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이네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날아와 분당까지 와주었다. 남미에서 남서울까지다! 얼굴을 마주하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반갑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지내고, 행복하여 넉넉해진 세 식구의 마음을 듣는다.  평양면옥을 찍고 바로 옆 카페로 갔는데. 몇 번 찾았던 카페, 그저 커피 참 잘 볶는 집일 뿐이었는데 새로운 장소가 되었다. 카페 벽에 걸린 그림들이 과테말라 식구들 눈엔 익숙한 것들. 과테말라 이야기에 푹 빠지기도록 무엇이 이끌고 등떠밀어 들어간 공간 같았다. 2차도 아쉬워 북카페 같은 우리집 거실로 자리를 옮겨 어른들끼리, 아들들끼리 긴긴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것인지. 사람들 만나 나누는 얘기는 힘들고 어려운 얘기가 대부분인데 오랜만에 다른 대화의 즐거움이다. 헤어져 남편과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다. '부럽다. 부러운데 정말 좋다. 잘 지내시는 얘기 듣기만 해도 내 마음이 좋다.' 누군가 잘 되는 것이 부럽고 그 부러움은 곧장 나의 불행이 되는 것이 흔한 감정의 흐름이다.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것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다. 뻔한 이 감정 라인을 심리학의 실험 연구가 하릴 없이 증명을 한다. 나와 겹치는 특성이 적은 사람이 잘 되는 일에는 별로 영향받지 않는데, 특성이 겹칠수록 질투로 인한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A그룹, B그룹, 실험군, 대조군... 실험 내용을 늘어놓을 성의는 없다. 


실험 결과도, 보편 진리를 담지한 속담도 설명해내지 못하는 경우는 있는 것이다. 특성과 처지가 우리와 많이 비슷한데, 내 처지와 영 다른 좋은 것을 가진 이 가족이 뼈저리게 부럽지만 그게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 늘,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질투와 시기심으로 치자면 금메달까진 아니어도 눈감고 동메달 정도는 딸 수 있는 실력이다. 헌데 한결이네 소식은 어쩐지 부럽고도 좋다. 좋고 좋다 슬퍼지기도 하니 그리 깔끔한 감정은 아니지만 참 좋다. 며칠의 시름을 잊을 만큼 과테말라 이야기가 긍정 에너지를 주니 모처럼 '감사하네요!' 내지는 '하나님 은혜'라는 말이 목에 걸리지 않고 나왔다. 카페의 다른 자리에 앉아서, 집에 와서는 방에 박혀서 소리 안나는 얘길 나누는 아들들도 보기 좋고. (아들들 카페 씬은 도촬)


부럽다고 꼭 지는 건 아니다. 부러워서 함께 이기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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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얼마 안 된 봄 어머님이 쑥개떡을 직접 해주셨다. 내가 얼마나 반색을 했던지 쑥개떡 이름이 바뀌었다. “에미가 좋아하는 쑥떡” 그리고 해마다 이맘 때면 저렇게 쑥개떡을 만드시고 냉동된 반죽을 여러 덩이 주신다. 쑥개떡 반죽은 치댈수록 찰지고 맛있어지는데 이제 치댈 힘이 없다시며. 장정한테 치대라 해서 조금씩 쪄서 먹어라, 하신다.

엄마가 어렸을 적에 해주시던 떡이라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다. 친정 엄마도 한때 ‘신실이가 좋아하는 개떡’이라며 가끔 해주셨는데. 쑥을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기력도 없으셨다. 이제 친정 엄마는 쑥개떡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딸이 좋아하는 떡인 것도 잊으셨을 것이다. 아니 당신이 쑥개떡이며 각종 김치며 곱창전골 같은 걸 얼마나 맛있게 만들었는지, 기억 너머의 기억으로 희미해졌을 터.

어제 할머니 댁에서 쑥개떡을 본 딸이 “와, 할머니 쑥떡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이에요.” 하니까 “채윤이가 에미 닮아서 쑥떡을 좋아해” 하며 좋아하시는 어머니. 오늘은 어버이날 챙기러 친정 엄마에게 간다. 어머님이 주신 반죽으로 쑥개떡을 쪄서 가져가려 한다. 어쩐지 엄마는 “나 쑥떡 싫어혀. 치킨이나 사와” 할 것 같지만. 나와 어머니들, 나와 딸을 이어주는 봄날의 쑥개떡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 여자들의 떡.

(떡 가운데 박힌 건 나름 어머님의 아티스트 감각. 땅콩으로 화룡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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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유치부의 *준에게 키 크는 비법을 전수 받았다.


나 : 준아, 사모님이 지금 준이 코 파는 거 봤어.

준 : 그래요? 나 코딱지 먹어요.

나 : 갑자기?

준 : 나 코딱지 잘 먹어요. 코딱지는 맛이 짜요.

나 : 으아...... 너 혹시 코딱지 먹어서 요즘 키가 그렇게 크는 거야?

준 : 맞아요. 

나 : 사모님은 키가 안 커서 걱정인데 코딱지를 먹으면 될까?

준 : 그럼요. 코딱지를 먹으면 돼요.

나 : 얼만큼 먹어야 해?

준 : 음...... 아침에 일어나 한 번, 저녁에 자기 전에 한 번 먹으세요.

나 : 그렇게만 먹으면 돼?

준 : 아아아아! 낮잠 자기 전에 한 번 더 먹어야 해요. 하루 세 번 먹어요.

나 : 오케이! 알았어! 이제 나도 키가 클 거야. 코딱지만 먹으면 되는 거지?

준 : 아니요. 밥도 먹어야 해요.

나 : 알았어. 사모님 코딱지 세 번 먹고 밥도 먹고 그럴 거야. 그래도 키가 안 크면 준이가 책임 져야 해.

