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도회 강의하러 갔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 저 사람 누구야? 현수막 한 켠에 얼굴 이따 만하게 나온 저..... 저 사람. [원조 곤지암 소머리 국밥집] 간판의 한복 입은 사장님 얼굴 아니고. 헉! 웹포스터에 조그맣게 나온 강사소개 사진도 늘 조금씩 민망인데. 버스 다니고 사람 다니는 길에 현수막 사진이라니요.  본당에 들어가서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앞쪽에 더 큰 사진 들어간 현수막이 하나 더. (내 얼굴이니 부끄러움은 오롯이 내 몫인 것!)


어머니 기도회. 굳이 정해주신 제목이 ‘엄마가 기도할 때’인데, 그 다음을 강의로 채워야지요. 엄마가 기도하면 아이가 어떻게 될까요? 모의고사 점수 잘 나오고, 원하는 대학에 딱 붙고, 믿는 사람 만나서 얼른 결혼하고..... 이런 간증을 들려 드려야 할까요? 원래 제 강의제목은 [일상의 기도, 마음의 기도]입니다.


엄마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다’는 스캇 펙의 말을 마음으로 알아 듣게 되고, 걱정과 통제 본능으로 꽉찬, 빽빽한 마음의 숲에 여백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나, 나의 의지, 내가 베푼 사랑으로 빈틈 없는 마음에 아이가, 타자가 들어올 공간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내 앞에 있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볼 여유,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여유가 생기는 것 아닐까요. 이 비슷한 얘기를 나눕니다.


새학기 첫 어머니 기도회, ‘엄마가 기도할 때’에 담긴 절절한 기도제목과 소망과는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엄마들이 단지 내 아이의 세속적 성공만을 바리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더 높은, 더 깊은 갈망이 엄마들 마음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 갈망이 없다면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의 어머니 기도회들이 ‘엄마 정체성’ 그 너머 하나님 형상으로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깊은 욕구, 영적 목마름에 부응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고3 어머니들이 절절한 마음으로 앉아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이 모의고사 날이라는군요. 생각해 보니...... 아, 맞다! 나도 고3 엄마지! 저도 고3 엄마 입니다. 엄마가 기도할 때, 우리집 고3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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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아, 다 싸써~어. 어어엄마아, 다 싸따고오오.

똥 싸고 뒤처리 하는 것, 옷 입고 단추 잠그는 것, 요플레 뚜껑 따는 것.

제 손 두고 엄마 손 가져다 처리하던, 그럴 수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하여 흐릿한 기억이지만, 분명 그랬던 때가 있었지.

이제 두 아이 모두 엄마보다 키가 크고, 힘도 더 세고, 음 또..... 더 세련되고.... 에...... 그렇게 되었다.


# 딸


채윤아아, 이리 와. 저기 싱크대 2층에 접시 꺼내줘.

채윤아아, 이 병 좀 따봐. 와, 너 손 힘 쎄다!


그리고 가끔 코스트코 같은 대규모 장을 본 후에는 집 근처에서 전화를 한다. 

채윤아, 다 왔어. 내려와.

어마어마한 머리숱의 긴 머리 휘날리며, 백수 향기 또한 휘날리며 1층 현관에 대기해준다.

짐을 드는데 이건 뭐, 수박 한 통 번쩍번쩍 들고,

엄마 손의 짐까지 뺏어서 양손 가득 어마무시한 무게를 들고 3층까지 한달음이다.

우와, 우리 채윤이! 아들이야? 우와아아아아.

주님, 이렇게 힘쎈 딸. 과연 제가 낳았단 말입니까?



# 아들

토요일 아침. 설거지 담당 누나가 레슨 가고 없다.
세 식구 식사를 하고 났는데 책 들고 소파에 터억 앉으면서
설거지 내가 할게. 이거 조금만 읽고 내가 할게.
오아아아아. 고마워!
그리고 점심. 아빠도 나가고 엄마랑 둘이다.
떡볶이 맛있게 해서 먹고 그대로 앉아 스마트폰 보고 있는데
벌떡 일어나더니 제 그릇 가져다 싱크대에 놓고, 또 내 그릇까지 거둬가며 식탁을 정리한다.
엄마, 설거지 내가 할게.
야, 아침에도 니가 했잖아. 연달아서 설거지를 하다고? 진짜?
현승이 며느리야? 왜 혼자 일을 다 할려고?
아니, 앞으로 주말에는 내가 아예 설거지를 맡을게.
<82년생 김지영> 독후 뒤늦은 효과?



딸은 자라서 아들이 되었고, 아들은 커서 며느리가 되었다.
자랑입니다만......
참 좋군요. 똥 닦아주며 키운 보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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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말 알아?

무슨 뜻인지도 알아? 알지? 조심해.


(다음 날도)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이 말 알지? 무슨 뜻인지 정말 알지? 엄마가 잘해야 돼.

난 이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히히.


(며칠을 두고 한 번씩 이 레퍼토리를 반복함)



개학을 앞두고 방학 동안 물놀이 한 번 못한 아들 현승이와 데이트 하기로 했다.

맛있는 거 뭘 먹을까? 기분 좋게 내려갔는데 차 앞에 차가 있다.

빌라 주차장에선 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옆집 차니까.

심지어 어젯밤에 같은 시간에 들어와 누가 먼저 나가나 확인하고 주차한 것이니까. 

흠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다. 어? 설마.....

슬픈 예감의 엔딩은 틀리는 적이 없는 것이 원래 각본.

가..... 강남에 있는데요. 죄송해요. 어제 미리 얘기도 하셨는데.

하..... 할 수 없네요.

다행히 작은 차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옆차만 빼면 살짝 꺾어 나갈 수가 있다.

저..... 401혼데요. 402호 차가 앞에 있는데 차를 두고 나가셔서요. 혹시....

어..... 저는 출근해서 회산데요.

네..... 네.

아들과의 데이트는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폭염에 뚜벅이 데이트는 거부할 텐데.


엇, 옆동이긴 하지만 왼쪽 차를 빼도 가능하겠다. (작은 차 큰 기쁨!)

사무실 같은 걸로 쓰고 있는 옆동 1층 차인 것 같은데. 현관도 활짝 열려있다.

똑똑똑, 저.... 죄송한데요. 옆동인데요. 차를 빼야 하는데 다들 집에 안 계셔서요.

혹시 차를 좀 움직여주시면 제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죽으란 법이 없다. 이렇게 해결되어 아들과의 쾌적한 데이트 고고씽.


하려고 차에 딱 타서 기분 좋게 출발하려는데.

엄마, 엄마 왜 그렇게 잘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말해? 굽신굽신.

화가 잔뜩 난 표정이다. 영락없는 사춘기 표정.

엄마가 뭘? 그냥 친절하게 말한 거지. 너는 소리 지르고 쎄게 말하는 아줌마 싫어하잖아.

그런 게 아니잖아. 엄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네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냐고!!!!!!

차를 막아놓고 그냥 나간 옆집이 잘못이잖아.

