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국민의 숲을 걸었다. 비 예보가 있다. 차에 우산이 없었고, 있다 해도 우산을 들고 들어가진 않았을 것.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땅바닥을 보면 알 수 있다. 해가 들었다 났다 하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림자 그림이 예술이었다. 가다 말고 가만히 카메라 드리우고 서있어 보았다. 작품이 나타났다. 1분 25초짜리 영상 안에 하늘, 해, 구름, 나무, 바람이 다 들어있다. 가만히 서 있었는데, 숨만 쉬며 서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았다.

산악인 엄홍길 씨 인터뷰에서 들은 말이다. "산이 받아줘야 한다" 산을 정복하기 보다는 "받아달라, 받아달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등반을 한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산이 받아준다.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산이 받아주고, 숲이 안아주는 느낌. 이래저래 마음을 못 잡고 드라마 정주행으로 다스리고 있는데, 남편이 '어디 하루 가자'는 말을 하루 전에 했다. 강의 중 쉬는 시간에 숙소 예약을 했다. '어디 하루'의 유일한 조건은 숲이었다. 산에 안겨 하룻밤 자고 오는 것.

의도한 바는 아닌데, 찍고 찍힌 사진을 보니 숲에 안긴 느낌이 여럿이다. 대관령 어느 목장의 숲길, 국민의 숲, 월정사 전나무 숲에 이렇게 저렇게 스며들었다. 안겼다 해도 좋고 스며들었다는 것도 맞다. 그분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 그분의 품에 안기는 것이 이렇듯 가까운 일이다. 자연 안에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으면 그분에게 스며들거나 그분이 내게 스며드신다. 산에 안겨 하룻밤 보내고 싶었던 것은, 숲에 안기고 싶었던 것은 그분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흰꽃이 고개를 푹 숙이고 피어 있었다. 처음 보는 꽃이다. '함박꽃나무'란다. 이름을 듣고 보니 꽃 모양 생긴 것이 함박꽃 같다. 함박꽃나무, 함박꽃나무. 불러줄 이름 하나를 익혔다. 초록잎에 가려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함박꽃나무의 꽃이다. 저러고 조용히 피어 고요하게 제 시간을 살겠지. 그 숲에 누가 있으나 없으나,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제 존재를 꽃피우겠지. 숲에 스며 피고 질 함박꽃나무의 꽃. '숲며들다' 숲 안내도에서 스쳐 지나듯 본 말이다. 숲며들다, 숲며들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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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연구소 지도자 과정이 있다. 내 기도와 공부와 열정의 에너지는 이 시간을 중심으로 돈다. 일주일은 목요일을 중심으로 돌고, 2021년은 '상처 입은 치유자 2기'로 기억될 것이다. 연구소는 늘 공간 문제가 숙제이다. 미사 나음터가 베이스캠프인데, 많은 사람 모을 수가 없다. 사람이 와도 대기시켜야 하고, 돌려보내야 하는 형국이지만. 큰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꼭 필요한 사람은 결국 어떻게든 찾아오고, 연결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고민이 깊어졌다. 고민 끝에 우리 교회 예배당에서 모이는 것으로 극적 해결점이 찾아졌다. 마침 우리 교회는 장소를 옮겼는데 공간 구획이며, 창밖의 뷰며, 무엇보다 교회당 구석구석에 닿은 교우들의 손길로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잠시라도 비워두기 아까운 곳인데, 모임 장소로 확정되었다. 수도권 전역에서 오는 길들이 멀어서 그렇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다.

 

지난 모임이었다. 제일 먼저 도착하여 모임방 문을 열었는데, 이 무슨 손길! 테이블마다 꽃이 놓여 있는 것이다. 청년부 시절 설교에서 예화로 들은 것이 잊히지 않는다. 어느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누군가 청소하고 정리한 흔적이 느껴졌고, 긴 설명 필요 없이 공간이 그 사람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런 얘기였다. 그리고 아마 아래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나오는 말이 인용되었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이 문구를 가슴에 새겼다. 집 책상에 앞에, 직장 책상 유리에 끼워두고 늘 읽었다. 인정과 칭찬에의 집착이 강하고,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는 나를 한 번씩 멈춰 세우는 말씀이었다. 테이블에 꽂힌 꽃을 보고 그 시절 설교와 저 문구가 생각났다. 도대체 누가?라는 질문과 함께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 누가 알아주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조용히 이래 놓으실 분. 별 거 아니에요. 마침 꽃이 있고, 시간도 있어서 그랬어요. 하실 분.

정말 마음이 환해졌나보다. 사진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카메라를 보며 지은 설정 웃음이긴 하지만, 설정된 웃음도 마음이 좋을 때와 아닐 때가 다르다. 사진을 본 남편, 채윤이가 좋아했다. 심지어 연구소의 그림 집단 여정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에 참가한 벗이며 친척인 혜경이 그림을 그려 보내왔다. 사진에서 기쁨이 보였다고. 꽃을 가져다 놓은 집사님은 "별일 아닌데" 하실 것이다. 별일 아닌 것이 사랑으로 흘러가는 일이 흔하다. 하고, 그냥 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작은 일들, 미처 '나(ego)'가 담길 새 없이 흩어지는 일들이 좋고 소중하다. 사랑은 준 사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것이다.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줌'에 방점이 찍힌 것들은 사랑에서 가장 먼 것, 심지어 폭력이 되기 십상이다.

