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없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남편이 한 번씩 특별 새벽기도를 도모할 때는 나름 의미가 있어서(또는 받은 은혜가 있어서)이다. 신년 새벽기도를 한다고 했다. 전도사님과 단둘이 나가서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주제는 "해피 앤딩을 위한 여섯 개의 메모"란다. 교인 평균 연령이 나보다 딱 10년이 높은 교회이다. 새로 등록한 젊은 부부들을 제외하고 남자 교우 중 남편은 거의 제일 젊은 축이다. 이력으로나 성향으로나 청년 · 젊은 부부 목회에 최적화된 목사라 생각했는데, 인생이 알 수 없듯 목회자의 길도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 지금 여기를 받아들인 남편은 은퇴 이후의 삶, 그리고 '좋은 죽음을 위한 좋은 삶'에 꽂혀 있었다. 남편이 말하는 해피 앤딩은 단순한 죽음이 아님을 안다.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현재이라는 뜻이다. 실존적 신앙은 실존적 죽음을 온전히 믿는 것이라는 것을 남편과 수도 없이 얘기했었다.

 

'해피 앤딩'이란 단어에 마음 머물러 신년 기도회에 끌렸다.  "J 전도사와 둘이만 나가서 할 거야." 이 말도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수요 기도회 할 때마다 "당신 와서 찬양 인도할래?" 먹히지 않을 말을 한 번씩 던지던 기억도 나서 "내가 새벽기도 찬양인도할까?" 했다. 옆에 있던 현승이는 작년 신년 새벽기도회 때 ppt를 맡아 개근하고, 아침에 먹던 해장국의 맛, 집에 와 2차로 자는 달콤한 잠의 맛을 떠올리며 "아빠, 나도 갈래." 했다. 채윤이는 우리 교회 교인도 아니지만, 엄마가 오랜만에 하는 찬양인도니 반주자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반주자 말고 일당 쳐주는 반주 알바로 섭외했다. 

 

월, 화, 수 3일 기도회 하고 폭설과 함께 한파였다. 이사한 우리 집은 교회와 꽤 멀어졌고,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 있다. 걱정하시던 운영위에서 목, 금, 토 새벽기도를 취소하고 한 주 연기하여 다시 월, 화, 수로 진행하기로. 날수로는 일주일이지만 체감은 2주의 새벽기도였다. 얼마만의 찬양인도인가. 텅 빈 교회당에서 방송용도 아니고 오프라인 용도 아닌 청중을 가늠할 수 없는 찬양을 했다. 음정 틀려, 박자 틀려, 선곡 구려. 채윤 현승에게 구박받으며 하루하루 날짜 지우듯 지나며 새벽 기도를 마쳤다. 

 

좋았다!

 

내 인생 마지막 특새의 기억이 끔찍하다. 그 특새에서 여러 번 불렀던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기를" 이 찬양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그 2,3년의 특새, 수요기도회가 혼재되어 고통으로 남아 있다. 방언 기도를 받기 위한 특별 기도회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평신도에서 갑자기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 강요 당하고 감시 당하는 새벽기도는 고통이었다. 공교롭게도 내 인생에서 깊은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가장 절절할 때였기도 하다. 아마 한국 교회에 대한 소망의 마지막 빛이 꺼져버린 나날이었지 싶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지만, 얼마 안 가서 깨달았다. 내 마음이 캄캄해졌다고, 내 안의 소망이 무너졌다고 그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내 마음이 가장 캄캄할 때 내 하나님은 가장 환하게 다가오신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내게 하나님을 보여주던 지도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나의 하나님까지 망하시진 않는다는 것도. 새벽기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심지어 남편이 목회자가 된 탓이 아니라는 것도.

 

한 주, 아니 두 주간, 오전에 줌 강의 있는 날에 새벽기도 마치고 와서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오후 4시까지 달려야 하는 날이 있었다. 몸은 한 없이 피곤했지만 좋았다. 음정 틀려, 박자 놓쳐, 선곡 구린 찬양도 나는 좋았다. 많은 청중 염두에 두지 않았고, 매일 한 분 정도의 교우를 생각했다. 그분이 이 찬양으로 힘내시면 좋겠다, 기도할 용기 내시면 좋겠다, 이 정도의 바람밖에 없었다. 내 마음에 품은 그분이 누군지 그분 자신도 세상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좋았다. '해피 앤딩을 위한 여섯 개의 메모'로 이어지는 남편의 설교도 좋았다. 죽음을 등에 짊어지는 삶이 아니라 앞으로 끌어 안는 삶을 살겠다는 용기는 삶에의 열정이 되었다. 20여 분의 기도 시간이 좋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막막한 2021년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오래전 그날, 트라우마로 남은 특새며 새벽기도와 화해하고, 그 시절 사람들과 화해하고, 내 하나님과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었다. 자발적으로 하는 게 짱이다!

 

 

 

 

 

걸어서 장 보러 가는 곳이 이마트 트레이더스인 상황. 걸어가서 우유나 콜드쥬스 1+1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서 덜렁덜렁 들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밀리고 밀리고 또 밀리는 주차장 쪽이 아니라 1층 출입구로 슬렁슬렁 걸어 들어가 고기 한 팩 딱 사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건 뭐 올림픽공원이 자기 앞마당이라는 올림픽아파트 사는 친구 안 부러운 일이다. 한 번씩 마음먹고 가서 몰아서 장 봐야 했던 곳, 웬만하면 10만 원 단위로 카드를 긁게 되는 곳 아닌가. 고기 좋아하는, 한참 키가 크는 중(이라고 믿고 싶은)인 현승이 때문이라도 한 번씩 꼭 들러줘야 했던 곳이 코앞에 있다. 

 

등심 안심도 아니고, 척아이롤도 아니고 '탑블레이드'라는 고기가 있다. 트레이더스 매장 통틀어 가장 저렴하다. 생긴 건 부챗살이다. 꼬맹이 적 한때 잠깐 꽂혔던 그 팽이 탑블레이드가 고기로 변신하여 열아홉 현승이 앞에 나타날 줄이야. 잘만 구우면 아주 감동적인 스테이크가 된다. 피가 뚝뚝 떨어져도 좋다!는 식으로 엄마, 레어! 레어! 알지? 노래를 부른다. 올리브유와 소금, 로즈메리나 오레가노 같은 아무 허브에 재웠다가 버터 잔뜩 녹여 막막 구워서 꺼낸다. 그 팬에 양파를 비롯한 야채를 익히고, 익히는 동안 힘줄 부위 잘라내고 고기를 썬다. 야채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뜨겁게 달군 가운데에 다시 고기를 모셔서 내주면 좋아서 환장을 하신다.

 

 

 

다 좋았는데, 누나 없이 독식하는 것도 좋고, 운동 다녀와서 배고픈 상태도 딱이었고, 다 좋았는데 파프리카가 삐꾸다. 현승이는 음식의 식감과 향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기준은 상당히 개인적이다. 파프리카는 생으로 마요네즈를 찍어 먹기에 적절하지 굽는 것은 안 된다고. 향이 너무 강해서 고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심지어 파프리카 근처에에서 구워진 야채까지도 오염이 되었다고. 먹어보지도 않고 일단 저렇게 한쪽으로 가지런히 몰아놓았다. 다음부턴 안 그럴게. 파프리카 따위를 탑블레이드에 끼워 팔지 않을게. 

 

 

 

반쯤 먹었을 때 김치콩나물국을 내주면 캬아, 캬아, 해장국 먹는 아저씨 소리를 낸다. 엄지 두 개가 척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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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나님을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도다

_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연구소 2년차를 맞던 2020년을 새해 이 기도로 시작했다. 같은 노래를 새 마음 새 부대에 담아 2021년의 다시 불러야겠다 싶었다. 노래 가사에 온전히 마음과 몸을 맞추어 살고 싶다. 개인적인 삶은 물론 연구소를 일궈가는 마음도 딱 이것이다. 연구소 SNS에 올렸던 것 그대로 가져왔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억압하고 위장했던 감정을 만난다는 명목으로 허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내적 여정과 모든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와 벗님들이 진짜 감정을 만나는 일에 정진하여 오직 슬퍼할 것에 슬퍼하고 분노할 것에 분노하는 길을 가겠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며❞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의 환상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그 환상의 끝이 내 생각, 내 논리, 내 지성의 우월주의이며 결국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지금 여기 하나님의 현존에 머무르는, 치유하는 현존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제 존재 안에 이미 부어진 사랑을 믿으며 내주하시는 성령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겠습니다. 상담과 모든 여정 중에 만나는 벗님들 안에 이미 존재하는 치유의 힘을 믿으며 함께 걷겠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이름을 얻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연결되는 단 한 분을 소중히 대하겠습니다. 빠른 성장, 눈에 보이는 치유의 열매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지금 여기 치유하는 현존으로 계시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나음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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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치킨을 시키기로 했는데, 연습실 갔다 늦는다는 채윤이가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 먹을까, 했더니 그냥 셋이 먹어, 했다. "그럼 니 꺼 남겨놓을게. 와서 데워 먹어." 그런데 기프트콘으로 시킨 치킨이 예상과 달리 양이 적었고, 모두 배고팠고, 싹 먹어 치웠다. 먹는 것이 행복인 채윤이가 실망하면 어떡하지? 안절부절... 치킨 됐고, 라면 먹겠다는 말에 반색을 해서 '도착 10분 전에 알려줘. 엄마가 딱 끓여 놓을게!' 했다. 콩나물, 대파 팍팍 넣고 정성 다해서 시간 딱 맞춰 끓였다. 뭐라도 더 마음을 담고 싶어 심지어 파슬리 가루를 뿌렸다. (이건 정말 아니었는데... ㅡ.,ㅡ) 밥상을 받은 채윤이가 말했다.