그리고 차좀 빼달라고 하면 되지 왜 잘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해.

아, 진짜 그러네. 옆동인데 일하고 있는 아저씨한테 폐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니까....

아니다. 실은 굽신거리고 친절하고 약한 척하면 거절하리 못할까봐 그랬나봐.

정말 그러네. 엄마가 과하게 굽신거렸네.



과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었다. 그리고 생각하니 차를 막고 나간 옆집과 통화할 때 조차도 과하게 친절했다. 친절이 나빠서는 아니다. 친절한 말과 행동만큼 내 마음도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분노를 억누른 친절, 친절로 상대를 통제하여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의도. 이것은 친절하지 않음보다 더 악한 것이 될 수 있다. 속에서부터 엄청난 아하!가 올라왔다. 그렇구나. 내가 여전히 이러고 있구나. 내게 소박하나 절실한 기도제목과 목표가 있다면 '투명한 말'이다. 마음에 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기. 기며 기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기. 설령 그렇게 하는 것에 당장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아낼 수 있는 힘 말이다. 때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사랑일 수 있음을 얼마나 지난하게 배웠던가. 물론 말도 행동도 착하고 친절하면 좋겠지. 그러나 친절과 착함 그 자체가 아니라 몸에 밴 친절한 척, 착한 척으로 살고 싶지는 않은데. 너무 오랜 습관이다.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 은근한 자부심도 있었는데. 아들이라는 맑은 거울이 실상을 비춰주었다. 백설공주 계모의 거울 물렀거라. 우리집엔 고성능 요술 거울이 두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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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25 03:2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7.01.25 16:54 신고

      이렇게 흔적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언젠가 얼굴 마주하고 마음 나눌 시간이 있기를 기대할게요. ^^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이 한 마디로 개인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일거에 소멸되면 좋겠으나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걸 알지만 어쨌든 불편해. 그리고 반복되면 빡쳐.

이게 현실입니다.


<스타워즈:깨어난 포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어릴 적 봤던 <스타워즈> 시리즈를 찬찬히 리뷰하고 있는 채윤 현승 남매는 방학을 제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방학이구나! 싶은 것은 두 아이 투닥거림이 거의 매일 고정 프로그램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다툼의 원인은 그때 그때 다르지만 거의 둘 사이 '다름'이 원인입니다. 그 다름으로 인한 피차의 빡침은 단둘이 영화를 볼 때 극에 달하는데요.

 

엊그제 저녁에도 일일연속극 같은 고정 프로그램은 여전 돌아갔습니다. "쫌, 생각 쫌 하라고!" "아, 오바 쫌 하지말라고!" %*@#$$$%@@&*..... 대략 그러다 끝나지만 사흘에 한 번 정도는 중간에서 등이 터진 새우 엄마의 열폭으로 일이 커지곤 하구요. 막 열폭을 시작했는데 현관에선 띡띡띡띡.... 천진한 얼굴로 '홈 스위트 홈'에 입성한 아빠는 당황했고.... 그렇게 한바탕 집안을 휘젓는 폭풍이 지나갔습니다.


'다름'은 왜 이렇게 애나 어른이나, 집에서나 밖에서나 다루기 힘든 물건일까요?

말하자면 유치하지만 이런 겁니다.

 

영화의 디테일이 중요한 채윤이. 디테일에 집중하다 맥락을 놓치곤 합니다. 그리하여 가끔 질문을 하지요. 그러다보니 '어, 어떻게 된 거야?' 질문을 하기도 하고. 저 배우가 어디서 나왔더라? 저 배우 이름이 뭐였더라? 궁금해 견딜 수 없어서 당장 검색하고 싶기도 하고요. 한 번에 여러 가지 기능이 되는 멀티플 채윤이는 그렇습니다. 영화보다 아빠가 퇴근해 들어오면 '어, 아빠. 우리 지금 에피소드 6 보고 있어. 빨라 와서 같이 봐.

 

반면 현승이는 조용히 그냥 영화에 빠지고 싶은 겁니다. 순간 스쳐지나가는 대사와 장면들엔 뭔 뜻이 있겠지, 하며 나무보다 숲을 보는 것에 집중합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지는 이야기, 이것이 중요하지 저 배우가 어디서 나왔는지, 배우가 젊었을 때 어땠는지 따위는전혀 의미있는 정보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하고 있는 것을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정말 영화는 혼자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둘이 보는 것도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처음부터 보지도 않은 아빠를 갑자기 옆에 앉히다니요! 

 

이런 다름으로 인해서 '아놔, 진짜 누나랑 영화 안 봐!' '나는 너랑 볼 줄 알어?' 로 시작해서 늘 하던 방식으로 총을 쏘고 광선검을 휘두르며 싸우게 되는 것이지요. 폭풍이 지나고 얘기를 해보면 뿌리 깊은 서운함들이 있습니다. 가끔씩 아주 예민한 현승이 놈이 상대가 당황하도록 까칠하게 굴 때가 있는데 누나로서 아주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 부분은 엄마 아빠도 당해봐서 아는데 기분 더럽거든요. 누나는 오죽하겠어요) 자존심이 상한 누나는 오래된 상처로부터 나오는 '독기'를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실어서 현승일 깔아뭉갤 수 있지요.(A long time ago.... 남동생을 본 채윤이는 그간 독차지 하던 할아버지 사랑을 완전히 뺏기고 '너, 현승이 건들기만 해. 가만 안 둬' 서러움 좀 당했지요. 실은 할아버지보단 엄마가 더 상처를 줬.... ㅜㅜ) 키도 커서 위압적인 누나의 독설과 차거움에 다시 상처받는 현승. 그리고 더 큰 칼을 갈아서 찌르고, 포스를 써서 강한 광선검을 날리고....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라서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서로에 대한 피해의식이 만들어내는 유혈사태입니다.

성격과 마음에 관해 강의하고 상담하는 엄마도 사실 잘 중재하진 못합니다.

남매의 마음에 쌓인 억울함과 서러움은 엄마의 죄값이기도 하거든요. ㅠㅠㅠㅠ

현승이가 붙여준 별명처럼 JPSS, 즉 조폭신실일지라도,

열폭할 때 열폭하더라도

제 정신 돌아오면 아이들 마음 진심으로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더욱 진실하게 소통해야지 싶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를 마음으로 알아듣고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려면 보통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자라길 바라면서 엄마가 성장하고 변화되지 않을 방법이 없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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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14 00:1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1.15 02:23 신고

      해피 뉴 이얼~
      저도 새해 인사 드려요!
      이 블로그에서 토닥토닥 받으셨으니
      이제 마음에 있는 것들을 글로 내놓으세요!
      글로 맺는 열매가 풍성한 님의 2016 년이 되실 기도할게요. ^^

  2. 2016.01.14 00:14

    비밀댓글입니다

  3. 2016.01.17 22:17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1.15 02:21 신고

      왤케 올만이구 그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마음 열어 제대로 알아보고자 하면 새롭고 또 새로운 것 같아. 그 재미에 사나? 그 때문에 열받고?ㅎㅎㅎㅎ
      암튼, 다름은 어려운 물건이야.

