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내려가 큰길을 건너 개천에 다다라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JESUS LOVES YOU]이다.

전에 이 동네를 모르고 살았던 시절

[JESUS LOVES YOU]는 고속도로 끝 서울 톨게이트 다 왔다는 걸로 읽혔다.

이 동네를 알고부터 '개천 길 걷기 시작점'으로 읽는다.

오늘은 그냥 "JESUS LOVES YOU!"로 읽혔다.

특새로 은혜가 충만하여 영안이 밝아졌나.

그냥 JESUS LOVES YOU!로 읽혔다.

사랑한단 말이 사랑한단 말로 들렸다.

"제가 더요!"

대답했다.

특새로 은혜가 충만해져서.

 

걸을 만큼 걷고 돌아오는 길은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걸을 만큼 걷는 동안 해가 넘어가고, 지는 노을을 보았다.

고니인지, 흰 새가 낮게 나는 것도 보았다.

여러 번 조용히 탄성을 질렀다.

날이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보였다.

JESUS LOVES YOU!

대답했다.

네, 알아요. 사랑하는 것 알아요.

너무 크고 깊어서 가늠이 되지 않는 사랑, 신비라 부를게요.

네, 당신 사랑의 다른 이름, 신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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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앞 거대한 십자가가 씬 스틸러다.

어스름한 새벽 하늘의 신비감도,

파란 하늘 뭉개구름의 청명함도,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고 달려드는 아이 같은 마음도...

십자가, 오직 십자가로 향하게 하는...

아무 날씨 아무 풍경을 담아도 십자가, 오직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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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줌 강의를 마치고 혼자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소리를 들었다. "대추 맛집, 대추 맛집, 여기가 대추 맛집." 영혼으로 들었다. 눈에 보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튀어 나갔다. 베란다 밖, 어느 새들이 앉아 대추 흡입 중인 것이었다. 와, 아침에 포스팅했는데, 댓글 달러 온 거야 뭐야. 얘네들 진짜 신통방통 하네!

아침에 포스팅한 '어느 새'는 비공개로 올려 놓은지 한참 된 글이다. 블로그 놀이 본능이 꿈틀대는 "써야만 하는" 글이 산적한 그런 시즌이다. 본능에 충실하여 밀린 글들 하나 씩 올리는 중이었고, 그러다 오늘 아침 당첨 글이 '어느 새'였던 것. 포스팅하고 나가보니 대추가 더 줄었다. "언제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먹고 가는 거야?" 투덜거렸는데... 바로 이렇게 찾아주실 줄이야.

아, 올 때도 제 맘 갈 때도 제 맘.
애간장 태우는 저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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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새는 어떤 새다. 산책길마다 깜빡이 없이 난입하여 내 정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사라지는 새가 있는데. 오늘 그 새는 며칠 전 그 새가 아니고, 며칠 전 나를 만나줬던 그 새는 도대체 지금 어느 하늘을 날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이름을 알 수도 없다. '어느 새'가 어느새 나 앞에 나타나 내 시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가는 그 순간. 우리의 만남은 순간이다. 순간을 누리는 것 외에는 없다.

이렇게 저렇게 생긴 대추를 먹다 시들해진 애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말리기로 했다. 베란다 창문 밖 화분대에 체망에 담아 내놓았다. 가을 볕을 받으며 쪼글쪼글 잘 말라갔다. 어느 날! 증거가 그대로 남은 범죄 현장을 발견했다. 분명 '어느 새'의 소행이렷다. 부리로 쪼아 먹었을 테니 국과수에 의뢰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면 잡아낼 수 있을 텐데. 잡을 수가 없는 게 함정이다. 하하, 맹랑한 '어느 새' 녀석 가트니라구.

하루 이틀 지나 확인하니, 먹던 그 대추가 없어졌다! 아, 그럼 그 녀석이 또 왔다간 것인가? 겁도 없이 범죄현장에 다시 나타나 다 먹지 못했던 걸 마저 먹고 갔다고? 와, 씨도 안 남겼네. 이 놈들 봐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내 이 손으로 꼭 잡고.... 싶지만. 잡는 것은 고사하고 현장 목격만 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며칠 후. 진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어느 새'들을 내 눈으로 보았다. 거실 내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소리도 요란하게 나타나서는 간식 타임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카메라 들고 우당탕 일어나 나갔는데 어느새 다시 날아가버린 나의 '어느 새'들.

