 심겨 있다. 하늘을 향해 올곧게 치솟은 나무의 형태가 하늘을 향한 인간 영혼의 본성을 담는다 여기는 것일까. 아필레는 아주 시골 동네이다. 우리나라 시골처럼 빈집도 많다고 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족이 산책을 하는 작은 동네 아필레의 골목을 걷는 시간이 참 좋았다. 유모의 깨어진 채처럼, 작은 것으로 울고 웃는 우리의 일상이 기적이고 신비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동네였다. 이런 골목을 걷이 참 좋은 것은, 돌아갈 내 일상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아빠스, 연구소의 아빠스로 사는 일이 무겁고 좋다는 생각에 이르니 말이다.       

 

현승이가 고등학교 진학과 일 년 안식년 갖는 것을 두고 했던 고민이 생각난다. 성적으로 줄 세우고, 모두 한 곳을 목적하고 달리게 하는 학교의 시계를 잠깐 멈추자는 뜻이었다. 취지도 좋고, 누나의 경험을 봐도 좋은 것 같고, 무엇보다 일 년짜리 방학을 얻는다니,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승이의 고민은 '회피'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공부도 싫고 경쟁도 싫고, 무엇보다 경쟁에서 이길 자신도 없으니 물러나는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물러나는 사람들, 은수자들, 로마를 떠나 수비아꼬 동굴로 들어간 베네딕토 성인이 어린 현승이 말에 빗대어졌다. 열여섯 현승이의 제 수준에서 고민은 그렇지만, 가던 길을 돌이켜 돌아가거나 남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이들의 고뇌가 있을 것이다. 드디어 박해시대가 끝나고 자유롭게 예수님 따르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때 자발적으로 사막을 향해 들어간 교부 교모들,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나 더 깊은 은수처로 들어가는 이들은 어떤 고뇌의 시간을 통과했을까. 순례단의 연세 높으신 어르신 한 분이 계신다. 따님이 수녀님이 되셨다고 한다. 대학, 대학원 다 마치고 어느 날 갑자기 "엄마 할 말이 있어"하고 방으로 부르더니 다짜고짜 수녀원에 가겠다 하셨다고. 순간 벽에 기대었던 몸이 스르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고.

 

수비아꼬 수도원은 로마를 떠난 베네딕토 성인이 3년간 은수생활을 했던 동굴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수도원이다. 지금은 "거룩한 동굴"이라는 뜻의 사끄로 스베꼬(Sacro Speco)로 불리는데, 가파른 절벽 가운데 있어서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동굴이었다.  동굴이 딸린 절벽에 세워진 수도원인데, 어떻게 이런 건축이 가능했을까 싶다. 동굴생활을 시작하기 전 로마누스(Romanus)라는 수도자를 만났는데, 3년간 유일하게 접촉한 사람이다. 그 접촉이라 바구니에 줄을 달아 빵을 내려주는 정도였다. 그런 고독 속에서 기도로 지낸 3년이라니. 

 

깊은 기도로 하나님께 가는 사람에게 유혹과 시련이 없을 수 없다. 로마가 아니라 은수처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서 악마의 방해공작이 있었다고 하는데, 빵이 왔음을 알리는 방울을 깨트리거나, '여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여 육적인 정욕'을 일으켰다고도 한다. 주어를 악마로 표현하면 그렇지만, 홀로 물러나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본적인 욕구로 인한 어려움은 너무나 당연한 시련 아닌가. 은수처로 들어갔다고 했서 당장 식욕이, 성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하나님 체험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를 붙들고 씨름하는 3년의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도원 안쪽 정원에 장미가 심겨 있다. 성인이 성적인 욕구를 물리치기 위해 가시밭에 몸을 뒹굴었다고 한다. 그 일화를 담은 상징으로 가시 달리 장미가 거기 있었다. 