사랑이 없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아무 값어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그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풍성한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이루어놓은 성과보다 그 사람이 얼마만 한 사랑으로 그 일을 했는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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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ㅅ ㅣ ㄴ ㅐ 2021.06.13 15:12 신고

    아름다운 사람 옆에 또 아름다운 사람~ 정말이네요 ^^

    • BlogIcon larinari 2021.06.17 07:21 신고

      아름다운 사람 옆에 또 아름다운 사람,
      그 이야기를 읽은 아름다운 사람이 쓴
      아름다운 댓글 ♡


책 제목 ‘슬픔을 쓰는 일’이 요 며칠 자꾸 '슬픔을 내놓는 일'로 읽힌다. 내놓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그렇다. 출간은, 특히 내게 있어 책을 내는 일은 '사연 팔이'이다. 이것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모든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며, 모든 글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쓴 사람의 사연이 스며들기 마련이니까. 이렇게 잘 알면서도 내놓는 일은 늘 새롭게 감수해야 하는 부끄러움이다.

내적 여정 세미나든 글쓰기나 꿈 작업에서든, 많이 내놓는 사람이 많이 성장한다. 그런 모임에서 내놓아야 할 것은 포장지로 싸고 싸고 또 싸매 뒀던 이야기들이다. 자랑스러운 것을 꽁꽁 싸매 둘 리 없다. 부끄러운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내놓는 순간 취약해진다. 갑옷 안에 감춘 연한 살이라고 할까, 아니 상처 난 피부 같은 것이다. 말 한마디, 눈길 하나로 더 아파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용기 내어 감수하는 사람들이 치유와 성장을 경험한다. 무수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이다. 먼저 내놓고 많이 망가지는 사람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다. 이것을 안다. 잘 안다. 안다고 쉬워지진 않는다. 알기에 다시 내놓지만, 빛나는 보상이 거저 주어지진 않는다. 부끄러움과 아픔을 다시 마주해야 하고, 모르는 발길에 차여야 할 것도 각오해야 한다.

안다고 쉬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알기에 가지 않을 수 없다. 내놓고 얻는 소중한 것을 알면서 내놓지 않을 방법이 없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내놓지 않을 방법이 없으면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피할 길도 없으니, 이렇듯 징징거리기라도 하려고. 오늘 종일 마지막 교정을 보려고 한다. 일단 펼치면 금방 할 텐데, 첫 페이지 펼치기가 이렇게 어렵다. 조금만 징징거리다가 여자답게, 힘차게, 냉정하게 펼쳐야지.

일단 서문 전체를 내놓는다. (페이스북에는 엊그제 서문 일부를 찔끔 내놓았다.)

<슬픔을 쓰는 일> 서문

쓰인 글
이 책은 쓴 것이 아니라 쓰인 글이다. ‘미친년 글쓰기’라는 원색적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이제 와 이름을 붙이자니 ‘애도 일기’이지, 당시에는 슬퍼하거나 애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글을 한 편 썼는데, 그러고 나니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쓰고 나면 읽을 힘이 생겼다. 애도에 관한 세상 모든 책을 읽을 기세로 읽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숨을 쉬기 위해, 읽기 위해, 하루를 살기 위해 썼다. 이런 날들을 지내며 ‘미친 정신’이 제정신으로, 쓰이던 글이 쓰는 글이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첫 글이 ‘쓰인’ 글이라면, 장례 후 육 개월 즈음에 쓴 마지막 글은 ‘쓴 글’이다. 탈상이다! 힘을 다해 마지막 문장을 쓰고 강한 의지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니 첫 글과 마지막 글 사이는 쓰인 글과 쓴 글의 그러데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쓰인 글에서 쓴 글로 바뀌게 된 힘은 사람, 독자에게서 왔다. 나는 어떤 글이든 의식적으로 독자를 세우려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나마 읽을 만한 글이 된다. ‘쓰인’ 글에서는 독자를 상정할 수 없다. 그저 나 자신 쓰는 사람이며 동시에 읽는 사람이었다. 실은 그런 의식조차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랜 습관대로 독자가 떠올랐다. ‘누군가’가 아니라 아홉 살에 엄마를 잃은 친구, 그리고 중학교 때 엄마를 떠나보낸 제자, 두 여성이 명확하게 내 안에 떠올랐다. 글을 써서 그나마 숨도 쉬고, 밥맛을 느끼게 되니 엄마 잃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싶었다. 이 나이에, 글로 애도할 힘이 있는 나도 이렇게 막막한데 친구는, 제자는 어떻게 견뎠을까.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쓴 글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아픈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오늘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애도하지 못한 언젠가’에서 기인한 것임을. 그때 충분히 울었어야 했는데 울음을 삼키고 슬픔을 막아버린 탓에 몸과 마음의 숨 쉴 구멍들이 하나둘 막혀버린 것이 오늘의 고통이라는 것을. 과연 재난 같은 슬픔 앞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조차도 글을 쓰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애도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어쩌다 내가 글로 숨을 쉬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은총을 혼자 누릴 수는 없으니 엄마 잃은 누군가를 위해 어떻게든 끝까지 써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쓰인’ 글이 ‘쓰는 글’로 온전히 탈바꿈하는 시점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의 마음, 엄마 잃은 딸의 마음을 내보여 같은 상실을 경험한 이들과 연결되고 싶어 졌다. 이제라도 내 글을 읽으며 뒤늦은 슬픔을 느끼고, 애도의 공간으로 들어갈 누군가를 상정하니 힘이 났다.

