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그린 새와 새, 올 봄 나의 내게 어린 시절 여행과 함께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 군산 이미지의 카드이다.

 
스승의 날을 기억하고 챙기는 간절한 감사의 마음을 안다. 선물이든 메시지든 말 한 마디든, 표현하지 못한 마음 가득 안고 지내는 시간이든… 일 년이 금방 다시 돌아와 “올해는 무슨 선물을 하지?” 하는 고민조차도 스승님에 대한 곡진한 감사이다. 챙기는 마음은 편하고 행복한데, 챙김 받는 일은 조금 무겁다. 예수님께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셨으니 더욱 그렇다.

그것은 안다. 누군가를 존경하거나 선망하는 그 마음은 이미 자기 것이라는 걸. 그분들 안에 있는 것을 비추어 드리는 것이라면 기꺼이 감당할 만한 일이다. 다만 그것이 투사라 하여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고, 가벼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받는 만큼의 무거움을 잊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감사한 선생님들을 떠올리고, 감사의 마음을 받으며 존 헨리 뉴먼의 기도를 떠올리고 간절하게 드린다.
 
“진리의 빛을 구하는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제가 가는 곳마다 당신 향기를 퍼뜨리도록 도와주소서.
제 영혼에 당신 영과 생명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저의 삶 전부가 오직 당신의 찬란한 빛이 되도록 저의 온 존재에 속속들이 스며드소서.
저를 통해 빛을 비추시고 저를 만나는 이들은 누구나 제 영혼 안에서 당신 현존을 느끼도록 제 안에 머무소서.
오, 주님, 그들이 눈을 들어 볼 때 더 이상 제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만을 보게 하소서.
저와 함께 머무시면 저는 당신처럼 환해지리다.
주님, 그 빛은 오로지 당신한테서 나오며
제 빛은 조금도 없나이다.
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빛을 주시는 분은 당신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둘러싼 이들에게 빛을 비추심으로써
가장 큰 사랑을 주시는 것처럼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설교하지 않고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모범으로,
전염시키는 힘으로,
제가 하는 일에 공감하는 영향력으로,
당신을 향한 제 사랑의 명백한 충만함으로
당신을 보여주게 하소서. 아멘.

카내이션이 두 송이라 잘못 넣었나 싶었는데, 하나는 소장님, 또 하나는 온라인 예배 드리며 감사했던 목사님 것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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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잠시 성북천을 걸었다. 길 오른쪽에는 심긴 꽃들이, 왼쪽에는 자라난 꽃들이 피어있다. 산책길을 화려하게 하며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개종된 품종의 작은 장미이지만 나는 왼쪽이다. 오늘은 이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할 수 있었다. 콩다닥냉이. 어쩌면 이렇게 이름도 귀여운 것이냐. 길에서 꽃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모든 들꽃과 눈을 맞출 수 있다. 꽃마리는 들꽃 중에 아주 작은 들꽃이기 때문이다.

내게 꽃마리를 발견하는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은 '꽃마리'이다. 꽃마리라는 별칭을 쓰는 나음터 벗 순연 샘이다. 어느 날 홀연히 내적 여정에 나타나 꾸미지 않고 자기를 보여주더니, 글쓰기 여정을 두 번 반복해서 듣더니, 꿈여정까지 깊이 들어왔다. 평생 "그러니까 너도 써라,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를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은 쓴다. 어떤 사람만 쓴다. 꽃마리는 쓰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멈추지 않고 손에 모터를 단 듯 써 내려가는 글은 길이 되었다. 꿈을 꾸고, 꿈을 적고, 꿈을 나누고, 다시 글을 쓰고... 기도하고, 향심기도 하고... 기도로 깨달은 바를 실행하고... 그렇게 글이 낸 길을 따라가다 아버지를 만나 화해하고, 화해한 상태로 천국에 보내드린 꽃마리의 시간이 내겐 잊을 수 없는 카이로스이다. 
 

옛날 집 개조한 카페 작은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와 함께 나온 게 쿠키도 아니고 떡도 아니고 딸기였다! 이런 조합이라니! 커피와 딸기, 뭔가 순연샘스러운 느낌 같기도 하고.

 

이번 텀 꿈여정 끝나면 데이트 신청을 하려 했다는 말에 반가웠다. 글이 낸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옳고 그른 행동은 없다. 직장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행동일 수도, 그만두는 행동일 수도 있다. 꽃마리가 여차저차 교회를 옮겼다는데, 가만 들어보니 내가 아는 교회이다. "커피, 에니어그램, 향심기도, 이 모든 것을 일상 안에서!" 내가 교회를 한다면 이런 게 어우러질 텐데, 바로 그런 교회였다. 물론 나는 교회를 할 수도 없고, 이런 교회를 꿈꾸지도 않는다. 다만, 있다면 반갑고, 이런 교회 하나 쯤은 있어야지 생각한다. 남편 안식월 찬스를 쓰는 중이니, 어느 교회나 갈 수 있다. 주일에 꽃마리와 만나 데이트를 하고 데이트의 끝은 예배로 하기로 정했다. 
 
