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 보니 결혼하고 연말마다 이 시간을 가졌다. 첫 두 해의 기록은 아마도 당시 교회에서 '1청'이라 불렸던 신혼부부 공동체 카페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제안을 하고, 가정별 10대 뉴스를 카페 게시판에 올렸다. 블로그를 더듬어 보니 2002년 기록부터 남아 있다. 현승이가 생기던 해이고, 채윤이가 또렷한 말을 하면서 자기 인격을 드러낸 해이다. 그해 10대 뉴스 안에 들어 있었다. 아마 채윤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하루 여행을 다녀온 모양이고, 거기서 둘이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게 20년이 되었다. 
 
남편의 목회 형태가 바뀌면서 성탄절부터 연말, 신년 첫 주까지 가만히 머무를 시간이 없어졌다. 특별새벽기도가 끝나는 1월 첫 주일, 그러니까 교회력으로는 주현절 저녁이 우리의 Big Family Day이다. 근사한 외식, 맛있는 케이크 같은 것으로 유혹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모이는 성인 넷의 리추얼이 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이 되어 지지고 볶는 시간을 기록한 것이  Big Family Day의 역사인데... 2023년은 넷에서 셋이 된다. 현승이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게 되었다. 셋에서 둘이 될 날도 머지않았고.
 
현승이가 성인이 되었고, 누구보다 행복한 고3으로서 나름대로 치열한 대입의 시간을 보냈다. 채윤이가 더 큰 꿈을 꾸면서 여러 면에서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고, 남편은 현재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편안한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늦게 시작한 공부로 조용히 부대끼며 담을 넘은 자의 고충과 기쁨을 함께 맛보고 있다. 각자 존재의 빛깔이 더 뚜렷해지며 가족의 연대는 느슨해져 간다. 비어 가는 느낌과 아쉬움이 마음 한 켠에 찬바람으로 분다. 누구보다 채윤이가 가족의 내적 외적 변화를 아쉬워라 한다. 오래전 이런 띵언을 남겼던 채윤이다. "아쉬운 것은 아쉬워야지 어떻게 하겠어?" 그래, 아쉬운 것을 아쉬워하면서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여야지. 무엇보다 지금의 모든 것을 감사하고 누려야지.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심지어 혼자이든. 지금을 누려야지.
 
호모 아키비스트, 기록하는 인간, 기록하는 가족이 된 것은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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