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황도는 말이지......

 

복숭아 먹다 세 번 중에 한 번은,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가 등장한다.

황도 통조림 있거든.

그거는 아플 때만 먹을 수 있었어.

아빠는 황도 백도 통조림을 너무 좋아했는데, 

그게 먹고 싶어서 아팠으면 좋겠다, 했어.

 

그래서 만들어봤다.

지인 집사님 찬스로 갑자기 복숭아 과수원 방문하게 되었다.  

싸게 한 보따리 사고도, 얻은 낙과가 더 큰 보따리.

한 시라도 빠르게 처치해주야 하는 시한부 복숭아들 골라 '옛날 황도 통조림' 만들었다.

맛도 모양도 성공적!

 

내겐 아직 청년 같은 남편이 애들에게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야"

할 때는 정말 옛날 사람 같더라.

복숭아 다듬는 엄마 아빠 사진을 찍던 현승이가

"배경만 바뀌면 노년의 부부 같애. 시골집 마당이나 이런 곳이면 딱인데!"

 

황도 통조림 만드는 옛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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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강물에 항시 떠다니는 말들이 있다. 오래되어 강물과 하나가 된 것이라 굳이 건져 올려 확인할 일은 없다. 마음의 강물과 하나이듯 내 존재와 딱 붙어버린 말이기도 하다. 합장合葬. 합장이 될 줄 알았다. 두 죽음이 한 무덤에 묻혀야 끝날 일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막연하게 그리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합장이 되고 나서야 내 이 두려움과 고통은 끝이 나리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얻은 일종의 지병 같은 '죽음 상상'은 또 다른 죽음이 와야 끝이 날 것이었다. 갑자기 맞은 아버지 죽음 끝에 늘 엄마의 죽음을 상상했다. 엄마의 귀가 시간이 늦을 때면, 엄마가 시골 외갓집에 가기 위해 며칠 집을 비울 때면 쉬지 않고 엄마 죽음을 상상했다. 죽음 상상은 살아갈 걱정과 짝을 이루며 왔다. 엄마의 죽음, 내 삶의 대책. 엄마마저 죽으면 우린 어떻게 하지?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그리고 동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나는 어떻게든 살겠는데 두 살 터울 동생이 걱정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동생의 덩치는 생전 아버지보다 더 커졌다. 예나 지금이나 내 몸은 초경량급인데, 그 동생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작은 어깨에 하나인 듯 두 개의 짐이 얹어져 있었다. 엄마의 죽음과 동생의 삶이다.

 

그 두 개의 짐보따리를 아울러 부를 이름은 '책임감'이다. 누가 지워준 짐이 아니다. “엄마한테 잘해라, 네가 잘해야 한다. 엄마와 동생 잘 돌봐라" 아버지 장례식 마치고 이런 얘길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끙차! 그 보따리 들어 어깨에 떠맨 사람은 나 자신이다. 심리치료와 영성 상담을 공부하고 일을 하며 많이 가벼워진 짐이다. 가녀린 어깨에는 과적 용량이었지만, 덕분에 잘 살아온 면도 있다. 나 자신 돌보는 것, 내 한 몸 책임지는 것은 절로 되었다. 허튼 도움을 기대하거나, 내가 감당할 부분을 떠넘기려 하지 않았다. 먼저 나를 추슬러야 엄마든 동생이든 돌볼 수 있으니, 내 한 몸 돌보는 것은 기본이어야 했다. 내 심리적 영적 성장의 여정은 동생과 엄마에 대한 '가장(家長) 의식'을 내려놓는 것과 맞물렸고, 그럭저럭 잘 놓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휴대폰 벨이 울리고 동생 이름이 뜨면 늘 조금씩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말을 들을지 모른다는 각오가 매번 새로웠다.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 드디어 그 말을 듣게 된 새벽, 결국 듣고야 말았던 그 말.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그 아픈 말은 상상 속 죽음의 공포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말이(어야한)다. 38년 전, 아버지를 앗아간 죽음이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날로부터 죽음을 짊어진 삶을 살았다. 합장의 때가 왔다. 더는 엄마까지 빼앗길지 몰라 두려워하고 대비하는 시간을 살지 않아도 된다. 지난 6개월, 어쩌다 시작한 애도의 글을 마음 가는 대로 써왔다. 6개월 간의 장례식이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다 아버지 생각이 났고, 아버지 없이 살아온 '고아의 나날'을 복기하며 새롭게 서러웠다. 과연 부모님을 함께 떠나보내는, 합장의 시간이었다.

