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름다운 베란다 앞 풍경을 두고 가야 한다니. 봄이 오는 아침, 깊어지는 가을날의 아침을 경탄으로 시작한 2년이었다. 주인이 갑자기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주인 마음을 바꿔주시지 않을까? 허튼 희망도 가져봤었다. 허튼 희망이었구나! 받아들인 다음 날부터 아침에 눈뜨고 바라보는 저 풍경이 그렇게나 슬플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벌써부터 몰려왔다. 얼마나 더 잃어버리고 또 잃어버려야 이 슬픈 생이 끝날까?


어느 아침, "이렇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싶었다. 주어진 시간만큼 최대한 누리고 떠나자! 내 생애 가장 좋았던 집, 집이 아니라 집 앞의 산에게 아침마다 고마움을 표 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이틀 지나서 이사할 집이 정해졌다. 하도 귀해서 전셋집이 하나 나오면 몇 사람이 달려들어 줄을 서서 집을 보고, 제비를 뽑아 계약을 한다는데. 집이 구해졌으니 다행이다.


목회자라고 다 이렇듯 자주 이사 다니는 것 아닌데, 남편을 원망해볼까 싶기도 했었다. 마음 고쳐 먹으니 아침 저 풍경이 새롭게 보인다. 아직은 여기 있지 않은가. 오늘 아침은 저 풍경을 보고, 신선한 산 공기을 마실 수 있지 않은가. 지긋지긋한 이사도 또 어떻게 되겠지.

아침마다 달라지는 빛깔이다. 변하고, 변하고 또 변한다. 마침 연구소에서 아침마다 '읽는 기도'로 나누고 있는 앤서니 드 맬로 신부님의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어 크게 위로받는다.

삶이란 언제나 흐르고 있는 것, 항상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기를 원한다면 영주처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머리 둘 곳이 있어서는 안 돼요. 삶과 더불어 흘러야 합니다. 위대한 공자가 “항상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주 변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흐르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잖아요?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것들에 매여 있습니다. “쟁기를 손에 얹고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됩니다.” 선율을 즐기고 싶습니까? 교향곡을 즐기고 싶습니까? 곡의 몇 대목에, 한두 음절에 매이지 마십시오. 지나가고 흘러가게 하십시오. 음들을 흘려보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교향곡을 온전히 즐기게 됩니다. 특정한 대목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교향악단에게 “그 대목을 계속 연주해요. 계속, 계속”하고 외친다면 그 연주는 교향곡이 될 수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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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사춘기』 출간한 지 1년 하고도 몇 개월 지났다. 개인적, 국가적, 전 지구적인 위기를 통과하는 시간이 끼어서인지 한 10년은 된 일 같다. 아직 좀 살아 있어야 하는 책인데...... 소도시에서 목회하며 6,7년 꾸준히 책모임 해오시는 목사님들과 '저자와의 만남'이란 거창한 이름의 소소한 '만남'을 가졌다. 만남은 좋은 것이다. 만남이 좋다고 말해서는 소용이 없다. 만나봐야 만남이 좋음을 알게 되는 것. 어쨌든 만나보니, 만남은 좋은 것이다. 덕분에 내게도 희미해진 책 신앙 사춘기』를 다시 떠올렸고, 무엇보다 그 아픈 글을 써낸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독서 모임에서 읽으셨다는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과 , 신앙 사춘기 두 권 모두 보통의 목사님들에겐 불편한 책이다. 어떻게들 읽으셨을까. 보수적인 도시에서 목회하시는 분들께 특히 신앙 사춘기』가 어떻게 다가갈까. 상상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저자를 만나고자 하시니 긍정적으로 보셨던 걸까? 도둑 제 발 저리는 느낌으로  "책이 불편하진 않으셨냐?"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흔들리는 동공과 주고받는 눈빛으로 답해주셨다. "불편했죠." 그래서 '불편'을 기본값으로 깔고 시작했다.

 

마침 우리 아버지가 속하셨던 교단의 목사님들이다. 신앙 사춘기』 쓴 배경 설명을 아버지 얘기로 시작했다. "아버지가 저를 58세에 낳으셨어요." "네~에?" 여기서 다들 놀라시지만 총알이 하나 더 있다. "더 놀라운 얘기 해드려요? 저한테 동생도 있어요. 동생은 환갑 둥이예요."(기본값 '불편감' 20% 제거 : "세상에 이런 일이!") "아버지는 평안도 철산 출신인데, 1.4 후퇴 때 월남하셨어요.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신학생이었고, 월남해서는 부산으로 이전한 '평양신학교'를 다니셨습니다. (불편감 10%  또 제거 : "우리 대선배님이시네!") 홀로 목회하시다 늦은 나이에 교회 집사와 목사로 엄마를 만나셔 결혼하셨고, 그렇게 늦게 저희를 낳으셨어요. 저는 목사의 딸로 태어나서 교회의 딸로 자랐어요. 고등학교 때 주일 끼어서 가는 수학여행 당연히 가지 않았고요. 청년 시절, 토요일 주일은 밥도 못 먹으며 봉사했어요. 청년부 주보 편집, 성가대 지휘에. 직장 생활하는데 주일 출근하란 말에 사표 내고 나왔고요. (불편 값 20% 제거 : "태생이 삐딱한 건 아니구먼. 청년 시절로 치면 나하고 비슷하네!") 한 교회에서 만난 남편이 결혼하고 한 6년 후에 신학을 했어요. 모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봉사하면서 신앙 여정에서 지진이 났지요. 내 인생 가장 존경하던 목사님이 저런 분이었어? 교인들 대하는 얼굴과 부교역자 앞에서 얼굴이 이렇게 다르다고?!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신앙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한 10여 년 그야말로 신앙의 사춘기를 겪었고, 그 시절을 통과하고 나서 쓴 글이지요."