삼계탕에 넣을 대추는 냉동실에도 있다. 너네 먹어라. 베란다 밖에 말리던 대추는 '어느 새'들의 간식으로 봉헌하기로 했다. 소리소문 없이 조금씩 갯수가 줄어간다. 녀석들이 뒷처리가 깔끔하다. 씨를 남기는 법이 없고, 먹다 두고간 것은 결국 언젠가 와서 먹어 치우고 분리수거까지 말끔히 하고 사라진다. 어느새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다. 산책 길마다 만나서 반갑고 고마웠던 '어느 새'들에게 간식 타임 선사할 수 있었던 내 생애 잊지 못할 가을이 가고 어떤 겨울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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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12.09 23:10 신고

    저희 집 창문밑에 사는 비둘기들은 저한테 이런 이쁨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ㅎㅎㅎ

  2. BlogIcon healed 2021.12.15 20:07 신고

    언니의 공감에 죄책감을 덜어냅니다..^^

해 지기 직전의 빛을 받으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시간 딱딱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일이 있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집에 있는데도 그렇다. 박차고 일어나 나가면 되는 것을 이것만 하고, 이것만 하고.... 미적거리다 보면 해가 넘어간다. 역시나 골든 타임을 조금 놓친 후 집을 나섰다.

 

탄천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분당, 왼쪽으로 가면 동백이다. 오른쪽으로 걷고 걷다보면 넓고 깨끗하게 세련되게 정비된 길과 만난다. 같은 단풍도 예사롭지 않다. 이 길을 더 좋아하고 선망한다. 시간도 얼마 없고, 어쩐지 오늘은 왼쪽으로 발길을 하게 되었다. 좁은 탄천 건너편엔 농로도 있고 논도 밭도 있다. 그다음엔 경부고속도로. 잡초가 제멋대로 우거져 말라가는 길을 걷는다. 내 일상과 닮았지. 정비되지 않는 내 일상. 그래서 편안하기도 하다.

 

최근에 듣고 있는 꿈강의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말레이시아 세노이족의 꿈 얘기다. "나는 꿈에서 새를 보았어."라는 말을 가지고 꿈작업하는 얘기를 생각했다. 걷는 중 새소리를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머리 위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고개를 들어보니 흰 새 한 마리. 푸드덕 날아서 나무 꼭대기에 앉았다. 순간 "나도 새를 보았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느 세노이의 꿈에 답하게 됨.

 

길 한쪽으로 물러나 고개를 빼고 올려다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다 낚인다. 뭐지? 뭔데? 하고 서서 같이 고개를 빼올려 쳐다보는 것. 나처럼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새네, 뭐 새야?" 폰카까지 꺼내 들고 고개를 쳐들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 2, 3... 연이어 한 번씩 멈췄다 사라진다. 뭐라도 보여줘,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 초점 맞추고 있었더니 홰를 한 번 쳐주는 서비스 한 번 해주었다. 자리 털고 일어나 날아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자 비디오 모드로 기다렸다. 꼭 그렇지.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자리에서 떴다. 자리 뜨는 바로 그 장면을 담고 싶었는데. 바로 그 순간은 놓쳤고 멀리 날아가는 뒷모습을 길게 잡았다.

 

 

새가 좋다. 들풀이 좋고 나무도 좋지만 새가 참 좋은 건 이것이다. 찰나로 다가오는 만남. 제 멋대로 찾아와 잠깐 마음을 맞추고 이내 사라지는 기쁨. 영원한 것, 영원한 분은 유일하니 지금 여기의 찰나만 충분히 누리라 일깨우는 천상의 편지이다. 어제와 내일이라는 환상을 떨치고 지금 여기만 살라는 메시지이다. 나는 새를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 1, 2, 3...도 새를 보았다. 하지만 내가 본 그 새를 본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본 새를 보았다면 그렇게 지나치진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순간이다. 나와 새만의 시간이고 기쁨이다. 예기치 않은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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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11.09 10:09 신고

    영원한 분은 영원하시니 지금을 누려라!! 아멘!!

