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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갔더니 바다였다 산인 줄 알고 갔는데, 도착하니 바다였다.하늘을 찍었는데, 바다 같았다.비가 쏟아졌는데, 청명했다. 예상은 늘 빗나간다. 빗나간 자리마다 예술이 틈입한다.은총이 들이닥친다. 2026. 10. 20.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지난여름, 내게 한 약속을 지켰다. 가을이 오면 황금 물결치는 평사리 들판을 보러 꼭 다시 오리라. 평사리 들판이 아니라 평사리의 박경리 선생이 부르신 것이었음을 문학관 마당에 들어서서 바로 깨달았다. 자그마한 동상 뒤에 새겨진 글자는 그 크기에 비하면 커도 너무 크다. 모든 어른은 뒷모습으로 말한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 말 한마디 들려주시려 가을 지리산으로 다시 부르셨나? (주어는 she 또는 He) 마음에 쿵 하고 들어왔다. 집에 와 시집을 찾아보니, 내가 기억하던 그 시가 아니었다. 이 구절로 새로 만난 시 전문이 새롭게 말을 건다. 15년 살아온 집을 떠나는 마음을 적은 시인 줄 알았는데, 그 집에 살았던 시간을 돌아보는 시였다. 꿈 작업하듯 시를 대하니, 가을 평사리로 .. 2026. 10. 20.
자취생 아들 후원 한 끼 자취생 현승의 최대 식재료는 달걀이다. 쿠팡에서 엄청 싸게 팔아서 주문했는데 한 판이 왔다며, 달걀의 유통기한을 물어왔다. 모르겠다고, 대충 빨리빨리 많이 먹어서 치우라고 했다. 유통기한에 민감한 분이라 곤란해하시더니, 주말에 집에 오는 길에 플라스틱 통에 담아 가져오셨다. 그 정성이 갸륵하여 뭔가 기념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가져온 8개를 모두 풀어 군함 계란말이를 했다. 얼마 전에는 카레를 잔뜩 끓여 놓고 집을 비운 적이 있었는데, 카레 우동으로 먹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되냐고 전화를 해왔다. 밥 대신 우동면 사다가 삶아서 담가 먹으라 했더니, 잘 만들어 먹었다고…. 집에 와 확인하니 칼국수 면이었다. 그것도 건면. 한 봉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왕 현승이 후원 식재료를 쓴 김에 .. 2026. 10. 16.
초대 말없이 드리는 모든 기도를 침묵기도라 할 수 있으니 특별히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침묵만큼 어려운 것이 없고, 기도란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것이기에 배움이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 침묵 속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지만, 기도에 관한 강의가 좋고, 밥이 맛있고, 깨끗하고 소박한 수도원 독방이 위안이 됩니다. 관심 있으신 분, 함께 해요. 침묵기도 피정으로 초대합니다.일상에서 물러나, 고요와 침묵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에 머무는 2박3일 ‘예수마음기도’피정입니다.예수마음기도란, 대침묵 피정으로, 길잡이 강의와 영적 동반을 통하여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배우고 익히면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깊게 하는 영적 수련입니다. + 동반자 : 신소희 수녀.. 2026. 10. 16.
집의 명절 밥 명절 당일에는 전을 부쳤다. 고기 좋아하는 현승이를 저격해서 육전을, 어릴 적에는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나이 들면서 이상하게 좋아하게 된 동태전은 나를 위해서, 새로운 걸 내놓으면 무조건 좋아하는 JP를 위해서는 호박새우전을 준비했다. 만드는 과정도 먹는 과정도 모두 맛있게 재미있었다. 한 접시 남은 걸 다음 날 혼자 데워 먹는 현승이를 보는 건 재밌게 뿌듯했다. 전만으로는 느끼하니 게장 양념으로 비빔국수를 했다. 명절 이튿날, 잡채를 했다. 100번은 해본 것처럼 손이 척척 움직여서 볶고 무치고 해서 내놓았다. 두 남자는 "당신이 잡채도 해?" "엄마가 잡채는 처음으로 해주는 것 같은데..."란다. 아닌데, 해준 적 있는데... 원팬 잡채였나? 중요한 평가는 이것이다. "어머니 잡채랑 맛이 똑같애!" .. 2026. 9. 27.
명절 집밥 아래층 위층에서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 진동하는 명절 전날에, 생뚱맞은 밥을 해 봄. 닭치찜과 된장열무우거지, 빨간 양념게장과 가지냉국. 추석과 닿지 않는 메뉴라 더 재밌고 맛이 있음. 명절 연휴 중 한 번은 나도 전을 해보려고 함. 2026. 9. 24.