 

 

 

엄마, 엄마는 현승이를 어떻게 키울 생각이야?

 

옹?

 

아니이, 현승이를 지금처럼 계속 이렇게 키울 거냐고?

 

왜애, 지금 잘 키우고 있잖아.

 

계속 저렇게 놀게만 하고 앞으로 영어 수학 학원 같은 거 안 보낼 거야? 엄마, 중학생이 되면 현승이도 공부를 해야 해. 너무 저렇게 놀리면 안 돼. 알고 있지?

 

 

(풉, 다른 사람도 아니고 놀짱 김채윤 선생께서 동생 공부를 논하시니 참으로 와닿는구나.)

 

하긴 자격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게, 작년 그러니까 중2 1학기 기말시험에서 놀짱 선생께서 일종의 득도를 하셨고 그 이후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엄마, 나는 시험이 뭐라는 걸 (중)2학년 1학기 때 알았어.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 그런데 엄마 왜 나한테 시험에 대해서 진작 가르쳐주지 않았어?"

 

시험이 무엇인지 깨닫고 난 후부터 시험기간 만큼은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다. 그런 자신에게 만족은 또 얼마나 하는지,

 

"엄마, 아우 나 너무 많은 지식을 쌓고 있는 것 같애. 나 시험공부 열심히 해서 너무 유식해지는 것 아냐?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여기에 역설법이 있는 것 알아? 아오, 나 너무 유식해"

 

그렇게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쌓아올린 지식의 탑은 시험 마지막 시간에 다 날아간다고 한다.

 

"엄마, 마지막 시간에 과학시험 답안지 체크 다 하고 펜 딱 내려놓는데 너무 좋았어. 이제 끝났구나. 이따 홍대 가서 놀 일만 남았구나. 하면서 휴~ 하고 한숨을 쉬는데.... 쉬는데.... 며칠 동안 공부한 것이 그 한숨과 함께 싸아~악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야."

 

*****

 

오연호 대표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우리는 결코 덴마크처럼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슬픈 확신이 굳건해질 뿐이다. 우리 사회가, 우리 학교가 과연 저렇듯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나는 내 삶에서 작은 실천을 하고, 연대하고, 깨어나는 시민의 힘을 믿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고.

시간이 걸릴 동안 우리 아이들의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쑥쑥 자라고 있으니 오늘 시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있다. 행복사회가 올 때까지 아이들의 행복을 유보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오늘 행복한 아이로 키운다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 번 용기를 내서 되는 일도 아니다. '과연 내 선택이 옳은가?' 자주 불안해진다. 아이들 친구 엄마들과 접촉하고 나면 더욱 그렇다.

오늘 행복한 아이가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다독인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히지는 말자, 좋은 대학을 가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중딩이어야 행복한 대딩, 직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갈수록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원대한 목표 같은 것들이 흐릿해진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두 아이의 오늘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대한민국에서 엄마하기를 버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꽤 힘든 중학시절을 보내고 있는 채윤이지만 아주 불행해 보이진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학과 성적이나 실기 성적, 친구 관계에서도 그다지 성공적이질 않아서 자주 위축되곤 하지만 그만큼 즐거워 하는 날도 많다. 시험성적이 아니라 시험공부 자체로 행복해지는 법도 알고 있는 중딩이다. 시험 끝나는 날 신나게 놀기 위해서는 시험을 망치면 안 된다며 수준급 쾌락주의자의 철학을 설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어 수학 점수, 대입에 목숨 걸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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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Y

뭘 어떻게 해달란 게 아니잖아.

그냥 너무 속상하다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엄마는 왜 자꾸 해결하려는 얘기만 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그 말대로 내가 바뀌지 않는다고 화내는 거잖아.

어쩔 수 없는 걸 아는데 그냥 속상하다고.

그냥 들어주면 안 돼?

그러면 딸이 엄마한테 짜증도 못 내? 엄마한테 내지. 누구한테 내?

이게 뭐가 많이 낸 거야?

그럼 결국 내가 잘못한 거네.

또 내가 잘못한 거야.

엄마는 잘못 없고.

 

* HS

누나, 그게 엄마 필살기야.

엄마는 말을 잘하잖아.

그래서 결국 우리가 잘못한 거로 만들어.

죄책감 유발하는데 선수야.

 

JP&SS가 무슨 뜻인 줄 알아?

'조폭신실'이야.

 

* SS

(두 아이 말이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꼬라지가 이래가지고

무슨 내적여정이며,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나 자신이 되어 엄마되기

강의를 한다고.

죄책감이 밀려오는 주말이다.)

 

아이들과 나.

서로 죄책감 몰아주기.

사진은 미모 몰아주기 셀카.

 

* 나는 이제 강의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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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우 2015.04.06 19:38

    감동주는 강의 하고 왔지?
    그러게. 삶은 아이러니라니깐...ㅋㅋ

    • BlogIcon larinari 2015.04.06 23:48 신고

      강의 시작하면 강사 페르소나 딱 꺼내서 쓰잖아.
      애들한테 소리 고래고래 지르던 조폭신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게 되지. 아.... 나는 누구이고, 여긴 또 어디인가.

  2. myjay 2015.04.13 23:33

    조폭신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BlogIcon larinari 2015.04.15 20:34 신고

      저도 실은...... 참 좋아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 본질을 정확히 묘사해 준 것 같은 네 음절.
      조폭신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는지 현승이가 울먹이며 그런 적이 있다. '엄마, 정말로 우리가 방학하면 엄마는 개학한 것처럼 싫어? 엄마가 그랬잖아. 애들이 방학하면 엄마는 개학이라고. 너무 싫어서 그러는 거야? 우리랑 함께 있는 게 그렇게 귀찮아?' 어설픈 손짓 발짓 다 동원해가며 아니, 너희가 싫다는 게 아니라 매일 밥하고 그러는 게 엄마들로서는 힘드니까 웃자고 하는 말이지, 하며 수습을 했었다. 그럼 귀찮지 안 귀찮겠냐! 이 시키들아.

 

둘이 다 개학하니 모처럼 거실의 아침 햇살이 게으름으로 늘어지지 않고 고요한 기품의 제 모양을 찾았다. 지난 방학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또 한 뼘 자랐구나. 아침을 먹고나면 기~이다란 중2 채윤이가 '엄마, 내가 설거지 할까?' 했다. 강의가 있어 저녁 시간 비우면서 먹을 것도 안 챙기고 나와 미안한 마음인데 '엄마, 걱정하지마. 내가 계란밥 해서 현승이랑 같이 먹을게. 김밥은 싫어. 우리가 알아서 할게' 그러더니 심지어 어느 날은 현승이가 '엄마, 나 밥하는 거 가르쳐줘. 이제 내가 6학년인데 밥도 할 수있어야지. 그래야 엄마 없을 때 밥을 해먹지' 그리하여 이번 방학에는 '지 밥그릇 지가 챙기는 아이들'로 부쩍 성장했다. 와!

