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이사하며 데려온 제대로 된 화분은 둘이다. 선인장 하나, 작년 생일 선물로 아이들이 사준 콤팩타 하나. 거기에 작은 다육이 두어 개 정도. 남은 것이 삐죽한 선인장이다 보니 화초는 없는 집이 되었다. 이례적인 일이다. 화초, 초록이 없는 우리 집은 떡볶이 없는 우리 집과 견줄만한 일이다. 거실 창 앞에는 늘 작은 초록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언제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는 나보다 화분을 더 좋아해." 채윤이 현승이가 질투할 정도로 작은 초록이들에 정성을 들였다. 작년이던가, 그 전이던가. 어느 때부터 한 놈, 두 놈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돌보는 정성이 전보다 못한 것도 아닌데... 싶으면서도 나를 탓했다.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런 거야. 전염병이라는 것을 많이 늦게 알았다. 가장 아끼던, 아니 가장 크고 든든하던 해피트리 잎이 누렇게 되며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마침 그때 엄마가 낙상하여 병원에 갇혀 있던 때였다. 격리였다. 그나마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오래된 화분 하나를 안방 베란다에 옮겨 '격리' 시키고, 화원에서 사 온 약을 뿌리며 돌보았다. 몇 달 후면 코로나는 끝나고, 이 화분은 회생하여 쌩쌩해질 거야. 그리고 엄마는 회복되어 집에 돌아올 거고.

 

 

 

가장 마음이 쓰인 것은 잎이 거의 남지 않은 해피트리였다. 살 수 있겠나, 싶은 환경에서 쑥쑥 자라면서 사춘기 돌입한 현승이와 키를 견주곤 했었다. 해도 잘 들지 않는 집에서 쑥쑥 자라주어 메마른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된 녀석이다. 어릴 적에 엄마가 키우던 벤자민 화분이 있었다. 병들어 시들해지면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며 기도하던 엄마가 조금 우스웠다. 기도 덕인지 또 쌩쌩하게 살아나 천장에 닿도록 자랐다. 그때 그 벤자민과 비슷한 종류의 해피트리가 어쩐지 엄마 같았다. 거실 오른쪽 구석에 든든하게 서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아이들이 줄을 지어 있으면 꼭 엄마 나무 같기도 했다. 엄마보다 해피트리를 먼저 포기했다. 해피트리는 살릴 수 없지만 안방 베란다에 격리시킨 스파트필름은 꼭 살려내야지. 그 녀석 격리 해제될 때 엄마도 퇴원할 거야. 그때 쯤 진짜 멋진 커다란 해피트리를 하나 살 거야. 멋진 엄마 나무를 다시 들여서 더 튼튼하게 키워야지!

 

 

 

엄마가 떠나고, 그보다 먼저 해피트리의 마지막 잎이 떨어졌다. 몇 개 남지도 않은 화초들은 병이 아니라 이제는 돌봄이 없어서 시들해졌다. 격리되었던 녀석도 어떻게 어떻게 살아나긴 했지만 생기라곤 없고 못생겨 보이기만 했다. 화초가 싫어졌다. 생기없는 애들은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부러 더 돌보지 않았다. 두고 보기 싫었던 어느 날 작정하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내 손으로는 못하겠어, 쟤네들 좀 정리해서 버려줘. 안락사시켜버렸다. 그렇게 집안에서 화초가 사라졌고, 작년 12월 이사할 즈음에는 어떤 메마름에도 굴하지 않는 녀석 둘만 남게 되었다. 이제 다시는 화초 키우지 않아야지, 다짐했다. 그러면서 괜히 또 울었다. 결코 시들어 죽지 않을 '나무 그림'을 한 점 샀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큰 나무 아래의 장미나무>. 마음에 쏙 든다. 엄마는 떠났고, 해피트리도 죽었지만 내 마음속 큰 나무는 여전히 든든하다고 믿고 싶었다. 물론 나는 그림 속 장미나무. 큰 나무 그늘에서 자라고 싶은 장미나무. 

 

 

 

다시는 화초 기르지 않으리, 했던 다짐을 쓸쩍 바꿨다. 다시는 '작은 화초' 키우지 않으리! 가끔 꽃 살 일이 있어 화원에 가면 잘 생긴 해피트리 없나, 살펴보게 되는 것 어쩔 수 없었다. 그림으로 채워지지 않는 살아있는 큰 나무에 대한 결핍감이 갈수록 커졌다. 지난 3월, 어머니 생신축하 꽃을 사러 갔는데... 이선희가 갑자기 내 귀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훤칠한 해피트리를 만났고, 그 인연을 거부하지 않았다. 노트북 끼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테이블 바로 옆이 베란다인데, 유리창 하나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이 녀석이 든든하다. 그리고 지난달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카랑코에 몇 개와 노란 카라를 화분 째로 사 왔다. 카라 화분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예쁜데 혼자 두면 너무 외롭잖아. 에라 모르겠다, 비어 굴러다니는 화분을 뱅갈 고무나무와 스파트필름으로 채웠다. 노란 카라도 고이 분갈이해주었다. 베란다에 생기가 그득해졌다. 글을 쓰다, 책을 보다 고개 살짝 돌리면 눈이 행복하고 마음에 생기가 돈다. 채윤이가 "오, 여기는 마담 정의 비밀 정원인가?" 한다. 비밀 아니거든. 안 비밀 정원이야. 아, 안 비밀 정원에 사는 토토로는 비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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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 쪽으로 드라이브 나갔다 올까?" 아침 뉴스에서 본 얼어붙은 북한강 사진에 끌려서 던져봤다. 그냥 해본 말인데 혹한에 신년 새벽기도 취소하고 마음이 허해진 남편이 냉큼 붙들었다. 

 

 

눈 세상, 얼어붙은 강물, 빈 가지 사이로 보이는 텅 빈 하늘. 와, 정말 좋았다. 사람 많이 모이는 쪽 말고 마재 성지 쪽으로 해서 강변으로 갔다. 누가 누가 어떻게 와서 거닐다 갔나, 사람 발자국 쫓는 재미도 좋지만! 와, 새 발자국 발견. 신발도 안 신고 얼음 위를 저러고 걸으면 얼마나 발이 시릴까? 

 

 

 

 

새 님께서 남 걱정 말고 아들 걱정이나 하란다. 발목도 차지 않는 스니커즈 양말을 신은 아들 말이다. 조금 걷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질 것 같다며 홀로 차로 돌아가버렸다.

 

 

 

 

언 강을 보더니 아빠와 딸이 뛰어 들어갔다. 물만 보면 요리 본능이 발동해서 물수제비를 뜨는 남자. 꽁꽁 언 강에서도 일단 물수제비를 뜨고 본다. 