쓰게 한 글
내 슬픔을 누군가의 슬픔에 잇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숨 쉴 공간이 생겨났다는 증거다. 연결은 치유의 증거다. 나에게 글쓰기는 치유이자 연결이다. 일찍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된 나를, 엄마마저 잃을까 봐 두려움에 볼모 잡힌 나를, 엄마를 잃고 따라 죽고 싶은 나를 오늘의 나, 생명을 사는 나와 이어주는 것이 글이다. 외로움과 자기연민으로 고립된 나와 아픈 이웃을 이어주는 길이다. 글이 내는 길, 글을 쓰다 열린 길이다. 출간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하염없이 써야 했을 것이다. 탈고를 핑계 삼아 마지막 글 ‘탈상’을 썼다. 그리고 작정한 바는 없었는데 숙원인 글쓰기 모임을 열었다. 치유 공동체로 일구고 있는 연구소 프로그램으로 여성들의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뚜껑을 열고 보니 나를 위한 애도 작업의 연장이었다. 짧은 강의를 내어주고 투명한 글을 선물로 받았다. 각자의 ‘그때’ 충분히 울고, 충분히 분노하지 못한 기억을 글로 써서 낭독하며 숨 쉴 공간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물론 내게도. 특히 나에게 그러했다. 쓰인 글이 쓴 글이 되고, 이제는 ‘쓰게 한 글’이 길이 되고 있다. 글이 낸 길은 이렇듯 사람들로 가 닿는다. 글이 아니라 글을 읽어주는, 들어주는 사람이 치유인지 모른다.

날아든 글
원고를 다시 읽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출간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피하고 싶었다. 쓰던 그 순간과 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끝까지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더는 미룰 수 없었고, 어느 밤을 디데이로 잡았다. 그날 오후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 내가 산다는 것은>이란 제목의 번역물이었다. 작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친필 엽서와 함께였다. IVP 신현기 (당시) 대표님이 직접 번역하신 것이었다. 앞장에는 이런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이 번역본은 정신실 작가의 저술 참고용에 한하여 사용하도록 초역하여 제공한 것으로,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전부 혹은 극히 일부라도 복사는 물론 열람할 수 없습니다’. 번역물을 펼치기 전 그 문구에 머물러 한참을 울었다. 공식 문안일 텐데, 공식적 문장에 이렇듯 위로받을 수 있다니. 그리고 그 밤, 그 글을 읽으며 제대로 치르지 못한 엄마의 장례식을 마저 치른 것 같다. 차마 읽지 못했던 내 글을 다시 읽고 탈상, 아니 탈고를 할 수 있었다. 쓰인 글도, 쓴 글도, 쓰게 한 글도 아닌 ‘어떤 글’로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신현기 대표님께 그때 감정에 복받쳐 차마 전하지 못한 감사의 말씀을 뒤늦게 전한다. 편집자 심혜인 간사님 아니었으면 블로그 한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할 글이었다. 따뜻한 독자로, 날카로운 편집자로 들어주고 다듬어주고 함께 해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출간 과정 자체가 애도 작업의 연장이었는데, 두 분과 IVP 출판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슬픔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내 곁에서 ‘오늘이 선물’이라고 한결같이 노래해 준 남편 김종필과 채윤 현승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아기가 된 엄마를 마지막까지 돌보고 보살폈던 올케 이선영에게 특별한 감사와 미안함을, 매일 할머니를 걱정시키고 웃게 했던 조카들 수현, 우현, 세현이에게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내 동생 정운형. 나와 똑같은 아버지 상실, 엄마 상실을 겪었지만 나보다 강한 사람으로 서서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동생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인생의 동지이며 믿음직한 글벗이기도 한 운형아, 고맙다. 마흔다섯 늦은 나이에 나를 낳고, 그리고 또 동생을 낳아준 엄마가 가장 고마운 것 같기도 하고.

김영봉 목사님의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을 비롯한 여러 저서, 박정은 수녀님의 <슬픔을 위한 시간>, 박미라 선생님의 <치유하는 글쓰기>. 일찍이 책으로 만난 좋은 선생님 덕에 애도와 글쓰기에 대해 예습을 할 수 있었다. 세 분 추천사에 미치지 못하는 글의 무게가 부끄럽지만, 그래서 더욱 큰 위로가 된다. 세 분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세 분의 글이 나를 준비시켰듯, 나의 글이 어느 독자에게 닿아 온전히 슬퍼하고 다시 살아 살아낼 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부모를 잃은 사람, 언젠가 부모를 잃은 사람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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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6.17 11:5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6.23 09:25 신고

      그러시군요. 짧은 댓글 만으로 슬픔이 전해져오고, 제 안의 슬픔이 다시 살아나 눈물이 나요. 글쓰기가 도움이 되지만, 아프지 않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마무리 되지 않는 글이라도, 써주세요. 그리고 함께 울어요. 슬픔의 시간 잘 견디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부장님 같은 표현이지만 "백만 년 만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조카 결혼식이다. 막내 외삼촌을 뵈었다. 보기 드문 좋은 노인이시고, 좋은 노인이 되시기 전부터 그냥 좋은 외삼촌이었다. 우리 엄마와 제일 마음이 잘 통하던 분이기도 하다. 엄마 노년에 침대에 누워서도 전화로 연결되어 있던 막내 동생이고. 좋은 부모가 계시면 늘 그렇듯, 삼촌의 자녀들끼리도 화목하다. 사촌 언니 오빠들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신 외삼촌을 발견하고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에 눈만 보였다.  "삼촌!"하고 달려갔다 얼음이 되고 말았다. 엄마다! 엄마의 눈이다. 어쩌면 그렇게 엄마의 눈이다. "삼촌, 건강하시죠?"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식이 진행되고 식사하는 중에도 힐끗힐끗 삼촌 계신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자꾸 마음이 꿀렁거렸다. 식사 마치고 다시 삼촌께 갔다. 진정이 많이 된 상태다. 삼촌이 그러신다. "신실아, 너는 엄마랑 똑같구나!" 도대체 이 결혼식에 우리 엄마가 몇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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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6.08 17:03 신고

    눈물이 찔끔 나네요.