 

채윤이의 변화가 재미있다. 방학의 채윤이는 다른 아이 같이 보였다. 예중에서 얼마나 경쟁에 찌들어 살았는지가 새삼 확인되는 아침 저녁이다. 축 늘어진 어깨와 신경질적인 말투가 사라졌고 감정기복 없는 예전의 그 채윤이이다. (개학한지 이틀 만에 다시 어깨쳐짐.ㅠㅠㅠㅠ) 중등부 찬양팀에서 고참이 되면서 졸업하는 언니들 챙기는 재미와 부담, 반주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연습하는 즐거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그러나 오래는 못 가는) 고민하기. 그러면서 때때로 교회나 스튜디오 가서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채윤이의 중2 겨울방학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오래 전 그날처럼 현승이와 레고놀이까지! 물론 놀다 싸우다, 육박전으로 뒹굴다.... 하다하다 안 되면 현승이를 놀리는 즉흥연주곡을 연주하기도. 참 보기가 좋았다. 우리 채윤이는 학교만 안 가면 채윤이 다워지는구나! 흠.......

 

'엄마, 오늘 학교 갔다 오면 집에 있어?' 강의가 있거나 약속이 있어서 없다고 하면, 특히 밤에 집에 없을 거라 하면 '어우, 왜~애!' 이렇게 나와야 정상인데. 오늘 아침에 현승이는 '아, 그렇구나. 그러면 저녁은 누나랑 둘이 먹어?' 한다. 아직도 말끔하게 씻기지 않은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때문인지 이렇게 쿨한 반응을 접하면 가슴이 쎄하다. 현관문을 나서는 현승이가 '엄마, 그러면 내일 아침에 봐. 나 그냥 자고 있을게' 하더니 문을 닫으며 '엄마, 하루 잘 보내' 하는 말에 설거지하다 눈물 날 뻔 했다. 현승이는 현승이답게, 채윤이는 채윤이답게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그런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방학이나 개학이, 학교가, 엄마인 나의 틀이 이 아이들의 자기다움을 옭아매지 않아야 할텐데. 아이들 없는 덕에 깨끗하고 조용해진 거실에 아이들을 위한 기도의 마음으로 가득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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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의피리 2015.02.04 13:09

    이 집의 아이들의 아빠는 어떤 분일까요?

    • BlogIcon larinari 2015.02.05 10:58 신고

      현승이가 오늘 아침 식탁에서 정답 하나를 말했음.

 

 

 

네 식구가 한 식탁에 마주앉는 기회가 점점 준다.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저녁, 일주일에 두 번 정도의 기회가 있다.

이번 주에는 주일도 월요일도 넷이 함께 하지 못했다.

네 식구 먹으려고 사 둔 두 마리 같은 한 마리의 닭이 냉장고 있었다.

 

월요일 저녁, 아빠는 없지만 '닭 한 마리'를 했다.

'닭 한 마리'는 갖은 양념 넣은 국물에 닭을 끓여서 소스와 부추를 곁들여 먹는,

흔한 우리집표 요리이다.

두 아이가 맛있다며 미친듯이 먹어댔다.

 

다음 날 아침. 어제의  그 국물에 밥을 말고 뼈를 발라낸 고기를 얹어 주었다.

엄마, 이건 뭐야?  어, 닭곰탕.

히야, 이걸 언제 했어? 정말 맛있다.

 

그날 저녁. 어제의 그 국물에 소면과 호박을 채썰어 넣어서 국수로 끓였다.

이건 또 뭐야? 음.... 닭국수.

엄마, 정말 맛있어. 와.....

 

오늘 아침. 어제의 국수 국물이 한 주걱 정도 남았었는데.

거기에 밥을 넣고 계란을 넣고 부추 다진 걸 섞어서 죽으로 만들었다.

어! 내가 좋아하는 거다. 하면서 또 맛있게 먹었다.

 

살림의 경제학이란 이런 것.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맛있게 먹던 현승이가 그런다

야, 닭 한 마리, 닭 곰탕, 닭 국수, 닭죽.

며칠 동안 이걸로 버틴다. 엄마. 아빠 수련회 가고 계속 이렇게 먹었어.

(뜨금,  너 알고 있었냐?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그래서 싫었어?

아니~이, 맛있었단 얘기야. 맛있었어. 엄마.

우힛!

 

 

* 사진은 닭 요리와는 상관없는 오니기리(주먹밥) 먹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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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17 11:1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12.17 19:00 신고

      주말에 연일 부담되는 강의가 있었어.
      월요일에 뻗었고.ㅎㅎㅎㅎ
      걱정되는 날엔 무조건 더 기도 쎄게 해줘야 함!
      우리 채윤이 위해서 기도해주고 있지?^^

  2. Emma 2014.12.17 17:08

    포스팅 올라오길 기다리고있었는데 이런 귀여운 내용일줄이야 ㅎㅎ 알아도 맛있게 먹어주니 넘 귀엽네요 꺄아

    • BlogIcon larinari 2014.12.17 19:02 신고

      기다려주는 분이 계시군요! 감사해요.^^
      심지어 오늘 저녁에도 그걸 찾더라구요.
      엄마, 그 국물 안 남았어?
      질릴말도 한데 말예요.ㅎㅎㅎ


일곱 살이 안 된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좋은 때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아이들 떼놓고 달랑 부부끼리 데이트 하는 우리가 그들의 로망일테지만. 아이들 어릴 적에 여행다녔던 기억이 벌써부터 그립다. 여행지도 여행지지만 오가는 자동차 안의 추억은 방울방울이다. 끝도 없이 부르던 노래, 알쏭달쏭 퀴즈, 그러다 고꾸라져 잠든 녀석들. 녀석들이 잠들면 앞좌석 그제야 어른 모드로 대화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이 꿀 같았던. 넷이서 기분좋게 여행가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 일단 채윤이가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 설령 가더라도 모든 게 심드렁. 걷지도 말고, 구경도 말고, 폰으로 음악이나 듣다 뒷자석에서 쳐자는 게 최고라는 태도에 엄마 아빠는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했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아쉬웠지만 놓아주기로 했었다. 그래, 이제 떠나라. 그래서 지난 여름, 작년 여름 휴가도 가지 않았다. 가더라도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소박한 목표였었다. 왠일인지 얼마 전부터 두 녀석 다 어디 여행 가고 싶다고 노래를 하더니 휴일에 속초에 가잔다. 채윤이는 어디가 됐든 가족과 함께 가고 싶단다. 현승이는 회가 너무 너무 너무 먹고 싶단다.  그래서 한글날 아침 6시 30분 기상, 속초로 출발했다. 일정은 오직 하나. 바다 보고, 회 먹고. 어머, 이 녀석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착했다. 물론 위기는 여러 번 있었다. 설악산을 굳이 걸어야 하겠냐고, 그냥 차로 한 바퀴 돌고 나가면 안 되겠냐고. 또는 차에서 듣는 음악의 취향 같은 것들도 살짝 충돌이 있었으나 전과 다른 느낌이다. 채윤이 얼굴에서 개그가 읽혀진 적이 언제던가. 저런 사진을 본 적이 언제던가.



