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겠다, 안 한다 하다 하고 나서는 참 좋은  MBTI 강의를 했다. 주제를 막론하고 청소년 대상 강의는 거절하고 있다. 거절하고 거절하다 왠지 해야 할 것 같은, 하고 싶은 강의가 생기기도 한다. 나음터 벗님 중 한 분의 요청인데, 대상이고 내용이고 할 것 없이 요청하는 분이 좋아서 수락하고 만 청소년 대상 MBTI 강의였다. 이미 작년에 한 번 했고. 암과 싸우고 있거나 싸워 이긴 청소년들이다. 만나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러나 깊이 마음을 들여다보면 고유한 아픔을 간직한 청소년들이다. 3주간 아이들을 만났고, 마지막 주에는 어머니들과 함께 했다. 연구소 꿈나무 샘과 그림 작업도 함께 해서 더 풍성했다. 

MBTI 열풍으로 너도 나도 MBTI 전문가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남들 다 하는 것 하기 싫어하는 까칠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이젠 강의도 하기 싫지만. 막상 만나서 MBTI가 아니라 '사람'에 방점 찍고 강의하다 보면 다시 그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MBTI를 가르치겠다는 태도보다 참여한 사람들에 비추어 내가 아는 MBTI를 새롭게 하겠단 마음으로 간다. 기실 모든 성격유형 도구는 사람에 관한 것이라,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것, 누구보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것이 배움의 왕도이다. MBTI 자체가 아니라 수강자들이 보여주는 눈빛, 질문, 나눔이 강의의 메인이 되는 것이다.

 

지난 달이던가, 'MBTI 현상'을 주제로 CBS 토론에 나간 적이 있다. 방송된 지 조금 지났는데, 뒤늦게 링크 걸어본다. 편하게 공유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이유들이 있었는데. 외적인 이유야 어쩔 수 없고, 내적인 부대낌은 시간이 지나며 잘 흘려 보내게 되어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유한다.  너도 나도 전문가로 착각하고 있는 MBTI 과열 현상,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가장 문제다. "안다"는 것은 더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통하니, '안다'는 그 대상의 좋음을 더는 발견하거나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고, 자꾸 마음에 새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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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6.14 10:49 신고

    '안다'는 것에 내리신 정의에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찬란한 5월이었다. 2022년 5월의 하루하루는 새롭게 푸르르고 새롭게 찬란했다. 나무가 그랬고 풀이 그랬다. 큰 나무 사이를 오가며 울고 웃는 새소리가 그랬다. 그 좋았던 순간을 마음과 몸에 담아두고 싶었다. 공기, 바람, 나무 냄새, 새소리의 기억은 금세 사라지고 '좋음'만 남을 것이다. 

 

그 5월 어느 날, 사람들과 공원에 앉아 나눈 가벼운 수다와 웃음을 마음과 몸에 담아두고 싶다. 신록 사이 홍일점 같은 붉은 단풍나무도, 와하하하 터지는 웃음도, "내가 맞혔어!" 환호성도, 샌드위치도... 이런 기억은 머지않아 사라지고 '좋음'만 남을 것이다 만남과 치유와 성장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상처 입은 치유자' 지도자과정의 소풍 날이다.

 

 

to do list가 즐비하다. 강의하는 사람, 강의 듣는 사람, 글 쓰는 사람, 읽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소장님, 작가님, 엄마, 고3 엄마, 아내, 사모님...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일의 성격이 달라서, 가끔 너무나 이질적인 일들을 해야 해서 포스트잇에 적어 코 앞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 그런 5월이기도 하다.

 

to do list의 중심에는 목요일이 있다. 목요일을 중심으로 일주일이, 5월 한 달이 돌고 돌다 지나갔다. 어색한 긴장으로 만난 낯선 사람 사이가 시간과 함께 무르익어 가는 것은 참 신비한 일이다. 사람들 사이 강이 흐른다. 어떤 살아 있는 강이 흐른다. 지도자 과정뿐 아니다. 연구소 하면서 빠지고 또 빠지고 헤엄치는 사람들 사이의 강이다.

 

꿈 모임을 과정 하나를 마치며 단톡에 올라온 톡이 이렇다. "저 이 그룹 나가기 넘나 아깝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 안 내주고싶을 만큼 욕심납니다...이런 치유의 공동체 자체가 정말 희망인것 같습니다. 이런 공동체 만들어주신 나리 정말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저희 또 다른 여정에서 만나요! " 만들어 놓으면, 모아 놓으면 서로 내놓고 받아주고, 또 내놓으면서 자라는 사람들의 모임이 참 신비롭다.  

 

바람 소리, 시답잖은 농담과 까르르 소리... 이 '좋음'을 몸과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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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6.05 20:10 신고

    아! 그 느낌 정말 자리 안빼고 싶은!! 공감이요 ^^ 조만간 자리하나 비집고 들어가요 ^^

'상처 입은 치유자 : 에니어그램 지도자 과정'이 시작되었다. 세 번째다. 각자 꾸민 저 양초의 개성을, 양초가 놓인 일상의 자리를 보면 감동을 너머 신성한 느낌까지 든다. 상징의 힘이다. 살아온 날의 서사가,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이 과정을 선택한 이유가,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 사이 거리로 인한 막막함이, 성장과 사랑에 대한 기대가, 무엇보다 하나님을 찾는 갈망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만든 양초가 각각의 일상의 자리에 놓여 있다는 것도 그렇다. 마음과 영혼에 대한 높은 배움과 깨달음이 있다 해도 결국 그것을 살아내야 할 곳은 일상이니까. 일상은 많은 경우 견뎌야 하는 곳이니까. 내적 여정 공부들이 이분들 일상에서 촛불 하나로 빛을 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상의 작은 것을 변화시키는, 친밀한 관계 사이 작은 돌 하나라도 치우는 그런 여정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을 적다 보면 "너는 그러고 있니?"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무겁다. 행복하게 무겁고, 감미롭게 고통스럽다. 무겁든 가볍든 연결은 생명이고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기에 좋은 일인 것은 확실하다. 연구소 카페 지도자 방에 올리며 마음에 심은 씨앗을 여기에도 심는다.

나에게 있어 에니어그램은 사랑 안의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영성이란 언제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이 말, 에니어그램은 사랑이라는 말 어떻게 들리시나요. 그 무게감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사랑의 대상으로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세요? "더 사랑하고 더 이해해야 하는데, 나는 사랑이 부족해, 이기적이야." 이렇게 읽히시진 않나요. 저는 그렇게 읽혀요. 사랑이 부족한 내가 이런 말을 가지고 강의할 자격이 되나, 누군가 내게 이 글을 들이밀며 검증하려 하면 어떡하지? 우선은 그렇게 읽혀요.

사랑의 내용과 순서에 대해 오래도록 깨지지 않는 선입관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의 목소리죠. "너는 왜 그리 교만하니? 쌀쌀맞고 사랑이 없니? 사랑은 둥근 거다. 좋은 사람, 싫은 사람 다 품어주는 거여." 제 인생에 가장 큰 사랑을 준 사람이 엄만데, 사랑에 대한 잘못된 명령어를 뿌리 깊게 입력한 사람도 엄마예요.

리처드 로어 신부님이 에니어그램을 사랑 안에서 성장이라고 말할 때, 에니어그램의 죄로 인해 울어야 제대로 자기 유형을 찾았다고 할 때, 먼저는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 번호로 흥하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일이 얼마나 작은 자기로 사는 일인지, 그런 삶이 계속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이웃으로부터 멀어지는 고립, 치명적인 악에 빠진다는 거요. 번호에 매몰되어 살고, 번호의 방어기제를 그럴듯하게 자기 이미지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거죠.

잘못 입력된 명령어를 예수님께서 수정해주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가 본 만큼 안내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나를 만나본 만큼 다른 이와 진실하게 만날 수 있다는 뜻이고, 나를 용납해 본 만큼 타인을 용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내 존재가 사랑의 존재로 성장하는 것이 관건이라고요.