준 : 응.


집에 오려고 나오면서 멀리 있는 준과 눈이 마주쳤는데 손가락 세 개 펴서 보여주며 '세 번'이라고 확인시켜주었다.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비법을 전했더니 키가 제법 훤칠한 스무 살 딸이 말했다. "그거 확실한 방법이야. 나 보면 알잖아!" 아, 맞다.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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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 청년부 생활이 주는 유익 중 하나는 주체적 참여 태도이다. 시스템화 된 성경공부나 훈련의 기회가 적은 대신 스스로 채워야 할 배움의 시간과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예배 설교 시간에 여기저기서 노트 필기 하는 모습이 갑자기 눈에 많이 띄었다. 옆에 앉은 채윤이도 부지런히 적어대고 있었다. 청년부에서 설교 나눔을 하는데 함께 같은 노트를 구입해서 필기하기로 했다는 것. 스스로 뭐라도 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올해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우 청년 신학클럽] [이우 청년 북클럽]이란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신학클럽은 남편이, 북클럽은 내가 이끈다. 목사님 앉혀 놓고 신학과 신앙, 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는 시간이 신학클럽이다. 북클럽은 말 그대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나누는 것인데 내 목표는 어쨌든 읽게 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권을 못 읽어도 된다. 한 줄이라도 읽으면 된다. 오늘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본회퍼, 손봉호, 이현주, 존 스토트. 우리 부부 썸의 시작, 연애의 시작과 헤어짐엔 이 네 분이 함께 했다. 이분들의 책이 있었다. 언제 들어도 재미있을 남의 연애 이야기, 목사 부부의 연애 이야기로 시작하니 다들 눈이 초롱초롱. 좀 세게 약을 쳤다.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죄라고 말했다. 진심 우리 청년들이 읽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읽는 힘으로 스스로 서는 사람,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읽고 또 읽으면서 자기 확장의 노력을 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로 지금의 관심 주제 키워드를 포스트잇에 적고 나누었다. 크고 작은 고민들이 이미 선정해놓은 책과 잘 맞아 떨어진다. 한 달 넘게 심사숙고 하여 책을 골랐다. 2019년을 사는 청년들의 고민을 다루되 (어떤 의미로든)치우치지 않을 것, 책은 어렵거나 현학적이지 않을 것, 이런 원칙을 가지고. 올해 청년부가 된 채윤에게 일정 부분 읽혀 보기도 하면서 꼭 읽힐 책을 고르려고 했다. 어쨌든 목표는 읽게 만드는 것다. 모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바로 책을 구입했다며 인증샷이 단톡에 올라왔다. 벌써 보람이고, 기대가 된다. 


이우 청년 북클럽 도서 목록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백소영, 뉴스앤조이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헨리 나우웬, IVP
[신도의 공동생활]  디이트리히 본회퍼, 대한기독교서회
[연애의 태도]  정신실, 두란노
[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은행나무
[좋은 사람은 드물다]  플래너리 오코너, 현대문학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문학동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세계관 수업]  양희송, 복있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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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J 2019.03.12 12:15

    시스템화된 성경공부나 그 어떤 수려한 훈련보다 훨씬 더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는 귀한 배움의 시간이겠지요! 20대에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저들이 복있는 자들이네요 :) 혹시 왼쪽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앉아 씨익 웃고 있는 이가 채윤인가요?

  2. 연두낭자 2019.09.21 16:50

    읽지않은 책들 스크랩해둡니다. 청년의 때로 돌아간 기분이 될 수 있을까요~ㅎㅎ ^^


그렇다, 아직 2018년이 끝나지 않았다.

2018 이름으로 쓰고 싶은 것, 써야 할 것이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니다.

송구영신 예배 전후로 날아든 똑같은 문자와 카카카오 톡들에 답신을 하지 못했다.

그중 연배가 높으신 분이 계셔서 죄송한 마음이 있고,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 하시면 인정! 

그러나 단체로 쏜 메시지에는 답하지 안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또 시간의 인위적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기도 하다.


2018년을 마무리 하는 글 세 개를 쓰고 싶었으니 이걸 써야 끝이다.

실은 사진만 걸어둔 채 '비공개'로 오래 묵혀서 조금 질려 버린 건 사실이지만.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시간과 비용을 거룩하게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개소식이란 이름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시간과 비용 낭비를 연거푸 9회를 하고,

마지막 개소식인 10회는 남편들을 초대했다.

와서 밥만 먹는 줄 알았던 벌쭘한 남자들(세상에 벌쭘하지 않은 남자는 몇이나 될 것인가) 넷이 모였다.

앉혀 놓고 개소식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했다.

개소식 프로그램이라 하면, 소장의 세바시(세상을 못 바꾸는 시간 40분) 강의가 주메뉴이다.

밥만 먹겠다는 남편들에게 굳이 이 강의를 들려주어야 할 이유는......

흠, 우리는 순수했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마음성장연구소인지,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알려야 할 의미도 권리도 있으니까.


정말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강의를 마치고 남편들이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었다. 

"여보, 미안! 돈 버는 연구소 아니야"

공부 시키느라 돈 많이 든 여자가 이제나 저제나 좀 벌어 오려나 했는데,

드디어 연구소를 내고 상담을 하고 제대로 강의를 한다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다만 크게 기뻐하진 않았지만 누구도 불편해 하지는 않았다.

부부는 닮아간다는데,

우리가 왜 이런 걸 하겠다고 뭉쳤겠어.

당신이 사는 방식이고, 당신이 살고 싶은 방식이지!

말하자면 이런 거다.


