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좋아하세요? 사람 마음에 관심 많으시죠?

(뽐뿌질입니다. )

알려고 치면 한 없어 어려워지는 사람의 마음,
제대로 배우려면 한 없이 어려운 에니어그램을 커피와 엮었습니다.
출산 아니고 출간 임박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본문의 일부입니다.


"핸드드립 커피의 세계를 알고 내가 누리는 최고의 기쁨은 커피를 통해서 지금, 여기를 누리게 되었다는 거야. 무슨 말인가 하면, 인스턴트커피를 마실 때는 휘리릭 타서 후루룩 마시느라 심지어 내가 커피를 마셨는지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어. 내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헤매고 몸만 현재에 있었던 것이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시간에 나는 후각은 물론이고 내 모든 감각을 일깨워. 커피 향을 맡고 주전자를 쥔 손의 감각을 느끼고 뽀글뽀글 부풀어 올라오는 원두를 보면서 이 순간을 충실하게 느끼려고 해. 몸과 함께 생각과 정서까지도 지금 여기를 살려고 하지. 그렇게 할 때 지금 여기서 보혜사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야. 거짓자아에 이끌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근심, 걱정, 계획세우기와 후회의 단편영화 돌리기를 멈추는 일,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서 내미신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일 거야. 또한 자아의 힘을 빼고 멈추는 일이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는 사도바울의 편지 속에 담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일 거야."


“MBTI가 열어준 내면의 여행은 내겐 입에 달고 구수한 삼박자 인스턴트 커피 같았어. 지금은 신선하며 맛있고 유해 첨가물도 없는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지. 그 쓴 걸 왜 마시냐 하지만 신선한 원두로 잘 뽑은 에스프레소의 크레마에는 600여 가지의 향이 난다는 거 아니? 영성적으로 접근하는 에니어그램은 내겐 당장은 입에 쓰지만 그 깊은 풍미를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에스프레소 같아. 그러나 육미야, 인스턴트든 신선한 원두든 커피는 기호식품일 뿐이야. MBTI든 에니어그램이든, 성격유형적 접근이든 영성적 접근이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 우리의 목적은 ‘사랑이신 그 분’이다. 우리 육미 의문이 좀 풀리고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같이 있으면 예가쳬프 한 잔 내려서 나눠 마시면 좋겠구나. 더 궁금한 얘기들 또 나누자.”



“커피의 맛과 향을 구분하는 용어들이 있어. 바디감, 신맛, 와인맛, 신맛, 과일향, 넛트향, 쵸콜릿향, 매운향... 사실 처음 커피를 배울 때는 도통 모르겠더라고. 한 모금의 커피에서 이런 것들을 느끼고 감별해내는 게 장난 같았어. 그저 쌉쌀한 커피향이면 됐지 너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커피를 알아갈수록 막연하기만 했던 그 맛과 향의 미세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알아가는 것들이 더 맛있게 마시는 데 도움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신비한 존재야. 그런 우리를 유형의 언어로 이해한다는 것은 다분히 작위적이게도 느껴져. 유형이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도 못하지. 신맛, 쓴맛으로 불리는 언어의 수식이 커피가 아닌 것처럼 유형의 언어로 설명된 우리가 다가 아니야. 그러나 유형의 언어로 설명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신묘막측하게 창조된 신비로운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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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21




(일경, 이석, 삼진, 사라, 오필, 육미, 칠규, 팔수, 구민이가 모님과 함께 1박 여행을 떠났습니다. 경기도 가평의 깊은 산 속 펜션을 찾았습니다. 숲으로 난 길을 걸어 봅니다. 가다가 작은 풀잎이 눈에 띄면 그 앞에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주는 자연의 품에 나를 맡겨봅니다. 무엇이 되라하지 않고, 좀 더 열심히 하라 채근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자연의 품에서 따스한 아바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저녁으로는 바비큐 파티입니다. 맛있는 포만감으로 기분 좋아진 친구들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모님의 카페는 여기까지 와서 문을 엽니다. 향 좋은 핸드드립 커피가 종이컵에 담겨 각자의 손에 들려집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찾음으로 얻은 유익을 나눕니다. 그리고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습니다. 생각지 못한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친구의 이야기가 내 안의 이야기를 건드려 잊었던 영화 속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생각지 못했던 지점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여 조용해진 공간을 ‘쓰르르 쓰르르’ 풀벌레가 채워줍니다. 누군가의 감탄사에 다 같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이 눈을 맞춰 줍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듯, 우리의 어린 시절 아니 우리가 생기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아련하게 반짝거립니다.)



모님
: 맨 처음 우리 집 거실에 모여서 ‘아홉 개의 거짓자아’ 에 대해 얘기했던 날이 기억나네. 그간 자신의 유형을 찾아가며 각자의 여정을 잘들 가고 있는 것 같아 새삼스레 고마워. 유형을 알고, 그 유형의 메커니즘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를 써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


오필
: 항상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동기’가 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 같아요. 제가 제 자신에게 정직해지지 않을 때 그 ‘동기’가 타인을 속일 뿐 아니라 저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미
: 저는 무엇이든 안전하게 대비하고 깨알 같은 책임감 속에 사는 것이 제가 괜찮은 사람이라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 동기가 ‘두려움’ 심지어 ‘공포’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도 됐구요.


팔수
: 다들 자기 유형 전문가들이 된 건가? 나는 전에 들었던 거 다 까먹었는데…….


칠규
: 야, 까먹을 게 없어서 그걸 까먹냐? 그래도 다행이네. 껍질째 안 먹고 까먹어서. 큭큭큭. 그런데 모님, 좀 창피하긴 하지만 7유형의 죄가 ‘무절제’라는 걸 알았을 때 대~애박! 했었는데요...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요. 알아도 여전히 무절제 하거든요. 아, 물론 그것 아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되기는 했지요.

 

모님 : 아주 그냥 엄청나게 도움이 됐구나? 호호. 맞아. 이 그림을 한 번 볼래? 구원받은 우리는 ‘성화’의 과정에 있다고 하지? 성화, 즉 거룩해지는 여정에 있는 우리의 삶이 왜 이리 변하지 않을까? 나 자신은 물론이고 1년 내내 새벽기도 한 번 빠지지 않는 장로님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 신앙인들 말이다. 에니어그램이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 문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그 아래 동기라는 거지. 표에서 보는 것처럼 드러나는 행동은 거짓자아에 뿌리를 두고, 아홉 개의 거짓자아는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다고 할 때 이제 우리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아. 그래서 ‘어린 시절로의 여행’이라는 미명하에 이번 1박 여행을 꾸며봤단다. 지금 나눈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봤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첫 기억,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부모님들의 이미지, 소중하게 여겨졌던 경험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경험, 형제자매와의 관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꿈이나 자주 반복되었던 꿈 등을 얘기 했지? 그런 경험들과 연관 지어 ‘왜 이 유형이 되었을 지’ 간단히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 누가 먼저 얘기할까?


일경
: 제가 먼저 할게요. 빨리 하지 않으면 또 눈물이 날거 같아서요. 다섯 살인가, 아니면 더 어렸을 적이었던 것 같아요. 동생에게 함부로 했다고 목침 위에 올라가서 매 맞았던 기억, 그 장면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 때부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모든 것에서 결점을 찾는 버릇이 생겼어요. 저는 어렸을 적에 엄마한데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 자신도 뭔가 늘 올바르게 되어있지 않은 것에 꽂혀 짜증이 나고 그게 다 제 탓인 것 같아서 더 많은 일을 자꾸 짊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래서 저는 1번 유형이 된 것일까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건가? 하이튼, 여기까지요. 오빠 하세요.


이석
: 저는 사랑받고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머니가 좀 불쌍해 보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활달하고 친구를 좋아하셔서 밖에 나가시길 좋아하셨는데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해 하셨거든요. 부모님이 싸우시거나 또 일방적으로 엄마가 당하시는 게 싫어서 아버지가 전화해서 엄마 있냐고 하시면 잠깐 가게에 뭘 사러 가셨다,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어머니를 보호해야 했었어요. 학교 준비물이나 돈 내야할 것이 있으면 어머니께서 동생 먼저 챙겨주는 게 당연했어요. 어머니가 늘 ‘너 때문에 산다.’ 고 하셨고 딸 같은 아들이라고 하셨어요. 이런 기억들이 2유형의 행동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구요.


삼진
: 에니어그램 책에서 ‘3유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특별한 성취를 이룬 순간에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고 나왔던데요. 정말 딱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생각해보면 진짜 지기 싫어했고, 똑 부러진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칭찬받는 게 일상이었고 어린 나이에 그걸 즐겼던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들을 보면 ‘이 선생님이 어떤 스타일을 원한다.’를 딱 알았던 것 같아요. 친구를 사귈 때도 여러 애들을 사귀는 건 시간 낭비잖아요. 친구가 많은 애 하나를 사귀어서 한 방에 친구를 만들었던 기억도 있구요. 어린 것이 일찍부터 3번이었죠. 호호호.


사라
: 음.... 저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비오고 나서 아파트 단지 안에 생긴 물웅덩이가 기억이 나요. 왠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나는 혹시 주워온 아이가 아닐까? 병원에서 바뀐 아이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동생은 똑똑했고 뭔가 엄마 아빠에게 어울리는 아이 같았는데... 저는... 그냥, 제 엄마는 동생의 엄마 같아요. 모님께서 제 유형 설명해 주시면서 ‘감정이 네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는데 뭔가 말로는 잘 설명하기 어려운, 아니 설명하기 싫은 감정이 제 안에 늘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릴 적부터 왠지 난 ‘지금 이 곳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었어요.


오필
: 저희 아버님이 7남매의 맏이시거든요. 저 어릴 적에는 고모, 삼촌들이 집에서 다 같이 살았어요. 비좁은 집에서 여러 식구가 살면서 어머니는 늘 힘겨우셨던 것 같고, 몸이 워낙 약하신 데다 집안이 넉넉지 않으니까 제가 아기였을 적 충분히 젖을 못 먹이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제게 유난히 신경을 많이 쓰시고 간섭도 많으셨어요. 저는 그게 참 싫었고요. 그 때문인지 혼자 있는 공간, 나를 숨길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도 그런 게 좀 남아 있는 듯해요. 그러나 그런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은 모두 5유형이 되는 건 아닐 텐데요. 잘 모르겠네요.


육미
: 저희 가족은 아빠의 기분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엄마와 동생 저 셋이서 늘 아빠의 눈치를 봤죠. 언제 버럭 화내실지 모르는 분이고, 늘 잔소리와 걱정이 많으셨어요. 저는 집에 들어갈 때는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들어가곤 했어요. ‘집에 들어가서 아빠가 와 계실 거고 기분이 엄청 안 좋으실 것이다.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실 것이다’ 이러고 들어가면 상상한 일은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다 방심하면 또 갑자기 혼나고.... 뭘 해도 아빠는 안 좋은 쪽으로 말씀하셨는데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제 유형 때문인지 아빠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깥세상은 늘 무서운 곳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칠규
: 저는 뭐 행복했어요. 아, 물론 제가 일곱 살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반전이 생기긴 했죠. 그래도, 엄마가 생활력이 강하셔서 나름 저한테는 부족함 없이 해주셨어요. 엄마가 가게를 하시면서 단골손님들이 많았는데 제가 많이 웃겨드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귀엽다고 돈도 주시고 했구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늘 상위권에 있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가니까 수학이며 이런 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그 때부턴 아예 손을 좀 놨죠. 큭큭.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저는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7유형이라서 그래.’ 이러실 거죠? 흐흐흐..


팔수
: 이 얘기 하면 다 뒤집어지던데.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나봐요.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욕탕에서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았어요. 잘못했단 소릴 안한다고 더 때린 것 같은데 지기가 싫더라구요. 어린놈이 오기가 생긴 거죠. 하이튼 어떻게 마무리가 되고 아버지가 목욕탕을 나가시려는데 제가 침을 탁 뱉었어요. 나가시던 아버지가 바로 다시 들어오셔서 진짜 기절 직전까지 맞았죠. 아버지가 엄마도 많이 때렸어요. 엄마가 맞는 걸 보면서 ‘나중에 힘이 세지면 내가 엄마를 꼭 지켜줘야지.’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이런데 제가 약한 놈이 될 수 있었겠어요?