친밀하게 다가갈수록, 더 사랑하고자 애쓸수록 나의 집착과 회피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납니다. 여러분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 제 페르소나, 역할입니다. 역할에 동일화되지 않아야 할 텐데요. 여러분의 성장을 돕는다는 미명 하에, 닦달하고 겁주고 조종하려는 저를 봅니다. 역할에 도취하여 쉽게 자만심에 빠지고, 부족함을 마주할 때는 자기 비난에 휩싸이는 악습이 제게 있습니다. 올 일 년 여러분께 비춘 제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피하지 않고, 매일 십자가 앞으로 저의 죄를 가져가고, 거기서 받아들여진 저를 확인하며 저를 용납하고 사랑 안에서 성장하겠습니다. 성장하는 사랑의 씨앗을 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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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지도자과정 개강 주간이다. 꽃봉우리들이 막 터지기 일보 직전, 생명들이 고유의 무언가를 터뜨리기 위해 일발 장전한 봄날이었다. 2기 지도자과정 마친 목사님, 올해 내적 여정의 새로운 벗으로 오신 그분의 아내를 만나러 갔다. 창덕궁 근처 전시회이다. "Ego"라는 이름을 단 전시회. 여러 의미로 새로운 날을 향해 가는 벗님의 그림을, 그림에 담긴 묵상을, 젊은 부부의 소망을 관람했다. 관람에 그치고 싶지 않아서 몇 정거장을 걸었다. 걷다, ㄱㄷ, 기도, ㄱ ㄷ. ‘걷다’는 가끔 ‘기도’로 읽어도 좋다.

벌써 준비해두셨다는 지도자과정 2기 선생님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았다. 마이크다. 작년 한 해, 현장 모임과 줌 모임 병행하며 아슬아슬하게 진행된 2기이다. 올해 3기 하반기에는 온라인으로 해외까지 연결될 예정인데, 이렇게 꼭 필요한 선물이라니. 롤링페이퍼도 함께였는데, 첫 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에니어그램을 배우러 갔는데 1년 동안 사랑을 배웠어요.”

어떻게 알았지? 에니어그램 표방하고 사랑을 하려는 것인데. 알아준 마음의 고마움과 함께 경고로도 들린다. “에니어그램만 가르치지 말고 사랑을 하세요. 영성은 사랑입니다.” 라고 읽는다. 에니어그램 배우러 왔다가 사랑을 배운 분이 있는가 하면, 사랑받으러 왔다가 에니어그램만 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돌아간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연구소를 할 이유가 없지만, 지금 여기서 살아내지 못하는 나의 누추한 처지도 본다.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 둘 중 하나만 나라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으려 하고, 둘 다 나이며 둘 다 내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1. BlogIcon healed 2022.04.09 22:31 신고

    영적여정을 대면으로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한국에 그렇게 오래 머무를 시간이 없겠죠 ㅜㅜ
    맛있게 익어서 하반기에 사랑받으러 갈께요~^^*

    • BlogIcon larinari 2022.04.10 10:31 신고

      대면보다 찐하게 함께 손잡고 여정 가고 있는 느낌이지만! 대면하여 볼 날은 늘 그리지.♡


* 월간 <복음과 상황> 4월호에 실린 인터뷰이다. 글도 말도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다른 느낌의 드러냄과 마주함이 된다. 긴 숙고로 정리되어 나오는 것이 글이라면, 일단 내보낸 후에 곱씹게 되는 것은 말이다. 인터뷰이로서 질문을 받고 답을 하는 것은 늘 좋은 경험이 된다. 내 입에서 나온 답을 복기하면서 몰랐던 내 마음을 알게 되기도, 따로 굴러다니던 생각의 구슬을 꿰어 (나만의) 보배로 간직하게 되기도 한다. 좋은 질문과 함께 잘 정리된 인터뷰 기사로 흩어진 구슬을 꿰어주신 <복음과 상황> 정민호 기자에게 감사하며 공유한다.


‘신앙 사춘기’를 지나며 마주한 하나님, 교회 그리고 목사들 : 《신앙 사춘기》 개정판 펴낸 정신실 작가


신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때가 있다. 교회와 목사, 여태까지 해온 신앙생활들이 다르게 보이는 시기다. 신앙 전반에 냉소와 반항을 품은 채 교회 생활을 견디거나 교회를 떠나는 이 시기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정신실 작가(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소장)는 이 시기를 ‘신앙 사춘기’라 이름 붙였다. 2019년 그가 펴낸 《신앙 사춘기 – 신앙의 숲에서 길 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뉴스앤조이)는 목회자 아내가 된 후 ‘신앙 사춘기’로 보내며 겪은 일들과 진솔한 마음을 정리한 결과물이었다. 그의 글에는 목사를 향한 복잡한 마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앙 사춘기에 들어선 후 “무엇보다 누구보다 위선적인 목사가 싫었다”라는 그의 고백은 교회에서 목회자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신앙 사춘기》 개정판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실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앙 사춘기 이후 이야기가 궁금했고,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 셋(아버지, 동생, 남편)을 모두 목사로 둔 그에게 ‘목사의 역할’ ‘목사의 쓰임’은 긍정이기만 할 수도 없고, 부정이기만 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정 작가는 또다시 신앙의 새로운 국면을 시작하고 있었다. 3월 3일 인터뷰 당일은 그가 입학한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인터뷰는 캠퍼스 근처 스터디룸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신앙 사춘기》 개정판이 출간되고, 지난주엔 출간 기념 저자 특강도 하셨습니다.
사실 말이 개정판이지, 누락된 글 하나(동생이 목사를 그만두면서 쓴 글)가 들어간 거예요. 내용이 많이 달라졌는지 따지면 큰 의미가 없고, 책 출간 이후로 여러 독자분과 만나면서 정리된 제 생각들을 다시 독자들 앞에서 나누는 것이 바람이었죠. 신앙 사춘기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서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고요. 강연을 이어가면서 책에 쓴 고민과 생각이 더 명료해졌어요. 이것을 시작으로 다시 신앙 사춘기 이후를 글로 쓰는 작업도 차차 해보려고요.

더 확장된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는 뜻인가요?
네.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지만요. 어쨌든 ‘신앙 사춘기’라는 이름은 대상이 명료하잖아요. 사춘기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죠. 저는 사실 목사님들조차도 ‘신앙 사춘기’를 겪으신다고 생각해요. 신앙 여정, 신앙 발달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죠. 그래서 그 이후에도 여전히 신앙생활이 있고, 일상이 계속되니까 여러 질문에 대해 포괄적으로 써보고 싶었어요. 사춘기가 지나면 어른이 되잖아요. 어른이 된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지만 어른 나름의 삶과 의미가 있는 것처럼 신앙 사춘기 이후도 분명 의미 있는 삶과 신앙이 있어요. 그 이후 제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무엇을 견뎌가는지와 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신앙 사춘기 너머’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혹시 지금 대학원 공부를 또 시작하신 것이 연관이 있을까요.
아주 큰 연관이 있죠. 스캇 펙의 영적 발달 4단계를 보면, 1단계는 혼란스럽고 반사회적인 단계, 2단계는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단계, 3단계는 회의적이고 개인적인 단계, 마지막 4단계는 신비적이고 공동체적인 단계라고 하거든요. 신앙 사춘기 이후 어떤 여정을 가야 하냐 묻는다면 신비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라고 안내하는 거죠. 신비적인 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는 부분을 모르는 대로 두고 여정을 걷는 것이겠지요. 신앙 사춘기 때는 몰라서 너무 속상하고 고립되어있는 것 같았지만, 원래 하나님은 알 수 없는 분, 신비인 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사는 것이겠죠.
안셀름 그륀은 《아래로부터의 영성》(분도출판사)에서 ‘위로부터의 영성’과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소개해요. 신앙에는 저 높은 곳에 초월해서 계신 하나님을 향한 이상을 가지고 신학과 교리를 배우고 더 높이 상승하고자 하는 방향의 영성도 있고요. 내가 있는 아래, 지금, 여기, 하찮고 보잘것없고 누추한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영성이 있죠. 두 가지 축이 말이에요. 이걸 신앙 사춘기 이후에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고, 체험적으로도 깨달았죠.
그러면서 결국 중세 신비주의 영성을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많은 중세 영성가들의 가르침에서 소중한 답을 많이 찾았기 때문인데요. 위-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라는 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 때 그 방법으로 두 개의 신지식(神知識)이 있다고 해요. 긍정신학과 부정신학. ‘부정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묘사하는 모든 표현이 인간의 감각적 표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정의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내가 이때까지 가졌던 하나님 이미지, 즉 ‘하나님은 어떠어떠한 분이다’ 같은 정의를 하나씩 제거해가며 하나님을 만나가는 것이 부정신학이에요. 물론 이전에 긍정신학이 먼저 있어야죠. ‘하나님 안 계셔. 내가 여태까지 알던 하나님은 어디 계시지?’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신앙 사춘기였고, 제가 겪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었어요. 그 이후 제가 하나님이라고 알던 것들이 무너뜨리면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여정이 신앙 사춘기 너머 같아요. 그러니 신앙 사춘기는 더 깊은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었던 거죠.
중세 신비주의 영성은 신앙 사춘기 이후 제 눈을 뜨게 해주었어요. 개신교 신학교에선 이런 영성을 공부하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어요. 중세 영성을 잘 배워보려고 가톨릭 신학교로 갔는데 마음은 자유롭고 편안한 것 같아요. 경계를 확 넘어왔음에도 이 하나님이 저 하나님이고, 저 하나님이 이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들고요.(웃음)