    맞습니다.
    엄마를 보며 날보고, 딸을 보며 날보고,
    엄마는 날보며 자신을 만나고,
    손녀를 보며 딸을 만나고,
    딸은 날보며 할머니를 발견하고
    날 보며 자신을 발견해가고..

    인생입니다. 버릴것없는.

    • BlogIcon larinari 2021.06.10 20:01 신고

      저 자리에 저 닮은 조카가 있었어요. 이런 행사가 있으면 어른들이 조카한테 "신실이 왔네!" 하신다는 거예요. ㅎㅎㅎ 저보다 10년 젊거든요. 이번에 저희 애들까지 누나(언니)가 왔다갔다 하는데 엄마인 줄 알았다고....
      참 오묘하다 싶어요. 저희 아이들이 저를 안 닮아서 섭섭하기도 한데, 조카가 저를 닮았다니. 저를 쏙 빼닮은 누군가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고요. 저보고 엄마 본 듯 하다시는 어른들의 말씀에도 마음이 파르르 떨리고요. 네, 이것이 인생, 인생들의 교차인가봐요.

어느 날이었던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초저녁,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걷는 길. 걷는 건 참 좋은 일이라, 아파트 큰 나무 사이를 걸으니 절로 마음의 생기가 차올랐다. 놀이터 옆을 지나는데, 지나는데... 아하, 말랑말랑한 생명체들 귀여운 만행의 현장 발견. 슬슬 차오르던 생기의 포텐이 터짐! 오동통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르고 만지고 주무르고 했을, 재잘거렸을 것들이 보이고 들리는 것 같은 잔여물이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게 아름다운 작품인가. 발을 뗄 수 없었다.

어느 큰 교회 강의에 갔다. 소개하신 목사님의 사모님과 아이들이 본당 저 끝에 앉았다. 엄마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더니 강의 마치고 나오는데 이 그림카드를 건네주었다. 사모님 "한테" 쓴 것이고. 의상이 포인트다. 내 여름 강의복이라 할 수 있는 검정 원피스에 흰 재킷을 그대로 살렸고. 내 트레이드마크인 '열정'을 그대로 담아냈다. 어찌나 열정이 넘치는지, 강의하는데 겨드랑이에서 하트가 뿜어져 나온다. '사모' '느낌표' '감사'는 쫌 중요하니 별표. "드림"의 디귿을 뒤집어써주는 미적 감각! 발을 뗄 수 없었다. 다시 돌이켜 이 아름다운 존재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오후에 있었던 지도자 과정에서 들은 아픈 이야기로 마음에 고인 슬픔이, 밤에 유튜브 강의라 1500명 본당에 청중 몇 명 앉아 계신 어려운 환경에서 강의하느라 경직된 몸과 마음이, 늦은 밤 빗길 운전하느라 쌓인 피로가 한 방에 풀렸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게 귀엽고 아름다운 작품인가.

참 아름다우신 분들, 참 고마우신 분들.
아이들 여러분들.
아이들이 있는 세상,
아이들이 있어서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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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6.05 21:24 신고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우 우~~~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아래 노래가 글뒤로 이어집니다.^^ 아름다움을 볼수있는 선생님의 내면이 아름답습니다.
    저는.. 아직 그렇지못합니다만 - -; ㅎㅎ

    • BlogIcon larinari 2021.06.10 19:58 신고

      그 노래 불렀어요. ㅎㅎㅎㅎ
      저는 늘 이랬어요. 제 평생에 이런 것들이 아름다웠고, 이게 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의 눈에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가 있으시겠죠?

자, 생일 저녁에 뭐 해줄까?

음... 떡볶이!

그래, 떡볶이와 미역국!

 

# 초딩 생일 아님

# 반백의 떡볶이 좋아하는 아저씨

# 떡볶이를 좋아하는 건지, 좋아하도록 길들여진 건지는 모름

# 생일 점심으로 비싼 밥 먹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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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0시간이 드는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
여섯 번의 만남으로 총 15시간이 드는 [글쓰기 여정]
역시 6회기, 총 15시간으로 진행되는 [꿈 여정]
피정과 방학 책 나눔까지 두 학기, 총 100시간 넘게 함께 하는 [지도자 과정]
그리고 [그림 집단 여정][커플 세미나], 그리고 [개인 상담]

나음터라 불리는 연구소의 프로그램들이다. 이 모든 과정이 단 한 사람을 위해 시작되었다고 하면 믿어지려나. 한 사람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고, 지금도 한 사람을 위해 진행한다. "그러면 저는 이제 어떡해야 해요?" 이런 질문. 에니어그램 1단계를 듣고 다음 걸음을 묻는 분을 위해 2단계 강의를, 또 심화 강의를, 영성 강의를 하나 씩 열게 된 것이다. 아끼는 제자가 결혼하는데,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해줄 게 없어서 커플 세미나를 열었고, 배웠으니 어디 가서 가르쳐야 할 분들이 생겨나니 지도자 과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것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있다. 연구소의 모든 프로그램과 과정은 내게 모두 한 사람의 얼굴이다.