교회 옮긴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리(순연 샘이 꽃마리일 때 나는 나리이다.) 를 통해 여성적 리더십을 경험한 이후에 설교나 교회의 어떤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라고 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말이다. <신앙 사춘기> 출간이 남긴 책무감 비슷한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단지 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를 혐오하고, 하나님께 대들자는 선동이 아니었는데. 글이 그렇게 소비되는 면이 있었다. 사춘기는 필요하다, 사춘기를 통과하며 어른이 된다, 신앙 여정에서 열정이 식을 때도 있고 삐뚤어지는 마음이 될 때도 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때 삐딱함은 믿음 없음도 아니고... 무엇보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교회를 비판하고 목회자를 혐오하며 평생 신앙 사춘기로 살기로 작정한 이들에게 괜한 무기를 공급한 것은 아닌지 싶을 때가 있다. 
 
꽃마리와 함께 예배 드리며 "여기는 꽃마리를 위한 교회구나!" 싶었다. 안심이 되었다. 단지 교회가 꽃마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 같아서가 아니다. 꽃마리의 마음에 이미 어떤 교회가 잘 세워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 교회가 추구하는 영성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고 알아듣는 사람이 꽃마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만 알까? 꽃마리 자신이 알아야 하는데... 자신이 걸어온 길, 여태껏 해왔던 선택들이 선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아름답다는 것을 믿어줘야 하는데... 또 한 번의 자기 다운 삶을 위해 떠나고 안착할 8월의 꽃마리를 응원하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  

 
예배 중 여러 번 떼제 찬양을 불렀다. 떼제 찬양 좋아하는데, 마지막에 부른 찬송가 221장에 받은 은혜가 크다. 구절구절이 마음에 박혀 눈물이 났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하나님 보좌 앞 다 기도 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 안에 하나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동락 하면서 참 사랑 나누네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 안에 교제하면서 또다시 만나리

 

꽃마리와 함께 보낸 주일 한 나절의 식사와 커피, 예배가 천국의 교제 같은 참 좋은 친교였다. 믿음과 소망, 교회와 공동체가 일치하는 '하나'인 시간이었다. 체험의 교회였다. 반짝 빛나는 체험의 교회가 우리 사이에 세워졌었다. 마지막 절을 부르는데 더욱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이별은 참 슬프지. 오늘 우리가 체험한 이 교회는 다시 카피할 수는 없지. 각자의 교회를 잘 살기를. 교회가 내게 주는 것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그분께서 주시는 힘으로 때로 교회보다 큰 존재로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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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 영애 부부에게 초대를 받았다. 일본 가정식 식당에서나 먹어볼 것 같은 카이센동을 해주었다. 카이센동은 비싸서 못 사 먹는 것이지,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메뉴인가. 영애 신랑 일혁은 타고난 요리사이다.  일혁이 만들어준 것이다. JP가 맛있는 것 먹을 때 내는 영혼의 소리 "어... 어... 밥이 자꾸 줄어..."인데, 그 말을 왜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으로 아껴서 음미하며 맛있게 먹었다. 영애네 집은 일본 가정식 식당이었다.
 

그리고는 즉석 사인회가 열렸다. 영애가 엄마 김명순 권사님께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선사해 드리면서 권사님이 나누고 싶은 분들 몫까지 일곱 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곱 분 모두 젊은 시절 교회의 추억과 함께 얼굴이 떠오르는 분이었다. 최근에 겪으신 교회 갈등으로 상하셨을 마음이 떠올라 몇 글자 끄적이는데 마음에 울컥울컥 했다. 사인회장은 또 갑자기 ‘인생 네 컷’ 사진관으로 변신했다. 동윤아빠 일혁이 전문가 카메라를 들고 나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이 집 거실 배경이 바로 포토존이어서 찍는 대로 화보가 되었다. 일본 가정식 식당이 사인회장이 되었고, 사인회장은 또 바로 사진관이 되었다.

 
맛있고 고맙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뭉클한 시간이었다.
 

은준이네 가족이 함께 초대되었는데, 목사님의 안식월 동안 시간이 너무 안 간다던 은준 엄빠이다. 같이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렜는데... 우리가 현관에 들어서자 은준 은재 동윤 세 아이가 환호를 지르며 뛰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세 녀석이 다짜고짜 품에 안긴다. 눈물이 났다. 초딩 형아가 되었다고 시크해진 은준이까지 헤어질 때도 자꾸 다가와 안겼다. 아이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애정이 영혼 깊은 곳에 위로로 다가왔다. 
 
스승의 날을 지나치는 법이 없는 영애가 겸사겸사 만든 저녁식사 자리이다. 스승의 날 기념, 저자 사인회, 안식월 끝자락을 보내는 목사의 주일 저녁 식사 초대. 맥락이 닿지 않는 것들의 조합인데,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끄덕끄덕이다. 사랑둥이 일곱을 갑자기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식당, 사인회장, 사진관으로 장면 바꾸기를 연출하신 분이 그분이라고 한다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알아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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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의 하늘이다.
어디나 하늘이 있다.
뉴질랜드의 하늘은 드넓고 맑은 하늘이다.