구민
: 뭐... 저는 그냥 뭐 대체로 괜찮았던 것 같은데요. 그냥 조용히 놀고 그랬어요. 형이 워낙 성격도 까다롭고 그래서 부모님이 많이 힘드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순해서 엄마가 ‘너 같은 애는 열도 키운다.’ 고 하셨어요. 있는 듯 없는 듯 지냈지요. 지금 생각하면 형은 원하는 걸 다 하고 사는 것 같은데 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뭐 꼭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서 일까요? 지금 진로를 놓고 고민하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게 참 막막하니까요.


모님
: 어려운 얘기들 잘 정리해서 나눠줬구나. 고맙다. 어린 시절 작업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부모님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돼.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반역하는 느낌도 들 거야. 헌데 한 번 쯤은 넘어야 하는 것이 부모님이라는 산이고, 그것은 이런 의미로 이해하면 될 거야. 부모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지. 우리는 모두 온전한 사랑을 기대하고 그리는 존재들이지만 부모님들이 역시 인간이잖아. 그걸 인정하는 작업이 될 거야. 무방비 상태의 아기에게 부모님은 생사를 쥔 하나님 같은 존재야.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내 방식대로 각색되어 있을 거야. 이제 어른이 된 눈으로 각색되어 고착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단다. 중요한 것은 그림에서처럼 이것 역시 전부가 아니고, 내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야. 내 속사람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성령님의 손을 붙들고 그 분과 함께 가는 길임을 다시 잊어서는 안 될 거야.

(다음 호에 계속)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16

 

삼진 : 모님, 모님. 제 유형은 언제 얘기해주시나 진짜 많이 기다렸어요.

모님 : 그러게. 그렇게 기다리더니 드디어 삼진이 이야기하는 날이 왔네.

삼진 : 요즘 일이 많은 때라 휴가 내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다행히 이번에 저희 팀이 낸 프로젝트 평가가 좋았어요. 어제 사무실 분위기 살짝 훈훈한 틈을 타서 휴가 냈어요. 후후.

모님 : 잘 됐다. 바쁜 삼진이랑 여유 있게 만나니까 더 좋잖아. 자 커피 마시자. 어제 볶은 거라 맛이 썩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한번 잘 내려 볼게.

삼진 : 네에, 모님 커피는 언제 볶은 거라도 좋죠. 그런데 모님, 혹시 루왁커피 아세요? 명품 커피라고 하던데…. 저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 갔다 왔잖아요. 그때 그거 마셔봤거든요. 와우~ 좋던데요.

모님 :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얻어지는 커피빈이지. 그걸 현지에서 마셔 봤다구? 루왁커피 드신 입맛에 모님 커피가 성에 차시려나? 호호. 자, 마시자.


삼진 : 왜 그러세요~ 제겐 모님 커피가 진정 명품 커피죠. 명품 커피 나왔으니 이제 명품 강의를 들려주시지요.

모님 : 고뤠? 시대가 요구하는 유능함, 자신감, 기민함과 활동성까지 갖춘 3유형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 볼까? 이렇게 얘기해주니까 기분이 좋지?

삼진 : 아, 뭐 옳으신 말씀이네요. 하하. 농담이요. 모님, 3유형의 자아이미지가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능력이 있다라는데 제가 뭐 그리 성공한 사람인가요? … 아닌가? 성공을 안했다고 볼 수는 없는 건가?

모님 : 그치? 아직 목이 마르지? 하하. 그러면 삼진이 말로 한번 표현해 봐. 어떤 이미지라고 생각해?

삼진 : 그저 열심히 하죠. 뭐든 열심히 잘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웬만한 건 다 잘하죠.

모님 : 대체로 어디서든 주목받고 사교성과 적응력이 뛰어나지. 일을 할 때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눈에 보인다며? 어느 3유형이 그러더라. 자기는 반으로 자른 토스트 어느 쪽에 잼이 더 많이 발라졌는지, 어느 줄에 서야 빨리 살 수 있는지 딱 보면 안다고.

삼진 : 하하하. 그래요? 맞아요. 성공의 길이 눈에 보이는데 안 하고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이해가 안 되기도 하죠. 사실 아까 말씀드린, 저희 팀이 낸 프로젝트라는 거요. 그거 제가 기획한 거거든요. 이대로 가면요… 모님, 저 연말 안으로 승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님 : 퇴근도 늦고 힘들어 보이는데 삼진이가 회사생활을 참 즐겁게 하는 것 같애.

삼진 : 네, 제 적성에도 맞고요. 무엇보다 저희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요.

모님 : 자아이미지의 또 다른 이름 집착으로 넘어가 보자. 3유형의 집착이 성공이라는 거 알지? 3유형들은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3유형들에게 있어서 성공은 곧 선이고 진실이라는 거지.

삼진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성공하는 3유형이 악하고 거짓되다고 들리는 건 뭐죠? 성공할 능력이 있어서 성공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씀은 아니시죠? 설마.

모님 : 물론이지.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야. 3유형은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인정받는 것에서 찾는다는 거지. 그러다 보니 성공 자체에 목을 매게 되겠지. 잘되고 잘하고 성공한 것으로, 눈에 띌 정도로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인한다고 하니까.

삼진 : 아, 그러니까 성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공을 통해서 주목받는 것이 목적이다 이 말씀이죠? 맞네요. 뭐… 그런 것 같아요.

모님 :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허영에 빠지기 쉬워. 세련된 옷차림, 명품, 상표, 외모 같은 것들이 자신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지.

삼진 :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저번에 여행 갔다 오면서 샀어요. 모님, 3유형이 아니라도 명품은 다 좋아하잖아요. 모님은 명품 안 좋으신가요? 좋으시죠? 헤헤헤.

모님 : 좋지 왜 안 좋아? 3유형이 '성공적인 모습'만 보이려다 보니까 외모나 인상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얘기야. 월세방에 살아도 세단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도 하지.

삼진 : 아, 뭐 그런가요?

모님 : 3유형은 성공에 집착하는 만큼 실패를 결사적으로 회피해. 일의 실패를 곧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실패한 3유형보다 비극적인 것은 없겠다.

삼진 : 모님, 그런데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패한 경험이 거의 없어요. 다 잘 됐던 것 같아요.

모님 : 정말 그럴까? 대부분의 3유형이 자신의 실패를 잘 인정 못해. 실패했다 해도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든지 하면서 말이야.

삼진 :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좀 다른 경우 아닌가요?

모님 : 작년쯤인가? 삼진이가 교회를 옮기겠다며 한동안 잠수 탄 적 있었지? 그때 왜 그랬는지 다시 말해줄 수 있니?

삼진 : 그때 얘긴 갑자기 왜요? 뭐 관련이 있는 건가요? 음… 좀 더 체계적인 청년부 교육이 있는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아, 물론 우리 청년부가 부족하다기보다 왠지 그때는 지적인 욕구가 막 솟구쳤던 것 같아요.

모님 : 그때 교회도 몇 주 빠지고 나름 슬럼프였던 것 같은데 단지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아쉬움뿐이었어?

삼진 : 유도심문하시는 것 같아요. 기분이 쫌 그런데요….

모님 : 아, 미안해. 내가 말을 해 볼게. 물론 어느 정도 내 추측이야. 작년 초에 삼진이네 조가 부흥도 하고 분위기도 참 좋았었잖아. 그런데 그러다 조원 한두 명 하고 어려움이 있었지?

삼진 : 아, 그거요. 제가 후배들한테 잘해줄 땐 잘해줘도 아닌 건 못 봐주잖아요. 그런 걸로 애들이 좀 섭섭해 했었죠.

모님 : 그래. 그런 일들로 조모임이 잘 안되고 어려웠었던 걸로 기억해.

삼진 :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정말…. 애들이 참 철이 없어요. 진심으로 대해주는데 그렇게 선배 마음을 몰라주다니요.

모님 : 어쩌면 그게 삼진이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패의 순간인지도 모르겠어. 조원들이 잘 따라주지 않고, 삼진이의 강점을 봐주는 것이 아니라 약점에 주목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 그러면서 모임은 시들해졌고…. 조장으로서 네가 맡은 조가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자는 거야. 자기가 맡은 일은 항상 성공하고 잘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실패라 여겨서 3유형의 회피가 나왔던 건 아니냐는 거지. 3유형들이 실패의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실은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면서 직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삼진 : (울컥) 모님… 그때 제가 조장으로서 실패했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모님 : 아니. 조장으로서 실패했단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패했으면 좀 어떠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내 기억으론 그때 삼진이의 슬럼프가 오래갔어. 그리고 내내 청년부의 구조적인 문제나 후배들의 철없음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그게 3유형으로서 실패를 회피하는 방식은 아니었을까 하는 거다. 너무 힘든 얘기지?

삼진 : 살짝 각오는 하고 왔지만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생각해 볼게요. (표정과 자세를 추스르며)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말씀해주세요.

모님 : 3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거짓과 기만인데 자신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진실을 가장한다는 의미야. 아까 말했지. 3유형에게 있어서 성공이 곧 선이고 진실이라고.

삼진 : 아, 제가 3유형에 관한 설명 읽어 봤는데요. 3유형이 거짓말을 잘한다고요?

모님 : 거짓말이라…. 성경 인물 중에 야곱이 3유형이거든. 야곱이 형 에서에게 장자권을 사는 장면, 형으로 변장해서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 받는 장면이 3유형의 거짓과 기만을 딱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성공하기 위해서 또는 성공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진실을 가장한다는 거야.

삼진 : 야곱이 3유형이었군요?

모님 : 응. 부부싸움을 하고도 모임에 가서 세상에 더없는 잉꼬부부처럼 행동하는 남편에게 기만이라고 했더니 3유형인 남편이 그러더래. '그 순간의 분위기에 충실했을 뿐이다. 나는 진실하다.'라고 말이야.

삼진 : 핫! 처음으로 공감이 가는 얘기네요.

모님 : 이렇듯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하고 가장 멋지고 성공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확인하려 하는 3유형이 쓰는 방어기제는 동일화야.

삼진 :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모님.

모님 : 자신의 일, 훌륭한 역할, 지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거야. 목사님이 그럴듯한 설교를 해놓고 그 설교가 자신인 줄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맨 처음 에니어그램을 소개할 때 말한 것처럼 역할이나 신분 등 내적 외적 페르조나는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쓰는 거잖아. 페르조나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순 없지. 3유형들은 자신의 성공한 이미지, 역할, 잘 나가는 회사 등을 유독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거야. 때문에 정직하게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누구보다 어려울지도 몰라.

삼진 : 휴우~ 좀 피곤해지려고 하네요.

모님 : 그래. 힘들 거야. 듣고만 있어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아까 야곱 이야기를 했다만, 야곱은 가능한 한 모든 계략을 동원해 하나님과 겨루고 사람과 겨루며 성공을 얻어내려고 해. 놀랍게도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사 41:14) 인물 야곱에게 복 주시길 거절하지 않으셨어. 성공과 실패의 잣대는커녕 그분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지. 삼진아, 3년 동안 함께 먹고 마시며 삶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이 실패한 조장이었다는 거 아니? 조원들로부터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배신을 당하고 조모임은 와해되고 홀로 십자가의 길로 가셨어. 십자가의 비밀은 실패의 비밀이란다. 곧 부활절이네. 철저한 실패와 사망 없이 부활은 없어. 삼진이 지금 많이 힘들지?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자. 남은 휴가 반나절은 몸을 좀 푹 쉬어주면 좋겠다.