 

"와아... 대박! 죄책감이야? 치킨 안 남긴 죄책감?"

 

"야아, 죄책감인지, 사랑인지 맛으로 느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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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 쪽으로 드라이브 나갔다 올까?" 아침 뉴스에서 본 얼어붙은 북한강 사진에 끌려서 던져봤다. 그냥 해본 말인데 혹한에 신년 새벽기도 취소하고 마음이 허해진 남편이 냉큼 붙들었다. 

 

 

눈 세상, 얼어붙은 강물, 빈 가지 사이로 보이는 텅 빈 하늘. 와, 정말 좋았다. 사람 많이 모이는 쪽 말고 마재 성지 쪽으로 해서 강변으로 갔다. 누가 누가 어떻게 와서 거닐다 갔나, 사람 발자국 쫓는 재미도 좋지만! 와, 새 발자국 발견. 신발도 안 신고 얼음 위를 저러고 걸으면 얼마나 발이 시릴까? 

 

 

 

 

새 님께서 남 걱정 말고 아들 걱정이나 하란다. 발목도 차지 않는 스니커즈 양말을 신은 아들 말이다. 조금 걷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질 것 같다며 홀로 차로 돌아가버렸다.

 

 

 

 

언 강을 보더니 아빠와 딸이 뛰어 들어갔다. 물만 보면 요리 본능이 발동해서 물수제비를 뜨는 남자. 꽁꽁 언 강에서도 일단 물수제비를 뜨고 본다. 

 

 

 

 

아빠를 인력거 삼아 썰매를 타기.

동네 안쪽을 걷는데 연밭이 맨질맨질 매끄럽게 잘도 얼었다. 엇, 거기 놓인 두 대의 썰매를 발견. 역시나 경험주의자 부녀가 뛰어 들어가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상쾌도 한 기분에 젖었다. 

가만히 구경하다 사진이나 찍고 요걸로 어떻게 글을 쓸까, 머리나 돌리는 게 제일 편한데. 굳이 썰매를 타보라고. 나는 됐다고 하는데도 굳이 타보라고. 그래도 싫다고 하니 책상다리 하고 앉아만 있으라고. 못 이기는 척 내려가 앉았더니... 우후~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집을 나서서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와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파아란 하늘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아, 하늘이 있다! 나도 모르게 "와아, 파란 하늘이다. 하늘이 있어서..." 라고 했는데 세 식구의 귀 여섯 개가 모두 쫑긋하고 있는 느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말문이 딱 막혀 버렸다. 잠깐의 정적 후에 와하하하 비웃는 저 무리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하늘이 있어서, 하늘이 늘 여기 있어서... 

 

 

 

 

혹한의 한 가운데에서 두물머리 강변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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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부터 <시니어 매일성경>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이란 큰 제목을 걸고 중년 이후의 삶과 영성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요. 무엇이든 써야하는데 무엇을 쓸지, 쓰고 싶은지 모를 때면 꼭 혜성 같이 나타나셔서 "새로운 글을 써보라" 옆구리 찔러주시고 멍석 깔아주시는 iami님 덕입니다. 엄마 돌아가신 이후 죽음, 상실, 애도에 천착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죽음을 준비할 때라는 생각을 하는 중 제안을 해주셔서 도전해봅니다. 중년에 관한 책을 쓰고 있었는데 일단 손을 놓았고요. 생의 오후인 중년 이야기를 건너 뛰어 저녁놀이 물드는 시간, 황혼에 머물러 보려고요. 쓰려고 마음 먹으니 살아보지 않은 날을 언감생심 논할 수 있나 싶어요. 감 놔라 배 놔라, 편하게 가르치고 행세하고 싶어서 '부캐(최선생님)'를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럼 한 번 써보겠습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

 

 

내 나이 쉰셋,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이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고, 배울 것은 많은 세상이다. 새로운 일을 자주 시도하는 편이지만 좀처럼 설레는 일은 없다. 일은 물론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다. 새로운 사람 만나봐야 거기서 거기니 조금 서글프다. 헌데 오늘 예상치 못한 만남이 낯선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솜털 피부에 말랑한 언어를 가진, 호기심 가득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아니다. 여든을 넘긴 어르신! 눈꺼풀부터 턱밑 피부까지 중력의 법칙에 온전히 순응하는 근육이며, 검버섯이 핀 얼굴의 최 선생님이다. 한 학기 강의를 들었고, 종강하던 날엔 수강생들 다함께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전에 출간하신 책 개정판을 내시는데 도움을 드리기로 했고, 그 일로 오늘 처음 개인적으로 뵙게 된 것이다. 교정작업을 도와드리겠다고 한 것은 선생님과 만남의 끈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 것을 알지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자원하여 결정했다. 뭔가 끌림이 있었고, 그저 그 끌림에 따른 것인데 결론적으로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좋은 노인을 만나고 싶다

 

여든 넘기신 선생님을 뵙고 와서 이런 말 하는 것이 어쩐지 안 계셔도 조금 죄송하지만. 50대가 되고 갱년기를 통과하며 나는 늙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 좋은 노년을 준비하고 싶다. 그러자니 닮고 싶은 노인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그 지점에서 조금 좌절이 된다. “저런 노인은 되지 말아야지반면교사는 정말 흔하디 흔한데, 닮고 싶은 분은 없다.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는 갱년기 증상으로 시작하여 서서히 찾아오는 노화의 증상들을 경유한 후 종착지는 나이 드신 부모님 이야기이다. 부모님의 고집으로 속 터지는 이야기, 가여워서 더욱 답답한 이야기. “우리는 그렇게 늙지 말자!”로 대화가 끝나지만, 나는 어쩐지 자신이 없다. 그런 노인이 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노인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요즘은 노인이 눈에 들어온다. 학창시절에는 길을 가거나 버스 안에서 그렇게 또래 남학생만 보이더니, 청년 때는 그 나이대 남자만 보였다. 임신해서 다닐 때는 임산부만 눈에 띄어, 세상에 임산부가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아이 키울 때는 당연히 유아차 밀고 가는 엄마와 그 안의 아기가 어떤 차보다 크게 보였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은 내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에서도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내 나이대 남자 사람, 여자 사람이 아니라 노인들이 자꾸 보인다. 길에서 마주치는 불특정 노인은 물론이고, 뉴스에 등장하는 노인과 노인집단, 무엇보다 주변 친밀한 관계 안에서도 유독 노인을 바라보고 관찰하게 된다. 연세 드신 부모님 걱정과 겹쳐진 탓도 있지만, 나름대로 누구를 찾는 것이다. 좋은 노인을 만나고 싶다. 이것은 내 노년을 상상하며 미리 가불해 가져온 두려움과 닿아 있다.

 

"오늘 밥은 내가 살게요."

 

 강의에서 최 선생님을 뵙고 깜짝 놀랐다. 강사가 은퇴 교수님이신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연세 드신 분일 줄은 몰랐다. 어쩐지 실망스럽기도 했다. 느릿한 말투나 걸음걸이가 불안해 보였고, 강의 계획도 엉성했다. 모처럼 마음 먹고 시간과 돈을 투자한 건데, 성의 없는 강사를 만난 것 아닌가 싶었다. 예상과 다르지 않아, 엉성한 계획이나마 그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뭘 그렇게 잘 잊으셨다. 다음 시간에 나눠주겠노라 하셨던 자료는 까맣게 잊기 일쑤. 질문 하나에 답하시다 강의 주제를 벗어나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렇다. 강의가 강의 흐름같았다. 지적인 구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내게는 정말 불편한 방식이었다. 강의 계획에 따라 어떤 책을 읽어가면 전혀 다른 책 얘기를 하셨다. 그런데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강의 흐름이 편해졌다. 듣는 내 태도도 달라졌다. 노트북 앞에 놓고 토시 하나 빠트리지 않는 필기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귀로 듣고 손으로 바로 받아쳐서 강의를 한글파일로 만드는 기계라는 평을 들을 정도이다. 최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점점 기계 작동이 느슨해졌다. 어쩌다 보면 키보드에 올려놓은 손이 스르르 멈춰 서 있기 일쑤. 강의 후반에 가서는 제목만 쳐놓고 아예 손을 내리고 있었다.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저 흘러가게 되었다고나 할까.