 

기나긴 장례식을 끝내고 상복을 벗을 때가 되었다. 마음의 장롱에 늘 준비되어 있던 상복이었다. 언제든 꺼내입을 수 있도록, 자라는 내 몸에 맡게 수선하였다. (아, 나는 자라지도 못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그때의 키가 지금과 같다.) 1박 2일 가족장으로 치른 탓(덕분)에 40여 년 품고 있던 상복을 꺼내 입지 못하고 허망하게 엄마를 보냈다. 갑자기 닥친 아버지 죽음으로 내 인생은 온전히 엄마 장례식을 준비하는 삶이었는데 말이다. 잘할 수 있었는데...... 준비된 상주로서 의연하게 장례식 치러낼 수 있었는데. 두꺼운 초록 스웨터 위, 후줄근한 상복을 걸치고 "불쌍해서 어쩌냐"하는 시선을 받는 무력한 단발머리 아이가 아님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쓸모 없어진 상복을 치워버리기로 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엄마의 방, 엄마의 물건처럼 내 마음의 방에서 상복은 싹 치워버리겠다.

 

평생 가장 극복하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 없음'이었다. "아버지만 계셨다면 내 인생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자주 상상했던가. 상복을 치우고 죽음에의 과도한 공포를 거둬내고 돌아보는 내 인생, 극복하고 싶었던 그것이 결국 나를 형성하고 지켜냈다. 오지 않은 엄마의 죽음과 함께 늘 최악의 비극을 상상하며 대비하는 삶, 과도한 책임감으로 삶의 무게에 짖눌려 키도 자라지 않았군! 삶의 비극성은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이 생기면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절망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림받을 걱정이 앞섰다. 언제 어디서든 부조리한 것이 먼저 감지되는 까칠한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일기 쓰기를 시작했는데, 삶의 비극성에 머물러 어설픈 해석이라도 하고픈 몸부림이었다. 정말 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까칠한 존재였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책 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깜짝 놀랄 글을 읽었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은 결코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적어도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다. 과거와 미래에 연결되어 있는 깊은 시간 안에서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필요한 고통을 준비케 하고, 자신의 실패와 상실에 절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은 통과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공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보다 먼저 걸었고 우리보다 나중 걸어갈 거대한 인류 대장정에 합류하는 것이다.  

 

일찍이 만난 죽음이 내 인생을 이끌었다. 그렇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그리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에 심리적으로 방어하는 능력을 키우며 강해지기도 했다. 고통에 머무르고 실패와 상실에서 아주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갈등을 마주하며 견디는 힘도 일찍 죽음의 뒷모습을 마주한 덕이다. 조금씩 자유로워진 엄마와 동생에 대한 책임의식은  치료와 상담으로 만나는 이들에게로 옮겨갔다. 마음과 생각이 확장되며 더 많은 이들과의 치유적 연결이 생겨났다. 역시나 과도한 책임감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지만, 비극을 통과하며 얻은 책임감은 내게만 있는 보물이라고 자부한다. 고통과 상처는 나를 나답게 하는 존재의 무늬가 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나만의 무늬이다. 그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상처와 함께 그것이 만들 존재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 역시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으로 뜨인 눈이다. 고통과 비극은 인간 실존의 기본설정-그 극한은 죽음이다-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고통이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재난처럼 밀려든 아버지의 죽음이 삶을 뿌리째 흔들었고, 그때로부터 죽음은 늘 살아 있는 공포였다. 혐오하며 붙들고 있었고, 두려울수록 더욱 밀착되는 죽음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러했고, 죽음이 가져온 변화를 극복하며 나를 형성하고 자랐다. 쉰이 넘어 마주한 엄마의 죽음은 혐오 대신 생의 신비로 이끄는 문이 되고 있다. 엄마 떠나시고 쓰기 시작한 애도 일기는 다시금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을 있는대로 세우고 머무는 시간이었다. 글이 이끄는 길을 따르다 합장의 날에 이르렀다. 내 인생 치명적인 두 슬픔, 두 죽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죽음에 이끌린다. 저항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죽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비로소 든다. 이제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이 말이 알아들어진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 앞에 섰다 돌아오신 후에 쓴 글이다.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될 때, 우리는 심오한 기쁨으로 충만해지며 두려움 없이 죽음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죽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찍 죽고,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 죽습니다. 어떤 이들은 단명하고, 어떤 이들은 장수합니다. 어떤 이들은 병으로 죽고, 어떤 이들은 뜻밖의 사고로 갑자기 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죽으며, 똑같이 최후를 맞이합니다. 인간의 위대한 이 공통점을 놓고 볼 때, 우리가 어떻게 살고 죽는가 하는 숱한 차이점들은 우리를 더이상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차이점들은 친교의 느낌을 더 깊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 인류 가족간의 친교, 다시 말해 서로 소속되어 있다는 깊은 느낌은 죽음이라는 가시를 뽑아버리고, 우리에게 역사적 삶의 한계 너머 저 먼 곳을 가리켜 줍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결합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죽음과 애도 전문가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하여 쓴 『인생 수업』이란 책이 있다. 죽음 앞에 선 이들이 들려주는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 책의 지혜를 빌자면 죽음은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거듭 말하는 것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한다.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삶'인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신비 앞에서 상복이 필요 없을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죽음이다. 언젠가 마주할 나의 죽음을 가슴으로 안으려고 한다. 결국 다다를 비극 또는 신비인 나의 죽음을 부드럽게 사귀어 보겠다. 두려워 마주하지도 못하고 등 뒤에 지고 있던 죽음을 말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6개월 전 떠나신 엄마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이것 아닐까. 삶을 살아라, 네 삶을 살아라. 내 딸아, 이제 상복을 벗고 '현재라는 선물'을 살아라. 반드시 죽을 너의 운명을 기억하되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라! 