삼진 : 그러게요.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네요. 하여튼 감사해요. 모님.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4


이석 :
모님, 안녕하셨어요? 이거요. 오다 보니 딸기가 참 싱싱해 보이더라구요.
모님 : 그렇다고 비싼 딸기를 이렇게 많이 사왔어? 고맙다. 앉아. 집 안에 연기가 심하지?
이석 : 연기요? 아, 연기. 그러네요. 뭘 구우셨나요? 웬 목장갑까지…….
모님 : 응, 좀 전에 커피 볶았거든. 나는 커피 볶는 비릿한 냄새까지도 좋은데 어떤 사람들은 싫어하더라. 괜찮니? 환기를 시킨다고 시키긴 했는데.
이석 : 괜찮은데요…. 아, 이게 커피 볶는 냄새군요. 커피 볶는 일이 우아한 일인 줄 알았더니 연기에 목장갑까지 끼시고…. 이런 일을 할 땐 절 부르세요. 우리 모님이 이렇게 험한 일을 하시면 안 되죠. 하하.
모님 : 그러게. 커피 볶는 일이 생각보다 센 육체노동이다. 그래도 내게 가장 흥미로운 일이 이 로스팅하는 과정이야.
이석 : 밖에서 뵐 걸 그랬어요. 그러잖아도 정말 근사한 커피로 한번 대접하고 싶었는데요. 다음번엔 제가 맛있는 커피 집 찾아서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모님 : 그래, 그러자. 커피 마실까? 이번에 코스타리카가 좀 잘 볶였어. 커피 괜찮지?
이석 : 네네, 물론이죠. 코스타리카라…. 좋아요. 주세요.


모님 : 피곤하겠다. 어제 장례식에 장지까지 갔다 왔다며? 멀어서 힘들었을 텐데…. 
이석 : 아, 뭘요. 그 정도는 뭐…. 그래도 그 녀석 꿋꿋하게 잘 버티더라구요. 멀다고 오지 말라고 하더니 그래도 가니까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모님 : 이석이는 따뜻한 양털 같은 남자지. 이석이가 함께 가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을 거야.
이석 :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요. 응급실 가던 날 어머님도 계시고 친척 분들도 계셨는데 저한테 새벽에 전화를 했더라구요. 그래서 새벽에 응급실에 같이 갔거든요. 아, 이 녀석 가엾어 죽겠어요.
모님 : 언제나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향해 출동 대기 자세로 있는 이석이지? 그러니까 어려운 상황이 됐을 때 제일 먼저 이석이 형이 생각났겠네.
이석 : 아, 뭐… 제가….
모님 : 2유형들이 가진 장점, 여태껏 우리가 말한 방식으로 자아 이미지가 나는 돕는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다 이거잖아. 실제로 세심하고 친절하게 신경 써주고 남을 위해서라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지.
이석 : 제가 뭐 딱히 돕는다기보다는…. 우리가 서로 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모님 : 어쨌든 이석인 지난 며칠처럼 후배 아버님의 장례를 돕고, 마음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을 도울 때 의미 있고 살아 있다고 느끼지?
이석 : 그, 그렇죠. 그렇지만 뭐 그걸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님 : 그래. 이석이가 스스로 가장 의미 있다고 느끼고, 또 가장 빛이 나는 그 지점 말이야, 누군가를 돕고 있고 필요한 것을 나누고 있다는 그 지점은 바로 집착이라는 어두움의 이면을 가지고 있지.
이석 : 제가 돕는 것에 집착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모님 : 이제껏 살펴본 모든 유형들이 그렇듯이 자아 이미지 내지는 유형이 가진 장점이 나쁜 것은 아니야. 남을 돕는 것은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잖아. 사실 우리 공동체에 이석이처럼 자신을 아끼지 않고 돕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
이석 : 아…. 뭐 그런 건 아니구요. 제가 뭐 하는 게 있다구요.
모님 : 다른 유형에서 그랬던 것처럼 2유형들은 자신이 도와야만 사랑 받고, 살아남는다고 여긴다는 거야. '저 사람이 뭘 원하나?' 하고 필요를 감지하는 안테나를 세우면서.
이석 : 사실 저는 그게 눈에 잘 보이고요.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닌…. 음, 말하자면 주님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런 삶이 아닌가요?
모님 : 반복해서 말하지만 남의 필요를 캐치하고 돕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 쉽게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헌신적으로 남을 돕는 이유가 사실은 대.가.를 바란다는 거지.
이석 : 대, 대가라구요? 제가 무슨 대가를 바라겠어요? 저는 뭘 바라면서 해준 적 없구요, 단지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에 충실하자는 그런 마음뿐예요.
모님 : 그래. 2유형들에게는 다소 아프고 충격적인 말이겠지만 한 번 생각해 봐. 무리해서 후배들 밥을 사주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집까지 일일이 다 태워다 주고, 어려운 일 있을 때 끝까지 함께 있어주고 했는데, 이런 도움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인정해주지 않을 때 이석이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말이야.
이석 :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겠지만 결국 주님이 알아주시면 된다고 생각해오긴 했는데. 그렇지만 그게 좀, 뭐랄까….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모님 : 이런 거야. 2유형이신 어느 여 집사님의 고백인데, 그분은 천생 크리스천이라 할 만큼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돕는 데 선수시지. 에니어그램을 배우고 자신이 무슨 대가를 바라냐며 본인은 2유형이 아니라고 하셨어. 어느 날 가까이 지내는 분 남편이 심하게 아프셨나봐. 평소대로 정성껏 죽을 쒀서 가져다 주셨대. 집에 와서 고맙다거나 맛있다거나 전화 한 통 하겠지 싶었는데 안 하더래. 문자라도 오겠지 했는데 안 오고. 이 집사님이 어떻게 했을 것 같애?
이석 : 그, 글쎄요. 뭘 어떻게 했을까요?
모님 : 저녁에 자기가 전화했다는 거야. 전화해서는 '아까 죽이 조금 짰지?' 했다고.
이석 : 풉! 아….
모님 : 그러면서 결국 '전화 못 해서 미안하다.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내심 괘씸한 마음이 드는 자신을 깨달았다고 하셨어.
이석 :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네요.
모님 : 커피 한 잔 더 마실까? 리필 안 필요합니까, 고객님? 아, 참! 위장병 때문에 요즘 약 먹는다고 하지 않았었니? 커피 마셔도 되는 거야?
이석 : 네? 네…. 아, 약 먹고 있긴 한데요… 뭐, 괜찮아요. 모님과 함께 하는 커핀데 마셔야죠. 리필 주세요. 하하하.
모님 : 어이구, 이런. 됐다! 그냥 넘어가자. 남의 필요와 그것을 돕는 데 꽂혀 있는 2유형들이 회피하는 건 자신들의 욕구야.
이석 : 욕구를 회피한다니요? 욕구가 회피한다고 회피할 수 있는 건가요?
모님 : 그래. 회피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야. 2유형들은 자신의 욕구를 잘 알지 못하고 내세우지도 못한다는 거지. 내 욕구를 채우면 사랑 받을 수 없을 것 같다거나 이기적이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석 : (목소리 톤을 높여) 그렇지 않나요? 자신의 욕구만을 내세우고 채우는 건 이기적이고 나쁘죠.
모님 : 물론이지. 여러 개의 사과 중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이거 먹어라' 하면 '네~' 하고 넙죽 먹을 수 있는 2유형이 많지 않을 거야. 대체로 '저는 괜찮아요. 누구 먼저 주세요.' 하지. 왜 자신은 괜찮다고 하지? 본인도 좋은 걸 누려야 할 귀한 존재가 아닌가?
이석 : 제 얘기하시는 거예요? 저는 일부러 수박을 먹어도 맨 끝의 껍질 부분을 먼저 집어 먹는데….
모님 : 남의 욕구에 맞춰 사는 것이 훌륭한 삶(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준과 전제를 두셨어.
이석 : 아…. 실은 후배들에게 밥을 사준다거나 선물을 사줄 때는 망설임이 없는데 제가 쓸 물건을 좋은 걸로 사려면 힘들어요. 뭘 새로 샀다는 걸 사람들이 알까 봐 숨길 때도 있고요.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님 : 그래,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바램과 필요에 두기 때문에 2유형들이 내면 성찰하는 것을 어려워 해. 이것은 2유형의 근원적인 죄인 교만과 맞닿아 있어.
이석 : 저, 그거 이해가 정말 안 돼요. 제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교만하다는 건 좀….
모님 : 2유형들이 돕기만 하고 남의 도움 받는 것은 강하게 부정하는 경향이 있지. 2유형의 교만은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는 데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 바라는 것에 자신의 삶을 묶어 두고 자신의 필요는 아예 묵살하지. 그러면서 '나는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교만과 허영에 빠지는 거야.
이석 : 그… 그게 교만이군요.
모님 : 그래서 2유형들은 진심으로 감사하기가 어렵다는 거야. 하나님께 조차도 내가 봉사하고 열심히 섬겼을 뿐 받은 게 있어야 감사하지.
이석 : ………
모님 : (이석이 등을 토닥이며) 에니어그램 워크숍을 하면서 유형별 그림을 그려. 가끔 2유형의 그림에서 뻥 뚫려 있거나 텅 빈 마음을 그린 그림이 나와. 자신 안에도 사랑 받고 싶은 욕구와 갈망이 있어서 마음이 텅 비어 있는데, 그 메마른 곳에서 뭘 퍼내서 주려고 애쓰는 2유형들이(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엾게 느껴져. 내가 커피를 하면서 로스팅을 하게 된 계기 중에 하나도 이와 비슷해. 신선한 원두는 값이 비싸거든. 넉넉히 사 둘 수 없으니까 집에 찾아오는 이들과 커피를 나누는 게 힘들어지더라. 겉으로 헤헤거리긴 하지만 속으로는 한 잔 두 잔 계산하고 헤아리는 거야. 그러다 분노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하고 그래.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생두를 사다가 어설픈 자가 로스팅을 하기 시작했지. 원두가 넉넉해지면서 나누는 내 마음이 편안해졌어.
2유형들이 돕고 나누는 것 정말 귀하고 아름다워. 다만 먼저 텅 빈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겠어. 비어 있는 걸 외면하고 퍼주는 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아. 내가 왜 다른 사람들에게 그토록 잘 해주려고 애쓰는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많이 자유로워질 거야. 도움의 여왕 테레사 수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지. '나누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은 타인의 인정에서 오는 게 아니라 기도로 만나는 그분에게서만 오는 것!^^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내적여정 12



일경에게



묵직하게 낮아진 겨울 하늘이구나. 베란다에 서서 무거워 내려앉은 듯한 구름을 한참 바라봤다. 일기예보가 맞는다면 오후쯤 드디어 첫눈이 올 것이고, 그렇다면 저 어두운 구름 속에서는 한 송이 두 송이 눈송이를 만들어 떨어뜨리려는 준비가 한창이겠지. 어젯밤 잠을 설치기도 했고 흐릿해진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우고 싶어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려 마신다. 이 한 잔에 담긴 수백 가지 향을 느껴보고자 온몸의 감각이 일제히 입안을 향하는 느낌이야. 덕분에 내 생각과 감정들을 잠깐 멈추고 '지금 &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어. 이런 커피를 난 영성적이라 부르고 싶다.^^

음…. 지난번 만남 이후로 일경이랑 마주하기가 전 같지 않아 마음이 쓰인다. 가까이 얼굴을 대하고 인사 나눈 지도 오래됐어. 먼발치에서 봐도 전처럼 따스한 눈인사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은데, 내게 서운한 마음이 있나 싶구나. 아, 이건 그냥 순전히 내 직감이고, 이렇게 느끼게 하는 내 안에 있는 목소리에 대한 얘길 들려주고 싶어서 몇 자 적어 본다.


유형의 화살


1유형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날, 내가 꽤 다그쳤던 것 같아. '일경이 너는 지금 화가 나 있다'면서…. 그 순간 너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어. 너와의 대화를 다시 읽어 보니 확실히 내가 지나치게 몰아세웠더라. 물론 1유형의 회피가 '분노'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겠다는 동기도 있었어. 하지만 일경이에게 고백해야 할 또 다른 동기도 있더구나.