어쩌면 얘, 현승이가 위험한 애다. 사춘기 끝물 채윤이보다 슬슬 사춘기가 오고 있는 현승이. 그래도 엄마 아빠랑 세대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 다행이다. 오가는 차 안에서 현승이 DJ 주도로 함께 듣는 노래가 이문세, 김광석, 이선희, 이적이었으니. 히든싱어나 슈스케 같은 것이 세대와 세대를 음악으로 이어주고 있다는데 현승이는 유난하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아이돌 노래가 싫고 엄마 아빠들 시대 노래가 좋아? 나 병 걸린 거 아냐? 노인병. 나 노인병인가봐" 노인병 걸린 현승이와 노인이 되어가는 엄마 아빠의 음악이 싫은 채윤이는 이어폰 꽂고 혼자만의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확실히 채윤이의 몸과 마음이 다시 엄마 아빠에게 가까워졌다. 풍경을 바라보며 즐길 줄도 알고, 심지어 가족이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좋단다. 아빠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뭣이냐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질투가 나진 않고, 약간은 부럽다. 저들의 기럭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회 접시를 앞에 놓고 행복에 겨운 인증샷을 찍으려 했건만 가장 많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현승이는 뿔이 났다. 지금이 먹을 때지, 사진 찍을 때냐는 것. 그래서 마지못해 찍다가 결국 찰칵과 동시에 앵들 밖으로 도망간 현승이, 애매하게 짤린 채윤이. 둘 다 버리고 회와 부부만.  




이유식 할 때부터 웬만하면 뱉는 게 일상이었던 배트맨 현승이가 회를 무지하게 먹어댔다. 그리고 마지막은 매운탕. 매운탕이 나오자 우리 모두 김수영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푹 끓여야 돼. 한참 끓여' 하시는 아버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매운탕을 참 좋아하셨다. 그리고 매운탕의 생선 대가리를 가져다가 '이게 제일 맛있는 거다' 하시며 살뜰하게 발라드셨다. 회를 먹고 매운탕이 나올 즈음에는 소주병이 거의 비어가는 기분이 딱 좋아지시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말씀도 많아지셔서 분위기가 무르익었었나보다. 할아버지와의 그 좋았던 기억이 보글보글 매운탕 남비에 끓고 있었던 것. 점점 아버님을 닮아가는 남편은 회를 먹을 때도 세 식구 먹으라고 안단테로 젓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생선 대가리를 턱 갖다놓고 발라 먹는다. 

 

 


다시 먼 길 운전해야 하는 아빠는 잠시 차에서 눈을 붙이고 셋이서 바다를 즐기기로 한다. 현승인 벌써부터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제꼈고, '야, 나중에 어떻게 할려고?' 하면서 눈살을 찌푸리던 채윤이도 어느 새 벗어 제꼈다. 한참을 놀고 나서 엄마가 커피 마시고 난 종이컵으로 바닷물 떠다 발 씻겨 주기. 세족식을 한다. 바로 깔아서 만들어 본 스냅무비 처녀작이다.   




아이들 어렸을 적 그 유쾌하고 알콩달콩 재미나던 가족여행은 끝났구나, 싶었는데. 아, 그게 끝나긴 끝난 것 같다. 하지만 같이 여행도 다니지도 않을 것 같았던 채윤이가 다시 돌아와주니  모든 게 완전 끝은 아니구나. 하루가 다른 현승이가 또 사춘기를 맞아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놓아주면 다시 돌아올 날이 있겠구나. 채윤이 말마따나 가족들이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좋다는 걸, 나도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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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있어 대전에 내려가는중이다.
잠탱이 현승이는 어제 밤부터
'엄마가 일어나서 화장하면 난 그 소리에 깰 수 있어. 엄마 얼굴 볼 거야' 했다.
잠탱이 현승이가 정말 6시부터 일어나서 안아주고 안녕을 해줬다.

집을 나선지 10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엄마, USB 놓고간 거 아냐? 아~ 회색 아니야? 알았어. 잘 갔다 와?"

기차 탔는데 또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 오늘 아침 회의 있어? 같이 아침 먹을 수 있어? 아~ 그래. 기차 안이야? 알았어. 안녕"

계속 전화하는 이유를 안다.
현관 앞에서 인사하곤 '엄마 가니까 싫다' 했다.
저녁이면 보는데 뭘 이렇게 유난을 떠냐? 엄마 중독자!
라는 건 어른 생각이다.

나도 어릴 적, 엄마 아버지 같이 심방 가고 집에 동생이랑 둘이 있는 게 참 싫었다.
엄마가 집에 있어야 좋았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아이에게.

금방 된통 혼나고 현관을 나가서는 현관 앞에서 넘어져서 아프다 울며 뛰어 들어와 엄마 품에 안기던 채윤이. 초등 1학년 적 그 일을 나는 잊지 못한다. 방금 전 고통의 근원이었던 엄마가 세상 밖 고통과 맞닥뜨렸을 때 바로 뛰어들 품이 되는 것.
내가 엄마라니!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니!

아이들에게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아이의 맘으로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가장 두려울 때, 외로울 때 부르는 이름이 엄마, 엄마이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그다지 위대한 존재가 못 된다.
위험에서, 위험 앞의 두려움에서, 외로움에서 아이를 도와 건져낼 힘이나 능력이 없는 존재다.
그래도 아이들은 가장 위급한 상황에선 엄마, 엄마 부른다.

엄마 중독자 현승이의 전화가 왜 이리 미안하고 아픈지 모르겠다.
아이의 영정을 품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밤을 지새운 단원의 엄마들 생각이 자꾸 난다.
이 엄마들 가슴에 울리는 아이의 '엄마, 엄마' 뼈에 사무치는 고통일텐데......
아, 나는 그 고통을 상상할 수도 없다.

엄마 껌딱지 현승이의 '엄마' 소리에 눈물이 난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자꾸 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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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3 08:0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5.14 18:07 신고

      딸의 마음으로 엄마를 불러도,
      엄마의 마음으로 '엄마' 소리를 들어도
      슬픔이 가득한 행복한 말인 것 같아요.

  2. BlogIcon 2014.05.14 15:40

    저도 왠지 모르게 눈이 뜨거워 져요...오늘 아파서 회사 못갔더니 엄마가 오셔서 밥도 해주시고 주방 정리두 해주셨는데 옛날같으면 당연히 여겼을 전데 ㅋ 감사하다고 안아드렸어요. 난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자신도 없고.. 아 홀몬 탓인가 댓글쓰면서도 괜히 눈물나요^^;;

    • BlogIcon larinari 2014.05.14 18:09 신고

      너 약간 홀몬 탓인 것 같어.ㅎㅎㅎ
      아프구나. 어디가 아픈겨?
      아까 전에 귀 간지럽지 않았어?
      니 얘기 했는데.....
      갈수록 넌 '엄마'란 말이 무겁고 아프게 다가올 일만 남았어.
      아, 물론 그런 만큼 깊은 감동이 있지!

