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번째 노래


가끔씩 내 인생의 첫 번째 노래
, 첫 음악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다. 꽤 만족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 어떤 이유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지고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재미와 의미를 다 누리는 삶이라는 자부심의 힘이 컸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도 않았었으니 조금 정서적 과장을 하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운명 같은 만남으로 음악치료사가 되었다라고 혼자 소설을 쓰기도 한다. 성악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형편 상 그것은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음..치료사이다. 음악과의 운명 같은 만남은 생애 첫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신앙심이 좋은 엄마는 늘 나를 안고 찬송가를 불러줬다.(고 하셨다.) 우리 큰 아이를 키워주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 어린 시절을 그려볼 수 있었다. 생후 한 달이 안 된 아이를 안고 친정엄마는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셨다. 그리 잘하는 노래도 아니었고, 가사는 물론 음정도 엉망인 노래들이지만 그 모습은 적잖이 감동이었다. 내게 음악이 운명이 되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결국 운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생애 첫 노래도 그러했을 것이다. 눈맞춤은 커녕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신생아인 나를 안고 엄마는 노래하셨을 것이다. 품에 안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노래하셨을 것이다. 가끔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란 말인가, 감동에 겨워 목이 메었을지도 모른다. 나 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많은 이들에게 기억을 해내진 못하더라도 이런 엄마의 노래가 무의식 어느 구석에 살아있을 것이다.

 

음악 하는 엄마, 내 아이의 음악치료사 되기


지난 세 번의 지상강의를 통해서 우리는 음악치료 대상 중 지적장애
, 정신질환, 노인질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음악치료의 대상은 발달장애, 신체장애, 여러 감각장애는 물론 일반의료 분야, 장애나 질병이 없는 일반인까지 폭넓다. 왜 아니겠는가. 음악은 언어 그 이상의 의사소통 수단이기에 장애와 비장애, 질병과 건강의 상태를 아우를 수 있음은 당연하다. 또 우리는 음악이 사람의 신체, 심리, 사회적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음악치료의 대상 가운데 음악적 자극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결과을 얻을 수 사람들은 누구일까? 단언컨대, 아기들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음악적인 자극을 흡수하는 힘이 크다. 음악적 자극뿐이겠는가. 뇌세포가 활발히 형성되는 시기이고 온 몸으로 세상을 느끼는 시기이기 때문에 어떤 자극이든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시기라고 한다. 장애 아동든 정상발달 아동이든 막론하고 음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어리면 어릴수록 더 크리라는 것이다. 음악치료사들 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무슨 맘, 무슨 맘, 해도 뮤직맘이 최고다! 아기에게 노래불러주는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없다.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는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가장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연재글 음악치료의 세계마지막 회인 오늘의 주제는 엄마의 노래이다. 음악을 전공한(아니 굳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음악에 대해서 전혀 몰라도 상관없다.) 엄마들이 자신의 아기들과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음악치료적 팁을 드리려고 한다.

 

지금 여기서 아이와 함께 뮤직에 샤워하기

 
음악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엄마들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 손을 잡고 문화센터를 찾고, 장애를 가진 아기를 휠체어에 태워 음악치료실을 찾는다. 교사나 치료사에 의해서,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진행되는 음악활동이 아이의 발달에 유익을 끼친다고 할 때, 일상생활 속에서 늘 함께 하는 엄마가 해주는 음악놀이야 말로 더 없는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음악은 집과 유치원, 학교, 일상생활 어디에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음악이라는 멋진 도구를 손에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의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손에 들려진다면, 그리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엄마에 의해서 잘 사용되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놀잇감이 없을 것이다. 아니 너무 바빠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짧은 엄마라도 그 시간을 음악을 가지고 아이와 교감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엄마는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심장박동과 따뜻한 목소리로 최초의 소리를 제공한 당사자이다. 그리고 많은 엄마들이(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자장가를 들려주면서 아이를 재우고 달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온 과정을 눈으로 지켜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함께 자랐던 엄마는 누구보다 아이를 제일 잘 안다. 엄마 치료사,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음악놀이는 엄마 자신에게도 같은 유익을 줄 것이다. 음악활동을 하는 동안, 예를 들어서 노래를 부르며 동시에 화를 내기는 어렵다. 아이와 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을 듣는 동안에 아이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어렵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음악으로 논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아이의 부정확한 음정이 거슬리거나, 박자를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하며 하는 것 자체도 즐거움일 수 있다. 음악과 함께 지금 여기를 즐기는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어머니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 엄마가 음악의 매력과 즐거움에 흠뻑 젖어 있을 때 아이도 함께 행복감을 느끼며 누릴 것이다. 따로 시간을 떼에 놓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속으로 음악활동을 끌어들이는 것이 좋다. 다음의 노래와 활동을 재료삼아 더 풍성한 음악놀이로 응용하시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노래를 아이와 함께 부르실 수 있기를.

 

  <묻고 대답하는 노래>

 

준비물 : 없음.

 방법 : 노래를 충분히 익힌 후에 어떤 내용이든 묻고 대답할 수 있다. 엄마가 질문부분을 노래하면 아이가 대답하도록 돕는다. 처음에는 멜로디에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아이가 말로 대답하도록 하고 엄마가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를 불러준다. ‘채윤이가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인가요. 노래로 대답해 주세요.’ 라고 엄마가 노래를 불렀을 때 아이가 다영이라고 말로 대답하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다영이예요.’라고 엄마가 노래 만드는 것을 모델링한다. 반복하면 아이가 스스로 바로 노래로 대답할 수 있게 된다. 상황에 따라 어떤 질문도 가능하다. 과자를 사러 갈 때 채윤이는 무슨 과자 먹고 싶나요. 노래로 대답해 주세요.’라고 물을 수 있고, 기분이 어떤지, 지금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등. 묻고 대답하는 노래가 익숙해지면 엄마와 아이 사이 둘만 아는 비밀통로처럼 흥미로운 소통방식이 될 수 있다.

 

<피아노-테니스공 즉흥연주>

 

준비물 : 피아노, 테니스공 4.

방법 : 엄마와 아이가 두 개의 테니스공을 양손에 쥐고 테니스 공으로 피아노 즉흥연주를 하면서 교류한다. 아이의 연주를 그대로 따라하는 미러링(mirroring)을 해주거나, 아이의 연주를 따라하되 리듬을 조금씩 변형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새로운 리듬이나 연주방식을 모델링해주기도 한다. 연주가 끊어지지 않고 일정 시간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보다 자유롭고, 역동성을 금방 느낄 수 있어서 연주만으로 아이와 역동적인 교류를 할 수 있다.

   

<사랑해 사랑해>

 

준비물 : 없음

방법 : 아이의 이름을 넣어서 노래를 불러준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엄마가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러주기만 해도 좋다. ‘사랑해라는 말은 늘 하고 싶지만 말로 반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붙여서 아기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은 아기의 마음 깊은 곳에 잘 지워지지 않는 메시지로 새겨질 수 있다. 이 밖에도 아이의 이름을 넣어 축복의 말을 들려줄 수 있는 노래라면 어떤 노래든 좋다. 아이가 커서 스스로 노래할 수 있다면 엄마를 향해서 노래를 불러주고 스스로 스킨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면 안아주세요, 사랑한다면 간질러줘요, 사랑한다면 윙크해줘요.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탬버린 탬탬탬>

 

준비물 : 탬버린

방 법 : 엄마가 탬버린을 들고 함께 노래하면서 탬탬탬부분에서 아이가 탬버린을 연주하도록 대준다. 엄마는 탬버린을 높이 올렸다가 낮은 곳에도 놓아주면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엄마가 탬버린을 들고 도망 다니고 아이는 박자에 놓치지 않게 탬탬탬부분을 치기 위해서 엄마를 잡으러 다니는 방식으로 놀이를 할 수 있다.

 

  <섬 집 아기-트라이앵글>

 

준비물 : 트라이앵글

방 법 : 트라이앵글은 엄마가, 채는 아이가 들고 섬 집 아기노래를 부른다. 마디의 첫 번째 박에서 트라이앵글을 칠 수 있도록 엄마가 그 박자에 대주도록 한다. 단순한 활동이지만 어디서 연주해야 하는지를 말로 하지 않아도 엄마가 조절해줄 수 있고, 곡의 분위기에 맞는 느끼며 함께 소리를 내는 것이 트라이앵글의 공명만큼이나 정서적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색깔창문>

 

준비물 : 여러 색깔의 셀로판지

방 법 : 셀로판지를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도록 아이 눈 앞에 대주고 노래를 부른다. 가사 속에 보이는 사물의 이름을 넣어서 부르고, 아이가 익숙해지면 스스로 가사를 넣어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큰 아이들과는 가사에 담긴 의미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 나눠 볼 수 있다.

 

An die music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치료의 세계를 안내하던 이 연재글을 마친다. 짧지 않은 글이었지만 음악치료 세계의 숲을 제대로 보여드리지도, 그렇다고 나무를 세세히 알려드리지도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음악치료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음악치료 속에서 음악이 사람보다 앞서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음악은 철저하게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존재한다. 제럴드 무어(Gerald Moore)가 그의 반주인생 내내 자신의 피아노 소리가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늘 신경 썼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음악치료사는 어떤 의미에서 음악 소리가 사람의 소리를 압도하지 않도록 늘 신경 쓰는 사람들이다. 그가 자신의 고별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An die music’을 들으며 글을 맺는다.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상으로 얻은 젊음
, 벌로 받은 늙음


영화
<은교>를 떠올리면 바로 생각나는 대사가 있다.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 소설가 이적요의 독백이다. 늙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하는 영화였다. 몸은 마음보다 훨씬 빠르게 늙어간다는 것도 영화 <은교>는 아프도록 정직하게 보여주었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우아하게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며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늙음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장애인의 비율이 장애인 중에 90%가 사고 등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된 장애인이라고 보면 모든 비장애인들은 잠재적 장애인이다. 이렇게 보자면 노인질환에 관한한 잠재적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노인이 아니라 대기표를 받은 노인이다. 잠재적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이 사고를 당하여 장애인이 될 확률은 낮지만 젊은이들이 노인이 될 확률은 100%이다. 그러니 노인문제는 더더욱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도 아니고, 늙음이 잘못해서 받는 벌도 아니다. 아니, 늙음의 과정은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받는 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싱그러운 은교 역시 몇 십 년 후에는 분명 이적요가 했던 말을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의 표현으로 중얼거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젊음은 늙음과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그 한 줄의 이름은 노화이다.


노화란

Reichel노화란, 유기체의 생리적 능력 또는 기능이 점차적으로 손실되어 죽음에 이르는 확률을 높이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했다.(1983) 대략 40세 경에 노화 과정의 신체적인 징후들은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정력과 힘의 감소, 깊은 주름살이나 흰머리, 체중과 체질의 변화 등이다. Whitboume(1996)는 또 노화는 어머니의 임신과 더불어 시작되어 궁극적으로는 사망으로 종식되는 하나의 지속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한 발작씩 가까워진다는 의미로 생각해보면 노화는 일생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60대 여성이 30대 여성을 바라보며 나도 한 때는...’ 한다면 30대 여성 은 20대 후배의 윤기 나는 피부를 보면 , 옛날이여하게 된다. 10대와 농구 시합을 하고난 20대 청년들이 체력에서 밀린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도 보았다. 결국 우리가 사는 오늘의 삶이 노화의 과정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어느 날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몸이 전같이 않음을 사무치도록 실감하는, 몸의 기능이 마음과 다르게 손실되어가는 속수무책의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노인
, 노인성 질환, 치매

노화로 인해서 몸의 모든 부분이 구조적 변형과 기능적 저하가 일어나는 변화는 노인의 신체적 정신적 특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눈과 귀를 비롯한 감각기관들 뼈와 근육, 호흡기나 소화기 등 총체적으로 퇴행적 기능저하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노인들을 흔히 개인에 따라 만성적 질병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2개 그 이상의 증세들을 함께 보이기도 한다.