에니어그램의 아홉 유형은 '날개'와 '화살'로 더 깊이 이해할 수가 있어. 나중에 자세한 설명을 할 기회가 있겠지만 '화살'에 대해서 잠깐 얘기 해볼게. 아홉 개 유형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화살로 연결되어 있어. 이것은 각 유형의 성장 지점과 스트레스 지점을 보여줘. 예를 들어, 1유형은 4유형으로 화살을 날리고, 7유형 쪽에서 화살을 받아. 화살의 역방향은 유형의 성장 방향, 정방향은 스트레스 방향이라고 이해하면 돼. 무슨 의미냐면, 1유형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잘 받아들여지고 안정이 될 때(흔히 성숙한 모습일 때) 밝고 쾌활하며, 낙천적인 7유형의 장점들을 보이게 된다는 거야. 반대로 어떤 식으로든 스트레스 상황이 오래갈 때(아니면 미성숙한 1유형의 경우) 4유형이 가진 부정적 모습을 띠게 돼.


가르치는 자의 하나님 놀이

난 네가 알다시피 7유형이란다. 그리고 나의 화살은 1유형이지. 다시 말하면 내 안에 1유형의 부정적인 모습이 많이 숨어 있다는 거야. 일경이와의 지난번 대화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인식하게 됐지. 기도하지 않는 날이 오래될 때 내 상태가 메∼롱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상이 있어. 그건 '모든 사람들의 모든 단점을 들춰내 묵상하기'야. 누구는 뭐가 잘못됐고, 또 누구는 뭐가 잘못됐고…. 세상 모든 사람의 잘못을 다 파일링해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니까. 그러다가 이 묵상이 깊어지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줄줄줄 말로 나오지. 당신은 이렇게 나를 속상하게 했고, 당신이 이러니 내가 정말 불행한 여자고, 네가 이렇게 하니 엄마가 너를 키우는 게 너무 어렵고…. 이런 식이야. 이렇게 보면 나는 1유형 못지않은 7유형인 것 같애. 그래서일 거야. 부끄럽게도 나는 1유형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어떤 유형의 약점보다 더 나쁜 것으로 말하려는 경향이 있어. 분명한 투사(投射)지. 내 안의 어두움을 보기 싫어서 외부에 있는 1유형들의 약점에 반사시키는 거지. 때문에 강의 때마다 1유형을 설명할 때는 더 조심하려 애쓰는데도 잘 감추지를 못해.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교만한 일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때문에 일경이가 비난받는다고 느끼고 많이 아팠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미안하다.

이런 게 에니어그램을 비롯한 모든 성격유형을 설명하고 가르칠 때 피해가기 어려운 실수인 것 같아. 성격유형을 설명하는 강사도 분명 어느 유형 중 하나고, 필연적으로 자기 유형의 한계를 가지고 있거든. 게다가 어쩔 수 없이 경험을 통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유형이 있어. 그러다 보면 어떤 유형에 관한 설명들은 더 힘을 실어서 하게 되고, 반대로 어떤 건 은근슬쩍 패쑤! 하게 돼. 그러면서도 어느새 자신이 가장 객관적인 설명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람의 내적 동기를 모두 다 아는 것처럼 자만하는, 슬프게도 하나님 놀이에 취해버리게 되지.


배우는 자의 자기방어


에니어그램 강의를 듣고 자신의 유형을 못 찾는 사람에게 농반진반으로 '이것만은 절대 내 유형이 아니다' 하는 그 번호를 의심해 보라고 해.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봤어. '이것만큼은 절대 내 번호가 아녜요. 왜 아니냐면요…' 하면서 그 유형이 아닌 이유를 백만 가지 늘어놓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도 아니라던 그 유형을 자기 유형으로 받아들이고 그 백만 가지 이유가 백만 가지 '자기방어'였다는 걸 인정해. 마음이 건강하고 영적으로 겸손한 사람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애쓰지 않아. 자기 자신에 대해 '그러함'을 설명하기보다 '그렇지 않음'을 항변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쓴다면, 난 십중팔구 자기방어의 중무장 태세라고 생각해. 우리의 성장점은 칭찬받는 지점에 있지 않고 부딪혀 아픈 연약함에 있지. 누군가 내게 듣기 싫은말로 비난하고, 못난 점을 마구 까발린다면 바로 그때가 기회라는 거야. 자신을 변호하고 다시 설명하고픈 '자기방어'를 마음으로부터 멈출 때가 진정한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간 나를 이중인격자라 부르면서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사람으로 대하던 사람이 있었어. 받아들일 수 없었고, 억울해서 죽을 것 같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항변하며 많이도 애를 썼는데… 이제야 조금 알겠단다. 그 사람이 그 누구보다 나를 제대로 가르친 영적 스승이었다는 것을.

일경이를 아프게 할 일이겠으나 마음을 다잡아먹고 말해볼게. 일경이와 대화하면 유난히 네 친구나 직장상사, 주변 사람들에 대한 얘길 많이 듣게 돼. 표현은 항상 부드럽지만 그 친구들의 단점에 관한 내용이 참 많아. 그 말끝에 '그래도. 이젠 괜찮아요. 섭섭하지 않아요.'를 후렴구처럼 붙이지. 헌데 나는 일경이의 그 말들이 '저는 누구누구에게 화가 나 죽겠어요. 심지어 지금 모님에게도 너무 화가 난다구요.' 라고 들려. 일경아, 네가 그런 자신을 부여안고 얼마나 고민하며 울며 기도하는지 알고 있어. 그래 지금처럼 '더 이상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험담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도 필요해. 헌데 그 기도와 함께, 아니 먼저 앞서야 할 게 있어. 나는 일경이가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라는 말을 멈추고 '나는 화가 났어요. 화가 나 죽겠어요. 하나님께도 화가 나요.'라고 말하고 기도할 수 있음 좋겠어.


분노는 감정이다 감정은 내가 아니다


장유형의 핵심감정은 '분노'라고 했지? 외면화된 8번은 분노를 밖으로 폭발적으로 표출하고, 거부지점인 9유형은 '분노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장유형으로 보이지 않고, 1유형은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분노를 철저하게 억압한다고 했어. 그러나 분노는 장유형의 것만은 아냐. 모든 사람의 것이지.

분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분노는 당연하다'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분노는 내 안에 무엇인가 꼬여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로,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거야. 모든 감정은 다 중요하고 이유가 있어서 올라와. 그리고 실은 상반되는 감정은 한곳에서 나오게 돼. 애 - 증, 호 - 오, 교만 - 겸손, 희망-절망…. 이렇게 짝을 이루고 있지 않니? 사랑하다 헤어지면 미워하는데 그 미움은 어디서 왔니? 전에 있었던 사랑이 만들어 낸 감정이야.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면 그 만큼 많이 신뢰했었다는 것이고, 지나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 안에는 숨은 열등감이 있어서 자신은 못났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때문에 짝을 이루는 두 감정을 모두 표현하며 살아야 해. 부정적인 감정은 억압하고 당장 이미지 구길 일 없는 긍정적 감정만 표현하는 것이 반복되면 결국 나머지 억압되어 얼어버린 감정이 나머지 반쪽 감정까지 막히게 만들어. 억눌린 화는 주변에 있는 약자에게 가장 쉽게 삐져나오게 되어 있어. 그러니 분노를 비롯한 모든 감정들을 일종의 에너지로 이해하면 좋겠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알지? 형태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 감정은 억압해 봐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 변화의 과정을 거쳐 그 힘을 유지한다는 거다. 특히 신앙의 이름으로 억압된 분노는 '자기 의'라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단다. 신앙인들을 곤란케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화를 너무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게 내는 것인지도 몰라.

그러면 분노를 억압하지 말라 했으니 화를 돋우는 친구의 얼굴을 벽에 붙여 놓고 다트를 던지라고? 병을 깨서 휘두르고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독설을 내뿜으라고? 분노를 억압하는 것이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것이나 자신과 '분노'라는 감정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동일시하는 것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봐. 두 경우 모두 분노에 이끌려 다니는 결과야.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자연스럽게 화내시고(막 3:5, 요 2:13-15, 마 23장), 화를 도구로 사용해 선한 것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기억해 보자. 그분이 보여주신 분노는 억압되어 부적절하게 삐져나오는 방식도 아니고, 정제되지 않아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것도 아님이 분명해. 오직 사랑의 마음에서 기인한 분노,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서 나온 화야. 네 안에 분노가 있음을 인정하고 나서 어쩔 줄 몰라 두렵다면 이분께 의뢰하면 돼. 화내고 욕하는 것에도 온전한 전문가이신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잖니. 그분께 우리의 분노를 그대로 내어드리고 순종할 때 그 분노는 내 존엄을 지키고, 연약한 이웃의 버팀목이 되며, 공동체에 참된 정의를 세우는 작은 기초석이 될 거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노냐! 우리, 두려움 없이 인정하고 맞서 보자구. 분노는 나의 것!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내적여정 11

일경 :   모님! 안녕하셨어요?

모님
:   일경이 오랜만이다. 어우, 이게 얼마만이야? 출장은 잘 갔다 왔어?

일경
:   네, 모님. 갔다 오자마자 진작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었어요. 이거…. 제가 생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곳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구해봤어요. (모님 옷에 붙은 머리카락 떼어주며) 다행히 그쪽에도 공정무역 커피가 있더라구요.

모님
:   생두? 어떻게 이런 생두를 살 생각을 했어? 출장 일정도 빡빡했다며. 고맙다.

일경
:   젤 손쉽게 살 수 있는 게 스타벅스 원두지만 그거 아시죠? 모님. 스타벅스가 이스라엘 기업이고 그 수익금이 팔레스타인 전쟁의 탄알이 된다는 거요.

모님
:   응, 그래 들었어.

일경
:   그 얘기 들은 이후로 워낙 커피값도 비쌀뿐더러 스타벅스에는 안 가게 되더라구요. 의외로 이걸 알고도 스타벅스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크리스천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이해가 안 돼요.

모님
:   우리 일경이 커피 하나도 바르게 마시는구나. 후후후… 그럼 일경이 격에 맞게 네팔 공정무역 커피 한 잔 내려줘야겠네. 좀 기다려 봐.


모님 :   그래, 출장 갔던 일은 잘 된 거야? 

일경
:   저 혼자 일했으면 더 완벽하게 했을 텐데 저희 부장님이 완전 헐랭이시거든요. 흘리시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정작 제 일보다 부장님 흘리시는 일 마무리 짓는 게 더 힘들었어요. 소화불량 생겼잖아요.

모님
:   우리 일경이가 워낙 일을 꼼꼼하게 잘 하니까~ 아, 지난번 리더 수련회 일경이가 맡았었다며?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된 수련회는 첨 봤다. 하하.

일경
:   원성도 좀 들었어요. 사람들이 교회 일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모님
:   하여튼 정직하고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공정한 일경이한테 일을 맡기면 안심이지. 나는 완벽하고, 옳고 착하다가 1유형의 자아 이미지잖아.

일경
:   아니에요. 완벽하다니요. 저는 완벽 근처에도 못 갔어요. 제가 부족한 게 얼마나 많은데요.

모님
:   그렇지! 만족스러운 게 하나도 없지? 하하하… 그렇게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개혁가가 바로 1유형이야. 일경이 자신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이끌 수 있는 사람이지.

일경
:   아무튼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지 완벽한 사람은 아니에요.

모님
:   아~ 네! 어찌됐든 결국 '완벽'이라는 것에 붙들려 있는 거고, 그래서 1유형의 집착은 완벽이라고 해.

일경
:   모님, 진짜 제가 완벽하질 않다니까요. 실수투성이인 제 자신이 불만스러워 죽겠는데 왜 자꾸 완벽, 완벽 하세요.

모님
:   그래. 그렇게 '완벽'에 매여 있다구. 하하하…. 어휴, 표정 봐라. 미안 미안~ 암튼, 완벽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어떤 일을 봐도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는 거지.

일경
:   그죠.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죠. 다들 하나를 해도 좀 제대로 하면 좋겠어요. 제 눈에는 그렇게 잘 보이는 오타가 왜 부장님 눈에는 안 보이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그 바쁜 와중에 부장님 브리핑 자료 오타 수정이나 하고 있어야 하냐고요. 식당에 가도 지문이나 고춧가루 묻은 컵은 꼭 제 눈에만 띄어요.