 

이런 얘기를 하는 동안 불편감이 조금씩 제거 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무장해제 되었고, 긴장이 사라졌다. 첫 질문하신 목사님께서 "사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불편했는데, 지금 말씀해주신 것으로 이미 다 이해가 되었다"라고 하셨다. 오랜 시간 독서 모임을 이끄셨고, 내 책을 모임에 추천하셨고,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신 목사님께서도 솔직한 말씀을 하셨다. '책을 추천하고 나눔을 하면서 당황했다. 책을 추천하고 나눔을 준비하며 좋은 반응을 기대했다. 내 기대와 달랐다. 나는 저자를 아니까,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한데 책만 읽은 목사님들의 반응이 달라서 당황했고, 나눔을 진행하다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안다는 것은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대화는 책 너머의 진실을 전하고 듣는 시간이 되었다. 나도 안다. 의식하고 썼다. 신앙 사춘기』는 치우친 책이다. 부러 목사를 몰아세웠다. 목사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많아서 그랬다고, 서문에 썼지만 더 아픈 뜻도 있다. 내 아버지, 내 남편이 목산데 목사가 욕먹는 현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던지는 낫겠다 싶어 선택한 '위치'인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던지자. 내가 먼저 큰 돌을 던지자. 실은 내 마음은 목사님들, 교회 개혁 따위 모르는 착한 교인들에게 가 있다. 신앙 사춘기』를 써내놓고, 여기 담긴 글들이 교회를 조롱하고 목사들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소비되는 것이 가슴 아팠다.

 

여하튼 불편감이 많이 해소 되었다. 책이 아니라, 글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 나누니 불편한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함께 하신 목사님들의 불편감을 얘기가 아니라 내 것을 말하는 것이다. 쓸 때도 알았고, 출간하고도 알았지만 "아, 나 그때 일부러 치우치기로 작정하고 썼던 거구나! 맞아, 그랬지. 그래서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울지 않을 수 없었어." 치우치기로 작정했기에 더 멀어진 반대쪽을 바라보며 울 수밖에 없었음을 다시 알겠다. 그 반대쪽에는 우리 부모님이 있고,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가 있고, 목사로 살아야 하는 내 남편이 있으니까. 불편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불편한 곳에 머물러 내가 쓴 글의 이면을, 나의 이면을, 내 마음의 이면을 새롭게 만났다.

 

인사말로 50% 정도의 불편감은 해소되었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면서 나머지 50%가 해소된 것은 물론이고 200%의 공감으로 연대감이 형성되었다.  그 이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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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23 23:3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10.24 23:50 신고

      절대 안될 걸! 결코 안될 거야. ^^ 내가 그대가 가진 용기, 그대의 삶을 따를 수도 흉내낼 수도 없듯이. 다른 용기 내지마. 지금으로 충분해!

  2. 2020.10.25 22:10

    비밀댓글입니다

중년 여성을 위한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초대합니다.

중년의 ‘중(中)’은 가운데입니다. 인생 등반 한가운데, 내려가는 삶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생의 오후로 가는 길목에는 생각지 못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 같지 않은 몸, 알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감, 100세 인생이라는 노령화 사회에서 아직도 살아가야 할 기나긴 날들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입니다.

중년의 ‘중(重)’은 무거움이기도 합니다. 중년의 위기는 도전이며 기회입니다. Carl Jung은 자신이 상담에서 만난 중년 이후 내담자의 문제는 모두 ‘영적’인 문제였다고 합니다. 중년의 숲을 지나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 쓰고, 읽고, 나눕니다. 글은 잘 못 쓰셔도 됩니다. 나다운 나로 생의 오후를 살고 싶은 ‘중년’을 느끼는 여성(나이 크게 괘념치 않음),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11월 3일(화) ~ 12월 10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6주간)
+ 인원 : 7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3k9xolP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생의 오후 시간 : 글로 길어 올리는 영성의 샘물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어머니 하나님을 찾아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참고도서 : <내 나이 마흔>, 안셀름 그륀, 성서와 함께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국민북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중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201103~)

중년을 위한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신청양식 입니다.

docs.google.com

 

 

 

 

 

화성의 우음도 갈대밭 사이를 걸었다. 월요일, 말은 적고, 걸음 수는 많아지는 우리만의 안식일이다. 거의 모든 월요일마다 길든 짧든 시간을 내어 함께 걸었고, 길든 짧든 어딘가를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주 오랜만에 ‘안식’을 누리는 느낌이다. 언제 적 Sabbath diary더냐! 얼마 만이더냐! 안팎으로 찍힌 마침표 덕인 것 같다.

