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머무르는 가족의 시간. 2022년 Big Family Day를 함께 했다. 해마다 1월 1일에 늦잠 자고 일어나 맛있는 것 먹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으며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그려보는 가족의 리츄얼이다. 교회 특새 한 주를 보내고 뒤늦게 게 시간을 가졌다. 특별 새벽기도, 시편 23편의 기도로 시작하는 2022년이다. 주제는 "부족함 없는 삶"

"부족함 없는 삶"

기도제목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것인데. 기도의 자리는 결핍의 존재만이 가 앉는 자리인데, 그 자리에 앉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선언하거나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소 역설이다. 십수 년 전, 어느 날 시편 23편 1절을 충격적으로 만났던 기억이 있다. 에니어그램 7유형을7 유형을 마주하며 죽음 같은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7 유형을 벗어날 수 없는 나, 7 유형이 저지르는 죄, 나의 죄 된 모습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 어간의 어느 새벽기도에서였던 것 같다. 아니면 카타콤 같았던 하남의 그 아파트 거실에서 묵상하던 시간이었던가.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be in want.”

시편 23편 1절의 영어 성경 버전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내 삶은 결핍 그 자체인데, 나는 이렇게 금이 갔고, 부서진 존재인데 이런 나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야 하냐고요. 저의 이 욕구들, 끝없는 욕구들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인데요!" 눈물 콧물 흘리던 중... I shall not be in want. 이 문장이 빨간 색의 볼드체로 훅 들어왔다. 결핍의 존재 그대로 그분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체험이었다.

그때 분명히 알아들었다. 밑 빠진 독을 가득 채우는 방법은 무얼 자꾸 들이붓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풍덩 빠지는 것임을. 잘 알아들었다. 자기혐오의 눈물이 많이 사라졌다. 알아들어서 끝이 아니고 알아들은 것을 살아내는 것이 진정 알아들음이기에 알아들음은 늘 새로운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문제는 너무도 자주 그것이 실패한다는 것이고. “이래도 니가 부족함이 없어? 이래도? 금 가고, 부서지고, 결핍된 주제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가 BGM처럼 깔려 있다. 가끔은 볼륨을 한껏 키우고 영혼을 뒤흔들기도 한다. 여지없이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온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be in want.” 2022년 신새벽. 이 말씀을 다시 알아듣는다. 십수 년 전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내게 부족함 없다, 고백하며 돌아섰을 때 그분이 이끄신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를 기대하건만,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be in want. 두 번 말하고, 세 번 반복하면서 그 자리에 머무른다. 다른 모든 말을 멈추고, 죽음의 골짜기를 빠져나갈 궁리도 멈추고 I shall not be in want. 밤이 가장 어두운 때 별이 가장 밝게 빛나는 것처럼, 내가 감각하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나 어쩌면 거기가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인지도 모른다. 내 몸과 정서적 감각이 영혼의 그것과 다른 길을 갈 때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누추함과 고통에 머무르는 것 밖에는 없다. 

맛있는 식사와 예쁜 케이크도 준비하지 못했고, 모두 조금 기운이 없고, 피곤한 채로 2022년 'Big Family Day'를 보냈다. 해마다 우리에겐 들뜨고 설레는 시간이었는데 전에 없이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진지했다. 현승이가 스무 살이 되었으니 모두 성인이다. 맛있는 케이크 때문에 기다려지는 'Big Family Day'의 시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족의 멈추는 시간을 누리는 것. 지난 일 년의 나,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리가 되었다. 가족들이 기도 제목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어쩐지 다 조금씩 아파서 기도를 하자니 눈물이 나는데, 그래서... 부족함이 없었다. 한 해의 일상, 또 많은 좌절과 부서짐으로 결핍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겠지만 우리의 영혼은 부족함 없는 현존을 살기를. 여호와의 집으로 돌아가 거하는 영혼의 감각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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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1.12 22:11 신고

    막내까지 성인이 된 가족모임.. 어떤 느낌일지 짐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딘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적어내는 일을 성실하게 해 내시는 언니에게 다시 배웁니다..

    • BlogIcon larinari 2022.01.13 07:45 신고

      초콜릿 녹여서 소보루빵에 얹어 먹는 것 같은, 그런 달달한 걸 해야겠다고... 나는 동생에게 다시 배움! ^^


  
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고,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
『기독교 강요』, 장 칼뱅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라면, 하나님 지식은 반드시 자기 지식과 닿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궁극적으로 ‘치유’입니다. 그런데 ‘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요? 내적 여정 세미나는 기독교 영성으로 접근하는 에니어그램을 통해 자기 지식과 하나님 지식을 머리만이 아닌 ‘체험’으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로 에니어그램 1단계를 시작하여 ‘내게 하나님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만나는 영성과정까지. 한 달에 하루씩 닷새의 시간 동안 전에 해보지 않은 질문, 전에 해보지 않은 기도의 여정을 걷습니다.
  

✔ 일정 : 평일(금요일), 주말(토요일) 과정이 있습니다.
         (평일 심화 과정 이상은 신청 상황에 따라 개설)
✔ 장소 : 온라인 줌(zoom), 단계별 2회기, 6시간
✔ 인원 : 12명   ✔  비용 : 12만 원(재수강 6만 원)  / 단계별
✔ 문의 : 010-4235-8020

 


[평일(금요일) 과정 일정과 신청]

- 기본 1 : 2월 4일, 11일(금) 10:00-13:00
          신청 http://bit.ly/3ajDfkQ
- 기본 2 : 3월 4일, 11일(금) 10:00-13:00
          신청 http://bit.ly/36BEA5E

[주말(토요일) 과정 일정과 신청]

- 기본 1 : 2월 5일, 12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6BEoTi
- 기본 2 : 3월 5일, 12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amjgSC
- 심화 1 : 4월 2일, 9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2YAzYbe
- 심화 2 : 5월 14일, 21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2NMwOz2
- 영성 : 6월 11일, 18일(토) 10:00-13:00
          신청 http://bit.ly/3cIGg0G

[하반기 일정]

⦁ 평일(금요일) 과정 일정

- 기본 1 : 8월 19일, 26일(금)
- 기본 2 : 9월 16일, 23일(금)
  
⦁ 주말(토요일) 과정 일정

- 기본 1 : 8월 20일, 27일(토)
- 기본 2 : 9월 17일, 24일(토)
- 심화 1 : 10월 22일, 29일(토)
- 심화 2 : 11월 19일, 26일(토)
- 영성 : 12월 10일, 17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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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가 큰길을 건너 개천에 다다라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JESUS LOVES YOU]이다.

전에 이 동네를 모르고 살았던 시절

[JESUS LOVES YOU]는 고속도로 끝 서울 톨게이트 다 왔다는 걸로 읽혔다.

이 동네를 알고부터 '개천 길 걷기 시작점'으로 읽는다.

오늘은 그냥 "JESUS LOVES YOU!"로 읽혔다.