 어느 아침, 아무렇게나 서서 아무 얘기 수다 중이었는데
뒤쪽에서 꼬부랑꼬부랑하는 천국의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여기 좀 보세요, 제 꽃에 벌레가 앉았어요.

 정말 하늘나라의 강림이었다. 난입이었다.

 등을 보이고 있는 이국 아줌마에게,
맨발로 다가오는 하늘나라였다.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인 그분의 발걸음은
사뿐사뿐, 말랑말랑하다.
사뿐사뿐 말랑말랑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파하러 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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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처음 분당으로 이사 왔을 때 "서울 간다" "서울 갔다 왔더니 피곤하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충청도나 경상도도 아니고 바로 옆이 서울인데, 굳이 "서울 간다"고들 하시네. 서울 어디냐에 따라 서울에서 서울 가는 거리보다 여기서 서울 가는 거리가 더 가깝기도 한데,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분당을 거점으로 하여 2년에 한 번씩 분당으로부터 멀어지는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계속 분당이 거점이라면 몇 년 후에는 평택이다...) "아, 서울 가는 게 이런 거구나!"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멀구나... 서울이... 일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일이 아니어도 한 번씩 만나고픈 사람이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 서울은 가야 할 곳이다. 이래저래 적응하고 보니, 광역버스 권으로 최적의 장소가 있다. 최적의 장소에 최적의 카페가 있고, 인근이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이다. 서울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거의 오직 한 카페에 간다. 아주 딱이다.
 
사람
노안이 와서 눈이 침침해져 돋보기를 쓴지 벌써 몇 년이다. 가까운 것이 보이지 않는 눈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멀리 보라!"는 그분의 메시지라 받아들이고 가까운 것을 흐릿하게 보며 살려고 한다. 눈과 귀가 밝은 태생이라 뭐든 참 잘 들리고 잘 보이고, 빠르게 판단이 되는데. 이게 걸림돌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까운 것들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고, 바로 어제 일이 생각나지 않아서 부끄러울 때가 있지만 받아들이며 살려고 한다. 멀리 보는 눈으로 이생의 끝에서,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만날 하나님 나라를 더욱 가까이 살 때가 된 것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려는 노력 대신 보이는 만큼만 보려고 한다. 사람 마음에 민감한 태생이지만 보이지 않는 동기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힘을 빼고, 빼고 또 빼려고 한다. 누구보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러려고 한다.
 
장소
서울만 가면, 서울에서 만날 사람이 있으면 늘 가는 카페 근처의 새로운 카페를 발견했다. 늘 가던 곳은 지하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딱 마음에 드는 곳이다. 지하를 좋아하지 않아서 막히더라도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는 편인데, 늘 가던 카페가 지하라서 별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편의 때문이었다. 나의 편의도 있지만, 만나는 분들의 편의가 더 많이 고려된 것이기도 하다. 만나러 어디든 오겠다는 분들을 멀리까지 오게 할 수 없어서 내가 움직여야 하는데, 너무 힘들지 않게 다다를 수 있는 최적의 서울이었다. 마침 여러 조건들이 좋았지만, 지하 카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네. 약속 장소를 정하는데 "거기는 커피가 맛있어서 좋고, 전망이랑 분위기는 건너편의 **도 좋아요."라는 톡을 보았다. "아, 전망과 분위기를 고려할 수도 있겠구나!" 대단한 깨달음도 아닌 깨달음이 왔다. 그래서 아주 편의도, 전망도, 분위기도 만족시키는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되었다.
 
기도
가까이 있는 이들을 흐릿한 눈으로 보는 게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타고난 에로스 에너지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눈과 귀와 마음이 무한으로 열린다. 말하자면 잔소리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남편, 아이들에게 나는 잔소리쟁이이며 간섭쟁이이다. 나는 이제 이 열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일을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이런 나를 좋아한다. 하지만 좀 분산시키는 것도 좋지. 그 누구라도 오늘 지금 새롭게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닌데, 심지어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도 열정이 향하는 사람이 있다. 500년도 전에 살았던 아빌라의 데레사가 내겐 그러하고, 많은 저자들이 그러하다. 때로 그립고 그립고 그리운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내게 '기도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다. 내 이 넘치는 마음의 에너지가 닿고 싶은 곳은 그분의 마음이다. 그분이다.
 
기도가 맺어준 먼 동네 새 친구를 만나
새로운 카페를 알게 되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앉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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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제보 사진 두 장을 받았다. ♡♡♡♡

카톡창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목사님 깨끗한 곳에서 말씀 전하시라고 아이들이 열심히 청소했지요~~^^"

 

토요일에 교회에 난입한 천국의 청소 봉사자들.....

강대상 상판 아래를 누가 알아보고 닦겠냐고!