오래된 아파트라 베란다가 있고, 베란다 앞으로 화분 놓는 선반이 달려 있다. 마음 같아선 선반 가득 예쁜 꽃 화분으로 가득 채우고 싶지만, 거기까지 힘이 미치질 않는다. 작은 화분 몇 개를 내놨다 들여놨다 하고 있다. 교회 집사님께서 지방으로 이사하며 주신 화분 중 하나가 있는데(아! 이름 모름) 신통방통이다. 어느 날 보면 살짝 기운이 빠져 있다, 비가 오고 또 어느 날 보면 생기가 가득 차 있다. 그러다 어느 아침에 보면 저렇듯 작고 예쁜 꽃을 피운다. 물론 또 돌아서서 보면 시들어 없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며 여름 가을을 나고 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제 할 일을 한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네가 선생님이다. 네가 영적 스승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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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는다고, 끊는다고, 정리하고, 버리고 했는데...

끊기가 이렇게 힘든가.

화초는 그만 키우기로 했는데...

 

명절 끝에 하나로마트에 김치 사러 갔다가 참지를 못하고, 사 왔다.

분갈이라는 게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거다.

입던 옷 물려받을 동생들이 줄을 서 있어서 말이다.

요놈 저 화분에 옮기면, 저놈이 또 빈 화분에 딱 맞고...

 

한나절 흙을 주무르고 화초 잎을 매만지며 놀았더니 초록 숨이 쉬어지네.

아, 좋다!

저 녀석, 화분에 심어 놓으니 더 예쁘다.

사길 잘했다. 

그렇지, 내 친구는 초록이들이지!

 

안 되겠다, 못 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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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9.27 02:17 신고

    어떤 색의 꽃이든 돋보이게 해주는 초록이들... 저도 이제 보여요.

    • BlogIcon larinari 2021.09.27 07:54 신고

      와아, 그거 보이면 진짜 생의 오후의 빛을 본 것! ㅎㅎㅎ

  2. BlogIcon 캘리 E. 2021.10.01 08:57 신고

    저도 얼마전부터 실내 화분 키우기 취미가 생겨서 ㅋㅋ 자꾸 이것저것 사고 싶어져서 큰일이에요. 지금은 Sanseveria랑 Chinese Money Plant라는걸 키우고 있어요. 사진의 식물도 정말 너무 이쁘네요!

    • BlogIcon larinari 2021.10.03 09:49 신고

      저 친구 이름을 알아냈어요!
      '핑크아악무'이고요.
      다육이계의 벚꽃이라네요. 예쁘죠? ^^ 저도 참 마음에 들어요.


설정 사진도 평소 하던 걸 설정하고 찍어야 설정스럽지 않은 것 같다. 설정 사진의 영업 전략은 설정인 게 최대한 티 나지 않아야 하는 건데. 몸에 익숙하지 않은 걸 설정하다 보면 어색할 수 밖에 없다. 설정한 ‘독서’ 영상이다. 그런데 일단 독서가 먼저였다. 주일 오후,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책을 보다 시원한 바람에 베란다로 나갔다. 홍순관의 노래처럼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 바람이다. 베란다에 부는 바람이 춤이 되어 흩날리는 것이 예뻐서 보던 책 들고 그대로 나갔다. 아, 이거 그림 된다! 싶었다. 소파에 뒹굴며 '독서' 중이던 채윤에게 사진을 찍어 달랬다. "아, 나도 독서 중이라고요~! 조금 옆으로 가서 앉아 봐. 아니, 아니 창 쪽으로..." 그렇게 설정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설정 티 많이 안 나게 잘 찍은 것 같다.

며칠 전 뉴스에서 본 '독서 설정 샷' 보고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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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단풍이 들었다.

 

인생 석양에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는 한 남자

뱃살 관리를 위해 달리러 간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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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5월을 살아보는 것처럼 한껏 누리고 있다. 