 


‘신앙 사춘기’ 이전 작가님의 신앙 여정은 어떻게 구분이 될까요?
남편이 신학교를 가기 전까지를 첫 번째 단계라고 한다면, 남편이 신학교를 가고 파트타임 사역할 때가 두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 남편이 담임 목회를 하는데요,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 대신 ‘섬김목사’로 불러요. 담임 목회라는 말이 엄밀히 따지면 정확한 표현은 아닌데, 지금이 세 번째 단계라고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이 신학교 가기 전까지는 정말 ‘교회의 딸’로 살았어요. 어릴 때 주일학교 초등부를 졸업하고 중등부 무렵부터 교사를 맡았거든요.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유아실 개념이 없던 시절 아이들을 맡아서 아이를 봐주는 일이었어요. 즐거웠죠. 청년 시절에는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주보 편집장도 하면서 열심을 냈죠. 주일성수는 정말 목숨처럼 지켰으니까요. 회사가 주일날 출근하라고 해서 사표도 내고 그랬어요.(웃음) 결혼하고도 남편과 가정교회 리더를 했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하면서 가정교회 셀모임을 한 거죠. 정말 자발적으로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그땐 성가대 지휘도 했고요.

그러다 자발적으로 신앙생활할 수 없게 된 시기가 왔군요.
남편이 신학을 하면서 제 위치가 바뀌어 버렸어요. 자발적으로 하던 사람이었는데, 당위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니까 제가 달라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정말 기도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새벽기도 안 나온다고 체크당한다든지…. 저는 가만두면 알아서 교회 일꾼으로 살 텐데, 목회자 사모라는 이유로 자율성이 박탈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어요. 이때가 ‘신앙 사춘기’의 시작 같아요. 이명박 정권 때였는데, 교회와 사회의 거리를 느끼며 분열적 마음들이 갑자기 올라오기도 했고요. 중년을 맞아, 제 안에는 영성적 허무감 같은 것들이 작용했어요. 한 길게는 10년 정도 마음이 방황하는 시기를 겪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도 제 교회 생활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어요. 목회자 아내로서 역할은 했고요. 그러다 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죠. 그런 시간을 길게 통과했어요. 제가 《신앙 사춘기》를 쓸 만큼 생각이 정리되고 힘이 생겼을 때 남편은 교회 분쟁으로 두 차례나 진통을 겪은 분들이 세운 현재 교회로 청빙을 받았어요.

구분하셨던 단계 중 ‘세 번째 단계’죠?
맞아요. 저로서는 《신앙 사춘기》를 쓰면서 의지적으로 마침표를 찍고, 다른 신앙의 단계로 가겠다고 생각한 시기였어요. 교회 문제로 아픔을 겪은 이들이 다 같이 모여 교회 생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요. 스스로 인식하든 하지 않든 상처로 인한 날카로움 같은 것들이 있죠. 《신앙 사춘기》 저자의 남편으로서 남편은 그런 분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긴 하죠. 하지만 목회자에게 상처받은 분들 앞에서 설교하고 목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는 불신을 인내해야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 시대의 ‘어떤’ 목사들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기꺼이 욕먹어주는 목사가 필요한 시대 같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제 신앙 여정은 목사님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그들을 추앙하던 시기, 반대로 목사님들을 향해 분노하며 저 자신의 신앙을 혐오하던 시기, 그 너머 또 다른 목사님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기꺼이 견디고 감당하는 시기로 나뉜 것 같네요.

교회에 대한 신뢰를 잃은 이들 중에는 목회자에게 실망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걸 보면 교회와 신앙생활의 중심에 목회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현실에서 목회자의 필요와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교회에 목회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와 목사에 대해 냉소만 남은 시절이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존경할 영적 지도자가 필요해요. 그런데 신을 매개하는 역할이라서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투사하는 자리가 목회자니까요. ‘신앙 사춘기’를 겪는 분들이 어떤 목회자를 기대할까요? 저마다 다를 겁니다. 교회 분쟁이 생겨도 싸우는 이유가 저마다 다른 것처럼요. 그래서 어려운 게 교회 문제 같아요.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여러 욕망을 투사하지만, 사실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은 목사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어 살고 신앙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해요. 진실한 목회자요. 진실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 사는 사람이잖아요. 목사님이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소통을 잘했으면 좋겠어요, 설교를 잘해야죠 등 여러 바람이 있겠죠.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적 지도자에게 바라는 건 ‘영혼의 투명함’이지 않을까요. 말처럼 쉬운 덕이 아니죠.

목회자가 교인들의 다양한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기보다 진실한 모습을 비추는 게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예를 들면 1년, 52주 설교가 모두 성공하면 그건 위험한 거죠. 매주 하는 설교마다 교인들이 은혜받았다고 열광한다면 말이에요. 자기 판단 없이 목사에게 본인을 투사하거나, 목사가 교인들 기대에 맞는 설교만 준비한 거겠죠. 아니면 교인들이 자기 존재로 설교를 듣는 게 아니라 ‘좋은 교인’ 페르소나로 교회 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사람이라면 52주 설교 중 절반은 별로인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목회자도 교인도 자기 자신이 되어 설교하고 듣는다면, 어떤 때는 은혜가 되고 어떤 때는 피차 상태에 따라 무덤덤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야 사람이죠.(웃음)

혹시 목회자의 설교가 성공할 때가 따로 있나요?
제가 목사인 남편을 질투할 때가 있는데, 바로 장례식이에요. 질투라 했지만, 장례식 때 저는 목회자 권위가 어떻게 아름답게 쓰이는지를 봐요. 가족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분들과 정말 마음으로 함께하고 싶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고 싶지만 어떤 말이 위로가 되겠어요. 그런데 목사인 남편이 장례 예배에서 진심을 담아 전하는 설교는 유족들에게 위로도 되고 희망도 되더라고요. 인간의 실존적 슬픔 앞에서 목회자가 권위를 사용할 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느꼈어요. 결혼식도 마찬가지예요. 결혼식은 두 사람, 두 영혼이 맺는 깊은 약속인데, 잘 준비된 결혼식에서 목사가 진심을 담아 설교하고 약속의 증인이 되어줄 때 성혼 선언이 절대 가볍지 않은 것임을 경험하죠. 사람들이 실존의 문제나 사건 앞에서 홀로 감당할 수 없을 때, 목사 이름, 사제 이름으로 손잡아주는 일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 제가 아는 많은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했어요. 팬데믹이 상실의 시대를 사는 것이잖아요. 상실이 만들어내는 ‘허무의 강’ 같은 게 있어요. 이럴 때 가벼운 것들이 물 위로 떠올라요. 쓸데없는 것들, 내 안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먼저 걸러지는 거죠. 어렵게 꾹꾹 참아가며 기성교회에서 목회하던 분들이 허무의 강을 통과하며 어떤 결단들을 하시게 되었나 봐요. 이 시기에 교회를 개척하신 분들은 어려움이 많을 거예요. 교회가 잘될 때 해도 될까 말까인데, 개척하고 온라인 예배밖에 드릴 수 없다니요. 자신이 가진 결핍, 어려움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시간을 통과하여 자기 자신으로 목회하게 되시길 기도하는 마음이에요. 저는 그런 목사님들에게서 희망을 봐요.