특새로 은혜가 충만하여 영안이 밝아졌나.

그냥 JESUS LOVES YOU!로 읽혔다.

사랑한단 말이 사랑한단 말로 들렸다.

"제가 더요!"

대답했다.

특새로 은혜가 충만해져서.

 

걸을 만큼 걷고 돌아오는 길은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걸을 만큼 걷는 동안 해가 넘어가고, 지는 노을을 보았다.

고니인지, 흰 새가 낮게 나는 것도 보았다.

여러 번 조용히 탄성을 질렀다.

날이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보였다.

JESUS LOVES YOU!

대답했다.

네, 알아요. 사랑하는 것 알아요.

너무 크고 깊어서 가늠이 되지 않는 사랑, 신비라 부를게요.

네, 당신 사랑의 다른 이름, 신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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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렇게 피부도 몸도 안 좋다며 밀가루 음식을 끊어야겠다고 했다. 채윤 따님께서. 둘이 점심 먹어야 하는데 냉장고에 당장 먹을 것은 고사하고 식재료조차 변변치 않았다. 배달 음식으로 합의를 보고 서칭을 시작했다. 무슨 영화 볼까, 뭐 볼까, 찾다가 영화 한 편 볼 시간이 지나간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의 '음식' 버전 같다. 뭐 먹을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데... 하면서 밥 해서 먹고 설거지까지 해치울 시간 보내는...

"하아, 수제비 먹고 싶다!"

글루텐을 끊겠다는 채윤이의 뱃속 깊은 곳에서 나온 탄성이었다. 어느 분식점 메뉴를 보다 내지른 탄성. 이것 저것 다 패스하고 더는 먹을 것이 없다는 시점이었고. "김치 콩나물국 남은 거에 수제비 반죽 넣으면 바로 얼큰수제빈데...."라고 '삶은 요리'인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말했다. 채윤인 그걸 낚아챘고. "대박! 얼큰 수제비! 그거 먹을래."

백신 후유증으로 계속 누워 있기로 했던 나는 어느 새 일어나 수제비 반죽을 하고 있었고, 밀가루 끊기로 하고 까다롭게 배달 음식 메뉴 고르던 채윤이는 해맑게 설레는 상황. 그나마 나는 나이도 먹고 상황 파악이 되어 "이래도 되나... 밀가루 음식 끊겠다는 애한테 수제비를 먹여도 되나..." 정도는 생각했다. 뭔가 이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냉동실에 딱 한 마리 남은 전복을 함께 끓여 채윤이 그릇이 담아 주었다.

전복아, 전복아, 글루텐의 나쁜 성분, 비싼 니가 어떻게 해 줘. 해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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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7

 

 

어서 와, 잠깐만! 이거 한 10분 보면 끝나요.” 현관문 열어주시고 바로 다시 소파에 가 앉으시더니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뭔가 낯선 장면이다. 선생님과 드라마라... 드라마에 빠진 나의 () 현자(賢者)’ 최 선생님이라니! 한 손에 리모컨을 들고 넋을 놓고 계신 모습이 낯설고도 친근하여 웃음이 나왔다. “쯧쯧쯧,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어리석은 거지. 끝났네. 아아, 예고편 나오는구나. 잠깐만, 정 선생.” 그렇게 독백에 예고편까지 보시고 나의 최 선생님으로 돌아오셨다. 물론 표정은 아직 저 세상. 푹 빠지신 드라마는 몇 년 전에 방영한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나는 드라마는 못 봤지만, 작가인 노희경을 좋아한다. 포스터 이미지가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김혜자, 나문희, 윤여정, 신구... 내로라 하는 노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심심해. 너무 시간이 안 가!

 

     참! 당해야 알지, 암만, 암만(아직 드라마 속에 계심). 아이고, 정 선생. 내가 사람 앉혀놓고... 코로나로 어디 잘 나가질 못해서 심심하다니까 아들이 넷플릭슨지 뭔지를 연결해 줬어요. 그걸로 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말야. 노인네들 얘기라 보기 싫은데 또 궁금해서 보다 보니 끊을 수가 없네. 우습지?”

     보기 싫은데 다음 편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는 게 드라마의 묘미예요. 하하, 선생님 <디어 마이 프렌즈> 보시는 거죠? 재미있으세요?

     재미 없수다! 노인네 치매 걸리고 암 걸리는 얘기가 뭐 재밌어? , 이 드라마를 아네. 정 선생도 봤어요? 유명했었나 봐? 나야 노인네들 얘기니까 심심풀이로 보는 건데, 젊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보겠나?

     재미없어도 보는 젊은이가 있을 걸요. 헤헤. 선생님도 재미없는데 보시잖아요. 완전 재미없게 보시던데요. 화면으로 들어가셔서 대화도 하시던데, 재미없어서 그러셨죠? 저는 안 봤어요. 재미없어서. 헤헤.

     화면으로 들어가긴! 고현정인가, 하는 배우가 제 엄마랑 그렇게 싸우더니 암 걸린 엄마 보면서 제 뺨을 때리는 장면이 가슴 아파서 그랬지. 마침 그 장면에서 정 선생이 들어와서, 조금 더 본 거야.

     맞아요, 선생님. 재미없으신데 그냥 약간 가슴 아프고, 막막 공감되고 그래서 화면으로 들어갔다 나오신 거예요. 히히.

      어허, 지금 나 놀리는 거구나. 으이그, 그래. 노인네가 드라마에 빠져서 침 좀 흘렸다. 됐냐? 됐어?

     (함께 와하하하 웃는다.)

     그런데 선생님, 낯설긴 한데 참 좋아요. 드라마에 빠져 있으신 모습요. 인간적이시랄까요? 어쩐지 드라마와 선생님은 잘 어울리질 않잖아요. 헤헤.

     왜 아니야. 내가 평생 드라마는 담쌓고 살았지. 볼 시간이 있었어야지! 이제 좀 봐보려 해도 습관이 안 된 탓인지 안돼요. 집중도 안 되고. 그런데 코로나로 이 일 저 일 다 취소되고, 집으로 오던 상담도 줄고 하니 심심한 거야. 아들이 와서 넷플릭스에서 이거 봐바라, 저거 봐바라 하기에 보기 시작했더니 시간은 잘 가더라고. 심심해. 너무 시간이 안 가. 일없이 하루 보내려니 얼마나 지루한지 모르겠어요.

     아아... 선생님...

     불쌍한 눈으로 보지 마. 나는 복 받았지. 그동안은 뭐 심심하다, 어쩌다, 혼자 밥 먹는 게 쓸쓸하다 했지만, 늘 일이 있었잖우. 노인네들이 이러고 살아. 아하, 그래서 저 드라마가 재밌나보다. 노인네들이 친구가 있잖아. 심심할 겨를이 없는 노인네들이네.

     오호! 인정하셨어요. 재밌으시다고! 하하하.

