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복음과 상황>의  커버스토리가 ‘중년의 영성’이었다. 여기에 나란히 실린 내 글과 남편의 글이다. ‘JP&SS의 사랑과 책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함께 기고했던 일이 벌써 20여 년 전이다. 신혼일기를 썼던 지면에 중년일기를 썼다.
 

 

JP&SS의 사랑과 책과 중년 이야기

 정신실


“누나도 같이 가시는 거잖아요. 제가 마음에 담아서 갈 거니까, 지리산에 같이 있는 거예요.” 이런 말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교회 청년들과 지리산 종주를 떠나던 후배 JP가 잘 다녀오라는 내 말을 이렇게 받아쳤다. 말이 없는 친구인데, 했다 하면 이렇구나! 평생 이렇듯 달달한 세레나데를 듣고 살겠구나, 하며 결혼했다. 환상이 깨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기나긴 인생 여정 중 에로스 에너지가 폭발하는 짧은 순간이 있다. 생전 불러보지 않은 세레나데를 부르고 행복을 장담하며 결혼한다. 환상이었기에 다행이지, 음식이고 사람이고 단맛을 안 좋아하는 내가 평생 달달함 속에 살아야 했다면 고통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올해 결혼 25주년을 맞았다. 마리 루티(Mari Ruti)가 말한 바 ‘사랑은 행복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는 25년 치열한 사랑의 시간을 보냈고, 덕분에 꽤 괜찮은 중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결혼 3, 4년쯤 되었을 때 이 지면, <복음과 상황>에 ‘JP&SS의 사랑과 책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는 기회가 있었다. 둘이 함께 쓰는 신혼일기였다. 후에 《와우결혼》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했는데, ‘와우결혼’은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의 줄임말이다. ‘와서 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싸움’을 보라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성격 차이, 재정,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 일과 소명, 부모님과의 관계 등, 부부가 마주하는 주제를 놓고 주고받는 글을 썼는데, 한 번도 화기애애한 탈고가 없었다. 어떻게든 글이 되고 만다는 ‘마감일 마법’ 덕에 매달 결국 쓰긴 했지만, 그만두자, 도저히 같이 못 쓰겠다는 말이 수시로 나왔었다. ‘그만두자’는 것이 결혼이 아니라 기고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마감일 압박과 함께 보이지 않는 독자를 세우고 싸우는 싸움이라 나름 페어 플레이였다. 덕분에 각자 본격 싸움의 기술을 연마했고, 잘 싸우고 난 후에 더 가까워지는 맛도 보았다. ‘화해한 상태로 싸우기’라는 좋은 관계의 원리도 터득했다. 연재를 마친 후의 이야기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잘 싸우고 살았답니다”이다. <복음과 상황> 덕에 사랑을 ‘성장의 문제’로 산 세월을 돌아보며 신혼일기 아닌 중년일기를 쓰는 감회가 깊다. 감사한 마음이다.
 
신앙 사춘기, 무의미의 숲, 중년의 현상
나이 몇 살부터 중년일까. 호르몬의 변화와 함께 완경을 하고, 이후에 오는 몸과 감정의 변화들, 흔히 갱년기 증상을 통해 여성의 중년기를 가늠한다. 중년을 연구하는 한 신부님이 ‘거꾸로 계산법’을 제안했다. 물리적 나이, 즉 살아온 시간보다는 삶을 마치는 시기로부터 헤아리라는 것이다. 태어남이 아니라 죽음의 방향에서 중년을 바라보자는 뜻이다. 일에서 물러나 은퇴하는 시기일 수도 있고, ‘퇴행성’이란 말이 붙는 건강 문제가 생기거나, 삶을 지탱하던 의미나 가치들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때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상실감의 바람과 함께 찾아드는 것이 중년의 위기이고, 그 바람에는 죽음의 냄새가 묻어 있다. 중년 연구가들이 38세에서 60세까지 폭넓게 그 시기를 잡는 것이 이해할 만하다. 몇 살쯤, 어떤 영역의 무너짐과 상실감으로 중년을 맞이했는가는 한 사람 인생 여정의 고유함이 담긴 서사일 것이다. 내게 중년은 꽤 이른 나이에, 몸이나 정서보다 신앙의 위기와 상실감으로 먼저 왔다.
 
정확히 서른여덟이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그 나이 되도록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신앙에의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시작은 미약하였다. 교회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예배에 앉아 있는 것, 특히 설교 듣는 일이 거북해졌다. 화선지에 튄 먹물 한 방울 같았는데 그 거북함이 신앙생활 전반, 아니 삶 전체로 퍼져나갔다. 퍼져나가고 퍼져나가면서 내 마음의 화선지는 무기력과 무력감으로 물들었다. 열정 넘치는 신앙인이었는데, 그 뜨거움은 죄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삶에 생기를 주었던 이전의 것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힘을 내보려 해도, 아무리 힘을 내보려 해도 힘이 나지 않는 상태, 우울증 증상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전에 하던 기도로는 신앙을 이어갈 수 없었다. 교회는 가기 싫고, 설교는 더욱 듣기 싫으니 예전 방식으로는 기도도 하길 싫으니 하나님께 가는 길을 잃은 것이었다. 이러다 하나님께 버림받겠다는, 이미 받았다는 생각으로 좌절이 깊어졌다. 그렇다고 예전 방식의 신앙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했던 기도나 신앙적 열정이 차라리 부끄러웠고, 때로 혐오스러웠다. 적극적으로 뛰쳐나온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로부터 떠나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떠나온 그곳으로 통하는 문이 등 뒤에서 스르르 닫히고 있었다. 앞은 칠흑 같은 곳이라 발을 뗄 수 없었다. 한 발 앞이 낭떠러지인지, 뱀이 득실대는 늪인지, 혹여 빛으로 가는 신작로일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한 발 내디딜 빛은 책에서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둔 밤’이라는 말에서 ‘빛’이 보였다. 16세기 스페인의 영성 신학자 십자가의 성 요한의 책 제목이다. 이 책 《어둔 밤》을 현대적 의미로 해제한 책에서 제랄드 메이(Gerald G. May)가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의 신호들이 놀랍도록 나의 칠흑 같은 시간을 비추어주었다. 여기저기서 이름만 보았던 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데레사의 원저를 읽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낯선 이 책들이 마음에 어떤 길을 내주었다. 등 뒤에서 닫힌 문을 다시 열게 될 일이 없으리라는, 다시는 이전의 신앙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학생이 준비되면 선생이 온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신앙의 어두운 숲에서 길잃은 내게 선생님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16세기 두 저자는 또 다른 중세 영성가들을 끌고 왔다. 또, 시대를 거슬러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낯선 이 글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동시대 가톨릭 영성 작가들에 닿았다. 40여 년 신앙생활 동안 듣도 보도 못했던 보석 같은 책과 스승들이었다. 애써 찾아 만난 것이 아니다. 기도의 길을 찾던 내게 세기를 거슬러 기도의 스승들이 나타나고 찾아오시니 배우고 따를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몇 년을 그렇게 보내고, 그 어두운 나날들에 내 나름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아이의 신앙에서 어른의 신앙으로 가기 위한 변태의 시간, 신앙 사춘기였다. 신앙도 삶도 그 무엇도 의미 없는 무의미의 숲이었고, 중년의 현상이기도 했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역설
30대 초중반에 쓴 JP&SS의 사랑과 책 이야기는 진로와 소명에 대한 고민으로 끝이 난다. 당시 나는 신생학과인 음악심리치료학을 새로 공부하고 기적처럼 풀타임 직장을 얻어 일하고 있었다. 자타공인 천직이었다. 평생 직업으로 기쁘게 일하며 살 일만 남은 것 같았다. 반면 남편은 시민운동을 거쳐, 다시 대학원 공부를 하고, 말씀 묵상지 편집 일을 하면서도 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으로 지냈다. 결국 운명처럼 신대원에 입학했고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실은 내 중년의 위기 또는 신앙 사춘기는 이와 맞물려 있다. 열심 있는 젊은 부부에서 목회자 부부로 갑자기 정체성이 바뀌었다. 교회는 같은 교회였다. 평신도에서 목회자로, 남편의 위치가 바뀌자 덩달아 나의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고갱님’에서 갑자기 가판대 안쪽 판매원 자리에 서게 된 형국이랄까. 정확하게 말하면 판매원의 가족이 된 것인데, 가판대 안쪽의 세계가 무시무시하게 불합리했다. 기도와 예배의 메마름은 그 위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남편은 이제 교회를 지키고, 교회의 제도를 지켜야 하는 전도사-목사의 길 위에 올라선 것이다. 얄궂게도 내게는 이때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담을 넘는 시절이 되었다. 횡적인 담을 넘어 가톨릭으로, 종적인 담을 넘어 중세와 초 세기 기독교로 넘나들며 배우고 기도했고, 급기야 천직이라 여겼던 음악치료보다 영성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
 
신혼일기를 표방한 연재 제목이 JP&SS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과 책’ 이야기인 이유가 있다. 남편과 나를 중매한 것도 책이고, 연애하다 헤어지게 된 사연에도 ‘책’이 있다. 청년부 시절, 후배 JP와 좋아하는 저자가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봉호 교수님과 이현주 목사님이다. 두 분을 같이 좋아하기는 여간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고신 교단의 장로이기도 한, 시대의 도덕 선생님으로 보수성향을 띤 손봉호 교수와 진보 신앙인의 아이콘, 면직된 목사 이현주 목사였으니까.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지! 운명적으로 사귀게 되었다. 초록에 줄이 그어진 무늬만 보고 같은 수박인 줄 알았다. 쪼개보니 빨강 노랑 수박이었다. 생각보다 더 많이 달랐다. 남편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이현주적이었다. 그 진보성이 내게 불안을 유발했다. 반대로 나는 더 손봉호적이었기에 남편에겐 갑갑했던 것이고. 머리형에 활자 중독 커플로서 헤어짐의 위기를 책으로 타계하려 했다. 존 스토트의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함께 읽으면서 타협 지점을 찾아보려 했는데, ‘다름’의 내용만 더 또렷해졌다. 헤어짐이 답이었다. 그 시절 내 마음에 오르락내리락 울리던 노래 가사가 있었다.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김창기의 노래이다. 남편의 개방적 진보적 신학이 버거웠고 두려웠다. 저러다 종교다원주의로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보수적인 신앙 안에서 자란 내가 저렇듯 자유의 욕구가 높은 사람을 감당하긴 어려운 일이라 여겼던지, 헤어지는 어간 자꾸 저 가사를 되뇌었다.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그랬던 남편은 고신 신대원을 나와서 제도교회의 목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사이에 두고 설전을 벌이던 남자친구,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와 존 도미니크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을 좋아하던 그 청년을 떠올려보면 상상할 수 없는 오늘이다. 반대로 ‘구원의 확신’ 같은 것을 따져 물으며 교리의 틀에 남자친구를 집어넣고 싶어 안달하던, 제도권 밖 신앙이 두려워 사랑하는 남자를 온전히 사랑하지도 못했던 나는 신앙 사춘기를 지나며 담을 넘은 여자가 되었다. 기도를 배우기 위해 가톨릭의 여러 기관을 전전하다 결국 가톨릭대학원에 들어가 아빌라의 데레사로 논문도 썼다. 가톨릭 수녀님을 인생의 스승이며 친구로 얻고, 신부님을 영성 지도자로 만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 남편이 뒤늦게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신앙의 위기로 닥친 중년을 지나며 어쩌면 나는 개신교회를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한때 그의 원심력이 버거워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라며 떠나보내야 했었는데. 그가 목사의 이름으로 내 신앙의 구심력이 되어주었다. 모교회 전도사와 부목사, 대형교회 부목사를 경유하여 안착한 남편의 사역지는 이른바 ‘교회 사태’를 겪은 교인들이 세운 교회이다. 냉소와 불신, 특히 목회자에 대한 불신의 터 위에 선 시대적 교회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목사 노릇을 하는 남편의 ‘무너짐’이 내 늦바람을 잠재웠다. 그의 자유와 나의 자유가 화평하게 만나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중년의 온갖 증상을 ‘영성의 바람’으로 알아들을 때, 위기는 기회가 된다.
 
중년의 영성: 내적 자아와의 만남
여성들의 영성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영성이라고 거창한 것은 아니다. 테이야르드 샤르뎅(Pierre Teilhard de Chardin)의 말처럼 우리는 ‘영적 경험을 가진 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가진 영적 존재’이기에, 모든 이야기와 기도는 지금 여기의 자잘한 일상에서부터 시작한다. 희한한 것이, 결혼한 중년 여성들의 일상성찰과 기도는 거의 남편으로 귀결한다. 남편을 위한 기도라는 뜻이 아니다. 하루를 지나며 내 마음에 일어난 온갖 감정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결국 남편이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모 셀럽 목사님이 SNS에 올린 일상 에피소드를 킥킥대며 들려주었다. “여보, K 목사님 얘긴데. 물을 마시다 남아서 나중에 먹으려고 두었대. 사모님이 그걸 그냥 버리지 그러느냐 꾸중(?)을 하시더래.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먹다 남은 물을 바로 버렸대. 그랬더니 아깝게 그걸 왜 버리냐고 또 역정을 내시더래. 어쩌라는 거냐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건, 그냥 남편이 뭘 해도 꼴 보기 싫다는 거야.”라고 툭 진심을 말해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로 병원에 갔더니 갱년기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런 갱년기 증상도 있냐 했더니, 아무 증상에나 갖다 붙여도 갱년기로 설명이 된다고 했다. 남편과의 관계로 가면, ‘이 남자의 모든 행동이 그냥 분노 버튼인 것’에도 갱년기를 갖다 붙이면 설명이 된다. 갱년기의 아내는 화내며 꾸중하시고, 남편은 쫄려서 눈치 보다 삐지고 만다.
 
중년의 영성을 논하며 카를 융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 안에 남성 있고, 남성 안에 여성 있다는 조금 난해한 이론이다. 《무의식의 유혹: 우울한 남자의 아니마, 화내는 여자의 아니무스(원제:The Invisible Partners, How The Male And Female In Each Of Us Affects Our Relationships)》. 이 책의 제목이면 거의 설명이 다 되는 셈인데, 어려우시려나? 무수한 임상 경험을 담아 후려쳐 본다면 ‘화난 여자, 삐진 남자’이다. 여성에게는 여성 호르몬이, 남성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줄면서 상대적으로 여성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남성에게는 여성 호르몬의 작용이 더욱 발현하는 것으로 보이는 때가 갱년기이다. 전에 없던 분노와 힘을 표출하는 아내, 말로 하면 될 것을 삐져서 입 다물고 있거나 우울한 모습을 띠는 남편에 대한 증언이 허다하다. 카를 융에 의하면 중년기 이후의 중요한 과제는 내적인 자아와의 화해이다. 타고난 성별로 사느라 애썼던 여자와 남자는 억눌리고 숨겨졌던 여성 안의 남성(아니무스 Animus)을, 남성 안의 여성(아니마 Anima)을 발현하고 꽃피울 때 온전하고 성숙한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년 이후의 과제이다. 한 여자, 한 남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충족한 존재가 되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각각 자기 안의 이성을 잘 마주하고 살려내면 독립적이고 통합적이며 성숙한 자아가 된다는 뜻인데, 도대체 그 이성은 누구냐고?
 
“누나도 같이 가시는 거잖아요. 제가 마음에 담아서 갈 거니까” 지리산 종주를 떠나며 내게 남겨준 이 말, 나는 이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고백이며 프러포즈였다. 중년의 끝자락에서 다시 새롭게 이 말을 듣는다. 남성의 내면에 있는 여성, 여성의 내면에 있는 남성은 ‘투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외적 세계의 스크린에 구체적인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랑에 빠진 이성이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이성에게서 나는 내 안에 숨겨진 온전성을 향한 에너지를 마주한다. 남편과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때, 그의 무엇이 나를 사로잡았던가 생각해 본다. 대체로 내게 없는 것들이었다. 멋져 보이던 그것이 어느 날 버거움과 두려움이 되었다. 멋지며 동시에 버거운 것을 끌어안고 일상을 살자니 미세한 결핍감과 분노가 조용히 쌓여간다. 중년에 들어서서 허무의 파도가 들이치자 애써 붙들었던 포장지들이 벗겨져 나가고 보니, 남은 것은 ‘꼴비기 싫음’이다. 처음부터 우리가 마음에 담았던 것은 당신의 멋짐이 아니라 내 안의 아름다움이었다.
 
신혼일기를 연재하던 시절에 농담처럼 지은 일종의 필명이 있었는데, 진지남과 익살녀였다. 매달 글을 쓰며 싸우던 사소한 이유 중 하나는 재미와 의미였다. 의미에 치중하여 진지해지는 것이 나는 싫었고, 재미에 집착하여 가벼운 글이 되는 것을 남편은 못 견뎌했다. 식탁에 나란히 앉은 엄마 아빠의 티키타카를 관람하며 요즘 우리 아이들이 놀리며 하는 말이다. 아저씨 개그 던지고 좋아하는 아빠,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화내는 엄마에게 “익살녀 어디 갔어? 진지남 어디 갔어? 그 사람들 어디 가고... 아오, 진짜 안 어울리게 진지녀 익살남이 앉아 있어. 싸우려면 우리 없을 때 싸워.” 신혼일기 후에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잘 싸우고’ 살았던 20여 년 만에 다다른 JP&SS의 책과 사랑과 중년 이야기이다.
 

정신실: 음악심리치료와 문화영성을 공부했다. 인간의 고통은 수선이 필요한 '손상된 자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진정한 자기와의 연결이 끊어진 '소회된 자아'에서 기인한다는 믿음으로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라는 치유와 상담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중년의 끝자락에서

 김종필


중년(中年)이라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거의 끝자락에 다다른 듯하다. 사춘기(思春期)도 시작과 끝이 있으니, 중년기도 그러하지 않을까. 얼른 끝내고 축하파티라도 하고 싶지만, 다 때가 있는 줄 안다. 일상의 매 순간들을 소중하게 마주하며 작은 평화와 작은 기쁨을 건져 올리게 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중년기가 끝나 있을 것이다. 그럼 조금 더 성숙해질까? 조금 더 여유로워질까?
 
내 중년은 아버지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됐다.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그때 나는 16년을 다녔던 교회를 떠났다. 내 청년기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만난 교회였다. 교회를 통해 첫 직장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간사가 됐고, 교회를 통해 신학교에 입학해서 그 교회에서 첫 목회를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두 자녀를 낳았고, 교회에서 살아있는 공동체를 체험했다. 뜨거웠던 시기였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이라는 난관과 마주했다. 아버지는 말기암 판정을 받은 후 40여 일 만에 떠나셨다. 그때 나는 교회와 목회자에게 섭섭함이 점점 쌓이던 차인지라, 내 젊은 날의 전부였던 교회를 사임했다. 그리고 병이 들었다. 열 가지 재앙이 순차적으로 내 몸을 쓰러뜨렸고, 나는 방구석과 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됐다. 마지막 재앙이 끝남과 동시에 내 열정의 시기도 끝이 났다. 그리고 나이 마흔을 맞아 100주년기념교회라는 대형교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 삶과 사역을 활활 태웠던 그 청춘의 열정은 다시 오지 않았다. 처음엔 기도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교회당에서 홀로 앉아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30대의 열정은 두 번 다시 점화되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 돌아가는 목회 일과는 정신없었고,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상이었다. 그러나 내 영혼의 조종실엔 뭔가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들어와 있었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 나올 기회들을 호시탐탐 노렸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마음이 잠시 뜨거워지곤 했기 때문이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고 나면 누군지도 모르는 성도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성도들의 반응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그러다 반응이 없으면 무가치함이라는 쓸쓸한 정서와 실패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많이 받는 기술을 하마터면(?) 터득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좇으면 어떤 결과가 올지를 막연히 알았기 때문인지, 그 선택 앞에서 나는 매번 서성거렸다. 대한민국 40대 남성의 성공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높고 넓은 길로 갈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끝없이 성찰하며 십자가의 낮은 길로 갈지 갈팡질팡했고, 상승의 유혹과 하강의 은혜가 내 조종실을 차지하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그즈음 안젤름 그륀의 <내 나이 마흔>이란 책을 읽었다. 아내가 먼저 읽고 내게도 권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사십 줄에 들어서 생긴 이 무기력이 중년기의 과정이란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중년의 위기는 단지 신체적인 변화가 아니라, 신앙의 여정 중에 결정적인 시점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자기실현을 위해 하나님을 계속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것인지를 결정하는 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청년의 열정이 식은 것은 후퇴가 아니었다. 무기력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들어선 것이다.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골짜기였던 것이다. 중년앓이는 좋은 현상이다.
 
내 지하실의 그림자
중년을 앓는 동안, 나의 성격과 성향을 깊이 성찰하는 일이 잦아졌다. MBTI와 에니어그램 강사인 아내 덕에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성찰하고 인정하는 작업은 실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기 내면의 어두운 지하실을 들여다보는 것은 제정신으로 하기 어렵다. 자칫 자기정죄와 자기혐오에 빠져 염세적이 될 수도 있다. 언젠가 아내가 청년들과 함께 1박2일동안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진행했을 때 일이다. 나는 사람을 번호로 규정하여 분류하고 설명하는 에니어그램 방식이 내심 못마땅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다양한 것을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너그럽게 세미나를 열어주고 옆에서 슬쩍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런 감정은 처음 경험한 것이었다. 아내가 에니어그램 5번을 설명할 때였다. 곁에서 한쪽 귀만 열고 엿듣던 내게 갑자기 수치심이 올라왔다. 평상시엔 잘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숨겨둔 나 자신이 모두에게 까발려진 것만 같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정죄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것 같은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진 것이다. 나는 내가 매우 합리적인 데다가 공정하고 온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고 편견 없이 객관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편견에 빠진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자부했었다. 내 판단은 늘 괜찮았고, 내 주장은 나름 수준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 치우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내 자의식 밑에 숨어 있었던 짙고 음흉한 내 그림자가 드디어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순식간에 늪에 빠져버렸다. 앉아 있어야 할지 나가야 할지 알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내 지하실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 드러난 내 자아를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그 실체를 나의 정체로 인정할 것인지 씨름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아내가 추임새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지금 여기 현존해!” 듣기 싫은 말이었다. 그런데 정말 내겐 심각한 나쁜 버릇이 있었다. 오롯이 여기 머물지 못했다. 자동적으로 내 사유는 미래를 배회했고, 내 앞에 있는 이들과의 마음의 교류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아내와 대화할 때도 대화 그 자체에 머물지 못하고 내 존재의 중심은 항상 미래일로 근심했다. 그때 시계를 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평생 어떤 미래의 순간을 막연하게 동경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내겐 현재가 없었다. 오늘이라는 순간이 얼마나 멋진지 제대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결코 현실이 된 적이 없는 미래로 도피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그건 다른 말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었고, 나 자신에 대한 못마땅한 자기부정이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내 영혼이 반응하고 선택하던 못된 병폐였다. 교회에서 자주 쓰던 비전이라는 말은 내 성취 욕망을 거룩하게 포장한 말과 다름없었다.
 
그런 복잡다단한 시기로 전환되던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죽음이라는 실체가 무서운 냄새를 풍기며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죽음은 무덤덤한 관념 용어가 아니었다. 내 실존에 딱 붙어 있는 실체였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는 존재였기에, 나는 죽음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이제 죽음은 미래의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일이다. 죽음이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질문은 동시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이 되었다. 그러자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죽는다는 것은 삶의 일상적인 서술어가 됐고, 죽음 그 이후에 대한 호기심과 소망도 커졌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읽은 스캇 펙의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이 던진 흥미진진한 질문 덕이다.
 
중년의 위기로 쾌속 진입하던 어느 날, 한 문장이 내 가슴으로 날아와 콱 박혔다.
 
“오늘이 선물이다” (Present is present)
 
그 문장은 ‘지금 이 순간’의 찬란함을 숙고하고 했고, 나는 거기에 머무는 법을 비로소 배우기 시작했다. 죽음 앞에서 그 일이 시작됐고, 에니어그램에 비춘 성찰에서 그 일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바쁘게 일하는 것이 얼마나 해악인지도 알게 됐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으며, 느리게 말하고자 했다. 길가에 핀 들꽃을 들여다보며 쭈그리고 앉는 일도 잦았다. 홀로 벤치에 앉고, 홀로 산행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매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시작에 불과했다. 중년의 진짜 훈련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 네 식구가 함께 식사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 아내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다. 극도로 슬프고 고통스러운 재난이었다. 아들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고, 딸은 성년기로 진입하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나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이기를 바랐고, 기도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허용적이었고, 정죄하지 않으려 했고, 지지하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내 노력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부턴가 식사 자리에 앉으면 나는 계속 가족들에게 상처 주는 일원이 됐다. 나는 보통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대화를 했을 뿐인데, 내 말들은 가족들의 마음을 때리는 방망이가 됐다. 내 성향에 충실한 원인-결과식 대화는 심문과 정죄의 구도를 만들어냈다. 허용적이고 독립적인 내 성향은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귀결됐다. 말을 해도 상처를 줬고, 말을 안해도 상처를 남겼다. 내 존재 자체가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았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가족들과 불화하는 일이 이어지는 듯했다. 하루는 아내와, 하루는 딸과, 하루는 아들과 불화했다. 억울하고 슬프고 화가 났다.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꿈이었는데, 그게 깨지니 삶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배우 (고)이선균이 드라마에서 한 말이었던가, “이번 생은 망했어.”
 
자발적 추락과 은혜로운 상승
툭하면 벽쪽으로 몸을 돌려 일찍 잠들던 내게, 어느날 아내가 책을 추천했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이 쓴 <위쪽으로 떨어지다>였다. 형용모순의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상대로 매우 어려웠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세 번을 읽었다. 왜냐하면 이 책이 중년기의 구렁텅이에 빠진 나를 구출하는 밧줄이 될 수 있겠다 느꼈기 때문이다. 중년기에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방어적인 태도’를 인식하고 버리는 것이었다. 이 말이 무기력한 내 영혼에 새로운 활력과 소망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나름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는, 습관적인 방어적 태도로 일관해 왔었다. 아내가 서운해하면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방어한다. 딸이 화를 내면 내겐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방어한다. 아들이 속상해하면 다른 아빠에 비해 내가 얼마나 나은 아빠인지 설명하며 나를 방어한다. 집에서 그러니 밖에서는 오죽하랴.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그러니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교우들에게 오죽하랴. 방어적인 태도와 말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해명하지 않기로 백번 천번 다짐했다. 속으로는 억울해서 욱할 때도 있지만, 나를 보호하기 위한 해명과 방어의 언어를 멈추고 최선을 다해 수용의 언어인 ‘알겠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억지로 했다. 아니 지금도 의지를 다해 그렇게 말한다. 해명하는 것은 나를 방어하는 것이고 타인을 아프게 하는 것이며 공감이 없는 자의 변명이 되기 때문이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내 성격의 그림자와 지하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식하게 된다. 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부족한 존재였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고뭉치나 꼰대가 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은혜를 갈망하게 된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팽팽한 긴장이 풀리고 관계가 이어진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너그러워지고 용서하게 된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말도 줄어들고, 귀가 활성화된다. 리처드 로어는 “인생 전반부의 임무는 자기 인생을 위하여 적절한 컨테이너를 만드는 것이고 인생 후반부의 임무는 그 컨테이너에 담아서 운반하기로 되어 있는 내용물을 찾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 내용물은 추락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내게 다가온다. “먼저 추락이 있다. 그 다음에 추락으로부터의 회복이 있다. 둘 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이다.” 로어 신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존재로 알아들어졌다. 추락이야말로 위쪽으로 오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에 납득이 됐다. 정말 그랬다. 내가 해명하기를 그치면 나는 한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실패감을 느낀다. 내가 지금껏 자부해왔던 나라는 존재의 장점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온다. 내 평생 빚어왔던 내 자화상이 허물어진 느낌이다. 그러나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그 자발적 추락이 은혜로운 상승으로 연결된다. 형용모순 안에 진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추락하는 것을 허용했다. 적극적으로 추락하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추락이 두려워서 말과 논리와 언어와 자아를 붙들고 다시 해명하고 방어하는 순간, 나는 겉으로는 상승하고 승리한 것 같으나, 진짜 대책 없는 추락이라는 심판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오십견이 왔다. 축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최근 3개월간의 안식월을 맞아 제주도에서 홀로 한달살이 하는 동안 오십견이 고쳐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후비루 증상은 실은 심리적인 이유였다. 아주대 이비인후과에서 받은 진단이다. 그것도 나아졌다. 설교와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인도한 후에 집에 오면 수치심이 몰려왔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니 그늘도 큰 탓이다. 그러나 이젠 사람들의 시선을 덜 의식할 것이다. 너무 잘하려고 스스로 몰아치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나답지 않은 나로 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인 나답게 살 것이다. 그러니 잘 못해도 괜찮다. 반응이 썩 안좋아도 괜찮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아도 괜찮다. 타인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며 그를 축복하는 습관을 기르면 된다.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말을 해도 괜찮다. 솔직하게 즉각 용서를 구하고 성장하기로 마음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성도들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죄책감이 밀려오면,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지나가게 둘 것이다. 존재에 대한 수치심이 차오르면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임을 기억하며 버틸 것이다. 모든 도전을 피하지 않고 직면할 것이다. 받아들이면 괜찮아지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말을 줄일 것이다. 적게 말하고, 천천히 말하고, 부드럽게 말할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일인 줄 안다. 그러나 노인네가 아니라 어른이 되려면 혀를 다스려야 한다. 물론 나는 매일 실패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전진할 것이다.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마음 깊이 감사를 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감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식하게 하는 현미경과도 같기 때문이다.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알고, 마음 중심이 안정적인 평화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중년기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 같다. 그다음은 뭘까. 또다른 새로운 열정일까. 새로운 열정 다음엔 또 다른 위기가 올까. 노년의 위기일까. 큰 질병의 위기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오늘이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김종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육개발원, Young2080<큐티진> 등에서 일했다.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 말씀을 사랑하게 하는 사람, 말씀으로 살게 하는 사람이고 싶은 목사이다. 경기도 분당에서 이우교회를 섬기고 있다. 배우자 정신실과 함께 JPSS라는 이니셜론 2000년대 중반 복상에서 장기 연재를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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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MBTI3

 

안녕, Jung 쌤이야. 너는 네 MBTI 유형이 어때? 마음에 들어? 혹시 되고 싶은 유형이 있어? Jung 쌤은 되고 싶은 유형이 있었어. 내 유형 ESFP가 대략 마음에 드는데, 마지막 PJ였음 좋겠더라고. 그래서 ESFJ를 선망했어. 시작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무리를 하고, 처음 세운 계획을 바꾸지 않고 하나에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J들이 그래 보였거든. “내 이 재능과 성격에 J이기만 했으면 인생 성공인데!” 싶었던. 재미 추구, 긍정적인 것에만 꽂히는 ESFP의 환상 같은 자아팽창이었어. 암튼 부러운 유형이 있지 않아? 부러운 유형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우월한 것으로 보이는 유형도 있어. 그런가 하면 나쁜 유형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거 없다는 말은 지난 번에 했지? 다시 말하지만 MBTI 유형에는 좋고 나쁜 성격이 따로 없다는 거!