노년층이 보이는 정신적 신체적인 질병은 우울증, 편집증, 불안장애, 치매 등의 정신적인 장애와 파킨슨 증후군 등의 중추신경계 장애, 중증 근무기력증, 골관절염, 골다공증 같은 근골격계 장애, 동맥경화, 심근경색, 협심증, 뇌혈관발작, 고혈압과 같은 심장 혈관계 장애, 녹내장, 백내장, 노인성 난청, 이명 등의 감각기능의 장애, 부전과 폐기종, 기관지염 등의 호흡기 장애, 위염과 위궤양 암, 게실염 등의 소화기 장애, 방광염, 신우신염 등의 비뇨생식기 장애, 당뇨병 같은 내분비 장애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치매는 가장 심각한 노인성 질환 중 하나이다. ‘어떤 원인으로 뇌세포가 파괴돼 정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기억력과 지적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으로 정의되는데 치매를 설명하는 이 건조한 언어들은 치매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는 사뭇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인지기능의 상실은 특히 단기기억력의 결핍과 혼란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까운 가족들을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공간에 대한 지각 역시 혼란이 와 일상생활에 심각한 방해를 받게 된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혼란도 있어서 가족이나 친구들을 잃게 되는 사회적 상실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치매환자를 비롯한 고령의 노인들에게는 합리적 사고기능이 떨어지면서 느낌(feeling)’이 중요하게 살아난다. ‘느낌을 통해 생각을 대신하며 느낌을 통해 자신에게 상실된 부분에 대해서 적응하게 된다.

치매노인들과 일하는 치료사가 유념해야 할 내용이 있다. 치매 환자들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접할 때 자칫 존중감을 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르신으로 한 분 한 분을 존중하며 대하고 치료에 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치매 환자들의 느낌을 통한 사고를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을 만나러 가야한다며 가출을 일삼는 치매 환자에게 사실을 직면케 하려는 노력은 의미가 없다. 느낌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갑자기 치료사를 돌발행동을 하는 경우를 늘 대비하면서도 증상으로 이해하며 수용하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


음악치료 활동

질병이 없는 노인으로부터 의학적 보살핌을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노인에게까지 음악치료는 다양하게 적용된다. 이제껏 다른 영역의 치료에서도 보아온 것처럼 음악은 비장애인으로부터 심각한 기능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각각의 필요에 맞게 적용될 수 있었다. 음악이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현실감, 순서에 대한 예견 등을 제공한다는 것은 노인음악치료에도 치료적으로 의미 있는 특성이다.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는 자체가 (망상이나 과거 기억의 느낌이 아니라) 현재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건강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노인의 경우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둔감해진 정서를 촉촉이 적시는 일이기도 하다. 고립감을 느끼는 노인 분들이 함께 모여 음악활동을 하는 것은 즐겁게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노인들을 위한 음악치료 활동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감각기관 훈련을 위한 활동음악활동을 통해 감각을 자극하는 기법은 모든 노인환자에게 다 유용하지만 극도로 퇴행된 노인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극도로 퇴행된 노인이란 반응이 전혀 없고, 인간관계에서 고립되어 있고, 주변 환경과 교류할 능력을 상실한 정도의 노인을 일컫는다. 일단 환자들이 어떤 능동적인 반응이나 참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음악활동은 수동적인 활동들이 될 것이다. 노래를 들려드리거나, 녹음된 음악을 틀어드리는 것이다. 또 음악을 듣는 동안 할머니 팔을 들었다 내리세요. 손가락을 까딱까닥 해 보세요등의 간단한 지시를 할 수도 있다. 또는 음악에 맞춰서 환자의 몸을 터치하는 등을 통해서 청각과 촉각들의 감각을 자극하게 된다. 음악활동은 복잡하지 않고, 짧고, 구조적이어야 한다. 악기연주 활동 역시 아주 쉽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옴니코드라는 악기가 있다. 치료사가 버튼을 이용해서 코드를 조정할 수 있고 매끄러운 금속판을 터치하기만 해도 소리가 난다. 이 같은 악기를 가지 노래와 함께 연주하면서 환자는 금속판을 터치하는 것으로도 반주로 참여하게 되는 활동을 구성할 수 있다.


현실인식

현실인식은 감각 훈련 단계보다 나은 기능을 가진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시간, 장소, 사람을 포함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환경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확인시킴으로 현실과의 접촉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은 뇌졸중 등으로 일시적으로 생각이 혼란하여 고통 받는 환자에게 효과적이다. (특이한 것은 이 훈련이 치매환자의 경우에는 덜 효과적이라는 보고가 있다.) 음악치료는 매 세션 헬로송으로 시작하여 굿바이송으로 끝을 내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노인 환자에게 있어 매 시간 반복되는 노래를 통해서 시작과 끝을 인식하게 하는 목적이 있다. 또 매 세션마다 지금이 무슨 시간인지, 무슨 요일이며, 옆에 앉은 분은 누구인지를 같은 묻고 대답하는 노래를 할 수 있다. ‘오늘은 무슨 요일인가요. 노래로 대답해주세요.’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 음악치료 하는 날단순한 멜로디의 노래를 매 시간 부르는 것을 통해서 지금 여기를 반복해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노래를 부르고, 정해진 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활동 자체가 지금 여기의 현실에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음악활동에 참여하는 자체가 현실인식을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다.


재동기 유발

음악은 동기 유발에 있어서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언어능력도 있지만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활동이 재동기 유발 이다. 무덤덤해진 사고와 언어를 자극하여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동기유발을 위해서 음악이 사용된다. 동기를 유발 뿐 아니라 적당한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토론의 주제를 소개하는 것도 음악을 통해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향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주제에 맞는 노래를 부르거나 감상함으로 자연스럽게 주제로 들어갈 수 있다. 재동기 유발을 위해서 그룹 토론의 주제를 선정할 때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서 노인 환자들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음악과 릴렉세이션

노인들의 삶이 단조롭고, 행동을 비롯한 일상의 템포가 느리기 때문에 긴장이나 스트레스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인들의 삶은 죽음 가까이에서 하루가 다르게 퇴화하는 여러 몸의 기능을 뼈아프게 체감하는 삶이다. 긴장과 불안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긴장과 스트레스가 젊을 때 표출되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노인들 역시 릴렉세이션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 적절한 배경음악 속에서 긴장을 이완하는 활동, 음악에 맞춰서 천천히 스트레칭 하는 무브먼트 등을 적용할 수 있다. 함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활동 등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이 될 뿐 아니라 고립된 상태로부터 벗어나 외부 환경에 참여함으로 오는 기쁨을 누리게 할 수도 있다.


오락과 취미 생활로서의 음악

노년기에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한 큰 자산이다. 음악을 취미로 즐길 수 있는 노인은 노화로 인해서 오는 여러 심리적인 장애들을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이든 트로트든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매일 스스로 찾아 들을 수 있는 노인이라면 앞에서 언급한 감각 자극, 현실감각 유지, 스스로 동기유발, 릴렉세이션을 위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호흡이나 소근육의 조절 등의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악기연주를 하신 노인이라도 지속적인 취미생활로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음악치료 그룹에서 핸드벨이나 노인환자의 수준에 맞는 악기를 혼자 또는 여럿이 연주할 수 있다. 또 음역에 맞도록 조정된 합창곡을 함께 부르거나 너무 어렵지 않은 노래를 배우는 것 등의 음악활동은 노년의 환자들에게 즐거움과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회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것은 노년기 발달과업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을 많이 잃고,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지금의 처지를 더 불행하게 느끼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치료영역이기 때문에 노인을 위해 일하는 음악치료사는 이런 부분을 잘 끌어내고 음악을 통해 다룰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나 음악들은 강한 연상 작용을 일으키며 회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잘 이용하게 위해서 음악치료사들은 자신이 만나고 있는 노인환자의 젊을 시절부터 각 10년 단위로 유행되었던 노래를 주제별로 분류하여 가지고 있기도 한다. 음악치료 세션에 들어와서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는 노래에 얼굴의 긴장이 풀리며 눈빛마저 아스라해지셔서 노래를 흥얼거리시는 것을 보았다. 젊은 시절 불렀던 노래로 그 시절로 잠시나마 되돌아가신 것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보다 건강하게 노년의 보내시든, 여러 질환으로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내시든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 땅에 처음 아기로 태어날 때처럼 의존적인 상태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간 노화의 마지막은 몸이든 정신이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완서의 소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에서 말기 암으로 임종을 앞둔 친정엄마를 집에 모시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암환자의 말기가 거의 다 그렇다지만 어머니도 숨을 거두시는 날까지 의식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명료했다. 그러나 뒤를 가리지 못했다. 수술 후 어떻게 된 게 항문의 괄약근이 고무줄이 빠진 것처럼 열린 채 오므라드는 작용을 못하니 아무리 깔끔한 어머니도 속수무책이었다.(중략)내가 어머니를 떠맡고 싶은 건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똥구멍이었다. 생판 남이 어머니의 똥구멍을 진저리를 치며 구박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건 효도 따위보다 훨씬 진실하고 씩씩한 분노였다. 하필 항문의 고무줄이 빠질 건 뭐였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어머니에게 그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을까. 나는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대가로라도 그 치욕을 다소나마 가려주는 일을 맡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을 어떻게 살아왔든지 속수무책으로 덮치는 노화는 이러하다. 그리고 이것은 곧 우리 부모님의 삶일 수 있고, 그 다음은 우리 자신들의 내일이다. 외모지상주의 시대와 함께 젊음 지상주의 시대인 것 같다. 인공적으로 주입한 젊음으로 피부가 탱탱해진다고 해서 인간의 조건인 노화가 멈추지는 않는다. 매일 열심히 운동한다고 해서 건강이 내 계획대로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노년을 위한 최상의 준비는 내게 오는 노화를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태어난 그 날로부터 우리는 죽음에 한 발자국씩 더 가까이 가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며 매일의 ‘small death’를 기꺼이 수용하며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 마음은 더 건강해지고 탱탱해질지 모르겠다.


젊음을 잃은 공허감 가득한 벌로서의 노년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이라 노래하는 천상병 시인의 마지막 나날을 닮은 노년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경증적 질환의 시대, 나는 괜찮은가?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는 우울증에 관련된 소식은 이제 감기처럼 흔하다. <피로사회>를 쓴 한병철 교수는 시대마다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는데 21세기는 신경성 질환의 시대라고 하였다. 항생제의 발명으로 바이러스적, 박테리아적 질병은 이전 시대의 질병이 되었고 지금은 신경증적 질병이 압도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렇다. 신경과나 정신과는 더 이상 미친 사람이나 가는 병원이 아니다. 우울증은 나 자신과 내 친구들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내 아이들에게도 수시로 의심해보는 질병이 되었다.

 

이제 그만 사야지. 그만 사야지하면서도 또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날락하는 자신을 인식하며 쇼핑 중독증을 의심하기도 하고, 며칠 가는 무력감에 억지로 출근해 앉았는데 상사의 한 마디에 , 사표내고 다 집어치울까?’ 하면서 나 우울증인가?’할 때도 있다.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다 살인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는데 가끔씩 나도 하고 올라오는 분노가 주체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를 생각을 하면 살짝 이해도 될 것 같은 마음에 공포스럽다. 이 신경증의 세상에서 무엇이 정상행동이고 무엇이 이상행동이며 질환이란 말인가.

 

무엇이 이상행동인가?

 

남들과 뭔가 다르다고 느낄 때 내가 좀 이상한가?’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이상행동을 변별하는 기준은 일차적으로는 뭔가 남과 다르다, 통계적으로 평균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는 가에 주목한다. 그러나 남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이상행동이라 하지는 않는다. 또 사회문화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도 고개를 갸우뚱하면 좀 이상한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충분한 변별기준은 되지 못한다. 사회문화적인 기준은 매우 강력한 규범같이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름에 자연스레 변하는 것이다. 지난 9월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의 동성결혼식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결혼식이다. 한 때는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분류된 적이 있으나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떤 행동이 이상행동인지를 판별할 때는 사회적 시선 이상의 중요한 기준이 필요한데 그 하나가 적응성의 기준이다. 어떤 행동을 함으로 소속된 집단에의 적응성이 깨지는 지를 보는 것이다. 공포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보편적(통계적, 사회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행동이냐 아니냐보다 개인이 사회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계적, 사회문화적, 적응적인 기준들이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결과적으로 그 행동을 하는 개인이 고통 받게 된다. 이렇듯 위의 네 가지 기준(통계적, 사회문화적, 적응적, 개인의 고통) 모두에 부합할 때 이상행동또는 부적응 행동이라 한다. 그리고 개인의 고통이 얼마나 빈번하게(빈도), 지속적으로(지속기간), 강하게(강도) 일어나는 지에 따란 정신질환 진단을 하게 된다.

