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머무르는 가족의 시간. 2022년 Big Family Day를 함께 했다. 해마다 1월 1일에 늦잠 자고 일어나 맛있는 것 먹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으며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그려보는 가족의 리츄얼이다. 교회 특새 한 주를 보내고 뒤늦게 게 시간을 가졌다. 특별 새벽기도, 시편 23편의 기도로 시작하는 2022년이다. 주제는 "부족함 없는 삶"

"부족함 없는 삶"

기도제목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것인데. 기도의 자리는 결핍의 존재만이 가 앉는 자리인데, 그 자리에 앉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선언하거나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소 역설이다. 십수 년 전, 어느 날 시편 23편 1절을 충격적으로 만났던 기억이 있다. 에니어그램 7유형을 유형을 마주하며 죽음 같은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7 유형을 벗어날 수 없는 나, 7 유형이 저지르는 죄, 나의 죄 된 모습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 어간의 어느 새벽기도에서였던 것 같다. 아니면 카타콤 같았던 하남의 그 아파트 거실에서 묵상하던 시간이었던가.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be in want.”

시편 23편 1절의 영어 성경 버전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내 삶은 결핍 그 자체인데, 나는 이렇게 금이 갔고, 부서진 존재인데 이런 나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야 하냐고요. 저의 이 욕구들, 끝없는 욕구들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인데요!" 눈물 콧물 흘리던 중... I shall not be in want. 이 문장이 빨간 색의 볼드체로 훅 들어왔다. 결핍의 존재 그대로 그분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체험이었다.

그때 분명히 알아들었다. 밑 빠진 독을 가득 채우는 방법은 무얼 자꾸 들이붓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풍덩 빠지는 것임을. 잘 알아들었다. 자기혐오의 눈물이 많이 사라졌다. 알아들어서 끝이 아니고 알아들은 것을 살아내는 것이 진정 알아들음이기에 알아들음은 늘 새로운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문제는 너무도 자주 그것에 실패한다는 것이고. “이래도 니가 부족함이 없어? 이래도? 금 가고, 부서지고, 결핍된 주제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가 BGM처럼 깔려 있다. 가끔은 볼륨을 한껏 키우고 영혼을 뒤흔들기도 한다. 여지없이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온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be in want.” 2022년 신새벽. 이 말씀을 다시 알아듣는다. 십수 년 전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내게 부족함 없다, 고백하며 돌아섰을 때 그분이 이끄신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를 기대하건만,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be in want. 두 번 말하고, 세 번 반복하면서 그 자리에 머무른다. 다른 모든 말을 멈추고, 죽음의 골짜기를 빠져나갈 궁리도 멈추고 I shall not be in want. 밤이 가장 어두운 때 별이 가장 밝게 빛나는 것처럼, 내가 감각하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나 어쩌면 거기가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인지도 모른다. 내 몸과 정서적 감각이 영혼의 그것과 다른 길을 갈 때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누추함과 고통에 머무르는 것 밖에는 없다. 

맛있는 식사와 예쁜 케이크도 준비하지 못했고, 모두 조금 기운이 없고, 피곤한 채로 2022년 'Big Family Day'를 보냈다. 해마다 우리에겐 들뜨고 설레는 시간이었는데 전에 없이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진지했다. 현승이가 스무 살이 되었으니 모두 성인이다. 맛있는 케이크 때문에 기다려지는 'Big Family Day'의 시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족의 멈추는 시간을 누리는 것. 지난 일 년의 나,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리가 되었다. 가족들이 기도 제목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어쩐지 다 조금씩 아파서 기도를 하자니 눈물이 나는데, 그래서... 부족함이 없었다. 한 해의 일상, 또 많은 좌절과 부서짐으로 결핍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겠지만 우리의 영혼은 부족함 없는 현존을 살기를. 여호와의 집으로 돌아가 거하는 영혼의 감각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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