 

필기할 내용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차라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워 담고 싶은 마음으로 필기하던 손을 내려놓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저 마음으로 들어 젖어 들고, 물드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모르겠다. 맞다, 선생님의 강의는 악착같이 필기하여 어디 써먹을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용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것도 아니며,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강의가 강물처럼 나를 스쳐 가도록 두는 게 좋았다. 들을 땐 좋았는데 돌아서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필기한 것도 없으니 손에 남는 것도 없는 강의가 종강이라니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도 내 마음과 같았는지, 선생님 모시고 식사로 인사 나누자고 했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가 오가고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최 선생님께서 오늘 밥은 내가 살게요.”라고 하셨다. 가당키나 한가. 여기저기서 아닙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요, 요란스럽더니 누군가 발 빠른 사람이 나가 계산을 해버렸다.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 뒤쪽에서 선생님과 함께 섰다가 혼잣말처럼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 사람들, 노인 배려 없네. 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밥 사는 거밖에 없는데. 그걸 빼앗네.” 바람처럼 지나가는 말의 가벼움에 놀랐다. 말씀의 내용도 그렇고. 여태 15주를 가르쳐주셨는데,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밥 사는 일밖에 없다고?

 

드물게 만난 호감 노인

 

그 말씀이 마음에 콕 와서 박혔다. 무슨 말씀이지? 그냥 하시는 말씀인가? 노인이지만 80대라는 연세가 무색한 분 아닌가. 아직 가르칠 게 있는 분, 할 수 있는 게 없으시다니. 진정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까? 혼잣말처럼 하셨으니 누구 들으라고 예의상 하신 말씀 같지는 않다. 한 학기 동안 들었던 물 흐르듯 하는 강의는 다 빠져나가고 그 한 문장이 남은 듯하다. 어쩐지 그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일부러 선생님 옆자리에 앉았다. 강의 들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호기심으로 선생님을 관찰했다. 호감 노인, 드물게 만난 호감 노인이었다. 내가 호감과 비호감을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가까이 다가가 앉고 싶은 사람,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은 호감. 저 멀리 나타나기만 해도 뒷걸음질 쳐지고, 되도록 피해가고 싶은 사람 비호감이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니 다가가 말 건네고 싶은 노인을 만난 건 거의 처음이다. 강의 때의 매력은 교수님으로서의 매력이지 한 인간, 한 노인은 아니었으니까. 그 순간 책 개정판 작업 얘기가 나왔고,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덥석 이 호감 노인을 붙들었다.

 

원고 받으러 간다는 명목으로 선생님 댁을 찾았다. 유난히 긴장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몇 주 전, 그 카페에서의 내 판단이 과연 옳았을까? 일을 도와드리는 문제가 아니라, 좋은 노인을 만났다는 판단 말이다. 개인적으로 만나 실망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게 걱정이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노인을 배려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식사비 계산하시도록 기꺼이 양보해드렸다. 일단 점수를 땄다. 하지만 실은 정말 점수를 딴 건지, 아닌지 잠시 확신이 흔들렸다. 지난 종강 식사 때처럼 얼른 나가서 계산하는 게 어르신 대접 아닐까. 예의 없다고 생각하시면 어떡하지? 라고 잠시 머릿속에 쓰던 소설이 사라진 것이, 식당을 나와 걷는데 어르신과 걷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파랗고 하얀 하늘과 구름, 그리고 적당히 부는 바람에 취해서 감탄하느라. “선생님, 하늘 구름 바람은 아주 그냥 잘 어울리는 삼합이에요.” 했더니 하하 웃으셨다. 말도 참 재밌게 한다며 삼합, 삼합하며 웃으셨다.

 

하늘 구름 바람 삼합과 함께 선생님의 웃음에 무장해제 되었다. 선생님 댁 현관에 들어설 때는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사무실과 주거공간이 알맞게 분리된 넓은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시야가 뻥 뚫린 경관의 상담실이 있고 복도를 통과하면 거실이다. 거실이야말로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는 탁 트인 하늘을 마주한다. 상담심리학 교수로 은퇴하신 선생님은 간간이 상담 일을 하시고, 마음에 관한 강의도 하신다. 혼자 사시는 넓은 집이 내담자를 받아들이는 선생님의 마음 같아 열린 공간 같이 느껴졌다. 용건인 선생님 책 얘기는 시작도 못하고 내 얘기를 털어놓아 버렸다. 묻지도 않으셨는데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선생님, 조금 오글거리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저는 제 나름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몸과 환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노년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거든요. 죄송해요, 선생님.

 

      (정색하시며) 뭐가요? 뭐가 죄송해요?

 

      (당황) 아, 선생님 앞에서 제가 노년이 가깝다느니 이런 말씀을 드려서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 앞이 어때서? 내가 늙은이라서? 정 선생 얘길 하는 거잖아요. 나는 내가 먹을 만큼 나이를 먹었고, 정 선생도 나이 먹는다는 얘긴데 그게 뭐? 노년이 몹쓸 시절도 아니고. 하하. 어려워하지 말아요. 하고 싶은 얘기 편하게 해요.

 

      실은 선생님, 저희 종강 식사 자리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이 남아 어쩐지 말씀을 나누고 싶었거든요. 왜 식사 사려고 하셨잖아요. 노인이 되면 밥 사는 일 밖에 할 게 없는데... 하신 말씀을 들었어요. 저희에게 융(Carl Jung) 심리학을 가르쳐 주셨고, 여전히 상담도 하고 계시잖아요.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신데 왜 그렇게 말씀하실까 싶었고요. 그 말씀이 신선하게 들렸어요. 아까 제가 노년이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던 것은 좋은 노년의 삶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구요, 그러기 위해서 준비할 것이 있다면 준비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데 배울 곳이 없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닮고 싶은 노년을 만나고 싶은데... 네, 뭐 그러던 중 선생님 말씀이 아주 크게 들렸어요. 밥 사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하하, 그 말이 정 선생에게 화두(話頭)가 되었구만. 내가 본의 아니게 공안(公案)을 던진 셈이고, 참구(參究)하던 정 선생을 오늘 우리집에까지 끌어들였네. 노인네가 어쩌다 흘린 말에 제대로 걸려들었어. 그나저나 나는 정 선생 나이 때 그런 생각 못했는데 어쩌다 그리 멀리 내다보는 고민을 해요.

 

그때 어디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 어디서 찬양이? 선생님의 휴대폰 벨 소리였다. , 그럼 선생님도 크리스천이신가. 그랬다. 이건 더 의외였다. 한 학기 만나면서 선생님이 종교가 있으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 종교를 가지셨다면 불교에 가까우실 분이었다. 조금 전에도 화두, 공안, 참구 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았나. 의외였지만 선생님은 권사님이셨다. 말씀으로는 선데이 크리스천이라고 하셨다. 더욱 마음이 편해져 내 얘기를 늘어놓았다.

 

노인이 할 일은 주도권을 내려놓는 것

 

      선생님, 저는 이제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상을 겪는데요. 노안이 오고, 오십견에서 시작하여 몸 여기저기가 망가지면서 좀 많이 놀랐어요. 대부분의 증상 앞에는 ‘퇴행성’이 붙더라고요. 그건 다른 말로 하면 고치는 병이 아니라고 들렸거든요. 오십견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오십견이 낫는다 해도 노화는 진행될 것이고,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받아들이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고요. 또래 친구들 만나면 대화의 주제가 이런 거거든요. 결론은 탄수화물을 끊고, 좋은 생각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자!예요. 신앙이 있는 친구들은 천국 소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하려 하기도 하죠. 그런데 어쩐지 저는 그럴수록 더욱 답답한 거예요. 젊을 때는 의지를 발동하고, 열정을 쏟아부으면 될 것 같은 희망이 있었죠. 실제로 되기도 했고요. 오십견 온 팔을 부여잡고 있으면 더는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리고 또 친구들 대화의 또 다른 주제는 ‘노년의 부모님’이거든요. 40년 한결같이 같은 문제로,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시는 부모님. 알코올 중독, 분노중독 아버지와 종교중독 어머니의 간극, 건강염려증에 애정결핍으로 늘 새로운 병원을 찾아 모셔야 하는 어머니도 계시고요. 늘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머니에게 수십 수백 번 합리적 설명을 해야 하거나, 참다 참다 화를 내고 죄책감이 휩싸이는 일상 같은 것들이요. (이 지점에서 선생님의 표정에 살짝 먹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눈치챘으나, 발동 걸린 말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친구들 20년 후에는 자기 엄마와 똑같아지겠구나! 실은 이 친구들도 만날 때마다 하는 얘기가 똑같거든요.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오빠도 책임을 감당하시라고 해,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해, 아예 전화를 받지 말어. 쏟아지는 조언과 충고도 비슷해요. 이래서 소용없고, 저래서 소용없어. 되돌아오는 반응도 똑같고요. 뫼비우스의 띠 같아요. 그리고 헤어지며 하는 말은 늘 ‘야야, 우리는 정말 잘 늙자’예요. 그런데 저는 정말 잘 늙기는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만 드네요.