연구원 은경 쌤의 짝꿍인 백 이사님(남편들을 강제로 연구소 이사로 추대함)도 이러고 살고 계시니.

직원 '예배'말고 '복지' 챙기는 사장님

시의 적절게 기사가 나왔을 뿐, 

남편 네 사람 모두 '의미 있게' 사는 것에의 고민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고민 놓아버리면 마음 편할 것을,

그걸 하지 못해 때로 죄책감과 자기 비판으로 괴로워 하기도 한다.


연구소가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

의미 있는 상담도 하고 만남도 하는 게 분명한데 

지속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곳, 낫고 나아지는 '나음터'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함께 하는 네 사람이 안전한 사람들이고,

넷의 삶과 인격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불편한 지지로 인해

더욱 확증을 얻는 안전함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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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12 16:40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9.01.19 23:45 신고

      부럽쮸? :)
      테이블 커버는 뭐 먹느라고 묻을까봐 집에서 들고온 비닐 커버 ㅎㅎ 이번 주 빈자리가 컸어요.

  2. mary 2019.01.14 11:47

    개소식이 끝났군요. -.- 마음성장연구소 열렬히 응원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 (세상에 뻘쭘하지 않은 남자.......) 여기서 빵 터짐요.ㅋㅋ

    • BlogIcon larinari 2019.01.19 23:47 신고

      개소식은 mary언니 님께서 오셔야 끝납니다! ^^ 한 번 오셔야죠. 제가 1,2월에 매여 있는 일이 있어서 계속되어야 할 개소식이 잠시 멈추고 있어요. 하이튼, 오셔야 끝납니다. ㅎㅎ

  3. BlogIcon 로랭이 2019.02.12 21:48 신고

    잘보고 갑니다^^


무엇보다 체력이 달려서 아이들 치료교육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이런 에피소드 하나로 일주일은 버틸 힘을 얻기에 멈출 수가 없다.

새해 첫 수업 헬로송을 부를 땐 늘 계획된 도발을 한다. 

“안녕, 다섯 살 해뜰반” 하자마자 아이들이 피를 토하며 달려든다. 

“아니에요오오오, 여서 딸이에요오오오, 여서 딸 돼써요오오오오오오(핏대)”

가장 태연하게 “무슨 소리야. 너희 다섯 살 반이잖아” 하면 

이제 핏대 세우고 앞으로 나와서 절규를 한다. “여!서!딸! 여섯 살이에요” 

“지난 번에 다섯 살이었잖아. 어쩌다 여섯 살이 됐어?” 여섯 살 된 비법이 난무한다. 

엄마가 여섯 살이래요, 떡국 먹었어요, 키가 커졌어요, 우유 먹었어요. 

그러다 한 녀석이 "나이를 먹었어요오~"

뭐라고? 나이를 먹었다고? 나이는 어떤 맛인데?

하자마자 이제 뻥이 난무를 한다. 

동그랗게 생겼는데 초콜릿 맛이에요. 

하트 모양이에요. 

야야, 그런데 선생님은 나이가 몇 살 같애? 

열다섯 살이요, 열세 살이요! ㅎㅎㅎㅎ (계속해, 계속) 이십 삼살이요, 

(자꾸 듣다보니 씁쓸)

 “얘들아, 실은 선생님은 나이 먹는 게 싫어”라고 고백해 버렸다. 

그러자 한 녀석이. 

“아이 참, 션샘미. 골고루 먹어야 해요!”


파, 당근, 나이.....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기!



  1. SJ 2019.01.30 13:36

    아 정말 어쩔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구 반대편은 야밤인데, 넘 웃긴데, 애들 깰까봐 소리도 못내고.......

    여섯짤 귀요미들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시는 션샘미! 이제 골고루 드셔야 겠어요!^^

    • BlogIcon larinari 2019.02.02 18:38 신고

      골고루 먹되 특히 '나이' 같은 건 편식하지 않으려고요. 골라서 먹으려고 애써봤는데 소용이 없더라구요. ㅎㅎ


십여 년 영성공부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철학상담 4학기였다.

수많은 철학자를, 영성가를 소개받고 읽고 만났지만 돌아보면 가슴에 남은 것은 한 마디다.


"사랑이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상처받지 말고, 사랑 받는 곳으로 가야한다"

인간 본성이 그러하다.

칭찬과 존경의 말에 목마르면서도 그 반대의 소리에 귀가 커진다.

곱씹고 묵상하는 것은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의 표정과 말이며

부러 찾아가 맴도는 곳은 나를 홀대하는 곳이다. 


모양새를 위한 송년회가 아니라

당신들과 함께 한 일 년이 정말 소중했다, 는 송년회였다.

갚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셔도 되는 걸까, 싶게 대접 받는다.

일일이 손으로 한 예쁘고 맛있는 음식이며, 데코레이션이다.


그분의 손은 내게 사도행전 '루디아'의 손이었다.

나도 요리하는 것 참 좋아하는데,

음식 만드는 것에 정이 떨어질 정도로 슬프고 비루한 식사 준비의 나날을 보냈다.

그분이 건넨 밑반찬과 레시피가 도착한 날은 '삶은 요리'였던 내 인생이

'죽음의 요리'가 되던 시절이었다.


마음 성장을 위한 모임이라고 해서 내적인 것만 판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몸이, 마음의 길과 일상의 여정이 다른 것이며

둘 중 하나만 중요한 것처럼 치우쳐버린다면 그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다.

마음 공부를 위한 모임일수록 일상의 이야기가 살아 있고,

먹을 것이 풍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에서 늘 좋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이유이다.

마음 공부를 위해서 급조(맞다, 급조가 맞다. 순간 떠오른 분들께 급 메시지를 보내어 구성되었으니)

모임인 꿈모임이 밤에 꾸는 꿈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무엇보다 존경과 신뢰를 나눴다.