강의에 불려 다니는 것이 편하지, 깃발을 꽂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 모으는 일이 제일 어려워요." 이름 걸고 뭔가 하려는 분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사람 모으는 일은 북 치고 장구 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너무 뻔한 말 같지만, 연애하고 싶다고 애인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제 글쓰기 강의 모집 포스팅을 하고 한 시간이 안 되어 마감되었다. 대단한 강좌여서는 아니다. 모집 인원이 6명밖에 안 되는 데다, 전부터 기다리며 대기하는 분들이 계시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아쉬움 가득한 대기 문자가 바로 온다. 대기하신 분 중에는 내가 다 아쉬운 분도 있다. 아, 이분 지금 글쓰기 하시면 딱 좋겠는데! 아쉬워도 마음은 편하다. 이거 안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이번이 끝도 아니니까. 같은 패턴으로 같을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은, 내 눈에 보기에 어떻든 지금 주어진 만남이 최선이다. 지금 이것, 오늘 이것이 최선의 선물이다. 나에게든 당신에게든 그분에게든!

모든 과정이 한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은 한 프로그램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절실함과 절실함이 만나면 치유와 성장의 포텐이 터지는데,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참 많이 경험했다. (이건 조금 뼈가 아프게 경험했지) 내가 잘해서 잘 되는 것이고, 나만 잘하면 그냥 잘 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내가 아무리 잘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열심히 잘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아픔과 부담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실패의 기억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오늘 이 글은 블로그로 연구소 프로그램 정보를 얻으시는, 밴쿠버에 계시는 silver님을 위한 포스팅이다. 글쓰기와 꿈여정 개설할 때마다 시차 계산하며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드리려고. 오래 기다리다 막상 과정을 경험하시면 기대에 미치지 못할 확률이 크지만. 모집하는 여섯 자리 중 한 자리는 일단 silver님을 앉히고 있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보고 계시죠? ^^


 

[나를 지키는 글쓰기]


zoom을 통해 글쓰기 집단 여정을 하다 보면 ‘비대면’이란 표현이 무색해집니다. 진하디 진한 존재의 대면이 됩니다. 랜선을 따라 흐르는 글이 창조성과 치유력의 강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나누는 6주의 시간이 이렇게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그 이후입니다. 참가하신 분들이 각자 ‘쓰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축축하게 늘어진 몸을 일으켜서 겨우겨우 기지개를 펴고,
00이를 먹이고 옷도 잘 입혀서 어린이집도 보내고,
다시 앉아서 이렇게 글을 써.❞

연구소 카페에 올라온 글 한 편에 힘입어 6기 모집 안내에 박차를 가합니다. 새로운 이름 <나를 지키는 글쓰기>로 만나겠습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6월 15일(화) ~ 7월 20일 (화)
+ 시간 : 오후 8시~10시 30분(6주간)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 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4235-8020
+ 신청 링크 : https://bit.ly/2SM3dbn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나는 쓰고 말하는 나다 :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에 이름 붙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말하는 몸, 쓰는 몸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여자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읽기 :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나를 지키는 글쓰기(20210615)

<나를 지키는 글쓰기> 신청 양식입니다.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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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6.05 21:20 신고

    절실함이 있어도 때가 아닐수도 있다는걸 아니 , 이번에 못듣게 되었어도 아쉬움이 덜합니다.
    작년 내적여정을 만난것이 제게는 가장최선의 때였던것처럼.. 또 지금 그림일기를 쓰는일이 그러한것처럼.. 또 그렇게 만나리라

    • BlogIcon larinari 2021.06.10 19:54 신고

      네, 맞아요. 선생님! 그림으로 새롭게 마주하고 성찰하고 계시죠? 주어진 것, 주어진 순간을 온전히 누리기로 해요!

  2. BlogIcon ㅅ ㅣ ㄴ ㅐ 2021.06.06 20:55 신고

    오랫동안 달고 다니던 모래주머니들을 내려놓고 그 가뿐함에 감사하고 떨어져 나간 모래주머니들을 바라보며 그동안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마음도 갖게 해준 이 여정이 계속해서 저의 삶과 함께 하고 있어요~~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 BlogIcon larinari 2021.06.10 19:55 신고

      고마워! 함께 한 시간이 꿈결 같네. 좋은 통로를 찾았으니 또 연결되자!

  3. 2021.06.08 13:5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6.10 19:56 신고

      네,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기회는 오고 또 오니까요! 환경이 어떻든 흔들리지 않은 늘 평안이 함께 하시길 기도할게요!

'세상에서 가장 긴 장례식'이라며 쓰기 시작한 글.

'애도 일기'라는 보다 객관적인 이름을 붙이고 매만진 끝에

<슬픔을 쓰는 일>이라는 얼굴로 세상에 나온다.

네 개의 최종 표지 시안이다.

 

애도 일기의 시점이 '현재'라면

국화 한 송이 표지가 적절하다.

노란 표지는 말 한마디 필요 없는 슬픔 그 자체이다.

적나라한 슬픔, 그 무엇도 아닌 슬픔 그 자체의 노랑이라면

분홍의 국화엔 엄마와 딸이 어른거린다.

 

이것은 찬란한 슬픔이다. 

보자마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내가 전화통 붙들고 찬송으로 통곡했던 그 순간,

엄마와 동생과 내가 전화기로 연결되었던 시간을 일컬어

맨 처음 남편이 붙인 이름이다.

찬란이라니, 그런 사치스러운 형용이라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느새 받아들이고 있는 나다.

 

출판사에서 표지를 두고 페이스북에 독자 투표를 했는데,

"찬란한 슬픔"이란 말을 떠올리신 분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중 한 분은 한때 이웃사촌이셨던, 우리 아이들의 털보 아저씨 김동원 선생님.

 

넷 중 어느 하나도 쉽게 버려지질 않는다.

책을 출간하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편집 일정에 맞춰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표지 하나가 있기 마련인데,

갈수록 자연스럽게 네 표지 모두 다른 의미로 아름답고 소중해지니 말이다.