 

      (엄마 미소 지으시며) 틀린 말이 없네. 맞아요. 갈수록 어디 아프냐고 묻는 것보다 안 아픈데 어디냐고 묻는 게 더 빨라요. 나도 노인네지만 노인이 되어 고착된 생각, 특히 신앙 같은 것들은 변화나 성장이 거의 불가능해요. 나부터도 이렇게 늙고 싶지 않았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저 조금 민망하고 오글거리지만, 선생님 뵈면서 닮고 싶은 어르신을 제대로 처음 만났다 싶고요. 그래서 책 작업이든 무엇이든 도와드리면서 배우고 싶어요.

 

      하하, 사람 잘못 봤는데. 나 고집쟁이 노인네야. 우리 아들한테 물어봐요. 융 심리학에서 말하잖아. 내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선생님이 나한테서 발견한 좋은 모습이 있다면 그건 선생님 안에 있는 것이에요. 무엇보다 좋은 노년을 꿈꾸는 마음을 잘 품고 지금처럼 배우고자 하면 정 선생이 그런 노인 될 거예요. 그렇게 되세요. 나는 아니에요.

 

      네, 선생님 그러면요, 이건 좀 답해주세요. ‘밥 사는 일밖에 할 것이 없다’고 하신 것은 어떻게,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이세요?

 

      꿈보다 해몽이네. 허허. 결국 나이 먹어 늙으면 알게 될 일, 미리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어요. 나도 내 나이 믿어지지 않고, 이렇게 늙은 나이, 말 안 듣는 몸이 나 같지 않고 힘들어요. 내가 나이롱이라 성경은 잘 모르지만, 노인에게 아주 적실한 말씀이 하나 있어요. 어디 나오더라. 베드로 얘기예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해주신 말씀일 거예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내 생각에 노인의 할 일은 주도권을 내려놓는 거예요. 무조건 주도권을 이양하는 것. 남이 누구든 나를 주도하도록 내어주어야 편하다니까. 가까이는 자식들에게 그렇고, 제자들에게 그러려고 해요. 나도 젊을 때는 무척 깐깐한 선생이었어요. 수퍼비전 줄 때는 울지 않았던 학생이 없었어. 지금은 내가 그렇게 해봐요. 누가 나를 만나러 오겠어.

 

유레카! 내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내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선생님께서 다 설명할 수도 없으시지만 그런 삶의 기쁨이 있다고 하셨다.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아는 행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때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책 작업을 하는 동안 베드로의 노년을 따르는 선생님의 노년을 많이 듣고 기록해야지 싶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유난히 보랏빛, 붉은빛의 오묘한 조합으로 아름다웠다.

 

      이 시간이면 소파에 앉아 해가 넘어가는 걸 봐요. 혼자 살기 때문에 참 쓸쓸한 시간이기도 해요. 내 인생의 시간이겠지. 아니다! 해가 넘어가고 노을이 물드는 시간은 정 선생의 시간이겠다. 나는 이제 밤이에요. 정 선생이 부럽네. 나는 5, 60대 늙음의 신호가 왔을 때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성공과 성취에 취해서 젊을 때 살던 그대로 살았지. 조금 더 일찍 노화를 받아들이고, 팔을 벌리는 방향으로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뭐, 그때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 지는 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 빛으로 생기는 저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팔을 펴는 연습하라고 오십견이 오는지도 몰라. 정 선생 강의 들을 때 보니까 어깨 힘주고 정신없이 노트북 두드려대던데. 그렇지, 나중엔 손을 놓더라고. 하하. 노화의 강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요. 이야, 오늘 노을 정말 예쁘네. 정 선생같이 예쁘네.

 

새벽으로부터 동이 트고 정오를 향해 높아지는 해, 그리고 오후가 되어 부드러워지는 빛과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인생 주기와 빗대어 한참 이야기 나눴다. 선생님은 당신의 시간은 밤이라고 했다. 영원한 잠이 들기 전 마지막 시간으로 정리가 된다고. 그러며 좋은 노년은 없다, 고 하셨다. 좋은 노년은 좋은 중년의 결과일 뿐이라고. 어둠이 내리기 전, 하루 중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인 이 시간을 겸허하게, 나 자신을 진실하게 대면하며 지내면 좋겠다고 하셨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셔서 아쉽다고. 앞으로 뵐 때마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 밤이 오기 전에 돌아봐야 할 진정한 나, 진정한 삶에 대해 얘기 나눠보자고 하셨다. 가슴이 뛴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지만, 남은 것은 늙음 뿐인 나날이라 생각했는데. 전에 느껴보지 못한 아주 고요한 새로운 설렘이다. 다음 만남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사하며 식탁을 바꿨다. 6인용이다. 바꿀 때도 되었었다. 특히 의자 두 개는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의자만 좀 편안한 걸로 바꿔야지 하고 있었다. 남편의 뜻이 확고했다. 바꾼다, 꼭 6인용으로 바꾼다. 4인용 식탁이 좁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식사하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유난히 많았는데, 이유 중 하나가 비좁은 식탁 때문이라는 진단이었다. 그랬다. 맛있는 걸 해서 맛있게 먹으며 얘기가 길어지다, 마음이 쩍쩍 갈라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넷이서 정말 이렇게 저렇게 얽혀 싸웠다. 부부가 투닥투닥, (어릴 적부터 늘 있던 일이지만 유난히 심각하게) 남매끼리 티격태격, 거기다 전에 없던 국지적도 등장했다. 모자가, 부녀가 서로 더는 못 봐주겠다는 식으로 부딪쳤다. 코로나 블루 현상일 것이다. 각자 자기 문제로 어려운데, 어려운 넷이 붙어 있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꼭 그 때문도 아니다.

 

 

갱년기 현상이기도 하다.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런 책을 함께 쓸 정도로 자신감 충만한 부부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이다. 다름이 선물이 되어 더욱 풍성한 일상을 살기도 하지만 달라서 어려운, 그 고통 또한 여전하다. 연인과 부부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사랑의 기술은 싸움의 기술이다,라고 강의에서 주장하는 바.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부부의 필살기이다. 양상이 조금 달라지긴 했다. 갱년기라고, 낯선 생애 주기를 살면서 에두르고 포장하는 기술력이 떨어졌다. 유치해졌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아 쫌, 다리 내리고 앉으라고. 좁다고. 옆으로 좀 가라고. 내 자리 여기까지 침범했다고!' 

 

갱년기, 그러니까 인생 전후반을 나누는 전환점이다. 식탁 자리싸움만은 아니다. 생애 전반 애써서 달려온 중년의 남녀가 인생 내리막길 앞에서 영적 현기증을 느낀다. 낯선 내적 갈등이다. 자신과의 새로운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을 자신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밖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가장 편하고 만만한 남편에게 싸움을 걸고 트집을 잡는다. 갱년기 유치한 부부갈등은 이런 것이다. 날씨 얘기하다가도 싸우고야 만다는 그런, 한창 좋을 때 말이다. 여기에 성인 자아를 찾아 어린 시절 자신과 부대끼고, 페미니스트로서 가부장제와 투쟁하는 딸 채윤이도 한몫했다.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아빠와, 어린 시절의 폭군 엄마와 붙게 되는 것이다. 현승이라고 잠잠할쏘냐. 엄마 중독자에서 벗어나 아빠와 가까워지고 싶은 사춘기 끝 현승이는 또 엄마와 싸운다. 글 몇 줄로 써보니 간단한데, 돌아보면 여러 번 폭풍에 휘말린 한 해였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게 다 팬데믹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합리적이고 어떤 면에서 과학적인 남편의 해결방법은 일단 공간을 넓히는 것이었다. 마주 앉는 식탁을 바꿔야 한다! '이삭의 우물' 교회 목사가 되어 붙든 이름이기도 한 '르호봇'을 내세웠다. 이삭이 우물로 인한 여러 번의 다툼이 끝에 마지막으로 판 우물의 이름이 르호봇이다. 르호봇은 '넓은 공간'이란 뜻이다. 넓어져야 한다. 넓어지지 않고는 다툼을 멈출 길이 없다. 마음이 당장 넓어지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나 요원한 일이다. 일단 남편의 뜻을 따랐고, 6인용 식탁을 샀고, 막상 들여놓으니 너무 길다 싶었지만 결국 좋은 선택이었다. 넓어졌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공간이 생기니 둘러앉은 마음들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고.