밖에 찍힌 마침표는 집이다. 몇 주, 약간의 불안 또는 분노로 붙들고 있던 집 문제가 해결된 후 월요일이다.


안으로 찍힌 마침표는...... 뭐지? 7개월, 아니 6개월, 아니 한 달이 걸렸는데.

지난 2월 어느 월요일의 Sabbath diary(나쁜 딸이 드리는 사랑의 기도)에서 시작한 마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글’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은 글이 아니었다. 골절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지만 면회가 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한 달 지나 믿어지지 않는 엄마와의 이별, 그리고 살자고 시작한 글. 살자고 썼고, 그렇게 시작했지만, 서서히 이성 돌아오자 쓰기 위해 살게 되었다. 계속 쓰기만 할 수 없으니 글을 마쳐야 했다. 9월 16일, 적어도 글로는 탈상을 했다. (탈상(脫喪) 아니, 글로 하는 탈상이 끝나지 않았다. 썼던 모든 글을 다시 읽었고, 그렇게 한 번 더 마침표. 다시 읽었던 모든 글을 다시 또 읽고, 오늘 아침 9시에 ‘최종본’이란 이름으로 다시 떠나보냈다. 또 마침표.

 

 

 

 

온몸으로 찍는 마침표라, 몸이 요동을 쳐 배가 뒤틀리고 토하고 쏟아내곤 했다. 나 같으면 벌써 도망갔을 텐데, 옆에서 온갖 발광을 견뎌준 월요일 안식일 친구, 고맙소.

몇 번 더 마침표가 찍혀야 우리 생의 진정한 마침표가 찍힐지. 그때까지 우리는(아니 나는) 또 얼마나 몸부림을 해댈지. 그러나 결국 찍히고 끝나는 마침표.


 

 

 

 

여기저기 흔하게 굴러다녀도 내겐 너무나 절실하고 소중해서 입에 올리지 않는 말이 있다. '영성'이 그렇다. 예를 들면 '일상 영성'은 내 글쓰기가 뿌리내린 곳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어쩐지 입에 올리기는 싫다. 영성 앞에는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그럴듯하다. 연구소의 상담은 궁극적으로 영성 상담이고, 에니어그램 세미나는 영적 여정이고, 종강을 향해 가는 연구소 지도자 과정은 우리만의 '여성 영성'을 일궈가는 일이지만. 감히 '영성'이란 말을 표방할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 소중해서 그렇다. 


요즘 화요일 12시는 일주일 내 마음 가장 맑아지고, 겸손해지고, 경건해지는 시간이다. 연구소 글쓰기 강좌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가 끝나는 시간이다. 오늘은 정말 가장 은혜로운 예배를 마치고 나온 느낌이었다. 정결하게 하는 샘에 내 영혼 씻겨 나온 느낌. 과장이 아니다. 오늘만 해도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는 9시 30분 어간.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상해 있었다. 전 같으면 견적이 이틀은 나오는 '꼬인 마음'인데. 모임 마치고 미용실 갔다 나오니 발길이 절로 남편 사무실로 향했다. 아무 일 없는 듯(없는 척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마음이 되었다) 마주하고. 잠시 산책을 하고 사이좋게 퇴근하여 들어왔다. 읽는 여러분 별로 안 놀라시겠지만, 이건 깜짝 놀랄 일이다. 


이래저래 읽고 쓰는 모임을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해왔지만,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이 전환점이 되었다. 듬성듬성 알았던 것을 벼락처럼 깨달았고, 순간순간 짧게 맛보던 것을 진하게 경험했다. 쓰기의 힘이 아니라 존재의 힘을 무한 신뢰하게 되었다. 고통 가운데 있는 한 존재가 쓴 진실한 글이 날카로운 칼처럼 어딘가를 찌르는 느낌, 그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었는데, 그 머무름이 곧 치유라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 단지 글, 단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 것이다. 이제 모든 글쓰기 모임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고통에 함께 머무름과 그 시간이 주는 놀라운 치유력은 내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늘 경이롭기는 하지만. 

'나'를 주제로 두고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는 시간. 나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 나의 기억, 나의 감정과 몸, 내가 믿는 하나님. 나, 나, 나. 나에 대해 공부하고 쓰지만 심리학적 자기 분석은 아니다. 글쓰기 지도를 하는 시간은 더더욱 아니다. 영성 모임이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것이지만 앞의 나와 뒤의 나는 다르다. 그래서 영성 모임이다. 영적 존재인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지금 여기의 나에서 시작하여 더듬어 가는 시간. 지금 여기의 나에서 시작하자니, 지금 여기의 나는 맥락 없는 내가 아니라 내 경험의 산물이라. 그때그때 올라오는 내 인생 이야기들을 물 흐르듯 써간다. "물 흐르듯"은 글쓰기 영성 모임의 캐치 프레이즈로 삼아도 좋을 말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글이 이끄는 길을 따라". 모인 자리에서 바로 쓰는 10분, 15분 안에 쓰는 짧은 글이 주는 깊이와 울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매시간 "내가 돈을 받으며 글을 배우고, 삶을 배운다"는 느낌이 든다.