 

음악치료사가 만나는 정신질환의 종류

 

음악치료를 할 때 어떤 증상에 어떤 음악의 공식은 없다. 때문에 음악치료를 위해서는 다양한 환자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은 더욱 필요하다. 음악치료사에게 필요한 자질이란 음악적인 기술과 사람에 대한 소통능력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사람에 대한 공감과 소통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기질적으로 공감이 잘 되는 사람이 있고, 공감보다는 문제해결을 제시하는 것이 빠른 사람이 있다. 이렇듯 타고난 기질은 노력으로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각각의 치료사가 자신의 장점 또는 뒤집으면 그대로 약점이 되는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한 노력조차 멈출 수는 없다. 자신의 환자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위한 연구는 좋은 세션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정신질환을 위한 음악치료를 말하기 전에 정신과에서 일하는 음악치료사가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환자에 대한 이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신분열증

정신분열증의 주 증상은 사고장애이다. 정신분열증만의 정서적, 행동적 증상이 있기도 하지만 생각의 장애가 밑바탕이라는 것이다. ‘, 내가 어쩌다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나가는 길에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새는 아기 옷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커피 사러 갈 카페를 떠올리다 보니 어제 그 앞에서 만난 아이 친구 엄마 생각이 났다. 그 엄마가 장을 잔뜩 봐 들고 가면서 동생이 아기를 낳았는데 음식을 해다 주려고 한다.’고 했었다. 그 엄마가 생각난 순간 최근에 아기를 낳은 후배가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에 왔다는 생각이 났고 다음 주쯤 놀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자 아이니까 예쁜 옷을 사야지마음먹었다. 그래서 커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아기 옷으로까지 갔는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우리의 사고 속에서는 연상 작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그 상관관계를 추적해낼 수 있다. 정신분열증의 사고 장애는 연상이 이완되거나 해이해지는 것이다. 연상이 이어지지 않을 때 생각은 지리멸렬해지고 논리적인 사고는 물론 타인과 언어적인 교류도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술 마시고 소위 필름이 끊긴다음 날 어제 했다는 말이 기억나지 않는 당혹스러움 같은 것일까? 직장에서 보고서 한 줄을 쓰거나 가족의 식사준비를 하는 것도 이 연상 작용이 제 역할을 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일이다. 사고과정에서 연결이 안 되고 하나씩 끊어지면 당연히 사고의 왜곡이 오고 정신분열의 주 증상 가운데 하나인 망상이 오기도 할 것이다. 사고장애가 진행되면서 정서적으로 무감동, 둔감성 등의 정서장애도 보인다. 환각(환시, 환청, 환미, 환훈, 환촉)은 정신분열증의 지각장애 증상이다. ‘, 문이 열렸나?’ 하고 확인하고 나서 아니구나.’ 라고 올바름으로 돌아설 수 있다면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착각이다. 헌데 문이 열렸네.’ ‘누가 서 있네.’ 하고 실재하지 않는데 감각은 느끼면서 지속시켜가는 것이 환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고, 정서, 지각의 장애는 긴장된 근육상태, 상동행동 등의 행동장애로 이어진다. 정신분열증의 치료는 향정신성 약물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약물치료가 정신분열증 자체를 완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망상이나 환각 같은 증상을 확실히 약화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많은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형태의 정신사회적 치료와 병행해야 한다.

 

기분장애

기분장애는 말 그대로 희노애락기분의 장애이다. ‘우울감은 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기본적인 기분 중 하나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거나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삶의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오는 이유 있는 심리적 우울증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한다. 또 폐경기에 호르몬 기능의 단절로 오는 갱년기성 우울증 같은 불수의적 우울증도 있다. 이 역시 대체로 겪고 지나가는 우울증이다. 기분장애에는 우울증과 조울증이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신체적 원인에서 기인하는데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은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감소하는 상태이다. 우울감이 2주 이상 계속 되며 식사를 거의 못하거나 잠을 자지 못하는 등 식욕과 수면 문제에 어려움을 보인다. 무엇보다 환자 자신이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이 커서 상태가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비관적인 생각에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조울증인 경우, 조증의 상태일 때는 에너지가 항진되어 수면 욕구가 감퇴하거나 수다스러워지기도 한다. 가끔 우울증은 망상이나 환각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때의 망상은 정신분열증의 사고장애로부터 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우울증 치료 역시 항우울제를 투여하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환자의 개별적 필요와 욕구를 반영한 심리치료가 병행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불안장애

슬픔이나 우울감이 그러하듯 불안 역시 사람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위협이 되는 상황에 처할 때 느끼는 불안감은 자기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정신과에서 말하는 불안이란 개인의 적응성에 영향을 미치는 기능장애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한 느낌이 지나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여러 신체증상을 동반하게 된다. 불면증, 근육의 경직과 긴장, 예민함, 잘 놀라는 증상, 지나친 염려, 초조, 쉽게 느끼는 피로감, 안절부절, 빨라지는 심장박동, 손발 저림, 얼굴이나 가슴의 화끈거림 등의 신체증상 들이다. 불안장애의 종류로는 공황장애, 강박장애, 범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이 있다.

 

성격장애

성격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고유한기질이나 특징들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서 잘 변하지 않는 독특함이 성격인데 성격장애는 그 지속적 고유함이 지나치게 고착화되어 있을 때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살아가며 환경과 부딪힐 때 자신의 어느 부분을 변화시켜야만 적응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그 사람의 성격의 속성 때문에 적응되지 않는 경우를 성격장애라고 한다. 외부에 대한 적응이 힘든 이유가 자신이 가진 지속적인 속성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타인의 행동을 계획된 요구나 위협으로 보고 지속적인 의심과 불신을 갖는 편집성 성격장애, 분열성 성격장애, 분열형 성격장애, 히스테리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 반사회적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회피성 성격장애, 의존성 성격장애, 강박성 성격장애 등이 있다. 성격장애는 흔하게 나타나는 장애인데 환자 자신이 스스로 병원에 치료요청을 하는 경우가 드물고 자신의 성격적 한계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료적 성과를 얻기가 어렵다.

 

신체형장애

신체의 균형이 깨지면서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무의식의 갈등으로 신체화 된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신체형장애는 신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여러 형태의 신체 통증을 호소한다. 치료의 첫 단계는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을 받아들여주어 자기방어로 닫혀있는 감정을 풀어내도록 해야 한다.

 

정신과에서의 다양한 음악사용

 

다양하고 광범위한 환자들만큼이나 음악치료의 형태는 다양하다. 음악이 그 자체로 융통성 있는 예술이기 때문에 다양한 정신과 환자의 필요에 따라 활용될 수 있다. ‘반짝 반짝 작은 별동요가 있고, ‘있을 때 잘 해라는 트로트가 있고, ‘사랑으로라는 가요가 있고, ‘비발디의 사계가 있다. 이렇게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 환자의 나이와 필요, 선호도에 맞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어떤 환자에게 어떤 음악, 어떤 증상에 어떤 활동이라는 매뉴얼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같은 엄밀한 의미에서 똑같은 음악치료활동을 없다고 볼 수 있다.

 

음악 연주

음악치료사는 음악적인 지식이 없는 환자들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거나 만들고 악기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가사 한 두 단어를 채워 넣어 환자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도록 하여 자기를 표현하게 할 뿐 아니라 자존감 향상을 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Song writing 활동이 있을 수 있다. 치료사가 미리 준비한 노래가 있다. ‘나의 마음속에 버리고 싶은 이런 마음 저런 마음들, 그 중에서 단 한 가지 말해볼게요. 그건 바로 ( )이예요환자는 괄호 부분만 넣어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이 넣은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 노래의 뒷부분에는 합창으로 서로를 지지하는 가사를 담아 부를 수도있다. 정신과 환자들은 질환 자체의 증상은 물론 약물치료의 부작용으로 고립되어 있거나 정서적으로 둔마 상태인 경우가 많다. 음악치료그룹에서 합창을 하거나 잘 세팅된 연주에 참여하도록 하여 사회기술 향상을 도모하기도 한다. 시간의 예술인 음악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망상이나 환각 등의 증상을 가진 환자들로 하여금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돕는 활동이기도 하다.

 

음악과 동작

음악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자신의 몸을 인식하여 자의식 향상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된다. 자유로운 몸 움직이기, 음악에 맞춘 간단한 스트레칭, 의미를 부여하여 몸으로 표현하기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다. 보다 구조화된 에어로빅이나 포크댄스 등을 배우는 것도 신체운동 기능을 향상시키며 상호교류를 증진시킬 수 있다. 몸과 마음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의 무기력이 몸의 경직으로 그대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어정쩡하고 수동적으로 시작한 활동인데 음악에 몸을 맡기고 흔들흔들 할수록 얼굴 근육에서부터 긴장이 풀리면서 무덤덤하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악과 다른 예술 형태와의 결합

음악은 춤이나 움직임 뿐 아니라 미술, 문학 등 다른 예술과도 병행될 수 있다.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또는 봄, 또는 겨울의 2악장)을 들으며 드는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시를 지을 수도 있다. 이러한 활동은 능동적인 자기표현을 도울 뿐 아니라 자신이 만든 창작물을 타인의 것과 함께 보면서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만성 환자들인 경우 내가 누구인가를 인식하고 확인하는 일이 매우 낯선 일일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오락과 여흥으로서의 음악

노래의 멜로디를 듣고 제목을 알아맞히는 게임이나 가사 외워 부르기 게임 등은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정신과 환자들의 지적, 정서적, 사회적 자극을 동시에 주는 활동이다. 발병하기 전 다루던 악기를 다시 배우며 여가활동을 하는 것은 약물로 인해서 무기력하고 지루한 환자들의 삶에 즐거움과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피아노나 기타를 배워서 연주 그룹을 만들거나 동료 환자들 앞에서 연주회를 여는 등의 기회를 가지는 것 등은 생활에너지를 증진시키게 될 것이다.

 

음악과 긴장이완

음악과 함께 근육이완 훈련을 하거나 음악적 심상(music imagery)'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연상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좋은 곳에 가는 상상을 하는 등 긍정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그리도록 한다. 몸은 물론이고 정서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환자들이 치료사의 내래이션에 따라서 어린 시절의 기억 등을 떠올리며 밝은 표정을 짓거나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딱딱함 속에서는 정서가 풀려나오기 매우 어렵다. 배경음악이 주는 편안함고 상상력의 자극은 딱딱한 나무껍질에 틈을 내서 수액이 흘러나오게 하는 것 같다.

 

서두에 언급한 한병철 교수는 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는 성과사회이며 자기 착취의 사회이기에 결국 피로 사회라고 하였다. 피로사회에서 점점 신경증적이 되어가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정신건강을 유지해갈 수 있을까? 온통 SNS의 메시지 알림에만 귀가 열려있고,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우리, 타인과 나의 경계가 흐릿하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를 사진으로 보고 댓글을 달고 또 보고, 이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피로사회>에서도 말하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멈추고, 혼자 있는 심심한 속에서 견디는 힘이다. 정신질환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어느 항목엔가는 잘 들어맞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힘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오디오의 전원을 켜 바흐나 브람스를 불러낼 일이다.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허상과도 같은 스마트폰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과 그저 가만히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피로사회를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정신적인 힘, 영적인 힘은 나 자신이 되는 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International Piano>2013, 9월호

 

음악치료의 세계를 안내하며 음악치료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짧고 명료한 답을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여러 번 앓는 소릴 했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치료 대상자의 다양함이라 밝힌 적이 있다.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입원 중에 있는 아기를 치료하는 음악치료사와 알콜 중독자 그룹을 맡은 치료사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각각의 음악치료사가 치료를 계획하고 세션을 이끌어가는 것을 촬영하여 비교해 본다면 음악을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음악치료사가 연구하고 음악을 만드는 방식도 만나는 대상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때문에 다양한 음악치료 대상자를 이해하는 일은 음악치료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번 호부터는 각 치료영역을 돌며 대상자별 음악치료를 이해하게 된다. 첫 번째로 지적장애인을 위한 음악치료이다.