 

 

 

 

아빠를 인력거 삼아 썰매를 타기.

동네 안쪽을 걷는데 연밭이 맨질맨질 매끄럽게 잘도 얼었다. 엇, 거기 놓인 두 대의 썰매를 발견. 역시나 경험주의자 부녀가 뛰어 들어가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상쾌도 한 기분에 젖었다. 

가만히 구경하다 사진이나 찍고 요걸로 어떻게 글을 쓸까, 머리나 돌리는 게 제일 편한데. 굳이 썰매를 타보라고. 나는 됐다고 하는데도 굳이 타보라고. 그래도 싫다고 하니 책상다리 하고 앉아만 있으라고. 못 이기는 척 내려가 앉았더니... 우후~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집을 나서서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와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파아란 하늘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아, 하늘이 있다! 나도 모르게 "와아, 파란 하늘이다. 하늘이 있어서..." 라고 했는데 세 식구의 귀 여섯 개가 모두 쫑긋하고 있는 느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말문이 딱 막혀 버렸다. 잠깐의 정적 후에 와하하하 비웃는 저 무리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하늘이 있어서, 하늘이 늘 여기 있어서... 

 

 

 

 

혹한의 한 가운데에서 두물머리 강변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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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며 식탁을 바꿨다. 6인용이다. 바꿀 때도 되었었다. 특히 의자 두 개는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의자만 좀 편안한 걸로 바꿔야지 하고 있었다. 남편의 뜻이 확고했다. 바꾼다, 꼭 6인용으로 바꾼다. 4인용 식탁이 좁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식사하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유난히 많았는데, 이유 중 하나가 비좁은 식탁 때문이라는 진단이었다. 그랬다. 맛있는 걸 해서 맛있게 먹으며 얘기가 길어지다, 마음이 쩍쩍 갈라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넷이서 정말 이렇게 저렇게 얽혀 싸웠다. 부부가 투닥투닥, (어릴 적부터 늘 있던 일이지만 유난히 심각하게) 남매끼리 티격태격, 거기다 전에 없던 국지적도 등장했다. 모자가, 부녀가 서로 더는 못 봐주겠다는 식으로 부딪쳤다. 코로나 블루 현상일 것이다. 각자 자기 문제로 어려운데, 어려운 넷이 붙어 있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꼭 그 때문도 아니다.

 

 

갱년기 현상이기도 하다.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런 책을 함께 쓸 정도로 자신감 충만한 부부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이다. 다름이 선물이 되어 더욱 풍성한 일상을 살기도 하지만 달라서 어려운, 그 고통 또한 여전하다. 연인과 부부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사랑의 기술은 싸움의 기술이다,라고 강의에서 주장하는 바.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부부의 필살기이다. 양상이 조금 달라지긴 했다. 갱년기라고, 낯선 생애 주기를 살면서 에두르고 포장하는 기술력이 떨어졌다. 유치해졌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아 쫌, 다리 내리고 앉으라고. 좁다고. 옆으로 좀 가라고. 내 자리 여기까지 침범했다고!' 

 

갱년기, 그러니까 인생 전후반을 나누는 전환점이다. 식탁 자리싸움만은 아니다. 생애 전반 애써서 달려온 중년의 남녀가 인생 내리막길 앞에서 영적 현기증을 느낀다. 낯선 내적 갈등이다. 자신과의 새로운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을 자신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밖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가장 편하고 만만한 남편에게 싸움을 걸고 트집을 잡는다. 갱년기 유치한 부부갈등은 이런 것이다. 날씨 얘기하다가도 싸우고야 만다는 그런, 한창 좋을 때 말이다. 여기에 성인 자아를 찾아 어린 시절 자신과 부대끼고, 페미니스트로서 가부장제와 투쟁하는 딸 채윤이도 한몫했다.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아빠와, 어린 시절의 폭군 엄마와 붙게 되는 것이다. 현승이라고 잠잠할쏘냐. 엄마 중독자에서 벗어나 아빠와 가까워지고 싶은 사춘기 끝 현승이는 또 엄마와 싸운다. 글 몇 줄로 써보니 간단한데, 돌아보면 여러 번 폭풍에 휘말린 한 해였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게 다 팬데믹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합리적이고 어떤 면에서 과학적인 남편의 해결방법은 일단 공간을 넓히는 것이었다. 마주 앉는 식탁을 바꿔야 한다! '이삭의 우물' 교회 목사가 되어 붙든 이름이기도 한 '르호봇'을 내세웠다. 이삭이 우물로 인한 여러 번의 다툼이 끝에 마지막으로 판 우물의 이름이 르호봇이다. 르호봇은 '넓은 공간'이란 뜻이다. 넓어져야 한다. 넓어지지 않고는 다툼을 멈출 길이 없다. 마음이 당장 넓어지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나 요원한 일이다. 일단 남편의 뜻을 따랐고, 6인용 식탁을 샀고, 막상 들여놓으니 너무 길다 싶었지만 결국 좋은 선택이었다. 넓어졌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공간이 생기니 둘러앉은 마음들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고.

 

1월 1일 저녁 가족 송년 리추얼 'Big Family Day' 시간을 가졌다. 현승이까지 글을 쓸 수 있게 된 때부터 시작하여 10년이 훌쩍 넘은 가족 행사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그려보는 시간이다. 2020년의 기억으로 마인드맵을 그린다. 작년에 썼던 기도제목을 꺼내 읽어보고 거기 비추어 지난 일 년을 돌아본다. 한 해의 기도제목을 적는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보는 것이 아팠다. 여러 좋은 이유들을 대면서, 가족들을 찔러내는 내 말이 보이고 좁아터진 마음이 보여서. 어쩌다 이 찬양 얘기가 나왔는지 준비하면서 시와 그림의 <항해자>를 듣게 되었다.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소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의 항해에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내 삶의 항해에 방향을 잡아주시옵소서

 

어쩐지 2021년 인생의 항해를 다시 출발하는 느낌이다. 2020년, 가장 큰 사건은 엄마를 천국에 보내드린 일이다. 묘하게도 엄마를 애도하는 시간을 보내고, 억지로 그 글을 마침표를 찍고 난 하반기에 아버지가 새롭게 만나졌다. 아니 새로울 것은 없다. 긴 세월 부둥켜안고 울며 뒹굴었던 그 아버지이고, 그 이야기들이다. 아버지 부재에 붙들려 살아온 40여 년 인생이 엄마 떠난 자리에서 새롭게 보인 것 같다. 아버지 엄마가 다시 보이니 내가 다시 보인다. "아버지 없는데 엄마까지 죽었으니 나 정말 고아야! 누가 나 좀 돌봐줘." 평생 내 속에서 훌쩍거리던 아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미 어른이니 나이 든 부모님은 떠나시기 마련이지.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마음이다. 계시처럼 주어진 올해의 찬양이다.