 

우리가 MBTI에 이렇게나 꽂히는 이유가 뭘까? 주변에 MBTI 과몰입 친구 하나는 꼭 있잖아. “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내 생긴 그대로 이해받고 싶은 마음 때문일 거야. 한마디로 하면 나는 누구지?” 하는 질문에 답을 찾고 싶은 거겠지. “나는 누구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야.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고. 이걸 묻기 시작했다면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기차에 탔다고 봐도 좋아. MBTI는 이 어려운 질문에 어느 정도의 답을 주거든. 나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면이 있지.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모양을 알려준달까? 그렇다고 MBTI 유형으로 내가 다 설명되는 것도 아니야. 나는 누구이고, 인간이란 무엇이지?

 

얘기가 너무 멀리 왔나? 그런데 필요해. 질문하는 것이 필요해. 성경이 인간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주는 게 하나 있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졌다는 거야(1:26-27).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 모양을 보여주는 MBTI 성격유형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볼 수 있을까? 어떨 것 같아? 나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나를 속속들이 아는 분이시니까 나의 외향성 또는 내향성은 그분의 선물이야. 내 성격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썩 와닿지는 않지?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품에서 외향성과 내향적인 면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물론 영이신 하나님을 인간적 성격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 안에 그분의 흔적이 있으니까!

 

외향형은 밖을 향해 에너지를 쓰면서 동시에 충전하고, 함께 교류하면서 더욱 힘을 얻어.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외향 에너지가 보이는 것 같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주어가 우리, 우리, 우리. 벌써 세 분이 함께 계시며, 창조의 계획을 함께 세우시네. 그리고 바로 행동에 옮기셔. 사랑과 창조적 에너지를 외부로 퍼부어 우주를 만들고 지속시키고 계셔. 그 창조물이 우리 눈앞에 이렇게 있잖아! 봄이 되면 움트는 새싹, 시원하게 내리는 여름 소낙비, 맑고 예쁜 가을 하늘, 솜처럼 내리는 눈. 자연은 물론 내 몸 자체가 창조물이니까 말이야. 이렇게 만들어놓으시고는 , 참 좋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좋아!(1:4)” 막막 표현하시네. 영락없는 외향형의 모습이야. 너의 외향적 능력은 하나님 닮음의 표시야.

 

반면 엿새 동안 창조의 날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어. 활동만 하신 게 아니라, 물러나 쉬기도 하셨구나. 자기 안으로 물러나는 내향형의 향기가 느껴지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일하면 피곤하고 스트레스 쌓이는 한계를 가지셨다는 뜻은 아니야. 하나님은 홀로 충분하신 분이야.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한 분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으로 족하시지. 시끌벅적한 만남, 박수갈채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 혼자 있어도 충분히 좋고 행복한 거야. 그게 내향형의 에너지야. “숨어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하곤 하지. 티 내지 않고 사랑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계시는 분,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 말이야. 외향형들이 내향형에게 표현을 안 하니 도통 그 속을 모르겠다고 하는데. 가만히 존재로 함께해 주는 친구가 주는 위로 알지?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거든. 어쩌면 표현되지 않는 사랑이 더 깊고 클 수도 있어. 너의 내향형 능력 역시 하나님 닮음이야.

 

말 나온 김에 두 번째 지표인 감각형(Sensing) 하나님, 직관형(iNtuition) 하나님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계속 창조 이야기를 해보자고. 이 놀라운 세상이 누구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거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는 분, 흑암과 혼돈 속에서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아무것 없는 데서 기발한 상상력을 내는 직관형의 선물은 이런 하나님을 닮았네. 창조세계는 또 얼마나 디테일해? 작은 벌레 한 마리부터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그 생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잖아. 오감을 통해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봄으로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알아내는 감각형의 디테일도 어디에 닿는지 알겠지? 이렇게 보면 MBTI라는 안경으로 내 안에, 그리고 친구 안의 하나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러면 이제 진도를 빼보자고. S-N 설명으로 가봐야지, 라고 정신을 차리니 벌써 끝날 시간이네. 다음 시간에 감각형 직관형 얘길 할게. 두 번째 지표는 학습이나, 전공 선택에 꽤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 다음 시간도 기대해줘. 안녕!

 

<청소년매일성경> 5,6월 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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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거긴 날씨가 어때요? 여긴 엄마가 아는 그 날씨예요. 자주 흐려요. 가득한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흐린 날인 건지 하늘이 늘 뿌예요. 봄이 오는 길목이 험난한 것 같네요. 엄마가 보낸 이 땅의 마지막 시간, 그때처럼 막막한 날씨의 연속이에요. 거긴 날씨가 좋죠?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어렸을 적에 많이 부른 노래 탓인가, 밝고 찬란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으려니 싶어요. 날씨만 상상해도 좋아요. 엄마가 얼마나 싱싱하고 생생하고 행복할까 싶어요. 요며칠 내 마음은 비가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에요. 누구든 툭 건드리기만 해라, 울어버릴 테니, 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장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전 엄마, 라고 부르는 순간 깨달았어요. , 엄마와 보낸 마지막 시간, 그 애달팠던 계절이 도래했구나!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때였죠. 기약 없는 시간, 예측 불가, 면회 불가의 시간이었어요. 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 건물 앞에 서서 올려다보던 창문, 그 너머 하늘이 마냥 흐렸던 기억이 또렷해요. 한 번, 두 번, 세 번. 엄마 없는 이 계절이 벌써 네 번째네요.

 

엄마 떠나고 바로 코로나를 서너 달 앓았던 느낌이에요. 자발적 자가 격리에, 칩거하며 글을 썼어요. 오직 쓰면서 슬픔을 견뎌냈던 것 같아요. 그 몇 달, 엄마 영혼도 미처 여길 떠나지 못하고 내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그리고 나는 죽은 엄마를 팔아서 또 책을 냈죠. 슬픔을 쓰는 일이라고 제목을 붙였어요. 슬픔을 쓰다니, 글로 쓸 수 있는 슬픔이 슬픔일까 싶었어요. 쓰면서도 수치스러웠는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신형철의 책도 있으니 슬픔은 그냥 그렇게 되는대로, 각자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쓰거나 공부하거나 그렇게 마주하는 것인가 봐요. 엄마 없는 하늘,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와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쓰기로 숨을 쉬었어요. 그리고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슬픔을 드러내면 누군가는 같이 울어준다는 것을요. 물론 위험한 일이었어요. 그만 잊어라, 장수하시고 좋은 곳 가셨는데 뭘 그리 유별나게 구느냐, 믿음의 사람이 천국을 소망해야지... 그런 소리가 이미 들리는 듯했고요. 슬픔 앞에서, 아니 모든 감정 앞에서 다들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허둥지둥 내놓는 위로의 말이 많이들 어설퍼요. 어설픈 말은 아무 말이 되어 티슈같이 얇아진 슬픈 마음을 찢어내곤 하고요. 엄마, 그래도 내놓기 잘했어요. 상처투성이 알몸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는데, 말없이 함께 벗어주는 이들이 있더라고요. 어설픈 말 대신 조용히 자기 흉터를 내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드문 공감과 연결에 힘을 얻었어요. 슬픔을 쓰고, 슬픔을 내놓고, 몰래 눈물 훔치던 손들을 맞잡고 보니 내놓길 잘했구나 싶어요. 그래서 엄마, 나는 엄마를 잃고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의 딸로서는 달라졌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새롭게 엄마를 만나고 있잖아요. 엄마도 이미 알고 있죠?

 

슬픔으로 슬픔을 공부했던신형철 교수는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 낸 사람만 바꾼다.’라고 하더라고요. 사건 속에서 감당하고 겪어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감정, 감정이었어요. 슬픔인 줄 알았는데 무기력이었고, 감정이 없는 것 같은 감정이기도, 때로는 분노, 어떤 때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이기도 했지요. 감정의 강이 흐르고 흘러 어떤 대사작용을 일으킨 것이 분명해요. 그해 부활주일 예배가 생각나요. 사상초유, 맞아요! 사상초유의 온라인 부활주일 예배였어요. 엄마 떠난 지 한 달여 지난 때였을 거예요. 노트북 앞에서 멍하니 앉아 예배를 시청하다 설교 후 부르는 찬송에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되었어요. ‘사셨네, 사셨네...’ 이 가사에 왜 그리 화가 치밀던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예수님의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몸의 부활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부활인가. 격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어서 베란다로 주방으로 서성거렸던 거, 엄마 혹시 봤어요? 엄마의 몸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웠었어요. 엄마 목소리,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손등, 그리고 매끄러운 손바닥, 맨질맨질한 이마. 설령 천국에 가서 엄말 다시 만난다 해도 그 그리운 몸이 아닐 것이라는 상상 때문이었는지 부활은 고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즈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천국 소망이었던 거 알아요? 누구든 내 앞에서 천국, 소망... 이런 어설픈 위로를 들이밀기만 해봐라. 완전 무장을 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달라졌어요. 순순한 마음이 되었어요. 천국 소망까지는 아니어도 엄마가 있는 천국을 간절히 그리는 마음이 되었어요.

 

엄마가 떠난 때가 하필 사순시기였어요. 2주기 즈음이에요. 역시 사순기간이었어요. 산책길에 바흐의 칸타타 <Actus Tragicus>를 듣고 있었어요. 귀에는 장송 음악이 울리는데, 내 몸이 담겨 걷고 있는 길은 연한 새순이 돋아난 나무며 풀로 연둣빛의 새봄이 한창이었어요. 죽음의 노래와 폭발하는 봄의 생명력이라니, 부조화로구나 싶었는데, 어쩐지 그 부조화가 나쁘지 않은 거예요. 엄마 돌아가시던 그해 사순시기의 칩거를 생각하면 2년 만의 이 봄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죠. 다시는 생명의 기쁨 따위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았었거든요. 사무치도록 그리운 엄마이지만, 상실감의 텅 빈 자리에 2년 전의 그 슬픔의 타나토스(tanatos)와는 다른 에로스(eros), 즉 생명의 기운이 일렁거렸어요. 귀에 울리는 칸타타의 합창 가사는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이니라(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였죠. 엄마의 때가 얼마나 좋은 때였는지 생각했어요. 낯선 침상에 누워 외롭게 보낸 생의 마지막 시간, 혼자 내쉬었을 마지막 숨을 생각하면 어떻게도 떨쳐낼 수 없는 몸서리쳐지는 안타까움이에요. 사상초유의 팬데믹, 우리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격리상황이었기에 엄마를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어요. 버려진 느낌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거든요. 그 봄, 그 길에서, 엄마의 때는 가장 좋은 때였겠구나, 싶은 거예요.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장 좋을 때였다는 확신이 드는 거예요.

 

바흐의 생은 그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웠대요. 열두 살에 내가 아버지를 여의였던 것처럼. 바흐도 십 대 초반에 부모님을 잃었고, 사랑하는 첫 부인을 일찍 잃었고, 열두 명의 아이를 서너 살이 되기 전에 죽음으로 잃었다고 해요. 부모를, 아내를, 어린 자녀들을 죽음으로 잃고 잃었던 고통이 바흐 음악 곳곳에 흐르고 있어요.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은 여러 죽음과 상실의 얼굴이라니, 그 봄날처럼 찬란한 슬픔이에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 그러나 슬픔과 분노에 매몰되지 않았던 바흐, 그의 음악이 나를 위로하고 만져요. 엄마 떠나고 바흐 음악의 더욱 가깝게 들려요.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이니라.” 만나고, 사랑하고,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 하나님의 때인 것처럼, 헤어지고 슬프고 절망하고 실패하는 때도 하나님의 때예요. 이렇게 받아들이고자 하니 다시 눈물이 나요. 바흐는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함께 곡을 만들었을까요. “평화롭고 기쁘게 나는 떠나네,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내 마음과 정신은 위로를 받았네, 부드럽고 고요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죽음은 나의 잠이 되었네.” <Actus Tragicus>의 마지막 아리아 가사예요.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2:29).”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니 이 무슨 아름다운 우연인가요? 시므온과 안나. 아기 예수님을 만난 두 늙은 예언자를 읽을 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려요. 과부가 되어 팔십사 세가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던 안나,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았던 안나는 꼭 엄마 같다고 생각했죠. “평화롭고 기쁘게 나는 떠나네, 죽음은 나의 잠이 되었네이것은 엄마의 노래예요.

 

엄마와의 이별 사건을 감당해낸 나는 이렇듯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가끔 그 시절 일기장을 펼쳐보면 이 감정이 어디 갔지?’ 싶어요. 저항할 수 없는 감정의 강물에 휩쓸려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기억이 또렷한데, 여기저기 뒤져봐도 그때 그 감정은 없어요. 여전히 엄마 몸이 그립고, 그 손 다시 잡고 싶고, 당장이라도 전화 걸면 딸이여?”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눈물이 차오르지만. 그때와는 달라요. 슬픔의 강물은 부활주일 찬송부르던 때처럼 어느 순간 분노의 물결이 되었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죄책감과 우울로 얼굴을 바꾸며 찾아왔고요. 지금은 그리움이에요. 또렷한 그리움이에요. 신기한 것은 그리움이 차오르는 순간, 엄마를 가장 가까이 느껴요. 엄마,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 듯해요. 아주 잠깐 인간의 몸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가신 이유를요.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예수님의 몸이 되었어요. 그 보이지 않는 몸이 일하기 시작해요. 두려움과 호기로움 사이 좌충우돌했던 베드로의 인격이 변형되는 것을 봐요. 삼 년을 함께 먹고 자고 했던 선생님의 몸이 사라진 자리, 거기서 베드로는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못다 한 삶을 살아요. 이제 선생님의 부재는 현존의 다른 이름이에요.

 

상실의 텅 빈 공간에 슬픔, 분노, 죄책감, 수치심, 허무감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해요. 엄마, 나 는 이제 알아요. 슬픔도 분노도 죄책감도 사랑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요. 베드로에게도 그랬을 거예요. 선생님을 지키겠노라 칼을 휘두르던 호기로움도,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제자임을 부인했던 그 비겁함도, 닭 우는 소리에 나가 통곡하던 배신에의 죄책감도, 밤을 새워 텅 빈 그물을 끌어 올리던 그 무기력과 수치심조차도 선생님을 향한 사랑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엄마, 이제 묻고 싶어요. 물을 수 있어요. 실은 엄마의 안부는 그리 궁금하지 않아요. 4년의 세월을 지내며, 상실의 시간을 겪어내며 엄마의 영혼을 느껴요. 빛나는 영혼을 느껴요. 해처럼 빛나는 그곳에서 엄마 영혼이 그렇게 빛나고 있을 거예요. 엄마, 예원이, 예원이 말이에요. 예원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엄마 돌아가시고 사모님,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라고 메시지 보내왔던 예원이가 한 달 남짓 지나고 천국으로 떠났어요. 떠난 엄마를 새롭게 만난 시간이 애도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예원이 애도 작업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어요. 엄마를 끌어안고 슬픔의 강을, 분노의 강을, 죄책감의 강을 건너는 동안 예원이의 존재는 그저 잊고자 했어요. 죽은 예원이를 잊고자 하니 살았던 예원이도 생각할 수 없었어요. 그러자니 예원이 이후의 모든 젊은 죽음에 눈을 맞출 수 없었어요. 슬퍼할 자격, 분노할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아 차마 뉴스를 볼 수도 없었어요. 예원이의 안부를 묻고 싶어요. 엄마, 예원이 만났죠? 호기심 가득한 그 큰 눈을 봤죠?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고 기억하는, 그리고 훅 내미는 그 따스한 마음도요. 예원이가 검은 봉지에 홍옥을 사서 건넨 일이 있어요. 사모님이 홍옥 좋아하신다고. 홍옥은 엄마가 더 좋아하잖아요. 홍옥은 엄마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과가 된 거 거든요. 그런 아이예요. 이미 알죠? 천국에도 벌써 소문이 났을 거예요. 엄마, 예원이에게 내 안부도 전해줘요. 그리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도요. 지켜주지 못해서, 그렇게 절절한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내왔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줄 수 있어요?

 

엄마 떠나보내고 다른 내가 되었으니 저도 이제 용기를 내볼게요. 나를 그렇게 좋아하던 예원이였는데 내가 잘하지 못해서 그 생명을 놓친 것만 같아서, 누군가 네 책임이야!”라고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피하고만 싶었어요. 하지만 이조차도 떠난 예원이를 향한 내 부족한 사랑이었어요. 죄책감도 수치심도 내 부족한 사랑이에요. 4월 기일에는 예원이를 기억하는 청년들과 함께 작은 추도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몇몇 청년들이 예원이 상실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알았지만, 그조차도 외면하고 싶었어요. 엄마, 이제라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 볼게요. 죽음을 막을 수는 없어요. 피조물의 한계, 인간의 한계, 저의 한계를 받아들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있어요. 죄책감, 미안함, 분노, 허무감으로 예원 언니 예원 누나를 만나고 있는 청년들과 얘기 나누고 싶어요. 그 모든 감정이 사랑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함께 일깨워야겠어요. 드러낸 슬픔, 겪어낸 감정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이제 용기를 내볼게요. 죄책감을, 부끄러움을 드러내 볼게요.

 

엄마와 함께 예원이가 그립고, 예원이와 함께 오래전 천국으로 간 아름다운 청년 한솔이도 그리워요. 한솔이도 잘 지내죠? 엄마,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천국을 그릴 때가 있어요. 그리움은 내 존재에 딱 달라붙어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리운 얼굴들을 가까이 느끼는 방법은 그리운 얼굴을 그리워하는 길밖에 없어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한 구절이 자주 생각나요.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엄마를 그리고, 엄마보다 한참 먼저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그리고, 예원이를 그리고, 한솔이를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던 마음이 이제 모든 것을 그리는 마음이 되고 말아요. 그리움이 이끄는 길을 끝까지 가보면 거기엔 늘 나의 하나님이 계셔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천국에 볼모로 잡고 계시는 하나님이었어요. 그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이 나의 신앙이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리운 모든 영혼들을 가장 빛난 모습으로 품고 계시는 것을 알겠어요. 떠난 모든 이를 향한 그리움은 그분을 향한 그리움에 닿아요. 엄마, 나는 하나님이 그리워요. 엄마의 얼굴을 그리며 천국을 그려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은 천국이고,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은 지옥이라고 엄마를 닮은 중세 신비가 시에나의 카타리나(Santa Caterina da Siena 1347-1380)가 말씀하셨어요. 그리운 얼굴을 다시 만날 때까지 오늘 이 순간을 천국으로, 사랑으로 살도록 할게요. 곧 만나요. 엄마.


<복음과 상황> 4월호

 

 

그리움을 일깨우는 그리움 - 복음과상황

엄마,거긴 날씨가 어때요? 여긴 엄마가 아는 그 날씨예요. 자주 흐려요.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흐린 건지 하늘이 늘 뿌예요. 봄이 오는 길목이 험난한 것 같네요. 엄마가 이 땅에서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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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MBTI_2

 

 

안녕? Jung 쌤이야. 내 유형 기억나? 지난 호 첫 만남에 유형 먼저 밝히고 시작했었는데. 교회 청년부에서 처음으로 MBTI 검사를 했던 때가 생각나네. INFP가 나왔어. 정말 내 유형 같았어. 어쩌면 이렇게 나를 잘 설명하지 싶었고. 그런데 친구가 그러는 거야. “네가 어째서 내향형이야? 넌 E야!” 이 말에 어찌나 화가 나고 흥분이 되는지.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검사결과도 그렇고, 유형 설명을 읽어봐도 나는 확실히! I였거든. 문제는 I이면 I였지, E라는 말 한마디에 뭐 그렇게 분노 버튼이 눌리고 그러냐는 거지.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 며칠 동안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어.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하고 묻고 또 묻고 그랬지. 그럴수록 미소 한 번 지어주고 입을 떼지 않았어. 작심을 했거든. 말을 줄이자, 말을 하지 말자. 일기 쓰고 기도하며 하루를 돌아보는데 내가 너무 가볍게 느껴지는 거야.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고. “아까 그 말을 왜 했을까? 바보!” 밤마다 이불킥이었지. 말없이 조용한 친구들이 참 멋있고, 심지어 성숙해 보였어. 그래서 결심했지. 나도 앞으로 말을 줄이고 진중한 모습을 보이자! 음... 하지만 며칠 못 갔다는 거! 나는 실은 빼박 외향형 맞거든.
 
MBTI에서 하는 외향형에 대한 설명이 “가볍고 피상적이다”로 들렸어. 또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다는 것은 주장이 강하다는 뜻으로 이해가 됐고. 그런 사람은 미성숙하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친구가 하는 “너 외향형이잖아.”라는 말이 “너는 가볍고 피상적이고 이기적이야”라고 자동 번역되어 들렸던 것 같아. 이기적인 건 나쁜 거니까. 외향적이란 말이 심지어 “나쁜 성격이다.”라고 들린 거지. Jung 쌤의 이런 경험에는 많은 오류들이 있어. MBTI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자아상까지 더해져 흥분 ‘씩이나’ 하게 된 거야.
 
일단 말이 많으면 외향, 말이 없으면 내향이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본질적인 설명이 아니야. 외향과 내향은 에너지의 방향으로 이해해야 해. 정신의 에너지를 쓰거나 채우는 방향이야. 외향형은 그 정신 에너지를 주로 자기 밖을 향해(‘객체’라고도 해) 쓰지. 내향형의 정신 에너지는 자기 자신(‘주체’)을 향해. 예를 들어, 몸과 마음이 지치고 피곤한 날이라고 쳐. 몸살 기운도 좀 있어.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 마음먹고 쉬고 있는데 친구들이 불러. 단톡에서 와글와글 난리야. 어디서 모여 있으니 나오라고. 없는 기운 끌어올려 나갔어. 가서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고 떠들다 보니 언제 아팠냐는 듯, 몸살 기운 싹 다 달아나고 에너지 빵빵하게 충전된 느낌 받는 사람, 손? 외향형들이 정신의 에너지를 받는 방식이야. 밖을 향해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동시에 충전하게 되는 거지.
 
반면 내향형들은 비축해서 충전해. 자연스레 안으로 향하게 되지. 딱히 피곤하거나 지친 몸도 아닌데, 심지어 꽤 괜찮은 상태였다고 쳐. 많은 사람 모인 곳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배터리가 방전되는 느낌이 드는 거야. 와글와글 얘기하는 사이에 앉아 있기만 해도 기가 빨려 나가. 내향형의 정신 에너지 역동이지. 혼자만의 시간, 멍 때리는 시간이 내향형에게는 충전하는 시간일 거야. 내장형 배터리지. 그러면, 사람 만나는 걸 힘들어하면 내향형일까? 그건 아니야. 내향형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할 수 있지. 그런데 어쨌든 자기 밖으로 향할 때 외향형보다 훨씬 에너지가 많이 들 거라는 거지. 당연히 외향형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할 수 있고. 본질은 에너지의 방향이야.
 
E들은 말을 하면서 에너지도 받고 생각도 정리하고 그래. 내향형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머금고 있어야 말이든 뭐든 조금 나오고 말이야. 거기서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어. 내향들은 가만히 있는 침묵의 공간이 편하고. 반대로 외향형은 말 없는 시간 그 자체가 어렵지. 침묵이 불편해서 아무 말 던지다 실수도 막 던지고. 내향형은 ‘가만히 있음’이 자기 에너지 레벨에 충실한 것이지만, 오해를 유발하기도 해. 함께 있는 사람은 “쟤는 왜 물어보면 답을 안 해? 삐졌나? 내게 관심이 없나?” 할 수 있겠지. 내 유형에 충실할 뿐인데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거든. 사실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야.
 
Jung 쌤이 처음 MBTI 검사에서 내향형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 “너 E 아냐?” 하는 말에 분노 버튼이 눌렸던 것을 잘 봐봐. 성격의 어떤 부분을 ‘좋다, 나쁘다’로 보는 선입견이 있었던 거지. 나의 진짜 유형(true type)을 알고 E를 받아들였을 때, 큰 자유를 얻었어. 아, 나는 말을 해야, 마음 맞는 친구들과 떠들고 웃고 할 때 살아있는 것 같지! 이게 나쁜 게 아니구나. 자연스러운 성격이구나! 억지로 말을 참아서 I 흉내 낼 일이 아니구나! 외향형인 나를 받아들이니 내향형 친구들이 있는 그대로 보이더라고. 말없이 가만히 있는 모습에 “뭐가 불편한가?” 괜히 눈치 보는 일도 덜 하게 되고 말이야. 이렇게 내 진짜 유형을 찾고 받아들이면 자유가 생겨. 나를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훨씬 쉽게 수용할 수 있거든. 그래서 말인데, 너는 어때? E야, I야?
 

 

 

<청소년매일성경> 3,4 월호 기고글

 
 
지난 주일에 교회 청년부를 섬기던 목사님의 '고별설교'가 있었다. 예배 마치고 인사를 나누며 툭 나온 말이 "목사님, 부러워요."였다. 말을 내놓고도 조금 당황했는데. 설교 시간에 잠시 남편의 '고별설교'를 상상했던 것 같다. 늘 생각하기에, 아무 때나 상상이 된다. 고별설교를 하고 교회를 떠나는 목사님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고별설교는커녕, 더는 없을 빌런이 되어 강단을 떠난다. 빌런 프레임이 씌워진 것인지, 자기 권력과 욕망을 위해 빌런 되기를 자처한 것인지, 그럭저럭 겉모양은 유지하며 빌런인듯 빌런 아닌 빌런 같은 애매한 빌런이 된 것인지.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의 슬픈 이별이 남기는 상처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보이지 않게 깊다. 부교역자라 불리는 분들은 애초 없는 존재였기에 사라져도 관심 밖인 경우가 허다하고. 담임목사에게 조금이라도 불손했거나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변호할 기회 한 번 없이 최악의 목사로 낙인찍혀 쫓겨 나오기도 하고. 목사와 교회의 이별이 아름답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정황을 담고자 했는지, 월간 <기독교세계> 12월호가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주제의특집이라고. 여기 실린 글이다. 내가 요청받은 주제는 교회 관련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이별은 이별에 닥친 사람으로서는 해낼 수 없는 과제 같은 것이다. 이별 직전까지의 관계가 이별의 순간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아름답지 않은 관계가 끊어지는데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모든 이별의 순간은 이전 함께 했던 순간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절망적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절망만은 아닌 것이 이별을 애초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비록 아름답지 않은 이별을 만들어낸 동거였다 할찌라도, 헤어진 후의 과정이 이전의 관계와 이별의 순간을 다시 새롭게 한다. 이별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돌아보고 배우는 것. 다른 말로는 애도와 함께 잘 떠나보내는 것. 이별을 통해 사랑을 배우는 것이 인간의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유시인 김창완의 노래가 젊을 적부터 참 좋았다.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가사 묵상의 글이 되고 말았다.
 
 

끝나지 않은 이별

 
단아하고 우아한 개량 한복을 입은 엄마가 좌식 책상 앞에 앉으셨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얼굴에 꼿꼿하게 세운 상체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 손가락만 움직여 타닥타닥 뭔가를 짓고 계시는데. 세상에나,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쓰고 있다. 노트북이 아니라 재봉틀이 놓였다면 딱 좋을 자리이다. 아니, 엄마의 태도와 표정이라면 성경책이 놓여 있어도 괜찮겠다. 엄마에 대한 존경과 칭찬이 동네에 자자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엄마를 신뢰하고 따른다는 말이, 나는 잘 믿기지 않는다. 내가 안 믿어진다고 진실이 아닌 건 아니니까. 엄마라면 그럴 수 있지, 싶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저런 사람은 아니었지 않나?
 
엄마 없는 날의 시작


“엄마라면 그럴 만하지! 하지만 우리 엄마는 아닌데….”하며 꿈에서 깼다. 돌아가시고 말 그대로 상(喪) 중일 때, 슬픔의 한복판에서 꾼 꿈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된 그 봄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코로나도, 엄마의 낙상도, 면회가 안 되는 입원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예고 없이 닥친 일이었다. 무엇보다 엄마와의 이별은 갑작스레 덮친 재난 같았다. 90을 훌쩍 넘기셨으니 언제 돌아가셔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으나 내겐 그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나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엄마의 죽음을 상상하지 않은 날이 없고, 그만큼 대비도 했으니 재난이란 표현은 과장이 아닌가. 바로 자기검열을 하게 되지만 이별의 고통이 그렇게 혹독할 줄은 정말 몰랐다.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삼일장을 치르며 조문객과 함께 엄마에 관한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했다면 조금 나았을까. 거리두기 지침과 함께 하던 일을 멈추고 집에 콕 박혀 지내야 했기 때문일까도 생각했다. 일로 도피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적나라한 감정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던 건 아닐까. 초유의 팬데믹 세상과 엄마 없는 세상이 함께 왔다. 엄마 없이 지내는 첫날, 둘째 날, 일주일… 한 달을 맨몸으로 마주하며 지냈다. 어머니와의 이별은 평범했던 일상과의 이별이 되었고, 일상 회복은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엄마 없이 보내는 첫 번째 부활주일, 첫 번째 어버이날, 첫 번째 엄마 생신은 얼굴을 바꿔가며 새로운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이별은 오늘 이야기 아니오”


대비할 수 있는 죽음은 없다. ‘미리 대비하고 있으면 걱정이 없다’는 유비무환의 이별은 없다. 존재가 사라져 비어버린 공간을 마주하고 몸으로 겪어내는 것이 이별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의 대비는 머리가 하는 일이고, 이별을 겪어내는 것은 몸과 마음의 일이다. “이별은 오늘 이야기 아니요 두고두고 긴 눈물이 내리리니” 산울림의 이 노래 가사가 프로이트의 상실과 애도, 멜랑콜리 이론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그리움의 눈물, 죄책감의 눈물, 분노의 눈물, 흐르지 않으며 흐르는 눈물… 두고두고 새롭게 긴 눈물이 흐른다. 상실의 슬픔과 단둘이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격리상태로 보냈던 몇 개월, 슬픔의 눈물을 글로 흘려보냈다. 글을 모아보니 ‘애도 일기’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책으로 묶어냈다. 책을 읽은 친구들이 허튼 결심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곁에 계신 어머니에게 잘해야겠다, 외롭지 않게 더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질투 비슷한 느낌이 스쳤다. 나는 내 엄마께 그리하지 못하여 죄책감과 회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저 친구는 후회할 바 없이 잘해드리면 어떡하지? 괜히 글을 써서 내놓았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불가능한 마음의 쇄신인 것을 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하는 트로트가 괜히 인기가 있겠는가. 이별은 대비할 수 없다.
 