장애 비장애 아이를 동시에 만나다

2000년생인 첫째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로 집에 갇혀 있던 어느 겨울 날, 모 기관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음악치료실을 신설할 예정이고 곧 채용을 할 예정인데 생각이 있으면 지원을 해보라는 얘기였다. 대학원을 마치고 학교에서 실습조교로 1년 근무를 마치고 출산을 한 터라 다음 행보가 막막한 상태였다. 당시는 풀타임 음악치료사를 채용하는 기관이 손에 꼽히던 때였기에 이건 뭐 하늘의 별이 눈앞에 떨어져준 셈이었다. 아직 더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류접수를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나가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하였다. 학부 전공을 버리고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하게 된 것만으로도 꿈같은 일이었는데 그 척박했던 시기에(입학기수로 2기니까 대학원 시절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며 공부했을 뿐 아니라 취업, 그것도 풀타임 취업은 언감생심이었다.) 내 치료실을 가진 풀타임 치료사가 되었으니 하루하루 출근길이 꿈만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떼놓고 나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 마음조차 금세 극복이 될 정도로 좋았다. 치료실을 새로 꾸미고 방음 시설을 하고 악기를 구입하고 두둥, 처음 나의 클라이언트가 된 아이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낮에는 음악치료사로 여러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밤에는 내 아이와 놀아주며 주구장창 노래를 부르던 시기였다. 그렇게 한 1년을 지내면서 서서히 그러나 강렬한 충격에 빠졌다. 1년 사이에 내 밤의 노래를 듣는 아이는 어느 새 엄므, 엄므를 하고, 거의 모든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믿어지지 않는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낮에 치료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냉정하게 말하면 1년 사이에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프로그레스 노트(Progress note)’라 불리는 치료기록에는 깨알 같은 변화를 찾아내 적고 있었지만 집에 있는 아이의 발달에 비하면 그야말로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었다. 흔히 말하는 정상발달즉 비장애 아이들의 발달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밥만 먹여놓으면 크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지적인 발달이 아주 서서히 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흔히 말하는 평균 지능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것이 내가 만난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안타깝고도 주된 어려움이었다.

 

지적장애란 무엇인가

지적장애란 무엇인가? 지적장애인은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것도 기관마다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미국 정신지체 협회(AAMD)의 정의를 소개한다. ‘지적장애란, 현존하는 기능에 있어 많은 제약이 있으며 현저한 평균 이하의 지능과 함께 다음 영역 중 두 가지 이상의 기능에 제한이 있는 경우로, 이는 의사소통, 자조기술, 가정생활, 사회기능 사회 활동, 자발성, 건강, 안전, 학습능력, 여가선용 및 직업 생활 등이다. 정신지체는 18세 이전에 발병한다.’ 이 비슷비슷한 단어의 나열 같은 내용에서 지적장애를 이해하는 세 개의 키워드는 세 가지이다. 현저하게 낮은 지능, 적응능력의 제한 그리고 18세 이전이다.

현저하게 낮은 지능

지적기능은 주로 IQ 검사로 판단되는데 IQ 70~75미만이면 지적 기능이 결핍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경우에 동년배에 비해서 정보에 대한 기억력,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 논리적 사고의 표현, 적절한 의사 결정 등에서 부족함을 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IQ 100’같은 연령평균적인 지적능력을 의미하는데 정상발달을 하는 동년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지적발달로 해가 거듭될수록 그 평균은 올라가기 마련이고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과의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상발달을 평균으로 놓고 측정하는 IQ로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해가 갈수록 지적장애가 심해지는 것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지적장애 아동은 가만히 있어도 1년 마다 자동으로 IQ가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어느 것을 정상이라 규정할 때 정상이 아닌 영역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결과일지 모르겠다.

적응능력의 제한

평균이하의 지능 그 자체는 지적장애를 진단하는데 충분한 조건이 아니며 위에 열거한 적응 기술의 부족이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에반스(1990)는 적응기술을 주어진 상황에서 적절하게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는데 여기에만 근거한다면 치료사인 나 자신부터 완전히 터득했다고 자신할 수 없는 기술이다. 지적장애인들은 단지 지적인 능력의 제한으로 적응기술이 부족하다면 그렇지 않은 나를 포함한 우리는 자아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으로 상황에 맞게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18세 이전에

현저한 지능의 저하와 적응행동의 제한이 발달기간중에 18세 이전에 나타난 경우에 지적장애로 진단을 하게 된다.

 

지적장애의 특징과 음악치료

보통 아이들도 성장기에는 개인의 차가 있듯이 지적장애아들도 백이면 백의 개인차를 가지고 발달해갈 것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이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비슷한 면들은 있다. 각 발달의 영역별로 볼 수 있는 특징과 그에 따라서 적용되는 음악치료는 다음과 같다.

인지발달

제한된 인지능력은 정신지체 아동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보편적으로 이들은 보다 적은 정보를 보다 느린 속도로 기억하는 것 외에는 다른 정상아동들과 같은 발달 과정을 거친다. 즉 인지발달의 과정은 비장애 아이들과 같지만 느리게, 아주 느리게 자란다는 것이다. 사람이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적인 과정은 (감각을 통해서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감지하고, (기억, 논리, 분석 등을 사용해서) 감지된 자극을 수용하고 구분한 후에 (들어온 자극에 대해 다양한 선택 중에 적절한 반응을 골라서) 표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는 이 정보처리 과정에서 하나 또는 여러 번의 오류를 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아이에게 낯선 사람이 걸어온다(자극). 이 여자 아이가 낯선 사람의 존재를 느낀다(수용).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을 기억해낸다. 낯선 사람이 과자를 사주겠으니 함께 가자는 제의를 거절하거나 그 자리를 피하는 선택을 한다(표현) 그런데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자극을 수용했으나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했지만 지금의 자극과 연결시켜 생각하여 판단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두드러지는 인지적인 약점이 정보를 통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달 중에 있는 아기들이 독수리, 참새, 까지 등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아주 빨리 이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라는 연관성으로 이해하게 된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는 어쩌면 각각을 구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지만 를 통합성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유지하는 능력은 인간의 학습과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즉 교실에서 익힌 정보를 집에서 적용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들 말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이렇듯 정보와 학습내용을 유지시켜 일반화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음악은 소리라는 매개체로 사람의 몸과 마음에 직접적이며 순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치료대상의 지능수준에 상관없이 생리적인 반응을 유도 할 수 있다. 단순한 노래를 부르거나 노래의 일정한 부분에 악기연주를 함으로 음악이 가진 형식적인 요소들의 인지적인 능력향상에 도움을 준다. 가사를 외워서 노래함으로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드럼으로 단순한 리듬을 모방하면서 주의집중력 향상시킬 수도, 학습을 위한 모방을 즐겁게 배울 수도 있다. ‘반짝 반짝 작은까지 치료사가 노래를 불러줬을 때 이라고 소리를 내서 가사를 채우게 하거나, 단순한 멜로디의 종결음 직전에 허밍을 멈춰서 아동으로 하여금 종결음을 내도록 하는 활동은 음악이 가진 구조를 통해서 인지적 구조를 경험하도록 하는 활동이다. 그 외에도 학습의 기초가 되는 눈 맞춤, 지시 따르기, 집중력 등은 음악치료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치료목적이다.

언어 능력의 제한

적절한 언어 사용 능력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제한적인 언어능력은 사회생활을 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가장 무능력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흥행을 하고 예승이 아빠 용구의 말투 세일러 무~’ ‘비타민 먹어야 돼. 비타미~흉내 내기가 화제였다. 특이한 말투 뿐 아니라 자신의 상황과 입장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는 용구의 언어적 장애가 영화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전제였다. 언어획득의 질과 비율이 인지발달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신지체인의 인지능력의 결핍은 언어발달에 자연 영향을 주게 된다. 영화에서 보듯 지적장애인의 언어의 제한적인 능력은 다시 인지, 사회, 정서적인 발달을 방해하는 안타까운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불분명한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서, 새로운 단어를 말하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의 수를 늘려서 말하게 하기 위해서 멜로디를 사용하는 것은 음악치료에서 흔한 일이다. 묻고 대답하는 노래를 통해서 언어적으로 주고받는 소통을 보다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다.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상대방이 묻는 말을 반복하는 언어습관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 ‘oo, 기분이 어때?’ 묻는 말에 기분이 어때라고 들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지적인 능력에 제한을 가진 친구들에게 묻고 대답하는 구조 자체를 언어로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묻는 노래의 멜로디와 대답하는 부분의 멜로디를 일정하게 하고 내용을 바꿔가면서 묻고 대답하게 하는 것은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가르치는 방법이 된다. 이 밖에 지적장애인들이 가진 특유의 단조로운 톤을 높은 음과 낮은 음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을 통해 보다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도울 수 있다.

신체, 운동 발달의 장애

대부분의 지적장애인들은 신체, 대소근육 운동조절, 자세, 체력 등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뇌성마비 같은 경우 신체 기능과 운동기능의 발달을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운증후군 같은 경우 독특한 신체적 특징을 보이는데 키가 작고 비만이거나 근력저하, 근 긴장도가 약하고, 심장질환 같은 것들이다.

음악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개스턴(Gaston) 이 말한 바와 같이 리듬은 조직자이다. 리듬은 지적장애 아동들이 걷고, 뛰고, 몸을 균형 있게 움직이는 것들에 동기를 부여하고 적절한 힘을 부여한다. 음악에 맞춰서 천천히 걷거나 빨리 걷는 활동, 리본이나 스카트 등의 흥미로운 도구를 가지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활동 등은 지적장애 아동들의 대소근육 조절을 돕는 좋은 활동이다. 뿐만 아니라 북을 치는 활동은 팔 근육의 사용을, 작은 악기들을 연주하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활동은 손가락의 소근육 사용을 자극하여 발달을 돕게 된다. 무엇보다 이 아동들은 음악과 더불어 즐..게 움직일 뿐인데 이와 같은 음악 외적인 치료적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 정서적 특징

대부분의 지적장애 아동들은 나이에 비해 자신이 뒤처진다는 것을 인식한다.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며 위축되고 불안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정서적인 특징들이 학습과 대인관계에서는 사회성의 문제로 드러날 수 있다. 주의력 결핍, 인내력의 부족, 과잉행동, 공격적 행동, 싸움 등의 문제 같은 것들이다. 자존감은 부모와의 관계 외에 초기 놀이를 통해서 발달하는데 지적장애 아동은 또래에게서 따돌림을 받거나 지적 능력의 부족으로 놀이에 흥미를 잃게 마련이다. 그 결과 정상적인 역할 모델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자아존중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존감의 향상은 음악치료에서 주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건강한 놀이, 받아들여짐 등의 결여로 낮아진 자존감을 가진 지적장애아동들이 음악활동 안에서의 성취감을 통해서 자존감이 향상될 수 있다. 잘 세팅된 음악활동에 참여한 아동은 최소한의 음악적인 참여로 질적인 음악적 성과물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악보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아동이 색깔로 음을 표시한 색깔악보를 보고 건반 위의 같은 색깔을 누르기만 하는 것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피아노 연주 했다고 치자. 거기에 치료사의 반주가 적절하게 지지해줌으로 더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려질 때 이 음악적인 성과는 아동의 자존감 향상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또 그룹 음악치료에 참여한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 여러 사회적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주를 위해서 순서를 기다리는 행동은 중요한 사회적 기술인데 음악활동에서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즐겁게 습득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연주할 때를 기다리는 동안 음악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음악이 가진 구조가 예측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측하며 즐겁게 기다리고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서 익힐 수 있는 사회교류기술은 무궁무진 하다.

정상에서 자유로워져 너만의 시간표대로

첫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시기에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 음악치료를 시작했다. 정상발달 하는 아이와 발달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함께 지켜보면서 늘 일정정도의 좌절감을 안고 치료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좌절은 치료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정상의 아이들을 목표로 삼고 거기까지 도달시켜야 한다는 무모한 강박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나름 정상발달로 자란 아이가 공교육의 현장에 보내졌을 때 아이의 지적인 능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1등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 치료실에 오는 아이들이 그 시간만큼은 음악으로 더불어 행복하길 바라며 치료했다. 그 행복한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서 아이만의 시간표에 따라 늦지만 늦지 않은 성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기록을 토대로 아이 개개인에게 더 적절한 맞춤형 세션을 제공해주는 것이 지적장애아들을 만나는 나의 할 일이었다. 아니, 결국 엄마로서의 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正常)’과 또 다른 정상(頂上)’에서 자유로워져 자신의 시간표를 살게 하는 것이 엄마의 일이고 어른의 일일는지 모르겠다.

