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지의 장소, 그리고 밤이었다. 나는 세찬 폭풍을 받으며 힘들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나는 작은 등불을 들고 양손으로 그것을 보호하며 걸어갔는데 그것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가 이 작은 등불을 살리는 데 달려 있었다. 별안간 나는 무엇인가가 나를 뒤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뒤돌아보니 거기에 내 뒤로 다가오는 거대한 검은 형체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놀랐음에도 불구하고-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이 불빛을 이 밤이 새도록 폭풍 가운데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카를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에 나오는 융 자신의 꿈이다. 이 꿈을 통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꿈을 꾸었던 시절의 삶에 대한 성찰로 융은 '인격의 그림자(제2호 인격)'을 발견하게 된다. '살고 싶은 삶'과 '살아야 하는 삶' 사이의 갈등에 놓여 있었고, 나는 이 구절에서 "그러나 모든 것은 내가 이 작은 등불을 살리는 데 있었다"와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이 불빛을 이 밤이 새도록 폭풍 가운데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라는 부분이 참으로 좋다. 나의 등불을 꺼트리지 않는 것, 나의 빛을 포기하지 않는 것. 

 

“나를 이끄시는 온유한 빛”
(Lead, Kindly, Light Amid encircling gloom)

인도 하소서. 온유한 빛이시여,
저를 둘러싼 어둠 속에서 저를 이끌어주소서!
밤은 어둡고 저는 집에서 멀리 떠나왔으니,
저를 이끄소서!
저의 발을 지켜주소서.
나는 먼 곳을 보기를 원하지 않나이다,
다만 한 걸음이면 족하나이다.

 

존 헨리 뉴먼의 시이다. 찬송가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의 원 가사이기도하다. 성공회 사제였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추기경까지 되었고 최근에 성인 품에 올랐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지만, 이 한 문장을 실제로 살았다고 상상하면 얼마나 고독하고 막막한 인생이었을까. 그 인생을 떠올리며 이 시를 읽으면 한 구절에서 다음 구절로 넘어가기가 어렵다. "인도하소서, 온유한 빛이시여" 밤은 어둡고 집을 떠나왔으니, 다만 한 걸음을 내디딜 빛을 주옵소서... 구하는 기도의 막막함과 절절함이란. 
 
<인생의 빛 학교>라는 이름의 모임을 해왔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지은 이름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결혼으로 가정을 막 이룬 때부터 황혼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그 인생을 이끄는 '빛'을 구하는 공부라는 뜻이다. 생애 주기마다 '빛'을 찾는 구체적인 정황이 있다. 연애, 육아, 중년의 위기, 노화와 죽음. 일상의 구체적 어려움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그 너머에서 비추는 참된 빛을 찾자는 뜻이기도 하고... '육아 일상'과 '중년'을 사는 두 그룹을 진행하다 마지막에는 다 함께 내적 여정 일부분을 나누는 것으로 끝을 냈다. 그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고맙게도 자연스럽게 '자기 성찰'로 마음이 모아져서 여차저차하다 그리 되었다. '빛' 학교라는 말에 적절한 마무리인 것 같기도 하고. 
 
산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고(To live means to grow), 성장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며(To grow neans to change), 변화하는 것은 결심하는 것이다(To change means to decide).'  나 역시 성장을 위해서 지금 여기서 나 자신을 바꾸어야 했기에, 내 안의 빛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분이 비추시는 단 한 걸음을 위한 빛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걷는 길이다. 성장하고 변화하려는 분들과 함께 하는 체험의 교회였다. 교회를 확신하는 순간들이었다.  
 

산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고(To live means to grow), 
성장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며(To grow neans to change),
변화하는 것은 결심하는 것이다(To change means to decide). 

라는 삶의 원리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적인 삶을 키우는 것이다. 이 내적인 삶은 신앙생활의 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며, 신앙생활의 변화를 위하여 지금 상황(here and now)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의 자세를 과감하게 바꾸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성격유형과 그리스도인의 영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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