누가 저렇게 신나서 춤추듯 청소를 하겠냐고!

저 키, 저 눈, 저 마음이 아니면...

 

나도 저 마음으로 예배하러 간다.

 

"나는 이미 오랫동안 너희 곁에 있다. 그런데도 나를 아직 보지 못했느냐?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이런 비난이 실려 있다-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눈으로 예수를 보지 않는 한 그분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본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분을 바라볼 때에 위대함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명예욕에 찬 온갖 상상들을 동원하는 일을 포기함을 뜻한다. 그런데 이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는다면 전혀 불가능하다. 어린이의 눈길은 다름이 아니라 근본적인 한 삶의 자세의 표현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렇다. 오직 "어린이"만이 하느님의 아들을 볼 수 있다.  Heinrich Spaemann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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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고 교회 다니는 거 아니라는데, 나는 백퍼 사람 보고 교회 다니는 편이더라. 그런 줄 몰랐는데... 정말 그렇더라.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왜 이리 예배당이 갑갑한가, 환기가 안 되나,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숨이 좀 막히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 애기들,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이들 보러 교회 다니는구나! 깨달았다. 아이들은 생명이다. 아무것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생명을 불러일으킨다. 그 앞에 선 사람의 선함을 끌어낸다. "절대 부드러워지지 않을 거야! 어디 나를 감동시켜 보시지!" 힘을 꽉 주고 있던 사람도 방긋 웃는 아기 앞에서 "하이고~오....!" 숨겨둔 선함을 내뱉고 만다. 예수님께서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이유가 있었다.
 
작년에 교회에서 "인생의 빛 학교"라는 이름으로 생애 주기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번외 편으로 "육아(育我)하는 조부모" 라는 이름의 세미나를 했다. 젊은 부부 육아 세미나를 지켜보시던 장로님 한 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육아 세미나도 필요하다는 피력을 하셨다. 현직 손주를 돌보는 할아버지신데, 나... 여기까지만 쓰고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가 "1초에 표정이 다섯 번 바뀌는 아기"라고 부르고 있는 아기는 에너지가 콸콸콸이다. 그 손주를 돌보시는 장로님은 내향적인 편에 약간은 샤이하신 느낌인데. 그 활달한 손주를 보시면 당황스러우실 할아버지를 상상하면 벌써 재밌다. 이건 채윤이가 먼저 캐치한 즐거운 상상이다.
 
강의 한 번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싶으면서도 기쁘게 자리를 마련했다. 강의만으로는 얻어지는 것도, 큰 의미도 없을 것 같아서 그다음 순서를 마련했다. 강의 후에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부부 커플들을 패널로 내세워 질의 응답 형식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나름의 목표는 이랬다.
 
- 에릭 에릭슨으로 보는 아이의 발달단계 이해
- 발달의 연속선상 안에서 아이들과 나(할머니 할아버지인 '나')를 성찰하기
- 조부모와 부모 세대 간 "육아의 기쁨과 어려움" 나누기
 
수강자보다는 강의하는 나를 위해 강의 목표를 분명하게 하려는 편이다. 꼭 도달하려는 목표는 아니다. 이런 시간에 함께 했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의미이다. 실제로 오간 이야기는 대단한 내용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가 아이를 놓고 무슨 얘기는 주고받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생명이니까. 생명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생명을 키우는 일의 기쁨과 부담과 괴로움을 내어놓는다는 것. 
 
무엇보다 "세대 간"에! 요즘 교회를 다시 생각한다. 다른 세대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심지어 신앙의 컬러도 다른 이들이 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교회의 아름다움 아닌가. 달라서 배제하고, 달라서 편을 가르는 세상 속에서 다른데....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공간 안에서 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차라리 신비라고 말하고 싶다. 성향에 딱 맞는 사람들과 정치적인 입장, 신앙적 좌표, 영성의 색깔을 마음껏 드러내고 공감을 주고받으며 교회 생활하면 어떨까? 행복할까?
 
여러 교회를 두루 다니며 강의하고 가끔 설교도 해보는 영광을 누리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젊은 날 언젠가 대표기도로 정치 선동 하시는 장로님으로 인해 예배 중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교회 깃발을 만들어 들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걸 두고 부러웠던 적도 있었고. 젊은(아, 나는 이제 젊지 않다) 사람들이 많아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의 교회를 그려보기도 하고... 요즘 교회를 다시 생각한다. 균질 집단이 아니어도, 아니어서 좋은 곳이 교회구나! 복음이 원래 그런 것이었지. 여성과 남성, 이방인과 유대인, 종과 주인이 함께 할 수 있는 기적의 공간이 교회였지. 
 
교회 안 "세대 간"의 연결에 의미와 가치를 듬뿍 부여하고 싶다. 성탄절 전날이었던 24일 주일에는 유아 세례식이 있었다. 세례받는 아기를 너무나 예뻐하고 사랑하시는 집사님 부부가 아이 부모 뒤에 기도 후원자로 나란히 서셨다. "기도 할머니, 기도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고 아름답다. 혈육이 아니라 기도와 사랑으로 맺어진 조부모와 손주라니! 이 얼마나 복음적인 호칭인가. 
 