 

은수생활은 결코 고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시밭에 뒹구는 몸과 영혼으로 치열한 시간 속에서 만난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자발적 물러남'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고통을 향해 걸어들어가는 걸음이다. 연구소에서 함께 향심기도를 하고 있다. 20분 멈추고 기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하면서 안다. 해보면 안다. 자발적으로 물러나 만나는 것은 '욕구 그 자체인 나'이고 거룩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나와의 대면이다. 그런 나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니 어떻게 사투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비아꼬 수도원에서는 두 번 머무르는 기회가 있었다. 첫날은 (이날따라 유난히 많았다는) 순례객에 떠밀려 그저 공간에 몸을 담갔다 나왔다. 심지어 동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수도원 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이른 아침 산책 나갔던 남편이 수도원에 올라갔다가 아무도 없이 홀로인 수도원을 누리고 왔다고 했다. 아, 아깝다! 글을 포기할걸! 한 번의 기회가 더 왔다. 가톨릭 신자들은 매일 미사를 드린다. 순례 중에도 매일 미사가 있다. 아침 9시, 수비아꼬 수도원 한 공간에서 미사가 있는데 어쩐지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양해를 구하고 밖에서 기도하기로 했는데, 덕분에 나도 아무도 없는 동굴을, 수도원 이곳저곳을 누리며 기도할 수 있었다. 성인의 '자발적 물러남'에 대해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기도할 수 있었는지, 물러나는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자발적'인 힘은 분명 영혼으로부터 오는 것일 텐데 그의 영혼은 어떤 영혼일까. 내 영혼은 지금 어디를 어떻게 헤매고 있는 것일까.

 

자연의 동굴 그대로 두었더라면 내게는 더 좋았을 텐데, 그럴 리가 없다. 대리석 상이며 이것 저것으로 꾸며진 동굴이 나는 왠지 조금 슬프더라. 은수자로 물러나 사신 곳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떠들고 있으니 뭔가 제대로 존중해 드리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발에 씌워진 강철 보호대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돌이 닳았기에 보호대를 씌운 것이다. 실제 성인의 몸이 아니지만, 보고 만지며 기도하려는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순례 신심을 이해한다. 붙들고 사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붙들고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저 까만 보호대가 성인의 뜻과는 다를 텐데, 싶으니 서글퍼지는 것이다. 

 

나도 무슨 짓을 했다. 수도원을 배경으로 <수도 규칙> 책 사진을 찍으려 들고 올라갔는데, 동굴 안의 성인 상 무릎에 두어 보았다. 감사의 표현이었다. 기도하고,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기도하며 쓰는 사람으로 평생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 자신이 되어 하나님 사랑을 꽃피우고 떠나 주셔서. 

 

혼자 나와 남편을 기다리는 중, 수사님 한 분이 걸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왔다갔다 기도하는 그분을 위해 나도 기도했다. 자발적인 물러남을 사는 이 시대 수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자발적으로 물러나 평생 기도하는 삶을 사는 그분들이 있어서 그나마 우리가 이 정도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SNS 보거나 폰에 빠진 것 같이 보이지만, 수도원 안내인의 설명을 열심히 필기하는 중이다.

 

스콜라티카 수도원, 수도원 순례기 다섯 번째만에 여성의 이름이 등장했다. 스콜라티카는 최초의 베네딕토 수녀원장이다. 스콜라티카 성녀의 이름이 붙여졌고, 성녀에게 봉헌되었을 뿐이지 그녀가 세웠거나 살았던 수도원은 아니다. 이 수도원은  베네딕토에 의해 세워진 12개의 수도원 중 첫 번째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수도원들이 그러하듯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복원되곤 하는데, 여기도 그 마지막 상흔은 세계대전이다.
 