쓰는 것은 참말로, 정말로, 진실로, 주체적인 행위이다. 그 주체성과 자발성, 그리고 투명함이 일궈내는 신비일 것이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이고 투명한 태도. 이것을 가진 존재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심리적 존재? 아니다. 그 이상이다. 초월적이고 신비적이 존재. 한 사람 안에 있는 치유와 창조성의 힘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영적 존재'의 증거이다.


화요일 오전 9시 30분, 나는 가장 거룩하고 영적인 시간을 마주한다. 일주일을 살게 하는 본 예배이다. 아, 심야 기도회도 있다. 토요일 자정, 맞다 밤 12시. 영적인 시간이 한 번 더 있다. 미주 서부 동부의 예배자들과 함께 심야의 글쓰기 예배가 있다. 이 즈음 내 영혼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들이다.  

 

 

 

 

 

  1. 2020.10.14 16:3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10.15 23:19 신고

      또 열고말고요! 함께 하신다면 더욱 기쁘게! ^^ 시차 잘 고려하여 조금 더 편하게 참여하시도록 해드리고 싶네요. 소식 알려드릴게요.

    • BlogIcon larinari 2020.10.22 09:48 신고

      silver님, 글쓰기 모임 공지를 올렸어요. '중년 여성' 특화인데, 중년은 생물학적 나이보다는 마음의 나이로 정의합니다. 보시고 마음이 이끄는대로! ^^

  2. 2020.10.23 16:19

    비밀댓글입니다

 

 

 

강의와 기고 글의 주제가 '희망'이 되었다. 타고난 까칠함에 '좋게 보는 눈'이 없는데.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불편한 것을 먼저 감지하는 편이고.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많고. 불편한 것은 결국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 재밌는 것 좋아하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허튼 희망을 말하고 부추기는 자기 계발식 심리학이니 긍정 신학을 혐오하는 편인데. 어쩌다 희망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하나 쓰고 있기도 하다. 그간 공부한 것을 정리한 그릇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니, 결국 희망은 발굴해내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무엇보다 한 사람의 얼굴에서 찾을 찾아지는 것이더라. 코로나 19로, 망할 부동산 패닉으로, 현실은 막막하다. 슬픔과 그리움이 자주 몸을 훑고 지나가 울지 않는 날이 없다. 그래도 어쩐지 내게 희망이 있는 것 같다. 희망에 대해 자꾸 말하다 보니 착각하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들의 얼굴 때문이다. 글쓰기, 내적 여정으로 만나는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살아갈 의미를 준다. 고통 속에서, 치명적 상처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기 위해 쓰고 말하고 찾는 사람들의 얼굴이 희망이다. 많은 것의 부족함 속에서 아프게 성장하고 있는 채윤이 현승이가, 무의미한 '소명의 숲'에서 의미를 찾아 몸부림치는 남편이, 자기도 아프면서 더 아픈 이에게 어깨를 내주고 싶다는 동료가 내게 희망을 준다.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다. 연구소 후원자들에게 편지 보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많이 쓴다. 편지글 한 문장, 같이 담아 보낼 사소한 것 하나도 고민과 고민 끝에 결정한다. 조용하게 요란을 떤다. 연구원 H가 내 마음을 딱 알고 나보다 더 머리 터지게 고민을 하더니 드립백 커피와 쿠키를 생각해냈다. 쿠키를? "커피 한 잔과 쿠키 먹는 그 순간에 멈춰 잠시 연결을 떠올리라고" 그러면서 맛있는 커피와 쿠키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후원자 한 사람도 얼굴이다. 희망 없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매달 말없이 후원금을 보내주는 삼십여 명의 얼굴이 있지 않은가. 제대로 후원 모금 행사 한 번 한 적 없는데, 기꺼이 연결되어 준 얼굴들. 치명적인 절망도 치명적 희망도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다.

연구소 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드립백 하나, 조그만 쿠기 몇 개. 손가락 마비가 오도록 손글씨로 써낸 편지. 굳이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도, 함께 하는 연구원 벗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렇게 했습니다. 후원자님들께 1년에 한두 번 드리는 소식에 어떻게든 사람 냄새를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매달 따박따박 이체되는 후원금 1, 2만 원이 그냥 돈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후원금 총액이 많은 건 아니지만, 덕분에 상담료도 수강료도 계산 없이 필요한 분께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몇만 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연결, 관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방법이 없어서요. 한 사람의 삶과 형편은 쉽게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가장 가까운 날에 볶은 신선한 커피와 동네에서 꽤 맛있는 쿠키를 준비해 행여 깨질까 뾱뾱이 봉투에 담는 저희 손이 설렘으로 떨렸답니다. 오버다, 싶은 감정과 에너지는 오직 조용히 이체로 말씀하시는 후원자님들에 대한 감사 때문입니다. 감사 그 이상의 마음으로 한 분 한 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카드 받으시고 인증샷과 메시지 보내주신 것 모았습니다. 부부가 각각 후원을 하셔서 한 집에 두 봉투가 가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먼저 후원하셨다고 말씀드렸는데 굳이 따로 작정하셨거든요.