집 안팎으로 꽃잔치다.

5월 1일 결혼기념일로 시작하여, 어버이날, 스승의 날, 남편 생일까지...

탁자 위에 꽃이 떨어진 적이 없다.

일찍 시드는 꽃이 있는가 하면 모두 시들었는데 혼자 청청한 녀석도 있다.

이런 애들은 주방 창가로 옮겨져 새로운 기쁨으로 살아남는다.

 

빨래 널다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면 산딸나무의 향연이다.

비 그친 오후라 초록과 흰색의 대비가 더 뚜렷하다.

초록은 더 싱그럽고 하양은 더 하얗다. 

 

슬리퍼 끌고 달려가 호박 하나 사 올 수 있는 가게가 없다. 

길 건너에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있지만 걸어서 장을 봐 올 수는 없다.

이 구석 저 구석 동네 쑤시고 다니며 걷다 발견한 농협 마트가 있다.

장도 보고 산책도 할 요량으로 백팩에 책 한 권 달랑 넣어 매고 나간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마트에 도착하면 지고 갈 만큼의 장을 봐서 돌아온다.

등에 한 짐 지고, 대파는 손에 들고 또 발길 닿는대로 걷는다.

참새가 방앗간, 정신실이 조용한 공원을 못 지나치지.

오이, 후추통, 두부 사이 끼인 책을 꺼내 앉아 몇 줄 읽으면

바람 소리, 새소리가 방해를 한다. 

 

찬란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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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6.01 13:52 신고

    5월의 푸르름을 보며 "찬란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순간이 아직도기억나요. 20살때였지요. 해방촌이란 곳, 버스정류장!
    그후에는 찬란하다고 느낀적이 있었던가..싶습니다.
    인생은 50부터라고 누가그랬을까요.
    맞는말일까 시험해보는중입니다.
    지금부터 찬란한인생 되보려구요.

    • BlogIcon larinari 2021.06.01 21:47 신고

      네, 그리 되실 거예요. 우리 이렇게 진실하게 자신을 마주하려 애쓰는 시간을 통해 더욱 찬란한 현재를 누리게 될 거예요. 선생님, 6주간 그림 속에 오롯이 머물며 선생님 안의 찬란함을 발견하실 수 있길 바래요. 토요일마다 그쪽으로 기도를 보내고 있어요 :)

 

 

한 주에 두 개의 집단 여정이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둘 모두 취소되어...

룰루랄라!

원고 마감 주간이기도 한데,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시간 부자, 에너지 부자가 되었다.

 

 

쓰던 원고 잠시 덮고 탄천으로 나갔다. 

그새 봄이 와있었구나!

 

 

오고 가고, 가고 오는 계절의 어느 때인들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있더냐만은.

이 계절의 움트는 생명력은 독보적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일깨우는 계절이다.

 

 

발길 닫는 어느 곳에서든 마주하는 연둣빛, 너 참 오랜만이다! 싶었더니.

작년 봄이 없다. 4월까지도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 생각만 난다. 작년엔 봄이 없었다. 

이 동네엔 이질적인 여러 산책길이 공존한다.

그리 잘 다듬어지지 않은 탄천이 있고, 꽤나 잘 조성된 아파트 산책길도 있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너가면 시골길 느낌을 걸을 수도 있고, 조금 더 가면 얕은 산을 탈 수도 있다. 중요한 것! 몇 번 다니며 익숙해지자 새들의 아고라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숲 사이, 시골길 덤불 아래에 상시로 열리는 새들의 토론장이 있다. 그곳엔 늘 그 친구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휴대폰 들고 영상 촬영 해봐야 새 한 마리 제대로 담을 수 없지만. 아, 실은 이게 얘네들의 매력이다. 찰나의 만남만 허락하는 친구. 

