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좋은데 비도덕적인 행동을 일삼는 목사님. 믿음은 좋은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 틀어져 고립된 채로 살아가는 신앙인. 이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이론적으로 신학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신앙과 인격이 겉도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 야경에서 십자가를 찾는 것만큼 쉬운 일이지요. 그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드러나는 내 모습에는 관심이 지대하지만 보이지 않는 속사람을 돌아보는 데는 취약한 현대 사회, 그 속의 교회문화, 신앙교육 때문일 것입니다. ‘성찰 없는 신앙’은 우리 자신의 영적인 위기이며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영성의 길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의 기도만 봐도 그렇습니다. 내 바람을 쏟아내는 통성기도는 쉽지만 침묵 속에 그분의 음성을 듣는 기도는 10분을 채우기도 어렵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일상에서 물러나 고독에 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목사님은 설교만 잘 하면 되고, 성도들은 주일 성수나 십일조 등을 통해 믿음을 입증하는 외면적 삶에만 치우쳐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을까요. 우리는 자기 성찰을 위해 골방으로 들어가는 방법,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길을 완전히 잃은 것 같습니다.


--- 출간 임박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의 에필로그 일부분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 성찰의 방법 하나로 에니어그램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 책은 내면을 돌아보고 내적인 삶을 살려고 그 방법을 찾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에니어그램은 인간의 내면, 즉 자신의 속사람으로 안내하는 좋은 지도입니다. 아홉 개의 성격유형은 영적인 의미로 아홉 개의 ‘옛 자아’ 또는 ‘거짓자아’ (엡 4:22)입니다. 나의 습관적인 행동, 그 행동 아래의 동기, 나조차도 속고 있는 왜곡된 동기를 알려주며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구원과 회개, 성화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자아성찰’은 나의 빛과 공로가 아니라 그림자와 연약함을 날것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두렵고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두려워서 바라볼 수 없는 나의 어두운 내면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한 것이 에니어그램입니다.

 

 


'낳은 책, 나온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이 늦어져요.  (4) 2014.01.28
커피와 에니어그램  (3) 2014.01.17
와우, 드뎌 결혼?  (6) 2013.08.11
어쩌다 연애 강사까지  (7) 2013.08.10
책보다 서평, 올케가 쓰다  (2) 2013.08.03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16

 

삼진 : 모님, 모님. 제 유형은 언제 얘기해주시나 진짜 많이 기다렸어요.

모님 : 그러게. 그렇게 기다리더니 드디어 삼진이 이야기하는 날이 왔네.

삼진 : 요즘 일이 많은 때라 휴가 내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다행히 이번에 저희 팀이 낸 프로젝트 평가가 좋았어요. 어제 사무실 분위기 살짝 훈훈한 틈을 타서 휴가 냈어요. 후후.

모님 : 잘 됐다. 바쁜 삼진이랑 여유 있게 만나니까 더 좋잖아. 자 커피 마시자. 어제 볶은 거라 맛이 썩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한번 잘 내려 볼게.

삼진 : 네에, 모님 커피는 언제 볶은 거라도 좋죠. 그런데 모님, 혹시 루왁커피 아세요? 명품 커피라고 하던데…. 저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 갔다 왔잖아요. 그때 그거 마셔봤거든요. 와우~ 좋던데요.

모님 :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얻어지는 커피빈이지. 그걸 현지에서 마셔 봤다구? 루왁커피 드신 입맛에 모님 커피가 성에 차시려나? 호호. 자, 마시자.


삼진 : 왜 그러세요~ 제겐 모님 커피가 진정 명품 커피죠. 명품 커피 나왔으니 이제 명품 강의를 들려주시지요.

모님 : 고뤠? 시대가 요구하는 유능함, 자신감, 기민함과 활동성까지 갖춘 3유형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 볼까? 이렇게 얘기해주니까 기분이 좋지?

삼진 : 아, 뭐 옳으신 말씀이네요. 하하. 농담이요. 모님, 3유형의 자아이미지가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능력이 있다라는데 제가 뭐 그리 성공한 사람인가요? … 아닌가? 성공을 안했다고 볼 수는 없는 건가?

모님 : 그치? 아직 목이 마르지? 하하. 그러면 삼진이 말로 한번 표현해 봐. 어떤 이미지라고 생각해?

삼진 : 그저 열심히 하죠. 뭐든 열심히 잘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웬만한 건 다 잘하죠.

모님 : 대체로 어디서든 주목받고 사교성과 적응력이 뛰어나지. 일을 할 때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눈에 보인다며? 어느 3유형이 그러더라. 자기는 반으로 자른 토스트 어느 쪽에 잼이 더 많이 발라졌는지, 어느 줄에 서야 빨리 살 수 있는지 딱 보면 안다고.