     으이그, 증말. 그래, 재밌다, 재밌어. 좋아하는 얼굴 좀 보소. 장난꾸러기야. 드라마 잘 만들었어. 치매, , 황혼 이혼... 다 있을 법하게 얘기를 꾸며놨더만. 그나저나 정 선생도 봤어?

     아뇨, 저는 그 드라마 작가에 관심이 많아서요. 알고는 있었어요. 어쩐지 포스터가 인상 깊게 남아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떠세요? 선생님. 궁금해요. 현실적으로 그려진 노년의 이야기를 보시는 게요.

 

내가 최 선생님이 많이 편해졌나보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질문이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았었다. 치매, 요양병원, 독거노인의 쓸쓸함 같은 것은 민망하여 입에 올릴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어쩐지 이제 편하게 말이 나온다.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노인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는데 말이다.

 

나이 들수록 친구가 보험이래요

 

     에잇, 현실적이긴 뭐가 현실적이야. 판타지야!

     그래요? 리얼하게 그렸다는 평을 본 것 같은데요. 치매 와서 요양병원 가는 김혜자 씨 보고 펑펑 울었다는 글 읽은 것 같아서요. 아하, 장르가 판타지였어요? 몰랐네요.

     어라, 잘 속네. 이번엔 내가 이겼다! 허허. 장르가 판타지가 아니라 드라마니까 드라마 같은 구석이 있다는 얘기지. 다 있을 법한 얘기고, 연기들도 잘하니까 리얼해요. 나한테 닥칠 일이기도 하겠고. 그런데 좀 심사가 뒤틀리더라고. 다 좋은데, 저런 친구들이 어딨어! 싶어요. , 저런 친구들이 있으면 아무 걱정 없겠네 싶고. , 말하다 보니 진짜 그러네. 심술이 자꾸 나는 게 부러워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선생님, 드라마 제목이 <디어 마이 프렌즈>인가 보죠?

     맞아, 맞아. 어려서부터 함께 희노애락 나눈 좋은 친구들 얘기예요. 치매, , 앞뒤 꽉 막힌 꼰대 얘기가 아니라 노년의 우정이 주제예요. 드라마가 그렇지. 상대적 박탈감 같은 걸 유발해. 저런 좋은 친구들 나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나 봐.

     선생님, 그러니까 드라마죠오~ 드라마를 너무 안 보셔서 그래요. 이제 입문하셨으니 드라마 많이 보세요. 논문지도 하시듯 분석하며 보지 마시구요. 히히.

     그런가? 여튼, 시간은 잘 가서 좋아요.

     선생님 친구분들 있으시잖아요. 같이 여행도 가시고 하셨잖아요. 하긴 요즘은 여행은커녕 만나시기도 어려우시죠?

     그렇지. 코로나 아니어도, 다들 이제 몸이 안 따라줘서 해외여행 못 간 지는 꽤 됐고. 봄가을 날씨 좋을 때는 하룻밤 자고 오는 여행은 좀 했는데, 그것도 못하네요. 이러다 코로나 끝나도 여행은커녕 전처럼 만날 수나 있을까 싶어요. 몸들이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니까. 집에 있으니 맨, 유튜브나 붙들고 있고, 카카오톡에 황당한 영상이나 올리고, 아주들 힘들어요. 어떨 땐 영상 올리는 걸로 싸움도 한다니까.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아하, 선생님 진짜! 저 말이죠... 그런 게 힘들어서 친구들 단톡방에서 나온 적 있어요. 참다 참다 한마디 하고 나와버렸다니까요. 한창 바쁜데 카톡, 카톡 울려서 보면 영양가 없는 얘기, 근거도 없는 뉴스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거예요. 안 볼 수도 없고요. 다들 좋다 어떻다 하는데 가만히 있기도 뭐하고요. 생각이 달라서 자꾸 갈등이 생기니까 단톡방 규칙도 정해보고 그랬거든요. , 그래도 쉽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 욱해서 나와버렸어요.

     오호, 정 선생이 성질부릴 줄도 알아?

     그럼요, 선생님 저 성질 더러... 아니, 저 까칠해요. 자꾸 선생님 앞에서 막말을... 히히. 저 이러다가 친구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나이 들수록 친구가 보험이라는데요.

     보험?

     네, 보험요. 친구들 모임에 목숨 거는 친구가 있어요. 결국 남는 건 친구다, 애들 키워봐야 결국 다 떠나고, 남편은 짐밖에 되지 않는다, 노년에 친구들과 같이 놀고 재밌게 지내야 한다. 그러면서 늘 보험이라고 하죠. 모임이 깨질까 전전긍긍이에요. 제가 단톡방 나왔을 때, 기겁하고 절 찾아왔다니까요. 나중에 후회한다면서요. 그때 친구가 그랬어요. 보험이라고.

     재밌네, 보험! 보험 사기당할라 조심하라고 해요. 공들여 부은 우정 보험에 사기당할 수 있다.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고. 허허.

     보험 사기? 그럴 듯 하네요. 아하, 보험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네 싶다가도 뭔가 좀 찜찜했거든요. 쟤가 저렇게 애쓰는데 바라는 것처럼 될까, 싶은 거예요. 친구 모임 지키느라 제일 애쓰고 걱정이 많은데요. 그래서 정작 친구들 때문에 행복해 보이진 않거든요.

     하긴 노인만 심심하고 노인만 두렵겠어요? 다들 심심하고 각자 다 외롭고 그래. 지금 외로우니 나중 외로움은 더 큰 걱정이 되고... 내가 그 드라마가 그래서 좋다니까. 우리 모두 그리는 따뜻한 우정 같은 게 있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또 놀리려고 저 눈동자 굴리는 거 봐라!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에 푹 빠져서!

     히히, 인정하셨으니까 봐 드릴게요. (선생님께 다 들리는 혼잣말) 히히 선생님 놀리는 게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

     그래, 늙은이 놀려먹어 좋겠다. (멀리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시며) 드라마에서 김혜자 씨와 나문희 씨 보면서 죽은 친구 생각이 났어요. 벌써 5년이 됐어. 나랑 참 다른데 잘 맞는 친구였거든. 그 친구가 꼭 정 선생처럼 우스개소리 잘하고 그랬어요.

     전에 말씀하셨던 친구분이요? 양평 나들이 함께 다니셨다는.

     그래, 맞아! 여기저기 나를 많이 데리고 다녔지. 나는 평생 연구하고 가르치고, 학교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그 친구는 일찍 결혼하여 아이들 키우고 성당 열심히 다니며 봉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바쁘기도 했고, 먼저 연락하고 그러는 성격이 못 되거든. 늘 그 친구가 먼저 연락하고, 어딜 가자, 뭘 같이 하자면서 끌고 다니곤 했어요. 남편과 부모님 보내드리고 힘들 때 곁을 지켰던 친구고요.

     아, 각별하셨군요!