어쩐지 이번 책은 내 마음속에 네 개의 표지로 남는 책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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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6.02 18:2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6.02 19:11 신고

      한국에 오기 전에 책이 그대에게 먼저 가 있도록 할 거요! ^^ 이 책을 낳는데 큰 힘이 되어준 그대!

  2. BlogIcon ㅅ ㅣ ㄴ ㅐ 2021.06.02 22:43 신고

    낳는다는 표현이 정말 딱인 그런 책이예요...기대하며 응원합니다!!!!!

  3.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6.05 21:16 신고

    아래 금새라도 날릴것같은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새파란하늘은 그림일까요?
    네개다 제목과 어울리네요.
    무엇으로 결정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전...
    아래 새파란 하늘과 흰꽃잎들이 있는 표지에 한표입니다~
    무엇이되었든 "슬픔을 썼으나 기쁨이되는 책이 될것"이라 믿습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6.10 19:52 신고

      날아갈 것 같은 벚꽃은 디자인 하는 간사님이 한 땀 한 땀 그리신 거라네요. 그래서 결국 그 그림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저도 믿어요! ^^ 제게도, 선생님께도 슬픔을 오롯이 마주하고 기쁨을 만나는 여정이 될 것임을요.

난생처음 5월을 살아보는 것처럼 한껏 누리고 있다. 

집 안팎으로 꽃잔치다.

5월 1일 결혼기념일로 시작하여, 어버이날, 스승의 날, 남편 생일까지...

탁자 위에 꽃이 떨어진 적이 없다.

일찍 시드는 꽃이 있는가 하면 모두 시들었는데 혼자 청청한 녀석도 있다.

이런 애들은 주방 창가로 옮겨져 새로운 기쁨으로 살아남는다.

 

빨래 널다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면 산딸나무의 향연이다.

비 그친 오후라 초록과 흰색의 대비가 더 뚜렷하다.

초록은 더 싱그럽고 하양은 더 하얗다. 

 

슬리퍼 끌고 달려가 호박 하나 사 올 수 있는 가게가 없다. 

길 건너에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있지만 걸어서 장을 봐 올 수는 없다.

이 구석 저 구석 동네 쑤시고 다니며 걷다 발견한 농협 마트가 있다.

장도 보고 산책도 할 요량으로 백팩에 책 한 권 달랑 넣어 매고 나간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마트에 도착하면 지고 갈 만큼의 장을 봐서 돌아온다.

등에 한 짐 지고, 대파는 손에 들고 또 발길 닿는대로 걷는다.

참새가 방앗간, 정신실이 조용한 공원을 못 지나치지.

오이, 후추통, 두부 사이 끼인 책을 꺼내 앉아 몇 줄 읽으면

바람 소리, 새소리가 방해를 한다. 

 

찬란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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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6.01 13:52 신고

    5월의 푸르름을 보며 "찬란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순간이 아직도기억나요. 20살때였지요. 해방촌이란 곳, 버스정류장!
    그후에는 찬란하다고 느낀적이 있었던가..싶습니다.
    인생은 50부터라고 누가그랬을까요.
    맞는말일까 시험해보는중입니다.
    지금부터 찬란한인생 되보려구요.

    • BlogIcon larinari 2021.06.01 21:47 신고

      네, 그리 되실 거예요. 우리 이렇게 진실하게 자신을 마주하려 애쓰는 시간을 통해 더욱 찬란한 현재를 누리게 될 거예요. 선생님, 6주간 그림 속에 오롯이 머물며 선생님 안의 찬란함을 발견하실 수 있길 바래요. 토요일마다 그쪽으로 기도를 보내고 있어요 :)

생선요리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다. "나는 생선 비린내에 취약해. 나는 비린내 나는 생선은 잘 못 먹어."라는 생각과 닿는다. 일찌감치 깨달았다. 이것은 주입된 취향이다. 아버지는 비린내 나는 생선을 싫어했고, 엄마는 아버지의 취향을 성경 말씀처럼 떠받들고 살았다. 어릴 적에 집에서 먹은 유일한 생선은 박대였다. 것도 기름에 굽는 일은 없었다. 석쇠에 끼워 연탄에 굽든지, 조림을 하든지. 아버지가 드시는 유일한 생선이었다. 평안도 출신 아버지가 충청도(전라도에 가까운) 출신 엄마 덕에 그나마 친해진 생선 아닐까. 이유는 단 하나, 비린내가 나지 않아서.

 

아버지 계실 때도 먹었던가? 자라면서 엄마가 손수 손질한 조기는 참 많이 먹었다. 엄마만의 조기 손질 노하우도 있었고. 무엇보다 채윤 현승이 어릴 적에 엄마 집에 가면 손수 손질한 걸 손수 발라서 아이들 밥 위에 하나 씩 얹어주셨다. 아이들은 조기구이를 좋아한다. 조기구이에 맛을 들인 건 외할머니통해서다. 조기 굽는 냄새와 함께 살을 발라주던 늙은 손, "이쁜내미~ 복덩어리~" 하고 부르는 목소리. 채윤 현승이가 기억했으면 하는 우리 엄마 모습이다. 채윤 현승이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이 아니라 조기 구워 밥상 차려주던 그 시절 외할머니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환기가 잘 되지 않았던 주택에서, 늙은 엄마가 앞치마를 두르고 조기를 구웠다. 우리 네 식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기구이 냄새와 함께 엄마가 튀어나왔다.  "아이고, 울 애기 왔네, 울 애기들 왔어! 채윤아아, 현성아아~ 아고 이쁜내미, 복덩어리!"