이탈리아 최초의 인쇄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독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와 일하던 두 명의 독일 수도사가 이곳에 와서 3년간(1465-1467) 머물면서 처음으로 네 권의 책을 인쇄했다고 한다. 안내하는 분은 아주 빠르게 지나치듯 언급했지만, 최초의 인쇄, 수도원에서의 인쇄는 특별한 의미였을 것이다. 중세 수도원과 수도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필사'였기 때문이다. 필사 자체가 영적 수련이며, 필사된 서적을 보관한 수도원 도서관은  중세 시대 지성과 영성을 담고 보존하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수도원 이름으로 등장한 성녀 스콜라티카의 개인 신상을 공개할 차례이다. 스콜라티카는 성 베네딕토의 쌍둥이 여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을 뿐 아니라 많은 동생들이 그러하듯 오빠가 하는 것은 다 좋아 보이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빠가 로마 유학 중 겪은 실망과 환멸로 거기를 떠나 수비아코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할 때도 스콜라티카 역시 근처 수도원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오빠를 좋아하는 동생, 오빠와 사이좋은 동생이니 그리했을 것 같지 않은가.

육안으로 볼 때 참 아름다운 회랑인데, 사진을 찍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빛과 그림자에 주목하여 그림자가 충분히 담길 때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내 교회의 그림자, 그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끌어는 것이 내 교회를 아름답게 하는 일이다.

 

인상 깊은 일화가 하나 있다. 남매는 각각 수도원장과 수녀원장으로 지내면서 일 년에 한 번 어느 농가에서 만나곤 했다고 한다. 동생 스콜라티카 성녀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오빠에게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자고 청했단다. 그러나 수도원 밖에서 잠을 자는 것이 규칙 상 허락되지 않는다며 오빠는 단호하게 떠나려 했다. (자신이 만든 규칙이었기에, 누구보다 엄격하게 지키려 했을 테니까) 오빠와 더 대화하고 싶었던 동생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러자 날씨가 험악해져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오빠 일행은 수도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동생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와 며칠 되지 않아 베네딕토는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동생의 죽음을 느낀다. 곧바로 동생의 시신을 모셔와 자신의 무덤으로 준비했던 몬테카시노 수도원 무덤에 안장하였다. 남매는 죽어서 나란히 한 곳에 묻혀 있다.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남매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남매가 서로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나란한 수도자의 삶과 여정 이야기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 봉헌된 오빠를 좋아하고 따르는 동생, 동생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하나님께 부름 받은 소명 안에서의 한계를 살려는 오빠.

 

순례의 시간과 여정이 길어지고 깊어지면서 짧게나마 함께 한 분들의 개인적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전부 가톨릭 신자이고, 난생처음 목사 부부와 가까이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열심 있는 개신교 신자들의 지나친 열정, 특권 의식으로 상처받는 가족들은 흔하다. 우리로 치면 말없이 착한, 조용히 하나님 사랑하는 권사님 같은 한 분이 계시다. 교회 일이 있다고 가족 모임은 등한시하고 얼굴도 비치지 않는 가족 개신교인 가족 이야기를 하신다. 눈물을 찍어내며 드문드문 이어가는 말씀을 듣자니, 단지 가족 모임에 오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냥 존중해 주면 좋겠어요." 누나의 신앙을 존중하지 않는 정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폭력적인 말들을 할지, 내 주변 어떤 교인들의 말을 떠올리면 금방 상상할 수 있다. 개신교인 가족, 개신교인 친구에게 받은 상처를 들으며 나라도 엎드려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결국 기습 생일 축하 노래로 축하받은 남편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목사라는 가족의 대소사를 다른 형제자매에게 떠넘기고도 당당한 이들로 상처받은 사람 또한 흔하다. 물론 목사라는 '직업'은 결혼식이 있고, 가족 모임이 흔한 주말이 제일 바쁘고, 장례가 나면 휴가 중에도 복귀해야 하는 그런 '직업'이다. 직업으로선 그렇다. 남편은 어릴 적 친구 모임의 걸림돌이 되곤 한다. 모두 일하는 월요일에 쉬니 말이다. 우리 가족 때문에 시가의 가족 모임 시간 잡는 것이 늘 조금씩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직업, 서있는 위치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목사 아니라 누구도 가진 한계이다.
 