 

 

 

 

 

 

<International Piano>2013, 8월호

 

치료하고 있는 아이들이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같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 이른 바 통합교육 시스템 안에 있는 아이들이다. 때문에 음악치료 역시 비장애 아이들에게 적용해도 무리가 되지 않을 질적인 음악활동을 하자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매 치료시간마다 빼놓지 않는 루틴(routine) 활동이 클래식 음악 감상이다. 한 음악을 여러 세션 동안 반복해서 듣고 주제선율은 키보드로 쳐주면서 익히도록 하기도 한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성인에게도 어려운 일이 잡념에 빠지지 않고 집중하여 음악을 듣는 일이리라. 하물며 인지적인 약점을 가지 지적장애 친구들이겠는가. 다행인 것은 청각자극은 시각자극과 달라서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하다면 웬만해서는 완벽하게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이야 질끈 감아버리면 보기 싫은 것 안 볼 수 있지만 아무리 귀를 막아도 소곤소곤 들리는 소리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겠지만 여하튼 지속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음악 감상을 할 때마다 아이들 입에 초콜릿을 한 조각씩 넣어준다. 청각과 함께 미각을 함께 자극하려는 의도이다. 반복되는 음악과 반복되는 달콤한 미각적 자극이 공감각적으로 일으키는 느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비발디의 <사계> ’ 1악장을 들었다. 초콜릿의 달콤함이 기억력을 자극했는지 두어 세션 후부터 아이 하나가 , 하면서 창밖의 벚나무를 가리킨다. (아이고, 신통방통해라) 훅훅 더운 바람이 불면서 제대로 여름이 시작된 것 같아서 <사계>여름’ 3악장을 듣기 시작했다. 더운 날에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는 초콜릿 대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여름을 들으면 좋은 자극이 되겠다 싶었다. 헌데 아무래도 아이스크림은 음악을 압도해버릴 것 같다. 아이들을 꾀거나 홀리는 힘이 강해서 도통 음악에 귀도 마음도 내주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일단 손에 들고 먹으려면 시선과 더불어 주의가 온통 아이스크림으로 향할 것이다. 아이스크림이라 하더라도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가 좋다. 치료 계획을 세우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냉장고에 있는 체리주스 생각이 났다. 그걸 입에 들어갈 크기로 얼려서 가져가는 것이다. 입에 쏙 넣어주고 시원한 바다 사진을 보면서 여름 3악장을 듣다보면 여름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될 것 같다. (그래, 그거야!) 얼린 체리주스 한 입, 유레카! 아이에게 딱 맞을 멜로디 하나가 떠올라서 행여 잊을세라 눈에 띄는 종이를 집어 악보를 그려놓거나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사용해 허밍으로 녹음해 놓을 때의 기쁨과 맞먹는 발견이다.

다음 세션은 뭘로 어떻게 하지? 이것은 음악치료 실습수업을 듣던 대학원 1학기 때부터 임상 10년이 넘은 치료사가 된 지금까지 늘 달고 사는 고민이다. 그간 만들어놓은 노래며 활동들이 나만의 매뉴얼이 수두룩하지만 주부 20년 차가 되어서도 오늘 저녁 뭐해먹지?’ 고민하는 것처럼 늘 새로운 고민이 된다. 그러니 음악치료사는 창의력으로 먹고산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음악적 창의력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즉각적인 음악적 반응으로 피드백을 주는 능력, (체리주스를 얼리겠다는 발상까지 포함하는) 음악 외적인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어이쿠, 음악치료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창의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성급한 오해는 하지 마시라. 무에서 유는 아니다. 지천에 널린 것이 음악이고, 무수한 악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는 아니니 말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지상(紙上)강좌는 음악치료의 방법론이다. 이 지상강좌를 거듭할수록 곤란한 상황이 된다. 음악이며 음악활동이라는 것이 일단 들어야 하는 것인데 음악치료 세션이라는 그 다양한 소리의 향연을 종이 위에 늘어놓으려니 말이다. 그것도 오선지가 아니라 백지 위에 글자의 나열이라니. 할수록 난감함에 부딪힌다. 그러나 어쩌랴. 글이 독자에게로 가 음악이 들리는 기적이 일어나길 빌며 오늘도 글자의 나열을 시작할 밖에. , 강의 고고씽이다.


음악치료의 방법을 분류하여 설명하는 것은 음악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만큼 다양한 접근이 있을 것이다
. 이 글에서는 클라이언트가 가지는 경험의 종류로 설명하려고 한다. 음악치료세션에 참여하는 환자가 경험하는 음악치료의 방법은 다음의 여섯 가지 정도가 될 것이다.음악 연주 그룹(Performing Music Group)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음악그룹이 이에 해당한다. 클라이언트는 아주 단순한 악기를 단순한 박으로 연주하는 것부터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는 활동까지 각각의 기능적인 준비도에 따라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치료사가 하는 역할이 악기나 노래를 가르치고 합창을 지도하는 역할이라 할지라도 음악활동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활동을 통해서 음악외적인 행동을 변화시키는 치료목적을 지향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즉흥연주 그룹
(Improvisation Music Therapy)

즉흥연주는 말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계획이나 연습이 없는 연주이다. 악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성악이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음악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즉흥연주의 치료적인 사용이 의미가 있다. 자신이 선택한 악기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즉흥적으로, 자기 속에서 나오는대로 다양한 방식의 연주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제한속에서 선택하고 펼쳐내는 것은 어쩌면 건강하게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클라이언트가 인식을 하든 하지 못하든 즉흥연주에 참여하는 것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즉흥연주는 음악치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고,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응용되고 적용된다.두 명의 치료사가 팀이 되어 한 사람은 피아노에서 다른 치료사는 환자를 도와 즉흥연주 피아노 연주에 반응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창조적 음악치료(Creative Music Therapy)라고도 불리고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Nordoff-Robbins Model이라 불리는 즉흥연주 치료가 있다. 또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 입각하여 클라이언트의 내면세계를 자유연상 단어와 즉흥연주로 표현하게 하는 분석적 음악치료(Analytical Music Therapy)Priestly model이라 불리기도 한다. Riordan-Bruscia Model경험적 즉흥연주(Experimental Improvisation)는 기악과 성악, 몸동작 등의 음악적 경험을 하고 그룹원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는 그룹 즉흥연주의 모델이다. 그 외에 Orff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임상적 올프슐벅 즉흥연주 모델(Clinical Orff-Schulwerk Improvisation)이 있다.

 

창작, 작곡, 노래 만들기(Creating, Composing, Songwriting)

오늘 날씨는 어떤가요. 노래로 대답해 보세요내가 아이들과 치료할 때마다 헬로송 이후에 부르는 노래이다. 그러면 아이들이 나름대로 노래를 만들어 대답한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요. 땀이 나요등등. 이렇듯 노래로 묻고 대답하는 노래는 음악치료 그룹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간단한 노래에 클라이언트가 두 마디 정도를 채워 넣어 부르도록 하는 방법부터 노래를 부른 후에 가사에 대한 느낌을 토의하는 방식,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담은 노래를 만드는 활동 등이 포함된다. 이 때 멜로디는 치료사가 작곡을 할 수도 있지만 기존의 곡을 편곡하거나 그대로 사용하면 참여하는 환자에게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게하여 보다 편안한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치환의 내가 만약이라는 노래를 가지고 어떤 내가 만약 10억이 있다면으로 가사를 바꿔 나머지 가사 부분을 자신의 생각으로 채워 넣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의 욕구를 드러내거나, 감정을 표현하기에 좋은 활동이다. ‘Songwriting’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아동 환자로부터 성인 환자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적극적인 음악 감상과 말하기

노인환자 그룹에서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에 부르던 노래를 들으면서 그 곡의 제목을 맞히고 가사를 생각해내는 활동이 있다. 노인환자들이 20대에 불렀던 음악을 듣거나 다시 부르게 될 때 경직된 표정과 정서가 이완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젖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노래의 제목과 가사를 기억해내는 활동은 장단기 기억력을 자극하여 회복할 뿐 아니라 잃었던 삶의 즐거움 맛보게 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감상을 보다 적극적인 활동으로 유도하는 방식이다. 감상을 몸동작과 연결시키기,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음악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치료방법들이다.

 

적극적인 음악 감상과 상상

음악의 연상 작용을 통해서 환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인데 대표적인 것이 GIM(Guided Imagery and Music)이라는 것이다. 이완되어 차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클래식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떠오르는 이미지를 통해서 의식의 심층적인 부분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때 이미지는 스스로 떠올려 보여주는 환자 내부의 단면일 수도 있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치료사가 유도하는 도움을 받아 불러일으켜지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개인 또는 집단으로도 시행하는 GIM은 전문적인 훈련과정을 거친 치료사에 의해서 실시된다. GIM에 참여하는 피치료자는 상징적인 사고가 가능하고 상상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에고가 약하거나 신경적 손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효과가 적은 치료방법이며, 정신분열증 환자와 같이 사고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삶을 위한 리듬

드럼 소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치유그룹의 배경 등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리듬패턴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거기에 맞춰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 한결같이 연주해서 내는 소리인 심장박동이 드럼소리에 공명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거의 모든 민족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타악기와 리듬패턴을 가지고 리듬그룹을 경험하게 하는 치료의 형태가 삶을 위한 리듬이다. 모든 참가자가 드럼을 비롯한 단순한 타악기 연주하면서 활동에 집중하고, 연주하는 동안 대소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이고, 그룹의 다이나믹 속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고, 협동심을 발달시키게 된다. (수십 여 개의 드럼과 타악기들이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끊임없이 연주될 때 느껴지는 역동을 글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위와 같은 것들이 환자가 경험하는 입장에서 해 본 음악치료의 방법이다. 이것들을 가지고 환자의 필요에 맞게 계획하는 것이 치료사의 중요한 임무인데 기억할 것은 방법필요에 선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아무리 좋은 노래, 좋을 활동이라 할지라도 환자의 치료적 필요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좋은 음악치료의 방법이 있다할지라도 환자를 음악의 세계로 안내하는 치료사가 신뢰롭지 못하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듣는 효과보다 못할지 모른다. 때문에 음악치료의 방법론에 앞서는 것이 치료사와 환자간의 신뢰적인 관계(rapport)이며, 환자의 필요와 상태에 대한 주도면밀한 관찰이다. ‘어떤 증상에 어떤 음악하는 식의 처방전이 있을 수 없듯이 어떤 환자에게 어떤 활동이라는 단순한 등식도 없다. 같은 활동이라도 환자에 따라서 변형하고 응용하여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100명의 환자에게 100개의 치료방법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대상이 어떤 환자군으로 분류되는 비인격적 집단이 아니라 나름의 인격과 얼굴을 가진 사람인데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치료사는 연구와 고민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내가 환자를 만나 치료한다는 것은 유일한 고유함을 지닌 한 사람을, ‘지금 여기라는 유일무이한 상황에서, 음악이라는 시간의 예술을 통해 만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어제의 노래를 그대로 부른다하여 같은 노래라 할 수 있겠나. 음악치료 임상 십 몇 년, 쌓아둔 노하우가 노트북 폴더에 꽉꽉 들어차 있다 해도 치료세션을 앞두고 여전히 기분 좋을 만큼의 스트레스를 가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용할 노래나 악기에 대한 고민일 때도 있고 체리주스를 얼려서 보냉병에 담는 기분 좋은 수고로움일 때도 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말이 있다. ‘, 뭐라구?’ 한 번 더 묻게 만드는 말이다. ‘음악치료가 그런 말 중 하나인 것 같다. 그저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도 직업을 묻는 말에 음악치료사예요하면 그래요?’ 하면서 사람을 다시 봐 주는 느낌이 있다. 자존감 증진의 순간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면서도 좋은 일 하시네요. 좋은 직업 가지셨네요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여하튼 음악치료, 음악치료사는 있어 보이는 말인 것은 틀림이 없다.


