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세계에서 같은 내용으로 강의하고 북토크를 했다. 각각의 세계에서 꽃다발을 하나씩 받았다.
세계 하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믿어주는 세계다. 남편은 가끔 "당신 그러다 교주 되겠다"라고 농담한다. 지나치게 철석같이 믿어주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까 하여, 나는 "내 생각에는, 저의 경험으로는, 내 꿈이라면, 내가 당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면..." 같은 말을 후렴구로 노래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어야 하는 세계다. 꽁꽁 숨은 곳을 스스로 찾아내어 적잖은 존재의 비용을 치르고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고, "기꺼이 영향 받으려는 심장"을 가진 이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받은 꽃다발에는 이런 편지가 적혀 있다.
상처는 존재의 무늬라고 했지요. 소장님의 상처는 제게 영혼의 깊은 뿌리처럼 느껴지네요. 그 뿌리가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쉼이 되어주고, 아래로 내려가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내도록 이끌어주는 단단하고 뿌리 깊은 나무가 되셨겠지요. 이런 나무가 제 삶의 동반자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참 감사합니다.
다른 세계. 무슨 말을 해도 오해로 가닿아 억측으로 번져서 상처를 덧나게 할까 두려워 입을 꼭 다물어 있어야 했던 세계. 어릴 적 왕따의 두려움이 되살아나 몸이 굳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마음으로 앉아서 견디던 세계. 긴 세월을 두고 천천히 입을 열어야 했던 세계에서 받은 꽃다발에는 내가 책에 쓴 그 글귀가 적혀 있다. 그 글귀는 꽃다발을 건네신 분의 육성으로 들렸다. (북토크에서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 있으면 읽어 주세요' 하는 요청에 응해주신 것이다.) 내가 이 세계를 견딘 세월이 10년인데, 그분은 어쩌다 떠나게 된 어떤 세계에 10년 만에 처음으로 발길을 했다고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분이 읽어주신 구절은 '연대'에 관한 내용이었고, 내가 써놓고도 마음에 드는 구절이었다.
한때 희생자였으나 거기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들이 서로의 고통에 기꺼이 증인이 되어 주는 연대야말로 영적 치유에 있어 가장 큰 소망이다. 목격자들의 공동체이자 증인들의 공동체! 나쁜 공동체에서 얻은 상처가 우리를 고립시키지만, 역설적으로 그 고립의 사슬을 끊어낼 소망 또한 공동체 안에 존재한다. 증인들의 연대와 연결이 필요하다. 상처는 짧고 치유는 길다. 치유는 기나긴,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이어질 평생의 여정이다. 그러니 결코 혼자 걸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 걸어야 한다. 《신앙 사춘기 너머》207쪽
갑자기 윤동주의 시구가 마음에서 맴도는 것 아닌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지만 정확히 내 마음에서 울리기는 이랬다. "꽃을 건네는 마음으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책상 왼쪽 창가의 낮은 책꽃이가 예쁜 꽃으로 풍성한 위로가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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