 

 

 

 

 

주방에 비해 과한 크기라고 느껴져 불편했던 6인용 식탁이 갈수록 참 좋다. 내 취향과 내 방식으론 상상도 못할 해결 방식을 제시한 그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고맙다. 4인용은커녕 혼자나 겨우 앉을 찻상보다 작은 마음을 가진 엄마로 자주 다치면서도 또 다가와주고, 좋아해 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러고 보면 연구소를 찾아주는 분들에게도 같은 고마움이다. 식탁이 넓어져 무릎 부딪히는 일 없다고 좋은 날만 있으랴. 갈등 없는 환상 같은 나날만 펼쳐지랴. 네 식구가 자기 빛을 내고 자기답게 살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또 충돌하고 찌르고 상처도 날 터. 가족의 삶이고 인간의 길이니 이 항해를 다시 떠날 밖에. 2021년, 쉰셋에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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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데이는 맨 처음 가정예배의 대체 용어였다. 용어만 대체한 것이 아니고 내용도 코이노니아 가깝게 변형하게 되었다. 분가한 해부터니까 채윤이 일곱 살 쯤일까. 일주일에 한 번 저녁시간을 함께 놀고, 노래하고, 게임하고, 기도하고, 한 방에 모여서 자는 그야말로 가족의 날이었다. 한 해의 첫날, 송구영신 예배 여파로 반드시 늦잠 자게 되는 1월1일에는 '빅패밀리데이'이다. 작년의 10대 뉴스 뽑기(아, 그러고보면 이건 아이들 생기기 전부터 둘이서 했던 놀이)등으로 작년을 돌아보고 새해 소망을 나누는 시간이다. 둘 다 글을 잘 쓰고 읽을 수 있게 된 어느 때부턴가 10대 뉴스 뽑기는 마인드맵 그리기로 바꾸었다.

 

올해엔 신년 특별 새벽기도로 좀처럼 여유가 생기질 않았다. 음력 1월1일이 가까운 날에 2020년 빅패밀리데이를 했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며 각자, 또는 가족에게 의미로 기억되는 일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떠올려보기. 네 사람의 한 해가 냇물처럼 각각 흘러가다 하나의 강물로 만난다. 아,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아, 정말 그랬네! 아아, 나도 거기에 쓸 말이 있다! 2019년 마인드맵이 완성되면 작년에 썼던 기도제목을 꺼내 읽어본다. 타임캡슐에서 꺼내는 느낌이다. 여러 소망이, 기도제목이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이루지지 않는 방식으로 응답되고 있는 것을 힘 들이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 매년 이 순간 확인하는 것은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2020년을 희망한다. 각자 쓰고 돌아가며 나눈다. 긴 설명 없이도 알 것 같은 기도제목이다.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십수 년을 이어온 가족의 리추얼. 아이들이 자라면서 의미와 깊이가 함께 자란다. 현승이는 '로봇이 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제목을 나눴던 어느 날도 있었는데. 어느 해 썼던 내 기도제목, '청년부의 진정한 부흥'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청년부 예배 전에 예배당 뒤편에서 커피 내리던 시절, 주일 밤 12시가 되도록 눈물로 마음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청년부의 진정한 부흥을 꿈꾸던 시절, 내 신앙은 광야였다고만 생각했었다. '청년부의 진정한 부흥'이란 익숙한 내 글씨를 보니, 광야였지만 동시에 진정한 부흥의 시간들이었지 싶다. 로봇이 되고 싶은 현승이, 키가 많이 커서 엄마를 넘고 싶었던 채윤이는 소원을 다 이루었다. 로봇 이상의 능력 있는 인간이 되어 있고, 엄마의 키만 넘은 게 아니라 생각의 깊이 까지 추월하고 있으니. 

 

기록, 기록을 하염없이 쌓는 일은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기록하지 않았으면, 기록 위에 기록을 쌓지 않았으면 발견할 수 없는 생의 의미가 있다. 그때 쓰며 알지 못했던 것을 십 년이 지나서 알게 되고, 그때 그렇게 써두었기에 오늘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거듭되는 Family Day를 지나며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우리는 이렇게 늙거나, 조금 후하게 표현하자면 여유로워졌다. 엄마 아빠와 아이 둘이 아니라 자기 색이 분명한 네 사람이  Family로 함께 하는 느낌이다. 머지않아 두 아이는 내 품을 떠나게 될 텐데. '넷'이 아니라 '둘'이 Family로 남을 날이 올 텐데. Family란 이름으로 쌓아온 기억, 그리고 기록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오지 않을 2020년의 Family Day, 2020년의 가족 하루는 또 얼마나 소중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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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베란다 창에 붙어서 봄의 깊이를 재본다.

앞산의 나무에서 봄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앞산을 향하여 목 빼고 기다리는 봄의 흔적이란 연두빛이다.

진하지 연하지도 않은, 명도와 채도가 내 눈맛에 딱 맞는 연두가 있다.

생각보다 더디고 더디고 더디다.


4월8일 아침.

하늘고 맞닿은 쪽만 보느라 아래 편에 무심했다.

화알짝! 진달래의 연분홍이, 활짝 피어 땅을 물들이고 있었다.

어머, 어머, 어머! 맞아, 연두만 봄색이 아니지.

이번 생일에 뭐 사줄게, 뭐 사 줄게, 하는 말에 손꼽아 생일만 기다리고 있는데

서프라이즈 선물을 미리 받은 느낌이다.

선물은 서프라이즈지!


4월14일 아침.

이 빡센 한 주가 지나가기는 할까? 갔다.

주일 아침, 비가 쏟아질 듯 무거운 하늘.

연분홍 서프라이즈 위안 삼아 더디 오는 연두를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입안이 헐고 눈에서 열기가 가시지 않아 떠지지 않는 흐릿한 눈으로 앞산을 본다.

어머, 그새 얼굴을 바꾸고 섰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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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 2층 구석 테이블에서,

그 수많은 카페들 어느 자리에서,

두물머리에서,

한강공원 잔디밭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가장 흔한 주제였다.


한 7년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다가올, 아니 오지 않는 연애와 결혼을 

스케치조차 되지 않는 막연한 그림으로 그리던 시절이었지.

막상 결혼이 성큼 다가온 날에도 예측할 수 없는 날들에의 두려움과 염려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러다 하나 둘 결혼의 문을 열고 들어가던 시절에,


"야, 너네들 나중에 아이들 낳으면 한복 입고 단체로 세배 오면 재밌겠다."


농담처럼 던지며 그려본 날이었다.

그 말을 기억하곤 명절 끝날에 큰 오빠 집으로 모여든 동생들처럼 우르르 몰려왔다.