기실 음악치료사가 좋은 직업임에 틀림없으나 막상 치료사로서 음악치료 세션 안에 있을 때는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허다하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데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함께 부르거나, 가사를 주고받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야말로 벽 보고 노래하는 느낌일 때도 있다. ‘하는 소리 한 번을 내게 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있고, 치매 할머니께 악기를 뺏기고 욕을 들어먹는 경우도 있다. 소극적인 환자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 과하게 에너지를 쏟으며 노래할 때는 치료사인지 레크레이션 지도자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료를 할 때 가령 정확한 리듬모방을 치료목표로 삼았다고 하자
. '♩♪♪♩♩' 이 리듬을 정확하게 모방하도록 하기 위해 드럼 위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끼게 하고, 반복하여 들려주고 가르칠 때는 얼핏 음악교육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듬을 가르치는 수업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어찌하여 이것은 단지 음악교육이 아니라 특별히 치료라 불린다는 말인가? 실질적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에서는 정확한 음정과 박으로 노래를 하는 것, 연주에 참여하여 완성도 있는 음악적 성과물을 만드는 것 등이 주요한 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마치 아이의 음악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이 세션의 지향점인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의 원인은 용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치료라고 하면 명확하게 언어를 치료함으로 이해하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음악치료를 이해하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음악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치료한다는 의미의 음악치료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는 언뜻 보기에 음악교육, 음악을 사용한 레크레이션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고 악기 연주하고 심지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등 엇비슷한 것이다. 음악교육이냐 음악치료냐를 구분 짓는 것은 음악행동과 음악외적인 행동의 이해이다. 음악교육의 목적이 음악적 행동자체에 있다면 음악치료는 음악활동을 통해서 음악외적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한다. 음악활동 하면, singing, playing, listening, reading, moving, creating을 포함한다. 노래를 잘 하게 하고, 연주기술을 향상시키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해내도록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음악교육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음악치료는 피아노를 치는 활동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집중력 향상, 소근육의 운동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드럼을 연주하는 음악적 행동 역시 단지 박자에 맞춰 생동감 있는 연주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대근육 운동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한다. 노래 부르기, 노래의 가사를 만들거나 멜로디 작곡하기 등도 사회적 기술, 기억력 증진, 언어발달 등의 음악외적인 활동을 유발하고 증진시키는 것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음악치료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나 오랜 기간 음악치료를 하고 있는 치료사에게나 의미 있는 일이다. 음악치료사가 세션을 디자인하고 치료를 진행하면서 결국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음악적 활동이다. 좋은 음악치료사는 음악적 활동과 음악외적인 행동의 연결고리를 잘 찾아내는 사람일 아닐까 싶다. 단순하거나 때로 세련된 음악활동을 환자에 맞게 적용하여 치료적 목적을 끌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보이진 않는 것을 보는 눈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드럼을 세 번 쳤다고 하자. 이것은 북 소리가 나도록 근육을 조절할 수 있었다는 신체적 반응으로 볼 수도, 치료사가 지시한 바로 그 순간을 집중하여 놓치지 않고 쳤다는 인지적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세 번을 정확하게 쳤다는 의미에서도 인지적반응일 수 있다. 또는 그 전까지 스스로 연주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었는데 혼자 말렛(mallet)을 들고 드럼을 쳤다는 의미에서는 정서적 반응일 수도 있다. 이렇듯 음악적 행동에 다양한 대한 음악외적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 음악치료의 묘미이다.

 

음악적 행동음악 외적인 행동사이의 연결고리는 음악에 대한 인간의 반응, 음악의 기능에 대한 많은 연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음악 인류학자 메리암(Alan Merriam)이 말하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설명은 음악과 인간행동 사이의 연결고리가 총망라 된 듯하다. 메리암은 음악의 기능(function)이라고 말 할 때는 음악의 사용(use)’이라는 표현보다 목적상의 이유가 고려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음악 외적인 행동을 겨냥한다는 의미로서 해석할 때 우리는 단순하고 튼튼한 (음악적 행동과 음악외적 행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얻게된다. , 그러면 오늘은 음악의 기능에 대한 메리암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자.

 

음악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쉽게 표현하도록 해준다. 드라마의 사랑고백 장면에 등장하는 카페 씬을 기억하는가? 남자 주인공이 화장실 가는 척 일어나 자리를 뜬다. 천진한 표정으로 와인 잔을 입에 대는 여주인공 뒤로 흐릿하게 잡히는 피아노 앞에 앉은 남친, 그리고 들리는 남친의 노래와 피아노 반주 말이다. 노래는 물론 사랑해도 될까요?’ 이런 류이어야 한다.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의 표현을 음악이 대신해 주는 예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라는 노래 한 마디는 천 개의 설움과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음악이 가진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는 기능이다.

 

음악은 미적인 즐거움을 더해 준다. 인간은 진..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본능이 사람으로 하여금 작곡을 하게하고, 노래하게 하고, 음악을 다운받아 시도 때도 없이 음악을 듣게 만드는 것이다. 미적인 즐거움을 일상에서 향유하는 것에 음악만 한 것이 있을까?

 

음악은 오락의 방법으로 제공된다. 음주가무라는 말이 있듯이 레크리에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모닥불 피워놓고노래가 있어야 캠프파이어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회식이나 모임의 마지막 3차 또는 대미(大尾)는 노래방이 아닌가. 가족모임에 아이들이 있다면 한 명씩 노래를 시키고 박수를 쳐주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다. 클래식 음악 감상을 취미로 가진 사람 역시 음악의 오락적 기능을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오락에서 음악을 제거하면 오락이 오락되겠는가?

 

음악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 이용된다. 많은 표제음악들은 그 자체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2011년 내한한 다니엘 바렌보임이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DO)와 함께 광복절에 맞춰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했다. 연주 장소는 임진각이었다. 이 연주회가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연주된 그 곡이 설명한다. 연주 그 자체로 통일에 관한 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기능 또한 음악의 사회적 기능이다.

 

음악은 상징적 표현으로 제공된다. 애국가가 상징하는 것, 생일축하 노래가 상징하는 것은 자명하다. ‘도레미송이나 에델바이스같은 노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음악은 상징적인 표현의 기능을 하는데 메리암은 음악에서의 상징성은 단지 부호나 신호가 아니라 의미를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음악은 신체반응을 유발한다. 리듬이 신체활동에 있어서 에너지원이 되는 것은 이 지면을 통해서 여러 번 언급했던 것이다. 6개월 된 아기의 엉덩이춤으로부터 김연아 선수가 레미제라블에 맞춰 움직이는 현란한 몸짓까지, 음악이 신체반응을 유발하는 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음악은 사회규범과 관련된다. 오래 전에 저녁 6시가 되면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서 있는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국기 하강식이라 불리던 의식이었다. 저녁 6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누구랄 것 없이 그 의식에 동참했다. 사회규범이 어떻게 음악을 통해서 전달되고 지켜지는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음악은 사회규범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음악은 사회기관과 종교의식을 확인시킨다. 예배나 미사 등의 종교의식을 음악과 분리시켜 떠올릴 수 없다. 서양의 음악이 종교음악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발전해 왔음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음악은 사회와 문화의 영속성에 기여한다. 메리암은 음악은 그 시대나 세대가 지닌 심리적 현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된다고 하였다. 80년대를 풍미하던 가왕조용필이 있다. 가수 조용필이 최근 신곡 바운스를 들고 대중에게 돌아왔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세대를 넘나드는 가수의 왕은 음악이 사회 문화적 영속성에 기여하는 바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음악은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 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추모곡으로 부르는 순서를 배제하려 반발과 논란이 뜨거웠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노래가 노래 그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노래가 불려 질 때 정서적 공감에서 시작되는 보이지 않는 뜨거운 연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음악은 이처럼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참여시키고 하나로 결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식으로라면 음악의 기능에 대해 얼마든지 더 열거하고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음악이기에 융통성 있는 치료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인 훈련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다양한 대상의 모든 연령대 사람들에게 음악외적인 행동을 유발하니까 말이다. , 이쯤 하여 필자는 지상(紙上)강의를 마무리 하고 쉼을 좀 가져야겠다. 아무 걱정 없이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조명을 낮춘 후에 브람스의 첼로소나타 CD를 듣기 시작하면 긴장된 뒷목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이완이 찾아올 것이다. (긴장을 이완 시키는) 신체반응을 유발하는 음악적 기능에 나를 맡겨보는 것이다.


 

<International Piano> 7월호



 

 


장안에 입소문으로 알려진
목요강좌라는 문화강좌가 있다. 인문학자, 정치인, 시인, 종교인 등 다양한 강사들이 거쳐 간 곳으로 유명하다. 늘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데 최근에는 그룹 산울림의 리더였던 김창완 씨의 강의가 있었나 보다. 강의 제목이 마음을 확 낚아챘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이 위로가 될까.’ 그러게나 말이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 부른다고, 누가 노래 한 자락 들려준다고 쓰라린 마음에 위로가 될까? 김창완 씨가 그렇게 밝혔다고 한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이 위로가 될까.’에 물음표를 떼어버린 이유는 과연 그러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오직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한 일념 하나로 고가의 장비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오디오 마니아들이 있다. 엄마 몰래 예약 주문을 걸어놓은 샤이니의 새 앨범 배송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딩이 있다. 오늘도 오디오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는 아저씨와 샤이니를 기다리는 마음에 하굣길 발걸음이 빨라지는 중딩의 열정은 다르지만 비슷한 게 아닐까. ‘음악 한 자락의 위로를 얻는 나름의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말이다. 음악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다양한 방식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것일까? 약사가 약의 전문가이듯 음악치료사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렇다고 음악이 약처럼 소화가 안 될 때는 바흐의 음악, 우울감이 밀려올 때는 모차르트의 교향곡처럼 조제의 공식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음악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음악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예술이다.’이라고 짧게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음악의 기회는 지금, 여기에서 단 한 번이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더라도 무대 위 연주에서 실수했다면 그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연주를 실패한 것이 된다. 매정하게도 청중은 연주자가 얼마나 열정을 다해 연습했는지, 리허설 무대가 얼마나 완벽했는지 등의 정상참작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가혹한 시간의 예술이다. 한 번 놓친 박자는 그야말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음악은 결국 사람을 지금&여기에 존재하도록 붙들어둔다. ‘지금&여기를 사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물론 정신의 건강을 잃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의미 있는 것이다. 지남력(orientation : 시간과 장소, 상황이나 환경 따위를 올바로 인식하는 능력)에 문제를 가진 정신과 환자가 음악치료 그룹에 참여하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해보자. 지금, 여기서 자발적으로 노래하는 것은 시간에 기반을 둔 활동이니 만큼 그가 가진 장애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예술인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리듬, 멜로디, 음색, 다이나믹, 형식)들은 인간의 행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

 

리듬

리듬은 음악치료에서 가장 주목하는 음악적인 요소일 것이다. 음악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개스턴(Gaston)은 리듬을 일컬어 조직자(organizer)이며 에너지의 원천이라 하였다. 원시사회의 음악이든 서양의 클래식이든, 현대의 대중음악이든 리듬은 필수 요소이다. 사람에게 신체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마도 리듬일 것이다. 상상해 보자. CD 플레이어에 쇼팽의 녹턴음반을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흐르는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음악에 빠져들 때 내 감각과 몸의 근육들은 어떤 상태라고 느껴지는가? 그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고 한참 동안 그 상태를 즐긴다. 그러다 실수로 소파 팔걸이 위에 있던 오디오 리모컨을 건드렸는데 튜너 모드로 전환이 되어버렸다 치자. 바로 93.1에서 내보내는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음악이 바뀌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살짝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계속 그대로 듣기로 한다. , 조금 전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을 때의 차분한 느낌과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십중팔구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다못해 양말 속 엄지발가락을 까딱일지도 모른다. 뚜렷한 리듬적 진행을 가진 음악은 역동적이기 마련이고 우리 몸은 여지없이 그 역동성에 반응한다. 이제 겨우 혼자 앉을 수 있는 6개월 된, ‘엄마소리도 못하는 아기가 음악 소리에 팔을 흔들고 기저귀 찬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도 바로 이 리듬이 얼러서 되는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 조회를 기억하는가. 뙤약볕 아래서 잘 들리지도 않는데다 언제 끝날지 예상도 안 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애국조회는 끝나곤 했다. ‘교실로 향하여 앞으로 갓!’ 하는 선생님의 고함 같은 구령에 이어 운동장을 빵빵하게 채우는 행진곡의 사운드. 왼발, 왼발, 하는 교감 선생님의 구령까지 더해져 어라, 지친 내 몸이 왜 이리 절도가 있지?’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각을 잡는 경험이 있다. 이것 역시 리듬이 시킨 일이다. 이렇듯 에너지원이 되는 리듬은 음악치료에서 걷고 움직이고, 일정한 박에 북을 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치료의 에너지원이 된다.

