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읽고 기도했다. "주님, 족합니다. 이보다 더 큰 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연구소를 통해 하고 싶은 일, 마음에 품고 있는 소원을 그대로 적어주셨다. 아니, 체험해 주셨다. 이보다 큰 보상이 없다. 줄 수 있는 것을 기대해주고, 주는 것을 받는 마음이면 족하다. (P목사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정신실 마음성장연구소’가 ‘루아영성심리연구소’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는 소식. 연구소를 처음 만났던 시기에 나는 거칠고 무책임한 신앙의 언어에 탈진해 있었다. 더는 목사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고, 어쩌면 기독교인으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연구소를 만났다. 그곳은 내가 기독교인으로 자라며 처음 마주한 여성들이 중심이 된 공동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에니어그램과 내적 여정’ 과정에 참여했고, 연구소에서 마련한 성심수녀회 신소희 수녀님의 의식성찰 강의를 듣기도 했다. 이후에는 성심수녀회 예수마음배움터에서 진행한 예수마음기도 피정에도 참석했다.
연구소 프로그램에서 뭘 했더라? 이렇게 떠올려 보면 ‘가부장제’란 단어가 뒤따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으로 성장하며 숨겨뒀던 내면의 그늘에 과감하게 직면하기. 안전한 공간에서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드러내기. 나 자신의 내적 모순과 긴장을 애틋하게 바라보기. 구체적인 경험에서 기도를 시작하기. 마음의 소요와 동요를 반갑게 받아들이기 등. 분명 교회에서 할 법한 일들인데도 교회에서는 해본 적 없던 워크숍들을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해나갔다.
그럼 뭘 배웠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시의 언어와 내가 가장 부담스러워했던 기도의 언어가 실은 같은 종족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성찰과 발견이 나를 움직여간다는 말의 의미를 내 경험 속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시 기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엄마가 ‘요즘 너 기도는 하니?’ 라고 물어보면 ‘나도 매일 기도한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 망가져 있다. 나는 연구소라는 안전한 울타리에 머물며 나의 망가진 부분들을 마음껏 나눌 수 있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던 순간의 기쁨과 용기가 나에게도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내 열등감과 그림자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그 과정에서 수시로 얼굴이 홧홧해질 만큼 부끄러웠지만 늘 무척이나 즐거웠다. 나의 짜치는 면들을 확인하고, 그런 나를 나 스스로 북돋아주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런 내 옆에는 항상 정신실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계셨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선택한 후원단체도 ‘루아영성심리연구소’다. 연구소와 어떻게든 연결되고 싶어 후원을 시작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눈을 조금만 돌리면 기독교 신앙의 오솔길을 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루아영성심리소가 그런 곳들 중 하나라고 믿는다. 계속 힘을 내셔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새 힘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다.
'정신실의 내적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Ruach루아영성심리연구소 (2) | 2025.03.11 |
---|---|
사귐의 기도, 사귀며 기도 (0) | 2025.02.09 |
뜨개 깊은 수다 (0) | 2025.02.01 |
모든 부치지 못한 감사 편지 (0) | 2025.01.15 |
모든 특별한 기도 (0) | 2025.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