부재로 존재하는 것들


사라진 자리에서 그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이다. 사라져야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와 무게가 드러난다. 극한의 치통으로 밤을 보냈던 밤, 온몸이 어금니였다. 음식을 먹고 씹고 삼키지 않았던 날이 없는데, 어금니가 거기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 날도 없었다. 본연의 기능을 ‘잃은’ 그 밤, 어금니는 내 몸 자체였다. 심장도 어금니에 붙어 있는 듯, 욱신욱신 쿵쾅쿵쾅 거기서 뛰었다.
두어 달에 한 번이나 엄마를 찾아뵈었을까.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했다. 당신 방 침대와 볕 잘 드는 거실 소파 사이를 오가며 늘 거기 계실 엄마였다. 그리고 어금니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도 삼시 세끼 꼭꼭 씹어 밥을 먹듯 내 일상은 잘 돌아갔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나의 24시간은 엄마의 것이 되었다. 나를 ‘엄마’라 부르는 딸이 제 블로그에 글을 썼다. “엄마 잃은 엄마를 위로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엄마’하고 불러야 할 텐데, 그 ‘엄마’라는 말이 지금 엄마에게 너무 아픈 말이라 ‘엄마’하고 부를 수가 없다”라고. 이렇듯 가족들도 알아챘다. 내게는 ‘엄마’ 밖에 없다는 것을. 엄마의 몸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지자 세상이 온통 엄마가 되었다. 엄마로 뒤덮인 세상은 끝날 것 같지 않았고, 무너진 내 일상도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잃어버리고 찾는 것들


사순(四旬)시기 딱 중간의 날에 엄마가 떠나셨다. 다음 해 사순시기, 그 봄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거의 매일 한 시간 훌쩍 넘기는 긴 산책을 했다.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막 움트는 새순들이 그렇게 제각각 다른 채도를 띄고 고유하게 고왔던가. 봄의 색이 이렇듯 다채로웠던가. 난생처음 컬러로 보는 봄 같았다. 그 하루,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가 없었다. 문득 1년 전의 어느 봄밤이 떠올랐다. 가로등 옆으로 흰 목련이 피어 있었다. 분노와 서러움이 밀려왔다. “꽃이 피다니요!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아무렇지 않게 목련이 피다니요!” 생각해 보면 엄마를 잃었던 그 봄은 봄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 계절도 잃었다. 애도의 시간에 색은 없었다. 온통 흑백 세상이었다. 그러니 난생처음 봄을 빛깔로 마주하는 느낌도 틀리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한 계절로 얻은 찬란함이었다.
 
나는 이별이 무엇인지 안다. 상실감을 안다. 일찍이 아버지와 사별했고, 그 이별의 후폭풍은 정든 집, 교회, 학교, 친구들과의 물리적 이별이었다. 생이별이었다. 연애하다 헤어져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고, 지도자의 영적 인격적 몰락을 보며 존경심을 상실한 자리에서 배신감으로 뒹굴어도 보았다. 단언컨대, 그 모든 이별이 나를 단단하게 했다.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아버지 없는 아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기에 이만큼의 예의 갖춘 인간이 되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잃은 교회에 대한 그리움으로 교회를 포기하지 못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무도 날 알아봐 주지 않는 학교로 전학 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옛 선생님, 옛 친구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신뢰를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좋은 성적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부부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편과 종종 그런 얘기를 한다. 연애하다 헤어졌던 그 아픈 시간이 있었기에 보다 건강한 연애와 결혼일 수 있었다고. 시아버님이나 함께 했던 벗들을 죽음으로 잃은 자리에서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부활 신앙이 뜨거웠었다. 상실의 시간을 잘 겪어내기만 하면 좋은 삶과 신앙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끝나지 않은 이별
이별과 상실로 점철된 인생에서 배울 만큼 배웠다. 그런데 엄마가 떠나신 자리에서 배우고 성장한다는 건 사치였다. 산다는 것은 그저 무의미한 고통이었고, 삶과 죽음은 새삼 부조리하게만 느껴졌었다. 그즈음 꾼 꿈이다. 가당치 않은 이미지이다. 이 땅에서의 엄마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길게 살았지만, 엄마의 소통수단은 유선 전화였다. 그런 엄마에게 노트북이라니. 무학에 가까운 엄마가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니. 페미니스트 같은 젊은 여성들에게 신뢰를 얻고 여성들이 사는 동네의 존경받는 원로라니... 꿈이라서 가능한 설정과 이미지인데 희한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곁에 있는 남편에게 꿈 얘기를 하자 “어머님 천국에서 글 쓰고 계시나 보네. 어머니 살아오신 얘기 쓰시는 거 아냐?” 하며 웃었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고, 스르르 마음에서 무엇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천국이니까, 이 세상과는 다른 곳이니까 엄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 평생 품었던 못 배운 한 따위는 풀 필요도 없는 천국이겠으나, 딸에게는 그렇게 소식 전하고 싶었을까? 그 꿈 이후로 부활한 엄마의 몸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육신의 장막을 벗은 엄마의 영혼은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울까. 엄마 몸이 사라진 자리에서 엄마의 존재가 그렇게나 크더니만, 지금 여기의 일상을 무너뜨릴 만큼 큰 그것은 엄마의 영혼이었다. 영혼의 크기이고 무게였다. 엄마 몸과 이별한 자리에서 진짜 엄마와의 만남, 영적인 연결이 시작되었다.


3년 하고도 수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지는 노을이 아름다워 바라보고 있노라면 “엄마…” 하는 소리가 깊은 어디서 울린다. 새롭게 그리움의 눈물이 솟구친다. 3년이면 탈상이라지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별의 슬픔이다. 아니 이별에는 끝이 없다. “애도는 끝이 없다, 성공한 애도는 실패한 애도다.”라는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좋은 이별은 끝나지 않는 이별이다. ‘몸’이라는 육신의 장막에 살던 진짜 엄마, 빛나는 영혼으로 존재할 엄마와의 새로운 사랑 고백과 화해는 내가 살아 있는 날까지 이어질 터이다. 이별은 끝나지 않는 만남의 새로운 시작이니, 어쩌면 산울림의 저 노래처럼 우리 인생은 “처음부터 긴 이별”이었는지 모른다.
 

월간 <기독교세계> 2023년 12월호

 

 

2024년부터 <청소년매일성경>에 연재합니다. 독자가 청소년인 것도, 주제가 너도 나도 전문가인 MBTI라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MBTI 과몰입 친구들의 '자기만의 MBTI' 때문에 답답해 죽겠는 딸 아들의 도움을 받아 한 번 써보기로요. MBTI 지표 설명보다는 사용법, 태도에 대해 다루려고요. MBTI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Carl Jung의 심리유형론의 관점을 피력하고자 하는데... 이 깊은 영성심리를 청소년들 눈높이에 맞추는 게 관건이네요. 그래서 이름도 Jung 쌤으로 갑니다.  정 쌤이기도 융 쌤이기도. 첫 번째 글입니다. 

 

너, MBTI가 뭐야?

 

안녕. 나는 Jung 쌤이라고 해. 앞으로 여기서 MBTI를 좀 가르쳐줄 거야. 아, 그런데 QT와 MBTI가 무슨 상관?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MBTI를 무척 좋아하고, MBTI에 진심인 편이긴 한데, 그냥 MBTI는 아니야. 성격과 성경, 말씀 묵상과 기질, 성격과 하나님 형상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지. 너는 MBTI가 뭐야? 나는 ESFP야. 유형만 들어도 딱 알겠지? 이 글은 일단 무조건 재미있을 예정이야. ESFP는 재미에 죽고 살거든.

 

나는 MBTI를 좋아하는 만큼 내 유형인 ESFP를 좋아해. 물론 내 유형을 거침없이 좋아하기까지 사연은 좀 있고. 일단 소개를 좀 더 할게. 내 본래 직업은 음악심리치료사야. 음악치료를 잘하기 위해 MBTI를 배웠는데, 이게 너무 재밌는 거야. 세상에나! 모르던 내 마음을 알려주는가 하면,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 막막 이해되니까. 본업인 음악치료보다 MBTI 같은 성격심리학 공부가 더 재밌어서(나, ESFP...) 신나게 매진했지. 한 20년쯤 됐어. 하아, 그러니까 너네들 태어나기 전부터!

 

생각해 보면 음악치료를 전공하게 된 것도 다 사람 마음에 대한 관심이었어. 어렸을 적부터 사람 마음이 궁금했거든. 아니, 내 마음이 궁금했어. 분명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왜 이리 싫은 사람이 많은 거야. 학년마다 반에 싫은 애가 꼭 한두 명 있더라고. 학년이 바뀌고 반이 갈라져서 쟤랑만 헤어지면 모든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지 싶어서 일 년 참아보건만, 그런 애는 꼭 다시 생기고. 게다가 왜 그리 마음은 쉽게 이랬다저랬다 하는지. 내 마음 나도 몰라, 라는 말이 있듯이 내 마음이 너무 어려운 거야.

 

시편 기자가 이렇게 기도했어.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 139:13-14a) 기묘하다고 하네. 우리를 만드신 것이 기묘하다고 하니 어려운 게 맞아. 인간을 기묘하게 만드셨으니, 기묘한 마음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거지. 그 앞에는 대놓고 이렇게 기도했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6절)

 

도통 모르겠는 마음의 모양을 대략 구분하여 알려주는 것이 성격유형 도구야. MBTI도 그중 하나인데. MBTI 유형으로 내가 설명되고 친구의 마음을 알아지는 게 놀랍잖아. 내 발로 다 밟을 수 없는 넓고 복잡한 땅을 지도로 볼 때 느낌일 거야. 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 이제 내가 내 유형을 찾게 된 사연을 조금만 들려줄게. 처음 MBTI와의 만남은 교회 청년부에서였어. 소문은 들어서 이름만 알고 있던 MBTI였어. 아무것도 모르고 일단 검사를 당했지. 검사결과는 INFP였어.

 

INFP라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결과였는데, 웃긴 건 그때 “맞아, 맞아. 나 완전 이래!” 했다는 거지. 이런 경우는 INFP는 ‘검사 유형’이라고 해. 다시 말하면 검사결과와 내 진짜 유형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거지. 사실 INFP가 나온 이유가 있었어. 당시 썸타는 남자애가 있었거든. 그 애가 INTJ였어. 내향형에 직관형인 그 친구가 그렇게 좋아 보이는 거야. 나도 모르게 그 친구와 비슷한 점을 찾게 되고, 그 마음이 체크 리스트에 반영된 거지.

 

그러니까 분명한 건 말하자면, 내 진짜 유형(true type)과 MBTI 검사로 얻은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거야. 검사할 때마다 다르게 나온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데, 같은 이유야. 내 진짜 유형이 무엇인지 결론 내리는 사람은 나 자신이야. 사실 나에 대한 전문가는 나거든. 검사는 어쩔 수 없이 그때그때 내 바람과 스트레스를 반영하게 돼.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의 성향이나, 엄마가 되라고 하는 모습을 체크할 수 있다는 거지.

 

물론 MBTI는 통계학적으로 신뢰도 타당도를 인정받은 검사 도구야. 단, 전문기관과 전문가에 의한 것이라면! 인터넷에 떠도는 무료 검사들은 신뢰하지 않는 게 좋아. 아무튼 자기 진짜 유형을 찾고, 그 유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유로워져. 심지어 매력적인 사람이 돼. 그게 MBTI가 주는 선물이라니까. 나만의 장점, 나만의 약점, 나만의 사랑법, 나만의 말씀 묵상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고, 그렇게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지.

 

자기 유형을 정확하게 알고, 진심으로 좋아해야 MBTI를 통해 가장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 주변에 그런 친구 없어? 누가 봐도 E(외향형)인데 자기 I(내향형)이라고 우기는 애 말야. 그런 게 제일 문제다. 자기 유형을 잘못 알고 엉뚱한 하게 우기면 좀 난해한 상황이 돼. 매력이 없고, 가까이하기 싫고 그런 친구가 될 수도 있어. 내가 그런 애를 딱 알거든. 어, 음, 아... 실은 그게 나였어. 그 얘긴 다음에 들려줄게. 아무튼, 오늘은 이걸 묻고 싶었어. 너 MBTI가 뭐야? 음, 네가 알고 있는 너의 MBTI 유형은 정말 너의 것일까?

 

<청소년매일성경> 2024년 1,2월 호

 

Jung 쌤은 이렇게 생기신 모양...

 

* 전에 방송에서 했던 MBTI 얘기도 한 번!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8

 

 

 

허무의 강물 위에서

 

수속을 다 마쳤고, 탑승 시간까지는 넉넉하게 여유가 있다. 공항 탑승구 앞에 앉았던 그 어느 때와도 느낌이 다르다. 어쨌든 떠난다는, 여행 그 자체로 이미 가벼워지고 설레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들뜨기보다는 가라앉아 있고, 가라앉은 마음은 묵직하다. 뭐라 딱히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참 낯선 감정이다. 일 년여의 시간을 네팔에서 보낼 예정이다. 들뜬 설렘은 없지만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은 있다. 이른 퇴직 후에 다른 삶을 구상하겠다는 남편의 결단 뒤에 좋은 우연이 따라왔다. 네팔에서 일하며 선교하는 후배와 닿아 가서 일도 하고 선교도 돕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몇 년 기한으로 남편 혼자 떠나려 했으나, 뒤늦게 급하게 나도 일단 일 년 정도 함께 하기로 했다. 내 결정은 다소 우발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최 선생님 말씀처럼 우발, 우연... 이런 말은 버리기로 했다. 어이없이 사소한 일로 시작하여 마음의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이대로는 일상과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남편을 따라 네팔로 가기로 했다.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 떠났다 돌아왔을 때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 나이에 가당키나 한 시도인가. 꼭 붙들고 있어도 떨궈지고 퇴출될 판에 말이다. 그러나 떠나기로 했다. 이 떠남의 시작은 어이없음이고 끝은 알 수 없음이지만 어쨌든 나는 탑승구 앞에 있다. 최 선생님 말씀처럼 인생 후반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의미를 부여해 보려 한다.

 

그렇다. 의미의 문제였다. 이 무너짐의 시작은 참을 수 없는 의미 없음이 낸 작은 균열이었다. 오랜 친구 하나를 잃었다.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다. 돌아보면 늘 하던 방식의 대화였는데 그 순간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내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내가 좀 달라졌다는 것이다. 기운을 내라고, 웃음이 안 나와도 웃고, 안 먹혀도 먹으라고 했다. 같이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불러준 적도 있다. 늘 그렇게 친절하게 챙겨주는 친구라서 고마운 친구인데 전에 없던 화를 내게 된 것이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제 엄마 얘기를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니 매여있지 말라고 했다. 어느 지점에서 용수철이 튕겨 나갔는지 모르겠으나, 더는 들을 수 없노라 선언하고 친구의 차에서 내려버렸다. 그런 우발적 행동은 태어나서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최대한 차분히 말했지만, 속에서는 용암이 끓는 듯한 분노가 솟구쳤었다. 나도 이해되지 않는 내 행동이니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이 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죄책감과 수치심에 견딜 수 없는 밤을 보냈다. 하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다르지 않을 것만 같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때로부터 봉인이 해제된 느낌이라서 평소 불편해도 참았던 것이 참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도 불끈불끈 화를 내고, 상담치료 하며 내담자 앞에서도 인내심의 바닥이 금방 드러나곤 했다. 가족들이야 갱년기인가보다이해해주려 애쓰지만, 운전하거나 장을 보다가도 전에 없이 화가 난다. 가장 힘든 것은 예배와 설교이다. 전에도 그리 은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견뎌지던 목사님의 설교를 참아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꾸역꾸역 예배에 나가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온라인 예배로 타협하기 시작했고, 이즈음에는 다른 교회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는 드렸다!”는 형식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친구도 잃고, 신앙도 잃고, 이러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기력이 끝 간데없어서 금세 될 대로 되어라!’하는 식이 된다. 관계도 신앙도 하다못해 전에 좋았던 영화나 운동, 맛집을 찾는 것도 모두 의미 없게 느껴진다. 무슨 재미, 무슨 의미로 그리 열심히 살아왔던 것일까. 이전의 내가 낯설기만 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는데 최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었다. 아니, 최 선생님은 이때를 위해 미리 보내주신 그분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허무의 강이 생에 들이칠 때가 있더라고. 모든 일에 의미를 따지며 살 수는 없지만, 영혼은 의미 없이 살 수 없어요.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체험하고 밝혀냈듯이 극한의 고통 중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것은 의미예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영혼의 초대는 역설적으로 무의미와 허무의 감정에서 오는 것이고.

 

최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이다. “그럴 수 있어요!” 이 한 마디가 나를 살렸다. 내 잘못으로 인한 친구와의 단절도, 순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실수도, 예배의 기쁨은커녕 신앙의 무기력에 빠지는 것도 다 그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불교도에 가까운 무신론자였던 최 선생님을 복음의 빛으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무의미함이라시며 전에 들려주셨던 회심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셨다. 60대 초반, 갑자기 들이닥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삶의 소망을 잃었고, 몇 년 영혼의 어두운 밤, 그러니까 무의미의 강물에 떠밀려 다니다 스캇 펙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으로 천국의 소망을 만나셨다고. 그전까지 오직 쉬지 않고 학업 또는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망으로 쉬지 않고 달렸던 나날이라고. 이제 와 생각하면 그런 고난 없이 멈춰 세우지 못했을 성취 중독이었다고 하셨다.

 

허무의 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엄마 돌아가시고 마음의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애씀이란 것이 되질 않았다. 애써서 짓던 미소, 애써 이해해보려 했던 것, 애써 괜찮은 척했던 것들 말이다. 내가 정말 애써서 해왔구나, 싶다. 최 선생님 말씀처럼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는 그리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 하나하나의 무게를 가늠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들이닥친 허무의 강물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가벼운 것들이다. ‘의미 무게가 가벼운 것이다. 이런 것들은 걷어내고 가야 할 때가 있구나. 분별없이 모든 것을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다. 아니 이제 그럴 수가 없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통제 불능이 된 감정처럼 말이다. 모든 관계를 잘 할 수 없고,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기에 무겁지만 편안해졌다. 그 친구와는 한두 번 더 대화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차라리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안 보고 참으며 관계를 유지해왔는가를 확인했을 뿐이다. 늘 긍정적인 말만 하는 통에 뭔가 겉보기에는 좋은데 깊은 친밀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좋은 말, 칭찬만 골라서 해야 했기에 만나고 돌아오면 공허함이 밀려왔고, 불편감을 느끼는 나에게 화살이 가서 괜한 자기비하에 빠지기도 했었다. 뒤늦게 알게 된 내 마음이다. 더는 애쓰지 않기로 했다. 친구와는 소원해진 상태로 이렇게 떠나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음을 알지만, 패배감으로 괴롭다. 긍정적이고 착한 친구 하나를 품지 못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기만 하다. 역시 나의 최 선생님께서 내 누추한 마음에 의미의 옷을 입혀주셨다.

 

추락하는 상승

 

그 정도면 정 선생도 할 만큼 했네. 세월이 그렇게 되었으면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야지. 부정적인 얘기는 도통 나눌 수 없는 친구가 무슨 친구야! , 우리도 언젠가 그 제주 공항에서 막 설전을 벌이지 않았소! 그때부터 내가 더 편해졌다며? 그게 진짜 친구야.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오. 그리고 아니할 말로 당신이 예수님이야? 모든 사람이랑 다 좋게 지내야 하나? 내가 싫은 사람도 있고, 나를 싫어하는 이도 있는 것이지. 무엇보다 추락이 상승이에요. 이 시기의 추락은 잘만 하면 진정한 의미의 상승이야. 리처드 로어(Richard Rohr)의 중년 영성에 관한 책이 있잖우. 우리 말 책 제목이 위쪽으로 떨어지다인데. 원제가 더 멋지지. Falling Upward!

 

나도 읽었던 책이다. 최 선생님께 중년 이후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던 그때이다. 추락하는 것이 은혜라고? 성공이 아니라 추락이? 물론 설교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최 선생님께서는 생의 오후는 상승이 아니라 추락이 기본 설정이라고 말씀하셨다. 근육이 빠져 늘어지는 피부, 흐릿해진 시력과 기억력 같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었지. 충분히 알아들었고, ‘노화, 중년의 영성에 대해 끝을 만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최 선생님 같은, 아니 최 선생님보다 더 매력적인 노인이 될 거라는 은근한 자부심도 생겼다. 나는 이미 꽤 괜찮은 중년이며, 당연히 괜찮은 노인이 될 거라 여겼던 것이다. 친구와의 결별, 그 균열로 시작된 마음의 무너짐으로 모든 게 물 건너간 것 같았다. 그런데 추락은 정말 떨어져야 하는 것, 관념이 아닌 실재 상황이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위쪽으로 떨어지다를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아 펼쳤는데, 이건 뭐 확인사살 같았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넘어지고 추락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여기에서 하고 있듯이 추락에 대한 글을 읽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얼마 동안은 실제로 운전석에서 쫓겨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안내인’(Real Guide)한테 자기를 내어맡기는 법을 끝내 배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필수 과정이다.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국민북스, 116

 

신앙의 오후

 

이제 운전석에서 쫓겨나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생의 오후, 진짜 안내인에게 나를 맡기기 위해서 추락을 추락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때인가 보다. 네팔로 떠나는 것은 기꺼이 운전석에서 쫓겨나겠다는 의지이다. 이렇게 결정하니 이쪽저쪽 다 막힌 막다른 길에 서 있지만 벽 너머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작은 희망이 생겼다. 신앙생활이 더 문제이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를 떠난 적이 없다. 아니 하나님과 멀어진 적이 없다. 어릴 적에는 개근상, 요절 외우기, 성경퀴즈... 교회에서 주는 상이란 상은 다 받는 착한 주일학생이었고, 젊을 때는 교회 언니였고, 권사님들 눈에는 사모감이었다. 밖에서는 몰라도 교회에서만큼은 요즘 말로 하면 찐 인싸(insider)’이다. 그런데 어쩐지 식어가고 있다. 어떤 설교가 불편해도 전에는 은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되질 않는다. “은혜로, 은혜로...” 좋은 얘기만 하는 구역 모임도 견딜 수가 없다. 이러다 친구에게 폭발한 것처럼 또 폭발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모습이 이전의 내 모습이기에 더 혐오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인정하기 싫은 마음도 있고! 이전의 내가 싫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을 더 비난하고 싶은 것이다. 선한 말, 좋은 감정만 보여주면서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며 살아온 나 아닌가. 그런 노력으로 평생 교회 인싸를 놓치지 않았고.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이들이 한 번씩은 신앙의 위기를 겪던데, 나는 그것도 없었다. 내겐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착한 사람,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잃을까 방황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허울 좋은 껍데기, 포장지를 벗기고 보니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예배를 나는 은근히 얼마나 좋아했던가. 교회 봉사 부담 없이 보내는 시간이 솔직히 얼마나 홀가분했던가. 무의미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다 그럴듯한 옷들이 벗겨져 나갔다. 이 역시 더 깊은 신앙생활을 위한 과정이라고 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최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라고 알아듣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네팔 행은 하나님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참 좋아하는 찬양 가사인데. 신앙의 오후를 지나 다다르는 인생의 끝이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그 과정으로서의 여행이었으면 싶다.

 

나같이 늦게 예수 믿은 사람은 모태신앙이 얼마나 부러운지 알아요? 성격이든 신앙이든 처음엔 튼튼한 틀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요. 리처드 로어 식으로 말하면 컨테이너를 먼저 만들어야지. 정 선생 같은 사람은 어릴 적부터 교회 안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튼튼한 컨테이너를 만든 거야. 이제 거기 담을 것을 분별해야 하는 신앙의 오후를 맞은 거지. 영원한 것, 불타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것을 분별하여 담는 시기가 신앙의 오후에 할 일이 아니겠소. 이제까지 열심히 해왔던 것까지 부정하지 마. 신앙적 열정이 사라진 것도 결국 좋은 일이에요. ‘신앙 사춘기를 통과하여 어른 신앙이 될 거야. 과정이야, 과정! 좋은 끝에 다다를 거예요.

 

인생 후반으로 떠나는 여행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집 근처로 오셔서 만났던 그때부터 선생님께 집중 케어 받은 느낌이다. 그즈음 친구와 그 일이 있었고, 마음 다해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추락은 추락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다른 가능성을 꿈꾸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비정상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씀해 주셨다. 이렇듯 의미의 길을 열어주셨고, 의미의 시간 카이로스(Kairos)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 주셨다. 탑승구 앞 이 시간은 최 선생님과 함께 한 3 년여 시간의 정점이 아닌가 싶다. 실패감으로 떠나는 여행이며 돌아와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모른다. 그 알 수 없음의 시간조차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최 선생님 덕분이다. 꼭 가야겠냐고, 여기서 선생님과 더 많이 얘기하며 길을 찾자며 많이 섭섭해하셨다. 문자 메시지도 있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고, 요즘은 (zoom) 상담도 한다며 앱도 깔아드렸다. 그런 것 필요 없다 하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하긴 선생님께는 몸으로 만나는 것만 진짜!’니까. “정 선생 돌아오면 나는 여기 없을 수도 있다고! 천국에서 만나게 되는 거야.” “무슨 말씀이세요! 네팔 다녀와서 후기 들어주시고 애프터서비스 해주실 거면서...” 아무렇지 않게 응대했지만 예리한 칼로 후벼지는 슬픔이 지나갔다. 선생님 말씀처럼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이시니 정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헤어지는 슬픔에 더해 가불해 가져온 영원한 이별까지. 슬픔을 가눌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떠나야 한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한다. 어쩌면 꼭 잡고 의지했던 최 선생님 손조차 놓아야겠다는 마음인지 모르겠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탑승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선생님께 전화 한 번 드릴까? 충분히 인사 나눴지만, 문자 메시지라도 드려야 할 텐데. 도통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다시 뵐 수 있을까, 다시 뵐 수 있겠지? 스마트폰에서 선생님과 연결된 노란 창을 열었다 닫았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머나! 열린 메시지 창으로 선생님 쪽에서 보내신 메시지가 뜬다.

 

정 선생님, 이 시간쯤이면 비행기를 탔으려나. 잘 다녀와요. 정 선생 올 때까지 살아 있어야겠소! 떠나는 사람한테 마지막까지 노인네 심술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하구려. 실은 정 선생이 나를 살렸어요.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나 심술 맞은 고집불통 노인네야. 내 인생 내놓을 것이 없다오. 어쩌다 내가 예쁜 사람 만나서 복을 누렸어요. 질문해주고 들어주는 정 선생 덕에 내 인생 돌아보게 되었어요. 이래저래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며 남은 인생 아들에게고 제자들에게고 폐나 끼치지 말자는 심정으로 살았는데... 참 부끄러운 인생인데 말이유. 정 선생 덕에 내 80년 인생이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유일한 피붙이 아들과도 데면데면한 사이라오. 80 평생 남은 게 없어. 늙어 혼자 사는 이 외로움이 다 내 죗값이고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형벌이라 여겼다오. 정 선생 만나서 의미를 찾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정 선생도 네팔에서 좋은 시간 보내다 와요. 줌인가 뭔가 그거 정 선생이 휴대폰에 깔아준 거, 자꾸 연습해보고 있어. 가서 줌으로 전화해요. 건강하게, 밥 잘 챙겨 먹고. 다시 볼 때 살 좀 푸덕지게 쪄 가지고 오면 좋겠구먼.

 

, 이 사랑스러운 할머니! 메시지 읽으며 눈물이 줄줄 흐르다 줌으로 전화해요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딴 것 모른다고, 소용없다고, 무슨 휴대폰으로 상담을 하냐며 그렇게 역정을 내시더니만 말이다. 그래,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선생님과 나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이다. 이 땅의 짧은 소풍을 마치고 천국에서 꼭 만나기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인데, 잠시 헤어짐이 대수랴! 이렇듯 마음으로, 영혼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선생님의 솔직한 메시지가 내 마음에 들어오고, 우리의 연결이 영혼으로 느껴졌다. 짧은 답신을 보냈다. “탑승 직전이에요, 선생님. 추락하는 정신실, 더 추락하기 위해 비행기 타고 상승합니다! 다시 땅에 닿으면 줌으로 전화 드릴게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하트 백 개!”