봉헌된 삶, 하나님께 드려진 삶은 결국 사람에게 드려진 삶이다. 하나님 일이라 퉁쳐서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성직은 없다.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에 단호할 수밖에 없었던 베네딕토 오빠였을 것이다. 동생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오빠로서 오빠의 자리에 진정성 있게 충실한 것은, 오빠의 뒤를 따르는 동생을 위한 최선의 사랑일 수 있다. 문제는 사랑이다. 오빠를 조르는 동생 역시도 사랑이었으니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알아주셨을 것이고. 봉헌된 삶은 특혜를 누리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 봉헌된 사람은 사랑에 봉헌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차별하고 혐오한다면 그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성 베네딕토와 성 스콜라티카 남매의 사랑 이야기에 마음을 적신다. 편 가르고, 특권의식에 휩싸여 배제하고 혐오하는 부끄러운 내 마음 정화되기를.
 
 

수비야꼬 수도원의 아침, 선물같은 고요한 시간을 얻었다. 순례객 하나 없는 공간에서 가만히 머무르는 기도를, 베네딕토 성인의 은수동굴에서 남편과 둘이 오늘의 말씀 읽기, 그리고 진짜 선물이 왔다.

새가 한 마리 날기에 “쟤 지금 나한테 오는 거다!” 했더니 진짜 얘가 내 앞에서 왔다 갔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 다시 가고. 오늘도 새는 내게 그분의 메신저. “나 여기 있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너 있는 곳엔 어디나 내가 있다!” 말씀하신다.

오후 순례는 파르파 수도원이었다. 순례 시간 변경으로 갑자기 자유시간이 생겼는데, 이 얼마나 꿀같은 시간인가. 수도원 앞 벤치에 앉아 지금 여기의 바람과 햇살에 무장해제 상태인데, 갑자기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튀어나온 고양이 ‘지지’ 같은 애가 쓰윽 다가와 친한 척을 하는 것. 내내 곁에 앉았다 내가 일어나니 저도 일어나 또 다른 애인을 찾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지금 여기 선물의 완성은 “아이”이지!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이가 아침에 본 새처럼 제 엄마에게 뛰어 갔다 도망갔다 하는 것이 새보다 사랑스럽고, 고양이와 비할 수 없이 예쁘다.

얘, 키키의 고양이 지지같이 생김 이렇게 막 스킨십도 시도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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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너머 산 위에 보이는, 호텔 수영장에 비쳐서 보이는 몬테카시노 수도원 찾기!

 
베네딕토 성인이 정착하여 살다가 묻힌 곳, 베네딕토회의 모체이며 서방 수도회의 모델이 되는 수도원인 몬테카시노 수도원이다. 글로만 보던 베네딕토 성인의 삶과 영성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처음 순례지 카사마리 수도원에서의 감흥이 가시지 않은 채로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향했다. 지도책에서 본 것을 눈앞에서 바로바로 찾아내는 JP가 산꼭대기를 가리켰다. 거기 산꼭대기에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보였다. 와아, 저기로 올라가는 거야! 저기야, 저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식상한 말은 꼭 이렇게 튀어나오곤 한다니까. 글로 보면서 한참 가까워진 베네딕토 성인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몬테카시노 수도원에는 없었다.

 

로마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은 <베메딕토 수도 규칙>이었다. 비행기 독서는 집중력과 이해력이 덜 필요한 소설 정도가 적당한데 무려 ‘교부 분헌 총서’로 발간된 책을 읽은 것이다. 읽힌다는 뜻이다. 술술 읽힌다는 뜻이다. 6세기에 쓰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분명 성인이 이루고자 하는 수도 공동체의 이상은 높은데, 실천할 것들은 구체적이고 섬세하다. 숲과 함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런 식이다.