     각별... 그렇지. 각별한 친구지. 맞아요. (한참 말을 잇지 못하신다) 선물 같은 친구예요. 정 선생 친구 말마따나 나이 들수록 친구가 꼭 필요한 것 맞아요. 그런데 좋은 친구는 보험료 내듯 해서 얻는 게 아니야. 그 좋은 친구를 얻자고 내가 지불한 게 없거든.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그냥 주어지는 선물이에요.

 

서로 선물 같은 친구

 

이걸 겸손이라고 해야 할까? 선물로 얻은 친구라니. 늘 쉽고 편하게 말씀하셔도 가볍게 하시는 말씀은 없다. 깊은 신앙심이 느껴지지만, 신앙의 용어로 표현하시는 일도 별로 없다. 지나치리만큼 이성적인 선생님이 맥락 없이 선물이라고 하시니 낯설다. 뭐라도 여쭤보고 싶은데 어쩐지 침범하기 어려운 침묵에 나도 입을 닫았다. 좋은 친구는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과연 그런가? 내 좋은 친구들과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지? 친구 얼굴 몇이 떠오른다.

 

     어쩌다 한 동네 태어났고, 한 학교에 다녔거나 어떤 환경에서 마주친 존재 아니겠소? 같은 공간에 있다고 다 친구가 되진 않았을 텐데, 성격이든 뭐든 통하는 것이 있으니 친구가 되었겠지. 친구가 되었어도 이사를 하거나 환경이 달라지면 멀어지기도 하잖아요. 내 보기에 친구는 환경과 성격의 산물이에요.

     오호, 산물에 점 하나만 바꾸면 선물이네요.

     그러네. 산물이 선물이 되는 게 친구네. 내가 이 드라마에 왜 이렇게 빠져드나 싶었더니 그 친구 그리는 마음이었 봐. 내게도 저런 친구가 있었지. 그립고 보고 싶고 그러네요.

    선생님, 그런데 그저 선물이라고 하시는 건 좀 그래요. 지나치게 겸손하신 건 아닌가요? 그 친구분께도 분명 선생님이좋은 친구셨을 텐데요.

     당연하지. 나도 그 친구에게 선물이 되었을 거라 믿어요. , 일방적인 사랑이었다고 들려? C. S. 루이스 알죠? <네 가지 사랑>이라는 책이 있어요. 오래전 읽었지만 인상 깊게 남은 것들이 있어요. 루이스는 개인의식이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 맺는 관계가 우정이라고 해요. 에로스나 부모의 자녀 사랑 같은 애정보다 더 숭고한 사랑으로 보는 것 같아요. 나도 거기 동의해요. 연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자기들의 사랑에 매몰되죠. 하지만 친구들은 나란히 앉아 공통된 관심사에 함께 빠진다는 거예요. 친구가 둘일 필요도 없어. 셋도 넷도, 더 많은 사람과의 우정이 동시에 가능한 거죠. 젊은 한때 에로스 사랑이 강한 때가 있고, 아이를 키우거나 뭐든 돌보는 일을 할 때 부성애나 모성애가 필요한 시절도 있겠고.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멀어지는 때가 와요. 그때 필요한 것이 우정이 아닌가 싶어. 그래서 늙을수록 친구가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가 되고요. 그런데 우정이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니야. 보험료 내듯 관리해서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아, 선생님은 정말 찐 친구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럼. 찐 친구를 말하지 가짜 친구 얘기를 하는 거겠어?

     가짜 친구가 많죠. SNS에 친구라 불리는 가짜 친구가 많아요. 선생님. 페친이라고, 페이스북의 친구가 있잖아요. ‘친구라는 이름의 인맥 구축 장인 것 같아요. 프로필 밑에 친구의 숫자가 뜨는데 저는 그걸 볼 때마다 야릇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친구라는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나 싶기도 하지만요. SNS에서 친구 숫자가 많은 것은 그저 얼마나 유명한지 보여주는 지표예요. 유명한 누구누구와 친구를 맺고, 같이 밥을 먹었다, 만났다 하는 걸 족족 사진 찍고 글을 써서 올리는 경우도 많은데요. 저는 그런 글들이 오히려 외롭다, 친구가 필요하다로 읽혀요.

     그렇기도 하네. 나야 그쪽 세계는 모르니까. 어쨌든 좋은 친구는 하루아침에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지요. 대가를 많이 치러야지.

     엇, 선생님. 선물이라고 하셨으면서요! 대가는 또 무신 말씀요?

     대가가 있지. 인생 최고의 것을 얻는 건데. 그러면 선물로 온 친구와 더 좋은 친구 되기 위한 대가라고 합시다. 아니면 그냥 보험이라고 하든지, 적금이라고 하든지. (또 한참 말씀이 없으시다) 내 친구 말이에요. 일생에 그런 친구 하나 있어서 참 좋았구나 싶네.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학 때 단짝 친구로 만나 인생 굽이굽이 여러 산을 넘었어요. 내가 공부하러 나갔을 때는 거의 연락 끊고 산 적도 있고, 대놓고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오해도 있었고, 뭔가 서운해서 멀어진 적도 있어요. 진짜 친구가 된 건 오십 줄에 들어서였던 것 같아요. 오래도록 서로 풀리지 않던 마음이 있었는데, 속 다 내놓고 얘기하다 보니 유치하게도 서로에게 질투 같은 것이 있었더라고. 내가 없는 거 친구만 누리는 것 같아 부러웠던 거지. 서로 할 말, 못할 말 다 하면서 늙어가던 시절이 참 좋았어요. 내 인생의 선물 같아요. 남편이나 아들과 다른 것 같아요. 함께한 오랜 시간, 그 시간 동안 보일 꼴 못 보일 꼴 다 보인 것이 대가라면 대가예요. 관리하지 않았어.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하지 않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어, 선생님. 그건 저도 동의해요. 제가 청년들 상담하면서 그런 얘기 자주 하거든요.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한, 그저 연애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한 건강한 연애는 불가능하다고요. 그렇군요! 좋은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군요.

     그러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정 선생은 친구들 단톡방에서 탈출해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요! 다시 불려 들어갔죠. 창피했죠.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 들어주는 상담가 역할 하면서 성숙한 인격자 연기 제대로 했었는데 다 망가졌어요. , 그런데 희한한 건요. 그때부터 애들이 서로 조심하고 다른 친구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이전보다 나아졌어요.

 

누구와도, 어디서도 친구가 될 수 있어

 

     대가를 잘 치렀네! 진실해지려면 갈등을 피할 수 없어. 하지만 그걸 감수하기만 하면 다른 관계가 된다고. 그럴 수 있는 친구는 인생에 몇 없으니, 그렇게 조금씩 망가지면서 함께 나이 들어가 봐요. <디어 마이 프렌즈> 드라마가 친구에 대한 그런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적당히 가면 쓰고 포장하지 않고, 감정 다 드러내며 싸우고 화해하며 더 돈독해지는 우정 말이에요. 하긴 뭐, 실제로 그게 쉽겠냐만 그래도 보기 좋아요. 실제로 눈앞에 없다고 꼭 없는 건 아니니까.