제 엄마, 제 아빠를 닮은 아이들이 꼬물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신기할 뿐이다.

결혼 날을 받아놓은 마지막 타자까지, 정말 모두 가는구나!


빠바 2층에서, 어느 카페에서, 카톡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얘네들의 내일을 나의 기도로 가져와 절절했던 시절이 있었다.

꿈이, 꿈들이 이루어졌다. 분명.


다만 몰랐던 것, 아니 알지만 모르기로 했던 것들이 있다.

꿈은 늘 현실과 일상을 패키지로 엮어서 질질 끌고 온다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지만 끌고 온 패키지의 무게를 질 힘이 없어서 다시 새로운 꿈을, 

어쩌면 이런 경우 '허튼 꿈'을 꾸는 것으로 도망치고 만다.


꿈은★이루어졌다.

현실의 옷을 입고 온 꿈을 사는 것이 늘 오늘의 몫이다.

다들 제 몫의 이루어진 꿈, 오늘을 잘 살아내면 좋겠다는 바램이 새로운 기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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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다음 날 아침, 현승이 뺀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노닥거리고 있었다. 

거실 창 한 쪽으로 노란색 무엇이 부딪쳐 머문다.

하아,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햇빛이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납니다."

도종환 님의 싯구와 함께 정말로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저렇듯 책꽂이에 머무는 햇빛과 놀아본 적이 언제던가.

블로그 뒤져보니 마지막 날의 기록이 남아 있다.


어제가 된 현재(2017. 02. 28) 

 

합정동 집에서 이사 오던 날 아침에 찍은 사진이 마지막이다.

분당동 거실엔 책꽂이와 햇살이 입맞추는 장면이 없었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각오했지만 생각보다 더 추웠고 더 어두웠다.

쏟아지는 빛이 없어서였다.

빛은 그저 있는 것이고 기도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주어지는 것이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공평하게 비추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적 현실은, 갑과 을이 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햇빛이 멀기만 한 2년 여를 보냈다.

작년 겨울은 동면하는 짐승처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지냈었다.

그러다 어깨가 굳어버려 오십견이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잘 버틴 2년이다.

춥고 어두워 슬프긴 했지만 언젠가처럼 절망하진 않았다.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젊은 날 불렀던 노래, 남편과 내가 함께 좋아하는 이 노래가 혀끝에 맴돈다.

이사 온 다음 날 만난 햇빛에 눈물이 난 것은

내 피부에 닿지는 않았어도 여전히 어딘가를 한결같이 비추고 있었음을,

여전히 있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현관 앞에 내 집의 이름표를 대놓고 붙였다.

내 집은 빛이 있으나 없으나, 온기가 있으나 없으나

누구보다 내게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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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26 15:2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8.12.26 22:29 신고

      네, 감사해요!
      분당동 골목에 서면 멀리 불곡산 능선이 보였어요. 바라보기만 해도 참 좋았는데, 능선 가까운 곳에 살게 되니 믿어지지 않게 좋아요 :)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 들어올 때 고개 이쪽 저쪽으로 돌려보게 되는데요. ㅎㅎ

  2. mary 2019.01.02 11:00

    햇살과 초록나무와 책이 가득찬 책꽂이 환상의 조합!
    축하라는 말로는 부족할거 같은 이사를 하셨군. 보고싶네.

  3. 삼지니 2019.01.27 23:52

    힘들고 어두웠던 시절, 가난 때문에 처절했던 순간 떠올리라 하면 어두웠던 집에서의 기억 같아요.
    집 구할 때 햇빛이 많이 드는 집을 가장 우선순위로 해서 구했어요ㅎㅎ
    햇빛이 비추어 눈물이 난다는 말씀이 뭔지 엄청 공감되네요. 축하드려요^^



2017년, 올해도 대림절 첫 번째 초에 불을 밝혔다.

아이들과 한 자리에 앉아 기다림의 마음을 나누고 보라색 초에 불을 붙였다. 

문득 돌아보니 작년 대림절은 특별했다.

어쩌면 우리 생애 가장 특별한 대림절로 남을 수도 있겠다.

토요일마다 광장의 수십만 촛불 파도에 몸을 실었고, 주일 밤에는 대림초를 밝혔다.

작년 이때 ‘심판’을 상징하는 보라색 초를 밝히고 이 노래를 불렀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작년에 남김 남긴 영상 을 다시 본다.

참 절절했고 막막했었구다.

일 년 후의 오늘을 상상하지 못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주님의 정의와 평화가 참으로 더딘 것만 같다.

신랑이 더디 오기에 기다리는 시간 기름을 다 써버린 다섯 처녀들의 마음에 공감이 된다.

더디 오시는 기다림에 지쳐 '안 오실 수도 있겠다' 포기하는 마음이 될 때가 있다.

그분, 그 나라는 결국 오신다! 반드시 오신다!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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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10시 30분.

주중 피로를 풀기 위해 늦잠을 자거나, 아니라면 그에 준하는 여유를 누려야 할 공식 ‘잉여의 시간’.

이 시간 교회 청년들과 ‘커피&메시지’란 이름으로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메시지 성경 읽기 시간을 갖는다.

맛있는 커피가 있고, 이야기처럼 읽히는 메시지 성경이 있다.

무엇보다 '자발'적 모임이다. 공식적인 인도는 내가 한다.

‘목사님, 저희 성경공부 해주세요. 토요일에 목사님 설교준비로 바쁘시면 사모님이 해주셔도....’라는 청년들의 요청이었다. 아하하, 사모님을 원하는구나! 직관적으로 느꼈고. 목사님은 주일 설교 덕분에 ‘가오’는 챙겼으니 됐고.

커피, 이야기 책 같은 성경, 자발성이 있고, 없는 것은 강압.

매주 진도가 있지만 다 읽어오지 않아도 된다.

일이 있거나 늦잠을 잤을 시에 빠질 자유가 있다.

일주일 내내 이런저런 강의와 소그룹 상담을 이끄는 내게도 가장 편한 모임이다.

애써 준비할 것도 없이 가서 커피나 내리고 듣는다.

마음껏 문제제기 하고 의문을 품으며 함께 답을 찾아간다.

별다른 준비는 없어도 은혜가 없는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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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커피를 마시다 충동적으로 화분 정리를 했다.

'충동적'이란 말이 좋다.

갈수록 주먹 불끈 쥔 '의지와 치밀한 계획'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

특히 멋진 결기로 대단한 것을 이루는 것이 좋게 느껴지질 않는다.

나이 탓일 수 있다. 아니 단지 나이 때문이 아니다.

마음과 마음의 병, 그리고 신앙에 관해 질문하며 물고 늘어지다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렇다.