식탐이 있거나 식사량이 많지도 않는 남편인데 나이가 들면서 전 같지 않다. 가만 두면 계속 먹는 아저씨가 되어간다. 남기기 아까우니 먹어 치우겠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뜻인기 싶고. 아무튼 비행기 안에서 나오는 식사, 간식을 남기지 않아도 탈탈 털어먹는 것이다. 거기 엮여 이건 남겨라, 저것만 먹어라, 잔소리하는 나도 싫고. 그런데 마침 읽고 있던 <수도 규칙>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옆구리 쿡쿡 찔리서 보여주었다. 큭큭거리며 알겠단다. 말이 필요 없는 가르침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식을 피해 수도승이 결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과식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주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다. ‘여러분의 마음이 과식으로 무뎌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수도 규칙> 39장 '음식의 분량'

성화에서 베네딕토 성인을 찾는 방법은 손에 든 규칙서이다.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써서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3년의 은수생활, 수도원 창설, 기도 생활… 그 모든 것보다, 아니  모든 것을 담은 규칙서를 만들고 문서로 남겼기에 베네딕토 성인이 베네딕토 성인 된 것 아닌가. 왜 굳이 그는 수도승들을 위한 규칙서를 만들었을까?

베네딕도의 명성이 널리 퍼져나갔을 때 비꼬바꼬( Vicovaro) 수도원으로부터 수도원장으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엔 사양했지만 거듭되는 요청에 못 이겨 수락하게 되었다. 수도생활을 바로잡고자 하는 원장 베네딕토의 엄격함이 지나치다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고, 불만은 불만에 그치지 않았다. 베네딕토를 독살하려는 음모가 꾸며진 것이다. 성인전에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암살을 위해 독이 든 포도주가 만들어졌고, 베네딕토 성인이 포도주에 강복하자 그 잔이 깨졌다는 것이다. <수도 규칙>을 번역 주해한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비꼬바로에서의 이 사건은 앞으로 자신의 공동체를 지도하게 될 베네딕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수도 이상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회심의 노력이 없는 한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후에 그의 규칙서 여러 여러 곳에서 개인적인 수덕 노력과 형제들의 상호 교정을 강조하면서 악습을 고치는 일과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말이 그렇지 얼마나 큰 충격이겠는가. 청운의 꿈을 안고 로마로 갔던 일, 거기서 느낀 환멸과 그로 인해 선택한 은수생활, 그로 인한 하나님 체험을 가르치고 나눌 공동체라 여겼을 텐데. 여러 이유로 거절했지만 결국 가야 했던 그 자리에서 이루고 싶은, 이룰 수 있다 여긴 수도 공동체였을 것이다. 배우고 따르기는커녕 뒤에서 독살 계획을 도모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았을 충격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방 수도원 영성의 아버지'가 된 베네딕토는 깨달은 것이다. " 아무리 훌륭한 수도 이상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회심의 노력이 없는 한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덕에 지금 우리 손에 <수도 규칙>이 들려져 있는 것 아닌가. 그로 인해 '서방 수도원 영성'의 아버지로 우뚝 서 있는 것 아닌가. 뼈아픈 체험 속에서 숲과 함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까지 보여주는 <수도 규칙>이 나왔구나 싶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이후 역사 속에서 네 번의 큰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577년 롱고바르도족의 침입으로, 두 번째는 883년 사라센의 침입으로, 세 번째는 1349년 대지진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2차 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2월 18일 연합군의 리더인 미군이 당시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저항하는 독일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1250톤의 폭탄을 투하하여 수도원의 거의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된 상태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어놓은 수도원 건물의 스러짐을 막을 방법이 있겠는가. 세월의 흐름으로 부식되고, 전쟁으로 파괴된다. 마음에 지어진 성전만이 무엇으로도 파괴되지 않는다. 몬테카시노에서 <수도 규칙>을 쓰던 성 베네딕토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기대했는데 없었기에 내 마음에 더욱 농익혀 그분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공동체에 대한 열정을, 좌절을, 물러남을, 나아가고 실패하는 여정을. 그 모든 것이 담겨 지금 내 손에 주어진 <수도 규칙> 한 권이다. 6세기, 여기 몬테카시노에서 규칙서를 만들고, 고치고, 썼을 성 베네딕토를 생각한다.  

 

* 순례 일정 중 순례기 쓰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는 수도원 호텔이라 와이파이도 안 됨) 그럼에도 결국 써서 남겨주신 6세기 성인의 열정을 이어받아 어떻게든 이어가 보기로 한다. (이 연재 재밌는 분? 응원 필요함!)