     네? 없으면 없는 거죠. 드라마 속 친구가 내 친구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난 있어. 눈에 안 보여도. 내 친구 천국 가고 여기선 볼 수 없지만, 내겐 있어요. 그 친구와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있어요. 믿어지지 않죠?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 사무치는데 슬프지만은 않아요. 나한테 그렇게 좋은 친구가 있었단 사실이 변하지 않거든. 그 친구 생각하면,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해 주던 생각하면 어쩐지 내 인생 잘 산 것 같고,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고 그래요. 살아 있는 거지. 안 그래? 친구가 내 앞에 있다니까.

     어, .... 선생님 저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경지 같아요.

     하하하, 친구가 내 앞에 있어. 요기, 요기! 젊은 친구! 정 선생이 내 친구야. 늘그막에 만난 좋은 친구. 너무 늦게 든 보험인가? 나는 우정을 알아요. 그 친구가 알려주고 떠났거든. 누구와도, 어디서도 친구가 될 수 있어. 물론 아무나와 그리 될 수는 없지만.

     네에... , 친구요? 스승님이신데... 하아...

     스승님을 그렇게 종일 놀려먹냐? 하하.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라는 여성 철학자를 좋아하는데요. 키케로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우정, 노년에 관해 쓴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논평하면서 우정의 즐거움을 농담과 뒷담화라고 했어요. 맞는 말 같애. 마음 편히 누군가 뒷담화 할 수 있고, 농담할 수 있는 사이. 철학자에 따르면 나는 정 선생과 찐 친구야.

 

진심으로 나를 친구로 여기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황이 되었고, 그리고 마음 깊이 감동이 되었다. 이후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 내 좋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속이 상해 누군가 뒷담화를 하고 나서 나를 어떻게 볼까걱정되지 않는 친구. 언제든 놀려먹고 장난 걸 수 있는 친구이다. 웬일로 전화냐고 묻는데 보고 싶어서라고 했더니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내 진심 또한 알아차렸을 것이다. 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우정, 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더 잘 알아가려 한다. 우정이라는 선물을 누리는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이 서는 것 같기도 하고.

 

 

<시니어 매일성경> 2022 1,2월호 기고글

  1. BlogIcon healed 2022.01.01 23:03 신고

    친구...우정...우리 신실 언니...💕
    읽다가 눈물 났던 부분...그 친구가 여기 있다..예요..ㅜㅜ

 

2021년 마지막 날을 아무 걱정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몸을 파묻고 보냈다. 어제 오후 백신 부스터 샷 접종을 하고, 밤에 연구소 송년 글쓰기를 했다. 강의할 때만 해도 주사 맞은 부위가 조금 뻐근하다 싶었는데, 2차 때 왔던 불면증 후유증이 와서 말똥말똥한 밤을 보냈다. 잠깐 잤지만 새벽부터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밤에 손해 본 잠이 억울해서, 어쩌면 몸이 무거워서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몇 줄 읽다가 졸고, 다시 일어나 조금 읽다가 자고.... 그렇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다 읽고 나니 거짓말처럼 일어날 힘이 생겼다.

그렇다, 카이사르는 분명히 필멸의 인간이니 그가 죽는 것은 당연한다. 그렇지만 나, 바냐,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이반 일리치에게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올해의 키워드는 '죽음'과 '비극'이다. 죽음에 대해 말할 자리, 강의할 자리가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내 마음 속 죽음은 업데이트를 거듭했다. 여전히 견딜 수 없이 그리운 엄마이지만, 내 마음속 죽음은 작년 3월 엄마의 죽음이 아니다. 40년 전 아버지의 죽음도 아니다. 그냥 죽음이다. 세상의 모든 죽음이다. 인생의 끝에서 만날, 궁극의 비극인 죽음이다. 죽음이 끝이 아닌 것에의 믿음으로 오늘의 시간에 죽음을 받아들이면 열리는 새로운 오늘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을 받아들이지 못함이 인간의 비극이다. 올해의 키워드는 죽음과 비극과 더불어 '성장'이다. 송년 글쓰기를 거듭하면서 돌아보니 그렇다. 나와 다른 사람의 성장이 가장 기쁜 일이었고, 그 반대가 가장 아픈 일이었다. 몸은 노화하여 필멸할 것이나, 정신적 성장은 끝이 없다. 늘 자라야 하고, 성장의 궁극은 죽음 앞에서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머리 식힐 겸 소설을 하나 읽자, 는 마음으로 아침에 침대에 파고들며 붙들었는데 2021년 마지막 날 읽기 딱 좋은 내용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잘못 살아온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라며 죽음에 저항하는 이반 일리치는 잘못 살아왔다. 다른 잘못은 모르겠고, '죽지 않을 존재'처럼 살아온 것이다. 이미 그의 생은 메마르고 비극적이었는데, 비극성을 마주하지 않았던 것. 이미 아픈 몸인데,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다 병을 키운 것과 같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죽음'을 선물로 받기 위해서는 죽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했다. 과연 이반 일리치는 죽기 한 시간 전에 그 강한 에고의 힘을 빼고 기꺼이 죽는다. 죽기 한 시간 전이지만, 한 시간 전에라도 죽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 내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 그는 생각했다. <다들 불쌍해. 하지만 내가 죽으면 좀 편해질 테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힘이 없었다. <아니야, 뭣 하러 말을 해. 그냥 보여 주면 돼.> 그는 생각했다. 그는 아내에게 눈짓으로 아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데리고 가…… 안쓰러워...... 그리고 당신도......」 그는 <용서해 줘>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가게 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쳐 말할 힘조차 없어서 손을 내저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겠지.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얼마나 좋아. 얼마나 단순해.>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통증은?> 하고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통증은 어디로 갔지? 이봐, 너, 어디로 간 거야?>
그는 귀를 기울였다. <아, 여기에 있었군. 그래, 뭐, 거기 있으라고 해.>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로 갔지?> 그는 그동한 익숙해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중략)
이 말을 들은 이반 일리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은 없어.>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도중에 멈추더니 온몸을 쭉 뻗었다. 그렇게 그는 죽었다.


죽음, 죽음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 그러니까 실패, 실망, 구겨짐, 쓰라림...... 이런 것들과 친해지고 받아들이는 연습이야 말로 죽기 전에 죽어 지금 여기서 자유를 사는 것이 된다. 죽기 전에 죽으면, 이반 일리치의 말처럼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음이란 것이 없어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진다. 오늘, 계획 세운 바 없이 2021년 마지막 날로서 적절한 하루를 보냈다. 마치 올해의 배움을 총정리하듯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시간과 함께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줌으로 드리는 교회 송구영신 예배에서 짧은 묵상을 인도할 준비를 한다. 죽기 전에 죽어서 얻는 선물을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이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이다. 2021년 내면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나를 이렇게 가르치셨다.