후원자든 내담자든 상담하는 저희든 알고 보면 모두 고립의 두려움 속에서 외롭습니다. 누구는 후원자로, 어떤 이는 내담자와 수강자로, 저희는 일을 맡은 자로 외로움과 고립에서 빠져나와 연결되려는 몸짓입니다. 무슨 구별이 있을까 싶네요. 그래서 더욱 마음이 따뜻합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 언제든 후원 신청 가능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분들께 연결되어주실 것을 청합니다. 아래 링크로 후원 신청하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후원 신청 :  https://bit.ly/2ZDcj9q


대학 2학년 된 큰 아이, 고등학교 1학년 된 작은 아이. 둘 다 중학교 마치고 1년을 집에서 쉬었습니다. 말 그대로 1년짜리 방학을 가진 것이지요. 질풍노도의 사춘기 끝에 마냥 놀고 자고 쉬는 시간을 가지기를 참 잘했습니다.

큰 아이는 예술중학교 다니며 피아노를 하고 있었는데, 1년 쉬는 동안 재즈로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2년 만에 대입을 봐 또래와 함께 대학에 진학했지요. 이 아이는 정말 쉼이 필요했습니다. 오직 대입을 위한 음악에 매진하는 예술중학교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3년 동안 포기해야 하고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지요. 그 많은 것 중에 가장 안타까운 것 ‘자기다움’. 그것도 멈춰 쉬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멈춰 1년 쉬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자기답게 음악하고, 자기답게 살아가기 위해 고뇌하며 성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는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동안 학업을 위한 사교육을 하지도 않았고,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지요. (엄마가 보기엔 그런데... 본인은 다르려나?)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가기 전 누나처럼 1년 쉬는 게 어떤가? 제안했을 때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 고민은 누나와 달리, 긴 쉼을 가질 만큼 열심히 달려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결국 1년의 쉼을 선택했습니다. 이 역시 얼마나 잘한 일인지! 소심하고 자기 안으로 숨어들던 아이가 친구들과 깊은 정서적 스킨십으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다양한 만남으로 시각이, 품이 넓어졌습니다. 1년 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최근에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복싱을 하겠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제 성품과 가장 거리가 먼 운동처럼 보였거든요. 바로 그 때문에 복싱을 하고 싶다고요. 용기 있게 1년 쉼을 선택한 경험의 힘이다 싶습니다.

두 아이의 1년 쉼은 특별합니다. 대학 다니다 휴학하는 1년, 취업 준비 위해 멈추는 1년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 많이 자야 키가 크고, 질풍노도의 고민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청소년기죠. 그 시절에 쉰 1년은 그 어떤 쉼의 가치와 다를 것 같습니다. 혼자라면 용기 내기 어려웠을 텐데, 함께 쉬는 친구들, 쉼의 동반 샘이 계시는 꽃친( 꽃다운친구들 - 청소년 갭이어 )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꽃다운 친구들 6기 설명회가 있습니다. 추천, 강력추천합니다.

—————

❝쉼이 있는 청소년 갭이어 (Gap Year)
꽃다운친구들 2021년 6기 모집 설명회❞

꽃다운친구들은 자기다운 걸음으로 걷고 싶은 16-18세 청소년들의 신나는 1년 짜리 방학 공동체 입니다.
갭이어를 알고 싶은 청소년과 부모님, 선생님을 설명회에 초대합니다!

📆 일시
10/17(토) 2~4시, 10/24(토) 7~9시, 10/29(목) 7~9시

🖥 장소
온라인 ZOOM 미팅

✏️ 자세한 내용
https://kochin.tistory.com/262


🙋🏻‍♀️ 참가 신청하기
https://bit.ly/꽃친6기설명회

 

 

홍옥의 계절이다. 매년 이 즈음 프로필 사진은 한 번씩 홍옥이었다.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홍옥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나곤 한다. 뭘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기억'과 관련이 있다. 내게 홍옥은 엄마다. 홍옥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함께 있어도 벌써 그리운 야릇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리움, 또는 두려움. 엄마 돌아가신 후 홍옥을 보면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그리울까. 가불 하여 미리 그리워했던 탓일까, 홍옥 한 입 베어 물며 눈물 뚝뚝 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홍옥이 아니어도 자주 운다. 길을 걷다 울고, 운전하다 울고, 자려고 누워서 울고, 책을 읽다 운다. 이런 가을을 한 번, 두 번, 세 번...... 홍옥의 계절을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일지 알 수 없지만 보내고 보내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알아서 사다주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니 나이스 한 가을이 되었다. 결혼 초부터 마음으로 바라고 때로 말하고 가끔 삐치던 것은 '알아서 소국 한 다발 사 오는 게 그렇게 어렵냐?"였다. 소국 화분 많이 나왔더라, 하나 사야지. 이런 식으로도 말고. 소국 사 와,라고 하면 "어? 어! 어, 어, 소국! 사다 줄게" 이렇게 되는 것. 차를 타고 과일 가게 앞을 지나다 눈 좋은 채윤이가 홍로와 홍옥을 구별해냈다. 차를 세우긴 늦어 지나쳤는데, 남편에게 주문했다. "사우나 건너편 과일 가게에 홍옥 있어. 홍.옥. 사.와. 소국 철이야. 소.국.도 사.와" 

