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영원에 잇대기3372

숲은 두 팔을 벌려 음악치료대학원에 들어가 실습수업에서 처음으로 주어진 대상이 마약 청소년이었다. 석사 전공이라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음악치료 세션인데, '마약 청소년과 부모의 소통'을 주제로 한 음악치료라니! 난감한 과제였다. 몇 날 며칠을 기타 잡고 끙끙거리다 하덕규의 과 안치환의 두 곡을 가지고 디자인한 세션에서 교수님께 의외의 칭찬을 받았다. "음악치료의 귀재가 나타났다."는 농담과 함께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어둡고 어둡던 숲 음~ 내 젊은 날의 숲 그때 나 스스로 내면화 한 '숲'의 메타포가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십수 년이 지나 '어두운 신앙의 숲에서 길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라는 부제를 『신앙.. 2026. 5. 1.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다시없을 수도원 밥이 될 것 같다. 다시없을 상을 받았다. 넓은 수도원 피정집에 나 혼자였다. 밥상, 독상이다. 뷔페 아닌 일인 상이 차려져 있다. 문지기 실비아 수녀님이 "어떻게 차려야 할지 몰라서... 하여튼 준비해 봤어요. 밥 덜어 드시고..." 황공하고 죄송한 나보다 더 민망해하신다. "이건 쑥국이고, 봄이니까... 많으면 덜어 드세요." "아이구 수녀님, 쑥국 정말 좋아하는데..." "봄에 오시면 좋아요." 이러고 사라지셨다. 쑥국 국물 첫술이 내려가면서 울컥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올라왔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나만을 위한 밥상을 받았다. 내게 상을 차려주셨다. 꿈여정이나 내적 여정 모임에서 '나만을 위해 차려진 상을 평생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연을 많이.. 2026. 5. 1.
헌사: 사랑하는 목사들께 목사의 딸목사의 누나목사의 아내 이 정체성이 아니었다면 ‘신앙 사춘기’라는 방황이 이토록 무겁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책들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겠지요. 목회자들의 허물과 미성숙함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며 아파했던 이유가, 결국 저의 이 운명과 깊이 잇닿아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오랜 시간 매만져온 원고 『신앙 사춘기 너머』가 모든 작업을 마치고 이제 곧 세상으로 나갑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제 생의 가장 내밀한 고백을 이 세 분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헌사]정선득 목사.정운형 목사.김종필 목사.내 생애 가장 사랑하는 세 남자가 걸어온 삶과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오늘,그리고 남겨진 소명의 시간을 위해기도를 담아 이 책을 드립니다. * 페이스북에 올린 글 그대로 가져옴 2026. 4. 28.
『신앙 사춘기 너머』 표지와 목차 이제껏 책 표지에 사진을 넣어본 적이 없는데, 용기를 냈습니다. 책 표지와 목차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책 내용과 상관없이 ‘신앙 사춘기’라는 언표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서문에도 썼지만, 어슐러 K. 르귄 『어스시의 마법사』의 이야기처럼 ‘이름 붙이기’는 위대한 마법입니다. 편집자이신 문준호 팀장님의 노고로 새로운 이름들이 붙여져 다른 힘을 장착했습니다. 『신앙 사춘기 너머』 기대해 주세요. 서문1부 불안 * 두려움을 순종이라 부르던 날들은혜라는 이름의 텅 빈 열심한때 나를 가두었던 그 시간 속에서가벼운 말들이 남긴 무거운 흔적맹목의 숲을 빠져나오며2부 질문 *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이 쌓인 자리의심과 회의 사이에서 마주한 믿음다시, 기도의 이유를 헤아리는 시간질문 없는 신앙에 드리운 .. 2026. 4. 28.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감독 영화 이야기 아닙니다. 제목만 가져왔습니다.) 일은 꼭 몰려온다. 봄 내내 강의 없이 잘 쉬었는데, 이틀 연속 강의가 있었다. 이튿날 일정은 부산. 처음으로 차를 직접 몰고 내려왔다. 보통 꿈 집단 한 텀이 끝나면 한두 주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에도 수도원 피정을 갈까 고민하던 차에 작년에 이어 수영로교회에서 재차 강의 요청이 왔다. 그래, 내친걸음으로 마산까지 가자. 그간 숙소 제공의 호의를 매번 사양하고 당일로 오가곤 했으나, 이번엔 그 호의도 기꺼이 받기로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해운대 근처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대로 쉴까 하다 한 블록만 건너면 바다인데 그럴 수는 없지 싶어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아, 이토록 고요한 해운대라니. 작년 여름, 채윤이가 미국 가기 전 가족 .. 2026. 4. 23.