공교롭게도 작가님 주변의 가장 가까운 남성들이 ‘목사’였습니다. 아버지, 남편, 남동생이 목사였기에 적어도 3명의 목사를 가까이서 보셨는데요. 바깥에 보이는 모습 외에도 ‘이면’을 많이 목격했을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다양한 목사의 다양한 얼굴을 보며 성장하고, 겪고, 신앙생활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신앙 사춘기》에서는 정말 존경하는 목사에게 크게 실망한 채로 작심하고 글을 썼지만, 어느 목사님에게나 여러 면이 있다고 봐요.
어릴 때 목사인 아버지에 대해 기억나는 것들이 있어요. 말하자면, 전도사님을 부당하게 해고하셨던 장면이에요. 전도사 사모님이 죄송하다고 하면서 울고 가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당시 교회에서나 어린 제 안에 부당해고 같은 개념이 있지도 않았는데, 막연하게 아버지가 부당한 힘을 행사한다는 느낌을 받았죠. 아버지는 이북이 고향이라 이북 사투리를 쓰셨는데요. 엄마와 아버지가 힘들어하셨던 건, 부흥회 끝나고 교인들이 한 얘기들이었어요. “며칠 쌀밥을 먹었는데, 이제 어떻게 보리밥을 또 먹냐”라고 하면서 ‘정거장’을 ‘덩거당’이라고 발음하던 아버지의 이북 사투리를 흉내 내던 일도 기억에 남네요. 아버지를 참 좋아하고 존경했는데요, 목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뭔가 석연치 않고 슬픈 감정들이 떠올라요.
《신앙 사춘기》 개정판에 들어가는 건 동생 글인데, 동생은 목사를 그만두었어요. 이유는 그런 거였죠. 교인들에게 보이는 모습 때문에 기도하는 척, 소망이 있는 척, 하는 것을 더는 할 수 없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것 역시 목사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역할을 하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역할과 자기 자신을 구분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가진 민감성과 한계가 다르기에 동생의 선택을 충분히 공감해요. 목사의 위선에 상처받았던 저로서는 그런 용기가 고맙기도 하고요.
남편은 뒤늦게 목사가 되었어요. 결혼하고 한참 뒤에 많은 고민을 거쳐 목사가 되었죠. 누구나 그렇듯 목회 시작할 때 품은 비전과는 전혀 다른 길 위에 있는 것 같아요. 아까 말했듯 현재의 부르심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며 지금 앉은 자리를 꽃자리로 여기고 있어요. 제가 모든 목사님의 내면을 볼 수 있지는 않지만, 때로 가까운 곳에서, 때로 거리를 두고 여러 모습을 보며 신앙생활했네요. 목사님들의 여러 얼굴을 담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로만 말할 수 있는 진실이 있잖아요. 그걸 써볼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웃음)

 


목회자 아내로서도 고충이 많았을 듯합니다. 아까도 혼자서도 신앙생활 잘할 사람인데, 사모 되고 나서 힘드셨다고 하셨는데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목회자 아내는 가장 소외된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어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층위별로 전부 존재하는 것 같아요. 목회자 남편의 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흔히 명예 남성 정체성으로 교회 내 가부장적 구조를 더 강화하고 다른 여성들을 더 억압하는 분들도 있고요. 어떤 분들은 사모로 부르신 소명이 있다 여기며 교회와 교인들이 요구에 충실하죠. 드물게,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 신앙생활하고자 목소리를 내는 분도 있고요. 입장은 다르겠지만, 근본적·구조적으로는 근거 없는 통념의 피해자인 것은 같다고 봐요. 제 교회 같은 경우, 공식적으로 ‘사모’ 호칭을 쓰지 않아요. 그렇다고 제가 보통의 비목회자 가족의 한 사람처럼 신앙생활하냐고 물으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유능한 간호사로 소명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던 아끼는 후배가 있어요. 남편이 부임한 교회에 “사모들은 일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죠. 굳이 하겠다면 남편 사례비에서 일정 정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예요. 말도 안 되잖아요. 교회가 목회자 아내를 목사와 함께 묶어서 동일한 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거예요. 목회자 아내라 불리는 한 사람, 한 존재를 지우고 희생시키는 구조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굴러가는 셈입니다. 목회자 아내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개인적으로 어떻게 인식하든 구조 자체가 폭력적이죠. 어쨌든 자기로 살지 못하게 하는 구조에서 목회자 아내는 피눈물 흘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 너무 가슴 아파요.

목회자 아내가 이런 구조를 인식하는지가 ‘다른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경우, 선택권이 목회자 아내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죠. 원론적으로 목회자로 부름 받은 사람은 남편이잖아요. 남편이 목회자로 부름 받았고, 나는 주체적으로 신앙생활할 권리가 있다면 직장생활하는 것이, 심지어 어느 예배에 나가고 안 나가고 하는 것이 나 개인의 선택이죠. 이 당연한 말을 하는 거예요. 세상 어느 여성이 남편 직업에 따라 자기 일과 삶을 이 정도로 지배받을까요? 저는 주일에 타 교회 강의가 있으면 다른 곳에 가서 예배드리게 되기도 하고, 수요예배 등은 안 나가기도 하거든요. 제가 이런 식의 교회 생활을 계속하려면, 아마 저희 남편은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 요구하는 목회를 포기해야 할 거예요.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한데요. 큰 교회를 목회하기는 틀렸다고 농담하곤 하죠.(웃음) 목회자 아내의 기본적인 인권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목회자 아내가 이런 구조에서 오롯이 본인답게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말씀이네요.
현실적으로 ‘결단’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내를 위한 교회의 부당한 요구를 일차적으로 막아줘야 하니까요. 당연히 핍박받을 수도 있고요. 제 경험에서도 사모가 왜 새벽기도 안 나오냐, 이런 얘길 먼저 목회자인 남편이 들어야 했고요. 남편이 당하는 일을 아니까 새벽에 일어나 억지로 교회에 가려 하면 남편이 그렇게 말해줬어요. “당신이 기도하고 싶으면 가, 그 이유가 아니라면 가지 마”라고요. 정말 고마웠죠. 그런데 이건 궁극적으로 목회자인 남편 자신을 위한 결단이기도 하단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자기답게 목회하기 위해 누구도 수단 삼지 않겠다, 가장 가까운 아내와 가족부터 목회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그게 자기 발로 서는 목회일 텐데 쉽지 않죠. 제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목회자 아내가 된 후 신앙 사춘기를 겪고, 그 와중에도 교회에서 할 일은 다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웃음) 지금까지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준 건 무엇일까요.
저는 교회를 떠날 수 없어요. 저는 교회를 사랑해요. 신앙 사춘기로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시절이라고 느꼈던 때, 아빌라의 테레사라는 중세 여성 신비가를 만났어요. 자서전을 보니 저랑 비슷한 면이 많으셨어요. 에니어그램 유형도 같은 것 같고요.(웃음) 《영혼의 성》(바오로딸)이라는 그분의 유명한 저서를 통해 깊은 영성 안내를 받기도 했지만요. 성녀가 사시던 시대 상황과 선택을 보며 감동받은 바가 있어요. 종교개혁 즈음에 태어나셨어요. 타락할 대로 타락한 가톨릭교회와 수도원 안에서 자라신 거죠.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면, 테레사 성녀는 루터와 다르지 않은 문제의식을 갖고 부패한 수도원을 개혁했어요. 기존에 있던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여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를 창설했어요. 개혁의 유일한 길을 예수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여겼기에, 가난과 청빈의 삶을 위해 실제로 맨발로 평생 살아가기로 했죠. 종교개혁 당시 제가 가톨릭교회 안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한번 생각해봤어요. 본질과 멀어져 부패한 교회를 끌어안고 내부 개혁자로 사신 테레사 수녀의 마음이 가까이 느껴져요. 저는 지금도 교회를 사랑하고, 무너진 교회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걸 알아요.

에니어그램을 통해 자기 내면과 영성을 돌아보는 강좌도 진행하셨습니다.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에서 에니어그램으로 영적 여정의 문을 연다고 할 수 있어요. 영성이 다름 아닌 ‘하나님 성품을 살아내는 것’ ‘하나님 형상을 담은 고유한 나를 꽃피우고 사는 것’이라고 할 때, 자기 인식이 선행되어야 해요. 에니어그램이 그 시작을 도와주고요. 연구소에서 ‘영성’을 대놓고 표방하지는 않아요. 영성을 살고자 하는 비목회자 여성 다섯이 일군 공동체예요. 상담 공부한 사람들이 모여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발견하고, 서로 공부하고 자라가면서 상담과 강의를 통해 오시는 분들을 도우려고 해요. 신앙 사춘기를 겪고 자기 발로 서는 신앙을 더듬는 분들이 찾아와 연결되기도 하고요.
13세기 베긴(Beguine)이라는 여성 공동체가 있었어요. 특이한 점이 있어요. 창시자도, 예규도 없는 느슨한 공동체였어요. 당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수도원으로 가서 수녀가 되거나 결혼하는 일이었는데, 수도원에 가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어요. 그런 시절에 수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정말 예수님께 자기 삶을 봉헌하고 싶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구성한 거죠. 결혼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출가해도 되고 자기 집에 살아도 됐어요. 오직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분처럼 살고 싶어서 사회 가장 낮은 곳으로 모여들었던 거죠. 한센병 환자를 예수님처럼 돌보며 삶과 영성을 살아냈어요. 남성들이 이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여성들이 모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고, 지금 여기에서도 그런 여성 공동체를 작게 만들면서 살고 싶어요.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다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일을 하고 있지만, 나를 나되게 하는 의미 있는 일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새롭게 확인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꿈과 영성생활을 6주에 12주로 늘리고,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며 겨울을 보냈다. 고되고 했지만 강의의 첫 번째 수강자가 나였고, 누구보다 나를 붙들어줘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강의가 나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의 자발적 내놓음이 서로를 지켜주는 것 같다.