모님
:   사람에 관해서는 어때? 사람들의 결점 같은 것들….

일경
:   솔직히 저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이 너무 잘 보여서 눈을 감고 싶어요. 헌데 문제는 눈을 감아도 보인다는 거죠. 이것 때문에 정말 힘들어요.

모님
:   에니어그램 아홉 유형 중 6유형과 1유형은 부정적인 것에 많이 기울어져 있지. 6유형에겐 앞으로의 일 중 제대로 될 일이 하나도 없고, 1유형 눈엔 해놓은 일 중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지. 인정해?

일경
:   부정적이란 말은 좀 그렇지만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모님
:   일을 할 때도 완전한 일처리만이 옳다고 여겨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도 있어. 또 늘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에 꽂혀 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을 강조하면서 까다롭게 굴기도 하고….

일경
:   저는 그저 옳은 일을 할 뿐이에요. 혹시 제가 까다롭게 군다면 그건 실수를 적게 하려는 것뿐인데요. 실수해서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조금 까다롭게 느껴져도 미리미리 바로잡는 게 낫지 않나요?

모님
:   에니어그램이 주는 유익 중 하나가 나를 내 입장과 더불어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하는 거잖아. 특히 미성숙한 1유형들은 모든 사람에게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끊임없이 비판하는 까다로운 도덕가가 되기 쉬워. 그런 1유형의 대표 주자님들이 바리새인님들이지. 왜 그럴까? 자.신.이. 옳기 때문이고, 자.신.만.이. 옳기 때문이야. 그런 1유형들 옆에 있으면 왠지 뭔가 지적 받을 것 같고 비판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야.

일경
:   제… 제 옆에 있으면요? 아…. 미성숙한 1유형들이 그렇다는 거지요?

모님
:   왜? 좀 불편해? 조금 화난 거 같은데.

일경
:   아뇨. 화나긴요. 좋은 말씀 해주시는데요. 저한테 약이 되는 말씀 잘 들어야죠.

모님
:   자, 그러면 1유형이 회피하는 것은 뭘까? 다른 유형이 그랬던 것처럼 집착의 반대? 그렇담 불완전? 아니야. 1유형이 회피하는 것은 분노고, 또 근원적인 죄도 억압된 분노야.

일경
:   분노라고요? 화내는 것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님
:   응. 그거!ㅎㅎㅎ 이 부분은 조금만 차분히 들어 봐. 완벽에 사로잡힌 1유형들에게 세상은 도통 공정치가 않아. 기만과 어리석음, 불완전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끊임없이 노력해도 보상이 없어. 때문에 화가 나 있지.

일경
:   그렇죠. 불공평하고,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그러느라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억압하는 부조리한 세상이잖아요.

모님
:   그래. 맞아.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세상임이 분명해. 그래서 화가 나는 것도 이해할 만하지. 문제는 1유형들은 그 분노를 느끼지도, 표출하지도 못하고 억압한다는 거야. 왜? 올바른 사람은, 착한 사람은 화를 내지 않기 때문에! 분노로 인한 공격적 성향을 엄청나게 억압한다고.

일경
:   글쎄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저는 그다지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에요.

모님
:   정답!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지. 화가 나긴 나는데도 말야. 실은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대화를 시작하면서 내게는 일경이가 느껴지는 시점이 여러 번 있었거든. 어때?

일경
:   아…. 아닌데. 저 화 안 났어요. 모님.

모님
:   그래…. 회피와 근원적인 죄는 모든 유형에게 가장 맞닥뜨리기 어려운 부분이야. 내가 일경이에게 화가 났다고 다그치는 것도 아니고, 비난하는 것도 아니야. 어쨌거나 1유형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 안에 깊이 자리 잡은 분노로 인한 공격성을 눈으로 보고 인정하는 거야. 또 각 유형의 회피나 근원적인 죄가 그렇듯이 이것들은 타인이 훨씬 쉽게 알아보게 돼. 자신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1유형들의 못마땅한 표정과 불만스런 목소리를 통해 부정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걸 느끼지. 이를 악물고 속으로 '느 즌쯔 흐 은   그든' 하고 생각하지만 이미 악문 이와 긴장된 얼굴 표정이 말해줘. 1유형의 방어기제는 반응 형성인데, 이건 즉시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눈 깜짝할 사이 내부 검열 과정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 결정한다는 거야. 1유형들이 누르고 누르던 화를 결국 분출하고 말았을 때 그 이유를 '내가 화가 난 게 아니라 니가 자꾸 이렇게 불성실하게 일을 처리해서 그러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일경
:   (붉어진 얼굴, 부채질하며) 아휴, 덥다. 저 지금 화 안 났어요. 괜찮다니까요. 모님.

모님
:   그래. 알았어. 음…. 오늘 우리 대화 중에 나왔던 헐랭이 부장님, 스타벅스 가는 크리스천들, 수련회 일정을 잘 안 지키는 청년들에 대한 일경이의 마음을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 봐. 1유형들이 분노를 억압하고 다른 사람들을 강하게 밀어 부친다고 하는데 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냉혹할지 몰라.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더 열심히, 더 잘, 더 올바르게'를 자신에게 요구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게 되는 거야.

일경
:   ……. 제가 저를 못살게 굴고 힘들게 한다는 거 알아요. 가끔 저는 제 안에 제 잘못을 지켜보는 심판관이 있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잠잘 때조차도 제가 옳은지 그른지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는 어릴 때 '잘했다'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가 늘 뭔가를 지적하셨고…(울먹) 마음 깊은 곳에서 저는 늘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모님
:   (토닥토닥) 그래. 뭐든 잘하려고 애쓰면서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니. 일경아! 성장한다는 것은 자라간다는 것이지 완벽해진다는 게 아니야.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인간이고 피조물인 거야. 이런 우리의 존재론적 위치를 인정하는 것이 완전으로 가는 성숙의 첫걸음이야.

일경
:   불완전해서 인간이라구요?

모님
:   그럼.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에게 골고루 햇빛을 비추시고 골고루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야(마 5:43-48). 아홉 시에 들어온 일꾼이나 다섯 시에 들어온 일꾼에게 똑같이 품삯을 주시는 분(마 20:1-16).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 보면 좋겠다. 착하고 올바르기에 상을 주고 은혜 주시는 분이 아니야.

일경
:   아….

모님
:   무엇보다 분노는 소중하고 필요한 감정이야. 내 안에 뭔가 얽혀 있다는 신호지.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그러나 분노를 어떻게 표현할지는 나의 선택이지. 파괴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표출한다면 1유형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데 제대로 기여할 거다. 쾌활한 고요와 참된 인내(성숙의 열매)의 선물이 거기 숨겨져 있어.

일경
:   네. 모님!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10



구민 : 모님!

모님
: 구민이 어서와. 얼굴이 왜 이리 부숭부숭해? 어디 몸이 안 좋니?

구민
: 아… 그게요. 늦잠을 자서요.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온 거예요. 흐흐흐….

모님
: 아하! 구민이가 잠자는 숲 속의 왕자님이지. 호호호. 그럼, 아무것도 안 먹었겠네. 커피랑 토스트 하나 해줄까? 아니면 반찬은 별로 없지만 밥 먹을래?

구민
: 괘… 괜찮아요. 저는 아무래도 괜찮은데 괜히 모님 귀찮게 해드리네요. 뭐 그냥 더 편하신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모님
: 에이그, 됐네요. 뭐 이런 게 귀찮어. 빨리 선택해주는 게 안 귀찮게 하는 거야.

구민
: 아, 네. 그럼 뭐… 토스트….

모님
: 그래 그래. 후다닥 해줄게. 잠깐 앉아 있어. 어디 보자. 커피는… 음… 우리 구민이 브라질 커피 한 잔 맛있게 내려줘야지. 잠시만….






구민 : 커피랑 이렇게 먹으니까 맛있네요. 브라질 커피라고 하셨어요?

모님
: 응, 언젠가 내가 얘기했던 것 같은데, 브라질 커피는 중성적인 맛을 갖고 있어서 블렌딩을 할 때 베이스로 많이 써. 희한하게 브라질 커피만으로는 딱히 개성이 없는데 블렌딩을 하면 다른 커피의 개성을 한층 더 살려준다고 하더라. 자체로는 살짝 맛이 밋밋하지. 

구민
: 마음에 드는데요. 브라질 커피!

모님
: 누구하고도 원만하게 잘 지내고, 겸손하고 관대한 구민이랑 비슷하네. 맘에 들게 생겼다. 호호호….

구민
: 제가 그… 그런가요?

모님
: 그럼~ 평화의 사람(자아 이미지) 구민이잖아! 남의 얘기 잘 들어주고 불화도 잘 조정하고 편견 없이 사람들을 대해서인지 내가 구민이 싫다는 애를 못 봤어.

구민
: 에이, 모님. 무슨요….

모님
: 니가 평화의 사람이란 거 인정 안 한다구? 싫다구?

구민
: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좋죠. 평화의 사람이 되고 싶어요. 늘 평화롭고 싶구요.

모님
: 네 미니홈피 제목이 뭐였더라? '어제와 같은 오늘' 맞지?

구민
: 어, 알고 계시네요. 그냥 써 본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저는 오늘 뭔가 어제와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어요. 그… 그냥 별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으면 싶달까, 그래요.
모님 : 구민이가 말하는 평화가 그런 의미니?

구민
: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아닌가요? 평화가 뭐죠?

모님
: 9유형의 자아 이미지가 '나는 평화롭다'인 것은 결국 9유형이 집착하는 것이 안정과 평화라는 거야. 때문에 안락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있는 상황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하지.

구민
: 안락하고 편안한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모님
: 물론,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 평화, 안락함, 안정감…. 다 좋은데 여기에 집.착.한다는 거야. 각 유형이 집착하는 것들이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거기에 매여 있다는 게 문제지. 대체로 9유형들이 침착하고 느긋해 보이는데 어때? 구민이 내면도 그러니?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런가?

구민
: 복잡하죠. 딱히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솔직히 복잡해요. 아닌가? 모… 모르겠네요.

모님
: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거야. 어느 9유형이 그렇게 말하더라. 꼭 전화해야 할 데가 있는데 하루 종일 '전화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결국 안 하고, 전화 한 통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고.

구민
: 와, 완전 제 얘긴데요. 실은 아까 여기 오면서 버스를 탔는데요. 커브 돌자마자 햇빛이 쫙 들어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계속 직진이었는데 속으로 '자리 옮겨야지. 옮겨야지.' 하다가 내릴 때까지 그냥 있었어요. 이런 건가요?

모님
: 그래, 그래서 9유형들은 비폭력적인 힘을 쓰는 사람들이야. 중재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꾸물대고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고집을 부려 수동적인 공격을 한다는 거지.

구민
: 가만히 있는데 그게 어떻게 공격이 되나요? 저 자신이 별로 행동하는 게 없는데 공격이라구요?

모님
: 그래서 수동적인 공격이라는 거야. '나는 한 게 없다'고 하지만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 딱히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하지 않을 수 있잖아. 9유형들의 수동적 태도가 오래갈 때 다른 사람을 화나게 만들고,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주로 공격적인 유형들이겠지) 폭발하게 만든다고 해. 결국 9유형들이 그렇게도 지키고 싶은 평화는 가만히 문제만 안 일으키는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지.

구민
: 조금 어려운데요. 약간 알 듯도 하고…. 음… 그런데 좀 쉽게 설명해 주시면…. 제가 아까 제 속이 복잡하다곤 했지만 그건 그냥 뭐랄까? 가끔 저를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없을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구요. 실은 제가 단순한 사람이에요. 모님.