 


 
 

 수도원의 밤이 깊어간다. 옆 침대에는 아주 특별한 생일축하를 받은 목사가 쌕쌕 깊이 잠들어 있다. 남편 생일인데, 서프라이즈로 케이크라도 준비하고 싶었지만, 산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에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쩌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생일인 것이 알려졌다. "그리고 오늘 순례에 함께 하신 김종필 목사님의 귀 빠진 날이랍니다."는 말이 마치자마자 생일축하 노래가 떼창으로 발사되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목. 사. 님. 생일 축하합니다. 
 
교회 교우에들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떼창 생일축하 노래를 가톨릭 신자들의 목소리로 들었다. "사랑하는 신부님"이 아니라 사랑하는 "목사님"이라고 노래하는 가톨릭 형제자매들이라니! 사랑하는 목사님...이라니! 

 
한 마디 하라는 말에 남편이 일어나 멋진 생일축하 답사를 했다. "여기 와서 여러분들과 얘기 나누다보니 개신교인들에게 상처받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대표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희 교회에 가서 잘 가르치고 더 잘하겠습니다." 했다.

담을 넘어온 순례 여행은
아프더라도 꼭 들어야 할 말을 듣는 기회,
특별한 생일축하를 받는 기회,
한 분 하나님을 믿는 하나의 교회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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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1217년 사이에 지어졌다고 하는 이탈리아 라치오주 프로시노네 지방에 있는 카사마리 시토회 수도원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인데, 첫 순례지는 시토회 수도원인 카사마리(Abbazia di Casamari)이다. 시토회라니. 내게 수도원은 시토회(트라피스트) 수도원이다. 어째서 그러한지, 내 비밀 같은 이야기를 차차 풀어놓으려고 한다. (오늘 이야기가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들꽃은 어디나 있다. 개망초를 닮은 이 꽃의 이름은 '봄망초'이다.

 
나를 알고 남편을 아는 지인들은 '수도원 순례 여행' 간다는 말에 끄덕끄덕 하며 부럽다고 한다. 순례단에서는 신기한 일로 여긴다. 개신교인이, 그것도 목사 부부가 어떻게 여기를 함께 하느냐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 안면을 트고 대화가 길어지면서 듣고 또 듣는 질문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수도원 영성이 내 마음에 훅 들어온 것은 대학원에서 '영성신학' 과목을 듣던 그때였다. 생 티어리의 기욤<Guillaume de Saint-Thierry 1085-1149) 저작 『황금서간』을 한 학기 묵상 과제로 받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과제 앞에 '묵상'은 내가 붙인 것이다. 주욱 읽고 리포트 쓸 책이 아니었다. 한 학기 내내 영적 독서로 정하고 아침마다 한 절씩 읽으며 묵상하게 되었고, 그 책이 내 마음을 적셨다. 
 
이 책으로 쓰신 교수 신부님의 논문은 오늘날의 신학에 대한 성찰로 시작한다. "모든 신학은 하나님이 사람과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 말해야 하고, 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지 길을 제시해야 하는데 오늘의 신학은 자신이 ‘학문’인 점을 강조하고 있을 뿐, 하느님과 사람 사이 가교임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삶과 분리되어 사변적 학문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시대는 바야흐로 영적인 시대가 되었고,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영적 갈망은 커지는데, 삶과 분리된 신학은 신자들의 영적 갈망을 채워주기는커녕 진정한 내적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사변적인 신학들이 진정한 내적 인간 양식을 전해주기는커녕, 내적 인간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한다. 
 