 

죽음으로 헤어진 엄마와 아버지는 나의 죽음을 통해서만 다시 만날 수 있다. 천국에 갈 이유가 절절하게 또렷하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요,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이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죽음이라는 신비의 문을 통과해 엄마 아버지 만날 때까지, 천국 가는 오늘을 천국의 시간으로 살리라.

 

탈상(脫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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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5일 

내적 여정 세미나 1단계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요즘 SNS 흔한 게 온라인 강의 포스터지만,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zoom 강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9월 5일은 '역사적'이란 진부한 표현이라도 갖다 붙여야 할 날이다. 지난 5월부터 zoom 강의를 경험하긴 했다. 언택트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연구소도 발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내적 여정만큼은 아니지 싶었다. 설령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내적 여정 세미나는 멈추는 게 맞지, 어떻게 화면으로 보며 마음을 나누겠냐고, 혼자 생각했다. 결국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말았다.  

 

2020년 5월 

미주 코스타가 온라인으로 개최된다는 소식과 강사로 초대하는 메일을 받았다. 연거푸 몇 번 거절했던 터라 죄송한 마음, 온라인이니 집에서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안도감으로 덜컥 수락하고 말았다. Kosta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 하더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강의는 미리 찍어 보내야 하고, 사전 홍보 책 소개 영상 숙제도 덤으로 받았다. 휴대폰으로 대충 찍으면 되려니 싶었는데 Kosta가 호락호락해야 말이지.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겠는 웹캠과 탁상 마이크 같은 걸 검색하고, 남편은 또 어디서 얻어오고. 새로운 주제의 강의 준비도 부담 백배인데, 새로운 강의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5월 한 달을 보냈다.  알고 보면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모른다" "모르는 영역이다" 이 의식으로 내가 얼마나 두려움에 휩싸이는지 알게 되었다. 

 

2020년 7월

Fear To Faith Now, 드디어 온라인 코스타가 열렸다. 아,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전향해야 하는 지금! 새벽 5시, 강의를 위해 ktx 타러 나가보긴 했지만 강의를 할 시간은 아니다. 고요한 거실, 노트북 앞에 홀로 앉아 코스타 세미나 강의라니.  모든 것이 새롭다. (『모든 것을 새롭게』! 헨리 나우웬 신부님 책 제목 잘 지으셨네요.) 두 번의 강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두 번째 강의를 마친 새벽, 멍하니 새벽산을 바라보며 감동을 머금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화상 강의로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되겠나, 마음의 소통이 일어나겠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만 빨리 끝내고 다리 뻗고 자는 게 목표다, 이것 뿐이었다. 30분도 되지 않는 질의응답 시간, 말로 글로 전해져 오는 질문과 반응에 마음 깊은 곳이 떨렸다. 상실, 애도, 고독, 영성. 3월 엄마 돌아가신 이후 붙들고 있던 것을 말로 꺼내놓을 때 어떻게 들려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도 경험과 상황이 다른 해외 유학생들에게 말이다. 적어도 내 안에 일어난 파장은 랜선을 타고 갔다 부딪쳐 다시 돌아온 메아리였는데,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아픔과 갈망이 다르지 않다는 것.