 

네팔 살이를 꿈꾸며 기대되는 것이 하나 있다. 가서 염색 끊고 화장 끊고 살아보려 한다. 염색하지 않으면 머리가 백발인데, 두어 달에 한 번씩 뿌리염색이라는 것으로 나이를 가리고 있다. 화장도 그만하고 싶은데, 젊을 때부터 해온 관성이 있어서 상담이나 강의 갈 때는 어쩔 수가 없다. 유난히 눈가에 주름이 많아서 관리 좀 하라는 소리도 많이 듣고, 그 말에 가끔 흔들리기도 하는데 그 유혹도 깨끗하게 접을 수 있겠다. 최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저녁놀이 그렇게 눈에 들어왔었다. 선생님 댁 거실은 그야말로 노을 맛집이었지. 그래서 내 인생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그려보곤 했었다. 가만히 밤의 시간으로 물러나는 시간 말이다. 최근 번역된 나이듦의 철학에서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은 저녁놀을 가리켜 불꽃, 저항이라고 했다. 밤의 시간을 향해 순순히 물러나고 스러지는 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호소를 담은 마지막 저항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 불타는 저녁 하늘이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은 아닌 것도 같다. 그래, 결국 금세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고 밤이 찾아오겠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마지막 호소, 저항이란 걸 한 번 해보자. 네팔에 가서 백발 휘날리며 히말라야로 넘어가는 노을을 마주하리라. 백발에 비친 노을빛으로 주황색 염색을 해보리라. , 노을이 물드는 시간! 열정적으로 삶을 놓아버리는 시간을 마주해 보리라.

 

<시니어 매일성경> 2023 11+12월 호 기고글

 

 

* 3년간의 연재를 마치는 마지막 글입니다. 

 

<시니어 매일성경>에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이란 제목으로 중년의 영성에 대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3년 연재의 마지막 편 하나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독자 메일을 받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최 선생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쓰신 책이 있는지 물어 오셨어요. 기분 좋은 메일이었습니다. 이 글은 픽션이고, 최 선생님은 만들어진 캐릭터이니까요. 

중년 영성은 노년의 삶에 닿기에 치매, 존엄사 등으로 최근 글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호의 주제는 죽음과 애도입니다.  픽션의 장점을 살려 상상력을 발휘하여 '어머니의 죽음'을 그려보았습니다. "엄마 방 엄마 침대에서 편안히 돌아가셨다면, 임종을 지켰다면, 장례식을 제대로 치렀다면..."  그대로 써보았는데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쓰는, 내가 바랐던 『슬픔을 쓰는 일』이 된 셈인데...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 내가 바랐던 방식이었다 해도 그리움과 슬픔의 처절함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싶네요. 마지막 사랑은 정말 애도인 것 같습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 17

 

 

조앤 디디온(Joan Didion)의 말처럼 모든 재난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죽음은, 평범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휴대폰을 열었는데,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예배 마치면 바로 전화 줘.” 평범한 순간에 평범하달 수 있는 메시지에 뭔가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 평생 가장 두려웠던 그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리고 다음 상황들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사천리로 장례식이 치러졌고, 그렇다, 치른 것이 아니라 치러진 것이다. 어느 순간 울고, 조문객을 맞아 대화를 나누며 어느 순간 웃기도 하고 그랬다. 호상이라고, 장례예배가 이렇게 은혜로울 수 있냐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입버릇처럼 기도하다 돌아가시면 좋겠다 하셨는데, 주일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중 숨을 거두셨다. 폐렴으로 며칠 입원 후에 퇴원하셔서 한 달여 스르르 생기를 잃으시다 편안히 돌아가셨다. 미리 예행연습이나 해둔 것처럼 일사천리로 장례식을 치르고, 조문객들에게 감사 인사와 메시지를 보내고 유품을 정리하기까지 일주일, 딱 일주일 걸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서늘하다 싶어 날을 헤아려보니 벌써 두어 달이 지났다. 여름의 뜨거움이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최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 장례 후 한두 번 메시지를 나누기는 했는데, 만나 뵐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밥 먹게 한 번 오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짬이 나질 않았다. 일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최 선생님뿐 아니라 일 외에 누구를 만난 기억이 아득하다. 정말 지나시는 길인지, 일부러 하신 발걸음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동네 지하철역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일 마치고 집 앞에 주차하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걷는 동네 가로수 길이다. , 정말 일만 했구나! 초록이 옅어지고 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나뭇잎들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금세 단풍이 들겠구나, 싶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지하철 개찰구 앞에 섰다. 이른 퇴근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이 많다. 멍하게 불을 바라보는 불멍, 파도를 바라보는 물멍, 지하철 도착하는 소리 후 밀려 나와 흩어지는 사람들 쳐다보는 사람 멍도 넋깨나 앗아가는 일이다. 선생님이 코앞에 다가오시도록 알아보질 못하고 있었으니.

 

어이구, 이 사람. 왜 이리 말랐어?

      어머나, 선생님. 어디서 오신 거예요? 제가 계속 보고 있었는데...

, 어디서 오긴? 저어~ 올 때부터 날 보고 있던 게 아니었어? 어쩐지... 그나저나 어찌 이리 말랐누! 이 사람... .

     아니에요. 워낙 늘 말라 있어서 오랜만에 보시면 새롭게 그렇게 보이시는 거예요. 일단 나가세요. 선생님 점심 몇 시에 드셨어요? 이른 저녁 하실까요? 평양냉면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나가면 바로 정통 평양냉면집 있는데요.

아니야, 고기 먹읍시다. 내가 정 선생 몸보신시키러 왔어. 소고기 먹을까? 삼계탕? 그래 삼계탕 좋겠다. 어때? 이 동네 삼계탕집이 있겠지?

     아, ... 저는 뭐든지.

 

미리 식당을 좀 생각해둘걸. 모처럼 뵌 것이고, 처음으로 우리 동네에 오셨는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일 마치고 그럴 여유가 없었다. 늘 여유 있는 시간에 느긋하게 뵙던 터라 좀 낯선 분위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선생님께서 평소답지 않게 적극적이시니 죄송한 마음 주저앉히고 삼계탕으로 식사를 하고, 조금 번잡한 대형 카페에 가 앉았다.

 

     선생님,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엄마 장례식 때 마음 표해주셨는데, 뵙고 인사한다는 게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네요. 제가 가서 뵈어야 하는데, 직접 오시고.

죄송은 무슨! 메시지도 주고 통화도 했잖우. 그래, 몸은 좀 괜찮아? 밥은 잘 먹고?

     그럼요. 밥 잘 먹고요. 잘 지내고 있어요. 일이 좀 많아져서요. 정신없이 지내고 있네요. 선생님도 별일 없으시죠? .... 그 개정판 책은 잘 나가고 있나요?

그거야 뭐, 교과선데. . 늘 나가는 만큼 나가겠지. 정 선생 덕에 죽기 전에 옷 잘 갈아입혀 나와서 고마울 뿐이고. 아니,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졌어?

     어쩌다 그렇게 됐네요. 기고하는 글도 마침 끝났고. 글이 통 써지질 않아서요, 대신 치료를 좀 늘렸어요. 아이들 대상 치료라는 게 몸을 많이 쓰게 되잖아요. 일 마치고 집에 오면 몸이 녹초가 되어 저녁 먹으면 금세 자고... 뭐 그렇게 지냈네요. 시간이 이렇게 간 줄도 몰랐어요.

그렇구만. 49제가 지났나? , 선생님 네는 그런 거 안 따지지?

     네, 그럼요. 두어 달 지났네요. 한창 더워지기 시작할 때였는데... 아까 집에 차 두고 걸어오는데 가을바람이 느껴지더라고요. 더위가 언제 갔나 싶어요.

그래, 마음은 좀 어때?

     (마음, 마음이라... 마음이 뭐지?) 마음이요? 음 그냥 뭐... 질문이 낯설게 느껴지네요. 그러게요. 왜 이러죠? , 죄송해요. (난데없는 눈물에 당황스럽다.)

죄송하긴. 괜찮아요. 괜찮아.

 

예상했던 것 같다. 선생님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하실 거라는 것을. 그래서 만나고 싶지만 피하고 싶기도 했고. 선생님을 마주하면, 뭔가 불편한 것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었다. 불편하지만 중요한 것을. 식사하면서는 부러 음식에 집중했고,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고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특유의 낮고 진중한 목소리, 흐릿한 눈으로 힘없이 바라보면서 동시에 어딘가를 꿰뚫는 눈빛에 자꾸 무언가 무너져내렸다. 금이 간 항아리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 느낌의 눈물이 자꾸 조금씩 흘러나왔다. 애써 막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막아두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러고 바라봐주시는 선생님 앞에 계속 앉아 있으면 눈물의 항아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왁자지껄한 대형 카페에서 터지면 대형사고가 될 테니 일단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에 있는 교회에 공원 같은 선교사 묘원이 있다. 늘비한 비석이 바라뵈는 벤치에 가 앉았다. 저녁이 되어 더 서늘해진 바람이 금이 간 마음, 그 틈 사이로 불어드는 것 같았다.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선생님. 저 잘 지내고 있어요. ... 아니 잘 지내고 있었어요.

?

     걱정하셨죠? 엄마 돌아가시고 생각보다 잘 지내요. 거의 울지도 않았고요, 열심히 일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아니... 있었어요.

그래. 대견하네. 그런데 갑자기 잘 못 지내게 됐어?

     그러니까요. 선생님을 뵈니까 갑자기 잘 못 지내게 된 것 같아요.

어이쿠, 내가 잘못했네. 이런! 노인네가 잘못했구만.

     와, 빠른 인정! 바로 인정하시기예요? 하하, 이러시면 재미 없는데...

우리 정 선생 웃었네! 울다 웃었네... 이거. 허허.

     저 정말 안 울고 잘 버텼는데, 어떻게 선생님을 뵙자마자 이러죠? 선생님 정말 묘한 분이세요.

, 묘하기는... 정 선생이 내가 믿을만 한가 보네. 고맙네.

     그런가요? 선생님, 그럼 저 울리러 오셨어요?

몸 보신시키러 왔다니까. 울어야 할 명목이 필요했다면 얼마든지 이유가 되어 드리리다. 허허. 울고 싶으면 울어, 정 선생. 괜찮아.

     하이고, 울라고 하시니까 눈물이 쏙 들어가는데요! 헤헤.

허허허, 이제야 내가 아는 정 선생 같네 그려.

     지난 두어 달이 없었던 시간처럼 느껴지네요. 가끔 무심코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할 때가 있는데. , 엄마가 안 계시지, 하는 현실 자각이 오자마자 바로 생각을 멈춰 세웠던 것 같아요. 엄마 돌아가신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다 이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않았어요. 그게 무엇이든 떠올리지 않기 위해, 오직 덤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나 봐요.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만나줘야 한다는 이론을 너무 잘 알면서 말이에요.

그럴 필요가 있었을 거야. (따뜻하게 등을 쓰다듬으시며) 정 선생, 혹시 어머니 얘기를 하고 싶어요?

     아... 엄마 얘기요? 엄마 돌아가신 얘기요? 정말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믿어지지 않게 말 그대로 예배드리다 돌아가셨죠.

그렇다고 했지? 기도를 많이 하셔서 그런가 보다. ... 어머니 돌아가신 얘기만 말고, 그냥 어머니 얘기, 말이야. 하고 싶어요? 정 선생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

     엄마요? 그냥... 엄마... 이야기요?

 

다시 눈물이 솟구쳐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하고 싶은가? 그렇다.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말 듣고 싶은 질문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시던 며칠에 대해선 장례식장에서부터 시작해 수십 차례 말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공식 장례 기간이 끝나고, 며칠 감사 인사를 하고 나니 더는 할 얘기가 없어졌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물어주시니 엄마의 부재가 아니라 존재했던 엄마가 떠올랐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엄마 이야기를 했다. 내 어릴 적 엄마와 관련된 장면, 노인이 된 엄마, 대학입학 시험 치던 날의 에피소드, 그러다 갑자기 중고등학교 시절 사춘기 얘기로 가기도 하고. 무슨 얘길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간간이 선생님께서 질문해 주시고, 고개를 끄덕여주시고, 같이 울어주시기도 했다. 그새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말인지 울음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쏟아놓음이 그치고 조용해졌다. 엉엉 울진 않았는데, 한참 제대로 통곡하고 난 느낌으로 뭔가 개운해지고 믿어지지 않게 말짱해졌다. 날이 어두워져 시야가 함께 흐릿해져 다행이었다. 말짱해진 마음과 고요가 덜 민망해졌으니.

 

개와 늑대의 시간이네. 알아요? 개와 늑대의 시간.

     아... 알죠. 개늑시요. 어둠이 내려와 개와 늑대가 구별되지 않는 시간, 낮과 밤이 교차하는 애매한... 지금 시간을 말하는 거죠.

그래, 애매하게 젊을 때는 이 시간이 싫었는데, 이제는 좋더라고.

     저는 애매하게 젊어서 이런 시간 별론데요. 헤헤. 지금은 좋네요, 울어서 팅팅 부은 얼굴도 안 보이고... 민망하고 창피한 것도 좀 숨겨주는 것 같고요. 죄송해요, 선생님.

뭐가 이렇게 자꾸 죄송해?

     자꾸 울어서요. 모처럼 뵀는데, 선생님까지 우울하시게... 그런데 저 정말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봐요. 누군가 물어주길 기다렸던 것 같아요. 감사해요, 선생님. 울어보니 알겠네요. 울지 않으려고, 엄마 생각 안 하려고 얼마나 힘을 주고 버텼는지... 이제야 알아져요.

죄송한 일 아닌 거 알면서! 이거 봐, 울고 나니 정 선생다운 표정도 말투도 나오잖아. 얼마나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지 아까 지하철에서 만났을 때 그냥 느껴지더라.

     엄마 돌아가시는 상상을 수십 수백 번 했거든요. 아마 아버지 돌아가신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 죽음이란 이런 거구나! 이렇게 갑자기 덮치는 거야. 어린 마음에 두렵기도 하고. 내가 자꾸 상상하고 마음으로 대비하면 이 두려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엄마가 어디 가서 조금만 늦어도 최악을 상상했어요.

그랬구나.

     결국, 장수하셨죠. 그래도 그 두려움은 늘 있었던 것 같아요. 밤에 잘 때도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지 못했어요. 혹시 엄마 어떻게 되셨다는 전화가 올까 봐요. 그렇게 준비하고 있던 이별이니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 정 선생이 한 말 중에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말이 있는데. 치료실에 오는 사람들은 죄다 울러 오는 것이라며? 언젠가 충분히 울지 못했던 그것이 오늘의 고통으로 돌아온 것이라며? 감정은 충분히 느끼고 흘려보내면 더는 없는 것이 된다고 우리가 자주 하던 얘기잖아.

     네... 그러니까요. 말만 번지르르했어요. 막상 닥치니 감정을 충분히 느끼도록 허락한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슬픔을 보이는 것이 정말 부끄러워요.

아아... 슬픔을 내보이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러게요. 어떻게 될까요? 그냥 저를 싫어할 것 같아요. 아니, 가엾게 여길 것 같은데... 그런 취급당하는 것이 싫은가 봐요. 그러네요. 아버지 돌아가시던 때가 생각나요. 장례 치르고 첫 등교한 날 장면이 늘 마음에 남아 있거든요. 제가 워낙 까부는 아이였는데, 그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교실로 들어갔어요. 친구들이 저를 가엾게 여길까 봐요. 자라면서도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슬프거나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 없는 아이라서 저래’, 하는 소리 들을까 봐요. 그래서 애써 더 밝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것 같고요.

그렇구나...

     

애도에는 완성이나 종결은 없다

 

     선생님, 그런데요... 선생님의 그렇구나에 무슨 마법이 있나 봐요. 자꾸 묻지 않으신 얘기까지 하게 되네요. 후후.

어이구, 그랬으면 좋겠네. 마법이라도 있으면. 정 선생, 이제 마음을 풀어놔 줘. 울고 싶을 때 울고, 엄마 생각해요. 죽음으로 관계가 끝나는 것 아니잖우? 어머니와 새롭게 만나야지.

     네? 새롭게요? 천국에서 만날 거란 말씀이세요?

물론! 천국에서 만나겠지. 여기서도 다시 만나고. 계속 더 깊이 사랑하고.

     아... 무슨 말씀인지... 여기서 만난다니요?

마지막 사랑은 애도가 아닐까 싶어. 떠난 부모님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애도라고. 아다시피 내가 남편과 어머니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국에 보내드렸잖우. 그 덕에 신앙을 가지게 됐고.

     그러시죠. .

벌써 20년이 된 일인데... 그게 아직도 슬퍼요. 살다 보니 떠난 남편과 부모님과 지금의 나를 연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슬픔이야. 사랑이라고. 자칫 그래서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면 슬픔이 그저 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이론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게 됐어.

     아, 그렇죠. 슬픔과 그리움이 사라지진 않죠. 저 역시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다 사라져서 이렇게 살아온 건 아니니까요. 그러네요.

자크 데리다(Jackie Derrida)는 애도에는 완성이나 종결은 없으며, 애도는 실패해야, 그것도 잘 실패해야 성공이라고 하는군. 내 인생은 그때, 20여 년 전 죽음의 경험 전과 후로 나뉘는데. 그 시절 지나고는 죽음, 애도, 같은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서 선생님 논문들이...

맞아. 그때 후로는 내내 사별 상담과 애도 상담에 대해서만 연구했어요. 언젠가 파리 여행 중 어느 미술관에서 외젠 뷔르낭(Eugene Bumand)무덤으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란 그림을 본 적이 있어.

     저 알아요. 그 그림 알아요. ? 선생님 책상에 작은 액자로 놓여 있는 것 아닌가요?

허허, 맞아. 눈썰미도 좋아. 그때 사 온 거예요. 암튼 베드로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어. 그림을 보는 순간 애도라는 말이 딱 떠오르더라고. 놀람과 슬픔이 가득한 눈동자, 때가 꼬질꼬질한 손과 손톱은 물론 검은 옷까지요. 부활의 아침, 그 순간을 맞기까지 예수님 사후 사흘을 어떻게 보냈을까 상상이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선생님이 돌아가셨어. 수제자로서 마지막 임종과 장례식을 지키지도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배신자로 끝이 났죠. 그 얼마나 혼란스러운 슬픔일까!

     아... 그런 상상은 해보지 못했네요. 수난과 부활 사이의 시간을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 내가 철없는 신자라 성경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력을 펼쳐서 그런가 봐. 암튼, 그 그림 앞에서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 많이 울었어. 몸의 부활을 확인시키고 다시 떠나신 그 선생님의 부재가 오히려 더 생생한 가르침으로 남았을 것 같아. 3년을 몸으로 함께 하며 들은 선생님의 목소리, 표정을 떠올리며 미치도록 그리웠겠구나 싶어. 그럴수록 복음 전하는 일에 담대하게 매진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재에서 베드로의 사랑은 더 깊어진 것이야.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깨달음 또한!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베드로가 그렇게 읽히더군.

     아! 선생님이 떠나신 빈자리에서 제대로 수제자가 되었군요. 베드로는.

나는 그렇게 읽히더라고. 애도는 완성이나 종결이 없다는 말도, 그분의 못다 이룬 삶과 사랑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알아들어요. 어머니의 빈 자리에서 온전히 슬퍼하며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엄마에 대한 사랑이군요. 애도는... 마지막 사랑은 애도라니...

그래, 그러니 슬픔을 틀어막지 말구려. 한 번 울면 멈추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우리가 머리로 아는 것보다 우리는 훨씬 더 눈물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다니까. 하긴 뭐, 문화가 그런 문화니까. 상담하는 우리 자신도 정작 내 눈물에 대해서는 이렇듯 미숙하니 말이에요. 애도 전문가 퀴블로 로스(Elisabeth Kübler-Ross) 여사가 그랬다고. 흘리지 못한 눈물은 슬픔의 샘을 더 깊게 채운다고.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이 다 빠져나오면 스스로 멈춰. 정 선생, 어머니와의 마지막 사랑을 잘 해나가. 나는 우리 아들과 손녀들이 내가 떠난 자리에서 충분히 울어주길 바래요.

     네, 선생님 그럴게요. 베드로의 이야기가 크게 위로가 되네요. 감사해요, 저 이제 힘을 내서 울 만큼 울게요. 더는 울 필요가 없을 때까지 용감하게 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과 헤어져 다시 집으로 걷는 길, 뭔가 마음이 묵직하고도 홀가분하다. 엄마를, 아니 엄마를 향한 마음을 느껴본다. 아직 어떻게도 말할 수 없는 띵하고 얼얼한 아픔이다. 메멘토 모리! 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이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더는 관념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엄마를 기억하는 것이고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마지막 사랑이다.

 

<시니어매일성경> 9,10월 호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6

 

최 선생님은 주변 모든 이들을 위한 상담자 같으시다. 선생님 댁 현관 앞에서 울며 나오는 한 여자분을 만났다. 내담자려니 했는데, 친구분의 며느리란다. 얼마 전 치매 증상으로 요양병원에 가신 선생님 친구분, 그 소식으로 선생님도 한동안 적잖이 힘겨워하셨었다. 듣자 하니 어머니 요양병원 입원 후 자녀들 사이 갈등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다친 며느리가 선생님을 찾은 것이다. 집에서 치매 어머니를 모시던 분이다. 스쳤지나 듯 마주쳤지만, 고통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일은 뭔가 남 일 같지가 않다.
 
     선생님, 힘들어 보이세요. 좀 쉬실까요?
그러게. 기력이 없네. 이젠 상담도 접어야 할 때가 됐나 봐. 잠깐 있어 봐. 으읏짜, 내가 뭘 좀 먹어야 한다.
     네, 선생님. 어여 홍삼 드시고요. 오늘은 좀 쉬세요. 저는 다음에 올게요.
예이, 사람아! 가긴 어딜 가? 노인네랑 놀아주고 가야지. 기력 없는 노인네 내쳐 두고 가버린다고? 걱정 마오. 벌써 다시 힘이 나는 걸.
     아니요, 기운이 없어 보이셔서요. 하긴 또 제가 인간 비타민이니까요. 에너지 팍팍 드리겠습니다. 헤헤. 힘든 얘기 들어주는 게 보통 에너지 드는 일이 아닌데, 선생님 대단하신 거예요.
그래? 정 선생은 상담할 때 들어주는 게 힘들어?
     저요? 어... 저는 인간 비타민이니까, 스스로 비타민 주입이 가능하니까 그리 힘들지 않죠. 헤헤. 상담 일 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그렇잖아요. 번 아웃이 오기도 하고요. 선생님은 그런 적 없으세요?
왜 없어? 그런데 나는 아픈 얘기 듣는 거 어렵진 않아요. 차라리 부동산 얘기, 건강식품 얘기, 연예인 얘기하는 친구들 수다가 더 괴로워. 교만한 노인네야. 후훗...
     오,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나는 상담이 좋아요. 아프고 힘든 얘기 하려고 상담 오는 거니까, 사실 그게 다 인생의 진실 아니오! 진실한 얘기는 아플지언정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는 않아. 차라리 근사하게 포장하고 좋은 말만 오가는 대화가 에너지를 더 뺏더라.
     정말 그러네요. 좋은 말 대잔치가 피곤한 게 그런 거였군요. 진실한 대화! 그런 의미라면 저도 상담 안 힘들어요. 셀프 비타민 주입은 취소구요! 헤헤.
고통이 진실이지. 그래, 고통이 진실이야. 삶은 고해라고!
 
누가 문제예요? 딸이에요? 며느리예요?
 
     그런데 선생님, 친구분 자녀들이요. 따님도 계속 전화하시는 거 아니에요? 전에 따님이 소식 알려주시고 상담도 하고 그랬던 거잖아요. 올케 시누이가 마주하고 싸울 얘기를 각각 선생님께 하는 거 아니에요?
, 이제 정 선생이랑 내 친구네 집안사까지 나누는 사이가 됐구나. 며느리는 오늘 처음 온 거야. 상담을 받겠다고 하는데 일단 보자고 했지... 아니나 다를까, 어디든 억울한 감정 쏟아놓을 곳이 필요했던 거야. 사정 아는 사람에게 제 마음 보여주고 싶은 거지 뭐.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부모님 모시는 사람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쪽저쪽에서 좋은 소리는 못 듣는 건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 같아요.
어라, 부모 모시는 속내를 겪어보지도 않은 정 선생이 어떻게 알아?
     모셨다고 볼 수는 없지만요. 아이들 어려서 풀타임 일할 때 육아 때문에 함께 산 적 있거든요. 제 필요로 함께 사는 건데도요. 정말 힘들더라고요. 힘든 것 꼽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뭐랄까. 같이 사는 건 일상이잖아요. 한 번씩 왔다 가는 자녀들과는 어떻게 비교할 수 없는 처지인 거죠. 아까 현관에서 잠깐 스쳤는데도 그 며느님 마음이 느껴지던데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제 필요 때문에 함께 사는데도 그렇게 힘들었는데요. 연로하신 어머니, 그것도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게... 아아, 저는 상상이 안 돼요.
그러게나 말이야. 치매 걸리기 전에도 내 친구가 만만한 사람은 아니거든. 평생 교직에 있으면서 자부심도 컸고. 가르치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 말이야. 같은 사는 며느리 쉽지 않겠구나 싶었었어. 그 며느리 고생 많았지. 발병하고 요양병원 가기까지 한 3년인데, 처음에는 치매인 줄도 몰랐잖아. 하루하루 인격이 달라지는 시엄마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 거든.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에효, .... 죄 없는 자식들이 서로 할퀴고 그런다. 어쩌겠어. 병원으로 가야지. 갈 데로 간 건데 딸은 또 못내 안타까우니까 제 올케한테 싫은 소리를 한 모양이야.
     아오, 정말! 딸이 너무한 거 아녜요. 자기가 한 번 모셔보라죠. 노인네 세 끼 식사 차려드리는 것만으로도 큰 일이라고요. 그것도 치매 어머니를요. 너무 이기적이에요!
허허허, 그렇긴 한데. 정 선생이 왜 이리 흥분을 해? ? 시엄마 모시게 될까 겁나?
     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흥분했나요? 헤헤. 시어머니는 아직 젊으시고 혼자 지내는 것 좋아하시니까요. 아흔 넘은 엄마가 동생네하고 사시거든요. 올케한테 늘 미안하더라고요. 한 번씩 엄마 보러 가는데 눈치가 보여요. 올케는 이것저것 식사 한 끼라도 신경 쓰일 거고, 복잡하네요. 뭔가, 마음이...
그렇구나. 딸 말도 그래. 걔도 제 입장이 있더라고. 제 엄마 성질도 알고, 그 성질 받아내고 모셔 준 올케가 고맙고 미안하대. 그래서 제 딴에는 한다고 했다는 거지. 치매 엄마 병원에 넣고 보니 마음이 갈피가 잡히지 않았나 봐. 저는 힘든데 병원 보내고 좋아라하는 것 같은 올케가 이해도 되지만 섭섭했대. 어쩌다 그 말 한 마디가 나와서 옥신각신하게 된 모양인데, 말이 오가면서 감정이 커진 거지 뭐.
     아... 며느리가 좋아라 했어요?
속으로 좋아라, 했어도 좋다고야 했겠어? 벌써부터 병원으로 모시자고 한 건 딸이었어. 그런데 올케가 괜찮다, 괜찮다 했다는 거지.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인 거 알고 제가 나서서 추진했는데... 사리분간 못하는 엄마를 병원에 혼자 놓고는 몇 날 며칠 눈물 바람을 하다가 참았으면 좋았을 말을 내놓았나 봐.
     어떤 말을 참아야 하는데요?
하긴, 참아야 하는 말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
     그러면 선생님, 지금 누가 문제예요? 딸이에요, 아까 그 며느리예요? 양편 말을 다 들어보셨잖아요. 이런 경우 두 사람은 서로 어떻게 화해해야 할까요?
글쎄, 화해라... 화해만이 능사인가 싶고. 입장이란 게 있는 거잖아요. 정 선생도 며느리 입장으로 생각할 때와 딸 입장이 될 때 다르지 않은가?
     어... 그러네요, 선생님. 입장이란 게 있죠. 아니, 그러고 보니 도대체 이런 때 아들 사위는 왜 사라지고 없는 거죠? 요양병원으로 모시지 않는 한 부모님 수발은 거의 여성들 몫이잖아요. 그것도 주로 며느리요. 오래전 읽었는데 제목도 잊히지 않는 박완서 선생 소설 생각이 나요. 『환각의 나비』라는 소설인데요. 치매 어머니 돌보는 문제로 딸과 아들 사이 갈등인데, 어머니 자신이 “내가 아들이 있는데 왜 딸 집에서 죽어야 하냐?”는 식이었거든요. 아들 집이면 결국 돌봄 노동을 맡는 건 며느리잖아요. 젊을 때 읽었는데도 마음이 참 복잡했었던 게 생각이 나네요.
에이구, 그냥 병원으로 가야지! 병원! 뭐 아들 집, 딸 집이야? 에이구! 정말! 맞아,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유교적,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뿌리가 깊어. 내 친구들만 해도 비슷하다니까. 노년에 딸 집에서 돌봄 받는 걸 은근히 부끄러운 것으로 여긴다고.
 
웰다잉, 잘 죽는 게 뭐지?
 