어쩌다 이렇게 좋은 모임이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만들었고 이끄미로 있었으니 내가 잘한 것 같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늘 '나'라는 무거운 존재 하나를 끌고 다닌다.

어디선들 내가 다르게 했을까.

함께 모인 '나'들의 역동이라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내어 놓는 아이처럼 자기 내면을, 가진 것을 그냥 내놓았기 때문일 터.

송년 모임의 키워드는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내내 '천사'였다.

누가 천사인지는 시시각각 바뀌었지만,

선물교환으로 받은 앞치마를 한 내가 마지막으로 

천사를 찾아 싸바, 싸바, 싸바, 춤을 추었으니 마지막 천사는 '나'인 걸로.

모든 '나'인 걸로.


"사랑이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상처받지 말고, 사랑 받는 곳으로 가야한다"




  1. mary 2019.01.14 11:43

    난 이런 송년회를 한지가 얼마나 됐는지... 저 이효재표 앞치마와 장갑은 어찌 쓰실지..옷과 트리와 넘나 잘 어울려쓰.

    • BlogIcon larinari 2019.01.19 23:49 신고

      와, 딱 보고 아시네요! 이효재표가 유명한 건가봐요. 앞치마도 장갑도 안 쓰고 장식품으로 걸어두고 있어요. ㅎㅎ
      올해는 어제의 용사들 불러 모아 송년회 한 번 도모해 볼까요? (신년부터 송년회 작당 ㅎㅎ)




나이 50이 되는 해였다. 100 살을 살지 못할 텐데 '반'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생의 의미'를 붙들고 싶은 탓일 터이다. 쉰이라는 나이를 거의 한 번도 인식하고 살지 않았다. 연말이 되어 송년회란 이름으로 모여 돌아보니 이제야 나이가 보인다. 그 어느 해보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말하기에는 외적인 조건은 좋지 않았지만,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요란하지 않거나 의례적이지 않은 송년모임들이 인증해준다.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곳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상처 받고 찔려 피흘리는 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라 한다면, 그것도 인정!이다. 


아, 올해 내게 의미 있던 곳은, 다른 말로 하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목회자에게, 그렇다 그 누구도 아닌 목회자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들과 글쓰기로 만난 곳이다. 피해자, 또는 생존자라는 말로 당신에게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무엇이 됐든 틀렸다! 당신이 틀리기 전에 내가 먼저 틀렸었다. 첫 모임에 가면서 누구보다 긴장했다. 상상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한 모든 것이 다 틀렸고, 빛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빛을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자신의 빛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쓸 수는 없다. 8주 씩 두 번의 글쓰기 자조모임을 하면서 많이 울었고, 분노에 치를 떨기도 했다. 


1,2기 함께 모여 송년회를 했다. 낭독회로 모였다. 낭독회 다녀와 페이스북에 남긴 소회를 다시 올린다.


글쓰기로 만난 사이였는데 이상하게 목소리와 말투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매 시간 써 온 글을 소리 내어 읽었고, 사려 깊은 수다(소리)가 끝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리라. 글쓰기 자조모임 송년파티 낭독회가 있었다. 두어 시간 앉아서 눈물 찔끔거리고 웃었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참 좋다. 어쩌면 사람의 목소리가 저렇게 다른 빛과 결을 가지고 있을까. 눈을 감고 들으면 더 신비롭다.


며칠 약한 두통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다. 반가운 얼굴이 들어올 때 살짝 심장이 들썩거린 순간인지, 마주앉은 이의 눈물에 공명하던 순간인지, 와하하하 웃던 순간인지. 이 모임에 앉아 있으면 모두가 나 같다. 피해와 상처도 내 것 같고, 그것을 돕는 일에 치인 활동가의 피곤함도 내 것인 듯하고, 나는 당연히 나다. 오늘 낭독회에서 들은 글의 일부이다.


자조 모임. 막연하게 거부감이 들었고, 마음 깊은 곳에선 겁이 났다. 나는 자조 모임 초기에 자주 세상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썼다. 나는 내가 내밀하게 감각하고 오래도록 사유한 것들을 모래 속 자갈 골라내듯 투박하게 다루는 세상이, 실로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슬펐다’, ‘분노했다처럼 내 언어들도 단순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면 설명하지 않아도 됐고, 그러면, 판단 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조 모임을 통한 글쓰기는, 내가 방치한 기억들에 세세한언어를 부여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뭉개놓았던 기억들을 끌어올려서 가만히 펼쳐놓고 조금씩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나를 온전히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내 감정에 집중한 채로 내 기억을 쓰다듬고 매만지면서, 나는 무엇이 고통이었고 왜 고통스러웠는지를 직시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가해자의 그루밍에 길들여진 자아가 영혼에 가하는 자해. 그것이 내 부끄러움의 발로라는 것을 자조 모임을 통해 배웠다. 그 배움 덕에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최초의 기억따윈 없었다. 그 기억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환상이었다. 내 고통은 모두 그냥 그 자체로 진실이었다. 나는 자조 모임이 끝나고 고통을 느끼기를 주저한 내 자신을 꼭 껴안고 어를 수 있었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의 불가능성은 유한한 인간의 영원한 콤플렉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연결을 믿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일이 나를 들여다보듯 투명하게 타인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공간이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고통이 언어가 되어 쏟아져 나올 때 최대한의 경청으로, 제 몸의 변화까지 겪어가며 있어 준 사람들 때문에. 나는 사실 지구의 밑동을 파고 들어가면, 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사실 이 분이 써오는 모든 글이 좋았다. 이미 자기 소설을 출간한 분이다.  헌데 이 글이 유난히 큰 소리로 들리는 이유가 있다. 글쓰기 모임 초반에 신형철의 글을 인용하여 ‘타자의 이해불가능성’에 대한 글을 써오신 적이 있다. 그때의 이해불가능성은 건널 수 없는 강, 건널 필요도 없는 강 같았다. 냉소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지구 밑동을 파고 들어가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니! 연결을 믿는다니! 아, 확실히 이 말에서 내 두통이 사라졌다.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뇌가 확 열리면서 뉴런이 마구 밖으로 뻗어나가 둘러앉은 모든 이들의 뉴런에 접속되는 느낌이었으니까!







