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영성공부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철학상담 4학기였다.

수많은 철학자를, 영성가를 소개받고 읽고 만났지만 돌아보면 가슴에 남은 것은 한 마디다.


"사랑이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상처받지 말고, 사랑 받는 곳으로 가야한다"

인간 본성이 그러하다.

칭찬과 존경의 말에 목마르면서도 그 반대의 소리에 귀가 커진다.

곱씹고 묵상하는 것은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의 표정과 말이며

부러 찾아가 맴도는 곳은 나를 홀대하는 곳이다. 


모양새를 위한 송년회가 아니라

당신들과 함께 한 일 년이 정말 소중했다, 는 송년회였다.

갚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셔도 되는 걸까, 싶게 대접 받는다.

일일이 손으로 한 예쁘고 맛있는 음식이며, 데코레이션이다.


그분의 손은 내게 사도행전 '루디아'의 손이었다.

나도 요리하는 것 참 좋아하는데,

음식 만드는 것에 정이 떨어질 정도로 슬프고 비루한 식사 준비의 나날을 보냈다.

그분이 건넨 밑반찬과 레시피가 도착한 날은 '삶은 요리'였던 내 인생이

'죽음의 요리'가 되던 시절이었다.


마음 성장을 위한 모임이라고 해서 내적인 것만 판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몸이, 마음의 길과 일상의 여정이 다른 것이며

둘 중 하나만 중요한 것처럼 치우쳐버린다면 그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다.

마음 공부를 위한 모임일수록 일상의 이야기가 살아 있고,

먹을 것이 풍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에서 늘 좋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이유이다.

마음 공부를 위해서 급조(맞다, 급조가 맞다. 순간 떠오른 분들께 급 메시지를 보내어 구성되었으니)

모임인 꿈모임이 밤에 꾸는 꿈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무엇보다 존경과 신뢰를 나눴다.


어쩌다 이렇게 좋은 모임이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만들었고 이끄미로 있었으니 내가 잘한 것 같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늘 '나'라는 무거운 존재 하나를 끌고 다닌다.

어디선들 내가 다르게 했을까.

함께 모인 '나'들의 역동이라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내어 놓는 아이처럼 자기 내면을, 가진 것을 그냥 내놓았기 때문일 터.

송년 모임의 키워드는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내내 '천사'였다.

누가 천사인지는 시시각각 바뀌었지만,

선물교환으로 받은 앞치마를 한 내가 마지막으로 

천사를 찾아 싸바, 싸바, 싸바, 춤을 추었으니 마지막 천사는 '나'인 걸로.

모든 '나'인 걸로.


"사랑이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상처받지 말고, 사랑 받는 곳으로 가야한다"







나이 50이 되는 해였다. 100 살을 살지 못할 텐데 '반'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생의 의미'를 붙들고 싶은 탓일 터이다. 쉰이라는 나이를 거의 한 번도 인식하고 살지 않았다. 연말이 되어 송년회란 이름으로 모여 돌아보니 이제야 나이가 보인다. 그 어느 해보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말하기에는 외적인 조건은 좋지 않았지만,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요란하지 않거나 의례적이지 않은 송년모임들이 인증해준다.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곳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상처 받고 찔려 피흘리는 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라 한다면, 그것도 인정!이다. 


아, 올해 내게 의미 있던 곳은, 다른 말로 하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목회자에게, 그렇다 그 누구도 아닌 목회자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들과 글쓰기로 만난 곳이다. 피해자, 또는 생존자라는 말로 당신에게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무엇이 됐든 틀렸다! 당신이 틀리기 전에 내가 먼저 틀렸었다. 첫 모임에 가면서 누구보다 긴장했다. 상상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한 모든 것이 다 틀렸고, 빛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빛을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자신의 빛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쓸 수는 없다. 8주 씩 두 번의 글쓰기 자조모임을 하면서 많이 울었고, 분노에 치를 떨기도 했다. 


1,2기 함께 모여 송년회를 했다. 낭독회로 모였다. 낭독회 다녀와 페이스북에 남긴 소회를 다시 올린다.


글쓰기로 만난 사이였는데 이상하게 목소리와 말투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매 시간 써 온 글을 소리 내어 읽었고, 사려 깊은 수다(소리)가 끝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리라. 글쓰기 자조모임 송년파티 낭독회가 있었다. 두어 시간 앉아서 눈물 찔끔거리고 웃었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참 좋다. 어쩌면 사람의 목소리가 저렇게 다른 빛과 결을 가지고 있을까. 눈을 감고 들으면 더 신비롭다.


며칠 약한 두통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다. 반가운 얼굴이 들어올 때 살짝 심장이 들썩거린 순간인지, 마주앉은 이의 눈물에 공명하던 순간인지, 와하하하 웃던 순간인지. 이 모임에 앉아 있으면 모두가 나 같다. 피해와 상처도 내 것 같고, 그것을 돕는 일에 치인 활동가의 피곤함도 내 것인 듯하고, 나는 당연히 나다. 오늘 낭독회에서 들은 글의 일부이다.