작년 대림절과 함께 시작하여 사순을 코앞에 두고 마쳐다. 12주, 6명, 11개의 꿈과 일상 안에 생명과 죽음의 신비, 변화와 연결의 체험이 묘하게 교차하였다. 어렵게 생명을 품은 엄마, 시어머니를 천국에 보내드린 며느리, 그리고 젊은 날의 영적 권위자들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떠나보낸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는 그대로 내 마음과 일상이었고.

오늘 아침, 함께 했던 시간을 돌아보고자 12주 동안 단체 톡방을 처음부터 쭉 읽어보았다. 할 일이 많은 날인데, 이걸 만들며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하고픈 말이 많은데, 이 자발적 이야기들로 충분한 것 같다. 꿈작업을 그렇다. 누군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취약함을 내어 놓는다. 잘 차려 입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 발가벗는 느낌이다. 그럴 때 "괜찮아, 나도 그래" 같을 말보다 더 강력한 일이 일어난다. 한 사람 씩 따라서 옷을 벗는다. 모두 민낯이고, 모두 발가벗었기에 누구의 취약함이 더 취약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벗는 한 사람에 중에 내가 있다. 여기가 공동체고, 교회다.

될 수 있는 내가 있고 되어야 할 내가 있다. 카를 융은 우리가 되어야 할 내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했다. 나리는 나리가 되고 참나무는 참나무로 존재를 온전히 꽃피워야 한다는 영성적 의미이다. 될 수 있는 내가 되는 일은 넓고 쉬운 길에 있다. 되어야 할 내가 되는 일은 그 반대이다. 모르는 길을 더듬에 내가 선택해야 하며 그 결과를 책임지며 가는 길이다.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 그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함께 하니, 늘 배우게 되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어디서들 이렇게 찾아와 연결되는 분들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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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고,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
『기독교 강요』, 장 칼뱅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라면, 하나님 지식은 반드시 자기 지식과 닿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궁극적으로 ‘치유’입니다. 그런데 ‘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요? 내적 여정 세미나는 기독교 영성으로 접근하는 에니어그램을 통해 자기 지식과 하나님 지식을 머리만이 아닌 ‘체험’으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로 에니어그램 1단계를 시작하여 ‘내게 하나님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만나는 영성과정까지. 한 달에 하루씩 닷새의 시간 동안 전에 해보지 않은 질문, 전에 해보지 않은 기도의 여정을 걷습니다.
  

✔ 일정 : 평일(금요일), 주말(토요일) 과정이 있습니다.
         (평일 심화 과정 이상은 신청 상황에 따라 개설)
✔ 장소 : 온라인 줌(zoom), 단계별 2회기, 6시간
✔ 인원 : 12명   ✔  비용 : 12만 원(재수강 6만 원)  / 단계별
✔ 문의 : 010-4235-8020

 


[평일(금요일) 과정 일정과 신청]

- 기본 1 : 2월 4일, 11일(금) 10:00-13:00
          신청 http://bit.ly/3ajDfkQ
- 기본 2 : 3월 4일, 11일(금) 10:00-13:00
          신청 http://bit.ly/36BEA5E

[주말(토요일) 과정 일정과 신청]

- 기본 1 : 2월 5일, 12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6BEoTi
- 기본 2 : 3월 5일, 12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amjgSC
- 심화 1 : 4월 2일, 9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2YAzYbe
- 심화 2 : 5월 14일, 21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2NMwOz2
- 영성 : 6월 11일, 18일(토) 10:00-13:00
          신청 http://bit.ly/3cIGg0G

[하반기 일정]

⦁ 평일(금요일) 과정 일정

- 기본 1 : 8월 19일, 26일(금)
- 기본 2 : 9월 16일, 23일(금)
  
⦁ 주말(토요일) 과정 일정

- 기본 1 : 8월 20일, 27일(토)
- 기본 2 : 9월 17일, 24일(토)
- 심화 1 : 10월 22일, 29일(토)
- 심화 2 : 11월 19일, 26일(토)
- 영성 : 12월 10일, 17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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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님께.

이제나저제나 기약 없는 끝을 기다리며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 무기력한 시절에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주님, 어서 이 어려운 시기가 끝나게 해주세요.” 코로나 시기 내내 이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문득 시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시 94:12) 아, 그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기꺼이 징벌받아야 할 때이구나, 싶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생태계 질서의 파괴에서 기인한다고 하죠.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음터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인데요. 사람과 사람의 연결 너머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 생명들과의 연결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무분별한 욕망이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이었음을 아프게 인정하고 회개하고, 기꺼이 징벌받을 때이구나 싶습니다. 더불어 모든 일에서 기꺼이 징벌받고, 책임지는 나음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지난 한 해도 열심히 사랑으로 상담하고 강의했습니다. 그러나 고백컨대, 항상 잘하지 못했습니다. 연결을 기대하고 찾아오셨다 실망을 안고 돌아가신 분도 있을 것이고, 크고 작은 미숙한 행보들이 있었습니다. 아프게 돌아보고 있습니다. 내적 여정과 영성 상담을 통해 저희가 말하고 가르치는 바,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있습니다. 어쩌다 이룬 작은 성공이 아니라 죄 된 본성으로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일을 더욱 살피겠습니다. 가르치는 바대로 살기 위해 더욱 돌아보는 나음터가 되려고 합니다. 저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신선한 소식도 있답니다. 어쩌다 보니 나음터가 ‘금남의 집’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세미나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진실한 자기를 만나고, 그 여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여남 차이가 없다는 것을 기쁘게 확인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도자과정 여섯 분 중에 두 분이 남성이었고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조직도 생겼습니다. ^^ 글쓰기 모임 이후 여러 후속 모임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여기서 오히려 더 깊은 배움과 나눔이 일어나고 있어서 여간 보람이 되지 않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한 분 한 분 떠올리면 감사한 일들이 많습니다.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입니다.

나음터가 그러하듯 후원자님의 한 해도 그분의 은총이 맑은 날과 흐린 날로 얼굴을 바꾸며 다가오셨을 줄로 믿습니다. 다가오시는 그분의 얼굴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이 더욱 맑아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올 한해 가장 감사한 이름, 후원자님의 몸과 마음이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드리며...

2021년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에,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드림

* 후원 계좌 : 농협 301-0240-4119-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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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21.12.24 10:19 신고

    2021년을 보내며 나음터 후원자님들께 보낸 편지입니다. 연결된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홀로, 글로, 송구영신]

송구영신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크로노스(Chronos)는 관성대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입니다. 카이로스(Kairos)는 의미의 시간입니다. 멈춰 성찰하여 의미를 건져 올리는 시간, 그분의 시간일 것입니다.

송년회의 계절이기도 한데요. 좋은 사람들과 송년 파티, 선물교환, 맛있는 음식과 와인파티 같은 걸 그려보게 되네요. 나음터도 한 해 동안 연결되었던 분들과 송년회를 하면 좋겠다 싶지만 여러 한계가 있네요.

함께 카이로스를 누려보려고요. 시간의 주인이신 분과 함께요. 우주를 운행하는데 바빠서 도통 나같은 사람에겐 신경을 못 쓰다 송구영신 예배 말씀 뽑기 시간에 잠깐 오셔서 ‘내년의 말씀’ 하나를 점지하고 떠나시는 하나님(超越)일 수도 있지만, 단 한 번도 나와 떨어진 적 없으신 분(內住)이기도 합니다.