  1. BlogIcon 캘리 E. 2022.01.01 01:13 신고

    코로나와 함께 또다른 한해를 보냈습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이 그 어느때 보다도 감사하게 다가오는 요즘 입니다.
    저 또한 지난한해 죽음이라는 단어와 조금 친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죽음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읽으며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막연하게나마 생각해 보게 되었던 한해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미처 내가 용서하지 못한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렇다고 당장 그것들을 용서해 내지 못할것을 알기에 하나님앞에 가슴을 치며 더 깊이 기도하게 되었던것 같습니다. 아직도 마음의 일정부부은 과거의 상처에 얽매어서 벗어나지 못함을 바라보며 이것은 평생 가져가야 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그렇다고 훌훌 잊어버려야 하는 마음인지 고민에 또 고민이 이어지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모님의 슬픔을 쓰는 일 책을 읽으면서 어느정도 마음속에 정리해야 할 부분들을 정리도 할 수 있어서 후련하고 감사했습니다.
    언제나 멀리서나마 사모님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한해도 수고 정말 많으셨고, 2022년에는 더 보람되고 아름다운 일들로 채워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22.01.01 11:03 신고

      해피 뉴 이어! 캘리!
      죽음이 두려울수록 삶이 두렵고, 죽음을 끌어 안을수록 삶이 자유롭고 풍성해진다는 것을 캘리도 경험하고 계시네요. 용서하지 못하는 것에의 아픔은 이미 용서를 시작한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화해는 다른 문제이지만,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언제든 내가 시작할 수는 있는 것 아닐까. 많은 것들에 이미 용서를 시작한 캘리를 벌써 몇 년 전의 만남에서 저는 느꼈어요. 보내주시는 격려와 기도가 늘 마음을 따뜻하게 해요. 저기 멀리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 ^^ 저도 기도할게요. 언니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 BlogIcon 캘리 E. 2022.01.02 13:17 신고

      사모님의 댓글에 마음이 좀 더 편안해 졌어요. 제 마음을 토닥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저도 든든한 제 편이 한국에 계셔 주셔서 늘 든든하고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기도와 격려 감사드리며 언니에게 안부 꼭 전하겠습니다. 해피뉴이어!

 "당신은 점심 뭐 먹을 거야?"

 

집에서 일하다 출근이 늦어진 남편은 자기 집인데 막 자꾸 계속 눈치 보고.

점심때 되니까 빙빙 돌면서 저렇게 말해서 결국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때린 적 없는데 맞고 사는 남자처럼, 눈칫밥 먹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지 말라고, 기죽지 말라고, 내 집이려니... 마음 편히 있으라고...

오전에 일, 점심 먹고 백신 접종, 저녁에 또 일이 있지만 틈을 내어 맛있는 점심을 해주었다.

 

요즘 포항초, 섬초 참 맛있는데.

나물로 무치려고 산 포항초 한 단을 다 때려 넣고 갈치속젓 베이스의 새로운 k파스타를 제작.

k파스타라 이름 해놓고 그때그때 아무거나 넣고 파스타라고 내놓으니

이런 작명까지 나왔다.

 

"뭇국 파스타"

 

점심 준비하고 있는데 수면바지 채윤이가 "어, 무슨 냄새지? 점심 뭐야?"

하면서 나오길래 "파스타"라고 했더니 '뭇국 파스타'냐고 했다.

무슨 그런 파스타?

먹다 남은 뭇국을 데우는 중이었다. 개코 채윤이, 아무 말 채윤이다. 

국물이 거의 쫄아서 끓고 있는 걸 보니 불가능하지도 않을 파스타네 싶네.

도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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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싸매고 과제하기 동지. 종강 동지. 김채윤 동지가 내 산책에 따라붙어 산책 동지가 되었다. 어떻게든 따돌려 보려고 했는데, 결국 따라붙었다. 의기투합하여 걷는 길은 고속도로와 탄천 사이 농로, 에서 외롭게 매달린 '토마토마트'를 발견했다. 토마토마트는 어릴 적에 채윤이가 방울토마토를 부르던 이름이다. "와, 꼴찌로 태어난 토마토다!"라고 내가 말했다. 채윤이 어릴 적에 읽어주던 그림책 제목이다. "어, 나 그 책 생각나는데..." 채윤이도 말했다.

 

어릴 적에 읽어주던 그림책, 함께 불렀던 노래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엄마 아빠이다. 아이들의 기억은 제목 어렴풋, 반복되던 문구나 운율 어렴풋이다. "달님 안녕" 하고 그때 그 그림책 얘기가 나오면 줄줄 외우며 신나는 건 엄마 아빠다. 꼴찌로 태어난 토마토, 안녕 또 만나, 뭐 하니, 색깔 나라 여행... 문자로 나열하면 도통 그 맛을 살릴 수 없는 운율과 딕션으로 남은 우리들의 그림책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종필과 신실... 그렇게 읽은 것 또 읽고, 또 읽고... 결국 읽는 사람 외울 지경이 되도록 강요했던 아이들은 모르는 일, 모르는 그림책이다.


그러니까 아이들과 함께 했던, 아이들이 이 땅을 살던 초기 기억이 부모와 아이에게 다르게 저장된다.
엄마 아빠에게는 의식으로 또렷하게, 아이들 자신에게는 무의식으로. 미지의 에너지로!

 

'미지'의 에너지. 미지.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은 어린 시절은 알 수 없는 에너지로 오늘과 함께 한다. 스무 살도, 서른 살도, 쉰이나 일흔 된 사람도, 죽음에 임박한 사람조차도. 이것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 일인가. 내가 내 엄마를 넘어서기 위해 씨름했던 나날을 비추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는 것은... 내가 '준 것'이 아니라 주느라고 애쓰며 드리운 그림자가 아이들의 오늘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내적 여정 안내자로 살면서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부모가 지운 무의식적인 삶을 지고 끙끙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늘 새롭게 정신 차리고, 또 정신을 일깨울 수밖에 없다. 내담자들, 수강자들이 오늘의 고통을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뒷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 부모의 무의식적인 삶인 것을 확인할 때는. 아, 나는 평생 아버지 부재와 맞서 글을 썼고, 마음에서 엄마를 죽였다 살렸다 하면서 신앙 사춘기를 보냈고, 결국 기나긴 세월 지내면 부모와 화해하고 고요해진 나날을 살고 있다, 지만...... 부모가 내게 지운 짐을 마주하는 것은 그나마 길이 보이는데, 내가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지운 짐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가 견뎌내야 할 가장 큰 짐은 바로 부모의 무의식적인 삶이다.
_카를 융


그래서 그냥 늘 새롭게 만나려고 한다. 아침에 제 방에서 나오는 아이들과 인사하며 어제의 나로 얘네들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어제의 낡은 방식으로 아이들과 만나지 않으려고. 하룻밤 자고, 하룻밤만큼 더 무르익은 존재로 얘네들을 바라보고 겸손하게 대하려고. 물론 결심으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 결핍이나 욕망에 얽혀서 제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았으면 싶다. 내 한 가지 소원이다.