 

1월 1일 저녁 가족 송년 리추얼 'Big Family Day' 시간을 가졌다. 현승이까지 글을 쓸 수 있게 된 때부터 시작하여 10년이 훌쩍 넘은 가족 행사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그려보는 시간이다. 2020년의 기억으로 마인드맵을 그린다. 작년에 썼던 기도제목을 꺼내 읽어보고 거기 비추어 지난 일 년을 돌아본다. 한 해의 기도제목을 적는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보는 것이 아팠다. 여러 좋은 이유들을 대면서, 가족들을 찔러내는 내 말이 보이고 좁아터진 마음이 보여서. 어쩌다 이 찬양 얘기가 나왔는지 준비하면서 시와 그림의 <항해자>를 듣게 되었다.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소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의 항해에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내 삶의 항해에 방향을 잡아주시옵소서

 

어쩐지 2021년 인생의 항해를 다시 출발하는 느낌이다. 2020년, 가장 큰 사건은 엄마를 천국에 보내드린 일이다. 묘하게도 엄마를 애도하는 시간을 보내고, 억지로 그 글을 마침표를 찍고 난 하반기에 아버지가 새롭게 만나졌다. 아니 새로울 것은 없다. 긴 세월 부둥켜안고 울며 뒹굴었던 그 아버지이고, 그 이야기들이다. 아버지 부재에 붙들려 살아온 40여 년 인생이 엄마 떠난 자리에서 새롭게 보인 것 같다. 아버지 엄마가 다시 보이니 내가 다시 보인다. "아버지 없는데 엄마까지 죽었으니 나 정말 고아야! 누가 나 좀 돌봐줘." 평생 내 속에서 훌쩍거리던 아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미 어른이니 나이 든 부모님은 떠나시기 마련이지.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마음이다. 계시처럼 주어진 올해의 찬양이다.

 

 

 

 

 

주방에 비해 과한 크기라고 느껴져 불편했던 6인용 식탁이 갈수록 참 좋다. 내 취향과 내 방식으론 상상도 못할 해결 방식을 제시한 그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고맙다. 4인용은커녕 혼자나 겨우 앉을 찻상보다 작은 마음을 가진 엄마로 자주 다치면서도 또 다가와주고, 좋아해 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러고 보면 연구소를 찾아주는 분들에게도 같은 고마움이다. 식탁이 넓어져 무릎 부딪히는 일 없다고 좋은 날만 있으랴. 갈등 없는 환상 같은 나날만 펼쳐지랴. 네 식구가 자기 빛을 내고 자기답게 살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또 충돌하고 찌르고 상처도 날 터. 가족의 삶이고 인간의 길이니 이 항해를 다시 떠날 밖에. 2021년, 쉰셋에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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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중년의 ‘중(中)’은 가운데입니다. 인생 등반 한가운데 서 있으며 내려가는 삶이 시작입니다. 생의 오후로 가는 길목에는 생각지 못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 같지 않은 몸, 알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감, 100세 인생이라는 노령화 사회에서 아직도 살아가야 할 기나긴 날들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입니다.

중년의 ‘중(重)’은 무거움이기도 합니다. 중년의 위기는 도전이며 기회입니다. Carl Jung은 자신이 상담에서 만난 중년 이후 내담자의 문제는 모두 ‘영적’인 문제였다고 합니다. 중년의 숲을 지나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 쓰고, 읽고, 나눕니다. 글은 잘 못 쓰셔도 됩니다. 나다운 나로 생의 오후를 살고 싶은 ‘중년’을 느끼는 여성(나이 크게 괘념치 않으나 38세 이후 여성 권장)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중년 글쓰기 후에 나눠주신 후기 중 일부입니다.

❝평생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풀어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수용하고 용납해야 하는 입장에서 늘 살았다. 내게도 수용 받고 싶고, 용납받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끝이라는 게 아쉽다. 길을 걷는데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씀으로 비로소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 신실샘이 늘 말했던 글쓰기가 가장 주체적 행동이라는 것이 비로소 알아들어졌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1월 14일(목)~2월 25일(목) 오전 9시30분~12시(6주간, 2/11 설날 휴강)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4235-8020
+ 신청 링크 : https://bit.ly/3pH9S1X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생의 오후 시간 : 글로 길어 올리는 영성의 샘물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어머니 하나님을 찾아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참고도서 : <내 나이 마흔>, 안셀름 그륀, 성서와 함께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국민북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중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20210114~)

<생의 오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신청양식 입니다.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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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1.0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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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 산타 할아버지 루돌프 할머니가 되어 교회 아기들을 찾았다. 깜짝 방문이었다. 성탄절 이브 계획이었는데 이사로 정신이 없는 데다 '5인 이하 모임 금지' 지침에 주춤했다. 교회 성탄예배를 영상으로 드리는데 아가들이 등장했다. 영상으로 짧게 만나니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고, 뒤늦은 성탄 선물을 전하기로 했다. 실은 무엇보다 질투심의 발로! 영상 예배 드리면서 갑자기 남편이 아기들에게 스타가 되었다.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녀석이 "목사님 보고싶다"라고 하질 않나, 자기 아빠가 양복을 입고 나서면 "아빠 멋있다, 목사님 같아."라고 한다니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러다 사모님은 잊히고 말겠네, 위기감이 드는 것. 아가들 꼭 닮은 케이크를 찾아 주문하고, 한 명 한 명에게 카드를 썼다. 한 카드에 남편과 번갈아 한 줄씩 써서 완성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면 이렇게 신이 날까. 

 

예고 없이 들이닥쳐 깜짝 놀라게 하는 맛은 또 얼마나 짜릿한가. 주소만 들고 찾아간 집이라, 제대로 찾은 건가, 현관 앞에서 초인종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긴장하며 눌렀는데 안에서 들리는 소리 "누구세요?.... 어머, 목사님이야!" 우당탕탕탕. 엄마 아빠 어른들은 놀라고 당황하고 "아니, 웬일이세요.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 하는데 아가들은 어안이 벙벙. 목욕하러 들어갔다 얼른 내복 한 벌 다시 빼입고 현관으로 달려나온 친구도 있다. ㅎㅎ 사모님 손에 든 케이크에 눈이 간다. 자꾸 눈이 간다. 백일이 안 된 아기와 엄마 뱃속에서 태명으로 존재하는 아기까지 만나고 11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성탄절은 며칠 지났지만 새벽송을 돈 것 같다. 집집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찍고 돌아다닌 터라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남편 말마따나 나는 아기들만 만나면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다. 현관에서 짧게 만나고 나오는데 심장이 콩콩 뛴다. 엔돌핀 주사를 한 대 맞고 나오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은 그렇다. 그냥 생명의 에너지를 흘린다. 20여 년 아이들 음악치료를 했지만, 돌아보면 내가 치유되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오래 함께 한 시간 덕에 사람들이 치유되고 성장하여 온전해질 때 어떤 모습을 띠게 되는지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아이의 모습니다. 영성치유에서는 wonderful child, 신성한 내면 아이라고 한다. 장애 비장애 할 것 없이 아이들은 그냥 생명과 신성의 존재이다. 한 살 두 살 나이 먹고 자라 가며, 지구별에서 사는 날이 길어질수록 흐릿해져 갈 뿐이다. 나도, 연구소를 찾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런 생명 덩어리였다. 그것이 치유 가능성이다. 그런가 하면 생명이고 신비이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따스한 돌봄을 박탈당하는 세상, 얼마나 아픈가. 아기들은 정말 내게 기쁨이고, 가능성이고 아픔이다. 곁에 이렇게 귀여운 아기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명의 신비를, 세상에 대한 책무감을 일깨우니 말이다. 하룻 저녁 이벤트로 많이 행복했다. 행복한 만큼 기도한다. 우리 아가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안으로 오시되 서른 살의 성인이 아니라 아기로 오신 것. 얼마나 심장 뛰는 경이로움인가. 성탄절 찬송 중 '그 어린 주 예수'가 어릴 적부터 참 좋았다. 특히 3절은.