 

 

노오~란 소국이 소담하게 담긴 노오란 화분, 빠알~간 홍옥을 들고 들어왔다. 거기에 초오~록 바질 화분도 하나. 조화롭도다, 조화롭도다! "이 바질은 화원에서 그냥 준 거야. 사모님 갖다 드리래" 여기서 사모님은 '사장님 사모님'이다. 단골 화원이 있는데, 교회에서도 거래하는 곳이다. 당연히 남편이 목사인 걸 아는데, 종교에 관심 없는 주인이 남편에게 "사장님, 사장님" 한다. 소국과 함께 온 바질만큼이나 신선하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 기억 하나. 전에 수업 나가던 어린이 집에서 냠냠 선생님(아, 주방 선생님 아니고 냠냠 선생님!)과의 일화다. 함께 점심 먹으며 맛있다 칭찬도 많이 해드리고(실제로 맛있었다) 요리 팁도 얻곤 했다. 어린이집 냠냠 선생님보다는 괄괄한 식당 주인이 더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아, 그래서 아이들 용 국에다 고춧가루 풀어서 얼큰하게 만들어 준다든지 이런 걸 잘하셨던 것 같다. 아니다 다를까, 어린이집 그만두고 식당을 하신다고 마지막 날 인사를 했다. 정이 많이 들었던 터라 아쉬웠는데, 커다란 덩치의 푹신한 가슴으로 나를 퍽 안아주면서 "아놔, 음악 선생님 좋아했는데. 섭섭하네" 하더니. "식당이 이 동네니까 한 번 들러요. 남편 목사 아저씨하고 한 잔 하러 와요." 사장님, 목사 아저씨, 한 잔. 울타리 밖 언어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좋다. 


올 가을 삼원색. 소국, 홍옥, 바질. 바질이 금메달!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을 주겠다고, 지난번에 줬는데 또 주겠다고, 가급적 추석 전에 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태어나서 일도 안 했는데 돈을 받긴 처음이다. 아니다. 두 번째구나. 아니, 세 번짼가. 전에 살아보지 않았던 세상, 코로나 세상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첫 번째는 지난 3월이었다. 이런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올해 초, 몇 개월 앞의 강의들이 약속되어 있었다. 코로나 세상이 오고,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지면서 모든 강의 약속은 잠정적으로 취소되었다. 강의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를 논의하던 교회로부터 갑자기 강사비 입금 문자가 왔다. 이미 시간을 빼놓으셨고 강의 준비도 하셨을 테니 강사비를 드리는 게 맞다, 는 취지였다. 아이구, 아닙니다! 강의도 안 했는데요! 이런 문자를 보내고 다시 답신이 오가다 선지급된 것으로 정리되었다. 자유로운 대면 예배가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할, 하고 싶은 곳이다. 모든 강의가 취소되고, 수입원이 끊어진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돈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이렇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재난지원금을 네 식구 몫으로 받았는데,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는 용도로 썼다. 이런 걸 두고 돈이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돈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어느새 잔고가 없다는 말에 여러 장으로 나눠 받은 카드를 바꾸고, 금세 또 바꾸고. 그렇게 스쳐갔지만 고마운 지원금이었다. 특고·프리랜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뒤늦게 알고, 설마 또 주겠나 싶어 관심 없다가 마지막 날 부랴부랴 신청을 했었다. 서류는 역시 공기관 발행 서류. 어린이집 여러 곳보다 학교에서 했던 치료가 도움이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보내준 제자 뮨진의 도움이었다. 재난지원금과 달리 현금 입금이 되어 '지원' 받은 느낌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추석 얼마 전 2차 긴급 고용안전 지원금을 준다는 문자가 오더니, 추석 전에 따악! 입금이 된 것이다. 코로나 세상 아닐 때도 명절 보너스 받는 삶은 아닌데. 명절 앞두고 입금된 지원금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 불러 자유 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재난지원금을 받고 얼마 안 되어 친구들을 만났다. 지원금 얘기가 나왔다. 나는 입도 떼기 전에 대화의 흐름이 정해져서, 끝내 나는 입을 떼지 못한 대화지만.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친구 얘기에 입이 딱 달라붙었다. "야야, 나라가 돈을 주니까 받기는 하는데. 나는 걱정이야. 이렇게 세금 다 퍼 쓰다가 우리 애들 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 이렇게 선심 쓰다가 나중은 어쩌려고 그러지?" 했다. 이쯤에서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끼어들질 못했다. "그래도 좋긴 좋더라. 공돈 들어와서 뭘 할까 하다가, 이번에 그걸로 선글라스 바꿨어. 애들도 같이" 여기서도 한 번 틈을 봤는데 바로 이어지는 "핫핫핫핫...." 하는 웃음소리에 포기하고 말았다. 상당히 구차하게 느껴지는 내 얘기를 먼저 해야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는 게 어떠냐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생각도 나고. 핫핫핫핫, 초긍정 웃음소리에 묻혀 같이 웃고 말았다.  