자조 모임. 막연하게 거부감이 들었고, 마음 깊은 곳에선 겁이 났다. 나는 자조 모임 초기에 자주 세상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썼다. 나는 내가 내밀하게 감각하고 오래도록 사유한 것들을 모래 속 자갈 골라내듯 투박하게 다루는 세상이, 실로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슬펐다’, ‘분노했다처럼 내 언어들도 단순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면 설명하지 않아도 됐고, 그러면, 판단 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조 모임을 통한 글쓰기는, 내가 방치한 기억들에 세세한언어를 부여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뭉개놓았던 기억들을 끌어올려서 가만히 펼쳐놓고 조금씩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나를 온전히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내 감정에 집중한 채로 내 기억을 쓰다듬고 매만지면서, 나는 무엇이 고통이었고 왜 고통스러웠는지를 직시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가해자의 그루밍에 길들여진 자아가 영혼에 가하는 자해. 그것이 내 부끄러움의 발로라는 것을 자조 모임을 통해 배웠다. 그 배움 덕에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최초의 기억따윈 없었다. 그 기억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환상이었다. 내 고통은 모두 그냥 그 자체로 진실이었다. 나는 자조 모임이 끝나고 고통을 느끼기를 주저한 내 자신을 꼭 껴안고 어를 수 있었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의 불가능성은 유한한 인간의 영원한 콤플렉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연결을 믿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일이 나를 들여다보듯 투명하게 타인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공간이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고통이 언어가 되어 쏟아져 나올 때 최대한의 경청으로, 제 몸의 변화까지 겪어가며 있어 준 사람들 때문에. 나는 사실 지구의 밑동을 파고 들어가면, 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사실 이 분이 써오는 모든 글이 좋았다. 이미 자기 소설을 출간한 분이다.  헌데 이 글이 유난히 큰 소리로 들리는 이유가 있다. 글쓰기 모임 초반에 신형철의 글을 인용하여 ‘타자의 이해불가능성’에 대한 글을 써오신 적이 있다. 그때의 이해불가능성은 건널 수 없는 강, 건널 필요도 없는 강 같았다. 냉소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지구 밑동을 파고 들어가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니! 연결을 믿는다니! 아, 확실히 이 말에서 내 두통이 사라졌다.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뇌가 확 열리면서 뉴런이 마구 밖으로 뻗어나가 둘러앉은 모든 이들의 뉴런에 접속되는 느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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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에 한 번 어린이집에서 아가들 음악수업을 빙자하여 발달체크도 하고 부모 상담, 교사 교육도 한다.

가끔 보는 장면인데 볼 때마다 마음이 한참 머문다. 생선 반찬이 나오는 날엔 선생님들 너나 없이 위생 장갑을 끼도 생선 가시를 발라낸다. 그러고 나면 냄새에 물리고 질려 정작 자신은 먹지 못한다고 한다. 20대 초중반 나이 선생님도 있다. 집에서 자기 먹을 생선을 저렇게 살뜰하게 정교하게 바를까? 집에서라면 가시 발라내는 게 귀찮아 아예 안 먹을 지도 모른다. 생선 가시 발라내는 저 모습은 보기 좋다고 말하기 뭣한 야릇한 뭉클함이다.

뉴스 하나가 제대로 터지면 포털 검색어가 우르르 한 곳으로 몰리고. 한 집단을 싸잡아 비난하고 증오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애초 선한 집단 악한 집단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거침 없이 갈라치고 혐오한다. 무서운 세상이다. 뉴스 한 번 터질 때마다 어린이집 선생이란 이유로 두려워 하고 위축되는 모습을 본다.

어느 집단에든 사람이 있고, 개인이 있다. 평생 발라 본 생선 가시보다 더 많은 양의 생선 가시를 하루에 마지고 있는 젊은 선생님. 유난히 행동이 많은 아이들이 몰려 일년 내내 기 빨리며 씨름하다 결국 탈진하여 상담소를 찾는 선생님. 자기 몫을 감당하는 사람들, 가끔은 자신을 해하며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다. 생선 가시 발라내는 저 손들, 이 얼마나 고귀한 하찮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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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공과 본업은 음악심리 치료사입니다. 아이들을 치료했고, 요즘은 학부 전공까지 살려 어린이집의 아기들 치료교육과 함께 부모 상담으로 일주일 중 하루를 보냅니다. ‘유리드믹스’라는 음악교육을 하며 아이들 발달을 개별 체크 하고, 이것을 근거로 부모 상담도 합니다. 전공에 부합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노래 ‘도레미송’을 시작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OST로 한 6주 수업을 했습니다. 각각의 음이 개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교육적, 치료적으로 큰 의미이지요. 이 빨간 원통 안에는 음악 선생님보다 노래를 쪼~금만 더 잘하는 아줌마가 들어 있다는 말을 아이들은 철썩 같이 믿습니다. 스피커만 보면 '어, 아줌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합니다. 예, 줄리 앤드류스, 즉 마리아지요.

마리아의 노래를 들려줄 때는 꼭 아이들 입에 m&m 초콜릿을 하나 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줌마가 전해달래. "음악은 달콤한 거야. 초콜릿처럼!" 6주 동안 미각과 청각에 동시 자극받은 아이들 기계적으로 말합니다. (초콜릿 통에서 눈을 떼지를 못하지요) “음악은 달콤한 거야, 초콜릿처럼”


오늘은 마리아 아줌마와 작별하는 시간입니다. (음계, 도레미송으로 뽕을 뺐다는 얘기지요) “아줌마가 오늘은 어떤 친구를 데려왔어. 아줌마의 친구가 새로운 노래를 들려줄 거래. 들어볼래?” 트랩 대령의 ‘에델바이스’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 저 표정을 보십시오. 달콤한 음악에 빠져든 저 표정. 예, m&m 초콜릿 한 알의 기적입니다.


물론 마지막엔 초콜릿 없이 에델바이스 왈츠 버전에 춤을 추었습니다. 이 시간을 위해 6주를 달려온 것이고요. 아이들, 음악, 춤. 이 셋은 자유의 삼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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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가요, 라고 톡을 보내고

헤벨레 옷차림 그대로, 부시시한 머리 그대로, 쓰레빠를  신고 나간다.