 

주 예수 내 곁에 가까이 계셔 그 한없는 사랑 늘 베푸시고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주 품 안에 안겨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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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둘에 대박이 난다는 얘길 들었다. 내 사주가 그렇단다. 임상 심리학 교수로 은퇴하신 선생님께서 취미 삼아 배운 역학으로 사주를 봐주셨다. "너는 진즉에 박사를 했어야 하는데..." 하시다가 "이제라도 해볼까 봐요" 하며 이 학교 저 학교 얘기를 하면 "추천할 곳이 없어." 하셨었다. 그런 얘기 끝에 "정 선생, 생년월일시 알아?" 하시더니 백지에 알 수 없는 한자를 쭉 쓰셨다. 다시 남편 생년월일시를 물으시고 또 이 얘기 저 얘기하시다 "남편하고 아주 잘 맞는구먼! 니가 지금 몇 살이야? 쉰둘에 활짝 펴겠다."라고 하셨다.

 

쉰둘의 한 해가 간다. '활짝 펴겠다'(정확하게 이 표현도 아니었던 것 같지만)를 내 방식대로 '대박이 난다'로 들었고, 바로 잊었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 한동안 4년 단위로 인생이 달라졌다. 직업, 전공, 연애, 실연, 결혼, 출산.... 4년 단위로 인생의 그래프가 꺾였다. 언젠가 한 번 꼽아보니 그랬다. 전공과 직업(본업)이 바뀌고 바뀌는 인생이다. 집도 계속 바뀌어 열두 번째 이사를 했으니 변화무쌍한 인생이다. 가끔 쉰둘에 정말 어떤 내 인생 한 방 터지는 것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쉰둘의 해 2020년, 엄마가 떠났다. 대박 사건이긴 하다. 설마 이걸로 내가 활짝 피어나겠는가.  대박 사건이 터져야 할 쉰둘에 팬더믹 세상을 사느라 '사건'이 일어날 여지가 없어져 버렸다.

 

사람 떠난 자리에서 비로소 그가 보인다. 엄마 떠난 자리에서 평생 알았던 엄마가 아닌 사람 '이옥금'이 보였다. 엄마 떠난 자리에서 엄마를 다시 보게 된 쉰둘의 한 해였다. 시간도 그럴 것이다. 도통 이름 붙여지지 않을 2020년의 낯선 시간은 지나고 나면 다시 보일 것이다. 그러니 쉰둘 2020년이 대박인지 한 해 두 해 지나며 두고 볼 일이고 아직 몇 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려 볼 일이다. 안팎으로 쉽지 않았던 2020년을 살아 냈다는 것, 엄마 따라 죽지 않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12월 31일을 맞았다는 것은 장하고 장한 일이다. 

 

읽고 쓰고 기도하며 살아 남았다. 쓰기의 흔적은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엄마 애도 일기는 출간 예정이라 비공개로 전환해 둔 상태) 알라딘 서점 통계를 보니 130여 권의 책을 구매했다. 선물한 책도 있으니 100여 권의 책을 읽었나 보다. 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애도'에 관한 책 외에는 읽히지 않았다. 읽기의 정상성을 회복한 후에도 어떤 편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몇 년의 경향이긴 하다. 리처드 로어, 이현주 목사, 앤서니 드 맬로, 이승우, 엔도 슈사쿠, 엘리 위젤 등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 저자들이다. 한 권의 책이 마음에 들면 그 저자의 전작을 읽는 습관이 있다. 올해의 저자는 마사 C. 너스바움과 앤 윌슨 섀프이다. 몇 년 전  『혐오와 수치심』로 만났던 마사 너스바움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만나기 시작했다. 더디게 읽히는 책이지만, 전작 독서가 될 때까지 만남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앤 윌슨 섀프의 『중독 사회』는 여성들의 치유 공동체를 일구며 사는 내 손에 들려진 지침서 같았다.

 

무엇보다 소중한 만남은 노르위치의 줄리안, 아빌라의 테레사, 시에나의 카타리나 중세 여성 신비가들을 원저로 만난 것이었다. 전에도 한두 번 들어 읽고 밑줄을 긋곤 했지만 만남이라 하긴 어려웠다. 그냥 어려웠다. 뜻은 알아 들었지만 다른 언어로 읽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아침마다 몇 페이지 씩 읽으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딱 하루 분량의 사랑이 한 챕터에 담겨 있었다. 『계시』와 『완덕의 길』은 말라가는 영혼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였다. 무언가 그리워 다시 손에 잡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 선생님과의 새로운 만남이었다. 젊은 날에 좋다고 읽었는데, 쉰둘에 다시 읽으니 책 속에 들어가 앉아 있게 된다. 

 

이렇듯 읽으며 살았고, 또 쓰며 힘을 얻었다.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치유 글쓰기 모임을 여러 번 가졌다. 쉰둘에 있을 거라던 대박사건이 이것이었을까. 이 시간은 누구보다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 떠난 빈자리에 서서 여성들의 글을 읽다 여성들과 함께 글을 썼다. 텅 빈 엄마의 자리가 꽉 채워진 것 같다. 아, 아니다. 엄마의 빈자리는 여전하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채워진 거지? 가득 찬 상실, 따스하게 이어진 고립이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 하나님'을 만났다. 아버지이며 동시에 어머니이신, 어머니이며 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만난 덕에 기도 시간이 얼마나 포근해졌는지. 쓰고 말하는 여성들과의 연결 덕에 내 생애 가장 큰 여자인 엄마 떠난 자리에서 '하나님 어머니'를 만났으니 쉰둘, 2020년은 대박이다. 

 

글쓰기 모임 후기들이다. 읽어도 읽어도 좋다.  

 

평생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풀어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수용하고 용납해야 하는 입장에서 늘 살았다. 나도 수용 받고 싶고, 용납받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호칭을 바꾸며 만난 하나님... 그간 만났던 하나님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봤다고 해야 할까? 6주간 글쓰기 역시 그렇다. 나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 처음에 가졌던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다 사라진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끝이라는 게 아쉽다. 길을 걷는데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씀으로 비로소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 신실 샘이 늘 말했던 글쓰기가 주체적 행동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들어졌다.❞.❞
나도 몰랐던 내 상처와 교만으로 정신없이 살았다. 내 안을 박박 긁어오며 살아오다가, 너무 힘들 때 우연처럼 이곳을 만났다. 하나님은 뜻하신 대로 이곳에 불러주신 것 같다. 다른 분들의 글, 용기를 보며 같이 깊이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마중물 같은 시간이었다.
이렇듯 깊게 털어놓은 게 처음이다. 6주 마치면서 나이스 한 끝을 만날 걸로 기대했다. 중년, 노년 가볍게 준비하겠지 싶었다. 오늘 마지막 시간 하나님 어머니에 대해 쓸 때 가슴에 통증이 왔다. 갑자기 부정적인 것들이 나와 마음이 무겁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새롭게 뛰어넘어야 할 벽으로 느껴진다. 갑갑하다. 이 벽을 어떻게 허물까, 숙제를 안고 끝나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울어서 쑥스럽다. 모임 마치고 나가면 눈과 코가 시뻘개서 딸들이 눈치를 본다. 이 시간에 너무 몰입되어 있었고, 전에 하지 못한 경험을 했다.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영역에 첫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다.

 

 

 

 

태어난 지 백일이 안 된 아이가 끙끙 몸을 뒤틀다 뒤집는 걸 보면서 놀라고 행복해 뒤집어졌던 기억. 현승이 성장을 보며 잊을 수 없던 순간이었다. 성장과 발달. 먹이고 씻기고 재웠을 뿐인데 세워 안으면 끄덕끄덕 하던 목에 힘이 들어가고, 천장만 보던 아이가 뒤집고, 혼자 앉고, 배밀이로 기동력을 장착하는 것, '엄므, 엄므'하고 부르는 것.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몸과 마음이 발달하듯 신앙과 영성도 발달단계가 있다. 애 둘 쯤 키우고 나면 말이 조금 늦는다고 안달할 일이 아니구나, 알게 된다. 개인차가 있지만 결국 말을 하고, 응가를 가리게 되더라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성장한다. 