모님
: 구민이 마음이 좀 상했나? 유형의 어두운 부분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구민이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는 걸 계속 생각하면서 들어줘. 알았지? 늘 언제나 무균질의 평화를 일구고 싶은 9유형이 회피하는 건 갈등과 대결이야. 9유형들이 저항이 가장 적은 방향을 선호하고, 누군가 나서서 선택한 일에 묻어가곤 하는 게 아마 갈등과 대결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예일 거야. 갈등이 저절로 해결되거나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며 끝까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구민
: 아, 모님! 진짜 저는 싸움이나 그런 복잡한 일이 닥치면요 그냥 스위치가 나가는 것 같아요. 저번에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싸움을 하더라구요. 신기한 건, 싸움이 일어나니까 거의 자동적으로 제 귀가 막히는 느낌인 거예요. 제 몸에는 갈등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나 봐요. 감지되는 순간 모든 스위치가 나가요.

모님
: 와, 그 표현 기가 막히다. 하하하. 그래서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일이 벌어지면 9유형들이 잠으로 많이 도피한다고 해. 회의하다 의견이 안 맞아서 언성이 높아지면 바로 팔짱 끼고 눈 감는 사람들? 눈 감으면 바로 코 고는 사람들? 흐흐흐….

구민
: 으아, 진짜요? 부끄럽다. 제가 잠의 왕자잖아요. 복잡할 땐 자는 게 딱인데….

모님
: 복잡할 때는 잠으로 도피하는 게 딱이고, 더 근원적인 내면의 갈등을 보고 싶지 않아서 쓰는 9유형의 방어기제는 잠보다 깊은 혼수상태, 최면상태라고 하지.

구민
: 풉! 혼수상태요? 이거 원래 9유형 설명에 있는 건가요, 절 놀리시는 건가요? 제가 대체로 정신줄을 놓고 있긴 하지만 혼수상태는 너무 심한 표현이신데요…. 그러잖아도 실은 어젯밤에 아버지께 또 한마디 들었어요.

모님
: 저런…. 취업 문제 때문에?

구민
: 네.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는 아버지는 제가 너무 답답하신가 봐요.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일단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열심히 안 한다고 속상해 하세요.

모님
: 구민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뭐야?

구민
: 글쎄요…. 그걸 잘 모르겠어요. 사실 웹디자인 쪽이 좀 끌리긴 해요.

모님
: 아, 그래서 작년인가 언제 학원 다니겠다고 하지 않았니?

구민
: 그러려고 했는데요. 제가 그걸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아직….

모님
: 9유형의 근원적인 죄가 뭔지 아니?

구민
: 아까 읽어봤는데 게으름이 더라구요. 그런데 모님, 저 그렇게 게으르진 않아요. 정리도 잘 하고…. 제 방에 한번 와 보세요. 남자방치고 깨끗하다고 하는데….

모님
: 하하하. 그런 의미의 게으름이 아니야. 뭐랄까? 삶 전반에 대한 게으름이지. 누울 수 있는데 왜 앉아? 앉을 수 있는데 왜 서 있지? 하면서 쉽게 살려고만 하는 것? 말하자면 자기 계발에 태만한 자세 같은 것들. '그걸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라고 너 스스로 말하잖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남이 이끌어주길 바라고, 밖으로부터 자극이 주어지길 바라지 않니?

구민
: 아버지가 제게 답답해 하시는 그런 얘기들이네요. 저도 이런 제가 싫어요. 모님.

모님
: 결국 9유형들의 게으름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시시한 존재로 여기는 '자기 비하'라는 함정에서 오는 걸 거야.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지.

구민
: 그런데 모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아까 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자기 비하'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로 낮게 생각하는데, 누구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저희 아버지처럼 답답해 하시는 거요?

모님
: 에니어그램 여정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자신의 유형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은 물론 결국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해. 나는 구민이가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화합하는 게 참 부러워.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난다. 헌데, 그 빛에만 만족하고 있으면 그 빛이 어느 새 어두움이 되기도 해. 평화에 매인 동기가 '갈등'을 회피하는 것임을 알고 인정하고 순간순간 멈출 때 구민이의 빛이 진실로 아름답게 빛나는 거지. 갈등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온몸으로 받아내고, 때로 나를 깨뜨리고 변화시켜서 얻는 게 진정한 평화일 거야.

구민
: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저를 깨뜨리고 변화시키는 걸요. 제겐 너무 어려운 일이죠.

모님
: 못하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9유형이 맛보는 성숙의 열매는 행동인데, 네가 단지 '이제부터 행동하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9유형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지. 말하자면 네 평화유지 자동시스템이 지나치게 작동된다고 느낄 때마다 멈추고, 멈추는 그 순간 너를 지으시고, 네 이름을 아시는 그 분의 손을 잡는 거야. 그거면 되는 거야. 참 쉽죠잉?^^ 쉽고도 어려운 길, 그 길을 우리 함께 걸어가자.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8

 

 

 

모님 : 어서 와라. 오필이. 오랜만이네. 주일 날 먼발치에서는 보는데 얼굴 보고 얘기한 지가 꽤 됐구나. 잘 지냈어?

오필 : 네. 아, 뭐... 저는 지난 번 육미 얘기나 칠규 얘기를 비롯해서 모님께서 들려주시는 에니어그램 이야기 계속 보고 있었어요. 뭐... 그래서 오랜만에 뵙는 느낌은 아닌데요.

모님 : 그렇구나. 너 지난 번에 보니까 <내 안에 접힌 날개> 보는 것 같던데 다 읽었어?

오필 : 예. 다 읽긴했는데요. 잘 모르겠더라구요.

모님 : 뭘 잘 모르겠다고? 에니어그램을? 아니면 너의 유형?

오필 : 둘 다요. 모님께서는 제가 확실히 5유형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님 : 왜 아닌 거 같애?

오필 : 아뇨. 책을 읽는데 5유형에 가장 가깝기는 하더라구요. 그런데 사람을 아홉이라는 유형 중 하나로 규격화해서 넣는다는 것이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 안에는 사실 3유형처럼 성공하고 싶은 욕구도, 9유형처럼 평화롭고 싶은 욕구도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저를 완벽주의자 (완벽주의자는 1유형이죠?) 라고도 해요.

모님 : 에, 지당하신말씀입니다. 호호호호. 오늘 나눌 얘기가 흥미진진하겠구나. 일단 커피 한 잔 하면서 얘기 계속하자. 잘 볶아져서 맛이 꽉 찬 느낌의 탄자니아AA가 있단다. 커피 괜찮지?

오필 : 그럼요.

 

 

오필 : 좋은데요. 탄자니아가 헤르만 헤세가 좋아해서 유명해졌다는 커피 아닌가요?

모님 : 오, 맞어. 깔끔한 산미에 단맛과 적당한 쓴맛까지 조화로운 가장 아프리카적인 커피지. 개성이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야, 오필이 같은 커피다. 개성이 강하면서 부드러운... 호호. 오필이 커피를 좀 아나보네.

오필 : 아니예요. 잘 몰라요. 커필 좋아해서 자주 마시다보니 아주 조금 신선한 커피의 맛이 뭔지는 알겠더라고요. 그 정도예요.

모님 : 겸손하기는.... 우리 청년부 공동체의 ‘지성’인 오필이를 모님이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겸손한 오필이가 널름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지적이고, 아는 것이 많고 현명한 오필이.

오필 : 저의 자아 이미지 말씀하시는 거죠? ‘나는 현명하다’ 대신 ‘나는 현명하고 싶다. 많이 알고 싶다’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모님 : 그러니까 말야. 자아이미지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여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오필이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 어떻게 표현해도 맞을거야.

오필 : 저는 제가 한 없이 복잡하게 느껴져서 저 자신을 쉽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모님 : 내가 설명해줘?^^ 객관적으로 오필이의 인상이랄까, 긍정적인 특성이라면 지적이면서 사려깊다?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잖아. 현실을 객관적으로 예리하게 관찰하고...

오필 : 그.... 그런가요?

모님 : 관찰한 것들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착착 쌓아두지. 그러니 말없이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들어주잖아. 얘기를 했다하면 진중하고 통찰력 있는 얘기들을 하고...

오필 :(피식_소리 안내고 웃기) 진중하고 통찰력 있는 얘기요? 저는 청년부 아이들과 함RP 있을 때 잡담이나 의미 없는 얘기가 무성할 때 로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어요. 대화에 낄 수도 없고요. 그럴 때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님 : 낄 수 없다기 보단 끼기 싫지? 큭큭큭... 시간이 아깝다거나 시간이 허투루 보냈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그러면 오필이는 그 시간에 뭘 하는 게 좋아? 뭘 하면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들까?

오필 : 글쎄요. 혼.자.서. 생각을 정리한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뭐 그런거요?

모님 : 5유형들이 집착하는 것이 ‘지식(아는 것)’이라고 하지. 모든 것을 자세히 분명하고 올바르게 알게 되면 삶이 보장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더 알고, 완벽하게 알면...

오필 : 그...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모님 : 그거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더 알아야 한다는 느낌에 매여 있다는 거지. 때문에 현실에 뛰어들 수 없고. 그래서 평생을 준비모드로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오필 : 준비모드라구요? 평생을요...... 맞지만 비참하게 들리네요.

모님 : 언젠가 그런 얘기 했었지? 웬만하면 버럭 화내는 일이라고 없는 오필이가 노크 없이 방문을 벌컥 여는 행동에 불같이 화를 내놓고 난감했던 적이 있다고.... 아직 더 관찰하고,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것이 5유형에게는 필수잖아. 헌데 이것을 침해하는 것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봐. 결국 이게 5유형의 집착. 알아야 한다. 더 알아야한다는 ‘지식’에의 집착에 맞닿아 있다는 거지.

오필 : 제 시간과 공간을 예고 없이 치고 들어오는 것 참기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저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님 : 그 공간 오필이의 내면에 있는 거 아니야? 5유형들은 자기만의 내적 공허감느끼고 그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으고, 관찰한다고 하지. 그게 5유형의 회피라고 설명해.

오필 : 공허감이라고요? 공허감이라.... 공허감을 느끼죠. 그런데 공허감이 뭐죠? 외로움 같은 것이요? 그건 아닐텐데. 딱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공허의 심연 같은 것이 제 안에 있죠. 그건 뭐랄까?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표현하신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집에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모님 : 그래. 그 공허감을 채우려는 희망을 안고 5유형들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을 모으고 가지고, 축척하려 한다고 해. 생각, 지식, 관념 등을 축척할 뿐 아니라 책, 우표, 낡은 신문, 빛바랜 편지 등등... 하이튼 수집에 대한 갈망이 강하다지.

오필 : 아, 그게 저만 그런 게 아니었나요? 어릴 적에 우표를 열심히 모았고, 최근까지도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가지고 있긴 하죠. 유형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모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모님 : 아, 물론! 수집광들은 다 5번이라는 게 아니라 5유형들이 집착과 회피에 맞닿아 있는 행동이 그럴 수 있다는 거지. 5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탐욕(인색)이야...... 라고 말하면 펄쩍 뛰겠지? 하하. 어, 표정 하나 안 바뀌네?

오필 : 펄쩍 뛸 것 까지는 없지만 책을 보면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지나치게 검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탐욕이라는 건 좀....

모님 : 자신을 내놓기에 인색하다는 거야. 돈, 시간, 일, 심지어 말까지도 절제하며 나누지 않는다는 거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많이 가지고 있는데 ‘난 아직 몰라’라며 나누지 않는 게 탐욕이라는 거야. 오필이 지금 박사과정 하면서 공부 잘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세미나 수업 같은 거 할 때 발표 잘 해?

오필 : 발표요? 아, 대체로 제가 발표하고 나서서 얘기할 만큼 공부가 돼있질 않아요. 실은 제가 보기에 아직 충분히 공부가 안 된 아이들이 토론할 때 나서고 그러면 좀 같잖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모님 : 오필인 다 아는 뻔한 얘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나대는 인간들이 많지? 큭큭큭..

오필 : 나누지 않는 것이 탐욕이고 인색이라구요? 저는 왜 그럴까요? 나누면 저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걸까요? 나누면 아까 말씀하신 그 공허의 심연을 겪게 될까봐요?

모님 : 그러게. 잘 통찰했네. 그 두려움에 5유형들이 쓰는 방어기제가 후퇴(거리두기)야.