60초 후, 편의점 앞에서 만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로 시작되는 유안진의 수필이 생각 나지만,

이 수필 별로 안 좋아하니 이런 느낌이라는 얘기만 해두자.


이 낯설고 척박한 동네에서 

이렇듯 따뜻하고 정성스런 것을 나누는 이웃이라니!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창조성 담아 식혜를 만들고,

또 꿈틀대는 창조성에 조청을 만들고마는 여인이 있다.

그 식혜를 얻어 와 마셔본 남편이 "이거 장모님이 해주시던 맛인데"란다.

재료 중에 '엄마' 성분이 들었음에 틀림 없다. 


늦은 밤 편의점 앞에 서서

중년의 두 여자,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남다른 두 여자,

꿈을 꾸고 꿈에서 가끔 길을 만나는 두 여자,

비슷하지만 다른 길 가는 딸을 키우는 두 여자가 짧은 수다를 떤다.

조청 레시피 얘기, 딸들 대입 얘기, 결론은 딸내미 뒷담화.

 

그리움과 창조성이 농축된 작은 병과

군산 이성당 빵 서너 개를 맞교환 해 돌아온다.

맨 얼굴에 쓰레빠로 만나는 이웃,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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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맞는 돋보기가 없어서 ‘읽기’를 포기하신지 오래다. 

94세 우리 엄마. 

‘저녁 먹었응게 예배 드리야지. 같이 드릴려? 안 혀? 그려’ 

하고 가.정.예배 드리러 들어가셨다. 


설거지 하고 살짝 문 열어보니 돋보기 끼고 찬송가 펴놓고 부르고 계신다. 

어? 엄마, 보여? 

아니이, 잘 안 보이는디 그냥 감이루 보고 불러. 23장 맞지?” 17장 펴놓고 부르신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리라.


내가 확인한 바, 엄마의 가정예배는 쉬지 않고 50년 째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 우리를 닦달하던 시간이다. 

아주 그냥 저녁마다 정말 고달픈 시간! 

식구들 다 떨어져 나갔는데 원망도 그 무엇도 없이 혼자 여전히 지키는 가정예배 시간이다.


동생 식구가 휴가를 가서 아기가 된 엄마 돌보러 친정에 왔다. 

저녁 먹고 앉아 1000번도 더 들었던 몇 개 남지 않은 인생 에피소드 레퍼토리를 꾹 참고 들어드렸다. 

그리고 엄만 예배를 드리러 들어간다. 

저런 엄마 팔아서 쓴 원고를 넘기곤 온 날이다. ㅠㅠ 그

래서인가. 더욱 마음이 저릿하고, 지난 세월이 미안하고..... 같이 있어도 벌써 그리운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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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주제로 각종 단체와 교회에 강의하러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새벽 6시 강의는 처음입니다. 5시10분 분당 출발, 5시 55분 쌍문동 도착.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한 영장산과 도봉산을 한 시간 차로 마주했습니다. 


'피택 장로님을 위한 교육'에 초대 받아 간 것입니다. 새벽 강의라니,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초대하신 목사님을 알기에 기꺼이 가게 되었습니다. 예비 장로님 교육의 주 내용이 다름 아니라 '렉시오 디비나' 등의 기도 훈련과 영적 식별 등이라니요! 새로 부임하신 교회에서 조용히 준비된 만큼의 목회철학을 펼치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영적 우월감에 빠져 삶과 신앙의 정답을 다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자아팽창에 허덕이며 과도한 확신 속에 교인들의 영적 삶을 통제하지요.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폭력적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며 교인들 각자의 영적 여정을 겸허히 인정하는 분들이죠. 


몇 주 전, 어느 교회 수련회에 가서 뵌 목사님 모습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의안 올려놓고 강단으로 쓸 탁자(수련회 장소니까 식사 때는 밥상으로 쓰인)를 살피시다 ‘어이쿠, 상이 끈적하네.’ 하며 닦으시더군요. 그냥 본인이 닦으셨습니다. 


근거 없는 영적 우월감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내어주는 목사님들이 좋습니다.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저 산처럼, 그런 목사님들 건강하게 든든히 서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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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인연이 있다.

명동성당을 언저리를 맴돌다  만난 성당 언니들이 있고,

성당 언니들을 가르치는 불자(佛子)이신 선생님도 계시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배우는 여정에 만난 분들이다.


신심 깊은 성당 언니가 암은 문턱에 섰다 깨달은 간증이 뜨거웠다.

지적인 욕구가 높은 이 언니는 개신교의 은퇴한 철학교수의 가르침에 빠져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 깊은 철학적 성찰, 그리고 명상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했다.

명상의 유익에 대해 또 열변을 토하셨다.


어, 그런데 명상이라고 하셨나?

내가 아는 어떤 가톨릭 신자보다 믿음이 뜨거운 분이고,

마음공부와 영성에 관해 모르는 것, 안 해본 것이 없는 분이다.

선생님, 명상이라고 하셨어요? 향심기도가 아니구요? 라고 했더니.

향심기도 열심히 했는데 모르던 것을 명상으로 배우니 알겠더란다.


담을 넘어 가 배우는 기쁨과 두려움, 신선함과 막막함을 안다.

평생 들어 귀에 딱지 앉은 얘기를 새로운 언어로 들을 때 무릎 치며 알아듣고

귀에 딱지로 남은 평생 배움의 진가를 그제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신비롭다.