한 주에 한 번 어린이집에서 아가들 음악수업을 빙자하여 발달체크도 하고 부모 상담, 교사 교육도 한다.

가끔 보는 장면인데 볼 때마다 마음이 한참 머문다. 생선 반찬이 나오는 날엔 선생님들 너나 없이 위생 장갑을 끼도 생선 가시를 발라낸다. 그러고 나면 냄새에 물리고 질려 정작 자신은 먹지 못한다고 한다. 20대 초중반 나이 선생님도 있다. 집에서 자기 먹을 생선을 저렇게 살뜰하게 정교하게 바를까? 집에서라면 가시 발라내는 게 귀찮아 아예 안 먹을 지도 모른다. 생선 가시 발라내는 저 모습은 보기 좋다고 말하기 뭣한 야릇한 뭉클함이다.

뉴스 하나가 제대로 터지면 포털 검색어가 우르르 한 곳으로 몰리고. 한 집단을 싸잡아 비난하고 증오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애초 선한 집단 악한 집단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거침 없이 갈라치고 혐오한다. 무서운 세상이다. 뉴스 한 번 터질 때마다 어린이집 선생이란 이유로 두려워 하고 위축되는 모습을 본다.

어느 집단에든 사람이 있고, 개인이 있다. 평생 발라 본 생선 가시보다 더 많은 양의 생선 가시를 하루에 마지고 있는 젊은 선생님. 유난히 행동이 많은 아이들이 몰려 일년 내내 기 빨리며 씨름하다 결국 탈진하여 상담소를 찾는 선생님. 자기 몫을 감당하는 사람들, 가끔은 자신을 해하며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다. 생선 가시 발라내는 저 손들, 이 얼마나 고귀한 하찮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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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공과 본업은 음악심리 치료사입니다. 아이들을 치료했고, 요즘은 학부 전공까지 살려 어린이집의 아기들 치료교육과 함께 부모 상담으로 일주일 중 하루를 보냅니다. ‘유리드믹스’라는 음악교육을 하며 아이들 발달을 개별 체크 하고, 이것을 근거로 부모 상담도 합니다. 전공에 부합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노래 ‘도레미송’을 시작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OST로 한 6주 수업을 했습니다. 각각의 음이 개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교육적, 치료적으로 큰 의미이지요. 이 빨간 원통 안에는 음악 선생님보다 노래를 쪼~금만 더 잘하는 아줌마가 들어 있다는 말을 아이들은 철썩 같이 믿습니다. 스피커만 보면 '어, 아줌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합니다. 예, 줄리 앤드류스, 즉 마리아지요.

마리아의 노래를 들려줄 때는 꼭 아이들 입에 m&m 초콜릿을 하나 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줌마가 전해달래. "음악은 달콤한 거야. 초콜릿처럼!" 6주 동안 미각과 청각에 동시 자극받은 아이들 기계적으로 말합니다. (초콜릿 통에서 눈을 떼지를 못하지요) “음악은 달콤한 거야, 초콜릿처럼”


오늘은 마리아 아줌마와 작별하는 시간입니다. (음계, 도레미송으로 뽕을 뺐다는 얘기지요) “아줌마가 오늘은 어떤 친구를 데려왔어. 아줌마의 친구가 새로운 노래를 들려줄 거래. 들어볼래?” 트랩 대령의 ‘에델바이스’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 저 표정을 보십시오. 달콤한 음악에 빠져든 저 표정. 예, m&m 초콜릿 한 알의 기적입니다.


물론 마지막엔 초콜릿 없이 에델바이스 왈츠 버전에 춤을 추었습니다. 이 시간을 위해 6주를 달려온 것이고요. 아이들, 음악, 춤. 이 셋은 자유의 삼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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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27 19:27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8.09.27 19:41 신고

      다니세요!!!!
      단, 선생님으로! ㅎㅎㅎㅎ
      왠지 참 잘 어울린다. 그대가 아이들과 함께 음악에 파묻혀 있는 모습.



지금 나가요, 라고 톡을 보내고

헤벨레 옷차림 그대로, 부시시한 머리 그대로, 쓰레빠를  신고 나간다.

60초 후, 편의점 앞에서 만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로 시작되는 유안진의 수필이 생각 나지만,

이 수필 별로 안 좋아하니 이런 느낌이라는 얘기만 해두자.


이 낯설고 척박한 동네에서 

이렇듯 따뜻하고 정성스런 것을 나누는 이웃이라니!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창조성 담아 식혜를 만들고,

또 꿈틀대는 창조성에 조청을 만들고마는 여인이 있다.

그 식혜를 얻어 와 마셔본 남편이 "이거 장모님이 해주시던 맛인데"란다.

재료 중에 '엄마' 성분이 들었음에 틀림 없다. 


늦은 밤 편의점 앞에 서서

중년의 두 여자,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남다른 두 여자,

꿈을 꾸고 꿈에서 가끔 길을 만나는 두 여자,

비슷하지만 다른 길 가는 딸을 키우는 두 여자가 짧은 수다를 떤다.