교회를 생각한다.
제도의 교회가 아니라 체험의 교회를.
생각 속 교회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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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하는 하나님 나라였다. 아기 태양이 유아세례식을 시작하며 목사 JP가 태양이를 안고 예배당을 한 바퀴 돌았다. 태양이가 움직이는 곳마다 천국의 마법이 뿌려진다. "하아......" 탄성과 함께 무장해제 된 교유들의 표정은 하나님 나라였다. 이름 그대로 구름 뚫고 나온 '태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경건할 수 없는 엄마 아빠의 서약 시간에... 태양이는 청중을 향해서 천국을 발사하며 주의를 흩트렸다.. 천국에 취한 교우들의 귀에 서약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몸으로, 저렇게 뚱한 표정으로, 수십 명 사람들의 영혼을 일순간 말랑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천국은, 이런 곳일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설교가 클라이맥스로 가는 순간이었다. "압빠~!" 하는 소리와 함께 다다다다, 작고 빠른 발소리가 예배당 뒤편에서 들렸다. 그 뒤로 조용하고 급한 무거운 발소리, 쿵쿵쿵쿵.... 그리고 "압빠....아... 압..." 뭔가 빠른 진압의 느낌. 태양이 비치고 우주가 임하여 하늘나라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태양이 형인 '우주'. 유치부(실은 영아) 예배실에서 탈출하여 나온 태양이 형 우주가 엄빠가 있는 예배실로 직진한 것이다. 다다다다, 빠르고 가벼운 이 걸음을 담임 선생님 장로님 (!) 쿵쿵쿵쿵... 체포 완료! 앞을 보고 설교를 듣고 있는데, 예배당 뒤편이 보이는 게... 이게 내 초능력이다. 장난끼 가득한 우주의 얼굴, 웃는 입이 제 엄마랑 꼭 닮아서 더 귀여운 우주를 따라 들어오신 가만한 장로님의 당황하신 얼굴이 보이니 말이다. (장로님은 평소 말씀도 없으시고, 표정 변화는 잘 모르겠는데... 우주만 보면 어린아이 얼굴을 감추지 못하심. 난 사실 그런 장로님 표정이 우주의 장난기 얼굴만큼 좋음.)

 

마침 이 날 설교는 "아비새의 분노"라는 제목으로 "나는 옳다, 나만 옳다"는 어른의 분노 이야기였다. 아침 아홉 시부터 6시까지 일한 품꾼의 분노였다. 탕자 아닌 탕자 형의 억울한 분노였다. 올바르게 살아온 모범생의 분노, 또는 냉소라는 이름의 차가운 분노였다. "기꺼이 영향 받는 말랑한 마음"의 반대, 어떤 일에도 감동하지 않는 마음,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는, 결코 변하지 않겠다는 심장이었다. 잘못한 사람은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대쪽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잘했으니 응분의 상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로운 잣대'로  포장된 특권의식이었다. 태양 빛이, 천국의 빛이 새어들 '틈'이 없는 빽빽한 마음이었다. 경이 대신 당위로 가득한 마음이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분의 나라를 거절하고 내쫓는 마음이다. 

 

아이들을 그냥 두어라. 
나한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나님 나라는 이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눅 18:16)

 

'걸어 다니는 하나님 나라', 아이들이 있는 교회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말랑한 마음과 딱딱한 마음이 함께 하는 곳이니 교회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얼마나 어려운 곳인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 바리새인 같은 마음이 공존하는 내 마음은 얼마나 어려운가. 얼마나 신비로운가. 태양이 비치고 우주가 몰려온 이 예배, 그 순간 임한 하나님 나라를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경이를 이긴 당위가 기승을 부리며 "마땅히 이래야지, 모름지기 이래야지..." 딱딱해진 마음이 될 때, 내 마음 지옥이 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볼 하나님 나라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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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른 크기, 
다른 모양의 감이 
아무렇지 않게 담긴 종이봉투.
참으로 정겨운 과일 종합 선물 세트.
 
포장지 반, 과일 반에
예쁜데 똑같이 예뻐서
여러 종류인데 한 종류처럼 보이는
비싼 과일 바구니가
넘볼 수 없는 품격의 과일 종합 선물 세트!
 
좋더라고… 따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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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꿈과 영성생활> 집단 여정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내게 교회란?" 질문을 가져온 분의 답은 "엄마 아빠를 대신한 곳, 엄마 아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준 곳"이라고 했다. 교회 아닌 어디에서도 주목받거나 칭찬받지 못했는데 칭찬받고 사랑받았던 곳이라고. 비슷한 답을 하는 분들이 있었고, 내게도 교회는 그런 곳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을 보낸 교회에 다녀왔다. JP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은 곳이다. 두루두루 큰 사랑을 받았고 열정을 다해 사랑했던, 그러다 깊이 절망하고 상처를 안고 떠나온 곳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늘 예측불가, 설명불가라... 좀 놀라운데 그냥 "다녀왔다"라고 쓰겠다. 모님이 강의하러 오신다고 다른 교회 다니고 있는 부러 수련회에 참석해 준 친구들이 큰 격려가 되었다. 