80, 60대 선생님(이라 쓰고 언니라 읽는다)들 사이에서 막내 역할을 맡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밥 생각 없으시지만 막내 배고프다니 헤어지던 발걸음 돌려 저녁 먹어(라고 쓰고 '멕여'라고 읽음)주심,

야야, 나는 이해가 안된다, 는 아주 일상적인 말로 내 종교가 가진 편협함을 가차없이 찔러주심.

재능과 꿈 덮어두지 말라고 사업계획 짜주며 먹고 살 걱정까지 해주심.

담을 넘어 만난 분들과의 수다가 사랑 노래가 되어 가슴에 남았다. 


불금의 명동에서 연가를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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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에 이우교회에서 사경회가 있습니다.

강사는 고신대원의 박영돈 교수님이십니다.

남편이 존경하는 은사님이시고요.

그야말로 따뜻한 통찰, 예리한 공감으로 저술, 설교, 페북 글이 모든 인기 최고이지요.

어제 남편이 박영돈 교수님 뵙고 왔는데

밤늦게 이런저런 신대원 시절 얘길 하다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고요.

분당 근처에 계신 박영돈 교수님 팬들께서는 오셔서 들으셔도 좋겠습니다.

 

13일 토요일 오후 7시 / 14일 주일 오전 11시 / 오후 1시30분


[박영돈 교수님, 과 남편, 과 나]

결혼하고 7년 째 되는 해에 남편은 신대원에 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던 꿈이라지만 ‘내적 소명’은 확실하나 그것으로만 선택할 일이 아니었기에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보려던 차,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의 아내 되기 원치 않으니 이 또한 좋은 싸인이라 여겨 결혼을 위해 장신대 도서관에서 입시 준비하던 책 싸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결혼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대학원도 하나 하고 7년의 시간을 보냈다. 숨소리만 들어도 그의 행복과 불행을 알아차리게 된 즈음,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를 신대원 기숙사로 떠나 보냈다. 대신 그가 당연하게 그렸던 광나루역의 장신대원(장로교신학대학원)이 아니라 천안의 고신(고려신학대학원)이었다. 나의 바람이었다. 당시 함께 다니던 교회가 고신교단이었고 나는 단지 남편의 진로 변경으로 인한 변화의 폭이 작기를 바랬다. 신학적 폭이야 남편의 연륜으로 충분히 품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무슨 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 안수’ 문제를 놓고 남편은 그야말로 1:17로 싸우는 막다른 골목에 선 적이 있다. 여성 안수 불가를 주장하던 분들이 당시 싸이 클럽에서 쓴 표현들을 나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여성 목사를 꿈도 꿔본 적이 없지만 그때 본 글들로 인한 상처는 쉬 아물것 같지 않다. 나이도 많고 웬만큼 인격도 되던 남편은 동기들의 신뢰도 얻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만큼은 외톨이가 되었다. 형 그럴 거면 장신대로 가시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날에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미워 했는지 모른다. 늦게 신대원 가는 것이 무슨 대역죄처럼 내 말을 넙죽 수용해준 남편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외롭고 슬픈 남편의 표정을 보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 어떤 경우에도 사모의 역할을 강요하진 않겠으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내게 있단 걸 미안해 했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가족을 두고 온 신대원에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안할수록, 슬플수록, 외로울수록 공부에 매달렸다. 그 시절 남편을 붙든 영적인 스승님이 박영돈 교수님이시다. 강의는 물론 그분의 삶과 일상의 고뇌를 통한 가르침이 그 보수적이고 경직된 신대원 생활에서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박 교수님의 연구조교를 하면서 교수님의 책 출간을 돕기 위해 혼자 이리저리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모른다. 교수님의 첫 책 <성령충만 실패한 자들을 위한 은혜>에는 남편의 남모르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나 역시 남편으로 인해, 또는 그저 한 독자이며 페북 팔로우어로서 박 교수님을 존경한다. (존경하다 실망한 지도자들로 인한 상처로 다시는 유명하신 분께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박영돈 교수님은 여전히 존경한다. 그분의 책이나 페북 글이 아니라 아주 작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알기에 그렇다.) 이번 주말에 박영돈 교수님께서 우리 교회 사경회 강사로 오신다.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떠올릴 때 감회가 남다르다. 교수님은 잘 모르실 것이다. 늦게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흔들리고 고독한 제자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신지, 그 목회자의 아내에게 얼마나 감사한 존재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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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를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송구영신 예배 설교 중에 인용된 시이다. '이삭의 우물'이란 교회 이름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는 대목이었다. 여러 번 파고 빼앗긴 이삭의 우물 중 하나의 이름이 '르호봇'이다. '숨 쉴 공간'으로 교회라고 한다. 비록 빼앗김의 상처로 시작된 교회이지만 빼앗긴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의 지경을 넓혀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는 것이다. 목자의 옷을 입은 종교인에게 상처 받은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시대, 앞선 경험자로 서서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고 한다. 


헨리 나우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상처 입은 치유자. 상처 받은 사람은 흔히 가시옷을 입은 사람으로 비유된다. 다시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지레 자기방어의 옷을 입는다. 십자가를 통과한 고통은 더는 가시가 될 수 없다. 치유의 인자가 된다. 예수님처럼, 헨리 나우웬처럼.


<영적 발돋움>에서 헨리 나우웬은 관계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적대감에서 환대'로의 변화라고 했다. 나를 만족시키고,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존재로 타자를 바라볼 때는 적대감과 냉대이다. 영적으로 깨어난 자의 관계는 '환대'이다. 의심과 적대감에서 '환대'로 극단적 입장 전환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온 단 한 사람이 실로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라는 것.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려는 것이 '환대'라고 시인의 입을 빌어 설교가 말했다.