 

 

혼자 걷고 싶은 시간이었지만, 따라붙는 채윤이와 함께 걸으며 마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고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도 채윤이에게 맡기고, 되는대로 즐겨본다. 돌아오는 길, 빠르게 해가 넘어간다. "엄마, 저기 좀 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다. 텅 빈 나뭇가지 사이로 배경이 보이는 거... 아, 엄마는 저런 나무 싫어하지? 겨울나무 슬프지?" "아니, 엄마 이제 저런 풍경을 좋아하면서 볼 수 있어. 희한하게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엄마도 너처럼 겨울 나무가 있는 그대로 보여. 아름다워, 저런 풍경..." 나목도, 나목 가지 사이로 멀리 보이는 석양도, 경부고속도로 위 집으로 돌아가는 차들도 아름답다. 꼴찌로 태어난 토마토를 뒤로 하고 우리도 집으로 돌아온다. '꼴찌로 태어난 토마토'는 딸과 엄마의 동상이몽일 터. 동상이몽이어서 자유다! 너는 네 꿈을 꾸고 나는 내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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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1.01 18:39 신고

    하룻밤만큼 무르익기...늘 간절히 바라는 일이에요..

 

(정말 멀리서 온) 케잌 협찬,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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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1.01 18:34 신고

    언니의 출장파티에 빛을 밝혀드렸다니~~^^

후원자님께.

이제나저제나 기약 없는 끝을 기다리며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 무기력한 시절에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주님, 어서 이 어려운 시기가 끝나게 해주세요.” 코로나 시기 내내 이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문득 시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시 94:12) 아, 그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기꺼이 징벌받아야 할 때이구나, 싶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생태계 질서의 파괴에서 기인한다고 하죠.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음터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인데요. 사람과 사람의 연결 너머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 생명들과의 연결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무분별한 욕망이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이었음을 아프게 인정하고 회개하고, 기꺼이 징벌받을 때이구나 싶습니다. 더불어 모든 일에서 기꺼이 징벌받고, 책임지는 나음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지난 한 해도 열심히 사랑으로 상담하고 강의했습니다. 그러나 고백컨대, 항상 잘하지 못했습니다. 연결을 기대하고 찾아오셨다 실망을 안고 돌아가신 분도 있을 것이고, 크고 작은 미숙한 행보들이 있었습니다. 아프게 돌아보고 있습니다. 내적 여정과 영성 상담을 통해 저희가 말하고 가르치는 바,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있습니다. 어쩌다 이룬 작은 성공이 아니라 죄 된 본성으로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일을 더욱 살피겠습니다. 가르치는 바대로 살기 위해 더욱 돌아보는 나음터가 되려고 합니다. 저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신선한 소식도 있답니다. 어쩌다 보니 나음터가 ‘금남의 집’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세미나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진실한 자기를 만나고, 그 여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여남 차이가 없다는 것을 기쁘게 확인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도자과정 여섯 분 중에 두 분이 남성이었고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조직도 생겼습니다. ^^ 글쓰기 모임 이후 여러 후속 모임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여기서 오히려 더 깊은 배움과 나눔이 일어나고 있어서 여간 보람이 되지 않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한 분 한 분 떠올리면 감사한 일들이 많습니다.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입니다.

나음터가 그러하듯 후원자님의 한 해도 그분의 은총이 맑은 날과 흐린 날로 얼굴을 바꾸며 다가오셨을 줄로 믿습니다. 다가오시는 그분의 얼굴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이 더욱 맑아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올 한해 가장 감사한 이름, 후원자님의 몸과 마음이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드리며...

2021년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에,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드림

* 후원 계좌 : 농협 301-0240-4119-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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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21.12.24 10:19 신고

    2021년을 보내며 나음터 후원자님들께 보낸 편지입니다. 연결된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마지막 기말 과제를 제출하고, 후련함 대신 뭉글한 뭉클함의 하루를 보낸다. 다시 석사를 시작했다. 스물아홉에 학부 전공 버리고 대학원을 시작했을 때, 신생 학과 '음악치료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가 떠오른다. 이게 공부구나! 하고 싶은 공부는 이렇게 재미있구나! 했었는데. 쉰셋에 학부 전공, 대학원 전공 버리고 또 새로운 전공에 들어서서 한 학기를 보냈다. 이게 공부구나! 공부는 늙어서 하는 거구나! 하면서 한 학기를 마쳤다. 급하게 진행된 진학의 과정이지만, 실은 10여 년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말 공부하고 싶었는데, 학위 과정을 하고 싶었는데 갈 학교가 없었다.

가을학기 전형에 응시하여 석사과정에 편입했다. 물 흐르듯, 그러나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이루어진 일이다. 입시요강 페이지 열어놓고 고민하는 엄마를 발견한 채윤이 질문에, 저간의 상황을 말했다. "응시해, 응시해, 당장! 내가 해줄까?" 그 말 끝에 온라인으로 응시, 필요한 서류 준비까지 다 해줬다. 편입이 불가하면 안 가야지, 했는데 편입 허락이 되고. 면접을 보면서는 "내가 가서 공부할 만한지 교수들 면접 좀 보고 올게."하고 갔는데 마음이 스르르 녹아서 끌렸고.

네, 저는 그렇게 쉰셋에 다시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영성 공부합니다. 전통적 영성에 관심이 많아서, 특히 중세 영성에 관심이 많아서 가톨릭 대학입니다.

예상된 결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 결말을 빠르게 끌어낸 것은 엄마 상실이다. 엄마 돌아가시고 뭐랄까 뱃심이 생겼달까. 하고 싶은 거 하고, 하기 싫은 거 안 하는 삶을 사는데 더욱 두려움이 없어졌다. 미움받을 용기는 물론이고, 왕따 당하는 것도 그리 무섭지 않다, 라는 것은 지금 막 쓰면서 알았다. <슬픔을 쓰는 일>에는 '허무의 강'에 떠오르는 것들을 뜰채로 떠서 갖다 버린다는 표현을 썼는데. 오랜만에 책을 들춰 보면서 아, 내가 이런 말도 했구나! 심지어 이것이 책의 결론이었구나! 놀랐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6개월 전 떠나신 엄마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이것 아닐까. 삶을 살아라, 네 삶을 살아라. 내 딸아, 이제 죽음에의 두려움을 벗어나 상복을 벗고 '현재'라는 선물을 살아라. 반드시 죽을 너의 운명을 기억하되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라!