조청 레시피 얘기, 딸들 대입 얘기, 결론은 딸내미 뒷담화.

 

그리움과 창조성이 농축된 작은 병과

군산 이성당 빵 서너 개를 맞교환 해 돌아온다.

맨 얼굴에 쓰레빠로 만나는 이웃,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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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18.09.17 12:40 신고

    내가 지어 붙인 제목이 너무도 맘에 들고 신통방통 하여 심장이 왈랑왈랑!

  2. 아우 2018.09.20 22:21

    쿨하게 신통방통 인정!

  3. 2018.09.20 22:22

    비밀댓글입니다


눈에 맞는 돋보기가 없어서 ‘읽기’를 포기하신지 오래다. 

94세 우리 엄마. 

‘저녁 먹었응게 예배 드리야지. 같이 드릴려? 안 혀? 그려’ 

하고 가.정.예배 드리러 들어가셨다. 


설거지 하고 살짝 문 열어보니 돋보기 끼고 찬송가 펴놓고 부르고 계신다. 

어? 엄마, 보여? 

아니이, 잘 안 보이는디 그냥 감이루 보고 불러. 23장 맞지?” 17장 펴놓고 부르신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리라.


내가 확인한 바, 엄마의 가정예배는 쉬지 않고 50년 째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 우리를 닦달하던 시간이다. 

아주 그냥 저녁마다 정말 고달픈 시간! 

식구들 다 떨어져 나갔는데 원망도 그 무엇도 없이 혼자 여전히 지키는 가정예배 시간이다.


동생 식구가 휴가를 가서 아기가 된 엄마 돌보러 친정에 왔다. 

저녁 먹고 앉아 1000번도 더 들었던 몇 개 남지 않은 인생 에피소드 레퍼토리를 꾹 참고 들어드렸다. 

그리고 엄만 예배를 드리러 들어간다. 

저런 엄마 팔아서 쓴 원고를 넘기곤 온 날이다. ㅠㅠ 그

래서인가. 더욱 마음이 저릿하고, 지난 세월이 미안하고..... 같이 있어도 벌써 그리운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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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주제로 각종 단체와 교회에 강의하러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새벽 6시 강의는 처음입니다. 5시10분 분당 출발, 5시 55분 쌍문동 도착.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한 영장산과 도봉산을 한 시간 차로 마주했습니다. 


'피택 장로님을 위한 교육'에 초대 받아 간 것입니다. 새벽 강의라니,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초대하신 목사님을 알기에 기꺼이 가게 되었습니다. 예비 장로님 교육의 주 내용이 다름 아니라 '렉시오 디비나' 등의 기도 훈련과 영적 식별 등이라니요! 새로 부임하신 교회에서 조용히 준비된 만큼의 목회철학을 펼치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영적 우월감에 빠져 삶과 신앙의 정답을 다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자아팽창에 허덕이며 과도한 확신 속에 교인들의 영적 삶을 통제하지요.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폭력적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며 교인들 각자의 영적 여정을 겸허히 인정하는 분들이죠. 


몇 주 전, 어느 교회 수련회에 가서 뵌 목사님 모습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의안 올려놓고 강단으로 쓸 탁자(수련회 장소니까 식사 때는 밥상으로 쓰인)를 살피시다 ‘어이쿠, 상이 끈적하네.’ 하며 닦으시더군요. 그냥 본인이 닦으셨습니다. 


근거 없는 영적 우월감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내어주는 목사님들이 좋습니다.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저 산처럼, 그런 목사님들 건강하게 든든히 서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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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인연이 있다.

명동성당을 언저리를 맴돌다  만난 성당 언니들이 있고,

성당 언니들을 가르치는 불자(佛子)이신 선생님도 계시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배우는 여정에 만난 분들이다.


신심 깊은 성당 언니가 암은 문턱에 섰다 깨달은 간증이 뜨거웠다.

지적인 욕구가 높은 이 언니는 개신교의 은퇴한 철학교수의 가르침에 빠져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 깊은 철학적 성찰, 그리고 명상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했다.

명상의 유익에 대해 또 열변을 토하셨다.


어, 그런데 명상이라고 하셨나?

내가 아는 어떤 가톨릭 신자보다 믿음이 뜨거운 분이고,

마음공부와 영성에 관해 모르는 것, 안 해본 것이 없는 분이다.

선생님, 명상이라고 하셨어요? 향심기도가 아니구요? 라고 했더니.

향심기도 열심히 했는데 모르던 것을 명상으로 배우니 알겠더란다.


담을 넘어 가 배우는 기쁨과 두려움, 신선함과 막막함을 안다.

평생 들어 귀에 딱지 앉은 얘기를 새로운 언어로 들을 때 무릎 치며 알아듣고

귀에 딱지로 남은 평생 배움의 진가를 그제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신비롭다.


80, 60대 선생님(이라 쓰고 언니라 읽는다)들 사이에서 막내 역할을 맡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밥 생각 없으시지만 막내 배고프다니 헤어지던 발걸음 돌려 저녁 먹어(라고 쓰고 '멕여'라고 읽음)주심,

야야, 나는 이해가 안된다, 는 아주 일상적인 말로 내 종교가 가진 편협함을 가차없이 찔러주심.

재능과 꿈 덮어두지 말라고 사업계획 짜주며 먹고 살 걱정까지 해주심.

담을 넘어 만난 분들과의 수다가 사랑 노래가 되어 가슴에 남았다. 


불금의 명동에서 연가를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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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에 이우교회에서 사경회가 있습니다.

강사는 고신대원의 박영돈 교수님이십니다.

남편이 존경하는 은사님이시고요.

그야말로 따뜻한 통찰, 예리한 공감으로 저술, 설교, 페북 글이 모든 인기 최고이지요.