     하아... 선생님 참. 막막하네요. 저도 마주해야 할 일인데... 양가 어머니들 생각하니까요. 집에서 편안히 돌아가시는 건 이상일 뿐일까요? 존엄한 죽음 같은 것 말이에요.
글쎄... 존엄한 죽음이라. 요즘은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 웰다잉, 많이 하던데. 둘 다 콩글리쉬잖아. 웰다잉... 그게 무슨 뜻이야? 잘 죽는 게 뭐지? 살던 집에서 자식들 돌봄 받으며 죽으면 잘 죽는 걸까? 시설 좋은 요양병원에서 비싼 간병 받으면 존엄한 죽음이 되려나? 집에서 모실 자식 없고, 좋은 요양병원 갈 돈 없는 사람은 웰다잉도 애초 틀려먹은 거유?
     그러게요. 저는 그 따님이 너무 이해되는 게, 제가 친정엄마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딱 한 가지이거든요. 집에서, 엄마 방에서 돌아가시게 해주세요. 엄마도 늘 그러시죠. 잠자다 불러가시면 좋겠다. 기도하다 불러가시면 좋겠다. 엄마가 쓸쓸하게 병원에서 돌아가신다 생각하면... 아, 생각도 하기 싫으네요.
그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 좋겠지, 정말 좋겠지... (한참 생각에 잠겨 말이 없으시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여사라고 알죠?
     그럼요.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 말씀하신 분이죠?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였던가요? 애도 전문가시잖아요. 그 5단계는 정말 일리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죽음에 대해 현대적 의미로 가장 잘 정리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 호스피스 운동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할 거야. 그 사람이 시한부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하고 쓴 책이 죽음과 죽어감 On Death and Dying인데, 5단계가 그 책에서 나와요.
     아... 읽어봐야겠네요.
정신의학자라고 다 그러지 않을 텐데, 죽음과 상실에 대한 남다른 영적 감각을 타고난 사람 같아요.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대하는 의료진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대. 환자 한 사람이 아니라 심박 수, 심전도, 폐 기능... 같은 것만 보더라는 거지. 사람, 그렇지! 한 사람의 죽음인데 말이야. 그런 계기로 일생 죽음을 연구했어.
     그러니까요, 선생님! 한 사람, 하나의 고유한 생명,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인데 병원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럴 수도 없을 거고요. 그래서 노부모님 병원에 두는 게 애달픈 일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친구분 따님 마음이 또 이해가 되고요.
그래, 말 잘했어. 죽음의 외주화라는 표현을 하지. 퀴블로 로스도 아까 말한 책에서 그런 얘기를 해요. 조부모가 집에서 임종을 마주하고, 아이들은 그 과정에 함께 하고, 심지어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고 대화하고, 가족들이 함께 애도할 수 있다면 인생에 대해 큰 가르침이 될 거라는 것이지. 맞아요.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 그 이상 좋을 수가 있겠나. 그런데 그야말로 이상이지.
     이상... 그렇죠. 저희 친정엄마도 지금은 혼자 화장실도 가시고 최소한의 자기 돌봄이 가능하니 집에서 사실 수 있는 거죠. 여기서 더 안 좋아지시면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아슬아슬해요.
어이구, 정 선생네도 올케가 고생이 많겠네.
     맞아요, 선생님. 동생 가족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죠. 그런데 말씀 듣다 보니 그 딸이 이해가 되는 게요. 무슨 말을 못 참았을지 딱 상상이 되네요. 가끔 엄마한테 가서 보면 제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거든요.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겼으면 싶은 거예요. 그런 디테일들이 보일 때 참 힘들어요. 보여도 못 본 척해야 하는 거죠. 이런 것 좀 신경 써라, 잘 챙겨라, 한마디 하는 순간, 올케 입장에선 어이없고 서운하게 들릴 거예요. 그래서 꾹 참죠. 꾹 참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는 적도 많아요. 그러네요. 모두 마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말 한마디면 사이가 나겠어요. 에고, 저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요.
그래, 어려운 거지. 저이들이 양쪽에서 울고불고하는 게 누구 잘못이 아니라고 봐. 지금 같은 가족 구조에서 집에서 생애 말기 돌봄이 가능한 집이 얼마나 되겠으며. 아까 정 선생이 말 잘했다. 한다 한들 그 짐은 고스란히 딸과 며느리 여성의 것이 되는 구조는 또 어떻고? 돈이 좀 있고, 입주 간병인을 쓸 수도 있겠지. 그렇더라도, 이것 봐. 이 사람들처럼 자식들 사이에서 뒤늦게 터지는 갈등이라니 말이야.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웰다잉이니, 존엄한 죽임이니, 말은 그럴 듯하지만.

 
부활의 확신이 곧 웰다잉의 길
 
     선생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할까? 착한 자식 없고, 돈 없는 노인들도 생애 말기에 조금 공평하게 인간적 대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복지국가가 뭐야. 이게 국가적인 대안이 생겨야지.
     그러네요. 선생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존엄한 죽음이라는 게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네요.
나도 곧 죽을 사람인데 말이야...
     어... 엇... 서, 선생님 오래오래 사셔야죠. 무슨 말씀이요?
뭐 그렇게 당황해? 허허. 기력이 없어서 상담도 못하겠는 노인넨데,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요, 선생님...
괜찮아. 여태 우리가 한 얘기가 내 친구 얘기도 아니고, 정 선생 어머니 얘기만도 아니고 내 얘기야. 나한테는 생애 말기 시간이 안 오겠어요? 죽음이 나를 비켜가겠냐고?
     아...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지 알아? 말해줄까? 허허허.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이라고 알아요? 수식어가 많이 붙지만, 평화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분이 100세가 되었을 때 서서히 스스로 곡기를 끊으면서 생을 마감했어요. 자연사라는 게 기력이 떨어져 음식을 섭취할 수 없으면서 서서히 쇠약해지면서 죽는 것 아니유. 실제로 이런 식으로 죽게 되면 탈수 현상이 오고 피가 산성화되면서 고통 대신 행복감을 느끼게 된대요. 그런 복이 허락된다면 그리 죽고 싶네. 나는...
     스스로 곡기를 끊는다... 결국 자발적인 안락사인가요? 조금 혼란스러운데요, 선생님.
나는 의료행위로 생명을 연장하는 게 싫어요. 스콧 니어링처럼 하진 못해도, 적어도 의학의 힘으로 더 살고 싶진 않으네. 그래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을 해두었어요.
     아, 그러세요? 어떻게 그걸...
뭘 그리 놀라? 어떻게는 어떻게야. 그냥 가서 하면 되는 거야. 내가 신청했다 해도 나중에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또 안 된대요. 나는 오래전부터 아들에게 얘기해뒀어요. 연명치료 하지 말아 달라고. 콧줄로 영양공급 하는 것도 원치 않아요.
     와아, 선생님. 디테일하시네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하게 행동하고 말씀하실 수 있으신 거죠? 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좀 놀라워요, 선생님. 이렇듯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관리하실 수도 있는 거군요.
죽음을 관리한다고? 에잇, 그렇지 않아. 죽음을 어떻게 통제 관리해? 차라리 나는 통제할 수 없기에 이러는 거예요. 사전 연명치료거부서를 작성해 놓는다고 내 죽음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될까? 그걸 기대해서 한 건 아니야.
     그러면 왜 하신 거예요?
하하, 어찌 이리 순진한 표정이야? 내 말이 정신없는 노인네 같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요. 그냥 좀 마음이 먹먹하고, 뭔가 좀... 계속 말씀을 듣는 게 힘들고 슬프네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니까요.
그래. 그럴 수 있겠네. 나는 웰다잉이란 말이 불편하더라고. 죽음까지도 자기 계발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평생 상담 일 하면서 발견한 것은요. 자기계발식 노력과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대부분의 고통이란 것이 인간의 통제 밖에 있거든. 하물며 죽음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실은 어떻게 죽을지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내가 열심한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기독교 신앙으로 분명하게 방향을 바꾼 것이 가족들의 죽음이잖아요.
     아, 그 얘기해주셨었죠. 남편분과 어머님 돌아가신 후에 죽음에 관한 책을 읽으시며 슬픔을 이기셨다고요. 스캇 펙(Scott Peck) 박사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이었던가요? 그 소설 읽으시고 죽음의 문제를 다시 보게 되셨고 신앙생활 시작하셨다고요.
기억력도 좋네. 맞아.
     이제야 이해가 돼요. 선생님은 다른 게 아니라 죽음을 통해 회심하신 것이군요. 아까 속으로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의연하실 수 있을까? 의연함이 믿어지지 않아서 좀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근자감에 대해 여쭤보고 싶었죠.
근자감? 그게 무슨 감이야?
     하하, 근거 없는 자신감이요! 젊은 많이 쓰는 줄임말이에요.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지. 어머니와 남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정말 죽음이 두려웠어요. 죽을 운명을 안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 실은 남모르게 목숨을 거둘 생각도 했었다오. 내 비록 선데이 크리스천이고, 믿음도 적지만... 죽음 너머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겠어요. 그리고 그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이라는 것도. 그 믿음으로 마지막 시간을 버티고 있지. 아니야. 버티는 거 아니다. 죽음 너머의 영원한 삶 때문에 사는 게 의미가 있어요.
     부활 신앙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믿음이 이렇게 좋으셨어요?
, 부활 신앙. 그래, 나는 부활 신앙인이야. 부활을 믿으려면 먼저 죽음을 믿어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끔 열심인 교인들을 보면서 안 죽을 것처럼 산다고 느껴질 때가 있거든. 사전연명의료향서 신청 왜 했느냐고 했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겠다는 게 아니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예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집이든 호스피스든 어디서 어떻게 죽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존엄한 죽음 아닐까.
     아, 선생님 메멘토 모리요! 늘 메멘토 모리를 말씀하시는 이유이시군요.
그래, 메멘토 모리. 이 사람 참 기억력 좋고. 하하. 친구 며느리와 딸이 각각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어. 나도 마지막엔 어쩔 수 없이 하나 밖에 아들에게 의존해야 하겠죠. 정 선생 말대로 의연하고 싶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해둔 건, 아들이 져야 할 부담을 최소한으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죽든 기꺼이 받아들이며 죽고 싶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존엄한 죽음이에요.
     선생님, 웰다잉의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부활에의 확신이 존엄한 죽음, 웰다잉의 길이에요. 부활을 믿으려면 내 죽음을 믿어야 하고요. 오늘 부활 신앙에 대해 한 수 배웠어요.
허허, 참 이 사람 기억력도 좋고 정리도 잘 해. 아이고, 배고프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배고플 땐 먹어야지. 밥 먹읍시다!
 
 
<시니어 매일성경> 7,8월 호 기고한 글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5

 

언젠가 최 선생님과 치매에 관해 얘길 나눈 적이 있다. 지금처럼 편한 사이도 아니었고, 여러모로 민망했던 기억이다. 내가 선생님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죄송한 마음, 당황한 마음으로 아무말 대잔치로 사과드리던 끝에 툭 나온 말로 선생님께서 정색을 하셨었다. 화내시는 모습을 처음 뵈었었다. 돌아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선생님을 몰랐다. 몰라도 한참 몰랐고, 무엇보다 노인과 편하게 대화할 태도가 되어있지 않았다. 존경심도 있었지만, ‘노화를 주제로 노인과 대화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만 했었다. 건망증, 치매 이런 얘기를 하던 끝이었는데, 어설픈 배려를 하려다 노인에 대한 선입견이 들통나 혼이 나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한 솔직한 대화로 당시 부쩍 심해진 건망증으로 높아졌던 내 불안감은 해소되었고 선생님과는 한결 가까워졌다. 댁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께서 갑자기 그날을 기억하느냐 하셨다. 당연히 기억한다고 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니, 현관문을 열어주시던 때부터 표정은 이미 난감 그 이상이었다. 왜 갑자기 그날이 소환된 것일까? 무슨 일이 있으신 게 분명한데, 여쭙기도 어려운 무거움이어서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만에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여셨다.

 

내 친구가 치매에 걸렸다면?

 

사람 입이 그렇게 가벼워서야... 그래, 입이 문제겠는고, 마음이 가벼운 것이지. 내가 그때 치매에 대해 어쩌구저쩌구 아는 척을 하며 입방아를 찧어 댔지.

     아, 아니요... 선생님. 가볍다니요... 전혀...

뭐라고 했는지 정 선생 기억하우?

     제 건망증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책도 빌려주셨었죠. 다 생각나진 않지만, 긍정적인 얘길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저 건망증에 대한 걱정 별로 안 하게 되었는데요.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하아, 참나. 내 친구가 치매예요. 치매 진단을 받았어. 그것도 많이 진행된 상태라오.

     아...

문제는 내가 벌써 감지한 게 있는데, 무심했어요. 가벼운 건망증이려니 하고 지나친 일이 여러 차례라고. 아마 내가 그때 정 선생한테 했던 말들이 화근이었을 거야. 지나친 자기 확신이었지. (끌끌 혀를 차신다.)

     화근이라니요? 어떤 말씀이 화근이었다는 건지...

코로나 직전이었을 거예요. 친구가 약속을 까맣게 잊고 모임에 나오지 않는 일이 있었거든. 가볍게 생각했어요. 단기기억 저하는 어쩔 수 없는 노인네들의 뇌의 문제다, 하면서. 한 번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러다 다른 친구와 다툼을 하기도 했지. 자기만 빼고 약속을 잡았다는 둥 우기는 바람에.

     그러면 그때 이미 증상이...

그렇지. 그러고는 바로 코로나 터져서 모임이고 뭐고 문 닫았고, 연락도 서로 거의 못했어. 코로나 기간에 진행이 빠르게 된 것 같아요. 딸한테서 전화가 왔네. 요양병원으로 갔다고... 휴우... ... 내가 자만에 빠져서 내 친구도 못 지켰어.

     선생님, 무슨 말씀이요! 선생님께서 무슨 수로 친구분을 지키세요?

그래, 맞다. 내가 무슨 수로 지켜? 그래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말이야.

 

치매가 치료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 조금 빨리 발견했다고 해서 더 나은 치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 아닐 것이다. 그 아쉬움과 자책감은 짐작이 가기에 뭐라 드릴 말씀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님의 치매는 차라리 받아들이기가 나을지 모르겠다. 내 친구가 치매에 걸렸다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어. 지나친 것에 항상 무엇인가 숨겨져 있지. 안 보고 싶었던 거야. 65세 이상 치매 확률이 5%, 뭐다 하면서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아니 내 친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처럼 말이야.

     선생니~, 그때 말씀해 주신 감사 요법이 제게도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데요.

감사 요법?

     네, 치매가 걸리더라도 예쁜 치매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인간의 뇌가 나쁜 경험, 아팠던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요. 억울한 것, 섭섭한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환상을 잘라내는 것이 감사라고요. 그건 지나친 낙관이 아니에요. 선생님의 그 낙관, 지나치지 않았어요.

그래, 그래. 맞아. 허허, 울겠네, 이 사람! 내가 상심이 돼서 그래. 알았어, 알았어.

     아니, 그게... 제가 왜 갑자기 울컥하는 거죠? 죄송해요. 제가 선생님을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 , 진짜 이 부적절한 감정...

아니야, 아니야, 고마워요!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지. 뭐가 부적절해? 오늘 정 선생이 잘 왔다.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 뻔했는데, 감사 요법이 아니라 정 선생이 딱 끊어줬네. 뭘 좀 먹읍시다. 사람 오자마자 붙들고 자책에 한탄을 하고 앉아서 물 한 잔도 안 내주고 있었네.

 

이게 최 선생님이다. 화가 날 때 그것을 숨기지 않으시고 솔직하게 표현하시고, 금세 풀고 웃으시는 분. 감정이 물 흐르듯 한달까? 유연한 마음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뵈면 뵐수록 이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마음이 뇌에 있다면 선생님의 뇌는 이렇듯 말랑할 텐데, 선생님 같은 분이 치매에 걸리실까?

 

이렇게 큰 딸기 봤수? 킹스베리라나 뭐라나? 무슨 딸기가 이렇게나 크냐 말이야.

     와아, 저 보기는 봤는데요, 처음 먹어봐요.

두어 개 먹으니 배가 부르더라고. 상담 종결한 청년 내담자가 가져왔어요. 처음 왔을 때 비하면 내면도 외적 환경도 많이 좋아져서 내가 보람이 있어. 오랜 구직생활 끝에 취업을 했거든. 첫 월급 받았다고 통 크게 썼다는 거야. 그리고 가면서 하는 말이 힘들 때 또 상담하러 올 거니까 꼭 살아있으래. 하하.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해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주 맹랑하다구.

     선생님, 선생님은 치매는 절대 안 걸리실 것 같아요.

?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 같은 분은요...

이 사람도 맹랑하네. 하하. ? 치매 걸리는 사람이 따로 있나?

     매사 긍정적이시잖아요. 유연하시고요.

장담할 수 없어.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하는 게 그런 말이야. 나는 사실 치매 걸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거든. 치매 안 걸리고 맑은 정신으로 사는 여생은 얼마든지 대비할 수 있지만, 걸린 후의 삶은 내 통제 밖에 있는 것 아니유? 걸리면 걸려야지 어떡하겠나.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것도 있었어. 정 선생이 약속을 잊었던 날 말이야.

     네, 그날로 제가 선생님께 완전히 빠져들었는데요. ‘단짠단짠다 해주셨잖아요. 처음으로 제게 화도 내시고, 건망증에 대한 제 염려를 합리적으로 딱 설명해주셔서 안심도 시켜주시고... 그 유연함과 긍정성이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야. 건망증도, 치매 초기 증상인 경도인지장애도 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거든. 오는 치매 어쩔 수 없다. 지나친 민감함과 거부가 더 문제라고 말이야.

     네, 그때 그렇게 말씀하셨었죠.

그 교만 때문에 내가 불을 보듯 훤한 내 친구의 치매 증상을 캐치하지 못한 거야. 전문가라고 하는 내가 말이야. 친구를 도울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라우.

     선생님, 치매에도 골든 타임이 있나요?

... , 완치가 없으니까 치료의 골든 타임은 말할 수 없겠지. 진행을 늦추는 약이 있을 뿐이니까. 그래, 얘기가 다시 원점으로 왔구만. 자책은 그만 하겠수다. 아무튼 친구가 약속을 잊고, 자기만 몰랐다고 우기면서 다른 친구들과 대거리하는 게 듣기 싫어서 귀를 닫고 있었거든. 그것이 치매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조금 다르게 대했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친구와는 소통이 끊어진 거잖우. 차라리 민감하게 의심이라도 했으면 오가는 마음이 있었을 것 아니유. 이제 요양병원으로 갔으니... 이승에서는 끝났지.

     아... 그런 마음이시군요.

 

치매는 무능하기만 한 질환이 아니다.

 

정 선생 혹시 <더 파더>라는 영화 봤어요? 안소니 홉킨스가 나오는.

     영화는 알아요. 보지는 못했고요. 주변에서들 많이 추천하던데, 저는 어쩐지 선뜻 보게 되질 않더라고요. 안소니 홉킨스가 치매 환자 연기를 그렇게 잘했다고요?

그래, 나도 참 보기가 힘들었어. 이제 와 얘기지만 보고 나서 며칠 우울해서 괜히 봤다 싶기도 했어. 그래도 한 번 봐요. 심리 치료하는 사람이니 꼭 봐야 할 영화야.

     그렇군요. 영화가 왜 힘드셨는지 여쭤보면 맹랑한 거죠?

이런! 오늘은 또 맹랑하기로 작정을 하셨구만! 스포일링 해도 되겠소?

     아, 저 스포일링 된 상태로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반전, 소름, 이런 거 잘 못 즐겨요. 다 얘기해 주셔도 돼요.

특이한 것이 치매 환자 자신의 시점으로 그린 영화예요. 그렇게 보지 않으면 스릴러 같기도 하고 스토리 전개가 무척 혼란스럽다고. 치매를 앓는 이의 눈에 보이는 공간과 일상의 일들이 어떻게 혼란스러운지가 생생하게 그려진다우. 지식적으로는 모르던 바가 아니었지만, 다소 충격이었어.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치매, 그러면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먼저 떠오르지 환자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미 정신이 와해 된 상태이실 테니 이해 불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바로 그 점이야. 내가 지금 친구가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살아오면서, 단지 늙은이의 고집이나 어깃장이 아니었는데 싶은 거라우. 모르지도 않았던 내가 말이외다. ... 휴우...

     결국, 고집과 어깃장인 건 맞잖아요. 그래서 주변이 힘든 거고요.

, 그렇지않아요. 그렇지 않다고 봐요. 무작정 억지를 부리고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 단순한 치매 증상이라고 할 수는 없어.

     무슨 말씀이신지?

이러려고 그랬는지, 칼 융(Carl Jung)이 말하는 동시성인지, 내가 얼마 전에 좋은 책을 하나 만났어요. 뇌과학자가 쓴 치매에 관한 책인데, 흥미롭게도 학술서적이나 논문이 아니야. 뇌과학자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거예요. 과학자이며 딸로 2년 반 동안 치매 걸린 어머니의 변화를 일기 쓰듯 기록하고 깨달은 내용을 쓴 거예요.

     오, 특별한 치매 서적이겠네요. 과학자이며 딸로서 쓴 책이라니.

그러니까 말이유. 그간 읽었던 어떤 논문보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대해 명쾌했고, 나는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치매로 전혀 다른 인격이 된 어머니에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지 않은 그 어머니다움을 찾으려는 노력과 결국 찾아내는 눈이 감동이 되더라고.

     그 책으로 선생님 친구분에 대한 이해를 다르게 하신 거군요.

, ! 그 얘기 하다 말았지. 치매 환자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건데. 치매는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하기만 한 질환이 아니라는 거야. 치매로 인해서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치매 환자들 스스로 곤란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전략을 찾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제삼자가 봤을 때는 이상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름 자신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거지.

     아, 영화 <더 파더>의 관점처럼 치매 환자 자신의 입장을 헤아린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지. 특히 초기에는 자신도 혼란스럽고, 실수하거나 이상하다는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 뭔가를 하려고 애쓴다는 거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는 것도 단지 인지능력 저하 때문만은 아니라, 나름의 자구책인 거예요.

아아...

내 친구가 약속을 잊고는 우기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나름의 노력이었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선생님. 친정어머니가 치매이신 친구가 있어요. 요양병원에 계신지 오랜데요. 처음엔 그 사실도 몰랐어요. 어쩌다 그 사실을 알게 됐는데, 친구가 너무도 의연한 거예요. 워낙 밝은 성격이기도 하지만요. 심지어 그렇게 말해요. 어머니가 다른 병 아닌 치매라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요. 딸조차 못 알아보신대요. 당신 자신도 모르시고, 아무것도 모르시니 차라리 행복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자기의식이 없으실 테니 고통도 없으시겠구나 싶고요. 그 부분에 대해선 두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군요.

진행이 많이 되었을 때야 또 모르겠지요. 적어도 그 뇌과학자는 그래요. 증상이 심해져서 이전 어머니의 모습이 다 지워졌음에도 자기 어머니다움의 본질은 남아 있더라고요. 특별한 모녀 관계니 가능한 발견이긴 하겠지. 뇌과학자이며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았던 딸을 둔 치매 환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수.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대화를 이끌며 생기를 찾으시더니 그새 다시 침울한 얼굴이 되셨다. 그렇지! 최 선생님이시니까 이런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지 어느 노인이 치매를 가벼이 마주할 수 있을까. 게다가 가까운 친구분의 일이 되었으니... 다시 민망해진 마음이다. 뚝 끊어진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느새 뉘엿뉘엿 저녁 해가 넘어가고 있다. 역시 선생님이 먼저 힘을 내셨다.

 

끝까지 남는 건 감정 기억

 

어헛, 오늘 정 선생이 귀인이다. 치료사는 치료사야. 주거니 받거니 얘기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 뭐야. 상담비 내야겠다. 저녁 뭐 사줄까?

     네? ! 상담비요? 그러면 저녁으로 상담비 퉁 치시면 안 되고요. 상담비는 따로 청구 들어갑니다. 헤헤.

그리 하구려. 백지수표 줄게. 허허.

     네, 백지수표 접수합니다. 하하하.

고맙네. 친구 딸이 전화해서는 한참을 우는데 내 심장이 다 흔들리더라고. 천지분간 못하는 것 같은 제 엄마를 병원에 데려다 놓고는 마음이 추슬러지질 않는대. 왜 아니겠어?

     저희 엄만 저를 늦게 낳으셨어요. 지금 아흔이 넘으셨거든요. 연세가 무색하게 정정하시고 특히 정신이 좋으셔서 치매 걱정은 해보지 않았는데요. 상상만 해도 막막하고 가슴이 쪼여오네요. 내가 아는 엄마가 사라지고 다른 엄마가 되었을 때,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 다른 엄마가 된다... 아까 말한 책에서 말야. 저자가 찬찬히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인지기능이 만든 그 사람다움과 근본적인 감정이 만든 그 사람다움이 따로 있다는 거야. 쉽게 말하면 뇌 기능의 문제로 기억의 손실과 정보 입력의 혼란으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만, 감정적으론 자기 엄마 그대로이더라는 거야.

     아, 감정이요? 엄마의 감정이요...

그래,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뇌에서 가장 먼저 세포사가 진행되는 곳이 기억 중추라고 하는 해마. 기억 장애가 제일 먼저 일어나지. 그런데 끝까지 남는 것은 감정 기억이야. 내 친구도 말이야, 인지적으론 문제가 생겼지만, 느낌은 손상되지 않았던 거야. 평소보다 더 우기고 고집을 부렸던 건 자존심을 지키려는 발로였을 거야. 그랬을 것 같아.

     선생님, 왜 노인치료에서는 느낌을 존중하라고 하잖아요. 노인 음악치료에서도 환자의 느낌에 대한 믿음으로 치료 디자인을 하라고 하거든요.

맞아, 치매 환자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으려면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으려는 불필요한 입씨름은 하지 않아야 해. 사실 모든 노인질환자, 아니 모든 노인을 대하는 태도일 거야.

     아, 불필요한 입씨름... 그러네요.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설득하려는 것이 의미가 없죠. 왜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 노인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 기억이 나요. 뱃속에서 뭐가 잡힌다, 분명히 뭐가 잡힌다는 어머니가 있어요. 의학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데 억지를 부린다며 자식들에게 타박 들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아프게 남아 있거든요.

그렇구만! 어디 노인네들 뿐이겠소? 결국 사람이 관계 안에서 원하는 건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남녀노소 모두 같애. 그 흔한 공감이라는 말을 왜 다들 좋아하겠소? 상담까지 오는 이들이 찾는 건 공감이야. 결국 감정이라고! 평생 사람 속내 들어주는 일을 하고 살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감정이야. 감정의 소통! 그러니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진짜 감정을 아는 사람이고. 치매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이 있겠어? 치매 예방을 위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정보가 많지만,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내 친구만 해도 교장으로 은퇴하기까지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신앙심도 깊었다고. 내게는 정말 남의 일이 아니야. 당장 내일부터 내게 치매 증상이 와도 이상한 일이 아닐 거예요.

     아오, 선생니임...

아니, 끝까지 들으라고. 그러니까 치매에 걸릴까 두려운 사람이 할 일은 투명한 감정으로 사는 거야. 정직한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께도 그렇게 나아가야 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그거예요. 그리고 치매 걸린 노인을 도우려는 사람이라면, 보이는 행동이 어떠하든 그의 존엄을 지켜주고 싶다면 느낌을 믿어주고 귀 기울여주어야 하고!

     아, . 알겠습니다! 저도 정리가 아주 딱 잘 되었어요. 지금 제 감정은 배고픔으로 인하여 살짝 짜증으로 가고 있사옵니다. 더 해주실 말씀은 식당으로 가서 하시면 안될까요?

그럽시다. 하하.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선생님처럼 말랑한 마음, 투명한 감정의 소유자가 어디 있겠냐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치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 입바른 소리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주님, 우리 선생님 적어도 치매로부터는 지켜주세요. 더 오래 이런 맛있는 대화 나누며 배우고 싶어요.

 

<시니어 매일성경> 5, 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4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한참 낄낄거렸다. 어릴 적 교회 친구들 모임방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의 나비효과였다. 친구 J가 아들이 만든 정체불명의 초콜릿인지, 빼빼로인지를 올린 것이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마시멜로를 녹이고 초콜릿 으깨고 난리를 치더라나. 맛있는 걸 그냥 먹지 왜 그걸 녹여 먹느라 고생을 하느냐, 녹여 먹으면 더 맛이냐, 하고 말았다고. 냉동실에 고이 넣어둔 걸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알고 보니 밸런타인데이에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이었다는데, 그 모양새를 보자 다들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 이걸로 고백하면 바로 이별 통고받는 거 아냐? 맞겠는데! 아냐, 정성이라고 감동할 수도 있어. 의견이 분분했다. 유치원생 찱흘놀이 작품 같기도 하고, 뭉크의 절규도 떠오르기도 했다. 시니컬한 중2 남자애가 여친 주려고 만들었다니 귀엽기도 하고 더 웃긴 거였다. 시작은 이거였는데, 얘기가 우리 어린 시절로 흘러가 어설픈 고백 일화들이 터져 나왔다. 눈물 찍어내며 웃었다. 옛 친구들이 이래서 좋다. 지나간 날의 소소한 경험이 나이 먹을수록 소중하게 느껴진다. 긴 설명 없이 한두 마디만으로 기분 좋은 동조 현상이 일어나는, 어릴 적 많은 경험을 공유한 친구들이다. 오랜만에 한바탕 웃고 났는데 치유를 받은 느낌이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J가 좀 달라 보인다. 살아난 것 같다. 특유의 자신감과 유머 감각이 살아났다. 우리 대장이 돌아왔다. 두어 달 전에는 정말 허깨비만 앉아 있는 것 같았고, 저러다 뭔 일내겠다 싶었는데. 사춘기 아들과의 갈등으로 죽으락 살락 하더니 말이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전화를 했다. 최 선생님과의 상담이 좋긴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단다. 아들과의 관계도 눈에 띄는 갈등만 없을 뿐이라고. 내가 보기엔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렇게 느껴졌다. 아들이 만든 사탕을 사진 찍어 공유한 것도 그렇고. 아이를 바라보는 J의 눈이 달라진 것 아니냐고 몰아갔다. 한참 생각하더니, “그러게, 냉동실 열고 어이없기도 하고 조금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터졌는데. , 생각해보니 그런 면도 있다. 주방에서 그 난리를 피우고 있으면 전 같으면 한마디 했을 텐데 말이야. 그냥 지나치긴 했네. 쓸데없는 짓 하는 거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거든. 에잇, 포기야 포기. 말해도 소용없으니까 그냥 포기하는 거지. 애는 여전히 그 모양인데, 포기하고 나니 차라리 좀 살만해. 글쎄. 나는 잘 모르겠어. 자포자기 같거든. 상담에서 애 얘기는 거의 안 하게 되더라고. 묻지도 않으시고. 딱히 진단도 안 해주시고, 정답도 안 가르쳐주시고 그러더라. 상담이 원래 그런 거야? 그냥 주절거리다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상담에 맞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숨통이 좀 트여. 고맙다! 상담사님이 아니라도 최 선생님같은 좋은 어르신 뵙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애. 친구 덕분이다. 그런데 니가 나랑 대화하던 게 상담 기법인가 봐. 질문하고 한참 듣고 계속 말하게 하는 게 너랑 똑같으시던데.” 통화를 마치고 났는데 최 선생님 모습이 바로 영상지원 돼서 웃음이 났다. 이러자니 갑자기 이 사랑스러운 노인이 보고 싶어졌다.

 

제 발로 상담실에 찾아간 사람

 

어떻게 이렇게 또 바람처럼 행차를 하셨나? 신학기 돼서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바쁘죠. 바쁜데요. 질투가 나서요. 선생님 뺏길까 봐요.