오필 : 인정합니다. 거리두기, 제가 하는 거죠. 음... 말하자면 제가 생각해 봤는데 저는 감정적으로 얽히는 것이 두려워요. 아니, 감정 자체가 두려운 것 같아요. 이건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모님 : 그래서 어느 5유형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감정으로 다가오면 물미역이 자신을 감싸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구나.

오필 : (픽! 소리 없는 웃음) 젖은 창호지가 몸에 감기는 느낌이랄 수도 있고요.

모님 : 하하... 젖은 창호지라! 그 정도란 말이지. 그런데 반대로 들이대는 물미역의 입장은 어떨까? 5유형들의 거리두기나 물러남이 상대에게는 지나치게 냉정함으로 비쳐진다는 거 아나? 5유형들은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거리두기에 많은 상처를 받아.

오필 : 여자 친구에게 많이 들었던 얘기예요. 옆에 같이 있을수록 외롭게 느껴진다고요. 정말 제 문제인 건 알겠는데 글쎄요.... 풀기가 어려운 숙제예요.

모님 : 그래. 당장 오필이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야. 오필이로서는 그닥 나쁜 의도가 없는, 즉 유형에 충실한 행동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다 해도 큰 걸음이지.

오필 : 대화를 나눌수록 제 자신에 대해서 더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도대체 5유형은 재미없고 매력이 없는 번호 같아요.

모님 : 이 시점에 웬 자기비하냐! 오필이가 존경하는 본회퍼가 성숙한 5유형이라는 거 알아? 어릴 때부터 책벌레였으며 젊은 나이에 최고의 신학자였던 그 분이 히틀러 암살을 모의하는 단체에 가입했어.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 감옥에서 쓴 글의 한 대목이야. ‘가능성을 탐색하지 말고 용감하게 현실을 붙잡을 것. 자유는 사유의 비상이 아니라 오직 행동 속에 있다’

오필 : 아.......

모님 : 오필이가 그렇게 추구하는 의미는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적인 것에 있을 수도 있어. 아니, 적어도 오필이에겐 그럴거야. 아직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고,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느껴도 삶에 뛰어는 것 말이야. 진리이며 신비이신 그 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지. 그리고 당신의 손을 더럽히면서 병든 인간에게 손을 대고 만지시면서 치유하셨어. 오필이는 실제로 행동하고 관계맺음으로 진정한 객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쉽지 않겠지. 내가 마음과 힘을 다해서 기도해주고 언제든 도와줄게.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더 명확해지고 더 가벼워 질거야. 힘내.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7

 

 

칠규 : 우리 모니이~임. 안녕하세요. 우하하하하.

모님 : 그래, 우리 칠규 어서 와라. 너 아까 전화했을 때 진짜 사거리였어? 아니었지? 너!

칠규 : 빙고! 하하하하. 어떻게 아셨어요? 실은 올림픽도로 빠져 나오던 중. 하하하. 그게요 모님, 약속은 원래 깨지고 미뤄지라고 있는 거거든요.

모님 : 어련하실라구요. 어이구, 저 자동화된 합리화! 덥지? 커피 아이스로 줄까?

칠규 : 네, 모님. 그거 있잖아요. 캬라멜향 나는 달착지근한 아이스커피요. 예전에 해주셨던 그 커피 주시면 안돼요?

모님 : 안되긴. 근데 너 요즘 몸 만든다며. 설탕 든 커피도 마셔?

칠규 : 아뇨, 평소엔 안 마시는데요 오늘 하루쯤 다이어트는 넣어두려고요. 하하하하.

 



칠규
: 와, 대~애박! 진짜 맛있어요. 모님, 저 이거 다 마시고 한 잔 더 마셔도 되죠?

모님 : 그래. 맛있는 건 참을 수가 없지?^^ 너 어제 친구 결혼식 사회는 잘 봤어? 결혼식 사회는 처음이라고 했지?

칠규 : 완전 다 쓰러졌어요. 진짜 재밌었어요. 하객들, 주례선생님도 엄청 근엄하신 분인데 쓰러지셨다니깐요. 진짜 진행 잘 했어요.

모님 : 푸하하하. 자기 입으로 대놓고 잘했대. 너 오늘 나랑 얘기하면서 ‘진짜, 대박, 완전’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나 세 봐야겠다.

칠규 : 제가 그 말을 그렇게 많이 쓰나요? 암튼 결혼식 진짜 대박이었다니까요. 빵빵 터졌어요. 왜 웃으세요? 진짜예요.

모님 : 알았어. 진짜야. 우리 칠규가 마이크 잡았으면 분위기 바로 떠주는 거지 뭐. 썰렁하게 식어가는 분위기 확 불지펴주는 사람이 칠규잖아. 7유형 칠규의 달란트지.

칠규 : 바로 강의모드로 가시는군요. 계속해 주세요.

모님 : 계속 칭찬을 하라는 거지? 7유형의 자아 이미지, 즉 7유형들이 외부세계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는 이거지. 나는 재밌는 사람이다. 행복하다. 멋지다.

칠규 : 아니, 그렇게 드러내고 싶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니까요.

모님 : 으이구, 알았어. 알았어. 7유형들,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주변에 에너제틱한 힘을 부여하는 다재다능한 사람들이야.

칠규 : 저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재롱둥이란 말 많이 들었어요. ‘기쁨 주고 사랑받는~’ 이거 제 로고송 이예요.

모님 : 그래. 모든 유형이 그렇듯이 이렇게 밝은 면 뒤에는 그림자 같은 집착이 있기 마련인데 7유형은 쾌락과 재미에 집착을 하지.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 쾌락과 재미야. 동의하니?

칠규 : 뭐든 재밌는 게 좋은 거 아녜요. 강의도 재밌어야 쏙쏙 들어오고, 설교도 웃기는 걸 빵빵 한 번씩 날려줘야 졸립지 않잖아요. 저는 뭐든 재밌고 웃기게 해주는 건 기본적인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모님 : 그러니까 지루한 건 최악이지?

칠규 : 그, 그렇죠. 그리고 저는 슬픔과 좌절에 싸여 있는 건 믿음이 없는 것 같이 느껴져요.

모님 : 강의든 설교든 심지어 사람이든 지루해지면 바로 끊고 싶지?

칠규 : 사람이요? 아, 모님 인간관계에서 말이죠. 저는 제가 사람들과 진심으로 관계 맺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친구 놈들이 그런 얘길 해요. 제가 어떨 때 너무 차갑대요. 사람 좋은 것 같지만 영 속 깊이 가까워지질 않는다면서요. 제가 그렇게 보이세요? 저는 따뜻한 사람인데…….

모님 : 대체로 7유형들의 인간관계가 피상적으로 느껴져. 관계 자체보다는 관계 안에서 얻어지는 재미(그 재미가 각각의 7유형마다 다르게 해석되겠지만)가 중요하니까. 사실 그렇지 않니? 사람 좋아하지만 같은 사람을 아주 오래 만나진 않지 않아? 왜? 같은 사람을 오래 만나면 결국 그 사람의 슬픈 얘기도 들어야 하니까.

칠규 : 어...어... 그런가? 영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말에 팍 찔리긴 했어요. 그런데 그게 슬픈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동기라는 말씀이죠?

모님 : 재미에 집착하는 7유형들이 회피하고 싶은 건 고통이야. 인생의 슬픔, 어려움, 갈등, 불쾌함 등을 악덕으로 여기면서 멀리하려 하지. 그래서 7유형들이 그렇게도 ‘긍정의 힘’에 열광을 하는 것일 거야. 아까 말한 친구관계 역시 ‘고통스럽지 않은 지점까지만 관계 맺자’는 거 아니겠어?

칠규 : 대박! 모님, 레알 귀신이신데요. 그랬던 것 같아요. 진짜. 저는 저 붙들고 힘든 얘기하면서 찔찔거리면 그게 참 싫어요. 그래서 바로 노래방 끌고 가서 신나는 노래 불러주고 그랬거든요.

모님 : 현실 즉, 지금 여기에 산다는 건 사실 고통이잖아. 7유형들이 ‘나는 행복하다. 즐겁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엔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과장된 공포가 있을 거야.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를 상상하는 것에 열광하기도 하지. 또 다양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현실로부터 도망가기도 하고.

칠규 : 하하하……. 계획 세우기요? 아놔, 진짜. 저 기말고사 끝났잖아요. 저는 시험이 가까워 오면 시험공부 계획을 쫙 짜는 게 참 재밌어요. 재미? 괜히 재미란 말 쓰기도 이젠 좀 껄끄럽네요. 하하하……. 암튼요. 그렇게 계획을 세우면 마치 제가 1등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계획을 지키느냐? 물론 못 지키죠. 큭큭큭. 그러면 며칠 있다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되는 거구요. 그러다보면 시험 전 날. 저는 당일치기 체질 이예요. 하하하. 아, 진짜. 여행을 가더라도 계획을 세울 때가 정말 미치도록 좋지 막상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는 귀찮게 느껴질 정도예요. 이게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거라고요?

모님 : 이상주의나 계획세우기 등 머릿속으로만 도망가는 게 아니라 실제 일상생활에서도 7유형들은 장례식이나 병원 같은 곳을 가는 것도 힘들어 하지.

칠규 : 그, 그래요? 싫어한다기 보다는 가급적 안 갈 수 있으면 안가고 싶었다는.... 헐~

모님 : 예, 됐고요. 그게 그거고요.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어. 십자가의 고통은 스킵하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은 없다는 걸 7유형이 알아듣기 시작하면 한 걸음 크게 내딛는 게 될 거야.

칠규 : 모님, 저 정말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실은 모님께 약속했던 거 못 지켰어요. 그 술자리 가지 않겠다고 했었잖아요. 저 거기 갔어요. 게다가 어느 순간 제가 2차, 3차를 주도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순간이 되면 브레이크가 걸리질 않아요. 에라, 모르겠다. 오늘까지는 끝까지 가보자 하게 돼요.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모님 : 으이구, 솔직한데다 선수까지 쳐버려서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두칠규!

칠규 : 죄송해요. 이게 진짜 마지막이었어요. 정말 이젠 안 갈 거예요.

모님 : 7유형의 근원적인 죄가 뭐라고 했지?

칠규 : 무절제, 폭식, 방종이라고 하셨었죠. 무절제는 좀 알겠는데요. 저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안잖아요. 폭식이 근원적인 죄라는 게 좀 그렇지 않아요?

모님 : 내 눈을 똑바로 봐(찌릿!). 정말 많이 안 먹어? 니가 정말 맛있고 근사한 것도 절제하면서 먹을 수 있다고? 놀래지마. 농담이야. 무절제라는 키워드로 폭식과 방종을 이해하면 돼. 7유형들은 ‘좋은 것은 언제나 많.을.수.록. 좋다’라 하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사고……. 좋은 것에 대해서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싶어 하질 않아.

칠규 : 아, 맞아요. 저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 고문 이예요. 그렇게 각각 좋은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완전 갈등 쩔어요. 남기더라도 한 그릇 씩 두 개 다 시켜서 먹고 싶다니깐요. 그래서 한 그릇에 반반씩 주는 짬짜면이 나왔을 때 완전 열광했잖아요.

모님 : 누구보다 지혜롭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찬란하게 누린 솔로몬 왕을 생각해보자. 솔로몬의 궁에는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이, 많이, 많이 있었는지 찬찬히 성경을 읽어봐라. 무엇보다 솔로몬이 좋아했던 여자! 바로의 딸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모압 여자, 암몬 여자, 에돔 여자, 시돈 여자, 헷 여자도 좋아했대(왕상11:1). 천 명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고, 그 아내들은 결국 그 지혜로운 솔로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 우상의 산당을 짓게 만들었고, 망하게 했어. 천 명의 아내를 소유하기 까지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지겠다는 솔로몬의 무절제가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거야.

칠규 : 휴우……. (한숨) 다다익선이라는 게 독이 될 수 있는 거군요. 7유형에게는, 아니 적어도 저에게는요.