 

 

봄의 간지럽힘을 견딜 수 없어서 저녁엔 쑥국을 끓였다. 엄마가 없는 두번 째 봄, 몸의 감각이 다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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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열리면 눈이 열리고, 눈이 열리면 귀가 열린다. 일상의 모든 일엔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있고,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한결 가벼워진다. 이미 잘 알고 있고, 늘 생각하고 있지만 열두 번째 이사로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삿짐 정리로 몸이 피곤한 것은 기본, 숨겨놓은 짐들이 죄 끌려 나오고 펼쳐지고 헤집어지는 것의 두려움도 마땅히 감당할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가벼워졌다. 마땅히 감당할 것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것을 멈추니 어차피 감당하지 못할 내 한계가 보이고, 쭈글한 내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고 자기 비하의 나락으로 떨어질 생각은 없다. 자기 연민에 빠진 불평이 줄고 '탓' 할 대상을 찾는 일도 심드렁해졌다. 탓할 대상은 결국 늘 하나님인데, 그분이 내 마음 가까이 느껴져 탓을 하기보단 "짐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바라봐 주시는 것"도 고마운 정도가 된다. 마음이 열려 여백이 조금 생기니 눈도 귀도 더 소중한 것에 열리는 것 같다. 

 

결혼 선물로 받은 액자가 있다. 당시 남편이 근무하던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하시던 장로님께서 손수 써주신 글이 담긴 액자이다. 이걸 선사해주신 장로님은 이미 천국으로 가셨고, 액자는 빛이 바래 그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정색하고 앉아 이 말씀을 묵상해 본 적이 없는데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그야말로 벽에 걸린 액자로 늘 거기 걸려 있는 말씀이 일상의 눈 맞춤으로 스며든 것일까. 아니, 가끔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 말씀을 읽어주곤 했다. 한자를 읽어주며 말씀의 뜻을 설명하기도 했다. 식탁에 앉아 아이들이 싸울 때, 맛있는 것이 없어서 투덜거리는 마음이 들 때 한 번씩 쳐다보면 마음에 새기는 말씀이었다. 이삿짐 정리하며 "식탁 위에 걸까?" 하는데 남편이 "굳이 걸어야 하나? 그냥 세워둬도 되잖아." 하며 커피장 빈 공간에 일단 세웠다. 

 

이사 다음 날,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정리하며 늦은 오후가 되었다. 주방 정리를 하는데 세워둔 액자 위로 또, 또 그림자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늘은 넘어가는 해가, 서쪽으로 스러지는 해가 주방 창틀을 가지고 하는 작품 활동.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고 말 작품이기에 멈추어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분이 보내시는 메시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멈추어 듣는다. "말씀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액자에 담긴 글이 말하는 것 너머, '창조의 책' 자연으로 말씀하시는 드넓고 신비한 그분의 존재를 느낀다. 당신, 여기 계시군요! 이 집에도 계시는군요! 아, 액자에 담긴 글도 다시 읽는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7:1) 한 번도 제대로 묵상해 본 적 없지만, 결혼 22년에 열두 번 이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오늘이 이 말씀에서 얻은 힘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얄팍한 정서적 위안이 아니라 존재 깊은 곳에서 끄덕여지는 긍정이다. 

 

잠시 머물렀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분주하게 손이 가는대로 정리하다 저녁 준비를 하러 주방에 섰다. 아, 주방 창문으로 들이닥친 일몰의 풍경이라니! 이건 뭐 환영의 인사다. 만나서 반갑다고, 같이 살게 되어 좋다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하는 진정성 담긴 인사 아니고 무엇이랴. 인사를 건네는 주체는...  모르겠다. 몰라도 괜찮다. 우주가 나서서 새 집에서의 일상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것을 충분히 느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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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2020.12.29 20:23

    비밀댓글입니다

 

 

 

 

 