새로운 연재 국민일보 칼럼에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겨자씨처럼 짧고 작은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첫 글을 쓰며 분량에 맞추어 덜어내느라 퇴고에 퇴고를 했습니다. 짧은 글쓰기의 어려움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글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훈련의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매주 토요일 발행됩니다. [알림] 겨자씨·시온의 소리 필진 일부 바뀝니다국민일보 더미션은 9월 30일자부터 ‘겨자씨’와 ‘시온의 소리’ 필진 일부를 교체합니다. 겨자씨는 정통령(더세움교회) 목사, 한사무엘(순복음대학원대) 총장, 정신실(Ruach루아영성심리연구소www.kmib.co.kr [겨자씨] 배롱나무의 시간무더위 폭격을 쏟아내던 여름이 가고 완연한 가을입니다. ‘열대야 산책’이라 이름 붙이고 후텁지근한 밤공기를 걸었던 기억이 먼 일 같.. 2026. 9. 21.
가을 저녁 초승달 거실이 서재, 서재가 작업실이다. 해질녘 작업실 앞 하늘 풍경은 늘 예술이다. 맑은 날은 파란 투명함으로, 흐린 날은 무채색 구름이 그리는 수묵화로 제각각 아름답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초승달 뜬 하늘에 딸깍 그리움의 스위치가 켜졌다. 이 거룩한 현재, 영원한 현재, The Eternal Now! 시간과 영원이 만나는 초승달의 현재이다. 이 저녁 이후로 며칠 동안 이 노래가 자꾸 반복 재생이다.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생달숲 사이로 지고높은 벽 밑둥아리에 붙어서밤 새워 울고난 새벽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아래밤 새 울고난 새벽 2026. 9. 19.
선한 목회 되실 우리 주 2026년 여름 휴가는 많이 자고, 책 보고, 걷고, 소박한 밥을 먹고 참 고요했다. 이상하게도 사진첩의 그 시간들은 강렬하다. 강렬하게 아릅답다. 8월 30일, 휴가 주일, 김목사는 김기사를 자처하여 전주 강의에 동행해 주었다. 일찍 출발하여 오전 예배 시간에 맞추었다. 교만하여 쉽게 은혜 받지 못하는 부부가 모처럼 영혼이 따뜻해지는 예배를 드렸다. 긴 만남, 깊은 만남을 가진 것도 아닌데 어쩐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목사님들이 있다.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나? 잘 계실까? 건강은 괜찮으실까? 한 번씩 걱정이 올라오면 짧은 기도를 드리곤 한다. 그랬던 J 목사님이 활짝 피어난 모습으로 목회를 하고 계시니 그 자체로 놀랍고 좋았다.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유능함과 생기에 안도 너머 감동이 왔다. 60, 7.. 2026. 9. 18.
나음터 7주년 기념 영성 특강: 여성, 영성, 공동체 창립자도,정해진 회칙도,너와 나를 가르는 단단한 울타리조차 없던느슨하지만 자발적인 여성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결혼한 이도, 비혼인 이도 있었습니다. 자기 집에 머물거나 함께 모여 살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침묵 속에 머무는 은수자의 삶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묶어준 단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분처럼 살아가고자 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수도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이 아닌 일상의 한복판에서, 저마다의 일을 이어가며 서로를 돌보고 그리스도를 따랐던 13세기 여성 공동체, ‘베긴(Beguine)’의 영성 특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오래된 영성을 오늘 우리의 삶으로 다시 불러내어 함께 살아가고픈 꿈을 담아, 연구소 창립 7주년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 강사 : 신소희 수녀(성심 수녀회 예수마음배.. 2026. 9. 15.
청원기도, 정직한 믿음의 기도 이 영원한 지금(the eternal now) 5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도 감사” 언제 불러도 은혜가 되는 찬양 가사입니다. 은혜가 된다고 해서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일들이 지나고 “그때 그 기도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어.” 하는 고백이 절로 나오는 것이 믿음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이 가사가 딱 들어맞습니다. 또는 거절된 기도로 인해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는 믿음의 찬양이 됩니다. 하지만 기도라는 것이 본래 들어주십사 하고 원하는 것을 청하는 것이니, 솔직히 응답하신 기도에 감사할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누가 거절당함을 기뻐하겠습니까... 2026. 9. 2.
별을 보며, 별을 따라 지리산이 아니고, 하동이 아니고, 평사리가 마음 깊이 들어왔다. 평사리를 선택한 박경리 선생의 글쓰기 인생, 여자의 일생이 내 마음의 별이 되었다.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들을 마음 속 노트에 쓰고, 2026년 8월 24일-27일의 사진을 걸어둔다. 그리고 나는 평사리 들판이 황금빛이 되는 어느 날, 꼭 다시 가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박경리 선생에 대해, 글쓰는 인생에 대해 차마 하지 못하는 말과 내 나름의 결심을 선생의 이 문장으로 마음에 심는다. 그 악은 형체가 없고 어떤 구체적인 인물 속에 내재하는 것도 아니어서, 미워할 수도, 저주할 수도, 그래서 속시원히 내뱉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악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나는 이 악을 누구에게 말할까. 그냥 안고 가야겠다. 2026.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