 


새 학기라며 새 운동화 신고 룰루랄라 등교한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고생이 많다며 가끔 내 등 토닥여주는 남편님도 모를 것이오.

1,2월 긴긴 방학동안 엄마가(아내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는 걸.
내복 한 벌 쫙 빼입고 거실 바닥을 뒹굴며 주기적으로다가
"엄마, 심심해. 나 뭐해?" 이럴 때
소금통이나 간장병을 통째로 부어주고 싶었던 그 짜디짠 심정.

방금 점심 설겆이 끝냈는데
"엄마, 저녁에 우리 뭐 먹어?"
하악! 엄마는 밥 주는 기계가 아니야.

엄마, 엄마~아, 엄마? 엄마를 부르는 산울림 소리, 엄마를 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


 

개학이다! 해방이다! 엄마들의 개학파티다! 에헤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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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재워놓고 시간을 쪼개 쓰는 엄마처럼 살금살금 아침 시간을 보냈습니다.
녀석들 늦잠을 만끽하는 사이 행여 깰세라 소리 없이 커피 내려 마시면서 꿀독서 시간 누려~
12시간 잤다면서 머리에 새집 짓고 앉아서 늦은 아침으로 떡국을 맛있게나 먹었습니다.


렛잇고, 렛잇고~
요즘 틈만 나면 거실을 꽉꽉 채우는 겨울 왕국 OST에 길을 걷다가도 환정이 들릴 지경.
식사를 하면서도 영화 남매가 영화 토크로 시간 가는 줄 모르더니.
둘이 방에 가서 누나는 피아노 치고 동생은 바이올린 들고
연주 삼매경이었습니다.
듣기만 하면 거의 똑같이 쳐내는 누나가 반주해주고 어설픈 음악가 현승이는 가끔 삑사리 내가면서 멜로디를 이어갑니다.
두유 원나 빌...삑~   스노우맨......


오래 전, 두 녀석이 거실에 온갖 베개, 우산, 쟁반, 모자.... 다 꺼내놓고 상상놀이 하던 그 화기애애하던 느낌이 살아왔습니다. (오랜만에 귀엽군요.)  
설거지 하며 창 밖을 보니 눈이 간지럽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둘이 저렇게 잘 놀고 있으니 나는 혼자 동네 카페에 나가서 독서 누릴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엄마 나갔다 올게. 하면 분위기 다 깨지는 것을 압니다.
희한하게도 놀고 쉬는데 엄마라는 존재가 한 개도 필요없음에도 엄마가 없으면 놀이가 안 되는 느낌, 그거 나도 어릴 적이 있어봐서 압니다.
일을 하든지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든지, 그러다 가끔씩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해대도
엄마가 있어야 휴일의 느긋함과 풍성함이 만땅으로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쳐 카페가서 된장질 누리는 것 포기하고
렛잇고~ 렛잇고~ 깨갱 깨갱..........
이 시끄러운 평화를 지켜주기로 했습니다.


여름 뜨거운 해변을 누리는 귀여운 눈사람 울라프처럼,
기분 좋은 모순이 우리 집에도 충만합니다.
따뜻한 겨울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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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마치고 혼자 시간을 좀 가지고 싶어 동네 카페에 갔다. 우유 먹고 기저귀 차는 아이들도 아닌데 방학이라 내내 붙어 있는 시간이 참 힘겹다. 내가 책 보고 싶으면 보고 글 쓰고 싶으면 쓰면 될만큼 아이들이 컸는데도 말이다. 읽고 있는 책 진도를 좀 뺄 겸, 틈새 자유를 맛볼 겸 카페를 찾은 것이다. 얼마 안 돼 현승이에게 어디냐는 문자가 왔다. 어디라고 했고, 오지 말라고 했다. 30분이 안 되어 카페 문을 열고 나타났다. 으이그,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블루 레모네이드를 시켜주니 이가 퍼레지도록 마시다 대뜸 질문을 했다.


♥♥
엄마, 엄마는 현실로 돌아가는 게 어때? 현실로 돌아가는 게 좋아? (이게 무슨 소린고?) 무슨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이런 데 카페에 있다가 이제 현실로 돌아가잖아. 엄마가 현실로 돌아가면 밥도 하고 일해야 하잖아. 그런 거. 돌아가고 싶어? 엄마는 돌아가고 싶은 것 같아. 나는 아닌데.... (내가 돌아가고 싶겠냐?) 일상, 말하는 거지? 엄마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걸로 보여? 그런 것에 적응이 빠른 것으로 보이는 게 아니고? 맞다! 엄마는 그런 적응이 빠른 것 같아. 나는 적응이 빠르지도 않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예를 들어, 런닝맨에 완전히 빠져서 보고 난 다음에 현실로 돌아오기가 싫고 좀 기분이 이상해. 덕소(할머니 댁)가 좋은 이유는 계속 티브이를 보면서 현실로 빨리 돌아오지 않으니까 좋은 것 같애.


♥♥♥
주일 예배를 마치며 부르는 찬송이 575장 '나 맡은 본분은'이다. 일주일 중 내 마음의 옷깃을 가장 경건하게 여미는 시간이 주일 예배이다. 예배를 마치며 부르는 이 찬송의 2절 가사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 하리'는 마음이 찌릿하여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부분이다. '내 형제'에서 두 아이 채윤이와 현승이를 생각한다. 다음 한 주간 두 아이에게 마음으로부터 정성을 다 하는 것, 존중하고, 자유롭게 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30분 일찍 가서 본당을 사수하는 정성과 마음가짐으로 일상에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으면 내 인생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리가 너무 커서 이 부분을 찬송할 때마다 목이 멘다.


♥♥♥♥
큰 아이든 작은 아이든 엄마로 살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라고 하는 분들 존경한다.(라고 쓰고 뻥 치시네 라고 읽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악질 엄마는 아니다. 나름대로 끼니도 챙기고 같이 놀기도 하고 공부도 봐주고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나는 안다. 아이들과 있는 내 모습이 내 본질과 가장 가깝다는 것을. 예배드릴 때는 물로이고 강의를 마치고 상담을 요청하는 청년들에게 나 참 친절하다. 제자들이 찾아와 만날 때, 통화할 때도 물론 유쾌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하다못해 거리에서 길을 묻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답하고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떠올릴 때 진정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나름대로 괜찮은 인간의 페르소나를 구가한다.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엄마 페르소나일 때는 상황이 다르다. 원초적 신경질과 짜증과 악담이 저절로 나온다. 이게 내 본질에 가깝다. 내게 진짜 약자는 밀양의 어르신들이 아니라 채윤이와 현승이다. 난 이 아이들 앞에서 어떤 폭력도 행사할 수 있고, 행사하고 있다.