어제 남편이 박영돈 교수님 뵙고 왔는데

밤늦게 이런저런 신대원 시절 얘길 하다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고요.

분당 근처에 계신 박영돈 교수님 팬들께서는 오셔서 들으셔도 좋겠습니다.

 

13일 토요일 오후 7시 / 14일 주일 오전 11시 / 오후 1시30분


[박영돈 교수님, 과 남편, 과 나]

결혼하고 7년 째 되는 해에 남편은 신대원에 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던 꿈이라지만 ‘내적 소명’은 확실하나 그것으로만 선택할 일이 아니었기에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보려던 차,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의 아내 되기 원치 않으니 이 또한 좋은 싸인이라 여겨 결혼을 위해 장신대 도서관에서 입시 준비하던 책 싸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결혼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대학원도 하나 하고 7년의 시간을 보냈다. 숨소리만 들어도 그의 행복과 불행을 알아차리게 된 즈음,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를 신대원 기숙사로 떠나 보냈다. 대신 그가 당연하게 그렸던 광나루역의 장신대원(장로교신학대학원)이 아니라 천안의 고신(고려신학대학원)이었다. 나의 바람이었다. 당시 함께 다니던 교회가 고신교단이었고 나는 단지 남편의 진로 변경으로 인한 변화의 폭이 작기를 바랬다. 신학적 폭이야 남편의 연륜으로 충분히 품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무슨 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 안수’ 문제를 놓고 남편은 그야말로 1:17로 싸우는 막다른 골목에 선 적이 있다. 여성 안수 불가를 주장하던 분들이 당시 싸이 클럽에서 쓴 표현들을 나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여성 목사를 꿈도 꿔본 적이 없지만 그때 본 글들로 인한 상처는 쉬 아물것 같지 않다. 나이도 많고 웬만큼 인격도 되던 남편은 동기들의 신뢰도 얻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만큼은 외톨이가 되었다. 형 그럴 거면 장신대로 가시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날에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미워 했는지 모른다. 늦게 신대원 가는 것이 무슨 대역죄처럼 내 말을 넙죽 수용해준 남편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외롭고 슬픈 남편의 표정을 보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 어떤 경우에도 사모의 역할을 강요하진 않겠으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내게 있단 걸 미안해 했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가족을 두고 온 신대원에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안할수록, 슬플수록, 외로울수록 공부에 매달렸다. 그 시절 남편을 붙든 영적인 스승님이 박영돈 교수님이시다. 강의는 물론 그분의 삶과 일상의 고뇌를 통한 가르침이 그 보수적이고 경직된 신대원 생활에서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박 교수님의 연구조교를 하면서 교수님의 책 출간을 돕기 위해 혼자 이리저리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모른다. 교수님의 첫 책 <성령충만 실패한 자들을 위한 은혜>에는 남편의 남모르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나 역시 남편으로 인해, 또는 그저 한 독자이며 페북 팔로우어로서 박 교수님을 존경한다. (존경하다 실망한 지도자들로 인한 상처로 다시는 유명하신 분께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박영돈 교수님은 여전히 존경한다. 그분의 책이나 페북 글이 아니라 아주 작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알기에 그렇다.) 이번 주말에 박영돈 교수님께서 우리 교회 사경회 강사로 오신다.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떠올릴 때 감회가 남다르다. 교수님은 잘 모르실 것이다. 늦게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흔들리고 고독한 제자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신지, 그 목회자의 아내에게 얼마나 감사한 존재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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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자기 2018.05.05 00:12

    박영돈 교수님 께서 말씀하신
    칭의 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성화가 따라야 구원 받는것은 다른 복음 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피 90프로 정도에 나의 육정 10프로가 들어가야 하나요?
    예수님과 같이 못박힌 강도는 무엇을 행하여 구원 받았나요? 예수님의 보혈은 완전합니다
    칭의라함은 모든 율법을 지켰음은 물론이요,더적극 적으로는 모든 의로운 행위를 한것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는다는것 입니다 우리의 의가아닌 하나님의 의로 인함이지요 그래서 은혜이고 선물인 것 입니다 행함은 칭의를 받은 그리스도인의 열매인 것이지 구원의 필요 조건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에 무수히 많은 열매가 맺혀야만 포도나무인가요? 가물어 양분을 못받아 열매가 조금밖에 없으면 포도나무가 아닌가요?
    고린도교회에 세상사람들도 하지않는 계모와 통간한 형제가 어찌되었나요? 육신은 죽게하되 영혼은 주예수의날에 구원받게 하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부디 다른 복음을 더이상 전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것들이 진화론 보다 더 무서운 마귀의 계략입니다

    • 신의피리 2018.05.05 12:57

      연자기 님, 혹시 목회자이신가요? 아니라면 좀 다행이구요.
      그렇잖아도 오늘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국어실력', 즉 '독해력'이라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어떤 책, 어떤 강의에서 보고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맥락을 잘 읽어보시길 당부드립니다.

      박 교수님은 '칭의 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성화가 따라야 구원 받는다'고 말한 적도 없고, 쓴 적도 없습니다.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칭의로 구원받은 자는 성화로 열매맺게 되어 있음을 강조했겠지요. 그걸 독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이런 헛소리를 합니다.

      동네 축구 쫌 한다는 교만한 사람들이 메시를 훈계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딱 이런 분들이로군요.

      칭의와 성화를 배우기 전에 먼저 독해실력을 키우고, 타인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시길 바랍니다.