바쁘거나 귀찮아서 돌아보지 않았던 ‘나’에 고요히 머무르는 시간에 그분의 세미한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그분의 시간과 교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그러나 홀로, 글로 나를 돌아보는 송년회를 마련했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내적 여정, 지도자과정, 꿈 영성모임, 글쓰기 모임, 개인상담, 특강 수강자, 후원자님, 그냥 놀러 오셨던 분... 2021년 나음터와 연결되었던 분들 모두 얼굴 뵙고 싶습니다. 연결되었던 모든 분들께는 50% 할인 혜택 드리려고요. “나는 연구소에서 올리는 글 열심히 읽었다, 나도 연결되어 있다!” 하시는 분들도 무조건 할인입니다. 녀남소노, 글을 잘 쓰는 사람 못 쓰는 사람 모두 환영입니다. 일 년이 가도록 일기 한 줄 안 쓰시는 분, 특별히 환영합니다. 그냥 막 쓰게 해드리겠습니다.

[함께, 그러나 홀로, 글로, 송구영신]의 자리에 초대합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2021년 12월 30일(목) 오후 8시~10시 30분
+ 인원 : 25명(선착순)     + 장소 : 온라인(zoom) 
+ 수강료 : 2만 원(연구소 프로그램 참가자 1만 원)  
+ 안내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4235-8020
+ 신청 링크 : https://bit.ly/2TAwI0C

 

홀로, 글로, 송구영신

2021년 나음터 글로 하는 송년회 신청 양식입니다.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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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개소 3주년을 맞았다. 3이라는 숫자가 담은 무겁고 풍성한 것을 그대로 느낀다. 고요하게 느낀다. 벼르고 벼르던 신소희 수녀님의 '베긴(Beguine) 특강' 3주년에 맞출 수 있었다. 팬데믹 상황, 수녀님의 건강 등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결국 성사된 것 역시 '3'이라는 숫자에 부합하는 신비이다. 수녀님을 다시 만나 수녀님께 배우고, 무엇보다 '베긴 영성'을 만나지 않았다면 연구소 3년은 무겁기만 하고 아프기만 한, 향방 없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몇 백 년 전 여성들의 선택과 삶, 삶과 신앙, 그렇게 일군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여성들의 공동체가 가슴을 뛰게 했다. 혼자 뛸 수 없어서 연구원들에게 소개하고, 우리끼리만 알고 누릴 수 없어서 특강을 마련했고 2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했다. 가족처럼 친밀한 사람, 모르는 사람, 심지어 가톨릭 신자도 세 분이 참석하였다. 어떻게 듣고 가셨든, 각자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안다.

수녀님께서 커다란 꽃다발을 해오셨다. 어쩐지 수녀님께 어울리지 않는 선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망하신 듯 말씀하셨다. "제가 커다란 꽃다발 못 사요. 그런데 어제 집 앞에 꽃집에서 이걸 사는데 같은 돈을 받고 두 배로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꽃다발이 꼭 연구소 선생님들 같죠? 제 돈은 반 밖에 안 들어갔어요. 반은 하느님이 내신 거예요. 그분이 연구소를 정말 축하해주고 싶으시구나, 했어요. 제가. 허허허." 수녀님의 존재가 꽃다발이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일깨우는 매개자라는 것을 아실까? 베긴 영성가 '하데위히'를 연구한 수녀님의 박사 논문을 읽으며 연구자로 수도자로 살아오신 수녀님 인생을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그 고독한 연구와 수도의 삶이 오늘 내게 어떤 선물이 되고 있을지, 수녀님을 아실까?

베긴 영성을 오늘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궁금증으로 특강에 참여 하셨는데, 다 듣고 나니 "어떻게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살까"라는 질문이 남았다는 후기로 가슴이 뜨겁다. 연구소 3년, 아니 여성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공부도 강의며 자주 좌절하고 분노한다. 앤 윌슨이 말하는 '중독 사회'의 벽 앞에서다. 교회고 사회고 가릴 것 없이 '중독 사회'이다. 세상 모든 일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고, 정답이 있고, 그 정답은 최종 권력자에게 있고, 파이는 정해져 있어서 누군가 누리는 만큼 나는 누릴 수 없으니 투쟁해야 하고 경쟁해야 하는 사회이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고, being 하지 않으며 끝없이 doing 해야 한다. '백인 남성 시스템'이며 다른 말로 '중독 사회'라 부른다. 절절하게 공감한다. 이 피라미드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견고하게 지탱하는 시스템이다. 그 맞은편에는 중독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동반 의존으로서의 여성 시스템'이 있고, 대안은 따로 있다고 앤 윌슨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대안은 '과정으로서의 공동체'이다. 연구소 3년, 이걸 한 번 해보자고 다짐하였다.

쉬운 일은 아니다. 중독 사회에서, 나 역시 이미 중독된 존재인데 제 3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연구소를 아니, 과정으로서의 인생 살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새로운 힘을 준 영성이 '베긴 영성'이다. 특강 마지막에 들려주신 무명의 베긴 여성이 쓴 시가 있다. 급진적으로 아름다운 이 공동체가 기존의 신학과 잣대로 규명되지 않자, 사제들과 남성 신학자들은 탄압하기 시작했다.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 당한 지도자도 있다. 그들의 탄압에 반응한 어느 베긴의 시라고 한다. 시 자체가 가르침이다. 최근에 공저로 내신 책 <이 시대에 다시 만난 여성 신비가들>과, 책 안쪽에 남겨주신 메모 또한 3주년에 받는 소중한 선물이다. 아래 시는 도미니크 수사에 의해서 편집된 글이라고 하는데, 수녀님이 번역하여 나눠주신 것에도 두 단어(배우고 -> 분석하고, 검사하고 -> 검열하고)를 내가 바꾸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 행동하기로, 분석하는 대신 고요히 응시하고 머물기로, 흘러오는 일상의 강물에 몸을 맡기고 춤추기로... 다시 새로운 마음을 가져본다.

당신은 말을 하고, 우리는 행동한다.
당신은 분석하고, 우리는 응시한다.
당신은 검열하고, 우리는 선택한다.
당신은 씹고, 우리는 삼킨다.
당신은 노래하고, 우리는 춤을 춘다.
당신은 꽃을 피우고, 우리는 열매를 맺는다.
당신은 맛을 보고, 우리는 향기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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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직하고 싶은 시...입니다.

 
‘나음터’라 불리는 연구소가 벌써 3주년을 맞았습니다. 누가 누굴 가르치거나, 상담가의 이름으로 내담자를 고치려 하지 않고, 후원자들을 향한 감사 기도로 연결된 공동체를 일궈보자 애를 써봤습니다. 그 열매는 주님이 허락하시는 몫만큼이겠지요.
중세에 ‘베긴(Beguine)회’ 라는 여성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분처럼 살고 싶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여성들 앞에 놓인 두 선택지, 결혼이나 수도원이 아닌 세상 한복판 가장 낮은 곳으로 모여 특별한 봉헌의 삶을 살았던 분들입니다.
공동체이긴 하지만 창립자도 없고, 예규도 없고, 수도원 공간도 없는 자발적 공동체였다고 합니다. 이충범 교수는 <중세 신비주의와 영성>에서 베긴 공동체의 특이성을 말하면서 계급과 젠더 차이를 해소하고, 제도적 종교를 뛰어넘었으며, 관상적 삶과 사도적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신비주의 영성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시대와 먼 것 같지만 또 멀지도 않은, 다다를 수 없는 삶과 영성인 것 같지만 어쩐지 가슴을 뛰게 하는 살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연구소는 베긴 영성을 만나고 공동체, 여성 공동체를 향해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베긴회 신비가인 ‘안트베르펜의 하데위히(Hadewijch von Antwerpen)’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신 신소희 수녀님 모시고 특강 듣는 자리 마련했습니다.
여남 소노, 비신자, 신자, 가톨릭 신자, 개신교 신자…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여성, 영성, 공동체 : 베긴 영성 특강

+ 강사 : 신소희 수녀(성심수녀회 예수마음배움터,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공)
+ 일시 : 2021년 12월 3일(금) 오후 1:30 ~ 3:30
+ 인원 : 25명 (선착순)
+ 장소 :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바실리오홀(마포구 월드컵북로 2길 49 / 홍대입구역 2번 출구 86M)
+ 참가비 : 이만 원
+ 코로나19 방역단계 변화에 따라 온라인 강의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신청 링크 : https://bit.ly/3kDbLf

 

 