 

집주인에게 정색하고 다시 물어 확인했다. 정말 주인의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게 맞냐. 그게 아니라 임대차3법 피해서 전세금 올리려는 거라면, 원하는 만큼 올려주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담판 지을 생각이었는데. 주인이 들어오겠단다. 집을 알아보는데 이 동네, 저 동네 전세라곤 없다. 이유는 거의 한 가지! 주인이 들어온다. 핫핫핫핫.... 이럴 때 웃어야지. 있지도 않은 전셋집인데 전세가 상승은 말로 할 수가 없다. 1억이 웬 말이냐! 1억 5천이 웬 말이냐! 이런 우리 형편을 듣는 주변 분들이(주변 분들이 전세 사는 분이 없다ㅠㅠ) 우리보다 더 화를 낸다. 전셋값 잡는다더니 탁상공론으로 전세 사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정부를 향해 욕을 욕을 해대는데. 듣고 있자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법망을 피해 "주인이 들어간다"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세를 올리는 사람들은 집주인인데. 보아하니 향후 몇 달 전세도 놓지 않고, 주인이 들어오지도 않아 빈집이 허다할 텐데. 그 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몇 천씩 대출을 받고도 들어갈 집을 못 구해 전전긍긍일 텐데 말이다. 2년 만에 전셋값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 4년 후 올릴 때도 상한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탁상공론이 된 것은 집으로 돈 버는 사람들 '욕망'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그 정도로 법 만들면 세입자들 보호가 된다고 여긴 것은 집주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탁상공론 아닌가. '법 사이로 막 가는' 부동산 놀이에 하루 이틀 단련된 분들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 가족이 어디 아프면, 아픈 몸이 걱정이 아니라 병원비 걱정으로 마음이 내려앉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사는 세상도 있다. 잘은 모르겠다. 2년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집이 1억 씩 벌어주는 세상? 핫핫핫핫...... 언젠가 우리 모두 돌아갈 나라가 있다. 몸의 한계를 벗어나 그분과 함께, 그분처럼 살아갈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을 여기서 미리 사는 것이 내 꿈이다. 강의도 안 했는데 들어온 강사비, 일도 안 했는데 들어온 생계 지원비와 명절 전 입금된 현금 50만 원. 이런 일들은 언젠가 돌아갈 그 나라가 있음을 믿으라는 표식처럼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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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집주인 따님이 들어온대서 다른집을 구하고 말씀드리니 딸이 못들어오게 되었다고 다른임차인 구한다고 다른 임차인들 집보러 보내고 있네요.핫핫핫

 

 

 

마음엔 여유가 있고, 냉장고엔 재료가 없고, 집에는 여자만 있고, 두 여자의 욕구는 항상 뚜렷하며 충만하다. 그런 날 둘이 먹는 점심은 이렇듯 만족스럽니다. 최근 먹은 음식을 짚어보고, 그와 비슷한 메뉴는 싹 지우고, 두 사람의 욕구는 양보할 것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켜내며 조정한 끝에 메뉴를 정했다.

 

 

떡볶이 좋은데, 한 사람 매워야 하고 다른 사람은 케첩 떡볶이 같은 것은 어떻겠냐 하고. 단호박에 치즈를 올리고 싶기도 하고. 결론은 반조리 짜장 떡볶이에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소라 한 줌, 곤약 조금, 깻잎 몇 장을 넣어 우리만의 취향저격 떡볶이다. 매운 걸 먹고 싶은 엄마는 청양고추를 다져 따로 섞어 먹는 걸로.  

 

 

최초 욕구가 볶음밥이었던 딸의 욕구를 감안하여 낙찰을 본 것은 날치알 주먹밥. 이 역시 추석에 마끼를 해먹고 한 줌 남은 날치알을 활용하는 것으로! 다진 야채와 김, 마요네즈까지 넣어 만든 주먹밥이다.

 

 

그리고 딸 최애 소스인 새우젓!으로 간을 해 간단하게 끓인 계란국. 분식집 점심 장사는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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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떡볶이다.

종속과목강문계를 묻는다면, 기름 떡볶이 과에 속한다.

삼겹살을 구워 거기서 나온 기름을 베이스로 한 것이다.

삼겹살 기름에 편으로 썬 마늘 듬뿍, 태국 고추 등을 넣었고

굴소스와 우스타소스 등 비슷한 색의 소스를 섞어 맛을 냈다.

굴소스 있는 곳에 청경채는 웬만하면 따라붙는 것이 좋다.

 

우리 가족은 맛을 느낄 줄 모른다.

늘 내가 답이 정해진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맛있다. 대박이다”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요리사로서 강요한 적은 없다.

그저 나는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때?”라고 물었을 뿐이다.

가끔 “아이, 왜 이렇게 짜지? 실패네 실패. 완전 맛 없을 거야.”

설레발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면 자동 반응이 나온다.