2017년 마지막 날에는 [커피&메시지]라는 이름으로 메시지 성경 읽기를 함께 했던 청년들이 집에 왔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내 앞에 온 것이다. 2017년은 어마어마한 인생을 끌고 새롭게 내 앞에 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상징 아닌 실제 한 사람이 2017년 마지막 주일에 자기의 인생을 끌고 내게 왔다. 내 글을 읽고, 내 영상을 보고 내 교회를 찾아왔다. 나를 찾아 나의 공간으로 왔다. 그냥 나를 믿어줌으로, 찾아왔다. 이것에 내게는 더 없는 위로이며 환대였다. 그리고 그와 마주하여 그가 끌고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토닥토닥 하는 것이 동시에 나를 토닥이는 것이 된다.


헨리 나우웬을 읽으면서 늘 언감생심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또는 적대감 대신 환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다만, 지향할 곳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내가 될 수 있다 생각하진 않는다. 가만 두면 나는 나의 빼앗긴 것에 몰두하여 자기연민의 속옷을 입고 가시 겉옷을 입은 채로 일상을 서성거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안다.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헤아리는 것, 그것이 환대라면 환대는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그와 얼굴을 맞대야 비로소 마음을 더듬을 눈을 얻게 된다. 커피 한 잔, 떡볶이 한 그릇이라도 놓고 마주 앉아 얼굴과 얼굴을 맞대야 한다. 


나는 빼앗긴 것이 많아서 모두 되찾기가지 수없는 날 눈물로 기도 해야겠지만

나는 가진 어둠이 많아서 모두 버리기까지 수없는 아쉬움 내 마음 아프겠지만


하덕규의 <푸른 애벌레의 꿈>의 가사 일부이다. 환대 받고자 함이 아니라 환대 하고자 하고,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 마음 먹고 보니 나의 처지는 저러하다. 빼앗긴 것에의 서러움, 이미 가진 어둠이 그득하다. 그럼에도 사랑과 생명의 숨은 이미 내게 부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아쉬움과 어둠이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 가능함을 알고 있다. 한 사람,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온 사람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을 헤아리려는 경외심으로 가다듬는 한 나는 자유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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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교회 2017년 성탄절은 '선물'이다. 찬양으로 드린 성탄예배의 주제가 '선물'이었다. 조건 없이, 되돌려 받겠다는 슬픈 헤아림 없이 기꺼이 거저 주는 것이 선물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그 선물(the Gift)로 오셨다. 짧은 설교 후의 기도에 여러 번 감동 받아 목사님을 협박하여 입수했다. (딸 신앙고백문, 아빠 설교 후 기도문으로 연일 글 장사 중)



주님, 주님께서는,
높고 높은 왕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여물통 위에 뉘이셨습니다.
영광스러운 아들의 권세 비우고,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되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시고,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주님,
처녀의 몸 안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기적의 본질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마을, 이름없는 인생들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 것이야말로 참된 기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얻고, 새로운 생명에 눈을 뜨게 된 것이야말로 참된 선물입니다.


주님, 이미 오셨고, 앞으로도 오실 줄 믿습니다.
또한 오늘도 지금도 오고 또 오시는 줄 믿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 속으로,
무시당하고 냄새나는 가난한 이들의 식탁 속으로
보금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땀 흘려 일할 일터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상실한 유명하지 못한 을들 속으로,
뜨거운 불길과 화염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들 속으로,
오늘도 지금도 오고 또 오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
혼돈과 암흑의 시대를 가르고 한 줄기 큰 빛으로 이 땅에 임하실 때, 천군천사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 노래했습니다.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분열과 분쟁의 도시 예루살렘이 이날은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노래하게 하옵소서.
분노와 대립의 정치로 인해 집을 빼앗기고 정처없이 바다위를 떠다니는 난민들을 불쌍히 여겨서 평화의 마을에 안착하게 하옵소서.
아직도 완전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 한반도 땅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거짓 평화와 억눌린 계급사회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향해 출애굽 노예들의 노래를 부르는 북녘의 고난받는 백성들의 기도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밤낮 노동으로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앙망하며 성령 안에서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배제되고 빼앗기고 모함받고 조롱받았으나, 오늘도 목마른 마음으로 우물을 파는 우물지기들이 모였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호모쑤마돈을 체험하는 성령의 공동체가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형제자매의 다름을 존중하고, 주님을 향한 각자의 생각을 신뢰하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저마다 빛을 내되, 성령님 안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기적과 감동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소망 담아 드리는 오늘의 찬송을 기쁘게 받아 주시길 소망하며,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며 더 큰 자유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중에 교회로 한 통의 성탄 선물 편지가 도착했다. 어떤 인연으로 교회에서 돕고 있는 북한 이주민 가족 이야기, 가장인 아빠가 쓴 편지이다. 여러 사연이 있고, 성탄 예배 설교 시간에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 양치는 목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도착했음을 천사들이 알렸다. 예수님의 탄생은 한 마디로 '비천' 그 자체이다.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 삶의 방향이 달라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편지에 담겨져 있다. 담안에서 온 편지이다.