모님 : 칠규야. 네가 고민하고 결심하는 것들 말이다. ‘오늘은 우울하니까 딱 한 편만 보고 다시는 안 봐야지. 딱 오늘만 가고 안 가는 거야. 이거만 사고 다시는 안 사야지’ 그러면서 또 다시 무너지곤 하는 지점 말이다. 무절제한 삶을 끊어버리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하는 것도 필요해. 하지만 그 보다 먼저 네 영혼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텅 빈 공간이 있음을 알고 인정해야 한단다. 그 공간은 온갖 좋은 물질적인 것, 멋진 것, 즐겁고 행복한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어. 6유형이 안전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규칙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여 그 공허함을 메우려하는 노력과 같지. 채우려 할수록 목마름만 더할 뿐이야. 그 공간을 맞닥뜨리는 것이 두려워 지레 재미와 신나는 것으로 내달리지 않고 고통스런 공허감을 네 것으로 받아들일 때 넘치도록 채우시는 그 분의 은혜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말로 하기 쉽다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만.....

칠규 : 휴우, 우리 모님 또 나를 헷갈리게 하시며 고통 가운데 밀어 넣으신다. 일단 알겠어요. 모님, 너무 복잡해져서 뇌에서 과부하 걸리는 소리가 나요. 이 맛있는 커피나 한 잔 더 주시면 마시고 가서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볼게요.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 -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6 

 

 
☆ 모님, 너무 힘들어요

모님, 안녕하셨어요. 뵌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문자도 아니고 카톡도 아니고 뜬금없 메일을 드려요. 주일에 뵈었을 때 힘든 일 있냐고 물으셨죠? 괜찮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제가 괜찮지가 않나봐요.ㅠㅠ 솔직히 씀드리면 요즘 매사에 의욕도 없고 힘이 들어요. 딱히 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지난번 모님을 뵙고 난 이후 서서히 마음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맞아요. 늘 근심 걱정에 휘둘리며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면서 마음에 바람 잘 날 없이 살고 있는 게 저예요. 그리고 그걸 명확하게 짚어주시니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나를 어쩌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모님 MBTI 검사해주시고 유형을 설명해 주실 때는 정말 속이 후련했거든요. 남과 다른 모습들에 대해 열등감에 시달리던 제가 그야말로 부족한 점을 ‘다른 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게 없는 자질들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내향형이고, 세심하고 꼼꼼하며 책임감 강한 나를 좋아해야겠구나’하고 말이요. 헌데 이제 와서 저 자신의 장점들이 나쁜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려요.ㅜㅜ(죄송해요.) 심지어 ‘죄’라고 말씀하시는데… 뭐 그리 죄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맞아요. 제 안에서 저를 움직이는 큰 힘은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 될까 두려워 늘 대비하고, 그러고도 하는 걱정 근심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을 수가 어야죠.ㅜㅜ 그러지 않을 방법을 모르겠는데 ‘죄’라고까지 하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것도 제가 6유형인 탓일까요? 모님께 실망을 드리는 말씀이 아닐까 싶어서 망설여졌지만 늘 그렇듯이 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실 줄 믿고 잠 안 오는 밤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봤어요. 제 맘 아시죠? 모님. 답신 기다려도 되겠죠?^^ 그럼, 안녕히 계세요.

림.

 

☆ RE : 모님, 너무 힘들어요

육미에게.

하루 종일 비가 오는구나. 이렇게 비오는 날에는 커피 한 잔할 수 없지. 구수하고 달달한 커피가 땡겨서 오랜만에 봉지 커피를 하나 뜯었다. 가끔 내가 인스턴트 커피, 것두 프림 설탕까지 넣은 커피 마시는 걸 보면 ‘자칭 바리스타께서 이런 커피도 마시냐’며 놀라더라만.^^ 내게 황홀한 커피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일명 ‘삼박자’ 커피가 난 여전히 싫지 않아. 달달한 커피 한 잔 하면서 육미의 메일을 다시 읽으며 내적인 여정을 되돌아본다. 육미가 겪는 내면의 전쟁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더더구나 6유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해주고 싶구나. 나도 지나온 길이라는 얘기고, 오늘은 그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

 

MBTI를 만났을 때

MBTI를 접한 지가 10년이 훨씬 넘었구나. 웃기는 얘기 하나 해줄까? 처음 MBTI 검사를 했을 때 ‘내향형’으로 나왔단다. 맞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니가 무슨 내향형이냐
외향형이 확실하다는 거야. 내가 그 친구와 얼마나 싸웠는지 아니? 것두 진심으로 화를 내면서 ‘나는 내향이다’ 주장하면서 말이야. 지금 네가 나를 알다시피 내가 도대체 어디를 봐서 내향형이냐?^^ 생각해 보 당시 나는 ‘외향형’을 ‘나대는 사람, 남을 통제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애. 그게 비난으로 들렸나봐. 나의 외향적 에너지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중에 내가 외향형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더라고. 내향형이라고 눈물겹게 우겨대던 자기방어에서 놓을 뿐 아니라,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의 간극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으니까. 말하자면 크게 성숙의 한 걸음을 내디딘 때였지. 심리유형 도구가 주는 일차적 유익은 나 밖으로 나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인 것 같아. 그야말로 남과 다를 뿐인 일부분 때문에 열등감에 빠, 내가 잘못 이름 붙인 용어들에 민감해져 불필요하게 나를 방어할 때 좋은 처방이 될 수 있. 무엇보다 내게 있는 성격적 특성이 나만의 달란트라는 것을 인정할 때 한껏 자유로워지는 것 .

암튼, MBTI를 친구삼아 짧지 않은 시간 내면 여행을 하며 자타가 함께 인정하는 내 유형(true type)을 찾았어. 마음과 행동은 훨씬 자유로워졌어. ‘내가 원래 익살녀구나~’ 하면서 열심히 재미를 쫓아다니고, 분위기 썰렁해지면 얼른 빵 터지는 농담 하나 던져 분위기 업 시키고, 누구보다 밝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말이야. 나를 찾았다는 자유를 만끽하며 내 성격의 밝은 면에 충실하며 살았지. 헌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 어떤 은 것이 느껴졌어. 내가 특별한 재능과 사랑으로 공동체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재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었다는 거야. ‘분위기를 띄우지 마라, 친절하지 마라, 칭찬하지 마라’고 하면 죽음인 거야. 그러고 보니, 내 장점 안에 내 공로는 없더라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록 친절, 웃음, 재미, 긍정적인 것과 멋진 것에 지나치게 매여 있는 나를 보게 되었지. ‘아니요’라는 부정적인 말 한마디를 못해서 하루 종일 시어머니 사 노릇을 하고 돌아와 마음 복닥거리던 밤이 기억 나. 맘은 부글거리는데 내색도 못하고 헤헤거리며 ‘괜찮아요’하며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서는 억울하고 화가 나고 견딜 수가 없었지. 그러나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내 행동과 동기의 분열이었어. 내 행동은 사랑 비슷한 것일지 몰라도 내면의 동기는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는 거야.

장점이 있는 그 지점에 바로 내 연약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좌절스러웠어.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 ‘저 사람과 내가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겨 먹었다는데 어쩔 것인가? 정반대 유형인 ESFP와 INTJ는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만나 대화와 삶의 일치점을 찾을 것인가?’ 이러면서 다시 길을 잃었지.

 

나를 만나는 또 다른 길

길을 잃은 그 지점에서 나는 영적으로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가고 싶은 갈망이 커졌어. 그 즈음 에니어그램을 만났는데, ‘너의 빛! 너의 장점! 멋지다! 박수 짝짝짝!’ 이렇게 접근하질 않더라고. 오히려 내가 ‘재미와 긍정’에 매여 있는 것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동기라고 말해
주더라. 조금만 고통스럽고 무거워져도 견디지 못해서 웃기고 웃어버리면서 그게 진짜 기쁨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던 거야. 그동안은 내 유형의 빛을 붙들고 살았다면 에니어그램을 만난 시점부터 내 그림자 또한 서서히 끌어안 갈 수 있게 된 것 같애. 물론 고통스런 작업이었지. 어쩌면 지금의 육미처럼 말이야. ‘내 동기가 고통을 무작정 회피하려는 거라면, 지금까지 내 기쁨이 반쪽짜리라면 나는 이제 어쩌라는 말이냐! 동기가 나쁘니까 기쁘지도 말고 행복하지도 말라는 말이냐!’ 바로 ‘죄’라는 거대한 벽 앞에 맞닥뜨렸어.

‘근원적인 죄’라는 말이 불편하다고 했지? 이 찬송 아니?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나는 오랫동안 이런 류의 찬양은 회심하기 전에 부르는 찬양일 거라 생각했어. 여기서 말하는 ‘죄 있는 자’는 ‘믿지 않는 사람’이겠거니 했으니까. 그러니까 모태신앙인 나는 해당사항 없는 거지. 그 ‘죄’를 도덕적인 죄라고 규정한다 해도 그닥 나에게 유죄판결 내릴 것이 없는 거야. 딱히 눈에 띄는 도덕적인 죄를 지은 건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명령은 좀 많이 어겼지. 그런데 이건 누구나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거니까…. 이런 식으로 보면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할 때 내 자리는 결코 ‘죄 있는 자’의 자리가 아니야.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님 옆에 안타까움과 약간의 자부심으로 힘이 들어간 어깨를 하고 그들을 향해 함께 손짓하고 있었던 거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향하는 길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죄야. 사랑하는 육미야, 죄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은총의 자리란다. 유형의 ‘근원적인 죄’를 통해서 아니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육미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거다. 네가 아무리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도 스스로는 결코 안전해질 수 없어. 책임감 있는 행동이나 미래를 대비하는 걱정과 염려를 당장 그만두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영혼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텅 빈 공간이 있는데 네 유형의 집착으로 그것까지 다 채워보겠다고 애쓰는 걸 멈추라는 거야. ‘혼자서도 잘해요’라며 하나님 손 뿌리친 자리가 유형의 근원적인 죄라면 그저 거기서 뿌리쳤던 사랑의 손을 다시 잡는 거라고. 어렵게 들리니?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내 마음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며 자기방어라는 것을 조금씩 더 깨달아가던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이었어. 기도하면서 돌이켜보니 아주 점수를 후하게 줘도 내가 5% 정도의 선한 동기와 95% 이상의 자기방어적 동기로 살아가고 있더라. 절망적인 그 순간에 내 마음에 울리는 말씀이 있었어. ‘얘야, 너무 놀라지 마라. 네가 깨달은 그것을 나는 이미 보고 있었단다. 너는 너 자신을 속인 5%가 하나님인 나까지 속일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내가 어찌 모르겠니. 얘야, 설령 99.999%가 순전하지 않은 동기였다 할라도 괜찮아.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널 사랑했고, 네 안에 있는 5%의 나를 향한 갈망과 사랑을 보고 그저 기뻤단다. 95톤의 무거운 짐을 내게로 와 내려놓고 쉬어. 깃털처럼 가볍고 쉬운 사랑이라는 멍에와 짐으로 바꿔줄게. 너는 이 깃털 같은 짐 하나만 갖고 행복하게 살아라. 그게 내가 너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MBTI가 열어준 내면의 여행은 내겐 달고 구수한 삼박자 인스턴트커피 같았어. 지금은 신선하 맛있고 유해 첨가물도 없는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지. 그 쓴 걸 왜 마시냐 하지만 신선한 원두로 잘 뽑은 에스프레소의 크레마에 800여 가지 향이 난다는 거 아니? 영성적으로 접근하는 에니어그램은 내겐 당장은 입에 쓰지만 그 깊은 풍미를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에스프레소 같아.^^ 그러나 육미야, 인스턴트든 신선한 원두든 커피는 기호식품일 뿐이야. MBTI든 에니어그램이든, 성격유형적 접근이든 영성적 접근이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 우리의 목적은 ‘사랑이신 그 분’이다. 우리 육미 의문이 좀 풀리고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같이 있으면 예가프 한 잔 내려서 나눠 마시면 좋겠구나. 더 궁금한 얘기들 또 나누자. 평안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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