? 누가 날 뺏어간대? 짐 덩어리 노인네를 뺏어가 줄 고마운 사람이 누구야? 그 귀인이 누구셔?

     에이구, 선생님. 제 친구 J. 얘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잖아요. 선생님도 저번에 사람 참 괜찮다고 칭찬하시고. 좀 불안해서요. 관리하러 왔습니다. 헤헤.

아아, 친구 만났구나! 그래, 어떻습디까? 잘 지내나?

     하하, 선생님 그걸 저한테 물으세요? 저는 친구를 몇 달 만에 한 번 보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시는 선생님께 그걸 물으러 왔고만요.

, 나는 상담이고. 일상이 어떤가 하는 거외다. 그리고 내 내담자 얘기를 당신한테 왜 해?

     그러네요. 실은 친구가 좋아 보여서요. 선생님께서 또 무슨 약을 어떻게 치셨나, 한 수 배우러 왔죠. 한결 가벼워 보이던데요. 전 같지는 않지만 살아난 느낌이에요. 감사해요.

그래, 준비되어 왔더라고. 자기 문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고, 변화에 대한 갈망도 크고요. 알잖아. 억지로 온 내담자와 제 발로, 자발적으로 온 내담자 차이를. 암튼 정 선생 눈에 그리 보였다니 그건 정말 반갑네.

     본인은 잘 모르더라고요. 제가 얘길 하니까 그런가 하는데요.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이 악물고 엄청난 의지를 발동하는 것하고는 다른 거요.

정 선생이 사전 작업 많이 해서 보냈어. 친구가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랬던데. 그래서 자기를 보는 용기가 있더라고. 아이가 아니라 자기 문제라는 것도 알고.

     네? 자기 문제라는 걸 안다고요? 아닌데. 엄청 애 탓만 하는데. 헤헤. 얘가 선생님 앞에서 다른 소리를 하나 보네요.

아이구, 그럼. 당연히 애 탓 먼저 하는 거지. 그래도 마음 밭이 잘 기경된 사람이라 상담하기 수월해.

     실은 그 친구가 상담을 받겠다고 해서 좀 놀랐어요. 보통 남자거든요. 인간은 원래 불안한 거다. 그게 상담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런 비슷한 얘길 해서 제가 빈정 상한 적도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심리치료 하는 친구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잖아요. 애 때문에 바닥까지 내려가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 거죠. 상담은 심각한 마음의 병이 있거나 취약한 사람들이나 찾는 거라는 의식이 강했어요. 부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중년의 초대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거기까진 기대도 안 하고요. 당장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 그런데 살아나고 있다니까요. 하하.

다행이구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빈 자리라는 책이 뭐유? 그 책 얘기를 자꾸 하대.

     그 책 얘기를요? , 제가 선물한 책이고요. 도널드 밀러라는 작가의 책인데요. 말하자면 하나님의 빈 자리는 아버지의 빈 자리예요. 아버지 없이 자란 남자가 부성애의 결핍을 마주하며 하나님을 찾아가는 얘기랄까요. 오래된 책이라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아하! 아버지의 부재라.

     네, 처음 큰 아이하고 힘들어지기 시작한 때였던 것 같아요. 아이와 충돌하고 화가 조절이 안 되어 마구 운동을 했다나 봐요. 그리고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이유 없는 울음이 터졌대요.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다고요. 그 울음 끝에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는 거예요. 너무 어릴 적이어서 어떤 분이었는지도 잘 모르는데, 당황스러웠다고 했어요. 저는 딱 알겠더라고요. 제가 아는 마음 같았어요.

그렇구나. 정 선생도 아버님을 일찍 여의었다고 했지?

     네. 저는 중학교 때였는데, 그 친구는 그때 이미 아버지가 안 계셨었어요. 어머니하고 둘이 살고 있었죠. J는 저에게 아버지 없는 아이의 대명사였어요. 저의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J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사춘기 때였고, 그때는 친하지도 않았는데요. 아버지 안 계셔서 가엾다고만 생각했던 J랑 제가 같은 처지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의외예요. 선생님. 그 책 선물했을 때 심드렁했었거든요. 잘 읽히지 않는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안 읽히던 책이 어느 날 읽히기도 하지. 경험이 사람 눈을 바꾸잖아. 아버지 부재를 감정적으로 만난 것이 아들들과의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되었나 보네.

, 그럴 수 있군요.

 

결핍에서 시작한 사랑

 

그럼!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란 게 다 자기 부모와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잖소. 자녀와의 관계뿐이오? 세상과의 관계 맺음의 원초적 경험이 제 부모와의 관계지. 배운 대로 사랑하는 거니까. 문제는 그 사랑이 대부분 결핍의 사랑이라는 게 문제고.

     결핍의 사랑이요?

그래. 결핍의 사랑! 제 부모에게 못 받은 걸 주는 것이 좋은 부모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물론 무의식적이지.

     그러네요. 우리 엄마 같은 엄마 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엄마가 제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걸 깨닫고 소름 끼친 적 있어요. 그렇게 듣기 싫었던 말을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말이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까지요. 좌절이었죠!

허허허. 정 선생만 그런 거 아니라 모든 부모가 다 그런 거니까 위로받으라고.

     모든 부모라. 그렇죠. 그쵸? 선생님.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인간 사랑의 시작은 그런 것 아닐까. 내가 못 받은 그것을 주는 게 사랑이라고 여긴단 말이야. 배곯고 자란 사람은 안 굶기는 게 사랑이고, 못 배운 한에 매인 사람은 교육에 목숨 걸고...

     아, 그렇다면 부모 사랑은 온전한 사랑일 수 없군요. 애초부터.

그렇지. 원죄의 대물림은 결핍된 사랑의 대물림이 아닐까 싶기도 해. 내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 하는 사람도, 좋은 부모 만나서 우리 부모님 같은 부모가 되어야지!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 나는.

     하아. 절망적이네요!

, 절망적이야. 인간의 조건이지. 그 조건 안에서 사랑하고, 성장해가는 것이 부모의 길이지 뭐. 선생님 친구 J 씨 말이야. 본인이 의식하든 못하든 선생님이 느낀 변화가 있다면 그게 무얼까 생각해보는 거거든.

     네, 뭘까요? 분명 친구가 가벼워지고 자유로워 보였거든요.

아버지의 빈 자리에 이름을 붙였어. 결핍의 자리. 상담에서 나눈 얘기지만, 본인 스스로 정 선생을 신뢰하는 친구이자 상담자라 여긴다고 말했고, 정 선생한테 자기 얘길 물어봐도 된다고 했으니 편하게 말합니다.

     아, 그런 말을 했어요? , 아버지의 빈 자리. 말씀해 주세요.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고 생각했대. 열심히 일해서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해줬고, 무엇보다 친구 관계든 학교에서든 문제가 생기면 아빠만 믿어! 하고는 다 해결해줬대. 자기 같은 해결사 아빠는 없을 거라고.

     맞아요, 선생님. 정말 그렇다니까요. 게다가 지금이야 커서 그렇지, 아이들과 얼마나 잘 놀아주는 아빤데요.

그래, 그렇게 해주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아이가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넘어서서 화가 나는데, 그 화가 끝도 없다는 거지. 그게 아이를 때리는 것으로 행동화되지 않았겠어?

     아.

아버지의 부재. 내가 받아보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주고 느끼는 일종의 질투야.

     네에? 질투라고요? 부모가 아이를 질투한다고요?

그래, 질투. 나는 부모에게 받아보지 못한 걸 줬어. 그러면 너는 내게 감사하고,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거 아냐? 이런 메커니즘이지.

     그렇죠. 그건 동의가 되죠. 그런데 질투까지는.

당황스럽지? 사랑이라는 것 말이야. 우리가 아이에게 하는 게 다 사랑으로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정작 아이는 그걸 사랑으로 받질 않는다는 거지. 제 맘 몰라주는 엄마 아빠의 잔소리로, 부당한 간섭과 통제로만 가닿는 거야. 그러면 도대체 뭐가 문제야?

     배송사고로군요! 보낸 건 사랑인데, 도착한 건 간섭과 통제라니. (손 부채질 펄럭펄럭) , 더워. 갑자기 열이 나고 가슴이 아프네요.

하하, 배송사고! 주는 사랑, 받는 사랑의 차이를 숙고해야 할 것 같아. 내가 알기로 사랑의 속성은 흘러넘치는 거야. , 왜 성경에도 그런 구절이 있잖아.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철철 흐른다? 흘러넘친다? 그런 말씀이 있지?

     네. 철철 흘러넘친다, 그런 말씀이 있죠. 히히.

사람이 본시 넉넉해서 나눠주면 본전 생각이 안 나. 헌데 가진 게 별로 없는데, 나도 배가 고픈데, 없는 데서 박박 긁어서 주면 본전 생각이 나거든. 언제 되돌려 받나. 어떻게 더 많이 붙여서 받나.

     그쵸. 그렇긴 하죠.

사랑이 그래. 결핍에서 시작한 사랑이니 본전 생각이 나지 않겠소? 그걸 질투라고 말하는 거야. 나는 받아보지도 못한 것 줬을 때, 주고도 부러운 마음이랄까.

 

아버지의 빈 자리, 하나님의 빈 자리

 

    아, 선생님! 문득 떠오른 기억인데요. 아이들 어릴 적 가족 여행에서였어요. 숲에 있는 모험놀이터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아빠랑 신나게 놀았고요. 두 아이가 양쪽에서 아빠 손을 잡고 신나게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어요. 저는 뒤따라 혼자 걸었고요.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슬픈 거예요. 한참 후에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어요. ‘너네는 좋겠다, 아빠가 있어서.

아하!

     저 역시 치명적 결핍이라면 결핍일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늘 아이 앞에서 저나 남편이 죽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어요. 큰 아이가 제가 아버지를 잃은 딱 그 나이가 되었을 때 , 여기까지 살았다!’ 안도하는 마음이 들더라니까요. 그리고 그다음 해부터는 한 해 한 해 포인트를 쌓는 느낌인 거예요.

세상에나. 그렇게까지. 그렇구나! 에구, 우리 정 선생.

     어후. 이게 왜 눈물이 나죠. 울 타이밍이 아닌데.

눈물이 나면 울 타이밍이지. 괜찮아요. 괜찮아.

     네, 선생님. 아이들을 아빠 없는 아이는 키우지 않는 게 소중한 목표였어요. 단지 아빠 없음이 아니라, 아버지 부재로 제가 감당해야 했던 많은 짐을 제 아이들에게는 지우지 않겠다고 저도 모르게 다짐했어요. 맞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엄마 아빠가 다 있는 저희 아이들이 부러웠어요. 엄마 아빠가 다 살아있고, 알아서 다 해주는데 뭐가 부족하냐, 싶으면 정말 화가 났어요. , 다 해주면서 질투하고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것 맞네요. (어쩌자고 터진 눈물이 그치질 않는다. 가만히 내 등만 쓸어주시는 최 선생님)

     받지 못한 걸 주느라 고생했네. 장하다. 정 선생.

아버지나 엄마 없는 아이들은 비빌 언덕 없는 느낌으로 세상을 사는 것 같아요. 하나님을 더 붙들지 않을 수 없었어요. , 어렸을 적에 그런 생각도 잠깐 했다니까요. 아버지 있는 애들은 하나님이 왜 필요하지? 웃기죠? 실은 하나님이 진짜 아버지가 되어 주시지도 않았어요. 저 스스로 아버지 자리를 메워야 했으니까요. (다시 눈물 바람)

     음. 아버지의 빈 자리, 하나님의 빈 자리.

?

     이제야 알아듣겠어. 책 제목 말이야. 친구 J 씨도 비슷한 말을 했거든. 그 책 얘기를 하면서 말이야. 하나님조차도 자기를 도울 수 없다고 느꼈던 것 같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아이와 갈등으로 정말 오갈 데 없이 막막해졌는데,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죽음까지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는 거야. 본인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아버지의 빈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빈 자리를 채우며 사느라 온 힘을 다 썼다고. 그때 희한하게 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졌다는 거야. 정말 아이를 위해서 해준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에 자기 두려움이었다고.

     자기만족이요? 아이에게 해주는 것들이 내 맘 편하자고 하는 일이라는 거죠?

그런 비슷한 거겠지. 사실 상담 안에서 대단한 게 있었던 것은 아니거든. 내가 모르는 일이 이 사람 안에서 일어나고 있구나, 싶었어. 이게 말로만 듣던 하나님 상()의 치유인가 봐.

     하나님 상의 치유.

영성 치유에서는 그렇게 말하더라고. 하나님 상의 치유가 가장 강력한 치유라고. 이거로구나! 친구의 마음이 그렇게 가벼워진 것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에게 너그러워진 것은.

     아, 그래요?

글쎄, 나는 신앙이 짧아서 잘은 모르겠어. 영성 치유의 이론이 이렇게 조금 알아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말은 취소해야겠다. 부끄럽네.

     무슨 말씀을 취소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라고. 하나님 뜻, 하나님 은혜. 이런 걸로 방어하면 앞뒤 꽉 막혀서 상담이 안 된다고.

     아! 기억나요, 선생님.

그래, 강력한 방어기제인 것도 맞다. 하지만 왜곡된 하나님 상이 치유되는 건 심리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용이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 J , 남다른 내담자였거든. 마음 밭이 좋구나, 정말 치유되고자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스스로 아버지의 빈 자리에서 하나님의 빈 자리를 만나고 있었어. 그 빈 자리에서 진짜 하나님을 만났나 봐. 아버지 부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사람들의 문제만은 아니야. 어느 누가 온전한 사랑을 받았겠소? 결핍으로 시작하는 사랑인데! 아버지의 빈 자리, 어머니의 빈자리. 영혼으로 느끼는 부재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카를 융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 중년기 이후 찾아온 내담자들의 문제는 결국 모두 영적인 문제였다고.

     아, 영적인 문제요! 하나님의 빈 자리.

 

그리고는 최 선생님도 입을 다무셨다. 넘어가는 해가 만든 부드러운 붉은 빛이 거실 깊숙이 들어왔고. 나 역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터진 눈물이 부끄럽... 아니, 부끄럽지는 않다. 이 눈물이 나를 어딘가로 이끌 것만 같다. 아버지의 빈 자리, 어쩌면 하나님의 빈 자리로 데려갈지 모르겠다. 친구에게 일어난 알 수 없는 변화처럼 내가 만든 하나님 상 너머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말이다. 어디로 이끌든 괜찮을 것 같다. 아이가 만든 초콜릿에 허허 웃던 새털처럼 가벼워 보이던 J의 얼굴이 떠오른다. 삶의 문제는 여전한데 마음은, 어쩌면 영혼은 자유로워 보였으니.

 

* 시니어 <매일성경> 2023년 3,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3

 

친구의 축 처진 어깨, 자신감 잃은 말투가 눈에서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 일처럼 마음이 무겁다. 늦둥이로 얻어 애지중지 키우는 아들과의 갈등으로 생사를 오가고 있다. 생사가 실제 생사겠는가. 마음이 죽어간다는 뜻이다. 시들어가는 친구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커다란 덩치에 가정, 친구들, 교회 공동체…. 어디서든 해결사 역할을 하는 남자 사람 친구이다. 한 교회에 다니며 중고등부 때부터 알아왔다. 그 시절 친구 모임이 느슨하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 시간들이 많아져서인지 더 자주 얼굴을 보고 있다. 친구 J는 우리 중 제일 늦게 결혼했다. 아들 둘을 내리 낳았는데 지금 현재 그 무섭다는 중2, 중3이고. 사춘기를 맞은 첫째, 그 뒤를 이어 다른 방식으로 질풍노도에 발동을 걸고 있는 두 아들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임에서 쉽지 않단 얘길 가끔 했지만, 어느 집에나 있는 일이려니 했다. 우리 아이들도 지나온 시간이니까. 도움을 구할 것이 있다 하여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 무기력과 우울감을 호소해 왔다..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긴 하지만, 정의를 사랑하는 친구이기에 그 뜨거움은 용기와 당당함으로 보였다. 적에도 내겐 아름다운 강함을 선물로 가진 친구였다. 그런데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한다. 때로 극단적인 생각이 든단다. 기도도 어떤 노력도 다 의미 없는 것 같다고.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잔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얼굴은 초췌해졌고 전 같은 열정이나 밝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 큰 덩치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구부정하게 앉은 것이 내가 아는 강한 용사가 아니었다. 뭐든 맞서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 여기며 살아왔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결하려고 나서면 자꾸 폭력을 쓰게 된다고. 그러고 나면 후회가 밀려오고, 아이와는 더 멀어지고, 인생 잘못 살아온 것 같단다. 실패한 인생이라며 자괴감에 빠져 내놓던 말이 귀에 쟁쟁하여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싶다고 하여 최 선생님께 연결을 시켰다.

자식 문제엔 다들 무력한 해결사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가 봐. 친구야 내가 안 봤으니 모르겠다만, 정 선생이 죽어가는 얼굴인데. 당신 친구 아니어도 마음 써서 상담할 텐데, 염려하지 말아요. 잘 부탁한다는 말을 몇 번을 하는 거야.
     감사해요, 선생님.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함께 지낸 친구 모임이 있어요. 서로 모르는 게 없고요. 이 친구는 유난히 더 마음이 가는 친구예요.
남자라며? , 젊을 때 좋아했었어?
     에이그 선생님. 남자 사람 친구라니까요.
남자 사람 친구는 또 뭐야. 그냥 친구라 이거지? 암튼 각별하구나. 그렇게 마음을 쓰는 것이.
     말하자면 저희 모임의 대장이거든요. 청년부 때 교회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불의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함께 항의하고 그랬어요. 이 친구가 앞장섰고 몸을 사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표로 불려 가 야단도 맞고, 교회를 파괴하는 녀석들이라고 정죄도 당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런저런 일로 늘 고마운 친구예요. 정말 용감하고 강한 친구거든요.
아하, 그래서 친구의 약한 모습이 크게 보이는구먼.
     네, 그런가 봐요. 해결사죠, 해결사. 그런데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 앞에서 무력하다는 거예요. 무력함 너머 생의 의미까지 잃은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이 되네요. 저러다 정말 뭔 일 저지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게요. 제가 과도하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 정 선생이 많이 슬퍼 보여.
     왜 그럴까요. 실은 저희 아이들도 사춘기 지났으니까요. 그 심정 저도 모르는 바 아니죠. 자칭 타칭 엄마 중독자라 했던 아이의 눈빛에서 저에 대한 냉소, 아니 어쩌면 혐오 같은 것이 느껴졌을 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었어요. 무너졌죠. 이렇게 우리 사이는 끝난 건가? 그 사랑스러웠던 아이가….
, 그 운동화 좋아하는 철학자 아드님 말인가?
     네, 선생님 정말 기억력 끝내주세요. 그 녀석도 그렇고. 사실 첫째 사춘기 때는 처음이라 더 당황스러웠죠.
사춘기를 심하게 했어?
     아니요. 사실 여느 집에 비하면 그리 요란하지는 않았어요. 친구네 아들들 얘길 들어보면 저희 아이들 사춘기는 사춘기도 아니죠.
그래, 밖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부모로부터 분리되고 떠나는 게 사춘기니까. 부모로서 상실감이야 비슷하겠지.
     맞아요. 상실감요! 애가 말을 안 듣거나, 맥락 없는 화를 내고 하는 것들은 각오도 되어 있었고요. 어떻게 견디겠더라고요. 그런데 저나 제 아빠를 향한 냉소나 불신의 눈빛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때 감정이 상실감이에요. 그 귀여웠던 아이 어디로 갔지? 이런 거죠. 친구 얘길 들어보면 그 눈빛이 온갖 행동으로 다 나오는 거고요. 때려도 보고, 용돈도 끊어보고, 달래도 보고 해도 개선이 안 된다는 거예요.
사춘기가 어떻게 개선이 돼. 통과의례인데. 어떻게든 터널 끝까지 가서 빠져나오길 기다려야지.
     아, 그렇죠….
그러엄. 정 선생 아이들 다 컸잖아. 안 그럽디까?
     그렇죠. 둘째도 이제 눈에서 독기가 빠져가는 것 같아요.
독기라?
     네, 딱 사춘기 눈빛이 있거든요. 눈에 독이 들어가고, 얼굴은 막 못생겨지고, 머리에서 냄새나고…. 하이튼 딱 그 표징이 있어요. 하하. 눈에서 독기가 사라지면 사춘기가 끝나는 거예요. 맞아요. 그런데 고통 중에 있는 친구에게 사춘기 결국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렇지. 아이는 아이대로 두고 부모의 인생길을 가야지 뭐. 그래. 상담은 친구가 자원한 거요? 정 선생이 권한 거요?
     뭐라도 해야겠다고요. 저한테 상담받을 수 있냐는데, 저랑은 편하게 수다 떨고요. 상담을 받고 싶으면 선생님을 소개하겠다고는 했어요. 생각해본다 하더니 연락을 해왔더라고요. 상담까지 받아야 하는 제 처지가 처량하다면서요.
하하. 상담까지 받아야 하는 게 처량하구나. 그렇게들 생각하지. 대단히 문제가 많아서, 수선이 필요한 인간이라서 상담으로 고쳐야 한다고. 아직도 사람들이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그렇게들 보지?
     그러니까요. 선생님과 자주 얘기했듯, 그나마 자발적으로 상담받으러 오는 분들은 희망이 있는 건데요. 제 친구도 지금 괴로워하는 걸 보면 안타깝긴 하지만 결국 나아질 거라 믿고요. 게다가 선생님께서 만나주실 거잖아요.

아들 사춘기가 들고 온 초대장

그래, 나라고 별 뾰족한 수는 없지만, 중년에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야. 상담이든 무엇이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친구는 영적 초대장을 받은 것만은 확실해요. 아들 사춘기가 들고 온 초대장이지.
     영적 초대장이요? 사춘기가 가져온 초대장이라….
그래요. , 왜 카를 융이 그랬잖아요. 자신이 만난 중년 이후의 내담자는 모두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왔다고. 표면적으로 가져온 문제는 다 달랐지만 결국 상담하다 보면 영적인 문제였다고.
     아, 그렇죠. 카를 융이 중년을 중요하게 말했죠. 선생님도 늘 중년, 생의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에 대해 말씀하시는 그 맥락이군요. 제 친구도 그럴 수 있겠네요. 단지 아들과의 갈등이 문제가 아니에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인생을 이끌어가시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요. 생애 발달에서 아이 사춘기와 부모의 중년기 또는 갱년기가 거의 겹치거든. 교차한단 말야. 그 교차점에 어떤 신비가 있는 것 같아.
     오, 어떤 신비일까요? 알 것도 같고요.
내 보기에 인간 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두 번의 시기가 있어. 언제예요?
     일단은 사춘기겠죠. 아이가 자고 일어나면 키가 커서 나와요.
그렇지. 신체발달이 어마어마하지? 2차 성징과 함께 말야. 그 빠른 신체발달에 성적 에너지가 분출하는데 정신적 성장이 따라가질 못하고. 스스로 그 분열을 어쩌지 못해서 하는 행동들이 사춘기의 질풍노도 행태일 거야.
     아, 그렇겠네요. 몸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버렸는데, 정신은 어린애니…. 맞아요. 딱 그런 것 같아요. 하는 짓이 말할 수 없이 유치한데, 제 딴에는 어른인 척한단 말이죠. 아주 그냥 꼴 비기 싫죠.
척 보다는, 어느 정도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 어설프게. 하하.
     그러면 또 한 시기는요? 정해진 답인가요? 중년기?
그래. 영적 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때. 내 식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해보자면……. 영적 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데 여기서도 내 정신이 그걸 따라가질 못해.
     흠…. 정신적 발달이 영적 발달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려운데요, 선생님.
어렵지. 그 왜 어떤 공허감, 허무감 같은 것 있잖아요. 선생님 친구가 했다는 말. 내가 뭐 하고 살았나 싶다. 인생 잘못 살아온 것 같다. 실패했다. 살 이유를 못 찾겠다. 같은 말들. 저만치 가는 영적 수준을 정신적인 것이 따르지 못하는 괴리 같은 것 아닐까.
     으으…. 더 어려워요. 그러니까 허무감 같은 게 영적 발달에서 오는 감정이라고요?
의미를 찾는 거지. 인생의 진짜 의미. 그러니 사춘기가 고맙지 뭐야. 중년기 영적 초대장을 받아 든 제 부모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딱 알려주니까.
     엇, 뭐라고 알려주는데요?
하하. 그걸 보여줘야겠다. 내가 강의하다 즉흥적으로 칠판에 그렸던 건데 말이야. 그 옆에 메모지 좀 줘 봐. 내가 그래프를 그려봤다우. 자 봐봐. 이건 부모와 자녀 사이 존재 힘의 그래프야. 아래쪽이 아이 위쪽이 부모라 생각해 봐요. 처음 만났을 때 어때? 갓 태어난 아이는 완전히 무력하고 의존적 존재지? 아이의 힘은 바닥이다. 그렇지? 부모의 전적인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어. 부모의 힘은 최대치가 되겠지. 24시간 붙어서 돌봐야 하잖아. 그런데 아이가 뒤집고, 기고, 걷기도 하며 기동력이 생기고. 존재의 힘이 커져. 그러면 점점 부모의 돌보는 힘이 이렇게 줄어드는 거지.

 


     오호! 그러네요. 와아아, 맞아요. 선생님. 처음에 끄덕끄덕 목도 못 가누는 걸 안는데 잘못 만지면 어떻게 될까 봐 어쩔 줄 모르던 순간이 생각나네요. 얼마 안 가서 목을 빳빳하게 세우는데 신기했어요. 그렇군요. 아, 그랬던 적이 있었죠. 식당에서 밥 먹다가도 ‘엄마, 쉬’ 하면 데리고 화장실 가야 하고…. 그런데 혼자 화장실 가는 것도 엄마에겐 얼마나 자유예요.
그러니까. 육아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거야. 갑자기 가장 무력한 상태로 내 앞에 나타난 한 존재를 24시간 책임져야 하잖아. 다행인 것은 시작이 최고점이고 갈수록 그 힘이 줄어든다는 거지. 떠나보내는 과정이라는 거야. 젖을 떼고 기저귀를 떼고 해 봐.. 점점 부모 손이 자유로워지지. 그렇게 둘 사이에서 힘의 그래프는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 아니겠어?
     아하, 참 이것 어렵고도 신박하군요. 그러면 사춘기 아이가 중년 이후를 어떻게 살으라고 딱 가르쳐 준다는 거죠?
정답 나왔잖아. 힘 빼라고. 이기지 말라고. 이길 수 없다고. 그래프를 보라고.

도(道) 중의 도는 내비도!

     아아…. 어, 어려워요. 그러면 제 친구는 아들들에게 무조건 져야 하는 건가요? 중년의 초대장을 받아 든다는 건 그런 뜻인가요? 훈육하지 말라고요?
글쎄. 나는 훈육의 골든타임이 있는 것 같아요. 인간 된 도리를 가르치고,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가르치는 것, 더 나아가서 신앙의 훈련까지도 사춘기 이전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춘기는 아이들이 자신을 한 성인, 한 존재로 받아들여 달라는 몸부림을 하는 거거든. 부모 가르침이 들리겠수? 옳은 말씀 하는 부모 말에 반발심만 들걸. 내가 상담했던 아이는 그러더라고. 부모가 잔소리 시작하면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하며 딴생각한다고..
     그랬던 것도 같네요. 어쩐지 사춘기 때 애들 얼굴 떠올리니 그랬을 것 같아요. 맞아요. 가르치려 할수록 엇나갔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막 나가는 아이를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친구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냥 두면 애 인생 망칠 것 같다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모가 힘을 쓸수록 아이는 더 저항하는 것 같아요. 하하, 그래서 엄마들끼리 그런 말을 하죠.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도 닦는 심정으로 살아야 하는데요. 도중의 도는 내비도! 래요.
허허허, 내비도. 그거 좋네. 거기서 득도하는 게,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선생님 친구도 J 씨도 만나서 얘기 들어봐야 하겠지만. 아이를 어떻게 해보려는 힘을 빼고 물러나는 게 자기가 살길일 수도 있어요. 여하튼 내가 만나 보리다.
     선생님, 참 쓸쓸해요. 뭔가 이렇게 인생에서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간다는 게 참 그래요. 언젠가 제가 선생님과 약속 잊었던 일도 있었잖아요. 지금도 건망증은 더 심해지고 있거든요. 안심하라고 하셨지만, 처음처럼 그렇게 걱정이 되진 않아도 뭔가 좀 쓸쓸해요. 이렇게 존재가 스러져가는 건가…. 이 그래프에서처럼 최대치의 힘을 점점 빼고 하강하며 소멸해가는 것인가요?
이런 그래프도 있어. 봐봐. 요제프 골드브룬너라는 이가 이런 그래프를 그렸대. 뭔지 알겠소?