몇 년째 성탄 오후에는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 드리는 성탄예배'에 가곤 했는데. 성탄절 저녁에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곳은 편지 속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와 딸이 사는 곳이다. 선물을 들고. 다섯 살 아이가 좋아할 핑크색 케잌과 쌀 한 자루이다. 시골에 계시는 이모가 보내주신 쌀이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이모가 '내가 살아 있을 때나 이렇게 보내지' 하며 어려운 형편에 보내주신 쌀이다. 이모의 선물이다. 선물이 오고 간다. 비천한 우리들 사이에 이렇듯 선물이 오고 간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다녀온 채윤이는 아주 흥분을 했다. 다섯 살 아이가 너무 예쁘고, 말도 잘하고. 잠깐 놀아주는데 참 좋았다고. 아이가 그린 그림을 선물로 받아왔다. 이번 성탄절에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매주일 교우들이 돌아가며 준비한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데, 주일 밥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다. 일 년에 한 번 성탄절 점심 식사는 더욱 풍성하다. 불이 없어서 조리를 할 수 없는 주방이라 집에서 조리한 음식을 냄비 째로 양푼 째로 들고 들어오신다. 남 모르는 수고와 정성으로 맛을 낸 선물의 향연이다. 


나는 수십 년 만에 성탄절에 중창을 다 했다. 알토로 노래를 불러본 지가 언제던가. 어떻게 멤버를 만들다 보니 올해 내게 큰 위로를 준 선물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성탄 찬양 중 백미로 치는 곡. 그 중에도 가장 사랑하는 가사 '진리는 오묘하고 사랑은 성결해' 부분을 솔로로 부르는 영광까지. 선물이 되는 삶, 그 오묘하고 거룩한 삶을 살라고 부르신다. 


귀중한 보배합을 주 앞에 드리고 우리의 몸과 맘도 다함께 바치세

진리는 오묘하고 사랑은 성결해 주께서 탄생하신 거룩한 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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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일에 예배가 없다는 말을 한참 전에 들었다. 일명 ‘흩어지는 예배’. 식사 당번 팀이 네 팀이라 다섯 째 주 식사문제 때문인가, 이러저러 그러한가 보다 싶었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들어본 적이 있어서 그다지 신선한 느낌은 아니었다. 두어 주 전 설교 시작 전에 흩어지는 예배에 관한 안내를 들었다. 아하, 이러저러한 뜻이 아니라 요래요래한 뜻이 있었구나! 싶었다. 광고 내용이며, 교우들 카톡방에 정리되어 올라온 내용은 이러하다.

 

종교개혁기념주일에 우리 이우교회는 <흩어지는 예배>를 드립니다. ‘모여서’ 무언가를 듣거나 배우는 게 아니라, ‘흩어져서’ 따로 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이 예배가 성도님들 각 개인마다 남다른 의미와 은혜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교회주의에 중독된 우리의 혼미한 정신을 흔들어 깨워 그리스도의 몸을 좀 더 광대하게 체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혹시 주일 본교회에서 헌신하여 섬기다보니 부모님 또는 자녀들과 뿔뿔이 흩어져 예배드리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이번 기회에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종교개혁기념주일이니, 이참에 타교단 예배를 드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성결교, 순복음, 장로교, 여러 교단 교회가 있지요. 좀더 다른 방식으로 예배드리는 교회를 가보는 것도 꽤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교회에서 힘겹게 섬기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나요? 그런 교회에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청년 시절 함께 했던 선배가 사역하고 있는 제천의 작은 교회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흩지 않고 불러 모으셨습니다. 지난한 여정 속에서 흩어지지 않고 여기 이삭의우물에 모였습니다. 이제 한 번 흩어져 보려 합니다. 더 잘 모이고, 우리의 소명에 더 충실코자 함입니다. 주님께서 동행해주시고 은혜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 드렸던 세 가지 기억하시죠?


1. 10분 일찍 가서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우리 교회인양 기도합니다)

2. 교회 밥 주면 밥 먹고 오기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3. 헌금 꼭 하고 오기

(평소보다 더 많이 하십시오)


내겐 특별히 세 가지 숙제(지침)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렇지! 내 교회 네 교회가 없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어느 교회 가서 예배 드리더라도 가르고 경계 세우는 버릇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살짝 감동이 밀려왔다. 이후 교회 모임에서 간간이 들리는 대화. “집사님은 이번 주 어느 교회 가?” 허용된 일탈을 계획하는 대화가 신선한 설렘으로 들렸다. 한 집사님은 어머님 다니시는 교회에 가신다면서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냐신다. 수십 년 교회 생활 하면서 주일 봉사 같은 것에 매여서 다른 교회 가서 예배 할 수 있다는 상상을 못했다며. 수십 년 만의 색다른 효도가 되는 것이다.





우린 제천 의림지 옆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예배 드렸다. 20년지기 친구 M의 남편 K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이다. 작은 교회 앉아 예배 드리며 어릴 적 자랐던 충청도의 교회가 생각났다. 그때의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처럼 시골의 작은 교회를 오랜 시간 섬기며 살아가는 친구와 목사님. 친구에 대한 마음 떄문이 이미 남의 교회 같지 않다. 그것이 아니라도 이 땅의 모든 교회, 내 교회 네 교회일 수가 없다.


덤으로 얻은 것이 많다. 제천의 가을에 머물러 20년 전 청년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을 걸었다. 내겐 친구, 남편에겐 누나인 M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시절 번뇌 가득한 얼굴로 기타 치던 종필이가 다시 살아오더군. 목회자 커플 네 사람이 주일 아침 예배로 시작하여 밤늦도록 함께 했다. 함께 탁구 치고 밥 먹고 수다 떠는 모든 시간이 좋았다. “주일을 이렇게 함께 보내다니! 믿어지질 않네. 흩어지는 예배, 좋네!” 형편과 처지는 다르지만, 답이 없는 얘기지만 비슷하고도 다른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간 동안 마음이 펴지고 얼굴이 펴졌다. (주름은 안 펴진다 ㅠㅠ)


친구가 챙겨준 잘 익은, 밥을 부르는 맛있는 김치 한 통은 덤앤덤.