이사에 관한 한 충분히 준비된 몸이다. 누군가 붙여준 별명처럼 '이사의 달인'이다. 남편은 부동산 관련 모든 업무를 꿰고 있고, 나는 미리미리 정리해야 할 짐, 바로 전날에 해야 할 일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이사는 특히 집이 안 구해져 마음 졸이던 시간이 길어서 받아야 할 스트레스도 차고 넘치도록 받았다. 정서적으론 분노도 설움도 다 지나갔으니 그저 이사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벌써 열두 번째 이사이니 덤덤할 수 있다, 덤덤해야 한다, 마음먹고 덤덤히 지냈다. 이사가 사흘 정도 남은 날, 채윤이가 "엄마, 요즘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다. "왜애? 무슨 일 없는데..." "아니, 그냥 표정이 계속 안 좋아서..." 그리고 그다음 날, 이사 이틀 전.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들지 않았다. 뭐든 딴지를 걸고 싶어 눈동자를 굴리고, 예민 지수가 쭉쭉 올라가는 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그런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나를 느낄 수 있었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남편과 산책을 하다 "나 이사 앞두고 예민한가봐. 집이 구해져서 다행이고, 여러 모로 다 잘 됐는데, 이사 준비도 당신이 알아서 착착 잘하고 걱정할 게 없는데 자꾸 예민해져." 고해성사하듯 꺼내놓아 보았다. "나도 그래. 예민해지고 불안하고 그래. "당신도 그렇다고? 아, 내일 아침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오는 시간, 그 시간을 상상하면 벌써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 이삿날 아침 그 시간,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힘들어." "나도 그래. 갑자기 군대 있을 때 훈련받던 생각이 나네.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 야외 훈련을 하거든. 아침에 신호 울리면 부대 안의 짐을 싹 다 싸는 거야... 이삿날 아침하고 비슷하지."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삿 날 아침의 스트레스는 군대 훈련 스트레스를 방불케 하는구나, 싶으니 뭔가 위로가 되었다. 

 

 

 

 

 

 

사람 마음이 참.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를 확인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불안하여 예민해지는 나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왜 그런지도 알아졌다. 이삿짐 센터 분들이 들이닥치는 순간부터 집안의 모든 것은 '이삿짐'이 된다. 그 말은 헤집어지고 풀어헤쳐진다는 뜻이다. 이삿짐을 쌓고 푸는 과정이 내 물건들이 다 까발려지는 느낌이다. 그게 그렇게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일이었다. 일하시는 분들에겐 그저 일일 뿐이지만, 내 일상의 물건들이니까. 늘 보이는 물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까지 죄 끄집어내야 하는 일이 이사니까. 내게 속한 물건이니 나의 일부, 심지어 나 자신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사의 달인, 이사 전문가가 되었어도 이사 당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이 불편함. 그저 이 불편한 하루가 어서 지나길 바라며 추운 날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성이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괜히 불안하고 괜히 예민해진 게 아니었어. 이렇듯 마음 먼저 정리되고 맞은 이삿날 아침은 괜찮았다. 일찍 일어나 영적독서, 기도 시간을 갖고 더욱 여유 있게 내려 커피도 한 잔 했다.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 앞에 서니 동쪽 산 끝자락에서 붉은 해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 어설픈 각도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그러고도 여유가 있어서 집안 여기저기 눈을 맞추는데, 오메! 아까 머리를 내민 해가 베란다 이쪽으로 한참 가까워져서는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선인장과 다육이를 가지고 신박한 그림자 그림을 그려냈다. 멋진 작별인사다. 아침마다 바로 이 자리에 서서 행복했다. 충분히 행복하여 아쉬울 것 없는데, 마지막 날까지 그냥 보내지 않고 이렇듯 선물을 준비해 쐈다. 아이구, 뭐 이런 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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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고용안정 지원금을 주겠다고, 지난번에 줬는데 또 주겠다고, 가급적 추석 전에 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태어나서 일도 안 했는데 돈을 받긴 처음이다. 아니다. 두 번째구나. 아니, 세 번짼가. 전에 살아보지 않았던 세상, 코로나 세상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첫 번째는 지난 3월이었다. 이런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올해 초, 몇 개월 앞의 강의들이 약속되어 있었다. 코로나 세상이 오고,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지면서 모든 강의 약속은 잠정적으로 취소되었다. 강의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를 논의하던 교회로부터 갑자기 강사비 입금 문자가 왔다. 이미 시간을 빼놓으셨고 강의 준비도 하셨을 테니 강사비를 드리는 게 맞다, 는 취지였다. 아이구, 아닙니다! 강의도 안 했는데요! 이런 문자를 보내고 다시 답신이 오가다 선지급된 것으로 정리되었다. 자유로운 대면 예배가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할, 하고 싶은 곳이다. 모든 강의가 취소되고, 수입원이 끊어진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돈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이렇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재난지원금을 네 식구 몫으로 받았는데,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는 용도로 썼다. 이런 걸 두고 돈이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돈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어느새 잔고가 없다는 말에 여러 장으로 나눠 받은 카드를 바꾸고, 금세 또 바꾸고. 그렇게 스쳐갔지만 고마운 지원금이었다. 특고·프리랜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뒤늦게 알고, 설마 또 주겠나 싶어 관심 없다가 마지막 날 부랴부랴 신청을 했었다. 서류는 역시 공기관 발행 서류. 어린이집 여러 곳보다 학교에서 했던 치료가 도움이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보내준 제자 뮨진의 도움이었다. 재난지원금과 달리 현금 입금이 되어 '지원' 받은 느낌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추석 얼마 전 2차 긴급 고용안전 지원금을 준다는 문자가 오더니, 추석 전에 따악! 입금이 된 것이다. 코로나 세상 아닐 때도 명절 보너스 받는 삶은 아닌데. 명절 앞두고 입금된 지원금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 불러 자유 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재난지원금을 받고 얼마 안 되어 친구들을 만났다. 지원금 얘기가 나왔다. 나는 입도 떼기 전에 대화의 흐름이 정해져서, 끝내 나는 입을 떼지 못한 대화지만.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친구 얘기에 입이 딱 달라붙었다. "야야, 나라가 돈을 주니까 받기는 하는데. 나는 걱정이야. 이렇게 세금 다 퍼 쓰다가 우리 애들 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 이렇게 선심 쓰다가 나중은 어쩌려고 그러지?" 했다. 이쯤에서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끼어들질 못했다. "그래도 좋긴 좋더라. 공돈 들어와서 뭘 할까 하다가, 이번에 그걸로 선글라스 바꿨어. 애들도 같이" 여기서도 한 번 틈을 봤는데 바로 이어지는 "핫핫핫핫...." 하는 웃음소리에 포기하고 말았다. 상당히 구차하게 느껴지는 내 얘기를 먼저 해야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는 게 어떠냐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생각도 나고. 핫핫핫핫, 초긍정 웃음소리에 묻혀 같이 웃고 말았다.  