 


     글쎄요. 감이 잘 안 잡히는데요. 아까 그 존재의 힘의 교차와는 다른 것 같고요…. 뭐예요?
, 여기 실선이 뭐랄까 활동성이나 몸의 기능 같은 것들? 인생의 외적 부분이 진행하는 과정이라고 합시다. 점선의 화살표는 정신적 발달이라는 거야. 외적 곡선은 어느 순간 하강하는 반면, 그러니까 정점에 이른 다음부터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소. 바로 그 지점에서 정신적 발달을 가리키는 화살이 새로운 자유를 향해서 나간다는 거야. 정신적 발달, 영적인 발달은 오히려 이때부터 더 먼 곳으로 날아가지. 멋지지 않아? 쓸쓸함도 진실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그러네요. 뭔가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와, 고린도후서의 말씀이 이런 뜻일까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갑자기 이 말씀이 훅 알아들어지네요..
아이구, 성경을 줄줄 외는구나.
     아니요. 외우는 구절 거의 없는데요. 뭔가 참 꽂히는 말씀이라 마음에 맴도는 몇 안 되는 구절 중 하나거든요. 선생님, 정말 갱년기 허무감이 희망으로 다가와요. 선생님이 저 그래프의 살아있는 버전이시잖아요.
무슨 소리야. 살아있는 버전은 또 뭐야.
     저는 느껴져요. 저의 인생 롤모델이시잖아요. 제 눈에 보여요. 선생님의 정신발달 화살표가요. 얼마나 높이 멀리 나아가고 계시는지 보인다고요. 저기, 저어~기 타원형같이 생긴 구름 있잖아요. 그 정도까지 가 계세요. 히히히.
, , 노인네 골리기 시작한다.
     모든 일에 반항하는 아이는 사춘기, 엄마 아빠는 오춘기인가 봐요. 뭐 의미 있는 게 없고 삶의 낙이 없고 쓸쓸하기만 한 엄마는 오춘기... 육춘기도 있으려나요?
, 그런 책이 있어. 신앙 사춘기라고. 제목을 제대로 지었더라고. 신앙생활에서 아이에서 어른 신앙으로 넘어가면서 오는 질풍노도를 딱 잘 그렸던데. 마침 그 저자도 나이가 딱 중년기더라고. 어쩌면 아이가 생물학적 사춘기를 겪는 동안 부모는 영적 사춘기를 함께 통과해야 하는지도 몰라. 하나님께서 생애 발달을 그렇게 묘하게 엮어 놓으셨나 봐.
     친구 문제 상담하다 제가 깨달음을 얻네요. 아이들 사춘기 때 느꼈던 휑하게 텅 빈 것 같은 그 느낌이 다시 살아와요. 인생에서 아름다운 시간은 다 끝났구나. 되돌릴 수도 없구나. 허망하구나 싶었던 것 같은데. 제 친구가 저와 결은 다르지만, 그 시기인 것 같네요. 강한 친구가 약해 보이니 더 안쓰러웠던 것 같아요. 이 시기가 정말 그 친구에게 영적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제게도요. 상담 잘 부탁드려요.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리다. 얘기 나누다 보니 나도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르네. 언젠가 내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정 선생이 좋은 노인에 관해 물었을 때 했던 말 같아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힘을 빼고, 주도권을 이양하며 남이 나를 띠 띠우기를 허용하는 것, 생애 후반의 영성이야.
     네, 선생님. 조금 알아들어져요. 그런 의미로 아이의 사춘기는 요란하고도 세미한 그분의 초대의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요. 친구의 마음 여정을 보면서 저도 잘 배울게요. 더 많이 가르쳐 주세요.

* 시니어 <매일성경> 2023년 1,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2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Our Souls at Night, 2017>을 보았다. 80대의 제인 폰더(Jane Fonda)와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주인공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먼저 빠져든 것은 노인이 된 두 거장의 얼굴과 몸이었다. 저렇게 예쁘고 잘생긴 명배우도 늙는구나! 도발적인 대사에 귀가 커졌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언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잘래요?” 애디 무어 역을 맡은 제인 폰더가 루이스 워터스 역의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하는 말이다. 영화 속에선 오래 알고 지내던 동네 할아버지에게 동네 할머니가 불쑥 찾아가 하는 제안이고. “섹스를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밤을 견뎌보려고 그래요.”란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혼자 사는 두 노인이 외로운 밤을 견디기 위해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침대를 공유하면서, 불면이 숙면이 되고 요란하지 않은 우정 또는 애정이 무르익는다. 우리 문화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볼수록 묘하게 공감이 갔다. , 나이 들어 혼자 산다는 것은 저렇듯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겠구나. 긴 밤을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것은.

 

최 선생님 댁에 처음 방문하던 때, 저녁까지 먹고 더 놀다 가라는 선생님의 제안에 부담스러워하던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다. 당신이 부담을 주는 줄도 모르고 제안을 거절하고 가는 이들에게 서운해하는 것이 최 선생님답지 않아서 의아했었지. 혼자 지내야 하는 밤, 그 외로움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최 선생님도 최 선생님이지만, 누구보다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밤이 더 힘들어.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잠이 오면 무슨 걱정이 있겠니. 잠이 들어야 말이지. 밤에는 시간이 더 안 간다.”라고 하시는 어머니는 잠을 위해, 아니 밤을 위해 약을 드셔야 한다. 노년은 이렇듯 쓸쓸하기만 한 것인가? 인생의 마지막은 밤을 견디는 시간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 댁에 도착했다. 내가 지금 만나려는 노인의 밤은 정말 어떨까? 60대 초반에 혼자 되어 80대 중반이 된 이 노인의 밤은.

 

노인의 밤은 정말 어떨까

 

선생님, 영화 보고 왔어요. <밤에 우리 영혼은>. 보고 왔으니까 말씀해주세요.

     무슨 말씀?

, 왜 그 영화 보시고 내 마음이 저랬구나싶어지셨다면서요. 언젠가 혼자 살 때가 온다고 하시면서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부부관계 너머에 뭐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그랬어? 뭐가 있다고 했을까?

, 진짜 선생님. 낚으신 거예요. 뭐예요?

     하하, 낚았다고 하는 거구나. 그래, 영화 한 편 낚았수다.

아니, 선생님. 영화가 아니라 제가 낚였다니까요. 아무튼, 영화 잘 봤어요.

     그래, 어떻습디까? 공감이 돼?

. 공감이라 해봐야 진정 공감이긴 할까 싶지만요. 아니, 공감이라기보단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초반에 제인 폰더가 괜찮으시면 언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잘래요?” 할 때, 무슨 소리야? 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그 대사가 마음에 남아 있어요. 뭔가, , 그렇겠구나. 하는 느낌이요.

     뭐가 그렇겠구나~, 싶다는 거야?

.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됐어요. (실은 영화 보는 내내 최 선생님 생각도 많이 했는데 그걸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외로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거든요. 가족이 함께 어머니 뵙고 올 때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혼자 서서 인사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늘 아파요. 매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의 느낌이 있어요.

     흠. 그렇지. .

선생님은 그 영화를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해요.

     그 댁 시어머니나 나나 다를 바 없네. 날 보고 가는 우리 아들네도 정 선생 같은 마음이겠지 싶고. 영화가 이런 혼자 사는 노인네 마음을 잘 읽어줘. 내게도 저런 마음이 있겠구나 싶어. 영화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아주더라니까.

 

생각해보면 이제 선생님과 대화하지 못할 주제가 없다. 술술 말이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실까, 헤아릴 필요 없고 포장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고 듣게 된다. 전에 제주 공항에서의 대화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불편한 감정도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고, 거의 받아주신다. 이 연세에 어떻게 이렇게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하고, 유연하실까 싶다. 무엇보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시는 태도는 참으로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순간엔 좀 어쩔 줄 모르겠다. 민망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쓸쓸한, 외로운. 같은 형용사로는 부족한, 뭐랄까 노년의 실존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말이다. 솔직히 영화가 읽어냈다는 선생님의 마음, 쓸쓸한 노인의 마음을 듣고 싶지가 않다.

 

아아. , 그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던 제 마음을 영화가 알려주고 소설이나 드라마가 보여줄 때가 있어요. , 그러셨구나.

     이 사람 왜 그래? 뭘 그러셨구나, . 정신이 어디 다른 데에 가 있는데. 허허.

(어휴, 정말 귀신 같은 최 선생님!) 헤헤, 선생님. 다른 데 가긴요. 선생님도 모르는 마음이 있으세요? 왠지 선생님은 세상 모든 사람 마음 다 아실 것 같은데요. ! 다른 사람 마음은 다 알아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경우가 있긴 하죠.

     그렇지. 물론! 나는 젊어서부터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었어요. 공부도 일도 혼자 하는 게 편했고. 남편 먼저 천국에 가긴 했지만, 실은 이전의 결혼생활 중에도 상당히 독립적이었어요. 나는 내 할 일로 늘 바빴고, 남편도 남편의 일이 있었으니까. 언젠가 말했었죠?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비슷한 시기에 천국에 보내고, 삶이 무너지고, 그때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후 자연스레 혼자 지내면서도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

아아, 그러시군요! , 그러고 보니 그래 보이세요. 뭐랄까 어쩐지 감정에 잘 휘둘리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감정적인 사람들이 외로움도 더 많이 느끼겠지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소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니까. 내가 외롭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안 그런 척 나조차도 속이고 살았던 거야. 외롭지 않으려고 얼마나 일을 만들게요. 내가 이 나이에도 집에 상담실을 차려놓고 상담을 하고 있잖아. 외롭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야. 자존심 때문에 내 외로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어머나, 선생님. 너무 솔직하신 거 아녜요?

     내가 정 선생 앞에서 솔직해야지 누구 앞에서 솔직하겠어. 아들 며느리 앞에서 나 외롭다, 할 수 있겠소?

아들 며느리 앞에서는 하시면 안 되나요? 저의 어머니는 외롭다,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없어서 밥을 못 먹으니 건강이 안 좋아진다, 하시는데요.

     자존심이라니까! 나 자존심 강한 할머니야. 정 선생한테만 무장해제 한 거라고.

헤헤. 정말 선생님.

 

몸의 외로움

 

     그런 면에서 그 영화가 참 좋더라고. 미국 사회라고 쉽게 받아들여질 설정은 아니야. 혼자 사는 노인네들이 밤이 외롭다고 함께 밤을 보내면서 우정을 쌓는다는 게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현실이지. 하지만 그 설정을 가능하게 하는 외로움만은 진실이야. 밤이면 더 외롭고, 그 외로움은 몸의 외로움이지.

몸의 외로움이요?

     그래. 몸의 외로움! 지난번에 정 선생이랑 성에 관한 얘기를 신나게 하고 났더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혼자 사는 외로움은 혼자 자는 외로움이구나. 그래서 그 영화 생각이 났어. 몸이 그저 몸이 아니잖아요. 인격, 내가 걸어온 역사, 감정과 욕구, 생각을 담고 있는 게 내 몸이니 몸은 그냥 살덩이가 아니야. 지난번에 정 선생이 그런 말을 했지. 인간이 몸으로 나누는 최고의 친밀감 표현이 섹스라고. 접촉의 욕구, 스킨십의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구 중에 하나잖아요. 친밀감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이라고!

!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몸의 외로움이요. 맞아요. 그렇다면 모든 외로움은 몸의 외로움이에요.

     알아들었지? 그 왜 애착 이론 중에서 할로우(Harry Frederick Harlow)의 실험 알지요?

알죠. 모형 어미 원숭이 실험 말씀하시는 거죠? 두 마리의 어미 원숭이 모형을 아기 원숭이들이 있는 공간에 두었는데요. 한쪽은 철사로 만든 어미 원숭이이며 젖을 먹을 수 있게 해두었죠. 다른 한쪽은 부드러운 털로 만든 모형이고요. 헌데 아기 원숭이들이 젖을 먹어야 할 때는 철사로 만든 어미에게 가지만 그 외 대부분 시간엔 부드러운 털을 가진 쪽에 가서 놀더라는 거요.

     그래, 스킨십이 필요한 거예요. 몸으로 부비고 부대끼며 친밀감을 확인하는 것이 몸을 가진 존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야. 우리는 몸이라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지 않아요?

, 선생님. 저 따끈한 경험이 있어요. 코로나에 걸렸었는데요. 제가 가족 중에 제일 먼저 걸렸어요. 재택 격리가 막 시작되던 때여서 화장실 있는 안방에 딱 격리되어 있었거든요. 어느 순간 널따란 침대가 너무 넓게 느껴지는 거예요. 평소 남편에게 좀 떨어지라고 엄청 구박하거든요. 제발 넓은 침대를 넓게 편하게 써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소원성취했지 뭐예요. 넓디넓은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는데 식구들이 식탁에서 식사하는 소리가 들려요, 시답지 않은 농담에 웃는 소리,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아득하기만 하고,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데 영 다다를 수 없는 가족들의 몸이 그렇게 그리운 거예요. 침대 이렇게 넓은데 저쪽으로 좀 가서 떨어져 누우라며 남편을 구박했던 것에 회개가 되더라니까요.

     내 말이 그 말이야. 평생 강의하고 상담하면서 정서적 유대, 애착, 스킨십에 대해 얼마나 많은 말을 해댔겠소, 내가. 지금이야 심리학 이론도 워낙 발전하고 섬세해졌지만, 내가 공부하던 초기에는 할로우 실험을 정말 많이 언급했거든. 말로는 그렇게 가르쳤지만, 정작 그 의미를 나는 몰랐어.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몸의 언어뿐이니 많이 안아주라, 어쩌라 부모교육도 하고 그랬지만. 정작 내 아들에겐 그러지 못했고. 남편과도 마음이야 정이 있었나 모르겠지만, 몸으로 살가운 기억은 없어요. 우리 세대 부부가 다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지 간에 말로만 떠들어댄 알맹이 없는 가르침이었지. 나는 살지도 못하는 걸 가르치며 그걸로 밥을 먹고 살았으니.

, 선생님. 정말 너무나. 선생님은 정말.

     무슨 말이야. 왜 그래요? 말을 하다 말고 하고 잘라 먹고, 잘라 먹고 그래.

아니요. 그런 걸 인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요. 잘 못 봐서요. 어르신들께서 잘못을 솔직하게 말씀하시고 인정하시는 것 잘 못 봐서요.

     에이, 부끄러운 얘기지. 내가 얼마나 머리로만 살았고 교만했는지 많이 생각해요. 신앙 깊은 친구 하나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그야말로 신앙이 깊은 친구이거든. 강직하고 무엇보다 의지가 강해요. 젊은 날에 일찍 일에서 물러난 남편 대신 집안을 일으키고 자녀들 잘 키워내고, 그걸 다 신앙의 힘으로 했거든. 남편 사별 후 그렇게 강직했던 친구가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거예요. 제발 출근하는 남편과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집에 혼자 좀 있어 봤으면 싶다고, 온종일 남편과 붙어 있는 게 지긋지긋하단 얘길 평생 했거든. 그랬던 사람이 혼자 지내면서 외로움에 못 이겨 밤마다 술을 한두 잔씩 마셨나 봐요. 그 술이 과해져서 중독 수준이 되었다고 친구 아들이 도움을 청해왔어요. 신앙의 힘으로 삶을 버티던 친군데, 팬데믹으로 예배는 물론이고 새벽기도에도 못 가는 상황도 작용했을 거예요. 친구 얘길 들어보니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 남편 코 고는 소리는 물론 숨 쉬는 소리도 듣기 싫어서 사별 전에 이미 각방 쓴지는 오래였대. 혼자 살다 보니 사람 몸의 온기가 이렇게 필요한 거구나 싶었다고. 자신이 이렇게까지 될지 몰랐고, 자식들에게 알려져 부끄럽기까지 하다며.

아아.

     그런데 나는 차라리 이 친구가 정직하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 몸이 정직하달까. 그 와중에 <밤에 우리 영혼은>을 봤고, 마침 지난번 정 선생 강의하고 우리 집 왔을 때 나눴던 성에 관한 대화 이후에 내가 참 나를 속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평생 머리로만 살아온 거예요. 몸처럼 정직한 것이 없는데. 애정과 친밀감은 몸으로도 내보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왜요, 선생님. 이제라도 얼마든지 표현하실 수 있잖아요. 아드님 가족이 선생님께 극진하시고 특히 손녀딸들과 허물없이 지내시잖아요.

     그게 아니야. 90년이 다 되어 가는 몸이 굳어버려서 쉽지 않아. 이제는 노인네 냄새날까, 가까이 다가가는 게 망설여지기도 하고 말이야. 가만 생각해보니 손녀들이 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스킨십 하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 이번에 깨달았어요. 그게 다 내가 살아오고 관계 맺어온 결과야. 내 몸에 스킨십의 습관이 없어. 친밀감을 표현하는 몸의 언어로 치면 나는 장애의 수준이라니까. 그러니 외로움이 있다 한들 그것이 외로움인 잘 감각도 못한다니까. 그래서 차라리 내 친구가 정직하다는 거예요. 다 늙어 뒤늦게 깨달아졌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하하. 나 자존심 강하다니까. 불쌍한 노인네 취급 사양이오!

불쌍이라뇨! 아니에요. 불쌍은요. 실은 선생님, 그 영화 보면서 저의 어머님 생각, 그리고 선생님 생각도 많이 났어요. 로버트 레드포드가 혼자 식사하고 설거지하는 장면, 티브이 뉴스 켜놓고 신문 보는 장면. 실감 나게 다가오는 면이 있더라고요. 어머니는 지금 어떡하고 계실까? 선생님은 뭘 하실까? 자꾸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특히 저의 어머니께서 밤에 시간이 너무 안 간다, 혼자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다, 하는 말씀들이 깊이 이해가 됐어요.

 

몸으로 함께 있는 '때'를 누리기

 

     아하. 그래서?

그래서요? 그래서. , 그런 생각까지 해봤네요. 저의 어머니가 언어 비언어적으로 외롭다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 가족과 같이 지내고 싶다는 뜻이거든요. 턱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마음이야 그러시지만, 막상 같이 살면 분명 불편한 부분이 있을 거고, 저도 감당할 자신이 없고요. 결국, 서로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요 며칠 모실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어요. 친정엄마와 비교도 되고요. 엄마는 90이 넘으셨는데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거든요. 동생네 가족과 사시는데 늦게 본 손주들의 왁자지껄 속에 계세요. 엄마의 건강이 거기서 오는 것 아닐까 싶어요. 선생님 친구분이 말씀하셨다는 그 사람의 온기 말이에요.

     반대!

?

     나는 반대라고. 어머니 몫으로 두어요. 같이 산다고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천만의 말씀! 어설프게 착한 며느리 하다가 괜히 정 나지 말고. 친정어머니와 단순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 그렇죠? 제가 너무 앞서갔죠? 단호하게 말씀해주시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그 영화 보고 공감이 될수록 죄책감이 함께 들었거든요.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러라고 영화 낚시질을 한 게 아니에요. 영화 낚시질이라고 했던가? 뭐라고 했지? 낚았다고 했나? 아무튼, 남의 외로움 신경 쓰지 말고 당신 외로움이나 잘 간수해요. 하하.

, 선생님 저는 외롭지 않아요. , 그렇진 않구요. 외롭죠. 외롭긴 하지만, 그거야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에게나 있는 외로움 정도죠. 갑자기 정호승 시인의 시가 생각나네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하하하. 그 정도는 외로워요.

     내 말이! 제 몫의 외로움이 있는 거예요. 노인은 노인의 몫이 있는 거고. 어머니가 당신네 가족과 함께 살면 그 외로움이 가실까? 그렇지 않을걸. 평생 만들어온 외로움의 방식이야. 특히 몸으로 만들어온 방식이니까. 내가 그런 것처럼 말야. 자식이고 누구고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영화에서도 노인네 둘이 서로 보듬잖소. 그마저도 오래 갈 수 없고. 지금의 외로움은 살아온 날의 결과야.

아하, 좋은 노년은 없다, 좋은 중년의 결과라고 하셨던 말씀 생각나네요.

     그걸 기억하라는 거야. 그 영화 보고, 나나 당신 시어머니 보면서 늙어 외로울 걱정 미리 가져다 하라는 것 아니야. 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 누려. 나처럼 어리석게 몸뚱아리 다 늙어 깨닫지 말고요. 가까이 있는 사람 보듬고, 손잡고, 안아주고 하면서 누려요. 늙어 외롭게 지내는 거? 너무 걱정하지 마. 살만해. 내가 지난번에 정 선생과 성에 관한 얘기 나누고 크게 깨달았어요. 이런 가정은 해볼 필요도 없겠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남편 죽기 전에, 몸으로 함께 있을 때 그 순간을 누리겠다 싶어요.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몸으로 더 많이 부벼주고 말야. 어쩌면 그 아쉬움 때문에 더 외로워. 내 친구 말이에요. 그렇게 싫었던 남편 없어졌는데 더 외로워진 것 봐요. 아쉬움과 후회가 우울이 된 거지 뭐야. 그러니 인생의 밤이 오기 전에 남편과 몸으로 나누는 사랑을 충분히 누리라고. 의무방어전이든, 꼴 보기 싫은 남편이든 지금을 누리는 것 외에는 우리 외로움에 대처할 다른 방법이 없어. 이미 잘 하는 것 같지만! 영화는 이 얘기해주고 싶어서 낚은 거라우.

 

김난도 교수의 책에 나오는 인생 시계라는 계산이 있다. 80세를 수명으로 하여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한 것인데, 80을 훌쩍 넘기신 선생님은 계산대로라면 인생의 시계 밖에 계신 거네! 깊디깊은 밤의 시간을 살고 계신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나는 오후 412분이다. 밤의 어둠이 오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한다. “밤에 우리 영혼은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다시 떠올려본다. 선생님과 얘기 나누고 보니 밤에 우리 몸은이라 읽어도 의미가 통하지 싶다. 굳어버린 몸처럼, 세월로 고착된 관계나 삶의 방식을 노년이 되어 고칠 수는 없다. 최 선생님조차도 그럴 수 없음에 회한을 느끼시는 것을 보면서 생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인생의 깊은 밤 시간은 햇빛보다 더 밝은 천국에 가깝기에 가장 캄캄한 시간일지 모르겠다. 생의 마지막 시간에 우리 몸과 영혼은 처절한 외로움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이 숙명일지도. 인생의 깊은 밤에 든 지혜로운 노인의 말, 마주하기 민망한 쓸쓸함을 가진 노인의 말을 무겁게 마음에 심어본다. 몸의 장막이 무너지기 전에, 오늘, 여기, 몸으로 부대끼는 사람들을 몸으로 사랑하겠다.

 

<시니어 매일성경> 2022년 11, 12월호 기고글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1

(시니어 매일 성경 9,10월호)

 

 

섭섭해, 정 선생. Out of sight out of mind 맞지?” 돌려 말하는 법이 없으시니 말씀하시면 그게 전부인데. 정말 섭섭하시구나! 얼굴 뵌 지 한참이지만 메시지로 안부를 여쭙고 있고, 가끔 꽃 사진도 찍어 보내주시곤 하여 여전히 가까운 마음인데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셨나 보다. 일이 좀 많아지기도 했지만, 내가 관계 맺는데 취약한 지점이기도 하다. 꼭 자주 만나야 하나, 각자 잘 살면 되지, 하는 생각인데 친구들에게 섭섭하단 소릴 듣곤 한다. 최 선생님께도 듣고 마네. 마침 선생님 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강의가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고 서프라이즈로 찾아뵈었다. 상담이 있으실지 모르지만 일단 쳐들어가자. 잠깐 뵙고 오더라도 섭섭함은 좀 풀어드려야지.

 

어이구, 이 사람이! 누군가 했네. 연락도 없이 이게 무슨 일이야. 들어와, 들어와. 상담 없어. 있어도 취소할게.

     서프라이즈예요. 선생님! 보고 싶으셨죠? 헤헤.

유붕이 자원방래 하니 불역열호아 외다! 서프라이즈 방문한다고 이렇게 차려입기까지 했어? 이쁘네. 화장하고 차려 입이니 딴 사람 같어. 나 보여주려고 차려입은 것 아닐테고.

     네, 근처에 강의가 있었어요. 상담 있으시거나 댁에 안 계셔도 할 수 없다 하고 왔죠. 과문불입, 과문불입요. 문자 쓰셨으 니까 문자로 답해야지. 히히.

 

혼인 전 순결+혼인 내 순결

 

아이구, 또 받아치기 시작이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삐친 척을 좀 했더니... 섭섭하단 말에 그냥 달려왔구나. 이랬거나 저랬거나 좋네. 그런데 무슨 강의를 했어?

     네, 청년들에게 스킨십, 성에 대한 강의했어요.

그런 강의도 해?

     아유, . 청년들 연애 얘기하다 보면 결국 그런 질문이 나오거든요.

, 성에 대한 강의를 하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혼전순결 뭐 이런 얘긴가?

     하하, 선생님 저 청년에게 먹어주는 강사예요. , 그러니까 말이 먹히는 강사라고요. 혼전 순결보다 더 책임 있게 지켜야 하는 건 혼인 내의 순결 아닌가요? 이렇게 얘기하면 청년들이 좋아해요. 하하. 더 여백을 두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편이에요.

여백이라?

     성과 사랑, 성과 영성에 대해 폭넓게 얘기하고요. 각자에게 자신의 성 생활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게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혼전순결 지켜라, 말아라 하는 게 의미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혼인 전 순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잘 지켜야 하는 것이 혼인 내 순결 아닌가요? 결혼한 부부가 서로에게 헌신하는 혼인 안에서의 순결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죄다! 이 가르침만 반복하는 것은 안 그래도 어려운 청년들의 등에 짐을 지운다는 느낌이거든요. 기독 청년이 아니면 하지 않을 고민과 고뇌 속에서 어디다 말도 못하고요. 사귀는데 왜 안 자? 그럴 수가 있어? 이게 요즘 연애와 성문화잖아요.

아하! 그렇게 강의하면 청년들이 위로를 받겠는데. 그래, 그러면 청년들이 어떻게 반응해? 그 말을 잘 들어?

     아니, 그런데 선생님 왜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시죠? 하하.

? 노인네는 성에 관심이 없을까 봐? 나도 솔깃하다고! 허허허. 엊그제 손녀딸을 만났잖우. 그 애가 애인이 있잖아. 어렸을 적부터 나한테 와서 속 얘기를 많이 하거든.

     아, 그 아드님이 반대하시는... 둘째 손녀딸 말씀하시는 거죠? 요즘 어때요?

기억하네. 막을 장사가 있겠소. 그렇다고 깔끔하게 허락한 것도 아니지만. 아들이 전처럼 완강하지는 않아요. 자식 이기는 장사 없어. 그런데 엊그제 손녀딸하고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그러는 거야. “할머니, 나 애기를 만들까? 그러면 아빠가 바로 결혼 허락해주지 않을까?” 내가 기겁을 했어. 결혼허락을 위한 수단으로 아기를 갖는다니 말이나 되냐? 임신은 안 된다, 했더니 농담을 다큐로 받는대나 뭐래나 하면서 깔깔거리더라고. 나는 옛날 사람이라... 게다가 우리 손녀딸은 신앙도 없으니까. 마음이 복잡한 중에 마침 정 선생이 성에 대한 강의를 했다니까 귀가 번쩍 뜨이네. 뭐라고 해줘야 해? 내가.

     선생님 잘 아시면서요. (최 선생님 말투 흉내 내면서) 다 큰 애가 뭐라고 말한다고 듣겠수?

어허... 이 사람이 참! 하이고, 흉내도 잘 내. 허허허허. 그러면 정 선생은 어떻게 여백을 두고 무슨 얘기를 해요? 청년들에게.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 또는 한 사람과 오랜

 

어려워요. 선생님. 그런 어려움이죠. 성에 대한 관심도 많고, 크리스천 청년으로서 고민도 많은데, 일단 교회 안에서 성에 관한 발화 자체가 금기 아닌 금기잖아요. 일부러 저는 일단 섹스, 자위, 오르가즘... 이런 표현을 써봐요. 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게 말하자는 뜻에서요.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 때, 무엇이든 그 파괴력이 커지잖아요. 입에 올리지 못하고 쉬쉬하지만, 에로스 에너지가 치솟는 시절이고요. 그런데 강의는 고사하고 이런 말만 꺼내놓아도 분위가 얼어붙는 느낌이죠. 문제는 교회 밖의 문화는 교회와는 딴 세상이라는 거고요. 그러니 성에 관한 한 혼자 끙끙거리다 되는대로 대처하게 되니, 신앙과 성은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되고 말아요. 하긴 뭐 청년들만의 문제인가요.

     그러네. 나만 해도 성과 정신 건강까지는 어떻게 연결시켜 이해하겠는데 신앙과 접점은 못 찾겠어요. 섹스리스를 비롯한 성적인 문제로 부부 상담을 오는 경우가 꽤 있거든. 생각해보니 신앙인은 거의 없어요. 아니다. 부부 갈등 안에는 분명 성적인 단절이 포함되어 있을 텐데, 교인들은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아. 성은 거룩하지 못하다 여겨서 그건가? 그렇구만. 실은 성과 영성은 아주 밀접한 것인데 말이야.

그러니까요, 선생님. 참 중요한데, 잘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청년들은 성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지만, 실제로 성 경험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강의를 들어도 이론에 그치고 마는 것이죠.

     허허허허. 그러네. 이론이네. 지식만 쌓는 게 되는구나. 실전편은 나중 일이고. 그러면 그 강의는 실전이 가능한 결혼한 부부가 들어야겠구만.

그런데 실전이 가능한 오래된 부부는 또 말이죠. 제 주변 친구들 말이에요. 섹스리스 부부가 흔하고요. 그걸 대단한 문제로 여기지도 않아요. 단지 성적인 단절이 아니라 관계 전반의 단절이 고착되어 있으니까요. 그 상태에서 이론을 배운다고 몸이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아하! 그렇긴 하지. 알랭 드 보통이 섹스는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라고 했다고.

딱이네요. 성을 대단한 것으로 여겨서 어려운 청년 시기, 애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여 문제해결이 안 되는 중년의 부부. 그렇군요.

     그러니까 정 선생은 청년들에게 뭐라고 강의를 한다는 거요? 나한테도 좀 강의해줘 봐.

에잇, 선생님. 다 아시는 얘기예요. 상담하고 강의하시면서 다 다루시잖아요.

     나야 뭐 심리학이지. 성 심리 정도 아는 거지. 그것도 강의실 용이라우. 무림에선 어떻게 가르칩니까? 무림의 고수한테 한 수 배웁시다.

고수는요? 일단 솔직하게 제 얘기해요. 제가 청년 시절에 오한숙희 씨의 칼럼을 읽고 슬픈 충격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아마 이혼 직전의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남편의 일기장에서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라는 문장을 본 거예요. 네네, 오한숙희씨가요. 앞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네요. 아무튼 그걸 보고, 생각했어요. 결혼했는데 배우자가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은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런데 웬걸요! 결혼하고 몇 년 지났는데, 제 일이 된 거예요. , 데이트 할 때는 어떻게 뽀뽀 한 번 더 해볼까, 영화관에서 팝콘 먹다 손만 스쳐도 찌릿찌릿하고 그랬는데요. 어느 날 보니 덤덤해도 그렇게 덤덤할 수가 없는 거죠.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라면 대단했던 성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죠.

     페니레틸라민 호르몬! 사랑 호르몬이라도 하지. 17개월이면 자연 감소!

역시! 그러니까요. 선생님. 그게 끝이 아닌 거잖아요. 그 짜릿함, 에로스의 폭발은 수많은 사람 중에 내 짝을 고를 때 유효한 사인이었고요. 어쩌면 그때부터가 진짜 성의 가치와 의미를 아는 때라고 말해요. 청년들이 알아들을까 싶지만요. 지금 못 알아들어도, 나중에 결혼해서 기억이 나면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여요. 한 사람과 오래도록, 질리도록 섹스해봐야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고요.