 

온라인 Kosta 덕에 COVID-19가 가져온 변화에 빨리 적응하게 되었다. 낯선 상황, 모르는 것에 대한 내 두려움이 낳는 완고함과 방어 또한 부끄럽도록 생생하게 마주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몸과 몸이 함께 하지 않는 만남'을 폄훼하며 과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주먹 불끈 쥐고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쟁이 노인네 같았다. 신비로운 인연이다. 최근 몇 년은 참석도 못했고, 예전 그 만남의 기억을 간직할 뿐 이제 멀어진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처음 참석했던 그때처럼, Kosta는 나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한 발 내디뎌 강사로서 다른 자리에 서도록 한다. 

 

2020년 8월

올 여름은 그렇게 서서히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8월에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연구소 식구들과 zoom으로 자주 만났다. 예정된 워크숍을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취소한 아쉬움에 zoom에서 모였다. 재미나게 모였다. 케이크를 준비한 생일 축하도 하고. 글쓰기 모임에선 글을 낭독하고 들으며 눈물 찍어내는 일이 잦았다. 랜선이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구나! 손가락만 하게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도 울고 웃으며 연결될 수 있구나. 랜선이 아니라, 우리들이 신비한 존재구나! 비록 몸으로 마주칠 수 없지만 영혼으로 이렇듯 연결되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로구나. 존재의 신비여!

 

2020년 9월

지도자과정 2학기도 온라인 강의가 되어야 했다. 정식 개강 전에 책 나눔으로, 가벼운 수다로 zoom모임을 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 '낯선 것에의 두려움' 뽀개기 시도였다. 어렵지 않게 2학기 개강 첫날 모임을 마쳤고. 6주 글쓰기 과정도 마쳤다. 이게 웬일인가! 고집쟁이 장로님처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했던 이유는 '몸'이었다. 몸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런데 zoom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프라인 모임보다 '몸'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비록 눈동자의 흔들림은 보이지 않지만(집단 여정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습기, 긴장은 빼도 박도 못하는 마음의 거울이다.) 몸이 그것을 대신한다. 화면으로 보이는 몸이 말보다, 글보다 크게 말한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연결과 소통의 신비란!

 

2020년 9월 6일

9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역사적인 첫 온라인 내적 여정 세미나를 진행했고. 9월 6일 주일 0시 30분. Kosta 간사 수양회 강의를 했다. 식구들 잠든 한밤중에 거실에 앉아 찬양 하고, 간증을 듣고, 강의를 했다. 주제는 '희망'. 이토록 희망 없는 시절에 희망을 말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 아닌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현실이 아프거나 막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희망은 말해져야 하고, 발굴되어야 한다. 없지만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요즘 내 영성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 선생님은 14세기 여성 신비가 노르위치의 줄리안인데,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를 살았던 영적 선배, 언니이다. 아침마다 아껴서 읽는 그의 저서로 영혼이 촉촉해진다. 14세기 살던 언니가 아침마다 내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All shall be well!" 잘 될 거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다. 단단한 내 고집이 부서지는 한, 그래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한 잘 될 것이다.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 있고, 사람이 있지만 어제의 내가 깨지는 한 이 어려운 세계와 사람이 내게 흘러들 틈이 생길 것이다. All shall be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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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iami59 2020.09.15 21:25 신고

    좋은 언니를 두셨네요.^^

 

 

하루 세 끼 집에서 먹는 나날이지만 스트레스는 크게 없다. 남편과는 정말 오랜 시간, 다 큰 아이들과는 최근에 더욱 가족의 일을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많이 얘기하고 싸우고 실행하고 있다. 먹고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데에 네 식구가 생각으로 행동으로 더욱 합의해가고 있다. 그래서 계속 집밥, 집밥, 집밥의 연속이지만 한결 여유가 생겼다.  

 

 

현승이가 갑자기 "나 오늘부터 4시 이후에 밥을 안 먹으려고. 살이 빠지면 볼살이 제일 먼저 빠진대. 볼살 빠지게 할 거야. 엄마, 나 4시부터 밥 안 먹어." 한다. 무슨 갑작스러운 다이어트 선언인지, 그리고 또 4시는 무슨 뜬금없는 시간인지, 뱃살도 아니고 볼살을 빼는 다이어트는 또 뭐라는 건지. "그래!" 하고 웃고 말았는데, 나름대로 진지하고 비장한 듯하다. "나 진짜야 엄마, 이따 안 먹어도 뭐라고 하지 마." 이런 말 하면 지키는 아인데, 진짜인가 보다.