논문을 읽고 공부하면서 영성과 신학 사이에서 내가 느끼는 어려움이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을 알고 놀랐다. 12세기 스콜라신학이 등장하면서 수도신학과의 논쟁과 시대적 정황 속에서 어떻게 사변신학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는지 공부하며 수도원 영성에 깊이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다. 생 티어리의 기욤은 스콜라 신학의 시작점에 있었던 아벨라르두스와의 논쟁했던 (당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논증''을 통해 삼위일체를 증명하고자 했던 아벨라르두스와의 눈쟁에서 결국 이기게 된다. 논쟁에서 이겼고, 결국 아벨라르두스는 패자가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12세기 이후 스콜라신학이 신학의 주류가 되었고,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콜라신학, 즉 학교신학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성당이나 수도원으로 모여들고 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수도자들의 일이 되었다. 수도자들은 학교를 운영해야 했고, 병자를 돌본다거나 다양한 일을 집행해야 했다. 이렇듯 일이 많아지자 수도자들은 독방에 머무르면서 고요히 기도하는 것에 방해를 받게 되었다. 이때, 스콜라신학과 강의로 인기를 얻는 세속 성직자의 도전으로 인해 수도자들은 그동한 해오던 교육 사업으로부터 물러날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해 등을 돌리기까지 하는 수도원들이 생겼다. 특히 12세기 수도원 개혁에 앞장섰던 시토회에서는 세상에서 더욱 물러나 광야에 자리를 잡고, 다른 일보다 손으로 하는 노동과 함께 기도하며 살게 된다. 외적인 학교를 배제하고 내적인 학교를 사는 것으로 전향한 것이다. 
 
생티어리의 기욤은 시토회 개혁을 주도하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의 친구였다. 윌리엄은 1119년 생티에리 대수도원의 수도원장에 선출되자 행정보다는 명상과 저술에 몰두하고자 했지만, 친구인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의 권고를 받고서 그 직위를 지켰다. 결국 이후에 베네딕토회를 나와 시토회로 입회하였다. 『황금서간』은 카르투지오 수도회 소속의 수도원을 방문한 뒤 거기 수도사들에게 쓴 편지이다. <몽디외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관상생활에 말 그대로 황금 같이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황금의 편지'로 불렸다. 12세기 쓰인 이 책을 한 학기 동안 읽고 기도하면서 '영적 독서'가 어떻게 기도인지 체험했다. 내적 인간을 위한 거룩한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황금서간』은 아침마다 내게 마음의 '독방'으로 들어가라 가르쳤다. 수도원의 독방은 내적인 독방이라고. 거기는 하나님과의 비밀 같은 사랑을 간직한 곳이다. 내게 그런 독방이 있다. 카사마리 수도원 성당에 들어가 앉아 드리는 짧은 기도가 우리 집 거실에 앉아 드리는 기도와 다르지 않으니 내가 가는 곳이 그 방이다. 


수도원 수사님께 직접 안내를 받는 행운을 누렸다. 중세 수도원에 관해 책으로 배운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내게는 흥미진진이었는데, 일행들은 슬슬 자리 이탈을 하기도 했다. 식사하며 들으니 지루한 내용 듣는 것이 힘들었고, 빨리 끝내길 바라면서 "이제 그만!"을 여러 번 외쳤다고 한다. 그러며 열심히 듣고 메모하는 개신교 신자를 보고 반성했다고도. 아, 내가 불안하면 남도 불안한 줄 아는 것처럼 내가 재밌으면 다른 사람도 재밌는 줄 아는 게 '내 중심' 사고라니까!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그 집의 역사를 들려주는 재미에 아이처럼 신이 난  수사님이 귀여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100여 명이 살았는데, 지금은 15명의 수사님들이 살고 있다고. 이 넓은 집에서 15명이 사니, 그 집을 찾은 이들에게 영광스러운 역사를 들려주는데 신이 나지 않겠나. 그리고 내가 가장 가깝게 느끼는 시토회의 저 수도복... 용기 내어 사진 한 장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님들이 모여서 <베네딕토 수도규칙>을 읽었다는 방의 스테인드글라스이다. 왼쪽은 베데딕토 성인, 오른쪽은 딱 봐도 시토회의 사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나는 이 두 분을 알고, 내가 이분들을 알기에 이분들도 나를 알 것이다. 내가 수도원에 닿은 이야기, 지금 여기 이탈리아에 있는 이야기는 1500년, 900여 년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하던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바로 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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