흩어지는 예배의 복을 밤 늦도록 누리고 청풍호를 내려다보며 일박. '자드락길'이라는 처음 만난 길을 걸었, 아니 기어 올랐다. 포기하지 않고 가장 높은 전망대까지 올라 만난 멋진 풍경은 덤앤덤덤. 걷는 길인 줄 알고 시작했으나 등산 길이었다. 꽃길만 걷고 싶은 인생길, 언제 한 번 상상한 그대로의 꽃길이었던 적 있었냐며, 되돌아 내려가지 않았다. 여러 번 뷰 포인트를 만났다. '이 정도면 됐네' 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는데 이왕 내딛은 길 힘들더라도 한 번 끝까지 가보자. 어머어머, 중간에 포기했으면 어떡할 뻔 했나! 멀리 뵈던 바로 그 전망대에 올라서 본 풍광은 웬만했던 아래 쪽 풍광과 비교할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얻은 안구정화 풍경 안에 그림자로 안긴 저 사진 한 장은 덤앤덤덤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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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서울역이서 만나"


86세 이모가 93세 엄마에게 말했다. 사랑 깊은 자매가 그리움 가득 안고 서울역에서 만난다? 특별할 것 없는 설렘이겠으나 실현 불가, 환상 같은 일이다. 그래서 눈물 겹도록 황당하다. 93세 엄마는 타인의 도움 없이 현관 출입도 못하신다. 86세 이모는 그 연세에 건강하고 씩씩하여 엄마 생신 때마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충청도 공주에서 김포까지 찾아 오셨었다. 등에는 콩, 고추 같은 선물 가득 짊어지고 말이다. 이제 그 이모의 기동력조차 쇠했다. 혼자 김포까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신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이모는 공주의 쓸쓸한 집 안방에서 전화로 안부를 묻고, 기도제목을 나누며 눈물짓는 일상이다.


엄마를 모시고 있는 동생이 '언니, 서울역이서 만나' 자매의 눈물겨운 통화 내용을 듣고 명절 끝에 93세 엄마를 모시고 공주에 다녀왔다. 허리 아파서 긴 시간 차 탈 수 없다는 엄마를 설득하고 설득하여 모시고 내려갔다. 마지막 만남이 아니겠냐며.


"느이 엄마는 나한티 언니가 아니라 엄마여. 언니라고 헐 수가 옶어" 이모는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엄마는 평생 신산한 삶을 사는 이모를 떠올릴 때마다 "너머 불쌍허다. 너머 불쌍혀' 하며 눈물짓는다. 93세 이모와 86세 이모의 눈물 없는 만남은 이땅이 아닌 천국, 그곳이 더 가까운 실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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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동생의 존재는 내게 '전쟁터 세상'을 가르쳐주었다. 맛있는 것, 좋은 것을 독차지 할 수 없는 세상. 둘 중 하나가 혼나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든 나는 살고 봐야 하는 세상. 동생을 마주하면 알 수 없는 전투력이 뱃속에서부터 꿈틀거린다. 친정에 가서 동생과 식탁에 마주 앉으면 가장 맛있는 걸 빨리 먹어치워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생긴다. 옛날 옛날에 몸에 밴 습관이다. 내가 덜 가지고 덜 먹는 건 상관 없지만 동생이 더 먹는 것, 더 가지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이왕 혼난다면, 어떻게든 동생이 한 개 더 혼나게 만드는 것이 어린 시절 중요한 이슈였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공격이 가정예배 시간에 웃음보 터트리기인데. 돌아가며 성경 읽는 시간에 내가 읽는 부분이 끝나고 동생이 받아 읽어야 할 순간. 말실수 같은 걸 던져서 동생 웃음보가 터지면 압승이다. 수습되지 않는 웃음보는 결국 예배 끝나고 혼나는 걸로 마무리 되기 때문이다. 기도 시간에 엄마 아버지 눈 감고 있을 때 둘이 눈 뜨고 소리 안 내고 웃기는 건 리스크가 큰 모험이지만 자주 감행했다. 설령 걸려서 혼나더라도 나보다 동생이 1만 더 혼나면 만족이었다. 그때 계발한 기술이 콧구멍 벌렁거리기 같은 것이다. 소리 안내고 눈만 마주치면 웃길 수 있는 테크닉이다.


아웅다웅 티격태격 엄청 싸워댔다. 가끔 육박전도 했는데, 국민학교 5, 6학년 때 쯤 어느 날, 늘 하던 개싸움 육박전이 시작되자마자 동생이 먼저 나를 깔고 뭉개는 전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로 육박전은 조용히 그만 두었다. 늙은 엄마 아버지를 놀리기 위해서는 가끔 의기투합을 하기도 했다. 엄마가 하는 방언 기도나 찬송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 등. 어찌됐든 동생의 존재는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독차지' 하고픈 내게는 치명적인 걸림돌이었다. 동생 앞에만 서면 전투력이 상승했다. 현명한 부모님이 최소한의 싸움을 위해서 몇 가지 원칙을 주셨는데 그 중 하나가 '반띵의 원칙'이다. 손님이 오셔서 용돈을 주시는 행운의 불로소득이 있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문제는 둘 중에 하나만 집에 있는데 손님이 오신 때이다. 동생이랑 나눠가져, 라는 말일 붙이는 경우와 그냥 주시는 경우. 내게는 엄청난 차이인데 밖에 있다 돌아온 동생에겐 내게 없는 돈 100원이 누나 손에 있다는 것 외에는 보이지 않으니 내놔라, 누나가 안 주면 엄마가 주라, 난리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래서 만드신 법이 '반띵의 법' 일명, 남내 불로소득 공산주의 시스템이다. 손님이 나눠 가져라, 하지 않아도. 예기치 않은 모든 불로소득은 무조건 반띵이었다. 100원이 생기면 50원 씩, 50원이 생기면 집 앞 가게에 가서 '10원 네 개랑 5원 두 개로 바꿔주세유' 해서 나눠 가졌다.