 

 

정말 네가 다이어트를 한다면......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장을 보러 나가고 싶었다. 현승이가 진짜 좋아하는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해야겠다는 뜨거운 열망에 사로잡혔다. "현승아, 저녁 메뉴는 차돌박이 된장찌개야. 식사 시간은 6시." 현승인 농담인 줄 알지만 나는 진짜였다. 현승이가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은데, 그냥 얘를 약 올릴 수 있다면, 아무리 귀찮아도 장을 보러 나갈 수 있고, 요리를 할 수 있다! 정말 나는 그렇다. 너무 신난다.

 

 

집 앞 마트에 나가 싸구려 냉동 우삼겹을 사다 된장찌개 끓였다. 약 올리는 재미로 끓였다. 오직, 약 올리기 위해서. 마음을 꿰뚫는 현승이가 말했다. "엄마, 나를 유혹하려고 끓인 거 아니지? 그냥 정말 웃기려고 끓인 거지? 엄마 신났지? 진짜 7번! 진짜!" 물론 6시 넘어서 식탁에 앉아 된장찌개에 밥을 두 공기 먹은 현승이는 통통한 볼로 맛있다 히죽거렸고. 옆에 있던 덕분에 맛있는 된장찌개 횡재한 채윤이는 "어이구, 익살녀 익살녀! 익살녀 엄마!"

 

 

냉동 우삼겹이 한 줌 남아 있었다. 줌 강의 준비로 노트북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자기 방 교실'에서 수업하다 점심시간이라고 나왔다. 알아서 챙겨 먹는다며 냉동해둔 밥 꺼내고, 냉장고 문 열고 섰던 현승이가 "엄마, 삼빔면이라고 알아? 비빔면에다......" "아, 엄마가 맞혀볼게. 비빔면 위에 삼겹살 올려서 먹는 거 아냐?" "오, 맞아! PC방 인기 메뉸데 맛있어." "현승아, 지금 편의점 가서 비빔면 사와." 노트북 뚜껑 덮고 바로 일어났다. "엄마가 우빔면 해줄게. 어제 남은 우삼겹 있거든." 바로 현승이는 튀어 나갔다 사들고 온 비빔면을 끓이고, 나는 우삼겹에 허브 여러 종류를 뿌려서 구웠다. 뚝딱 신메뉴 출시.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온 고래밥

재미로 하고 맛으로 먹는 오늘의 요리들

 

 



나의 몸, 나의 기억,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온라인 우물가(Zoom)로 초대합니다.

발설의 치유력은 강합니다. 내가 쓴 글을 낭독할 때, 가장 먼저 내 귀가 듣습니다. 마주 앉은 여성들, 또 다른 ‘나’들이 판단하지 않는 태도로 들어줍니다. 발설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지만, 쓰고 읽고 나눠보면 알게 됩니다. 글로 흘러나온 은밀하고 사소한 나의 이야기가 의미가 됩니다. 나만의 의미가 되고 자유가 됩니다.

‘잠잠함’을 미덕으로 강요받은 교회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초월하는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나, 누구도 아닌 나를 쓰는 여정은 필연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분의 이야기에 닿을 것입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9월 22일(화) ~ 10월 27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6주간)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2QSxUrc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나는 쓰고 말하는 나다 :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하나님 어머니 만나기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필독서와 독후감 과제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필독서 :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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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이렇듯 꾸물꾸물한 날엔 덩달아 같이 꾸물거리자.

늦잠 자고 일어나 아침은 대충 넘기며 꾸물거리자.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큰 냄비에 멸치를 이따만큼 때려 넣고 육수를 내자.

국물 떡볶이를 만들자.

앗, 꾸물거리지 말자. 온라인 수업 중인 아이의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떡, 소시지, 곤약, 어묵, 양배추, 당면.

냉장고에 있는 한 줌씩 남은 모든 걸 털어 넣어서 끓이자.

양이 많아 담을 그릇이 없다면 대야에 담자.

대야 떡볶이를 먹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으면 세수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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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이거 마늘 까는 게 재밌는데. 더 까면 안 돼?"

"남은 마늘 내가 나중에 깔게."

"오늘은 이 마늘 다 까야겠다."

 

온라인 수업 중 쉬는 시간에 나와 마늘을 까는 아이. 기시감이 든다 싶었더니, 8년 전 엄마 마음에 들고자 파를 까던 아이였다. 제가 깐 마늘의 반은 제 입으로 들어간다. 마늘을 좋아하는 아이. 고기 반, 마늘 반 구워서 마늘을 더 맛있게 먹는 아이.

 

(클릭) -> 2012/10/25 [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 엄마와 함께 파 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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