 

어느 저녁 한참 조기를 구워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채윤이인지, 현승이인지가 그랬다. "이 냄새를 맡으면 흑석동이 생각나." 흑석동은 엄마 집인데, 아마 외할머니보다는 외숙모 밥으로 떠올릴 것이다.

 

화요일에는 오후로, 밤으로 줌 모임이 있는데 강의 틈새 저녁 시간에 바쁘게 반찬을 만드는 나를 본다. 여유 있는 다른 날도 있는데, 굳이 화요일 저녁에 그러고 있다. 화요일 줌 강의는 꿈모임인데, 꿈은 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떤 기억이 떠오르고, 그리움이 밀려오고, 모니터 화면의 얼굴 하나하나가 아프게 가슴으로 파고든다. 연결되어 있구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구나! 그런 마음으로 끝이 난다. 이렇듯 깊은 곳이 건드려지고 끝나면 다른 무엇이 아니라 고요한 마음으로 저녁 준비를 하게 되는 게 희한하다. 

 

조기를 굽고, 비엔나 소시지 김치 볶음을 하고, 어묵 볶음도 했다. 학교 마치고 운동을 하고 들어온 현승이가 "와, 이건 무슨 냄새? 이 맛있는 냄새... 와아, 와아... 엄마 냄새가 엘리베이터까지 나." 한다. 집안 가득한 비린내, 김치 냄새, 졸은 간장 냄새. 냄새가 난다. 냄새는 난다. <냄새는 난다>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고 꽂혀 잠시 덕질을 했던 이병헌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멜로가 체질>에서도 같은 제목의 노래가 한 곡 나온다. 여기서 냄새는 방귀 냄새다. 생선 굽는 냄새, 방귀 냄새. 생활의 냄새다. 그러고 보면 어느 때부턴가 생선 굽는 비린내를 즐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집안 가득한 비린내, 비린내와 함께 미세먼지도 엉켜 떠다니겠지. 이게 삶이지. 살아있는 한 냄새는 난다. 냄새는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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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을 등지고 앉은 내게 채윤이가 말했다. "엄마, 해가 나오고 있는 거 알아?" 채윤이는 주방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환해진다. 해가 질 시간인데 환해진다. "밥 먹고 한 바퀴 돌고 올까?" "그래" 잠깐 얼굴을 보여준 해가 이내 지고 어두워졌다. 늦은 밤 산책을 나갔다.

일명 '남의 아파트 돌아다니기'로 밤 산책 콘셉트를 정했다. 이 동네, 오래된 여러 단지가 모여 있어서 좋은 점이 있다. 키가 큰 나무들이 많고, 나무 사이사이 새가 많고, 그 나무 아래를 걷는 즐거움이다. 온종일 내린 비에 젖은 큰 나무 사이를 걷는다. 개코 채윤이가 그런다. "아, 이 냄새! 수련회에서 집회 마치고 나왔을 때 나는 냄새. 이 냄새 맡으며 숙소로 가서 치킨 먹을 시간이야! " 나도 아는 그 냄새를 채윤이가 느낀다니! "글치, 글치. 수련회 중에 하루는 꼭 비가 오지. 비가 그친 다음에 나는 숲의 냄새!" 남의 아파트 캄캄한 둘레길을 스마트폰 조명을 의지해서 걷는데 "어, 이건 천로역정 마지막 코스 느낌인데!" 한다.

수련회의 추억을 걷다 넓은 길로 나왔는데, "엄마, 나 쫑알쫑알거려도 돼?" 하더니 대답 필요없는 말을 쏟아낸다. 친구 이야기,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저렇게 어렵다는 이야기. 문득 내 친구가 떠오른다. 요즘 자꾸 꿈에 등장하는 친구다. 중 3때 만나서 결혼 전까지 심하게 붙어 다녔던 친구. 친구는 엄마가 없고 나는 아버지가 없었다. 나는 그것 하나로 이 친구가 좋았는데, 돌아보면 정말 좋은 친구를 얻은 것이었다. 요즘 꿈에 자꾸 나와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내가 아니겠구나, 싶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가만히 들어주었고, 머리가 무척 좋았고(천재일지도 모른다. 한때 서로를 천재라고 생각했고,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KFC에서 치킨을 먹다 운 적도 있었네.), 시, 음악, 소설...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았고, 무엇보다 나와 치명적으로 다른 것이 자기 과시를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십 대 중반부터 20대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눈 사람이다. 수련회 가서 뜨거워져 돌아와서도 이 친구와 후기를 나눴다. 교회 안에서 어려운 얘기도 죄다 이 친구에게 쏟아냈다. 교회 안의 언어로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얻은 유익이 컸겠다. 말이 많지 않은 친구지만, 말의 영향력이 컸다. 둘만의 표현법이 있었고, 둘만의 언어 세계가 있었다. 친구와 끝없는 대화, 주고받는 편지가 준 가장 큰 선물은 교회 죽순이였던 나를 기독교 게토 언어에서 구원한 것 아닐까 싶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광화문 교보문고, 종로서적, 청계천 헌 책방에 가고. 고등학교 때 학교가 갈라졌는데 야자 끝나고 10시 반에 되어 잠깐이라도 얼굴 보고, 호떡 먹고 헤어졌다. 친구가 재수하던 시절에도 재수학원 앞 분식점에서, 음악다방에서 꼬박꼬박 만나 놀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학교가 달랐는데 시간표를 같이 짰다. 교양과목 시간표를 서로 잘 짜서 걔네 학교 우리 학교 오가며 같이 강의를 들었다. 직장 다닐 때도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났다. 내가 기타 치고 노래하면 그걸 가만히 앉아서 들어주었다. 같이 옷을 사서 바꿔 입기도 했다. 같이 하지 않은 게 없었던 것 같다. 싸울 법도 한데, 크고 작은 갈등의 기억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기억이 없는 것은 정말 특별한 그 친구의 성품 탓이다.