  2. 연자기 2018.05.05 18:32

    독해력이 부족한건 제 잘못인데요
    박교수님께서 주장하시는 바는 결론적으로 간단 명료하게 성화없는 구원은 거짓 구원 이라는뜻 아닌가요? 이건 제가 바르게 이해한것 같은데요?
    그리고 한번받은 구원도 잘못하면 다시 없어지는것 이라고 분명히 주장하시는걸 들었데 이것도 제가 잘못 들은건가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닭고 영원한 속죄를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은 육체의 남은때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게 행함과 열매를 맺으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성령께서 인도 하십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았어도 말씀에서 멀어지고 교제를 떠나게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 전혀 행함과 열매를 맺지 못할수는 있으나 구원이 없어지는것도 아니고 구원을 안받은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또한 반대로 믿음으로구원은 받지 못했으나 행함으로 하나님앞에 나가려고 얼마나 선하게 배풀며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하지만 이분들이 주님앞에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함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칭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전환을 의미하며 성화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결론은 성화의 정도는 끝이없습니다 그래서 성화의 낮고 깊음으로 구원을 판단하는것은 잘못이라는 말씀 입니다

    • 신의피리 2018.05.05 19:54

      연자기님,

      제가 독해력 운운해서 미안합니다. 다시 쓰신 글을 보니,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율법주의에 대한 저항과, 은혜와 칭의를 붙들려는 선한 마음의 뜻이었겠다 싶습니다.

      제가 앞글에서 ‘맥락’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연자기님이 들었다는 두 가지 중에, 첫 번째는 잘못 이해하신 것 같고, 두 번째는 잘못 들은 것 같군요.

      첫째, “성화 없는 구원은 거짓 구원”
      연자기님! 성화 없는 구원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한 죄인을 의롭다 하실 때는 반드시 거룩하게도 하시지 않나요? 물론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지요. 칭의와 성화는 명백하게 구별됩니다. 칭의가 구원을 불완전하게 시작하게 하고, 성화가 구원을 완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실제 성도의 삶에서는 구별되기보다는 같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하지 않으시면서, 성도를 의롭다고 칭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즉, 참된 칭의는 반드시 참된 성화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칭의와 성화의 연결성’을 놓치면 소위 말하는 ‘값싼 은혜’가 되는 것이지요. 다시 요약해 드리면, “우리는 칭의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칭의와 성화는 구별되나 긴밀하게 연결됨으로, 참된 칭의는 반드시 참된 성화로 이어진다.”

      연자기님이 칭의와 성화를 이렇게 설명하셨네요.
      “칭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전환을 의미하며, 성화는 자녀로서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맞습니다. 신분이 전환되면 생활도 달라집니다. 혹시 칭의는 삼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것이고, 성화는 우리 인간이 의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순종하고 실행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시지요? 칭의도 성화도 모두 삼위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끄십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으면 성화도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성령께서는 의롭다하신 이를 또한 거룩하게 이끄십니다.

      박 교수님 말씀의 취지는 이런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떤 한 사람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라고 주장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세속적 욕망으로 살고, 옛자아를 주인삼아 삽니다. 그리고 스스로 합리화하지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졌음으로 이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 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나는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으니까.” 죄책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고, 영단번에 해결된 것으로 산다면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박 교수님의 말씀의 의도는 칭의와 성화를 단절시켜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하는 맥락이란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들었다는 것, “한번 받은 구원도 잘못하면 다시 없어지는 것” 이건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말은 일반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킨 저렴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랑의 매로 사용되곤 합니다. “너 그렇게 네 맘대로 할 거면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말하는 부모의 징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의 징계라는 맥락에서 보면 저 말도 일견 일리 있는 말일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이라고 단정짓기 전에 왜 우리 한국 기독교인의 삶에 거룩의 열매가 안나타나는 것일까 되돌아볼 일이지요.

      좀 길어졌습니다.
      연자기님, 박 교수님의 책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성화의 낮고 깊음으로 구원을 판단하겠다’는 그런 말씀을 찾으시면 제게도 알려주세요. 박 교수님의 첫 책의 제목은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입니다. 성령충만이란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는 보상이 아니라 실패한 이들에게 거저 주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연자기님처럼 끄끝내 붙들고 싶은 죄인을 구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주말입니다. 거룩하고 은혜로운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3. BlogIcon 연자기 2018.05.05 23:08

    바쁘실텐데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처럼 교제다운 교제를 하는것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인의 삶에 거룩함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그들중 거의가 구원받지 못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대부분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1.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 하시는하나님께서 정말로 살아계신것을 100퍼센트 믿지 못함이며

    2.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절대적 권위의 무오한 책임을 100퍼센트 믿지 못함이며

    3.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성경도 사실이란것이 100퍼센트 믿어 졌다면 천국과 지옥 또한 리얼한 현실로 자신에게 다가 올텐데 그렇지 못함으로 자신이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죄덩어리 라는것을 알지 못함이며

    4.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옥으로 갈수 밖에 없는 죄인임이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 무겁고 또 너무 무거워 참으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죄인을 구원해 달라는 회개를 해본 경험이없기 때문이며

    5.위의 마음의 상태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며

    5.혹여 복음을 들었다 해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창세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모든죄를 사하셨는데,원죄만 사했다, 혹은 지금까지의 죄만 사했으니 앞으로 지은죄는 주일날 교회당 가서 회개 해야한다 등등 잘못된 복음을 들음 입니다

    진정 구원을 받은 사람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납니다 다시는 죄로인해 고민 하지않습니다(지옥 갈까봐) 하지만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하겠습니까?
    죄에서 해방 됐지만 훨신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자 하는 강력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소욕이 너무 강해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4. 조미 2019.07.15 04:08

    연자기님 어디교회 다니시나요 ? 댓글보다 이거구나 싶었네요 설교를잘배우고깨닳으신것인지 스스로독학하신건지 궁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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