     와하하하하, 재밌네. 실전 경험에서 터득한 거야? 질리도록이라...

흐헤헤헤, 그렇죠. 오래도록 질리도록... 그렇게 터득한 거죠. 글로 배운 성, 글로 배운 성과 영성이 결혼생활 15? 나이 사십 훌쩍 넘으니 알아들어지더라고요. 니체가 그런 말을 했다죠. 지상과 천상을 통틀어 절대적인 사실은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 있어야만 하며, 그때에만 인생의 살 만한 가치가 발견될 거라고요. 그러니까 한 사람과의 오랜 성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때 성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강의해요. 아우, 그거 지난한 헌신이며 자기희생이며 영성수련이에요.

     오호라,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라. 니체의 말을 거기다 갖다 붙인다? 일리가 있네. 문제는 결혼 관계 안에서 섹스를 지속하는 부부가 많지 않다는 거지. 몇 년 전인가 통계였는데. 50대 이상 부부 중 반은 섹스리스라고 했던 것 같아. 사실 섹스리스는 친밀감 리스의 문제야.

선생님 늘 말씀하시잖아요. 신심일여(身心一如)라고요. 성관계가 몸의 대화라면, 마음의 대화 없이 지속하기 어려운 거죠. 성이 아니라 관계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50% 안에는 크리스천 부부가 있을 거고요. 어쩌면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어쩌면 심지어 좋은 부부의 모델로 살아갈지도 모르겠어요. , K 선생님 부부 생각이 나네요. 요즘 어떠신가요?

     그러게 요즘 통 소식이 없네. 맞아. 그 부부가 평생 아무 문제 없는 듯 살아왔지만, 결국 K 선생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 표면화됐지 않우? 몸과 마음은 하나야. 그런 의미에서 부부의 성은 관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고. 마음 가는 곳에 몸이 간다니까.

그런 연구 결과 흔하잖아요. 예전에 공부할 때 그런 연구 본 적이 있어요. 감기에 대한 면역력이 강한 집단에 대한 연구였는데요. 다양한 연령, 직업 포함해서 조사했는데 감기 면역력이 가장 강한 사람들은 신혼부부였어요. 안고, 입 맞추고, 즐겁게 섹스하며 몸으로 나누는 친밀감의 결과라는 거죠. 그때 본 표현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입맞춤하면서 균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균을 죽이게 된다고요.

     정설이지. 프레데릭 살드만이라는 프랑스 심장 전문의가 있어요. 건강에 관한 대중적인 책을 많이 썼지. 섹스가 건강에 직결된다고 했어. 정확한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한 달 몇 번 이상의 섹스면 심혈관 질환이 반으로 준다고. 그것뿐이요? 정 선생이 말한 면역력이며 노화 방지나 남성들 비뇨기과 질환까지... 이런 좋은 효과를 몰라서가 아니야. 면역력 강화를 위해서 비타민을 많이 먹는 게 쉽지 말이야. 이미 멀어진 부부관계를 회복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 성관계에서 성이 아니라 관계에 방점 찍어야 한다는 정 선생 말이 맞아요. 건강에 주는 효과도 단지 섹스이겠어요? 충족되는 친밀감의 욕구겠지.

그러니까요, 선생님. 섹스는 인간이 몸으로 나누는 최고의 친밀감의 표현이잖아요. 문제는 인간은 몸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인, 무엇보다 영적인 존재라는 거고요. 정서적인 친밀감, 특히 영적인 친밀감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해야 한다, 제가 연애 강의할 때 엄청나게 강조하는데요. 청년들이 그래요. “대화고 뭐고, 오빠는 니가 뽀뽀만 해주면 다 해결 돼.” 이런 식이라고요. 사실 이때야 에로스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에 스키십 한 번으로 웬만한 갈등은 덮어지기도 하죠. 중년 부부 섹스리스는 이미 여기서 예견되는지도 모르겠어요. 결혼한 후에는 그 반대가 되잖아요. 스킨십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해결되고 그 끝에야 섹스가 자연스럽잖아요.

     그렇구먼. 정 선생 청년들한테만 성 강의할 것이 아니라 그 부모들도 앉혀놓고 이런 얘기 해줘야겠다.

아휴, 선생님. 교회에서 성담론을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제가 청년들 대상으로 성 강의를 하다가도 교회 어른들 뒤에서 왔다갔다 하시면 얼마나 심장이 쫄리는데요. 단어 하나만 듣고도 딱 경직되시잖아요.

     그래요. 성이 이렇게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서는 물론 교회에서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어. 성은 더럽고 죄악시해야 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야. 유교 문화에 이원론적 신앙관까지 더해져서 교인들에겐 더 한 것 같아. 그 아까 왜 섹스리스 부부 통계에서 말이에요. 우리나라 50대 부부 섹스리스 비율이 50% 정도라고 했잖아. 세계 평균은 20%대래. 우리나라가 일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부관계가 적은 나라라는 거 아니야. 중요한 건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거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러려니 산다는 거지.

그래요, 선생님. 친구들 모임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난 아직도 남편의 몸이 좋다는 말 했다가 욕먹고 맞을 뻔했어요. 하하. 아이들 독립해서 나가며 빈방이 생기고, 그때부터 각방 쓰는 친구가 많아요. 부부관계가 있다 해도 거의 의무방어전이죠.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된 일이니까 사실, 문제라 할 수도 없고요. 그런데 이게 조금 슬픈 악순환 같이 느껴져요. 전에 제가 트로트 보고 우는 마초 남편 꼴보기 싫다는 친구 말씀드린 적 있죠. 그 남편도 제가 알거든요. 남편은 외로워서 그런다는 거예요. 죽어라 돈 벌고 살아왔는데, 돌아보니 남은 게 없는 거죠. 제 친구가 아이들한테는 정말 좋은 엄마거든요. 엄마와 아이들 사이는 끈끈해요. 마초 남자인 그 아빠는 가족들에게 성질대로 해온 게 있거든요. 엄마따라 아이들도 아빠를 싫어해요. 그 사이에 끼지를 못하는 거예요. 트로트 가사에 눈물 나는 외로움인 거죠. 제 친구는 그 모습이 싫어서 정이 떨어지고, 매력이라곤 안 느껴지는 거죠. 그럴수록 남편은 더 외로워지고, 또 트로트 들으며 울고... 더 싫고.

     그런데 정 선생은 어쩌다 친구들 사이 공공의 적이 됐어?

? 무슨 말씀인지... 공공의 적이라뇨?

     아니, 어떻게 남편과 금슬이 좋으냐고? 친구들한테 욕먹었다며? 부부사이 좋다고 자랑해서.

푸하하, 금슬이라고 하시니 손발이 오글...

    왜애? 금슬(琴瑟)이 어때서?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조화롭게 울리면 얼마나 아름다운 거요? 그러니까 비결이 뭐야? 부부상담 오는 내담자들에게 알려줘야겠다. 오늘은 강사님한테 배울 게 많네.

 

헌신하겠다는 약속, 나를 넘어서겠다는 약속

 

저는, 저의 부부는 운이 좀 좋았던 것 같아요. 운이라기보다는 시작이 좋았달까. 일단 실전 이전에 이론 공부를 많이 했죠. 하하. 결혼 전에 아까 말씀드린 오한숙희 선생 글 같은 류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남편 역시 결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더라고요. 결혼 안에서 사랑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정도는 알았던 것 같아요. 사랑 호르몬이 언젠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도요. 결혼은 사랑 깊은 약속이라는 것을 함께 묵상했어요. 헌신하겠다는 약속이다, 나를 넘어서겠다는 약속이다, 이렇게요. 진정한 뜻은 모르고 했던 말인 것 같아요. 신혼 초에 월간지에 신혼일기를 연재할 기회가 있었어요. 일상의 크고 작은 갈등을 글감 삼으며 대화하고 글을 썼는데, 관계의 기초를 잘 놓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 어쩐지. 부부사이가 남다르게 교과서적이더라.

교과서적이라뇨? 선생님, 저 범생이 아니에요. 선생님.

     으이그, 칭찬이야. 보기 드문 건강한 부부라고 칭찬하는 거야.

헤헤. 그렇게 알아들었어요. 저나 남편이나 원가정에서 특별히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인식한 결핍감들이 있죠. 사랑 깊은 약속이란 그런 것이었어요. 우리가 다른 모든 것에 실패해도 부부관계,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일에는 실패하지 말자.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서로를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해보자. 젊은 날 뭘 모르고 한 말인데, 지켜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아하, 그렇구나! 사랑은 자기증여야. 자기희생이라고. 성이 더럽고 죄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줌으로 하나 되는 것의 표상이 아니겠어? 성경의 아가서나 영성가들의 기도체험에서 온전한 하나님 닮음, 하나님 체험을 영적 결혼으로 상징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그저 욕구나 채우는 감각적인 즐거움 그 너머라는 것이지.

맞아요, 선생님. 성관계에서 절정에 느끼는 그 망아의 순간,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아마 타자와 온전히 하나 되는 감각적 경험일 거예요. 단지 몸을 합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담긴 삶을 풍성하게 하고 자아를 넘어서게 하는 경험이 될 때, 영적인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축하해! 축하합니다!

? 축하요? 어어, 또 놀리시는 거예요?

     아니야. 충분히 누리라고. 축복받은 사람이잖아. 얘길 듣다 보니 성이 거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사랑 깊은 약속 맞네. 사랑 깊은 약속으로서의 결혼생활과 성 맞아. 나는 혼자 지낸 지가 거의 30년 아니요? 결혼생활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 성은 더더욱 잘 모르고. 잘 누려요. 결혼생활이 둘이 사는 나날로 끝일 것 같지만, 결혼은 언젠가 혼자 지내는 시간까지 포함해. 그 세월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 중 누군가, 언젠가는 혼자 남을 것 아니유? 그때는 의무방어전이고 뭐고, 성관계 없는 새로운 생활이라고.

, 그렇군요. 누군가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꼭 있겠군요.

     그럼, 그때는 친밀감과 성은 또 다른 지점으로 가. 내가 얼마 전에 영화를 하나 봤잖우. 제인 폰다를 좋아하거든. 상대역은 로버트 레트포드야. 둘 다 많이 늙었대. 참 멋지고 예뻤는데.

무슨 영환데요?

     제목이 뭐였더라? 혼자 사는 늙은 노인네들 얘기야. 노인네들의 밤. , 제목이 <밤에 우리 영혼은>이다.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 5, 60대 때는 할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혼자 살아도 외로운 밤 그런 걸 많이 못 느꼈거든. 이제는 또 달라. 그 영화를 보니, 내 마음이 저렇구나 싶더라고. 암튼, 둘이 함께 있는 오늘을 잘 누리라고.

, 그 영화 궁금하네요. 선생님 저 그 영화 보고 올 테니 다음에 뵐 때 영화 토크 해요.

     그럽시다! 만나서 얼굴 보자고. 카카오톡 백 번보다 몸으로 만나는 게 진짜야! 유붕이 자원방래 하니 좋구나, 좋아!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0

 

 

여행의 묘미가 있다.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풍경을 만나는 기쁨의 순간이 있다. 여행뿐이랴, 삶에도 가끔 들이닥치는 그런 순간이 있다. 반면 고난 또한 늘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것이 인생이고 여행 역시 그러하다. 34, 최 선생님과의 제주여행도 그 단순한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상상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었고 동시에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선생님도 노인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나 시어머니께 느껴지는 살아온 날이 만들어낸 고착이랄까, 그런 것 말이다. 가끔 한 번씩 뵐 때는 몰랐던 점이다. 어쩌면 모르고 싶었는지도. 내 마음속 최 선생님을 좋은 노인의 표상으로 만들어 놓고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보려는 면이 없지 않았었다. 선생님 역시 그 부분을 불편해하셨었고. 사나흘 함께 지내며 먹는 것, 움직이는 것 등으로 자잘한 갈등이 있었다. 그 정도는 괜찮았다. 마냥 긍정적으로 보는 환상 속 헛헛한 만남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품는 것이 진짜 친밀함이니까.

 

신앙으로 도망가지 말아야

 

생각은 대략 정리되었는데, 감정이 생각의 속도를 따라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K 선생님과 마지막 식사 후 공항 주차장에서 헤어졌다. 비행기 탈 때까지 함께 있겠다는 걸, 나도 최 선생님도 이심전심으로 만류했다.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냈고, 모르긴 해도 며칠 지극정성으로 우리를 접대하느라 애쓰셨는데 어서 돌아가서 쉬시면 싶었다. 한 손 흔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잠깐, 스르르 멀어지는 자동차 꽁무니의 여운이 길다. 최 선생님과 단둘이 남아 수속을 마치고 카페에 앉았다. 뭔지 모를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어쩐지 마음의 거리가 한참 멀어진 느낌이다. 나만의 느낌일까, 선생님도 그러실까? K 선생님과 더 있을 걸 그랬나.

 

선생님, 피곤하지 않으세요? 어제 바로 잠이 드셨어요? 이따 비행기 안에서 좀 주무세요. K 선생님 혼자 돌아가시는 모습이 영 마음이 안 좋네요. 복잡한 마음으로 혼자 계실 생각하니 제 마음이 다 막막해요. 며칠 전에 제주 도착해서 봤던 그 밝은 얼굴이 아니시니 마음이 그러네요.

어허, 그으래? , 자기 마음에 있는 대로 보인다더니. 그렇구나. 나는 한결 가벼워 보이는데. 운전하고 나가는 게 힘이 있어 보이고.

어머, 선생님. 저는 주차장 빠져나가는 K 선생님 뒷모습에서 슬픔을 봤는데요. 선생님은 힘을 보셨군요. , 재밌어요.

그러게. 제 안에 있는 것만 보이고, 있는 대로 보인다더니. 그나저나 정 선생 수고 많았어요. 노인네 맞추랴 K 선생 배려하랴, 막내 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 . , 아니 뭐. 힘들긴요. 저야 뭐 한 게 있나요. 맛있는 거 먹고 조.... 좋았죠.

허허, 그런데 왜 말이 이렇게 떠듬떠듬이야? 정말 힘들었구나!

 

, 진짜 최 선생님 귀신! 무슨 마음을 도통 속일 수가 없다. 선생님도 모르진 않으셨구나. 마음을 알아주셔서 그런가? 눌러뒀던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다름 아니다. K 선생님이 가볍고 편안해 보인다는 말씀에 어떤 버튼이 눌린 것 같다. 나와 생각이 달라서는 아니다. 아니, 솔직히 그 다름이 힘들다. 생각해보니 내내 쌓이던 미세한 스트레스가 어젯밤 대화에서 극에 달한 것 같다. 셋의 대화 중 최 선생님과 다른 내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아니, 나와 다른 최 선생님의 생각이 불편했다. 두 분 얘기에 일일이 끼어들기도 뭐하고 해서 참은 말이 많다. 참나, 그렇게 K 선생님을 몰아세우실 때는 언제고. 사람 속을 다 휘저어 놓으시고는 편해 보인다니, 불편감의 봉인이 풀렸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에잇, 나 못 담아둬.

 

선생님, 저는 어젯밤 그렇게 대화를 마친 것이 불편해요. 제 마음이 그래서 제 눈엔 그렇게 보이나 봐요. 위로하고 도우러 왔는데 마음만 헤집어 놓고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선생님은 K 선생님이 정말 괜찮아 보이세요?

허허, 글쎄. 어젯밤 대화라. 어느 지점이 불편했을까? 어떻게 대화를 마쳤더라?

아니에요. 선생님이 괜찮으시다면 괜찮은 거죠. 제가 과도하게 감정이입 해서 오버하는 것 같아요.

아닌데. 정 선생답지 않게스리. 얘기해봐요. 괜찮아. 어젯밤 대화에서 불편한 게 있었으면 얘기해봐. 여행 내내 노인네가 까다롭게 굴어서 힘들었나? 얘기해봐요. 우리 사이에 뭐 이래?

. 선생님.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민망하게도) 그게. 제 생각엔 며칠 지내면서 각 잡고 얘기한 건 아니지만, 간간이 K 선생님이 살아오신 얘기하셨잖아요. 신혼 때 남편 공부하는 동안 시집살이하신 얘기, 큰 아이는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시어머니가 끼고 키우셨던 얘기며... 완벽주의자 남편과 살아오신 소소한 얘기들요.

그랬지. 정 선생이 부담 안 주고 이렇게 저렇게 질문을 잘 하더구만. 그런데 그게 왜?

저는 어젯밤 K 선생님 말씀이 나름의 결단으로 들렸어요. 그간 혼자 지내며 생각해오신 것도 있겠고, 저희와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마음의 갈피를 잡으신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왜?

(왜 이리 마음이 떨리는지, 덩달아 목소리도 떨린다) ... 하나님의 뜻을 구하겠다,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겠다는 말은 고민 끝에 내린 좋은 결정 아닌가요?

아하, 알았다. 내가 지나쳤지? 믿음이 뭐냐,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냐, 신앙으로 도망가지 말라고 했던 말? 그거구나!

(떨림의 정체는 분노였나. 불끈 얼굴과 마음이 달아오른다) , 좀 과하신 것 같았어요. K 선생님도 많이 당황하시는 것 같고요. 어렵게 그 마음까지 갔을 텐데, 뭔가 선생님께서 뒤흔들어 놓으시는 느낌이랄까, 선생님은 혹시 K 선생님께는 이혼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싶기도 하고요. 몰아붙이시는 거... 평소 선생님답지 않으셨어요.

 

어떤 당위 같은 환상-기도하면 남편이 변화될까

 

내 스타일은 아닌데. 정색하고 불편한 얘기 하는 거 정말 못하는데, 나 왜 이러지? 심장이 떨리긴 하는데 말이 술술 나온다. 말을 하다 보니 더욱 알아지는 내 마음이다. 신앙이 방어기제가 되면 위험하다는 말씀은 전에도 하셨지만, 어제 정말 불편했다. 자기감정을 진실하게 마주하는 것이 필요한 건 알겠지만, 그렇게 마주했는데 안 되는 걸 하나님께 맡기는 게 믿음 아닐까. 늘 스스로 나일론신자라 하시는 말씀이 농담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이성적이어서 이런 믿음의 경지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건 아닐까. , 그런데 좀 심했나? 선생님 표정이 영 안 좋으시다. 말없이 먼 곳을 바라보시다 한참 후 입을 떼신다.

 

그렇게 보였구나. 이혼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에도 말했듯 내가 뭐라고 남의 결혼에 이혼이다 아니다 정답을 말하겠어요. 정 선생이 오해가 아닌가 싶어요. 나와 K 선생 사이에는 세월이 쌓은 신뢰가 있거든. 내가 몰아붙이긴 한 것 같아. 그렇게 보였을 수 있겠네. 하지만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부러 사람 마음 흔들어 놓겠어요? 그런 건 아니야.

, 선생님. 마음 상하셨어요? 말을 하다 보니. 일부러 그러셨다는 건 아니고요. , 그러니까... ... 제 말은... 선생님, 오해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그렇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아. 생각해보니 일부러 그런 것도 사실이네요.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였어. K 선생이 이혼 얘기를 꺼낸 건 보통 용기를 끌어모은 게 아니에요. 말했다시피 아이들 대학만 가면 이혼하겠노라며 젊어서부터 먹은 마음이고. 결국, 은퇴할 때까지 살았어요. 어찌어찌 견뎌오던 게 함께 붙어 있으면서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거지. 정말 큰 용기를 낸 거예요. 신앙도 뜨거운 K 선생 딴에는.

그러니까요, 선생님. 용기 냈고, 생각할 만큼 했고, 이제 신앙의 힘으로 결단하시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신앙의 결단을 하찮게 보는 게 아니야. 그거 정말 오해예요. K 선생이 뭐라고 했어요?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남편을 변화시켜 주실 거라고 했죠? 그렇게 말한 거 기억나요?

, 그럼요.

어렵사리 용기 내서 별거까지 불사한 마당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환상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남편분이 안 바뀔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내가 모르지. 이번 충격으로 바뀔 수도 있고, 해오던 관성이 있으니 충격이 가시고 다시 살만해지면 예전 같아질 수도 있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바뀌든 안 바뀌는 그건 K 선생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 기도야 할 수는 있지. 기도로 타인이 통제되면 세상살이 뭐가 어렵겠소. 하나님의 뜻이라 여겨 다시 살겠다면, 바뀌지 않을 남편을 전제하고 결단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면 다시 살아도 희망이 있어요.

, 남편이 바뀔 거라는 환상 말씀이시군요.

물론 이번에 180도 다른 모습을 본 건 맞아요. K 선생 말마따나 천하의 구두쇠가 군말 없이 제주살이 비용 내놓는 거. 이런 거 처음이라잖아. K 선생은 이미 거기에 감동한 것 같고. 다 좋은 일이에요. 그렇게 해서 마음을 돌린다면 좋은 일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알겠어요. 환상이라는 말씀요. 저도 대화 중에 어떤 당위 같은 환상이랄까, 그런 걸 느낀 것 같아요. 저희 부부가 함께 결혼 책을 썼다는 것만으로 절로 속내를 다 알아주고 통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마땅히 부부가 이러이러해야 하는데 당신 부부만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좀 놀랐어요. 이 연세에도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싶었어요.

그래,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네. 남편의 변화에 자기 행복이 달려 있다 여기는 순진한 마음, 그러니까 환상이죠. 이혼을 결심한 것은 자기 발로 서겠다는 뜻이었는데, 마음 돌려서 다시 살겠다고 해도 자기 발로 서겠다는 뜻마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그래, 다시 산다. 니가 변하든 안 변하든 나는 너에 연연하지 않고 나로 살겠다, 이랬으면 좋겠고, K 선생 사랑하는 내 진심이에요. 기도하면 변화시켜 주실 거라는 말은 다시 내 행복권을 남편에게 주겠다는 뜻으로 들려요. 그래서 안타까웠던 거예요. 화가 났어. 혼란스러워하기는 했지만, K 선생이 내 뜻을 알아들은 걸로 느껴졌어요. 알아들었기에 그렇게 무거웠던 거지. 제주살이로 스르르 풀린 마음에 기도하면 되겠지, 잘 되겠지, 하고 면피하려 했는데 자기 책임의 문제라고 알아들으니 무겁게 가져가는 거지요. 난 그렇게 이해해서 어젯밤 대화 마칠 때도, 지금도, K 선생 걱정이 안 돼요. 하하호호 끝나는 대화가 꼭 좋은 대화는 아니야. 진실을 말하고 듣는 것이 때로는 아픈 거예요.

, 선생님. 제가 확실히 오해했어요. 죄송해요. 말씀 듣고 보니 저도 어렴풋하게 느꼈던 점이네요. 어젯밤에 제가 피곤해서 대화를 띄엄띄엄 들었나 봐요.

그게 아니고 불편하게 듣기로 작정했던 건 아니고?

, 작정이라뇨?

노인네가 싫어서 노인네 하는 말이 띄엄띄엄 들렸던 건 아니냐고?

선생님, , 무슨 말씀을요. 싫다니요.

싫을 수 있지. 나도 어떤 때 정 선생 말 안 하고 뾰로토옹 하고 있는 게 밉던데? 하하하. 놀래는 거 봐라. 어떻게 늘 좋기만 하겠수? 우리가 이렇게 다르게 생겨 먹었는데. 또 젊은 사람이 나이 든 두 사람 함께 다니려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게 당연해. 그래서 여행 한 번 하고 친구 사이 멀어지고 그러잖아요. 같이 오래 붙어 있으면 섭섭하고 그런 게 다 있는 거지. 그래도 돼. 그렇다고 멀어지지는 맙시다.

, 선생님. 진짜, 제 맘 다 들여다보고 계시는 거예요?

뭘 들여다봐? 자기 입으로 다 말해놓고. 당신이 불편하다고 말했잖아. 하하.

 

이혼하든 다시 살든 자신과의 화해가 먼저

 

심장박동이 정상치가 되고, 붉으락푸르락 오르락내리락하던 열도 떨어졌다. 후유, 이 깊은 안도감은 뭐지? 며칠 쌓였던 불평과 불만이, 어젯밤 대화 이후 최 선생님께 대한 반발심으로 시끄럽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선생님 말씀처럼 쌓아둔 스트레스로 어젯밤 대화가 있는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 모든 얘기를 솔직하게 하고, 솔직하게 받아주시니 마음의 짐이 사라지고 잔뜩 울고 난 것처럼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맞아, 갈등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친밀함이 이런 거지.

 

헤헤, 다 알아요, 선생님. 다 아시면서 제 입으로 털어놓게 만드신 거요. 감사해요, 선생님. 불편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고요. 별것도 아닌 것을 그걸 속으로 꾹꾹 누르고 있으면서 슬픈 소설을 써댔던 것 같아요. 그대로 집에 돌아갔으면 그 소설이 끝 간데없었겠어요. 선생님, 느무 좋아요. 헤헤, 실망도 많이 했는데요, 그래도 좋아요.

이런, 금방 전까지 화가 잔뜩 나서 목소리까지 떨더니!

것두 다 아셨어요? 헤헤. 아흐, 이 기분 뭐죠? 잔뜩 싸우고 화해한 기분요.

싸우고 화해한 것 맞지. 그래, 화해 말이야. 이혼하든 다시 살든 화해가 먼저라고.

에이, 선생님 화해가 되면 다시 사는 거죠. 화해하고 이혼하는 게 어딨어요?

내 말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과 화해예요. 용서라고 해야 할까?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어요. 환상을 버리라고 하더니 이상주의를 말한다 할 수도 있겠네. K 선생의 평생 설움과 억울함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 지독한 시집살이 중에 몰라라 했던 남편, 할머니 품에 자란 큰 아이와의 사춘기 갈등, 그 와중에 남처럼 굴고 냉담하고 인색하게 굴며 밖에서만 호인 소리 듣는 남편. 그 고통과 외로움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런데 흔하고도 아픈 말이지만 관계 문제는 쌍방과실이에요. 이혼에 이르기까지 K 선생의 역할은 없었냐는 거지.

그건 본인도 인정하셨잖아요.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다고요. 그런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 병수발까지 다 해내시고, 꾹꾹 참아온 자신이 어리석다는 걸 깨달으셨다고요. 싫은 소리 안 하고 부부싸움 없이 살아온 것이 큰 자랑인 줄 알았다고도 하셨잖아요. 쌍방과실이라면 자신의 과실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화해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것 아닐까 싶어. 물론 K 선생이 알기도 하고 느끼기도 해요, 분명. 여기까지 용기 있게 잘 왔지. 그런데 꼭 필요한 게 있어. 그랬던 자신에 대해서 자기가 스스로 알아주는 것이 일단 필요해요. 누가 뭐래도 그 시집살이에도 나는 시어머니에게 끝까지 잘했다. 냉정하기만 한 남편을 참아내며 이 정도 부부생활 유지한 내가 대견하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게 일단 자기와의 화해지.

,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아무리 밖에서 알아줘도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없으니까요. 그건 차차 풀어가실 K 선생님의 숙제 아닐까요?

맞아. 차차 풀어가야 할 것이지. 거기에 더해서, 본인 말대로 꾹 참고 살아온 어리석은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분노하거나 슬퍼할 수도 있어야 해. 남편에게 분노가 가득 찬 것 같지만, 실은 그만큼의 자기를 향한 분노도 있는 거거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젊은 날의 자신을 돌아봐야 할 필요도 있어. 더 나아간다면 그런 남편을 선택한 건 자신이거든. 되돌릴 수 없지. 이 남자와 결혼을 선택한 것도 결혼 생활을 이어온 것도 내 선택이고 내 인생이야. 그런데 그게 이혼한다고 사라지나? 자기 역사인데. 내 탓이다, 내가 잘못한 탓이다, 피상적인 회개의 말이 아니라 진심의 아파함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걸 왜 애도라고 하지 않아요? 진심의 애도가 치유의 시작이고. 그 아픔이 자기와의 화해예요. 이혼이든, 진로든, 신앙 문제든 이런 지점에서 진심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은 치유와 성장으로 가요.

, 이 지점은 정말 자기와의 갈등이군요. 남편과의 문제가 아니군요.

그렇지. 하지만 자신과 이렇게 화해가 되면, 그러니까 자기와의 관계가 달라지면 타인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내 불행한 결혼이 온전히 남편 탓이거나, 어리석게 꾹꾹 참아온 내 탓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상대에 대한 원망과 분노, 또는 자기 혐오로 끝나는 거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 남편의 한계도 조금은 달리 보이지 않을까?

화해한 상태로 이혼해야 한다는 말씀은 그거군요.

, 신앙으로 이혼을 극복하는 얘길 했었는데. 나는 이 지점에서 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저 사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거야하는 건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고요. 우리는 단단한 것을 먹는 어른이잖소. 스스로 사유하고 마땅히 겪어야 할 갈등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내가 신앙으로 참는다고 참았는데 그게 자기 의였네. 남편도 제 고집으로 저렇듯 나를 아프게 하네. 더는 어쩔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서 주님, 어떻게 해요? 최선을 다한 한계 앞에서 신앙이 필요한 것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한편의 설교를 들은 느낌이다. “이혼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이 이런 뜻이었구나. 엔도 슈사쿠의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여러 개의 인생을 살지 못해요.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죠.” 이혼하고 재혼을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인생이구나. 내 인생 서사를 긴 안목에서 바라봐야지 싶다. 쇼펜하우어가 했다는 말씀도 생각난다. “인생이란, 처음 40년은 본문을 갖추고, 나머지 40년은 거기에 주석을 다는 거래요. 주석이 없다면, 본문에 담긴 의미를 올바르고 이해할 수 없지.” K 선생님의 결혼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고, 주석을 다시는 중이구나. 어쩌면 주석을 다는 이 시간이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이 결혼이 해피엔딩일지 그 반대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결혼도. 내 인생의 주석도.

 

정 선생, 아까 말 잘했어. 차차 풀어가야 할 숙제야. 어젯밤 K 선생의 무거운 표정은 그 숙제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뜻이니 응원하며 지켜봅시다. 비행기 착륙 때 활강 시간이 길다니까. 인생도 결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허허허.

 

 

* <시니어 매일성경> 2022년 7,8월 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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