친구네 집에 자주 가서 자곤 했는데. 세 들어 살던 아주머니가 계셨다. 친구가 알려주길 그 아주머니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나이가 한참 많았는데... 40 정도 되었나? 멋지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 40에 편지를 주고받자! 그런 말 했었는데... 40이면 많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 40보다 한참 지난 나이가 되었다. 친구가 왜 자꾸 꿈에 나오는지 알 듯하다.

산책 길 끝에 종일 내린 비에 흠뻑 젖은 넝쿨 장미를 만났다. 쫑알쫑알 떠드는 채윤이의 친구들 같다고 느껴졌다. 찬란하다. 제 딴에는 구질구질하다고 느끼겠지만 20대 찬란한 날들의 사랑하고 미워하는 친구들 이야기. 나의 20대도 찬란했었지. 그 친구가 있어서 특별히 찬란했다는 것이 문득 깨달아진다.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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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버님 10주기네.
6월 7일이면 아버님 10주기다.
지난 5월 9일은 한솔이 10주기라서, 한솔이 생각을 많이 했다.

나의 래리 크랩이 2월 28일에 이 땅의 생을 마감하고 떠나셨다.
4월 18일엔 나의 마르바 던이 세상을 떠나셨다.
래리 크랩과 마르바 던의 소식을 듣고 턱 가슴이 막혔지만,
어떤 추모의 시간도 가지질 못했다.

엄마 돌아가시고 쓴 애도일기를 책으로 엮는 작업 막바지에 있다.
순간순간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싶다.
어느 때보다 가눌 수 없는 그리움, 보고싶음으로 타나토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2주기이다.
그림에 빠진 채윤이가 오래 공들여 그린 그림을 어젯밤 완성하여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저녁 먹고 오랜만에 남편의 기타 반주에 맞춰 찬송 몇 곡을 불렀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 하구나,
험한 시험 물 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찬송이 자꾸 튀어 나왔다.

어느 수요예배 전에 아버지가 교회 피아노로 불러서 '험한 시험 물 속에서'를 쳐보라고 했었다.
말도 안 되게 쳤는데 아버지는 좋아했던 것 같다.
절대 내색은 안 하던 아버지였지만.
처음으로 예배 반주를 했었다. 이게 왜 갑자기 생각이 나지?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성도들 내가 올 줄 기다리고 있겠네.
저희들과 한 소리로 찬송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주를 뵈오리.



찬송 부르면서 모든 이들을 떠올렸다.
그 모든 그립고 고마운 분들 만날 날이 있으리.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죽음을 사랑하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한솔이, 아버님, 래리 크랩, 마르바 던, 엄마, 아부지.


  1. 2021.05.26 08:4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5.28 08:37 신고

      짧게 남겨주셨는데 여운이 길고...
      위로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팥밥을 했다.
맛있다.
한 그릇 먹고, 한 주걱 더 먹고, 또 한 주걱 더 먹고... 맛있다.
그런데 밥이 죄다 목과 가슴 사이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내려가질 않는다.
엄마가 보고싶어서 팥밥을 했는데
팥밥을 먹으니 엄마가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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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5.23 11:29 신고

    에구구. 선생님의 글을 보니 내엄마가 생각나서 잠깐 목이 매이네요. 엄마잃은슬픔은 연습이 안되는것이겠지요?

    • BlogIcon larinari 2021.05.23 20:32 신고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오랜 시간 연습한다고 했는데, 그게 연습일 뿐이네요. 오늘 여기 함께 계실 때 충분히 미워하고, 충분히 사랑하는 방법 밖에 없나봐요.

 

야아, 이거 신발이 왤케 귀엽냐.
꼭 신고 도망가게 생겼네.
안 되겠다. 숨켜놔야겠다.

 


저렇게 혼잣말을 크게 하며 들고 다니더니 소파 뒤에 놓았다. (밖에서 신었던 신발인데...) 소파 밑에 숨기려 했나 봄. 둔한 줄 알았는데 솨롸있네, 김종필. 애들도 다 컸겠다, 날개옷만 찾으면 도망가야지, 하고 있는데. 그걸 눈치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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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5.23 11:32 신고

    ㅎㅎㅎㅎㅎ도망가고 싶은(??)순간들이 있지요. 신발이 없어서 도망갈수없는건 아닌데요..^^;

    • BlogIcon larinari 2021.05.23 20:34 신고

      댓글 반응이 메마른 공간에 오셔서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네요! ^^ 맞아요. 신발 문제가 아니죠. 도망가고 싶은 마음보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쬐금 더 큰 것고 같고요.

      그나저나 어제 첫 시간이 어떠셨을까, 궁금해요. 글로 그림으로... 마음의 여정 오롯이 가시는 선생님 응원하고, 지켜보는 것으로 저도 힘을 얻어요.

 

 

붉은 커피를 내린다.

아니다.

김칫국물...

김치말이 국수를 위해 한 번 걸러내야 하는데

베보자기는 없고.

천으로 만든 커피 필터는 있지.

안 쓰는 거지.

멜리타 드리퍼로 향긋하게 내려봤다.

(서버는 칼리타)

고춧가루 싹 걸러져 맑고 투명해졌다.

산미가 뛰어나다.

깔끔하고 개운한 김치말이 국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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