♥♥♥♥
예배 시간의 나도 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앞에서 분노 폭발하는 나도 나다. (우리 아이들 수수께끼 놀이 중 하나, '중성자 폭탄보다 더 무서워서 터지면 지구가 폭발하는 폭탄은?' 정답은 물론.....ㅜㅜㅜㅜㅜ) 이쪽의 나에서 저쪽 나까지 머나먼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 소명이고 성숙이고 자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멀었다. 인정하고 기도하며 애쓰는 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지는 않겠지만 몇 년 후에는 아주 조금이라도 좁혀질 거라 믿는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상담을 하며 받는 찬사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이상 내 평균점수가 어딘지 잊지 않을 것이다.


♥♥♥♥
블루 레모네이드를 다 마신 현승이는 '엄마, 나 여기 있을까? 아니면 먼저 갈 테니까 혼자 책 더 보고 올래?' 한다. 그리고 홀연히 나갔다. 잠시 엄마에게 런닝맨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시간을 주겠다는 마음이다. 마음에 고인 찬송가 가사를 다시 되뇐다.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 하리' 런닝맨을 보거나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는 카페도 아닌 현실에서 이 가사를 살기란 참으로 어렵겠지만..... 한 줄기 빛은 비치고 있다. 방학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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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밭 2014.01.19 22:48

    '나 맡은 본분은' 이 가사 보자마자 노래를 해요,제가.그리고 적어두신 2절 가사로 끝까지 불렀어요. 20년도 더 저쪽의 세월인데 어찌 이 '여섯 글자'만으로 기억이 날까요. 이건 아마 기억이라기보다는 아마 제 호흡이고 피였던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대학 입학 기념으로 받은 30년 된 찬송가 찾아서 4절까지 천천히 천천히 불렀어요.이런 기도가 절로 나와요 하느님 당신을 이리 오래도록 사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1.19 23:34 신고

      20년을 넘나드는 대밭님의 세월과 이야기를 다 알 수 없지만
      짧은 글에서 님의 찬송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마지막의 기도 역시 마음에 긴 여운의 울림을 남기네요.
      못된 엄마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끄적인 가벼운 글에 세월의 향기로 공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아우 2014.01.20 22:22

    공감 터지는 글!
    홀연히 나가 주시는 현승이가 어른이나 다름없구...^^
    자, 막바지 힘을 내보자 언니, 일주일이야 ㅋㅋㅋ

  3. BlogIcon larinari 2014.01.21 00:02 신고

    이런 불량엄마를 발견했으면 부모교육 강사님스로서 따끔하게 한 말씀 하셔야지.
    아니, 어머님! 고상하지 못하게스리 아이들 앞에서 감정조절도 못 하시고 분노폭발이라뇨!!!
    ㅎㅎㅎㅎㅎㅎ
    그러나 이런 불량한 글에 공감포텐 터지는 그대는!
    제대로 뭘 아는 진짜 강사님. ^^

    • 아우 2014.01.21 23:22

      쉿! 내가 부모교육강사인걸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고라~~~ 나, 마이크 꺾는다고라~~~

    • BlogIcon larinari 2014.01.21 23:56 신고

      왜 이래~
      내가 아는 최고의 부모교육 강사고만!
      카스에 몇 만 번 공유됐다는 모 교수의 자녀양육 원칙 글보다
      불량 엄마이자 강사인 그대의 강의가 더 좋다고 믿음. 나는 그러함.

  4. BlogIcon @amie 2014.01.21 12:54 신고

    아 좋다.

    • BlogIcon larinari 2014.01.21 23:43 신고

      불량한 매력 쩌는 엄마 등장이닷!
      (올 여름에 시카고에서 보자.)

  5. BlogIcon 털보 2014.01.22 00:40

    애를 바다건너 보내놓고 한 3년 못봐봐야 정신차리실 거유? ㅋㅋ

 


현승이는 오늘 굳이 을왕리 해수욕장에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돕니다.
현승이가 엄마 옆으로 다가와 심각하게 말합니다.
엄마, 엄마가 전부터 내게 물었었지? 어느 별에서 왔냐고.
실은..... 엄마한테 전부 말할 때가 되었어.
엄마, 크립톤 행성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어.
맞아, 수퍼맨도 거기 출신이지. 나랑 고향이 같아.
나 그 행성의 왕자야.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도대체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먼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벌건 빛 같은 것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채윤이 역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몇 걸음 떨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남편은.... 음...... 화장실 가고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정신실이 정신을 失할 지경이 되었는데
붉은 빛은 점점 더 우리에게 가까이 왔고 현승이를 향해서 빛으로 된 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보다 내 아들 현승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 다른 행성의 왕자라뇨!

이 무슨 또라이 같은 소리란 말입니까.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다고 우겨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현승이 얼굴엔 알 수 없는 빛이 나기 시작하고 전혀 낯선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짧은 인사를 남기는 둥 마는 둥
현승인 냉정하게 뒤돌아 빛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붉은 비행접시 같은 것이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떠나는 아이를 잡을 수도 없습니다.
현승아, 현승아 소리쳐 부르고 싶어도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채윤이 역시 얼굴이 달라져 있습니다.
엄마, 고민 많이 했는데... 나도 돌아가야겠어.
응, 나도 크립톤에서 왔어. 현승이와 달리 나는 지구별이 마음에 들었어.
같이 이곳으로 온 아이들 중에서 적응도 제일 잘 했고.....
다만 나는 지구별의 말이 좀 어려웠어.
그래서 매란국쭉의 쭉이 철쭉이라거나, 어안이 벙벙한 니트라는 식으로 엄마를 당황시킬 수 밖에 없었어. 그래도 나는 남기로 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지구별의 교육은 너무 아이들에게 잔인하고 피.날.리.는 교육이야.
(마지막까지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피말리는 보다 피날리는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긴 한다)

크립톤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마,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작별인사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뒷모습을 향해
저는 커다란 하트를 띄웠습니다. 안녕, 얘들아. 고마웠어.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 별로 떠났고 화장실 갔던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저는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전했습니다.
남편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진짜야? 그러면 우리 둘만 남은 거야? 앗싸~아!
이제 정신실은 내가 독차지다.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떠날 녀석들 빨리 떠나보내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에라 모르겠다, 같이 춤을 추었습니다.

에하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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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ami 2014.01.14 09:32

    이런 걸 쌩쑈라고 해야 되나요?ㅋㅋ
    이제 판타스틱 문학에도 입문하시나 보다 하다가
    결국 빵~ 터졌습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1.14 22:34 신고

      어제 이걸 쓰면서요.
      놀고 있네, 자~알 논다.
      등의 말이 입에서 맴돌맴돌 했어요.
      혼자 키득거리면서요.
      뭔가 더 적절한 말이 있겠다 싶었는데
      쌩쑈, 좋아요. ㅋㅋㅋㅋㅋ

  2. mary 2014.01.14 10:28

    저기, 쌩쑈 운운하시는 분,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사진 증말 예술이다, 다~~. 마지막 사진 압권. 포즈가 어디서 많이 본건데 확실히 날렵하군.
    한편의 그림자 연극 보는 듯 했다우. 그래, 애들 크립톤 행성으로 보내고 깨볶고 계심?
    을왕리가 어드메 있는거야.
    석양이 이리 화려한걸 보니 서해인거 확실한데 나두 가서 이야기 하나 건져보고 싶네.

