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쯤 전인가. 연구소 선생님들과 내 꿈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기차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나만 기차역에 남겨진 꿈이었다. 하룻밤을 어딘가에서 보내야 하는데, 내가 선택한 방은 독거노인이 살다 죽어서 생긴 방이었다.  이런저런 흥미진진한 질문과 대답 끝에 이런 질문이 왔다. "가족들이 없고 혼자라면 어떻게 살고 싶어요?" "수도자로 살고 싶어요." 툭 튀어나온 답이었다.
 
남편에게 꿈나눔 얘길 했더니 "당신 지금도 거의 수도자로 살고 있잖아."라고 했다.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이 꿈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초대인가. 지난주 며칠 수도원 피정에 다녀왔다. "일하고 기도하라"는 문장 그대로 살고 있는 베네딕도회 수사님들의 하루 일곱 번 기도에 함께 했다. 밥 챙겨 먹고 뒤돌아 서면 금세 기도 시간이 되어 버려서 나는 "밥 먹고 기도하고"가 되었다. 수도원 진입로의 짧은 메타세쿼이아 길을 수십 번 오가며 걸었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길, 이제는 내 마음에 난 길! 그 와중에 장화 신고 나란히 걷는 노 수녀님들은 씬 스틸러였다.  
 

'영성 신학'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10여 년은 이 학교 저 학교 신학교들 홈페이지를 검색하며 보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대단한 '영성'이 아니라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의 검색질이었다. 영성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에 관련된 것이고, 하나님을 찾는 인간 편에서의 행위는 '기도'이다. 기도하지 않으며 '영성'을 가르치는 신학자들에게 '영성'을 배울 수는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 같고. 그래서 오래 찾고 머뭇거렸지 싶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 "영성사" 수업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기도하는 교수님께 영성사를 배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수업 마지막 날이 팀 발표 날이었고, 나는 토론을 이끌게 되었는데 그날 주제와 상관없는 '나를 위한 질문'을 끼워 넣었다. 한 학기(내게는 4학기) '문화와 영성'을 공부하며 얻은 것에 대한 자문자답이었다. 영성은 "생활과 증거"체험을 다룬다. 영성신학은 사변 신학이 아니다. 영성사(History of Spirituality)는 기도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 기도의 역사이다. 나는 이렇게 나의 배움을 정리한다. '성인'이라 불리는 분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기도할 수 있고, 기도를 통해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모두 영성사 교과서 서문에 나온 말이다.) 기도하는 교수님께서는 종강 후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초대하여 '시편 성무일도 피정'을 경험하도록 해주셨다. 
 
돌아보면 신앙 사춘기의 시작은 '기도의 메마름'이었다. 더 깊은 기도를 하고 싶은데, 더 깊은 기도의 길이 있을 텐데 내 앞은 막다른 길이었다. 더욱 막막한 것은 마침 목회자로 위치가 바뀐 남편 덕에 목회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새벽기도 출석"을 강요받으면서 어떤 무너짐이 시작되었었다. 영혼의 숨이 콱 막혀버린 상태로 어쩌다 만난 에니어그램, 그래서 알게 된 Centering Prayer, 그리고 내가 몰랐던 오랜 기도의 전통들, 기도의 대가들, 그리고 담을 넘어가 만난 오랜 영성의 전통, 그 끝에서 수도원의 기도 피정이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세운 치밀한 계획 같다.  기도 찾아 삼만 리, 수도원 찾아 삼만 리... 이제 신앙 사춘기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 보다.
 

 

머물던 기간 중, 은퇴하신 노(老) 수녀님들이 피정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老 수녀님들이라... 아마도 장화 신고 우산 쓰고 메타세콰이아 길을 걷던 그분들이다. 또 한 분, 수도원 입회가 내 나이와 비슷한 수사님 한 분의 뒷모습이 자꾸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도회 입회한 때가 내가 태어나던 즈음이었고, 평생 한 곳에서 매일 "일하고 기도하는" 똑같은 삶을 살아오신 것이다. 그 수사님이 입장할 때마다,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뭉클하고 뜨거워졌다. 피정비를 내는 봉투에 이렇게 썼다. "한 곳에 머물러 기도하는 수사님들의 정주(定住) 덕에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끝없이 헤매는 세상과 거기 사는 저 같은 사람이 그나마 하나님을 잃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수사님들 한 분 한 분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딱 이 마음이다.
 
* 봉쇄 구역을 지키는 저 귀여운 청솔모, 까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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