 

멜로디

음의 높낮이 변화가 리듬과 연결되어 통합적인 흐름이 나타날 때 우리는 멜로디를 듣는다. 기분 좋게 설거지하시는 엄마의 뒷모습과 겹쳐서 들리는 흥얼거리는 콧노래. 가사는 들리지 않지만 무슨 노래인지는 알겠는 그 느슨하고 기분 좋은 소리가 바로 멜로디이다. 보다 신체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리듬과 달리 멜로디는 감정과 무드와 연관이 있다. 음악적인 능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감미로운 선율은 부드럽게 사람의 정서를 이끌어낸다. 좋은 멜로디와 잘 부르는 노래는 음악을 잘 안다고 하는 비장애 성인 클래식 마니아에게 뿐 아니라 중증 장애아이에게도 어필한다.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멜로디의 진행, 순차적으로 진행하거나 도약하는 진행 역시 클라이언트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비발디의 <사계>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징이 드러난 사진과 함께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상동행동(발달장애 아동 등에게서 관찰되는 비정상적인 반복 행동)에 빠져 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겨울2악장의 멜로디를 들으면서 눈 쌓인 겨울 사진에 눈을 맞출 때. 그것은 꽤 감동이다. 언어조차 없는 아이가 단지 멜로디를 통해서 (정확히 인지적 의미로 계절과 매칭을 시켰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겨울 그림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소통의 가능성을 크게 보여준 것이니까.

 

음색

음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청각적 질감인 음색은 악기 소리며 여러 환경적 소리를 구별하게 하는 요소이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의 테너 목소리가 전혀 다른 느낌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음색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두 테너 가수의 노래를 다른 감동으로 들을 수 있는 음색구별의 능력은 음악을 풍성하게 듣고 감상하게 해준다. 청각인지 능력이 잘 발달되지 않은, 또는 어떤 이유로 상실한 사람들에게 둥둥둔탁하게 울리는 북소리와 땡땡높은 곳에서 들리는 듯한 핑거심벌즈(아주 작은 심벌즈로 손가락으로 잡고 끝을 부딪치면 맑은 트라이앵글 같은 소리가 난다.)를 구별하는 것은 치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음악회에 가 앉았는데 잘 모르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지루하게 연주된다. 협주 부분이 끝나고 한 대의 바이올린이 가녀린 소리로 치고 나올 때, 나도 모르게 귀를 열어 듣게 된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던 잡념이 뚝 끊어지고 연주자에게 몰입하게 되지 않았던가? 음악치료 장면에서 강박적으로 드럼을 쳐대는 클라이언트의 자기자극 행동이 반주도 없이 부르기 시작한 치료사의 노래로 멈춰지는 경우가 있다. ‘이건 뭐지? 이 색다른 소리는 뭐야?’ 하면서 주의가 전환되는 것이다. 둘 다 음색의 변화가 귀를 잡아끌어서 얻은 유익이다.

 

다이내믹과 형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 삼삼칠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할 때 수많은 사람의 박수가 딱딱 맞는 느낌, 마지막에 함성의 크기를 조절하면서 힘을 한 군데로 몰아가는 느낌. 이것은 리듬으로 만들어진 다이내믹이 눈에 보이는 듯한 경험이다. 음악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이내믹은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바로 에너지로 전환되어 투여되는 것만 같다. 이런 역동적인 에너지가 치료 상황에서 표출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치료적 에너지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반짝반짝 작을 별 아름답게 비치!’하고 종결음 직전에 노래를 멈추면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하고 소리를 내서 노래를 완성하곤 한다. 비록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내성으로 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적 해결을 지향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기에 장애아동에게도 자주 관찰된다. 반복과 대조로 이루어진 음악의 형식을 인지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식했을 때는 주의 집중력, 순서를 기다리는 인내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힘을 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음악의 흐름 속에서 클라이언트의 산만한 주의력과 행동을 구조화시키는데 마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음악의 형식이다.


음악을 통해서 위로를 얻거나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이렇듯 음악적 요소들이 내게 다가와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 노래 한 자락에 위로받는 순간에도 숨을 쉬듯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런 음악적 작용이 끊임없이 있었을 터. 음악치료사는 이 과정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분석하여 자신의 클라이언트에게 건넬 위로 한 자락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  International Piano 6월호

 

 

 

 



사진 :< International Piano Korea> 에 실린 것을 재촬영.
제목 :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

 

음악치료의 방법 중에 ‘삶을 위한 리듬(Rhythm for life)’이라는 것이 있다. 손에 패들드럼(소고 모양으로 손잡이가 있어 개인이 들고 칠 수 있는 북)을 든 참가자들이 기본 박에 맞춰 단순한 리듬을 연주한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짧은 시간이 아니라 꽤 긴 연주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울림이 좋은 드럼으로 반복되는 리듬을 연주하며 ‘리듬 서클’ 안에 머물다 보면 어느새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지속적이며 균일한 박자가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하나로 모아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하면 이렇게 밋밋하지만 난타 공연을 관람하면서 공연장을 가득 채운 리듬의 진동에 몸과 마음이 저절로 올라타 함께 쿵쾅거리는 느낌 같을 상상해 보시라. 관람이 아니라 직접 연주라면 그 감흥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수십 명의 사람이 리듬 서클을 만들어 드럼연주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열정에 못 이겨 서서히 템포가 빨라진다. 리듬이 지속되며 음악적 에너지는 점점 더 모이고 서서히 절정에 이른다. 절정에 이르러 지펴질 대로 지펴진 리듬의 열기가 ‘두두두두두두두’ 빠른 박으로 더욱 치닫기 시작하면  어느 새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쿵!’하고 마지막 박을 치면서 끝내게 되는 것이다. 팔을 한껏 들어 올려 마지막 박을 치고는 ‘후~’ 숨을 몰아쉬며 맬럿 든 오른손을 내리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시쳇말로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이다.

 ‘삶을 위한 리듬’의 음악치료 장면은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한 장면이지 않은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 일정한 리듬의 북소리와 춤, 단조로운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디언들의 주술행위에서도 봤고 우리의 전통문화인 사물놀이도 얼핏 겹쳐서 떠오른다. 추측건대 음악치료의 한 형태인 ‘삶을 위한 리듬’의 참가자나 기우제 지내며 북치고 춤추는 인디언이나, 사물놀이에서 장구를 맡은 사람이나 마지막 박을 치며 마치는 느낌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거나 저거나 넓은 의미의 음악치료 아닐까?

 인간의 생존자체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 음악. 이 음악이 수천 년 동안 인간의 한 행동방식으로 존재해왔다. 원시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행위가 곧 예술행위이고,  종교의식은 종합예술의 형태를 띠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둘을 분리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과 함께 오래전부터 있었던 음악은 원시사회 종교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원시사회에서의 종교적, 주술적 퍼포먼스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치러졌겠지만, ‘질병치유’는 특히 꽤 중요한 기능이었다고 한다. 질병이나 고통이 신에게서 온 벌이라 믿으며 신을 달래기 위해 사용된 음악이나 춤 등의 예술행위가 곧 종교행위였던 것이다. 원시시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음악이 사용되었다고? 그렇다면 도대체 음악치료의 역사를 더듬으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성서에 나오는 소년 다윗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기 전, 악신에 들린 사울 왕이 괴로워할 때마다 하프를 켜며 치료했다며 음악치료의 시조(始祖)는 ‘다윗’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면 음악치료가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 시조(始祖)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천 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치료의 역할을 수행했던 음악이 오늘날 ‘전문분야로서의 음악치료’로 깃발을 꽂은 시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음악치료사를 양성하는 정규 교육과정의 개설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9973월이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음악치료사 정규 교육과정인 음악치료대학원 석사과정으로 개설되었다. 그러니 채 20년이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진 것이다. 우리나라 음악치료의 이 짧은 역사 이전은 어떻게 더듬어 가야 할까? 숙명여대에서 국내 처음으로 음악치료사를 양성하게 된 최병철 교수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한국인 최초의 미국 공인음악치료사 자격을 얻었으니 그의 족적을 좇아 미국의 음악치료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이 좋겠다. 미국의 음악치료사를 위한 최초의 교육은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1944년에 시작되었다. 정식 학위 과정으로 개설된 것은 2년 후인 1946년 캔자스 대학에서이다. 그리고 곡절 끝에 1950년에 전국음악치료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Music Therapy)가 창립되었다. NAMT의 창립으로 음악치료사가 전문인으로 인정되는 일이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미국 음악치료 역시 한 세기가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신비적 경험으로써 사용된 치료적 음악이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데이터를 통해 효과를 입증 받게 된 것이다. 심리과학 즉, 통계학의 발달로 음악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음악치료가 전문분야로 입지를 다진 1940년대 이전에도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특히 ‘반 데 왈(Willem Van de Wall)’은 세계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정신병원과 교도소 내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오늘날의 음악치료가 태동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반 데 왈은 전문 하프 연주가로 1차 세계대전 동안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교향악단의 멤버로 해군 군악대에서 근무하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19년부터 음악을 통한 치료와 정신질환 예방에 나서게 된 것이다. 반 데 왈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에서 음악을 적극 활용하고 연구하였다. 대체로 이 시기의 음악치료는 ‘어떤 질병에는 어떤 음악’ 이라는 처방식으로 행해졌다. 주로 음악적 전문기술이 없는 간호사나 의사들에 의해서 연구된 것이다.

 사실 태동이라고 한다면 훨씬 더 오랜 기간 서서히 태동되어 온 것이 음악치료이다. 그 이전의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에도, 중세에도, 고대에도 근대 음악치료를 향한 강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1533년 아그리파(Agrippa)4성부를 우주적인 요소와 결부시켜 베이스는 땅에, 테너는 물에, 알토는 공기에, 소프라노는 물에 비유하였다. 또 그리스 시대로부터 내려온 네 가지 기질(다혈질, 점액질, 담즙질, 우울질)과 인체의 네 가지 체액(, 점액, 황색 담즙, 검은 담즙)을 선법에 연관시키기도 하였다. , 도리안은 물과 점액질, 프리지안은 불과 담즙질, 리디안은 공기와 피에, 믹소리디안은 땅과 담즙에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음악과 의학을 연결시키는 주장이라 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천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습관적으로 들으면 그 사람의 성격 또한 미천한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음악의 힘을 말한 것이다. 음악의 치료적 힘을 느끼고 말하는 자리에 숟가락을 얻은 사람들은 이 두 사람뿐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원시시대 기후제를 집도하고 있는 사제이자 음악감독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한 후 어느 때부턴가 음악이 사람과 함께 하였다. 그 음악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고, 우울한 감정일 때 그 감정에 더 깊이 파묻히도록 하였으며 그러다 신비롭게도 아파 누워있는 사람에게 일어날 힘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신비로운 일들을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는 다 알 수도, 이제 와 증명해낼 수도 없다. 다만 그 때로부터 흘러온 ‘음악의 강’이 ‘과학의 댐’과 조우했고 그에 힘입어 ‘음악 안의 치료적 힘’을 입증하게 되었으며 오늘의 ‘음악치료’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기나긴 음악치료의 역사 이야기이다.

<International Piano Korea> 5월호

 

 

 

 


 

<Innternational Piano Korea> - 4월호 '음악치료의세계2'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만족감을 느끼면서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는 정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다’라는 확신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 말이다. 전공을 선택하고 나서 ‘이것은 바로 나를 위한 학문이다.’ 하고 주어진 시간을 ‘아깝다. 짧다’ 느끼면서 공부에 매진하는 그런 학생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이 모든 사람을 대학원 과정을 통해 만나보았다. 동료 학생들을 알아가며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건 뭐 종교단체의 간증집회를 방불케 하는 열정과 확신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바로 음악치료사가 되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같은 확신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 일까?