여성, 영성, 공동체 : 베긴(Beguine)영성 특강

신소희 수녀님의 '베긴영성 특강' 강의 신청 양식입니다. + 강사 : 신소희 수녀 (성심 수녀회 예수마음배움터,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공) + 일시 : 2021년 12월 3일(금) 오후 1:30-3:30 + 인원 : 25명 (선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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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11.16 22:33 신고

    소개글에 가슴이 뛰네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누군가 질문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온유한 성품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에 대한 답으로 교황님은 '꿈'을 얘기하셨단다. 내용은 이렇다. 교황님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침대 옆에 있는 '꿈꾸는 요셉상' 앞에 편지를 써놓고 잠든다고 한다. 꿈으로 답을 주십사 하는 기도이다. 요셉은 가톨릭에서 꿈을 수호하는 성인이다.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가만히 파혼하려' 했으나 꿈에서 천사의 메시지를 받고 일어나 결혼을 추진하였다. 교황님의 영상과 메시지를 자주 찾아본다. 다양하고 살아 있는 표정에 주목하게 된다. 진지하게 강론하는 중에 강단 위에 난입하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눈빛,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 트럼프 같은 이들과 마주할 때 화난 듯 굳은 얼굴을 본다. 감정을 느끼지 않고 전혀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투명하게 느끼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교황 님은 그 좋은 예다. 꿈을 기다리는 태도는 자는 동안 하나님을 기다리는 겸손한 기도인데, 역시나! 싶다.

 

가을 꿈모임에 가톨릭 신자 한 분이 오셨다. S선생님이다. 늘 시간이 조금씩 늦는데 미사 반주를 하고 달려오면 그 시간이라고. 드물게 이렇게 가톨릭 신자 분이 연구소 여정에 함께 하시곤 한다. 경계를 넘나들며 가톨릭 영성을 배운(배우고 있는) 경험이 있어 마음이 많이 쓰인다. 고맙기도 하고. 첫 시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얘기를 해드렸다. 꿈꾸는 요셉상을 곁에 두고 꿈 편지를 쓰신다는 얘기. 두 번째 모임이었다. 지난 모임 마치고 성당 교우에게 선물을 받았단다. 신기하다며 모니터 카메라에 가까이 대는데 꿈꾸는 요셉상이다. 편지도 함께. 뜬금없는 선물이 내 삶의 다른 부분과 하이파이브하면 '짝' 소리 낼 때면 그분이 조용히 열일하고 계시다 들킨 거라고 믿는 게 좋다. 꿈 여정을 시작한 선생님을 응원하시는 그분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시간엔 두 분의 꿈을 나눴는데, S선생님과 또 한 분. 일찍 수녀 서원을 하였으나 결혼한 여자로 살아온 세월, 결혼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여겨 다가오는 만남조차 거절하고 살아온 세월. 전혀 다른 두 세월이 담긴 꿈을 나눴는데, 어쩐지 마음에 남은 진실은 하나의 이야기 같았다. 꿈 여정을 하며 배우게 되는 것도 비슷하다. 사람 사람이 이토록 고유하구나! 누구의 인생도 누구의 고통도 남의 것과 견줄 수가 없구나! 하는 것. 다른 사람의 고통과 치유 여정에 섣부른 조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나는 그 어리석은 업보를 얼마나 쌓고 살아온 것인가. 그러나 그 고유한 빛깔의 고통과 치유의 어느 길목은 꼭 나와 교차한다. 내 얘기가 아닌데, 나는 저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나는 수녀가 되려 한 적이 없고, 결혼을 피하지도 않았는데. 존재 깊은 곳에서 공명하고 울리는 것을 느끼게 되니 그것이 신기한 일이다. 

 

꿈 모임 마치고 며칠 지나 꿈꾸는 요셉상 하나가 우리 집으로 왔다. S선생님이 보낸 것이다. 침대 옆 협탁을 깨끗이 정리하고 모셨다. 꿈을 기다리는 잠은 주술이 아니다.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시는 주님께 내 영혼을 맡기는 시간이다. 낮의 곤한 삶을 위로하고 보상하심으로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에 연연하여 소진한 내 영혼을 다시 그분께 맡기는 시간이다. 겹겹이 썼던 가면, 사회적 얼굴들 뒤에 숨은 두려움, 슬픔을 가차 없이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악몽이어도 좋다. 악몽은 악몽대로 진실한 나로부터 도망치는 나를 보여주니 말이다. 악몽을 꾸는 것도 내게 유익이다. 꿈은 밤마다 받는 예기치 않은 선물이다. S선생님을 비롯, 자신의 인생을 끌고 나음터로 모여드는 사람 사람이 모두 예기치 않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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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예배는 이렇게 갑자기 조용히 다가왔다.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긴 과정이었든 회복 역시 과정일 것이다. 각 교회의 대표기도 내용 중 빠지지 않았던 기도가 이루어졌다. "어서 회복되어 교회당에 함께 모여 예배하고..." 인원 제한 없이 대면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우린 정말 대면 예배를 기다렸나?

 

주일학교 찬양팀 준비하는 현승이를 태워가느라 예배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했다. 교회 주변의 모든 길은 단풍과 낙엽으로 그냥 그림이다. 길가에 추차하고 운전석에 앉아 있어도, 나와서 걸어도 풍경화 속에 있는 것 같다. 조금 춥지만 골목 공원에 가 앉았다. 책을 펼쳐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우수수... 바람과 나무의 합작품이 눈앞에 펼쳐지니 말이다. 

 

눈앞의 작품 멋짐에 밀리지 않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말레이시아 원주민들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빠져들었다 싶으면, 우수수수. 자꾸 우수수수... 하니까 신기하지도 않아서 외면했더니 나풀나풀 읽고 있는 페이지에 나뭇잎 한 장을 떨어뜨린다. 누가? 바람이. 바람 같은 그분이? 

 

시간이 되어 교회로 향했다. 바삭바삭 쌓인 낙엽을 밟으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교회가 가까워지지 며칠 전 강의에서 내가 했던 말이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마음에 울렸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달라스 윌라드의 마지막 영성 수업>에 나오는 얘기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곳이나 사회적인 곳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곳이니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란다. 교회는 기껏해야 병원과 같다고 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이 작동하는 곳은 차라리 자연이다. 방금 전 앉았던 공원의 벤치.

 

큰 기대 없었지만 역시 함께 드리는 예배는 달랐다. 내 목소리 적당히 묻혀 편안한 함께 드리는 찬양, 거리를 두고 앉았으나 거리 넘어 전해오는 사람들의 몸, 몸과 숨.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에너지. 현장에서 듣는 설교도 달랐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는 설교였다.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교회를 향한 여러 행위, 수고, 외형을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랑' 즉 '진심'은 사라진 세월이다.

 

설교 마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데 사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릴 적부터 내가 사랑하던 하나님. 교회 말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잘 알 수 있지요" 얼마나 좋아하던 찬양이었던가. 어릴 적부터, 중고등 학교 시절, 청년 시절....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나님 사랑이 교회 사랑이었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인 줄 알았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인 줄 알았던 때에도, 하나님 나라여야만 한다고 주먹 불끈 쥐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때에도 나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했다.     

 

예배 마치고 다시 차로 걸어가는 길에 다시 그 말이 울렸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맞아, 그렇다고 교회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기에 천진하게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겠구나! 알게 되었다. 도적 같이 임한 대면 예배에서 은혜를 받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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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이었다. 여름 수련회 강사로 전국 각지의 수련회장을 누비고 다닐 수 없었지만, 수련회 철 강의 따라 이동하는 거리를 모두 합해도 한 번 다녀오는 것에 미치지 못할 먼 곳을 오가는 여름이었다. 네팔의 윤선이와 아홉 번을 만났고, "이게 실화냐! 윤선이와 수다라니!" 만날 때마다 믿기지 않았으나 결국 네팔을 아홉 번 다녀온 느낌이다. 책을 읽는다지만 그렇지 않다. 진정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니라 책이 읽는다는 것을 안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읽는다. 책일 나를 읽게 한 후에 마주 앉아 책이 읽어낸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기쁨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홉 번의 만남은 이래저래 민낯이었다. 일어나서 겨우 정신 정도 차리고 부숭부숭한 얼굴로 카메라를 켰다. 나는 아홉 시, 윤선이는 새벽 다섯 시 몇 분. 마음에도 무얼 찍어 바르고 그럴 일 없이, 책이 읽어낸 나의 수치심을 그냥 서로 말했다. 민낯으로 만나는 만남이 좋은 걸 어떻게 말로 치장하여 설명할 수가 없네.