 

집주인에게 정색하고 다시 물어 확인했다. 정말 주인의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게 맞냐. 그게 아니라 임대차3법 피해서 전세금 올리려는 거라면, 원하는 만큼 올려주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담판 지을 생각이었는데. 주인이 들어오겠단다. 집을 알아보는데 이 동네, 저 동네 전세라곤 없다. 이유는 거의 한 가지! 주인이 들어온다. 핫핫핫핫.... 이럴 때 웃어야지. 있지도 않은 전셋집인데 전세가 상승은 말로 할 수가 없다. 1억이 웬 말이냐! 1억 5천이 웬 말이냐! 이런 우리 형편을 듣는 주변 분들이(주변 분들이 전세 사는 분이 없다ㅠㅠ) 우리보다 더 화를 낸다. 전셋값 잡는다더니 탁상공론으로 전세 사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정부를 향해 욕을 욕을 해대는데. 듣고 있자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법망을 피해 "주인이 들어간다"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세를 올리는 사람들은 집주인인데. 보아하니 향후 몇 달 전세도 놓지 않고, 주인이 들어오지도 않아 빈집이 허다할 텐데. 그 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몇 천씩 대출을 받고도 들어갈 집을 못 구해 전전긍긍일 텐데 말이다. 2년 만에 전셋값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 4년 후 올릴 때도 상한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탁상공론이 된 것은 집으로 돈 버는 사람들 '욕망'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그 정도로 법 만들면 세입자들 보호가 된다고 여긴 것은 집주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탁상공론 아닌가. '법 사이로 막 가는' 부동산 놀이에 하루 이틀 단련된 분들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 가족이 어디 아프면, 아픈 몸이 걱정이 아니라 병원비 걱정으로 마음이 내려앉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사는 세상도 있다. 잘은 모르겠다. 2년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집이 1억 씩 벌어주는 세상? 핫핫핫핫...... 언젠가 우리 모두 돌아갈 나라가 있다. 몸의 한계를 벗어나 그분과 함께, 그분처럼 살아갈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을 여기서 미리 사는 것이 내 꿈이다. 강의도 안 했는데 들어온 강사비, 일도 안 했는데 들어온 생계 지원비와 명절 전 입금된 현금 50만 원. 이런 일들은 언젠가 돌아갈 그 나라가 있음을 믿으라는 표식처럼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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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저도전세 2020.10.11 23:38