'내가 했다고, 내가 했다니까'

이루어 놓은 것, 성취감, 드러냄, 돌아오는 찬사, 가 참 좋은데.

그러느라 잃어버린 것을 알아채지 못함으로 우리는 단절과 외로움의 바다에 허우적댄다.

나는 갈수록 주먹 꽉 쥔 의.지.가 쓸모 없다 느껴진다. 


**

화분 정리 했다, 하면 될 일.

의지니 충동이니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 뭐 캥기는 것이 있는 모양.

(예, 자수합니다)

충동적이라고 했지만 계절이 바뀌면 으례 하는 일이다. 

해야 할 일 목록에 있던 걸 갑자기 하게 된 것 뿐.

충동적 화분 정리가 아니라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 아니 살초(殺草)의 찜찜함 때문이다.


***

여름 내 말라버린 화초의 시신을 하나를 수습해서 화분을 비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멀쩡한 난초 하나를 쑥 뽑아서 쓰레기 봉투에 (처)넣었다.

멀쩡한 난초 화분이었다.

잎은 다 바닥에 붙어 있고 지지대로 꽂아둔 굵은 철사에 의지하여 삐죽하니 서 있지만,

그래서 살아 있는 느낌(생기)이라곤 느껴지지 않지만  때가 되면 꽃을 어김 없이 피우곤 하였다.

꽃이 피면 반가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꽃이 '이게 웬 조화냐!' (생화냐!)

꽃이 피어도 생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

뭐 했다고 저 분위기도 안 맞는 난을 집에 들였을까? 

몇 년 전 망원시장 입구 트럭에서 산 것이다.

화분 여러 개를 사면서 꽃이 핀 난을 5천 원만 더 내고 가져가라 기에 생각 없이 들고 온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난 화분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다.

으리으리한 교장실 창가에 핑크 색 리본을 매달고 즐비하게 서 있는 난 화분.

그 방의 주인인 교장은 전교조를 탄압하고 참교육을 가로막는 적폐, 이런 각이다.

또 모시 옷 한 벌 빼입고 난초의 잎을 닦으며 "마, 니만 믿는다. 알아서 하기라'

차분하고 고상한 어투로 살인교사하는 조직의 큰 형님, 이런 그림도 있고.


*****

설거지 하다 문득 '도통 애가 자란다는 느낌이 없어. 그러니 살아 있는 것 같질 않지'

라고 혼잣말을 했다. 생매장한 난초 말이다. 

신혼 때부터 우리 집에서 죽어 나간 화분이 셀 수도 없지만 살아 멀쩡한 화분을 버린 적은 없으니.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꽤나 신경질이 쓰이는 것이었다. 

자란다는 느낌, 성장하고 있다는 표식이 없는 것이 참 싫구나. 그랬구나.

'성장'은 내게 참 중요한 말이고 의미이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고 믿고, 자라고 싶잖아. 난.

성장 가능성을 보이는, 자아의 숲이 헐렁한 사람을 무조건 좋아하지. 난.

빽빽한 의지와 완고한 자아로 숨이 막힌다면 화분 하나 희생양 삼아 숨통을 트는 것도 나쁘지 않지.

멀쩡한 화분 생매장 한 죄를 스스로 사하기로 한다.


******

다육이 화분 여러 개가 겸손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육이를 사랑하는 집사님께서 주신 것, 

지난 학기 교회 에니어그램 여정 마치고 선사받은 것들이다. 

지난 봄 민맘이 가져온 잘 자란 다육이가 든든하게 서 있다.

조르르 섰는 아기 다육이들의 엄마같다.

새벽마다 드리는 한결같은 기도의 효능이 친구가 두고 간 화분에까지 미치는 것일까.

의연하여 믿음직하고, 바라볼 때마다 힘을 준다.

에어컨 바람 바로 옆에서 추운 여름을 이겨낸 초록이들과 가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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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9.16 11:59

    그 다육이 살때,화분이 넘 예쁘고 햇빛 잘 받아 끝이 붉은 그 빛깔이 너무 이뻐서 골랐다가
    사실 가격 땜에 헉 놀랐다가ㅋㅋㅋㅋㅋㅋ
    쪼꼬만 초록이들 사랑하는 신실이 싱크대앞에
    언제 내가 또 놓아줄 기회 있으랴 하며 샀다는......모쪼록 오래오래 살아남아 네 마음에 작은 위로들을 건네길 소망해~♥

    • BlogIcon larinari 2017.09.18 19:27 신고

      그러게 말야. 저렇게 튼실한 어미 다육이들 가격을 내가 아는데...... 너무 좋으면서도 조금 마음이 쓰였지. ㅎㅎㅎ 이런 저런 마음이 듬뿍 담긴 줄 알기에 더욱 사랑스럽고 고마운 엄마 다육이! ^^



식사를 마치고 커피 내리는 사이.

그 짧은 시간, 김씨 셋은 각자 취향 놀이에 빠져든다.


아빠 김씨는 새로 온 책에 빠져 의지인지 테이블인지 구분도 못하고 앉아 있고,

딸 김씨는 워너원인지 아이돌인지 돌아이인지에 빠져 스마트폰에서 헤어나올 줄 모른다.

아들 김씨는 수련회 휴유증으로 기타 들고 교회 노래 아무거나 치기, 딩가딩가 딩가딩가.


혼자 찬양 집회 하던 변성기 아들 김씨는, 

잠시 고래고래 꽥꽥 개굴개굴 하다 제가 듣기에도 거북했는지 노래를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음정 유연성이 녹록치 않은 제 목소리에 맞춰 즉석으로 노래의 키(key)를 낯춘다.

다시 딩가딩가딩가딩가 꽥꽥꽥....... 뚝!

덜컥 낮춰 놓은 key로 코드진행이 막혀 노래는 다시 멈춰서다.


스마트폰에 빠진 누나가 미동도 하지 않고 

"씨샾마이너!" 던져준다.

와, 이것은 음성지원 악보다.


씨샾마이너 잡고 다시 딩딩가가가딩가딩딩가딩........

노래는 계속 가는데 뭔가 재미가 없다.


테이블 위에 올라 앉은 아빠가 책에 꽂은 눈동자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스윙이지, 스윙으로 쳐!"

와아, 살아 있는 기타 교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름다운 하나님의 열매....... 딩가딩가 딩가딩가


'주를 향한 나의 사랑 멈출 수 없네, 멈출 수 없네........'

변성기 꽥꽥이 노래는 이제 멈추지 않는다. 앗싸앗싸 뽕짝뽕짝.


"어머, 이건 찍어야 해!"

드립포트 던져놓고 카메라 들고 설치느라 커피는 과추출 되었지만.