# 간만에


김포에서 흑석동으로 주일 예배 가는 날이 엄마에겐 최고의 날이다. 아침에 예배 전에 태워 드리고, 오후 예배 마치면 모시러 가는 것이 동생의 주일 일상이기도 하다. 주일 집에 가는 길에 꼭 동생이 전화를 한다. '누나, 엄마가 나 돈 줬다.' 우리 자랄 적에 그렇게 돈돈 하던 엄마가 돈에 대해서 완전 '내려놓음'이 되어가지고. 돈이 좀 모여지면 주는 게 일이다. 주일에 교회 가면 최고령 권사님인 엄마에 대한 애정으로 몇 만원 씩 용돈을 드리는 분이 계신가보다. 그걸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동생에게 기름값이라며 주고, 동생은 여지 없이 내게 전화하여 염장질을 한다. '엄마 바꿔, 엄마 바꿔! 엄마, 운형이 돈 주지마. 나도 줘.' 폰에 대고 떼를 쓰면 엄마가 무척 좋아하신다. 그러면서 또 '야야, 나 데리고 사느라고 운형이 선영이가 심(힘)들어. 나 먹을 거 사다 대고 심(힘)들어. 노인에 하나 데리고 있는 게 얼매나 심든줄 아냐?' 하신다. 주중에 전화를 했더니 '얼라, 우리 딸 보고 싶었는디 전화를 혔네.' 하기에 '엄마, 운형이 돈 주지 말고 모았다가 나 줘. 20만원 모아 놓으면 내가 엄마 보러 갈게. 나 보고 싶지? 운형이 주지 말고 20만원 모아 놔.' 생떼를 썼더니 또 좋아한다. '얼라, 너 사모가 그르케 돈 좋아허믄 못 써. '하면서도 '20만원...... 은 그거 나라에서 주는 거 그게 나와야 되는디..... 궁시렁궁시렁' 하다 끊었다.


# 메소드 연기


며칠 뒤어 엄마를 보러 갔는데 신실아, 신실아 조용히 부르더니 꼭 쥔 주먹을 내 손바닥 위에 놓는다. 눈 찡긋, 찡긋. 빨리 집어 넣어. 우힛, 꼬깃꼬깃 만 원 열 장이내 손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동생과 마주 앉았다. '엄마, 누나 돈 줬어?' 이 순간 와, 우리 엄마 메소드 연기. '참나, 내가 돈이 어딨다고 돈을 줘워?' 천하에 촉 좋은 동생이 속았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시침 뚝 연기였다. 며칠 후 동생하고 통화하며 '야, 엄마가 나 돈 줬다. 몰랐지?' 제보하고 '엄마 취조하고 재밌는 거 있으면 말해줘' 했다. 좋은 것 두고 무조건 경쟁하는 것이 습관이 된 남매, 평생 남매 사이에서 알아도 모르는 척(엄마, 아까 낮에 오셨던 아버지 친구 목사님이 누나 돈 줬지? 나 없을 때 줬지? '아니~이!'), 몰라도 아는 척(엄마, 낮에 오신 목사님이 누나 100원 주셨어? 200원 주신 거 아니지? 누나가 나 50원 줬어. '50원 줬으면 100원 받았겄지~!) 했던 엄마. 93세 메소드 연기 엄마는 아들의 취조에 어떻게 응할 것인가, 두둥!


#  93년 내공의 리액션


이제부터 동생 보고이다. 운동하러 나가면서 엄마 방문 앞에서 달달하게 인사했단다. 엄마, 운동 갔다 올게~/(엄마는 침대에 누운 채로 아이컨텍을 위해 고개를 한쪽으로 든 귀여운 모습으로)이이~ 그려, 갔다 와/엄마, 선영이도 탁구 치러 갔으니까 2시 쯤 올 거야. 늦는다고 뭐라 하지마/(천진난만 밝고 순한 표정으로)그려~어, 알었어/그런데 엄마, 엄마 누나 돈 줬어? 두둥~/(귀엽게 들었던 고개를 체념하듯 베개에 떨궈 누우며, 단호하고 무표정하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려.서?! /줬다더니! 얼마 줬어? 누나 얼마 줬어?/(더욱 단호하고 시크하게) 니가 경찰이야? 니가 경찰이냐고?


이런 예측불허의 93세 시트콤 주인공 같은 노할머니라니!


* 벌써 10여 년 전의 사진이다. 엄마는 지금 성경을 읽지 못한다. 돋보기의 도수를 최고로 올려도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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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통령 사생팬이 여럿이라.....

열여덟 딸은 아빠 따라 서점 갔다 타임지를 사오고,

아빠는 대통령 블랜딩 원두를 사오고,

엄마는 팬심 가득 담아 커피를 내렸는데.

커피잔 선택은 퍼스트캣 찡찡이 연상시키는 키키 고양이 잔으로 아들의 선택이다.


콜롬비아를 베이스로 블렌딩한 커피 맛은

역시나 구수하고, 중후하고며 어느 한 구석 모나거나 껄끄럽지 않다.


대선 전후로 정치덕후가 된 딸은 청와대 조직도를 외워 줄줄 꿰고 있는 상황이고.

이 딸.

뮤지컬 배우, 재즈피아니스트, 김밥집 사장님 경유해서

'청와대 직원'으로 장래희망이 또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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