그렇게 알아들었다. 나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돈은 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접었고, 코 앞의 이익은 주지만 내 영혼을 피폐하게 하는 일들은 피하며 산다. 성장에 도움도 안 되고, 힘만 드는 관계는 애써 붙들지 않는다. 부러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모두 엄마가 떠나고 남긴 선물이다. 그 선물이 나를 다시 공부로 이끌었다. 엄마가 그렇게 싫어하던 공부. "책 그만 읽어. 시집 못 가. 여자가 공부 많이 허믄 마음만 높아져서 안 되는 거여. 아이구, 시집 못 가." 엄마가 진심을 담아 하던 말이다. 엄마의 진심을 보란 듯이 팽개치고 대학원에 갔었지. 오직 결혼에 목숨 걸고 있던 엄마는 하늘이 무너졌었다. 진짜 시집은 다 갔구나!

엄마가 죽음으로 전해준 사랑의 메시지에 힘입어 엄마의 뜻을 거스른다. 천국에 있는 엄마가 잔소리 할까? "니가 지금 니 공부 헐 때여? 현승이가 고3이여. 채윤이도 아직 뒷바라지 헐 일이 많은디... 에미라는 년이 지 공부헌다고 돈을 쓰고 시간을 들여? 너어, 그르케 교만허믄 안 뒤어. 배울 만큼 배운 거 감사허고, 애들 잘 돌보고, 김서방 목회 위혀서 기도허고 그러야지. 예이, 이년아!" 이런 잔소리도 이젠 기분 좋게 듣겠지만. 낡은 정신과 몸을 다 벗은 빛나는 엄마의 영혼이 저리 말할 리가 없다. "잘혔다, 우리 딸! 우리 딸 공부 좋아허는 딸인디, 진즉 그르케 공부혀서 유학도 가고 그렸어야 허는디... 장허다. 평생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 또 배우는 거 장혀. 허세로 공부허지 말고, 진실헌 공부를 혀. 우리 신실이 장허다."라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첫 학기 강의들이 의도한 바가 하나도 없는데 고대 철학, 그리스 비극에서 만났다. 한 학기 동안 그리스 철학, 그리스 비극에 머물렀다. 그리고 기말 과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들이며 '비극'에 머물렀다. 그리스 비극을 읽고 에세이를 쓰며 필멸의 존재로 불멸의 환상을 꿈꾸는 지점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또 마주했다. 마지막 과제는아우구스티누스의 <교사론>을 읽고 쓰는 것이었다. 거기 나오는 '내면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이었다. 이 역시 참 신기한 것이 <슬픔을 쓰는 일> 마지막을 또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삶의 비극성은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이 생기면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절망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림받을 걱정이 앞섰다. (중략) 엄마 떠나고 시작한 애도 일기는 다시금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을 있는대로 세우고 머무는 시간이었다. 내 인생 가장 치명적인 두 슬픔, 두 죽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죽음에 이끌린다. 저항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죽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비로소 든다. (중략) 나는 이제 이 신비 앞에서 상복이 필요 없는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죽음이다. 언젠가 마주할 나의 죽음을 가슴으로 안으려고 한다. 결국 다다를 비극 또는 신비인 나의 죽음을 부드럽게 사귀어 보겠다.


내 개인사의 비극을 넘어 실존적 비극에 머물고, 거기서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는 한 학기 공부였다. 이런 공부를 하는데... 예수님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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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12.24 00:15 신고

    공부는 늙어서 하는 거구나!! 완전 공감이요!! 기말과제 내고 글 쓰시는 언니는 정말 👍

 

계란찜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쉬운 음식인데.

아이들은 무슨 꽃등심 구이가 나온 것처럼 좋아한다.

희한하지.

아이들이 환호하는 수준에 맞춰서 특별하게 만들어봤다.

먹다 남은 문어를 잔뜩 넣어 문어 계란찜을 했다.

채윤이를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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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12.22 03:24 신고

    역쉬 계란찜은 뚝배기죠~ 환호할만큼 맛나보임요 ^^

    • BlogIcon larinari 2021.12.22 16:38 신고

      글치! 뚝배기보다 장맛이라지만, 계란찜 맛은 뚝배기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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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앞 거대한 십자가가 씬 스틸러다.

어스름한 새벽 하늘의 신비감도,

파란 하늘 뭉개구름의 청명함도,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고 달려드는 아이 같은 마음도...

십자가, 오직 십자가로 향하게 하는...

아무 날씨 아무 풍경을 담아도 십자가, 오직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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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때문이야! 종끼아빠!

윤채김!

으, 종끼아빠!

윤채김!

 

아빠와 딸이 사랑과 신뢰와 애정을 확인하는 소리. 하루에 열 번은 맥락 없이 하는 소리. 저녁 안 먹고 늦게 들어온 아빠와 딸이 야식을 두고 마주 앉았다. "윤채김! 너는 왜 니 꺼만 가져와. 아빠도 챙겨줘." "으으... 종끼 아빠...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그리고 뭔가 조화로운 듯 아닌 듯 이어지는 저들의 대화.

 

아빠가 달라스 윌라드 다시 읽거든. 이번이 세 번째야. 아, 아빠는 영어를 못하는 게 너무 한이 돼.

왜애?

유튜브에 달라스 윌라드, 유진 피터슨 영상이 많거든... 잘 들렸으면 좋겠어.

아빠는 우리말도 잘 못 알아듣잖아. 

맞아... ㅠㅠ 그렇지. 그래도 영어 잘하고 싶다.

(엄마 난입) 내가 그 마음 알지. 나 코스타에서 마르바 던이 바로 앞에 계신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심장 뛰고 그러는데...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 심정 내가 잘 알지.

당신은 표정으로 다 말하잖아. 표정으로 하지 그랬어? 암튼 난 그래서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

뭐라고? 아빠! 영어를 못해서 빨리 죽고 싶다고?????? 

 

 

언어로 막힌 담이 허물어져 모든 영혼과 프리 토킹 하는 천국에 가고 싶다는 뜻인데...

일단 거기 가면 아빠와 딸의 소통부터 막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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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 2021.12.28 12:3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군침도는 저 바삭바삭 튀겨진 만두보다, 침샘 자극하는 파조리개보다 더 맛난 대화네요!

  2. 바람 2021.12.28 12:49

    아.. 마르바던 할머니.. 정말 넘 멋진 분. ㅠㅠ 사모님 시카고에 코스타 오셨던 그 즈음이었던 같은데, 계절은 다르지만 겨울에 그랜드래피즈에도 오셨거든요. 정말 따뜻했던 여성 신학자의 설교.. 아니 그보단 모닥불 앞에서 듣는 잔잔한 할머니의 이야기 같았던 그런 기억.. 저도 영어가 짧아 아쉽고 아쉬웠던 그 밤이 기억나네요.

    • BlogIcon larinari 2021.12.31 21:32 신고

      벙개는 칠 때 딱 맞아야 하는데... 어제 그 좋은 벙개가 쳤는데 맞지를 못했어요. ㅠㅠ 방학 중에 꼭 만나요. 올해 바람과의 색다른 연결, 얼마나 고마운지 아셔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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