이것은 득템. 가족 악보, 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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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효정 2017.09.03 23:41

    역시 멋져요- 사랑하는 가족


새로운 놀이터가 하나 생겼는데 서현역에 있는 알라딘 중고매장이다. 걸어서 왕복 5km라서 운동 삼아 다녀오기 딱 좋은 거리이다. 가족들의 주문을 접수하여 백팩 따악 메고 비오는 길을 걸어 알라딘중고매장을 다녀온다. 돌아오는 길,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어깨에 맨 가방에 누가 작은 돌멩이 하나 씩 티 안나게 집어 넣는 듯. 걸을수록 무거워진다. 무거울수록 뿌듯함은 더 크다. 식구들 각자에게 꼭 필요한 책을 구했고, 도합 이만 몇천 원이라니~ 이것 참, 무겁지만 가볍다. 



수년 전 아주 무기력한 날('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도 하지)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책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때 우연히 손에 잡은 책이 <책만 보는 바보>였는데, 영락없이 내가 책만 보는 바보였다. 요즘은 전에 없이 소설에 빠져 보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잠>이 '꿈'에 관한 내용이라는데 낚여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예약주문을 했다. 이 책을 손에 잡으면서 뭔지 모르게 마음을 못잡고 있는 터에 '소설만 보는 바보'의 삶이 시작되었다. 밀렸던 소설읽기 숙제 아니고, 놀이나 몰아서 하자.


옆에서 힐끗거리던 현승이가 <잠1>을 집더니 휘리릭 읽고, 2권 어서 읽어내라고 성화였다. 그러더니 '베르나르 베르베르, 완전 내 스타일' 하고 빠져들었다. <웃음> 1,2권을 금세 읽고 <뇌>를 비롯한 다른 작품 사내라고 자꾸 주문을 넣는데. 일단 사와서는 기말고사 마치고 읽기로 하고, 몰래 책을 감춰 버렸다. 거실에 분 소설 열풍에는 아빠의 부채질도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을 사들고 오는 바람에 이래저래 뽐뿌질이 된 것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글쓰기 강의를 하였다.  글쓰기 강의, 그것도 비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라서 내심 혼자 짜릿했다. 쓰는 얘기를 하자니 읽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가 글을 쓰고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이들은 어떤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아이들이요?! 

TV 없는 거실 18년 째이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천장 보고 누워 있던 시절부터, 보행기를 타고 기동력을 가진 때도, 네 발로 기어다니던 때도, 그 이후에도 배경은 늘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이었다. 그런 거실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 엄마 아빠는 '세트로 책만 보는 바보'였다. 아이들 독서교육이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는가?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아닌가. 헌데 현실은 그 반대. 책에 멀미가 난 것이다. 게다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뺏어간 책은 나쁜 놈! 한동안 두 아이 모두 그 어느 집 아이들보다 책에 관심이 없었다. 아, 환경의 역습이구나!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진즉에 '책 읽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포기했다.


인생이 그리 짧지 않으니 뭐든 속단 내릴 필요는 없지 싶다. 어젠가부터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 책에 관한 한 덕후 기질이 있는 현승이는 꽂히는 책에 깊이 꽂히고. 작년에 꽃친을 했던 채윤이는 그때 그때 꽂히는 대로 짧은 흥미를 가지고 읽는다. 요즘 거실이 조용해서 둘러 보면, 넷 중 셋은 책을 들고 있는 그림이 많다. 이게 웬일이니! 아빠, 엄마, 현승이는 비슷한 소설을 돌려 보는 동안 채윤이는 의외로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반지성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채윤이의 요즘 취향이 살짝 적응이 안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가 좋다니까! 큰 기대는 없이 '글이 그렇게 좋으면 하루 한 편씩 필사를 해봐' 했는데. 대박, 얘가 그 말 듣고 꾸준히 필사를 하고 있다.


아침 먹고 설거지 가득 쌓아 놓은 채 소설 한 권 붙들고 앉아 하루를 보내는 요즘, 소설만 보는 바보'다. 꼭 써야 할 글에는 손도 머리도 움직이지 않고, 사는 게 자꾸 씨리라라라(아, 이거 오랜만! 재방송 링크 한 번 더! ㅎㅎㅎ ), 될 대로 돼라, 약간 핀이 나간 상태이다. 그러니까 바보라는 건데. 이런 날도 있지, 이 또한 지나가리, 힘이 나지 않을 때는 힘 내지 말자, 하며 살고 있다. 거실에 나말고도 바보 셋이 더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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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의피리 2017.06.28 09:58

    한동안 책이 안읽혔는데, 그럴 때 소설이 딱이네! ^^

  2. 2017.07.03 11:14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7.07.10 21:24 신고

      아, 엄마가 되는군요! 이런 엄마의 아가로 태어나는 그 아가는 참 좋겠다. ^^ 축하해요.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 되기 위해서 내 엄마와 얽힌 마음의 실타래를 하나 씩 잘 풀어가는 것은 꼭 필요한 일 같아요. 쉬운 일 아니지만 한 걸음 씩이라도 나아가길 바라고 기도 할게요. 저도 문득 생각해요. 짧고 우연한 만남과 그 장소가 그립기도 하고요. ^^