 

그 시절, 사랑을 많이 주셨던 권사님들 뵈어서 울컥했다. 사랑받았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권사님 아이들을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내 나이 스물 여섯 청년 시절에 만났으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스물여섯 청년이었던 나를 예뻐하시더니 권사님들을 이제 곧 스물여섯이 될 채윤이도 알고 기억한다. 제 나름의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돌아보면 교회를 확신하는 시절이었다. 확신의 근거는 사랑받고 사랑했던 사랑의 유통이었고. 한때 받은 사랑이 몸에 축척되어 있어서 교회를 확신할 수 없던 메마른 날에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확신'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어야 하는 건가. 확신 없는 날을 견디게 한 것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이라면, 확신도 사랑이고, 확신 없음도 사랑인가?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영상이 있다. 6월에 찍고 8월에 방송에 나왔는데, 어쩌다 "교회의 딸"이란 캐릭터를 잡았다. 태어나보니 교회의 딸. 교회에 대한 확신은(사랑은)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였나. 나는 교회의 딸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인가? 오글거려서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영상을 뒤늦게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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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고추와 안 매운 고추 구별법.

고춧잎이 든 쪽이 매운 고추.

 

어느 집사님의 에니어그램 번호 구별을 위해 작두 좀 타 드리고 받은 복채다.

고추도 좋지만 집사님 어머님의 매운 고추 구별법이 사랑스러워서 값지다.

 

고추 정말 좋아해서...

잎이 없는 쪽의 안 매운 고추를 맨입에 여러 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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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교회 목사님께~~
저는 이 동네에 사는 기독교인입니다.

혹시 주일을 위해 준비하시는 것 같아
커피 2잔을 동반했습니다.
드시고, 하나님 축복받으세요.
감사드립니다...

 

토요일 오후에 교회 단톡방에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교회 청소하러 가신 집사님께서 발견하고 찍어서 올리신 것이다. 동네 교회 알지 못하는 목사에게 전하는 커피 두 잔이라니. 커피를 사고, 캐리어에 메모를 남기는 정성, 엘리베이터 타고 4층까지 올라와 가만히 커피를 두고 가는 마음이라니. 집에서 설교 준비를 하던 남편이 '존중'에 대해 고민하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이 시대 부끄러운 이름 목사. 수치당하기 딱 좋은, 수치를 당해도 싼 이름이 목사이다. 기꺼이 수치당하고자 하는, 그 부끄러운 이름을 사는 동네 목사에게도 가끔 '존중받는 느낌'이 필요하다. 예기치 않은 어떤 정성이 그 느낌을 배달해 버렸네!

 

(이 동네 사시는 어느 기독교인 자매-또는 형제-님, 하나님 축복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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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전 세 시간 줌 강의, JP는 그 시간에 결혼식, 그리고 저녁에는 둘이 함께 장례예배. 이런 일정 사이에 끼인 토요일 오후였다. 빡빡한 일정 속에 오아시스 같은 짧은 만남이었는데... 두리와 영주를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하면, 전에 만났을 때는 없던 생명체들이 생겨 인격의 모양을 또렷하게 드러내게 된 세월이다. 두리와 영주는 학부모가 되었고. 현승이를 '내복 왕자'로 기억하는 누나들이 그때 현승이 만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니 흘러버린 이 세월이란. 명일동 빠바 이층에 앉아 소개팅과 결혼을 논하며 막막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자니, 거대한 세월의 몸집과 존재감이다.

 

우리 교회에서 보기로 했는데. 강의 마치고 이동하는 짧은 순간, 머리에서 불이 날 정도의 회전이었다. 간식으로 뭘 준비하면 아이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그 짧은 시간에 말이다. 진심 거의 기도하면서 움직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무엇인가를 만나기를! 빵을 사러 갔는데 뽀로로 쿠기가 있는 것 아닌가. 진짜 쾌재를 불렀다. 됐어, 됐어! 뽀로로는 대통령이니까! 처음 보는 늙은 이모로서 인기는 이미 따놓은 거야. 뽀로로니까!.... ㅜㅜ 혼자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족한 걸로. 아이들에게는 심드렁~그.냥.쿠.키...였다. 유아실의 자동차와 장난감의 인기에 지고 말았다. 괜찮아. 상상 속에서 행복했잖아... 