 

유아세례 받았던 현승이가 2020년 송년주일에 입교를 했다. 아이의 신앙 발달의 변화가 블로그에 그대로 남아있다. 다섯 살 현승이는 무소부재 하시는 성령님께 총을 쏠까 고민했었다. 열다섯 살 현승이는 차별과 폭력을 그대로 두시는 하나님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열여섯 쯤 되었을 때, 사춘기의 정점에선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운운하는 엄마 아빠를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교회를 싫어라 했고, 늘 분노에 차 있었다. "나는 하나님 안 믿어. 아빠가 목사니까 교회는 안 빠지고 가는 거야." 차라리 이렇게 말할 때가 낫다. 말보다 찰나의 눈빛, 그 강렬함이라니! 그 냉소의 눈빛은 좌우에 날이 선 검이 되어 내 마음을 베어냈다. 아이들은 내 말이 아니라 삶을 보고 배운다. 교회를 향한 실망, 그 이상의 절망, 절망 그 이상의 냉소는 내가 가르친 것일지 모른다. 강요로 얻는 건 강요하는 그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반발심일 뿐임을 안다. 더는 혼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강압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엄마, 나 하나님께 실망했어."라고 말하면 "엄마도 가끔 그래."라고 공감해 줄 수도 있었다. 헌데 그 차가운 눈빛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목사 아들이니 교회는 빠지지 않고 가지만 하나님께는 가까이 가지 않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그 지점에선 심장이 툭 떨어지고 기도만 나왔다. 기도하기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기대는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신앙 발달,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났지... 이제는 제 몫이고, 그분과 현승이 둘 사이의 문제야, 하면서. 

 

2020년 송년주일에 현승이가 입교를 했다. 자발적인 입교다. 신앙고백서를 썼다. 혼자 쓰고 입교를 집례 하는 목사인 아빠에게 제출했다. 현승이를 안고 나란히 서서 유아세례 받던 2003년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17년 후 목사가 되어 현승이 입교 집례를 하게 될 줄이야. 현승이 신앙 고백문을 읽으며 여러 대목에서 울컥했다. 유아세례는 우리 부부의 선택이었지만 입교는 현승이 자신의 선택이다. 부족한 내 삶과 신앙으로 내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했다. 그런 마음으로 키우겠노라 다짐하며 유아세례를 선택했다. 입교는 아이이 몫이다. 내 삶과 신앙이 너무 큰 걸림돌이 되지 않길. 우리 아이들이 자기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에서. 

 

신앙고백_김현승

나는 작년 그리고 제 작년에 입교를 받을 상황이 되었고 받는 게 시기상 맞았지만 받지 않았다. 스스로 입교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믿음에 확신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의심할 부분이 조금도 없는 사람만 입교를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주일학교 다른 형, 누나, 동생이 입교를 받는 것이 조금 섣불러 보였고 어리석게 보였다. 이런 내가 이번에 입교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내가 아주 간단하면서 어려운 사실을 하나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확신과 의심에 관한 사실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에 대한 질문이 많이 있었다.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성경에 오점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결과적으로 아셨을 것인데 그렇다면 왜 굳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놓으셨을까? 가룟 유다는 왜 스스로 죽었을까 부끄러움 때문인가? 가룟 유다가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 아닌가? 이렇게 성경에 대한 질문, 약간은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하는 질문을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생길 때마다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처음에는 ‘엥’ 했지만 결국에는 ‘아’하고 이해가 되었다. 아빠랑 입교에 관해 얘기하던 어느 날 아빠가 내가 입교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고 그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백 프로 확신이 없어도 입교를 받는 것도 괜찮다고 말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오래 생각해봤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백 프로 확신이 있나? 아니다. 그럼 나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나? 맞다. 나는 확신이 없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많다. 성경에 대한 질문이 많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이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힘들 때 좌절될 때 결국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이 힘들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때, 유럽 여행을 가서 친구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 못 해 두려워할 때 결국 나는 하나님께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을 믿고 확신이 있다는 증거 같다. 나는 질문이 생기는 확신은 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말을 듣고 내 삶에서 하나님을 찾아보니 내가 하는 하나님, 성경에 대한 질문은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구나 싶었다. 내가 질문하는 이유는 못 믿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알고 싶어서 질문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고 믿는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다. 더 궁금하고 더 알고 싶다. 이번 입교 교육을 받고 입교, 세례에 대해 생각했던 기간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성령님! 총 조심하세욧

엄마! 엄마!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셔? 내가 어디를 가든 항상 옆에 계셔? 그럼~ 왜 옆에 항상 계셔? 성령 하나님이 우리 현승이 도와주려고 항상 옆에 계시지. 그러며~언, 내가 지금 옆에 총 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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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나, 폭력과 하나님

영화를 좋아하는 현승이는 금요일 밤엔 무조건 영화 한 편이다. ‘피아니스트(2002)’를 보고 나오더니 괜히 카펫을 발로 차고 심술이 난 것처럼 왔다 갔다 한다. 혼잣말인지 들으라는 말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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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버릴 거야. 각자 살릴 인형 골라가!"

정리하고, 그다음에 정리한 다음 또 정리하는 나날. 정리 대장 아빠가 인형 보따리를 풀었다. 한 번씩 "이번엔 싹 다 버리자" 해놓고도 막상 하나 씩 눈을 맞추면 또 집어넣게 된다. 이건 할아버지가 사주신 거, 이건 학교 바자회에서 처음으로 산 것, 내가 이렇게 하고 들고 왔잖아... 한 놈 한 놈이 다 사연이 있다. 가장 오래된 미키 미니 인형은 데이트 시절 남편에게 처음을 받은 선물이다. 철학과 4학년 학생 JP가 나름 큰돈 썼던 거고, 당시 미키 미니 덕질에 빠져 있던 나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더랬다. 그래서 못 버림. 테디 베어 네 마리는 채윤이 현승이 각각 두 마리씩 소유인데, 어쩌면 그렇게 어릴 적 채윤 현승을 꼭 닮았다. 특히 교복 치마에 츄리닝 바지까지 입은 테디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채윤 그 자체. 그래서 못 버림. 결국 하나도 못 버리고 깨끗이 빨아 각자 사연의 주인공들이 끌어안고 흩어졌다. 

 

그 와중에 구원받을 것인가, 버려질 것인가, 기로에 서서 아니 누워서 운명의 선택을 기다리는 애들을 놓고 잔인한 놀이 중인 열여덟 살 현승이. 양손에 주방 집게 하나 씩 들고 '인형 뽑기' 놀이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노트북 쳐다보고 있다 옆에서 저러는 열여덟 살 보고 녹았다. 이런 게 그렇게 좋더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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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 겨울, 성탄절을 꽉 채웠던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듣는다. 매년 성탄절마다 들었지만 귀와 마음을 온전히 열고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사연이 있다. 스물세 살 성탄절에 성가대에서 저 곡을 노래했고, 나는 알토 솔로를 맡았었다. 내가 부르기엔, 당시 몸담고 있던 성가대가 소화하기엔 어려운 곡이었다. 전적으로 지휘자의 열정과 실력으로 가능했던 연주였다. 지휘자님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나 하면, 솔리스트에게 각각 파트를 녹음해주었다. 나는 또 얼마나 열심이었나. 길지도 않은 레시타티브를 마르고 닳도록 부르며 연습했다. 마이마이에 끼우고 다니며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듣고 또 들었다. 듣고 불렀으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가사들이 입에서 줄줄 나온다. 

 

진정 나는 간직하리라
내게 있었던 축복의 날 축복의 말씀을
결코 나는 간직하리라

 

그해를 마지막으로 아름답고 찬란했던 젊은 날 신앙의 봄날이 갔다. 다음 해 새로운 담임 목사 청빙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며 함께 노래했던, 존경했던, 사랑했던 분들과 마음이 나뉘었고 처절한 실망 끝에 교회를 나왔다. '나온 것'으로 끝이었으면 좋으련만 아픈 기억은 내 마음에 들어 있으니 끌어안고 나온 셈이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사람 관계는 이후로 더 추락하였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어떤 그리움 너머 아픔이 되었다. 그 아름다웠던 시절, 그 노래들은 '합창'이었다. 함께 부르는 노래였다. 노래는 함께 불렀던 사람들과 분리하여 떠올릴 수 없는데, 음악은 영원하건만 내 마음속 사람들의 얼굴은 달라졌다. 존경했던 만큼 실망으로, 사랑했던 만큼 분노로 떠오르니 어쩔 것인가. 참으로 오랜 세월 저 노래를 마주하지 못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쩔 수 없이 CD에 손이 가곤 했지만, 귀로만 듣지 마음으로 들지는 못했다. 

내 맘 속에 누우소서
좋은 방은 아닙니다.

 

이사 준비와 정리로 분주하여 CD를 고를 여유없이 라디오가 선곡해주는 음악을 들으며 성탄 시즌을 보냈다. 어쩌자고 낮이나 밤이나 틀기만 하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나오는 것이냐. 아니, 그것만 들리는 것인가.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음악이 마음으로 들어온다. 마음으로 들어와 그립고 아픈데, 그리움 사이사이 낀 분노가 어디로 가고 없다. 어, 어딨지? 어디 갔지? 분노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슬픔과 연민이다. 그 좋은 나날들을 오롯한 그리움과 감사로 떠올릴 수 없는 우리 모두가 슬프고 안쓰럽니다. 심지어 조금 감사한 마음도 든다. 그토록 아름다운 성가대 찬양의 기억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 기억은 모두 내 것이니. 무엇보다 그때 부른 노래의 가사를 나는 내 영혼에 새겼다. 입으로 부르지 않았고 단지 마음으로 부르지도 않았다. 부르고 또 부르는 동안 내 존재 깊은 곳에 새겨진 것이 분명하다. 