    저는 집주인 따님이 들어온대서 다른집을 구하고 말씀드리니 딸이 못들어오게 되었다고 다른임차인 구한다고 다른 임차인들 집보러 보내고 있네요.핫핫핫

 

 

 

 

❝아들이 결혼했는데 들어와 살아야 해서요.❞

 

전세가가 급격히 오르는 중에 계약이 끝나면 집주인들은 그렇게 말하더라.

물론 2년에 한 번씩 바뀌는 집주인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다.

처음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같은 상황에서 반복해서 듣다 보니 절로 깨우쳐졌다.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새로운 세입자 찾아 전세금 바짝 올릴 때가 됐으니, 나가 주세요.❞

 

상상력이 부족하다.

굳이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지도 모른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을 뿐이겠지, 내남이 다 아는 이유이니까.

뻔한 거짓말이라도 내미는 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인 것인가.

 

❝부모님이 들어와 사시기로 하셨어요. 집을 좀 비워주셔야겠어요.❞

 

어제 집주인에게 들은 아주 진부하고 신선한 이유다.

주인의 아들이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주인의 부모님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2년 전, 이사를 준비하며 아주 운 좋게 신축 아파트를 얻었다.

평생 꿈꾸던 산 앞의 집이며, 심지어 거의 산 위의 집이기도 하다.

겨울에 이사와 첫 만남은 모노톤이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연보라, 핑크, 노랑, 연두, 초록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운 놀라움이었다.

신축 아파트 전세는 2년 후에 오른다, 장난 아니게 오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올랐다는 소문과 함께 전세 2년 차 봄을 맞았다.

얼마 전에 베란다 앞에 서서 기도했다.

지는 해가 남기는 빛의 꼬리가 이렇게 저렇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 집이 많이 올랐다는데요. 올봄에 엄마 데려가셔서 제가 눈이 멀었었잖아요.
캄캄해서 아무 것도 안보였어요.

노랑연두, 그 아름다운 그러데이션을 못 봤어요.

작년엔 너무 흥분해서 차분히 머물러 즐기질 못했잖아요.

내년 봄에 한 번 더 누릴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의 응답이 왔다! 왔다?

남편이 뉴스를 물어왔다.

임대차 3 법이 발의될 것인데, 통과되면 우리 해결이다.

2년 계약 연장할 수 있고, 연장 시에 전세금을 5% 이상 올릴 수 없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엄마 없는 애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구나.......

 

이 뉴스가 좀 더 대대적으로 나온 어제, 참 좋았다.

오랜만에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고 남한강변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 절묘한 순간에 주인에게서 온 문자다.

"부모님이 들어오셔야 하니 집을 비워줘야겠다."

아직 계약 기간도 꽤 남았는데 이런 조급한 문자라니!

 

아, 주인도 뉴스를 보는구나!

2년에 한 번씩 그러하듯, 다시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탐욕의 신에게 얻어맞는 느낌이다.
얻어맞는다. 정말 억울하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다.

어떤 부동산 전문가가, 어느 제도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욕망과 탐욕은 그 틈새를 비집을 텐데.

법망을 뚫는 고도의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고, 공유할 테고.

세입자를 따돌리는 데는 최소한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되는 일이고.

 

부동산으로 돈 벌었네, 기뻐하는 분들이 알까.

대출 상한선을 스스로 깨고, 2년 만에 또 깨서 마련한 전세 대출금들의 처절함을.

그 코 묻은 돈, 아니 피 묻은 돈들이 흘러들어 두둑해진 주머니가 차라리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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