우리나라에서 음악치료 전공은 대학원에만 개설되어 있다. 때문에 전혀 다른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음악치료 대학원에서 만나게 된다. 음악전공자들이 다수이고 그 밖에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학부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음악치료 대학원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음악전공, 비전공(편의상 음악 외의 전공을 가진 음악치료사를 ‘비전공’ 음악치료사로 부르기로 하자)과 상관없이 이들을 아우르는 단순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 공통점은 어쩌면 ‘전공 만족도 120%’의 기이한 현상을 설명하는 키가 될 지도 모른다. 모두들 전공을 바꿨다는 것이다. 진로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선택, 학부의 전공을 포기하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음악전공의 학생들에게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 앞에서, 또는 바이올린을 들고 연습에 매진하던 긴 시간이 아깝다 여겨지는 대목일 것이다. 모든 음악전공 음악치료사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음악을 하면서도 ‘연주가’의 길을 가는 것이 버거웠다는 고백들을 하곤 한다. 또 음악을 하되 단지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과 관련한 음악’일 때 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기도 한다. 반면 비전공 음악치료사들은 꼭 하고 싶었던 음악을 어떤 이유로 포기하고 다른 전공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도 늘 음악에 대한 미련을 속에 품고 있었던 경험을 자주 듣는다.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한 번 쯤 회의해 보고, 고민 끝에 내게 더 적합한 또는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위해서 낯선 땅을 밟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긴 세월 해왔던 음악을 일정 정도 포기하는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긴 세월 선망해 왔던 음악을 붙드는 일이라 해도 가슴 뛰는 공부가 될 것임은 말할 것 없다. 나는 여기에서 또 다른 의미를 하나 찾는다. ‘치료사’라 이름 붙은 사람들은 사람의 변화를 도모하는 직업인이다. 뉘라서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좋은 음악이 있고, 상담기술이 있다한들 발달이 지체되고, 몸은 퇴행하고,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절로 변화되질 않는다. 좋은 치료도구들은 제 스스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절대적으로 치료사와 환자의 신뢰하는 관계를 통해서 전해져야 한다. 가장 좋은 치료사를 일컫는 말로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다. 즉, 자신이 상처를 받아봤고, 실패해 봤고, 아픔을 겪어봤지만 그 고통으로부터 더 나은 나를 발견하고 변화를 경험해본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치료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치료 대학원에 모인 예비 치료사들은 한 번의 전공 포기, 음악에 대한 각각 다른 갈망이라는 ‘결핍’의 경험들로 인해 좋은 치료사로서 자질을 하나 따놓은 셈이 된다.


이렇듯 음악치료사를 비롯한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필요한 자질은 진정성을 가진 이해와 소통이다. 대략 마주보고 앉아 이해하는 정도의 sympathy가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의 자리에 앉아보고 느껴본다는 의미로의 empathy이다. 이것이면 족할까? 물론 아니다. 모든 악보가 맨 앞에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를 달고 시작하는 것처럼 음악치료사라면 당연히 음악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먼저, 음악활동 시에 반주악기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피아노와 기타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치료 세션에서 사용하는 노래와 반주의 형태는 치료사 자신이 계획하고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클라이언트의 반응과 음악적 선호도가 항상 예측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적 임기응변 또한 필요하다. 준비한 노래의 키를 즉각적으로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 반주 능력, 간단하게 리듬을 변주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음악치료에서 사용하는 음악이 무엇일까? 하고 묻는다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먼저 떠오를지 모르겠다. 헌데 의외로 음악치료 세션에 사용되는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주류를 이루지 않는다. 정신과 병동의 음악치료 세션을 위해서 치료사들이 들고 다니는 악보가 ‘흘러간 우리 가요’ 같은 류라는 것을 아실런지. 노인을 위한 음악치료를 위해서 ‘쾌지나 칭칭 나네’에 맞춰 소고리듬을 연구하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사는 ‘뽀롱뽀롱뽀로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니게 된다. 즉, 치료에 사용하는 음악의 장르와 스타일이 매우 폭넓다는 것이다. 때문에 음악치료사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알고 있고, 노래할 수 있고, 반주할 수 있는 것이 큰 자산이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르던 성악가 출신의 음악치료사는 치매 할머니들과 더불어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다’며 송대관의 뽕짝을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간단한 멜로디를 작곡하고 익숙한 멜로디를 클라이언트에 맞게 편곡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렇듯 음악을 포괄적으로 즐기고 다룰 줄 아는 능력에 더불어 그 음악을 가장 아름답게 연주하고 만들어낼 수도 있어야 한다.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음악치료사가 될 때, 누구보다 음악 속에 자신을 던져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음악치료사가 된다면 치료사와 클라이언트 모두 행복한 일일 것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직업 선택에서 최선의 지점은 ‘내 기쁨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곳이라고 하였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많은 음악치료사들이 그러하듯 처음 음악치료 공부를 시작했을 때, 첫 환자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내 인생에서 결코 잊히지 않는 감격의 순간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거기 있었다는 발견과 확신의 기쁨이었다. 물론 무슨 일에든 허니문기간의 끝은 있는 법. 음악치료사로 일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으로 아주 작은 변화를 보는 일이다. 치료대상의 장애 정도가 중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가끔씩 burn out 되어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또 쏟아야 하는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에 비해 급여로 받는 보상이 적은 직업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이다. 직업에서 얻는 행복감의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음악치료사에 대해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 역시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음악치료사들이 대체로 행복하게 일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음악과 사람 돕기를 동시에 좋아하는 이에게 이만한 직업이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오늘도 어느 병원, 복지관, 재활센터 등에서 기타를 치고, 음악을 들려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음악치료사는 그 세션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어휴, 몸살로 치료를 쉴까 했었는데 치료하다 내가 힐링이 됐네.’ 라고.

 

 

 

<Innternational Piano Korea> - 3월호 '음악치료의세계1'

 

음악치료를 공부하던 십 수 년 전에 이런 식의 질문을 많이 들었다. ‘음악치료가 뭐예요? 음치 클리닉 같은 거요?’ 국내에 음악치료가 대학원 과정으로 처음 생겼던 때니까 용어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었다. 어느덧 ‘음악치료사’가 드물긴 하지만 낯설지는 않은 직업이 된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직업이 음악치료사라고 소개를 하면 대번에 ‘오, 좋은 일 하시네요. 저도 치료 좀 해주세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이내 따라오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음악으로 어떻게 치료해요? 음악을 듣다보면 치료가 되나요? 노래를 막 불러주면 치료가 돼요?’ 음악치료가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십수 년 전에 받은 ‘예? 음악치료요? 그게 뭐예요?’ 하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언뜻 뭔지는 알 것도 같은데 막상 그려지는 그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질문에 한두 마디로 답을 하기가 어려워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과 치료, 이질적인 듯 보이는 두 단어의 조합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바로 이것이 음악치료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걸 어렵게 하는 암호 노릇도 하는 것 같다. 예술로서의 음악이 주관성과 개인성 창조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치료라는 것은 과학적인 측면으로 객관성, 보편성 등을 전제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율배반적 특징을 가진 두 단어의 조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주변에 널린 것이 음악이다. 아침을 깨우는 고통스런 멜로디, 휴대폰의 알람이 음악이고, 눈 뜨자마자 켠 텔레비전의 아침 뉴스는 익숙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는데 집 앞 골목에서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다고 치자. 수거를 마치고 후진을 하며 내는 소리는 ‘띠리리리리 리리리 리...’ 다름 아닌 엘리제를 위하여’ 이다.(베토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음악이 후대에 와서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 아셨을꼬?) 지하철 안에서 꾸벅거리며 졸다가도 환승역에 다다르면 안내 멘트 전에 나오는 짧은 음악에 몸이 먼저 반응하여 튀어나가게 되곤 한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는 내가 주의를 기울였거나 말았거나 항상 들리는 음악 소리,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친구의 목소리보다 컬러링 음악이 먼저 반긴다. 탈수까지 다 마쳤다는 세탁기가 보내는 신호, 취사가 완료되어 임무수행을 했으니 이제 보온으로 전환하겠다는 전기밥솥의 메시지도 짧은 멜로디이다. 주변에 널리고 널려 제일 흔한 잡초가 사람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된다는 말처럼 흔하디흔한 음악으로 치료를 한다는 것이 신빙성 있게 들리질 않는다. 이쯤에서 ‘한국음악치료학회’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음악치료란, 음악활동을 체계적으로 사용하여 사람의 신체와 정신기능을 향상시켜 개인의 삶의 질을 추구하고, 보다 나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음악의 전문분야이다.’

 

뭐래?(하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얘기인 즉슨 이렇다. 일단 음악치료는 ‘음악활동’을 도구로 사용하기에 음악치료다. ‘음악활동’ 은 singing, playing, listening, reading, moving, creating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편안한 음악을 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때로 음악을 듣거나, 들으면서 몸을 움직이거나, 악보(또는 악보를 대체하는 단순화된 기호들)를 읽거나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만드는 활동들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음악활동은 뒤에 나오는 ‘체계적인 사용’에 지배를 받는다. (음악이 가진 힘이 있지만) 음악자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사의 방향성이 있어야 치료적 음악활동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음악치료사가 하는 주된 일은 바로 이것이다. 음악활동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사용’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음악을 만들거나 만든 음악으로 치료활동을 다자인 한다. 그리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음악을 들려주고 함께 움직이고 창작활동을 하면서 관.찰.하.는 것이다. 이 지점이 음악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예술가이며 동시에 과학자인 음악치료사의 정체성도 이 지점에서 또렷해진다.

 

그러면 누구를 치료하는 것인가? 알려진 바와 같이 ‘건강’은 몸과 정신의 무탈함을 말한다. ‘당신은 건강한가?’라는 질문에 몸이든 정신이든 선뜻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선을 그어서 이쪽 저쪽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사람의 신체와 정신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을 도모하는 음악치료는 그 대상이 디테일하게 구분한 음악의 장르만큼이나 다양하다. 손가락 하나 자의로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으로부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까지, 태중에 있는 아기로부터 임종을 눈앞에 둔 호스피스 환자까지,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이와 어른 노인, 삶의 무게와 속도에 치여 내상을 입고 일시적으로 일상에 부적응하고 있는 아동, 청소년, 어른들까지.... 음악치료의 대상이 다양한 만큼 음악치료사들의 취향과 성격과 관심분야가 제각각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공부하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대상을 찾아내는 치료사들의 각기 다른 선택이 흥미롭다 못해 신비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처럼 사는 이는 나 밖에 없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한다. 하나 뿐인 ‘나’로서의 음악치료사와 하나 뿐인 ‘나’, 클라이언트가 음악을 통해 이어지는 신비로운 만남이 음악치료의 숨겨진 매력이다.

 

음악치료는 ‘사람, 변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 변화란 막연한 기대와 당위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때는 발견되지 않는 것일 터. 변화를 믿고 추구할 뿐 아니라 변화를 위해서 면밀하게 클라이언트를 관찰하고, 음악을 계획하고, 몸을 던져 음악을 펼쳐내는 치료사의 눈에 발견되는 변화다. 다시 한 번 음악가이며 과학자인 음악치료사의 이중적 정체성이 빛을 발해야 하는 시점이다.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행동의 변화’가 음악치료의 정의에 있어 하이라이트요라 생각한다. ‘보다 나은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그저 ‘음악활동’을 했을 뿐 ‘치료’라 할 수 없다. 간단히 정리하면, 음악치료는 ‘음악’을 가지고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음악의 전문분야이다.

 

치료의 전문분야로 자리 잡은 음악치료의 역사는 반세기가 조금 넘는다. 그러나 음악이 치료의 도구로 사용된 역사는 원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성서에는 하프로 악신에 사로잡힌 사울 왕을 치료한 목동 다윗의 이야기가 나온다. 비공식적인 긴 역사를 가진 음악치료는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다. 매 달 하나 씩 음악치료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더불어 사람에 대한 관심의 끈이 놓아지지 않는 독자라면 귀를 기울이셔도 좋으리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