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가요, 라고 톡을 보내고
헤벨레 옷차림 그대로, 부시시한 머리 그대로, 쓰레빠를 신고 나간다.
60초 후, 편의점 앞에서 만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로 시작되는 유안진의 수필이 생각 나지만,
이 수필 별로 안 좋아하니 이런 느낌이라는 얘기만 해두자.
이 낯설고 척박한 동네에서
이렇듯 따뜻하고 정성스런 것을 나누는 이웃이라니!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창조성 담아 식혜를 만들고,
또 꿈틀대는 창조성에 조청을 만들고마는 여인이 있다.
그 식혜를 얻어 와 마셔본 남편이 "이거 장모님이 해주시던 맛인데"란다.
재료 중에 '엄마' 성분이 들었음에 틀림 없다.
늦은 밤 편의점 앞에 서서
중년의 두 여자,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남다른 두 여자,
꿈을 꾸고 꿈에서 가끔 길을 만나는 두 여자,
비슷하지만 다른 길 가는 딸을 키우는 두 여자가 짧은 수다를 떤다.
조청 레시피 얘기, 딸들 대입 얘기, 결론은 딸내미 뒷담화.
그리움과 창조성이 농축된 작은 병과
군산 이성당 빵 서너 개를 맞교환 해 돌아온다.
맨 얼굴에 쓰레빠로 만나는 이웃, 얼마나 큰 축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