 

주님이 다스린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히 주께 맡긴 마음
주께서 다스린다

 

'마음'에 대한 이 레시타티브들을 나는 얼마나 간절하게 읊조렸는가. 어둡고 비좁은 마음의 방, 그분이 거하시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방이지만 "내 맘 속에 누우소서" 노래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믿었다. "좋은 방은 아니지만" 반드시 찾아오시고 살아주실 것을 믿었다. 그럴수록 부끄러웠지만 그럴수록 더욱 믿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으니까. "주님이 다스린다 / 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 온전히 주께 맡긴 마음 / 주께서 다스린다" 그때 그 오라토리오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마음'을 생각했다. 비좁은 내 마음 때문에 힘겨웠고, 이 부끄러운 공간이지만 어쩐지 그분이 기꺼이 찾아와 주실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로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를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촉촉한 성탄절이다. 자꾸 눈물이 난다. 한껏 성장했으면서 자신이 성장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 '이만 하면 됐다, 나만큼만 하라고 해' 같은 자만심을 가질 수 없는 가난한 마음들에 고마워 눈물이 난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니 눈물이 난다. 지독히도 나를 혐오하며 확신 없이 사는 나를 구원해준 눈길들이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과 세상 때문에 눈물이 난다. 연결됨이 기뻐서 눈물이 나고 외로워서 눈물이 난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좋아서 눈물이 나고, 빛이 오셨는데 여전히 어두운 세상에 눈물이 난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좁고 어두운 내 마음이라 눈물 나고, 여전히 그곳으로 오시는 분을 사랑하기에 눈물이 난다. 빛으로 오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눈물이 난다. 

 

성탄절 아침에 블루투스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큰 화면으로 영상을 보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듣는다. 마음으로 듣는다. 

 

이제 참 빛을 보리로다
구원을 나타내리로다
내 구세주는 빛이시라
이방을 밝게 비추시나
허나 그들은 주님을 아직도 알지 못하도다
진정 참빛이시로다
사랑의 예수여

 

 

 

마음이 열리면 눈이 열리고, 눈이 열리면 귀가 열린다. 일상의 모든 일엔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있고,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한결 가벼워진다. 이미 잘 알고 있고, 늘 생각하고 있지만 열두 번째 이사로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삿짐 정리로 몸이 피곤한 것은 기본, 숨겨놓은 짐들이 죄 끌려 나오고 펼쳐지고 헤집어지는 것의 두려움도 마땅히 감당할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가벼워졌다. 마땅히 감당할 것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것을 멈추니 어차피 감당하지 못할 내 한계가 보이고, 쭈글한 내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고 자기 비하의 나락으로 떨어질 생각은 없다. 자기 연민에 빠진 불평이 줄고 '탓' 할 대상을 찾는 일도 심드렁해졌다. 탓할 대상은 결국 늘 하나님인데, 그분이 내 마음 가까이 느껴져 탓을 하기보단 "짐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바라봐 주시는 것"도 고마운 정도가 된다. 마음이 열려 여백이 조금 생기니 눈도 귀도 더 소중한 것에 열리는 것 같다. 

 

결혼 선물로 받은 액자가 있다. 당시 남편이 근무하던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하시던 장로님께서 손수 써주신 글이 담긴 액자이다. 이걸 선사해주신 장로님은 이미 천국으로 가셨고, 액자는 빛이 바래 그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정색하고 앉아 이 말씀을 묵상해 본 적이 없는데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그야말로 벽에 걸린 액자로 늘 거기 걸려 있는 말씀이 일상의 눈 맞춤으로 스며든 것일까. 아니, 가끔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 말씀을 읽어주곤 했다. 한자를 읽어주며 말씀의 뜻을 설명하기도 했다. 식탁에 앉아 아이들이 싸울 때, 맛있는 것이 없어서 투덜거리는 마음이 들 때 한 번씩 쳐다보면 마음에 새기는 말씀이었다. 이삿짐 정리하며 "식탁 위에 걸까?" 하는데 남편이 "굳이 걸어야 하나? 그냥 세워둬도 되잖아." 하며 커피장 빈 공간에 일단 세웠다. 

 

이사 다음 날,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정리하며 늦은 오후가 되었다. 주방 정리를 하는데 세워둔 액자 위로 또, 또 그림자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늘은 넘어가는 해가, 서쪽으로 스러지는 해가 주방 창틀을 가지고 하는 작품 활동.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고 말 작품이기에 멈추어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분이 보내시는 메시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멈추어 듣는다. "말씀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액자에 담긴 글이 말하는 것 너머, '창조의 책' 자연으로 말씀하시는 드넓고 신비한 그분의 존재를 느낀다. 당신, 여기 계시군요! 이 집에도 계시는군요! 아, 액자에 담긴 글도 다시 읽는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7:1) 한 번도 제대로 묵상해 본 적 없지만, 결혼 22년에 열두 번 이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오늘이 이 말씀에서 얻은 힘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얄팍한 정서적 위안이 아니라 존재 깊은 곳에서 끄덕여지는 긍정이다. 

 

잠시 머물렀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분주하게 손이 가는대로 정리하다 저녁 준비를 하러 주방에 섰다. 아, 주방 창문으로 들이닥친 일몰의 풍경이라니! 이건 뭐 환영의 인사다. 만나서 반갑다고, 같이 살게 되어 좋다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하는 진정성 담긴 인사 아니고 무엇이랴. 인사를 건네는 주체는...  모르겠다. 몰라도 괜찮다. 우주가 나서서 새 집에서의 일상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것을 충분히 느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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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2.29 20:23

    비밀댓글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모임이 '꿈 모임'인데, 올해는 한 번도 꾸려보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새해 시작을 꿈모임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치유와 성장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가는 모임입니다. 아무 준비 없이 와서 앉아만 있어도 내 마음과 영혼이 하는 말이 들리는 모임입니다. 심지어 "나는 꿈도 안 꾸는데요" 하는 분도 가능합니다. "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꿈에 메시지가 어딨어? 꿈이 다 개꿈이지." 논리와 합리성에 목숨 걸고 사는 분이라면 특히 대환영인데, 제가 좀 골치 아프긴 하겠죠. (우힛) 예수님이라면 돈 없는 자도 와서 값 없이 사라고 하셨을 텐데 그러진 못하네요. 온라인 모임입니다.

 

연구소의 포스터 담당 연구원은 포스터에 마음을 담을 줄 아는, 상징을 아는 타고나 '상처 입은 치유자'랍니다. 포스터 안에 담긴 모든 것이 그대로 다 치유의 메시지입니다. 저는 자꾸 들여다 보게 돼요.   

 

꿈과 영성생활 “밤에 온 러브레터”

‘꿈은 당신에게 배달된, 봉투 안에 든 편지’라고 탈무드에서 말합니다. 혹여 어떤 메시지가 든 편지라면 발신자는 누구이며,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크리스천의 꿈은 조금 다를까요? 뱀 꿈은 마귀의 시험에 들었다는 뜻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거나 미래를 예견하는 방법이 될까요?

프로이트(Sigmund Freud)라면 무의식의 억압된 욕구가 꿈의 발신자라 하고, 융(Carl Gustav Jung)이라면 자기 안의 신적인 자아 Self로부터 오는 것이라 합니다. 나쁜 꿈은 없고, 모든 꿈은 우리를 도우러 온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요. 여러 영성가들은 존재 중심에서 우리는 붙드는 사랑의 목소리, 그분이 발신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뱀 꿈이며, 악몽을 비롯한 모든 꿈은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됩니다. “너는 사랑받는 자이다”

작은 그룹에서 꿈 여정을 하면서 "당신은 불필요한 심리치료비 1만 달러를 벌었다"는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가짜 자기와 그 너머의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자기를 인식하는 눈이 생긴 사람에게 리처드 로어 신부가 하는 말인데요. 정직하게 꿈을 들여다보는 일은 심리상담 수십 회기의 효과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젯밤 꿈을 통해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집단여정에 초대합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2021년 1월 5일(화) ~ 3월 30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12주간)
+ 인원 : 6명 + 수강료 : 30만원
+ 신청 링크 : https://bit.ly/3r2Jxga
+ 문의 : 010-6209-0635

✔ 필독서 있습니다.
『꿈, 하나님의 잊혀진 언어』 존 A. 샌포드,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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