꿈과 영성 생활 집단 여정: 자비가 필요한 자리 여자아이를 달래며 말한다. 원래 그런 거야. 웃으면서 눈물도 나는 거고, 울다가 웃음도 나는 거야. 이번 학기 꿈 작업에서 만난 문장입니다. 타인의 슬픔에는 “울어도 된다”고 너그러운 우리이지만, 정작 자신의 모호하고 복합적인 감정 앞에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합니다. 내 안의 나를 따스하게 달래고, 눈물과 웃음을 있는 그대로 허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 작업의 목표 중 하나는 ‘자기 자비’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자비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고이지 않습니다. 자칫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참된 자비의 수원지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 매주 한 분의 꿈을 나누며 그 거울에 내 마음을 비추어 봅니다. 하늘 아버지.. 2026. 4. 23.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 나가사키 순례를 마음이 머금고 있는 중, 지난 금요일 밤 꿈모임에서 한 벗의 꿈이 내게 물었다. "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했던 일이 있는가?" 이 질문 앞에 나도 벗들도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 세상 이타적인 착한 사람들인데... 베풀기 좋아하는 이들인데 말이다. 정말 바라는 것 없이 베풀었나? 그랬던 적이 있었나? 없다고들 한다. 뭐라도 바랐다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인정이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칭찬이든, 심지어 솔직히 말해서 '돈'이기도 하다는! 나가사키 순례 내내 걷고 또 걸으며 기도하던 내 비루한 마음이 떠오른다. 단지 몸이 아파서만은 아니었다. 마음이 자꾸 협소해졌다. 내가 계획했던 바를 완수하지 못했거나, 혹은 지키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좌.. 2026. 4. 19.
요리하는 아이들 건실한 청년들이다. 막 자취를 시작한 아들 김현승과 타국의 자취생 된 지 1년이 되지 않은 딸 김채윤이 밥을 잘해 먹는다. 둘 다 약속이나 한 듯 첫 요리가 일명 '알맘마'(간장 계란밥)이더니 진도도 비슷하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청년들이다. 결혼하고 처음 요리를 하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엄마한테 전화했었는데... 엄마가 내 요리책이었는데... 얘네들은 유명 쉐프에게 직접 배우는 유튜브의 세상을 살고 있다. 직접 밥을 해서 먹으며 배우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그것이 대부분 "엄마 정말 힘들었겠다. 엄마 정말 대단하다." 이런 거라서... 더욱 기부니가 좋다. 물론 좋고 대견한 마음보다 안쓰러움이 크고. 집에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면 주책맞게 목이 매이기도 한다. 주일 저녁엔 현승에게 일주일 치.. 2026. 4. 18.
Ruach 숨결여행, 두 번째 나가사키 순례를 마치고 두 번째 나가사키 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작년 연구원 선생님들과 함께했던 첫 순례 때도 내외적으로 꽤 정성 들여 준비했었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을 깊이 읽고, 글을 쓰며 공부하며 얻은 통찰로 일정을 짰었지요. 하지만 실제 여정은 생각과 다른 점이 많았고, 그 경험들을 다시 반영하여 이번 여정을 계획했습니다.특히 2024년 유럽 수도원 순례 당시 느꼈던 아쉬움을 복기하며 두 가지 ‘순례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바로 ‘여백의 시공간을 가질 것’ 그리고 ‘많이 걸을 것’입니다. 엔도의 소설에 직접 등장하거나 의미적으로 연결된 세 군데 성당에서는 각자 한 시간 정도 고요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군가는 성당에 앉아 오래 기도하고, 누군가는 주변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또 누군가는 전시를 관람하기도.. 2026. 4. 16.
가만한 환영 나가사키 순례를 마치고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왔다. 나 없는 사이 배송되어 온 책과 마우스가 내 자리에 놓여져 있다. 시든 보라색 후리지아가 닷새의 공백을 그대로 보여준다. 안 봐도 보인다. 택배 박스를 뜯어서 테잎을 꼼꼼히 뜯어내고 납작하게 눌러 종이 쓰레기 모으는 봉투에 담고. 또 무슨 책을 산 거야? 미간에 주름 잡고 제목을 들여다 보고는 내 자리에 가지런히 가져다 놓은 사람이 보인다. 됐다 안 됐다 하는 마우스로 글을 쓰고 일하는 걸 자꾸 신경 쓰더니 좋은 마우스를 사다 놓았다.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성능 좋은 놈을 써보니 그간 말 안 듣는 마우스로 고통 받으며 글을 쓰고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겠다. 집이다. 딱 봐도 알겠는 보이지 않는 시간과 마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첫날 공항 가는.. 2026.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