 

그 짧은 시간 많은 주제를 건드려봤다. 학부모 고충, 아이들 성격 이야기, 일하며 육아하는 이야기, 신앙 생활화 공동체 이야기... 영주가 꼭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 요즘 꾸는 꿈 얘기를 했고. 그 끝에 "모님, 제가 결혼하기 전에 모님과 꿈으로 얘기할 때요. 제가 정말 불안해했었잖아요. 그때 모님이 안심하라고, 안심하고 결혼하고 문제가 생기면 모님이 평생 AS 해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확신을 어떻게 가지셨어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랬던 것도 같다. 아무리 그래도 평생 AS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게... 그 확신이 어디서 왔을까?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고 내내 그 질문이 맴돈다. 아마도 그것은 영주에 대한 확신이었다. 영주 안에 있는 힘, 행복하고자 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힘에 대한 확신이었으며, 영주 안에서 영주를 돕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었을 것이다. (물론 예비 신랑을 이미 보았기에 근거가 충분한 확신이기도 하고!) 그 확신 틀리지 않아서 모님의 AS 필요 없이 잘 살고 있으니 할렐루야 아멘이다.  가정을 일구어 잘 살아내는 것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두리도 영주도 잘하고 있었다. 잠시 만나봐도, 딱 봐도 알 수 있는 무엇이 있다. 
 
두리와 영주의 젊은 날에 함께 했던 시간이 영광이란 생각이 든다. 모님, 모님 하면서 나를 그냥 따르고 좋아해 줬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만나줬던 아이들(이 아니고 지금은 어른)이 참 고맙다. "평생 AS!"를 거침없이 남발할 만큼 내게 확신을 줬던 아이들(아니고 아이들의 엄마), 그만큼 나를 믿어 주었던 이들이 참 고맙다. 인생 그럭저럭 기쁘게 살아갈 원동력이 사랑과 신뢰라면, 그 원동력을 빼앗기고 소진되는 곳이 있다면, 빼앗긴 양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양의 사랑과 신뢰 덕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이 가고 늙어가는 내가 다시 이렇게 좋다. 내가 확신했던 '너'들이 단단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 참 고마운 '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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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이가 논문을 보내왔다. '우수 논문상'을 받은 논문이다.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는데 놀랍지가 않다. 당연히, 예은이가 논문을 썼는데 그 정도 상은 졸업장 받는 일과 다르지 않지! 논문 표지를 보니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잊고 싶은 부끄러움, 내 논문 생각이 난다. 예은이가 내 후배로 졸업을 한 것이다. 벌써 후배가 되었지만, 예은이의 입학이 썩 기쁘지가 않았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바로 팬데믹으로 멈춘 음악치료를 영영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치료를 접으니 20년 넘게 밥줄이었던 악기들이 처분 대상이 되었다. 당근이든 어디든 팔고자 하면 팔 수 있겠으나, 마음과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생각나는 후배가 있었고, 어쩌면 예은이에게 그대로 다 물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예은이 입학이 기쁘지 않았던 이유로 덥석 주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예은이를 만난 게 내 나이 스물여섯, 예은이는 아마 다서 여섯 살이었을 것이다.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또 나를 어찌나 잘 따르는지. 다이어리에 예은이 사진을 끼워 넣고 다녔다. 전교인 수련회에 가면 엄마 대신 내 옆에서 잠을 자려했고, 청년부 모임에 따라오고, 내 옆에 앉아 어른 예배를 드리기도 했었다. 유초등부에 들어왔는데, 예은이를 성가대 시키고 싶어서 성가대원 학년 기준을 낮춰 버렸다. 3학년(4학년?)이 되어야 성가대를 세웠는데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1학년으로 낮췄던 기억이다. 내 결혼식 축가에서는 귀엽고 깜찍하게 솔로를 했다.
 
중등부가 된 어느 날 학교 숙제라면서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찾아왔다. 직업에 관한 숙제였는지,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음악치료사에 대해 조사하겠노라고. 교회 본당 구석에서 인터뷰당했던 기억이 있다. 예은이는 음악도 공부도 다 잘했다. 음악을 하고 싶어 했는데, 진로 문제로 만나서 얘기를 나눈 기억도 있다. 공부를 잘했기에 좋은 대학에 좋은 학과에 진학했고... 학부를 마치고 뚝딱뚝딱하더니 덜컥 음악으로 대학원에 합격해 버렸다. 쉬운 일이 아닌 게 예은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논문을 썼는데 우수 논문상 받았다는 것이 당연지사처럼, 그 어려운 일이 예은이니까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렇게 석사를 마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음악치료대학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공부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는 예은이가 왜 하필 음악치료? 하는 마음이었다. 공부 못하고 음악 못하는 사람이 음악치료를 한다는 뜻은 아닌데... 나도 공부 잘하고 음악도 잘하는데 음악치료를 한 걸! 내 자신에겐 억누른 어떤 욕망이 투사된 건지 모르겠다. 왜 하필 돈도 안 되는 치료 일을 하려고 해? 공부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는데 돈이 되는 번듯한 일을 해야지. 아니면, 내 콤플렉스가 투사되었는지 모른다. 노마드 전공 콤플렉스랄까? 예은이는 그러지 말았으면. 뭘 해도 잘할 건데, 한 우물을 파며 보란 듯 번듯한 무엇인가가 되었으면 싶었는지 모르겠다. 음악치료대학원에 가도 안 봐도 잘할 거였고, 당연히 잘했다. 공부와 병행하며 하는 일도 무엇이든 잘했다. 진로나 생의 중요한 일들로 찾아와 얘기 나눌 때마다 진심의 지지와 격려를 주곤 했는데, 음악치료를 시작했을 때는 하라고, 한 우물을 파서 '성공' 하라고 나무라고 그랬던 것 같다.
 