벌써 십수 년 전, 남편이 신학교도 가기 전이었다. '가정교회'라는 셀모임을 하면서 윤선이 부부를 만났다. 결혼하고 바로 선교사로 나갈 젊은이들이었고, 함께 한 시간이 길지도 않다. 그런데 두 사람 보내면서 아까웠다. 너무나도 아까웠다. 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공동체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나보다 한참 어린데 속이 깊이 무르익은 사람들이었다. 질문할 줄 알고 깊이 들을 줄 알고. 내게 좋은 사람은 진심으로 궁금하여 질문할 줄 알고, 마음의 귀로 듣는 사람이다. 나이와 상관 없는 능력이다. 함께 있으면 참 힘이 될 것 같아서, 이기심에 아까웠다. 막 좋은 계획을 세우며 사람을 사랑하는 버릇이 있어서 혼자 계획도 많이 세웠다. 윤선이가 아이를 낳으면 나는 모든 일을 전폐하고 한두 달 네팔로 가서 산후조리를 해줘야지! 같은 생각들. 돌아보면 마음은 진심이었는데, 비행기 값이 없어서 이루지 못한 꿈이다. 사실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 잠시 가정교회에서 함께 하고 네팔로 갔고, 몇 년에 한 번 나오면 짧게 얼굴 보고... 내가 윤선일 생각하는 것보다 윤선이가 나를 훨씬 더 많이 생각했다는 걸 뒤늦게 안다. 이번 여름 이 뜨거운 만남은 팬데믹 덕분, Zoom 덕분이 아니라, 언니를 기억해준 윤선이 덕분이다.

평생 정말 많은 책모임을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같이 읽자" 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사랑한다"는 고백과 같다. 남편 김종필과도 그렇게 만나고, 함께 읽다 헤어지고, 각자 읽으며 다시 만나지 않았던가! 사랑한다 고백하고, 더 많이 사랑한 죄로 상처 받는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 같이 읽자고 부추기다 마음도 많이 다쳤다. 그렇게 긴긴 세월 같이 읽자, 같이 쓰자, 하면서 살아왔더니 이렇게 좋은 선물도 받는다. 책 읽는 모임이 아니라, 각자 책이 나를 읽게 한 후에 '읽혀버린 나'로 만나고, 헤어져 각자 또 쓰고, 또 읽고, 읽히고 카메라 앞에서 만나고. 잊지 못할 2021년 여름이다. 여름 수련회 대목 강의는 온데간데 없어졌지만, 네팔에 아홉 번 다녀올 비행기 값을 벌었으니 대박이 난 거다.

생각해 보니 이게 끝이 아니네. 연구소 지도자 과정에서 여름방학 동안 달라스 윌라드 <마음의 혁신>을 함께 읽었다. 여럿이 함께 하니 얻어가는 것이야 제각각이겠으나, 내게는 완주 자체가 큰 의미이다. 십수 년 전, 카타콤 같은 하남의 아파트 거실에서 혼자 읽으며 울다 기도하다 했던 책이다. 함께 읽을 이들이 이렇게 많아졌으니, 이 또한 큰 선물이다. 외롭게 혼자 읽고 써온 세월이 준 선물. 올여름 정말 뜨거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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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9.12 21:26 신고

    잠 못 잘 정도로 설레었던 시간들이 일년 반의 락다운으로 깊이 침체되어 있던 저를 어떻게 일으켜 주었는지..
    함께 책을 읽음으로 시작된 꿈 같은 시간들이 불어넣은 생명력이 앞으로의 길에서 또 누군가에게로 전해져 갈 것을 약속드리며...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음을..
    고백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9.13 09:41 신고

      그래, 다시 새로운 시작! 누군가에게로 이 좋은 만남의 기운이 흘러가라, 흘러가라, 흘려 보내자!

  2.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9.23 16:07 신고

    맞습니다. 책이 나를 읽는시간들..저도 내적여정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네요.

    • BlogIcon larinari 2021.09.27 07:51 신고

      좋은 길을 알았다고 낯선 그 길로 그대로 따라 걷는 게 쉽지 않은데, 혜승샘 읽고 쓰시는 열정에 깊이 감동이고, 또 제가 배워요. 앞으로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 것이 그려지고요.

정호승 시인이 <수선화에게> 하는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릴 일이 아니다. 가끔 하느님도 이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며 수선화를 위로한다. 수선화에게랴. 사람에게, 우리에게, 사람인 시인 자신에게 하는 말이려니. “너만 그런 것 아니야, 모두 외로워." 위안 또는 약간 안도는 된다. 그렇다고  외로움의 크기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나는 외로워서 책을 읽었고, 어떤 좋은 책을 혼자 읽을 수밖에 없어서 외로웠다. 포스트잇을 더덕더덕 붙이고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외로운 시간과 마음의 흔적이다. 읽은 덕에 쓸 수 있었고, 쓰는 사람인 내가 참 좋으니 외로움은 또 얼마나 고마운 감정이었나. 그럼에도 늘 꿈꾼다. 어떤 좋은 책을 놓고 하염없이 얘기 나눌 사람과 시간을. 꿈만 꿨지 언제 그런 날 오겠나 싶어 다시 외롭다. 그러면 또 깊은 밤, 이른 새벽 혼자 읽는다.

 

지도자 과정의 H선생님이 첫 시간에 그런 말을 했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은 책을 안 읽고,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교회를 안 다니고..." 그 아쉬움을 지도자 과정에서 채울 수 있다는 기대로 좋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또 얼마나 좋았는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IVP. 1000 페이지 넘는 저 책 열 권을 쌓아두고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4월, 지도자 과정 개강 이후 출간되었는데, 필독서와 과제를 바꿀까 싶도록 마음이 흔들렸다. '자아'로 씨름하고, 그리스도 안의 자아를 체험적으로 만남으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과정이 아닌가. 42인의 자기를 찾는 여정 이야기라니. "하나님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살아낸 42 가지 이야기라니. 아브라함,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노르위치의 줄리언, 장 칼뱅, 아빌라의 테레사, 잔느 귀용 부인에 심지어 C. S., 플래너리 오코너를 포한한 42인이라니!

 

이미 정해놓은 커리큘럼을 바꾸지는 못하고, 책을 소개했다. 어쨌든 함께 사두기로 하고 단체로 구입하여 내년을 기약한다. 과정 마치고 후속 모임으로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다. 한 분 한 분의 내적 여정 선배님 42인을 만나는 지도자 과정 후속 모임, 생각만 해도 좋다.

두어 주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시간을 보냈다. 드라마를 보고, 봤던 드라마를 또 보고, 우주를 나는 스마트폰 게임을 다운로드하여 '피융 피융' 하며 놀았다. 오늘에야 다시 정좌다. 마음이 자리를 찾아 앉으니 책이 손에 잡힌다. 마음 잡고 다시 손에 잡은 책이다. 함께 읽기를 꿈꾼다면 혼자 잘 읽어야 한다. 혼자 읽기로 행복해야 함께 읽기가 풍성해진다.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에는 외로움조차 얼씬거리지 않았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외로운 덕에 사람 꼴 하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마음 푹 놓고 외롭기로 한다. 외로운 독서를 누리기로 한다. 실은 외롭지 않다. 42인 선생님들께서 나 좀 만나 달라,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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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6.28 00:56 신고

    좋은 책을 두고 하염없이 나누는 이야기...생각만 해도 벅차는 구절이예요...

    • BlogIcon larinari 2021.06.28 09:53 신고

      거기서 지내는 일상에서 이런 그리움과 외로움이 더 절절하지? 앞으로 줌으로 더 많이 연결되자!

  2. 권혁재 2021.07.25 09:41

    정 선생님, 권혁재라고 합니다.
    "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 걸을지라도...." 가사를 검색하던 중 선생님의 글을 일게 되었습니다.
    따뜻하고 맑은 마음이 반갑습니다. 책을 읽는 모임도 하시는가 봅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왕 책을 읽으시니까 공동 독서 목록으로 한 권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요.
    현용수 박사님(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의 시리즈들 중 한 권을 읽어 보시지요.
    인성교육 노하우 1-4도 처음 읽기에 좋습니다.
    쉐마지도자클리닉이 내년 1월에 열리는데, 아마 부산 세계로 교회에서요, 한 번 참석해 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쉐마는 건전한 기구이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영광의 예배를 누리시기 바라오며.... 배상.

    • BlogIcon larinari 2021.07.26 19:21 신고

      정성스런 댓글 감사드립니다. 기회 되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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