    • BlogIcon larinari 2014.01.14 22:36 신고

      그쪽 살 때 두물머리 가 듯 가깜 가는 곳인데요.
      인천공항 근처 같아요.
      순수하게 조개구이 먹으러 간 건데....
      딱 일몰 순간이어서 대박 사진 많이 건졌어요.
      맘 먹고 함 오시면 시간 딱 맞춰서 뫼시고 가겠쉼미다.

  3. 아우 2014.01.14 10:44

    아침부터 나에게 빵! 웃음을 주시는 신실언니님, 내가 사랑 안 할 수가 없다니깐. 으흐흑~

    • BlogIcon larinari 2014.01.14 22:38 신고

      나, 매일 매일 볼 때마다 빵빵 터뜨려 줄 거야.
      아우 안에 잠재된 모든 개그본능을 다 일깨울 거야.

  4. 지언 2014.01.14 10:51

    이모!!ㅋㅋㅋㅋㅋ 저 지언인데요 판타지 소설 너무 재밌었어요! 출판사에 연락해 보세요. 혹시 동화책이라도 한권 나올지?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현승아, 채윤이 누나 빠빠이!!

    • BlogIcon larinari 2014.01.14 22:40 신고

      어멋, 지언아!
      언어의 연금술사 지언이가 인정해주니 진짜로 판타지 소설에 도전하고 싶어지는구나. 열심히 써서 조앤롤링에게 도전장을 한 번 내보까?
      ㅎㅎㅎㅎㅎ

  5. 아우 2014.01.14 11:02

    아, 글고 다 좋은데, 남편이 꼭 '화장실'을 가야했어? 좀 다른데 갔던걸루 하면 완성도가 높아질듯 ㅋㅋㅋㅋㅋㅋㅋㅋ

    • BlogIcon larinari 2014.01.14 22:44 신고

      쟝르가 코믹 판타지거든.ㅋㅋㅋ

      그리고 우리 남편은 태생이 진지남이라 내가 자꾸 망가뜨려 줘야해.
      내 소명이거든. 이제 와 생각해보면 결혼 서약문을 이렇게 썼어야 했어.
      '익살녀 정신실은
      함께 선 진지남 김종필을
      건강할 때나 병 들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망가뜨리고 또 망가뜨리겠노라도
      하나님 앞과 하객 앞에서 서약합니다.'
      ㅎㅎㅎㅎㅎ

  6. BlogIcon 뮨진짱 2014.01.14 17:35 신고

    아ㅋㅋㅋㅋㅋㅋ 빵ㅋㅋㅋㅋㅋㅋ
    러블리 챈♥

    • BlogIcon larinari 2014.01.14 22:45 신고

      피.날.리.는은 전날 밤의 실화였음.
      판타지 속 실화임.ㅋㅋㅋㅋㅋㅋㅋㅋ

  7. 병고빠 2014.01.14 23:18

    채윤이는 우리가 쫌만 더 노력하면 잡을 수 있었는데 ㅠㅠ
    깨볶는 부부를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소녀 전사였는데 ㅠㅠ
    얘들아 잘가 삼촌이 지구를 좀만 더 지키고 귀환할께 @.@

    • BlogIcon larinari 2014.01.15 00:06 신고

      꺅, 이 분은!^^

      방금 크립톤에 간 채윤이한테서 카톡이 왔는데요.
      삼촌께서는 지구별 사람들이 크로노스의 삶으로부터 회심하여 카이로스를 살도록 하는 사명을 완수하시기 전까지는 귀환 불가랍니다.
      아울러 채윤이가 웬만하면 남아 있으려 했는데 피날리는 지구별 대한민국 교육에의 환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요.
      엄마 아빠는 깨 대신 서로를 들들 볶기도 하니까 너무 염려 마시라고 전해달라네요. ㅋㅋㅋ

 

 

채윤이는 중학생,
채윤이 엄마는 중딩 엄마.
중딩 엄마 6시20분에 일어나 아침 준비하고,
중딩은 7시10분이면 합정역에 도착하여 2호선 지하철을 탑니다.
새로운 나라의 시간에 적응하느라 시차적응의 나날 입니다.


은근 센스있는 아빠가 입학식에 찍은 사진 입니다.
네모난 교실 안의 네모난 책상에 앉아 네모난 칠판을 바라보는 채윤이를
네모난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이 모양 저 모양 변신하는 자유의 딸이 네모난 감옥에 갇힌 모양새 같습니다.

 

 

입학식 전후로 도통 사진을 못 찍게 하더니
마지못해 몇 장 찍은 사진도 긴장한 빛이 역력합니다.
우리 새다리 김채윤이 어여 긴장 풀고 본연의 놀짱 포스를 찾아야  할텐데요.

 

입학식에 가는 차 안에서부터,
아니 두어 주 전부터 그렇게 까칠하게 굴더니만
점심으로 소고기 한 번 사묵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오랜만에 카메라 바라보고 웃어주고요.

중딩 엄마는 요 며칠 병든 닭입니다.
기상 시간이 한 시간 당겨졌으니 말이죠.
아침에 분명 메시지 성경 읽고 기도하려고 앉았는데 정신차려 보면 소파에 머리 박고 좁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 지내다보면 중딩도 중딩 엄마도 아주 익숙한 나날들을 살게 될 겁니다.
그나저나 우리 채윤이, 무한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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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털보 2013.03.07 22:26

    정알 대공원으로 사진찍으러 갔다가 채윤이 만나게 생겼네요.

    • BlogIcon larinari 2013.03.08 16:36 신고

      채윤이가 매일 네 시를 전후해서 끝나더라고요.
      언제 정문 앞에서 마주치시면 채윤이가 엄청 좋아할 듯해요.
      아님, 대공원에서 벙개 한 번 해야겠어요.ㅎㅎㅎㅎ

  2. 신의피리 2013.03.08 13:26

    중딩 채윤, 중딩 채윤의 엄마.. 모두 모두 힘내라!

  3. 민맘 2013.03.08 13:44

    나도 이번 주 내내 졸고 있어ㅋㅋ
    난 4;30에 일어나는디...교회갔다 와서 잠깐씩 자는 버릇 고치려니 무지 힘드네. 챈이도 많이 피곤해 하지? 하민이도 완전 피곤, 완전 긴장해 있어. 어제부터 좀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교복입은 챈이 이쁘네^^

    • BlogIcon larinari 2013.03.08 16:37 신고

      그치?
      중딩 엄마의 삶을 또 이런 건 가봐.
      민이 교복 입은 사진도 보고 싶다.
      찍어서 폰으로 한 번 보내줘.^^
      나는 오늘 되니까 좀 적응이 됐는지 덜 졸리네.
      따뜻한 봄날 중간지점에서 한 번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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