올 초 어느 날, 치료 악기를 모두 예은이에게 넘겼다. 예은이가 음악치료를 해도 좋고, 다른 무엇을 해도 좋겠는 마음이 되었달까. 인생의 갈림길에서 곁길로 가고 또 새로 난 길로 가면서 예은이 고유의 시간을 살 거라는 믿음의 발로일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 크고 작은 삶의 위기를 겪어내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면서 단단해지고 자기다워지는 예은이를 오래 보아왔기에 물 흐르듯 흘러가다 생긴 마음이다. 어쨌든 아주 가볍게 악기를 넘겼다. 악기로 꾸민 방 사진을 보니 기분 좋은 확신으로 마음이 더욱 편했다. 
 
SNS에서 본 음악치료대학원 졸업식 사진에 뭉클했다. 한 존재를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깊이 알아온, 먼저 난 사람만이 아는 은밀한 환희 같은 것이다. 논문이 담긴 택배 상자에 이것저것 선물이 함께 담겨왔다.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 받으니 이 또한 뭉클하다. 예은이가 처음엔 나를 '정신실 先生님'이라 불렀는데, 어느 때부턴가 '사모님'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청년부가 되었을 때는, 남편이 처음 전임사역으로 청년부 강도사님이었었지. 그러니까 예은이는 남편의 제자이기도, 남편이 아꼈던 찬양팀 리더이기도 하다.

 

먼저 나고, 먼저 살면서 뒤에 오는 존재들이 자기로 무르익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다. 세월이 가는 것이 참 좋다. 세월과 함께 무르익는 오랜 만남들로 삶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고맙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예은이에게 한 마디 했다.

 

예은아, 박사과정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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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동의 인도 음식점 '갠지스'의 맛과 비주얼을 다 따라잡았다. 핵심은 카레 담는 청동 그릇이다. 이것은 정말 따뜻한 관찰력, 세심하고 고요한 사랑의 결과이다. 뭘 먹었네, 어쩌네, 애들하고 농담 따먹기 하는 걸로 연명하는 이 블로그를 진심 다해 찾아와서는 행간까지 꼼꼼히 읽고 기도해 주는 윤선이 작품이다. 지난번 귀국해서 만났을 때 받았다. 보정동 카레 집 사진 올린 것을 보고, 거기서 본 카레 그릇을 찾아 여기저기 발품 팔았을 윤선이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말로 안 해도 느껴지는 그 마음. 언니... 이렇게만 불러줘도 느껴지는 마음.
 
깨끗이 씻어서 싱크대 안에 모셔 두었는데... JP는 “언제 그 그릇에 카레 먹냐"고 한 번씩 채근을 해댔고. 제대로 먹으려고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다 인터넷에서 파는 '난'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릇빨 제대로 살려서 카레를 먹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서 날아온 소식. 윤선 태훈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남편에게 알리고 다음 날인가, 그다음 날인가. 알라딘에서 두 개의 택배가 왔다. 하나는 김종필, 하나는 정신실. 각각 득달같이 주문한 것이다. 같은 책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보니, 이게 우리의 마음이구나 싶다. 그나마 윤선이와 나는 책으로 글로 자주 연결되고 있지만 태훈과 종필은 자잘한 소식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2004년에 가정교회에서 함께 했던 짧은 만남으로 우리 마음 깊이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진심으로 신뢰하는 유일한 선교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JP 역시 태훈이라면 언제든 마음 활짝!이다. 네팔 파송 후 처음으로 귀국하여 했던 선교보고를 기억한다. 그때 내가 썼던 글의 제목도 생각난다. "자랑 없는 선교 보고"였다. 후원이 절실하지만, 후원을 위해서 사역을 팔지 않으려는 마음이 보였다. 잘한 게 왜 없겠냐만, 그저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만 말했었다. 잡은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기막힌 사연으로 네팔 언약학교를 맡아 경영하고 어려운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훈련받아' 좋은 선교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네팔 선교사로 현장에서 훈련받기 전부터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정직한 사람이어서 정직하고 좋은 선교사가 된 것이다. 자랑스럽다. 이들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다. 
 
청춘을 드려
천국을 산다
 
제목 참 잘 지었다. 결혼하자마자 바로 선교사로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파송되기 전 잠깐 우리 '목장'에서 머물렀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우려와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보냈었다. 청춘을 드린 건 내가 확실히 아는데... 천국을 살았을까? 살았다고 한다. 본인들이 살았다면 산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도 청춘을 드렸다. 천국을 살았을까? 산 것 같다. 살고 있는 것 같다. 불쑥 이런 마음이 든다면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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