아끼고 존경하는 목사님 부부가 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보다는 '두 시인'이라 부르면 좋을 사람들입니다. 배움을 얻지 못하는 만남이란 없지만, 만나 대화할 때마다 내 마음에 특별한 깨달음의 씨앗을 뿌리는 분들입니다. 나이는 우리 부부보다 한참 어리지만 존경이란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합정동의 화력발전소 앞 오래된 주택에서 백만 볼트 배터리 장착한 두 아들을 키우고 살았습니다. 내외가 둘 다 천생 시인이었고, 집사님(이라 쓰고 사모님이라 읽어야)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라서 흙과 햇볕과 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공간에 갇혀 에너지 폭발하는 아드님들을 키운다는 것은 우울감을 부르는 일이다 싶어 늘 조금씩 걱정이었습니다. 이사 하라고, 이사 하라고, 남편이 시인 목사님을 찔러대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살던 집을 허물고 다시 집을 짓는다는 주인의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남편과 나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교회사임하고 쉬던 어느 날,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시인의 집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밖에서 보던 집이 아니었습니다. 현승이가 살짝 옆으로 오더니 '엄마,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이나 아니면 일본 영화에 나오는 집 같아.' 소곤소곤합니다. 에너지 백만 볼트의 아드님들 덕에 멀쩡한 가구가 남아 있을 리 없고, 번듯한 인테리어 소품 따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멋스러운 집이었습니다. 꿈이 꿈틀대고 있다고 할까요. 광목천으로 가려진 선반, 책꽂이도 없이 멋대로 쌓여 있는 시집을 비롯한 책들. 바로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집입니다. 집은 집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라는 진리를 새롭게 실감합니다. 그리고 시인의 가족은 한 달 만에 합정동의 좀 더 넓고 쾌적한 빌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가격에 한 달 만에 집을 구하고 이사.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걸 보면서 옆에서 얼마나 부러웠는지요. 석 달이 넘도록 집이 나가지 않아 마음 졸이던 우리 상황과 비교되었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차별대우에 섭섭하고 화가 났습니다. 내 일처럼 기쁘면서도 진정 내 현실을 떠올리면 괜스레 마음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녀석아, 내가 누구냐! 네 하나님이다.' 다 시기가 있다는 듯 우리집 이사 역시 해결되었습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손놓고 좌절한 시점에 적절한 만남, 적절한 다리놓음, 고마운 배려로 된 일입니다. 남편이 무척이나 원했던 교회 앞 동네,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3개월 체증이 내려가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감과 기쁨도 잠시. 이사할 집의 치수를 재러 가서 자세히 보니 처음 슬쩍 봤던 것보다 더 낡았고, 각이 안 나오는 공간이며, 뭔가 상당히 견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실 가득한 책꽂이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지, 주방과 거실이 하나인 휑한 공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근심이 많아진 찰나, 새로 이사한 시인의 집에 잠시 들렀습니다. 역시나 평범한 구조의 빌라는 이야기거리 꿈틀꿈틀 하는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부럽다, 부럽다 하면서 우리 집 공간 배치가 걱정이라는 얘기며 이사 이야기로 수다를 이어가는 중이었지요. 내 귀를 뚫어 마음과 영혼까지 헤치고 들어오는 시인의 목소리입니다.


"그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본 시점이었어요. 그 공간 안에서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이 바닥 났을 때 이사를 하게 된 거예요."


아, 상상력! 볕도 들지 않은 좁은 집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었던 것은 끝없는 상상력이었구나!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한 마디로 온갖 선입견의 성들이 무너져내립니다. 반듯한 사각형의 아파트 거실, 자본주의적으로 획일화 된 집의 형태에만 고착된 그림이 사라지고 온갖 상상력의 풍선이 날아 오릅니다. 일단 이사 하고 짐을 넣어봐야 할 일이지만, 상상력이 뭔가 크게 일을 낼 것 같은 예감입니다. 이사 전날에 집사님 두 분의 도움으로 아이들 방에 페인트 칠을 하게 되었습니다. 벼르고 벼르던 일인데, 마음에 쏙 드는 거실 탁자를 마음에 드는 가격에 구입해 놓은 터였고요. 이사 당일, 짐을 들이며 순간순간 막막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포기하고 않고 상상력의 풍선을 날려대다 보니 아주 마음에 드는 거실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한 통속이던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기까지. 벽에 붙어 있던 그릇장이 등판때기를 드러내며 주방을 가려주었고, 쓰던 컴퓨터 책상은 안성맞춤 아일랜드 식탁으로 거듭납니다.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이런 거실이 나오다니! 나의 상상력이 대견하여 누구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 거실만 살려놓은 상태입니다. 채윤이는 나무틀 창문이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제 방에 도통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오래 된 싱크대에 좁고 꽉 막힌 주방이며, 세탁기 들어 앉은 화장실 등은 정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상하라, 끝까지 상상하라! 채윤이를 데리고 2001 아울렛에 가 마음에 드는 커텐을 고르게 하고 달아주었습니다. 칙칙한 창이 가려지니 비주얼이 달라집니다. 토요일 오후에 비데 설치하러 오신 기사님. '토요일인데 오후까지 일하시네요.' 한 마디 건넸는데. 쌓인 게 많으신 모양인지 토요일 근무에 대한 고충을 쏟으십니다. 급 친해진 형국. 화장실을 보시더니 '와, 한 벽이 창문이네요' 하십니다. '그러게요. 이런 화장실 처음 보시죠?' 했더니 '좋죠. 습하지도 않고.....' 그 말에 다시 귀가 뻥 뚫립니다. '아, 맞다! 창문 열고 건조시키기 좋고, 욕실이 늘 뽀송뽀송하겠네. 다음 날 아침에 창문 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마주하고 (우리 집에서 해가 제일 잘 드는 곳이 화장실) 일을 보는데, 해.....행복하대요. 자, 이렇게 화장실도 애정으로 접수.


문제는 주방입니다. 거실과 분리되기는 했지만 가 서고 싶지 않은 싱크대 앞입니다. '나의 성소 싱크대'는 다 틀렸다, 싶지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부엌 한 벽의 장식용(으로 추정되는) 기다란 창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1도 기대하지 않고 밀어봤습니다. 어, 혹시 열리는 거 아냐? 아, 아니구아. 열리지 않습니다. 혹시? 하고 옆으로 밀어봤더니...... 대애박! 옆으로 밀리며 창이 열리는 것입니다. 소리 지를 뻔했습니다. 주님, 밖이 보이는 주방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육이 두 개를 가져다 창틀에 세우고 포스트잇에 몇 글자 적어 싱크대 문에 붙이니. 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입니다. 주방까지 애정으로 접수. 이로써, 집의 구석구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심심하면 남편과 마주앉아 작명놀이 하곤 하는데요. 몇 년 전에 지은 이름입니다. 내 집 그리스도의 마음. 물론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의 패러디이고. 내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셔야겠지만 내 집 구석구석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영적이라는 것이 물적인 것과 반대개념이 아니기에, 영적인 삶은 고통과 혼란을 포함한 일상의 모든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내 집구석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된다면! 제가 입버릇처럼 말하듯 '누추하여 거룩한 현재'를 삶이 아니겠습니까. 결혼 후 열한 번 이사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수월하게 된 적이 없다며, 좌절도 낙심도 했지만. 그 어떤 집보다 더 애정하는 내 집이 될 예정입니다. 내 집 그리스도의 마음, 내 집구석 그리스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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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y 2017.03.13 21:17

    내 집 그리스도의 마음, 한 시 빨리 내 눈으로 접수하고 싶사옵니다. 밖이 보이는 주방은 부엌일의 지겨움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지, 확실히. 일본영화에서 본 아기자기한 집 인테리어가 생각나네.

    • BlogIcon larinari 2017.03.21 11:42 신고

      상상 밖의 집구석이 되어서 아침마다 새롭게 놀라고 있어요. ㅎㅎㅎ 어여 오셔야죠.

  2. 2017.03.16 21:5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7.03.21 11:46 신고

      와, 축하축하!
      독립은 늘 좋은 거.
      더 멀어졌지만 작심하고 함 와요.^^


가정예배, 가족회의..... 무엇이라 불러도 좋을 가족의 quality time을 family day라 부릅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같이 게임하고, 노래하고, 기도하다 한 방에 몰려서 잠자기.

