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이모가 돌아가셨다. 막내 이모와 우리 엄마 아픔도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자유와 사랑으로 만나셨을까? 엄마 생신 사진마다 이모가 있다. 언니 생신이라고 시골에서 온갖 것을 다 바리바리 싸서 등에 지고 올라오셨었다. 김종필이란 이름 때문에, 아니 언니가 사랑하는 사위라서 남편을 참 좋아하고 예뻐하셨다. 우리 이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헤쳐온 인생, 우리 예수님께서 수고했다 애썼다 따뜻하게 안아주실 것이다.

 

장례식에 가서 사촌 언니들을 만났다. 큰 이모 큰딸 금순이 언니가 큰 이모와 똑같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어, 큰 이모 오신 줄 알았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언니들은 "야, 신실아. 너 이모랑 똑같다. 한산이모 오신 줄 알았다." 했다. 한 세대가 떠나시고, 떠나신 그 자리에 우리가 앉았다. "야야, 쟁배기(정수리)서 물 부스면(부으면) 발뒤꿈치로 떨어지는겨"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뜻이다. 엄마와 이모가 내게 흘려보내주신 사랑을 흘려보내는 어른으로 살라는 소리로 듣는다. 

 

이모,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곧 다시 만나요!

 
아프고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다. 2017년 10월 11일, 이 사진에 붙인  페이스북 글이다. 이 자매는 그 먼 서울역 아닌 가깝고도 가까운, 해처럼 빛나는 그 나라에서 만나셨을 것이다.  
 

"언니, 서울역이서 만나"

86세 이모가 93세 엄마에게 말했다. 사랑 깊은 자매가 그리움 가득 안고 서울역에서 만난다? 특별할 것 없는 설렘이겠으나 실현 불가, 환상 같은 일이다. 그래서 눈물 겹도록 황당하다. 93세 엄마는 타인의 도움 없이 현관 출입도 못하신다. 86세 이모는 그 연세에 건강하고 씩씩하여 엄마 생신 때마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충청도 공주에서 김포까지 찾아오셨었다. 등에는 콩, 고추 같은 선물 가득 짊어지고 말이다. 이제 그 이모의 기동력조차 쇠했다. 혼자 김포까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신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이모는 공주의 쓸쓸한 집 안방에서 전화로 안부를 묻고, 기도제목을 나누며 눈물짓는 일상이다.

엄마를 모시고 있는 동생이 '언니, 서울역이서 만나' 자매의 눈물겨운 통화 내용을 듣고 명절 끝에 93세 엄마를 모시고 공주에 다녀왔다. 허리 아파서 긴 시간 차 탈 수 없다는 엄마를 설득하고 설득하여 모시고 내려갔다. 마지막 만남이 아니겠냐며.

"느이 엄마는 나한티 언니가 아니라 엄마여. 언니라고 헐 수가 옶어" 이모는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엄마는 평생 신산한 삶을 사는 이모를 떠올릴 때마다 "너머 불쌍허다. 너머 불쌍 혀' 하며 눈물짓는다. 93세 이모와 86세 이모의 눈물 없는 만남은 이 땅이 아닌 천국, 그곳이 더 가까운 실재인가. 

 

 

 

충청도 이모의 김종필 사랑

​ 해마다 이맘때면 쌀 한 자루가 배송되어 온다.충청도에 사시는 이모가 보내주시는 것.엄마랑 이모, 자매간의 우애가 각별하다.우리 엄마 생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올라오셔서는 늘 그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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