“대박, 완전 맛있어, 최고야 최고!” 같은 것들.

이렇듯 정해진 답을 가지고 먹기 때문에 맛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가엾은 사람들.

 

이 블로그 요리 카테고리에서 흔한 게 떡볶이고,

저런 비주얼 정말 많이 보셨다 해도,

속단하지 마시라.

신상 맞다.

나는 단 한 번도 삼겹살을 떡볶이에 넣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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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추석, 설 명절에 흔하디 흔했던 장면들,
꿈만 같다.


생후 10개월 증손자와 95세 할머니가 눈을 맞췄다. 한 세기 가까운 나이 차이다. 사람을 알게 되면 이름부터 물어보고, 그 이름을 성경 안쪽에 적고 굳이 ‘이름’ 불러 기도하던 할머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외우니 적을 필요도 없다.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하는 손녀 ‘지영이’가 낳은 ‘준우’의 이름은 듣자마자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는 귀도 눈도 어두워 정확히 들을 수 없고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새로운 단어가 입력되지 않는다. 준! 우! 준우! 주누! 고래고래 알려드려도 입력불가. 자꾸만 ‘아가, 아가~아’ 손을 내밀어 보는데 아가는 엉덩이를 뺀다. 아가는 아가대로 10개월 뇌로는 백발이 규명되지 않는다. 마주하면 무조건 좋은 우리 엄마랑 뭔가 비슷한데, 결정적으로 하얀 저건 뭐지? 못 보던 생물첸데. 아가, 아가, 손! 슬금슬금 엉덩이 빼기. 내내 그런 줄 알았는데 제 엄마 지영이 카메라에 이런 장면이 담겼다. 하얀 할머니 머리, 헤~ 바라보는 준우 눈빛. 백발 할머니의 표정은 안보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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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일이다.

명절이라고 명절 음식 먹은 게 1도 없는데,

명절 저녁에 기름기 없는 깔끔한 음식을 먹고 싶으니.

52년 몸에 쌓인 명절 음식이 때맞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냐.

명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추석 저녁에

며칠 기름진 음식 먹은 느낌으로 풀밭 밥상을 차렸다.

 

희한한 일이다.

명절에만 엄마를 보던 것도 아닌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들어도 엄마 생각이 난다.

탄천을 걸으며 아무 자극 없는데도 엄마가 보고파 눈물이 난다.

목까지 슬픔이 가득 찬 것이, 다시 3월이 온 것만 같다.

엄마가 보고 싶다.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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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저랬던 애들이 이렇게 자랐다. 한 아이는 깊은 아픔 헤아리는 마음 따뜻한 청소년이 되었고, 한 아이는 거침없이 돌파하며 자기 한계에 맞서는 성인이 되었다.)

 


❝엄마~아! 누나가 마음으로 나한테 나쁜 말해.
아냐, 알 수 있어. 알 수 있단 말이야. 진짜로 마음속으로 나쁜 말 했단 말이야.
마음속으로 해도 내가 다 알아. 입도 이렇게 쪼금 했단 말이야.❞

❝엄마~아! 누나가 나를 모른 척 해.
누나 옆에 와도 나를 자꾸만 모른 척 해.
정말이야. 모른 척하는 거야.
아니야. 누나가 거짓말하는 거야.
아까 모른 척했어.❞

(두 사건 다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 불가!
현승아 고자질을 하려면 누나처럼 이렇게!)

❝엄마! 우리 반에 최석호가 나한테 나쁜 말은 아닌데 행동으로 나쁜 말을 해.
소리는 안 나지만 나쁜 말이야. 이렇게 손가락을 다 접고 오빠 손가락만 펴서
나한테 내밀어. 이거 나쁜 말이지? 그래서 내가 나쁜 말이라고 혼내줬어.

엄마도 다음에 학교에 와서 한 번 혼내줘.❞

 

 

 

고개를 떨군 줄도 모르고 걷고 걸었다. 어느새 단지 안에 들어섰다. 평소 같으면 하늘 올려다 보길 여러 번, 주저앉아서 '꽃 검색' 카메라로 들꽃 찍기도 한참 했을 것이다. 한낮에 걷는 것은 오랜만이니까. 그런데 하늘도 안 보고, 들꽃도 안 보고, 바람도 느낄 줄 모르고 땅만 보며 걸었다. 똑똑똑똑, 딱딱딱딱. 무슨 소리지?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는 소리라니! 내 마음에 노크하는 소리였다. 똑똑똑, 거기 사람 있나요? 사람 마음 있나요? 

 

세상에! 저 작은 부리로 저렇듯 우렁찬 소리를 낸다.

 

어이, 여기 좀 봐요. 고개를 들어 여기 좀 보라구요. 뭐 잃어버렸나요? 마음을요? 그렇군요. 어쩐지 발걸음이 헛헛하더라구요.

금세 휘릭 날아올라 푸르름 속으로 사라졌다. 내 시선을 낚아 하늘로, 구름으로, 바람으로 꽂아 놓고서. 덕분에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다시 장착하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색의 향연이 눈에 들어온다. 저 예쁜 보랏빛이라니! 새소리 풀벌레 소리도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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