이렇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맞는 1월1일에는 Big Family Day입니다.

일단 늦잠을 자고, 사우나에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로 가거나, 예쁜 카페에 가기도 합니다.

페데를 위해서 강화도까지 가서 맛있는 케잌을 먹고온 날, 엄마의 장이 꼬여버려 일이 꼬여버렸습니다.

며칠을 보내고 조금 늦은 2017년 빅 패밀리 데이 세러모니를 가졌습니다.





해의 이슈를 마인드맵으로 그리며 가볍게 1년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작년 페데에 썼던 각자의 기도제목을 꺼내보지요.

방금 그린 마인드맵과 겹치는 단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감회에 젖어 잠시 말을 잊습니다.

그리고는 2017년의 기도제목을 각자 적고 돌아가며 나눕니다.

마지막은 서로를 위해, 우리의 일 년을 위해 기도하고 마치지요.





평소 생각이 깊고 마음 헤아리는 감각이 남다른 현승이는 이상하게 멍석을 깔면 돌변합니다.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냐!

오글거려인지 분위기를 깨는 말과 행동으로 눈총을 받곤합니다.

헌데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스스로 진행자를 자처하더니 마인드맵을 그려라, 기도제목을 써라, 이 순서로 나눠라,

그리고 대각선 방향에 앉은 사람과 기도제목을 맞바꿔서 돌아가며 기도해라.

군더더기 없는 진행으로 엄마의 버럭 없는 평화로운 마무리를 했습니다.


한 해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 마음이 모아놓은 기도제목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제 엄마 아빠의 입장과 마음까지 헤아리는 아이들의 기도제목입니다.

"엄마 아빠의 아들 딸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

신파조 대사 같은 말이 자꾸 마음에 사무치는데..... 엄마의 기분 탓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보내고 맞이하여 이 거룩한 현재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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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의피리 2017.01.12 16:15

    다 컸다. 드.디.어. 현승이가 사회도 보고, 덕분에 엄마의 "쀍!"도 없는 패밀리 데이를 다 하다니!
    무엇보다도 이렇게 믿음의 가정 끌고 가는 신실하신 분의 그 신실성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 BlogIcon larinari 2017.01.12 22:52 신고

      사실 조금 놀랐어. 현승이로서는 꽤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위로가 되더라고. ㅎㅎㅎ





무엇이 됐든 지나치게 애 쓰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

쉴 새 없이 일을 하거나 공부하면 몸이 상하고,

가만히 앉아서도 머리를 끝없이 돌리며 애를 쓰면 마음이 상한다.

힘에 지나치도록, 기름을 짜내듯 내 존재의 진액을 추출해내면

짧은 시간 찬사를 받으며 성취감 느낄 수 있겠으나 몸과 마음을 상하게 된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손내밀어 닿는 곳에서, 내민 손을 잡아주는 사람과 기쁘게 잘 지내는 것이

평범한 사이즈의 마음 그릇을 가진 나의 최선이다.

얼마나 자주 내 그릇에 넘치는 '완벽한 관계'에 매여 살았던가.

지금도 얼마나 자주 그 유혹에 빠져들어 근심하고 실망하고 짜증내고 있는가.

겸손을 가장한 오만함이며.


보잘 것 없고 을씨년스럽기만 한 우리 동네 작은 길가에 벚꽃이 터지던 날.

내민 손 잡아준, 동생같은 집사님(이라 불리는 청년같이 생긴 사모님)들과 놀았다.

음식을 간단하게 하시는데도 뭔가 근사하다는 칭찬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레시피 공개를 빙자하여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부끄럽다.

둘이,

다섯이,

넷이,

셋이

멤버 수가 바뀌면서 대화의 깊이도 훅 들어갔다 빠지고,

눈물 짓다 깔깔거리고.

추가 요금 없는 커피 리필은 기본.

하루의 만남이 풍성하기도 하다.


선물받은 것 사진 찍어 올리는 거 민망한 일인데,

일상 노출증 환자로서 참을 수가 없다. 에라~ 공개한다.

남기고 간 선물들을 모아 놓으니 꽃다발 같다.

화룡점정은  아래의 종이 액자이다.

present is present

구역장으로 갈팡질팡 하는 나를 '정리해주는 지혜자' 역할을 하는 집사님 선물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오늘을  정리해주는 선물. 

오늘이 선물이고, 선물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 여기서 내민 손 잡아주고 계산없는 말을 주고받는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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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우쭈꿈 2016.04.02 10:14

    우와~ 글너무 조아요모님♥
    요즘 제 모습도 다시금돌아보게됩니당 ㅠ0ㅠ

    • BlogIcon larinari 2016.04.03 23:31 신고

      쭈꾸미가 모님이 하고픈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구나!
      너무 이쁘잖아. 쭈꿈! ㅎㅎㅎㅎ

  2. 2016.04.02 13:4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4.03 23:35 신고

      젊은 날에 대해서 아쉬움은 저도 엄청 커요. ^^ 치명적이죠.
      지난 날의 부족한에 붙들려 소모적으로 보내지 않을 방법은
      지난 날 부족함으로 인한 오늘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용기를 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야만 오늘의 부족함으로 내일 아파할 일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오지 않은 실패를 미리 가져다 좌절하지 말고 오늘의 사랑을 누리세요. ^^

  3. 2016.04.03 12:1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4.03 23:43 신고

      꺅!!!! 목사님! ^^

      낮에 밖에서 댓글 보고 얼른 달려가서 쭉 읽었어요.
      듬성듬성 들려주신 이야기 속에서 스펙타클한 일상을 느꼈구요.
      목사님과 사모님의 경험이 저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제게만 그런 게 아니라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삶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동일할 것 같다 싶구요.

      암튼, 궁금했는데 오가며 소식 듣고 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그쪽으로 가서 조금 더 떠들게요. ㅎㅎㅎㅎ

    • 2016.04.05 04:46

      비밀댓글입니다

  4. 2016.04.03 16:4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4.03 23:44 신고

      글 이상을 읽어 내셨네요. ^^
      글에 담긴 제 마음과 공명했나봐요.
      힘내요. 완전 응원 할게요!

  5. 동네아낙 2016.04.03 18:49

    집사님 반가워요 ^^ 저 위의 선물을 보니 동생같은 집사님 한 분은 똭 알겠네요 ㅎ 멀지만 가까이서 응원합니다. ^^

    • BlogIcon larinari 2016.04.03 23:46 신고

      집사님, 너무 반가워 눈물 날 뻔.
      성산초 학부모 된 루하맘이라 집사님 얘기 한참 했어요.
      성산초 학부모 모임 한 번 합시다. ^^
      졸업생 엄마가 소집하겠슴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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