삼진 : 하하하. 그래요? 맞아요. 성공의 길이 눈에 보이는데 안 하고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이해가 안 되기도 하죠. 사실 아까 말씀드린, 저희 팀이 낸 프로젝트라는 거요. 그거 제가 기획한 거거든요. 이대로 가면요… 모님, 저 연말 안으로 승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님 : 퇴근도 늦고 힘들어 보이는데 삼진이가 회사생활을 참 즐겁게 하는 것 같애.

삼진 : 네, 제 적성에도 맞고요. 무엇보다 저희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요.

모님 : 자아이미지의 또 다른 이름 집착으로 넘어가 보자. 3유형의 집착이 성공이라는 거 알지? 3유형들은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3유형들에게 있어서 성공은 곧 선이고 진실이라는 거지.

삼진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성공하는 3유형이 악하고 거짓되다고 들리는 건 뭐죠? 성공할 능력이 있어서 성공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씀은 아니시죠? 설마.

모님 : 물론이지.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야. 3유형은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인정받는 것에서 찾는다는 거지. 그러다 보니 성공 자체에 목을 매게 되겠지. 잘되고 잘하고 성공한 것으로, 눈에 띌 정도로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인한다고 하니까.

삼진 : 아, 그러니까 성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공을 통해서 주목받는 것이 목적이다 이 말씀이죠? 맞네요. 뭐… 그런 것 같아요.

모님 :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허영에 빠지기 쉬워. 세련된 옷차림, 명품, 상표, 외모 같은 것들이 자신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지.

삼진 :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저번에 여행 갔다 오면서 샀어요. 모님, 3유형이 아니라도 명품은 다 좋아하잖아요. 모님은 명품 안 좋으신가요? 좋으시죠? 헤헤헤.

모님 : 좋지 왜 안 좋아? 3유형이 '성공적인 모습'만 보이려다 보니까 외모나 인상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얘기야. 월세방에 살아도 세단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도 하지.

삼진 : 아, 뭐 그런가요?

모님 : 3유형은 성공에 집착하는 만큼 실패를 결사적으로 회피해. 일의 실패를 곧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실패한 3유형보다 비극적인 것은 없겠다.

삼진 : 모님, 그런데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패한 경험이 거의 없어요. 다 잘 됐던 것 같아요.

모님 : 정말 그럴까? 대부분의 3유형이 자신의 실패를 잘 인정 못해. 실패했다 해도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든지 하면서 말이야.

삼진 :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좀 다른 경우 아닌가요?

모님 : 작년쯤인가? 삼진이가 교회를 옮기겠다며 한동안 잠수 탄 적 있었지? 그때 왜 그랬는지 다시 말해줄 수 있니?

삼진 : 그때 얘긴 갑자기 왜요? 뭐 관련이 있는 건가요? 음… 좀 더 체계적인 청년부 교육이 있는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아, 물론 우리 청년부가 부족하다기보다 왠지 그때는 지적인 욕구가 막 솟구쳤던 것 같아요.

모님 : 그때 교회도 몇 주 빠지고 나름 슬럼프였던 것 같은데 단지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아쉬움뿐이었어?

삼진 : 유도심문하시는 것 같아요. 기분이 쫌 그런데요….

모님 : 아, 미안해. 내가 말을 해 볼게. 물론 어느 정도 내 추측이야. 작년 초에 삼진이네 조가 부흥도 하고 분위기도 참 좋았었잖아. 그런데 그러다 조원 한두 명 하고 어려움이 있었지?

삼진 : 아, 그거요. 제가 후배들한테 잘해줄 땐 잘해줘도 아닌 건 못 봐주잖아요. 그런 걸로 애들이 좀 섭섭해 했었죠.

모님 : 그래. 그런 일들로 조모임이 잘 안되고 어려웠었던 걸로 기억해.

삼진 :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정말…. 애들이 참 철이 없어요. 진심으로 대해주는데 그렇게 선배 마음을 몰라주다니요.

모님 : 어쩌면 그게 삼진이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패의 순간인지도 모르겠어. 조원들이 잘 따라주지 않고, 삼진이의 강점을 봐주는 것이 아니라 약점에 주목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 그러면서 모임은 시들해졌고…. 조장으로서 네가 맡은 조가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자는 거야. 자기가 맡은 일은 항상 성공하고 잘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실패라 여겨서 3유형의 회피가 나왔던 건 아니냐는 거지. 3유형들이 실패의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실은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면서 직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삼진 : (울컥) 모님… 그때 제가 조장으로서 실패했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모님 : 아니. 조장으로서 실패했단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패했으면 좀 어떠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내 기억으론 그때 삼진이의 슬럼프가 오래갔어. 그리고 내내 청년부의 구조적인 문제나 후배들의 철없음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그게 3유형으로서 실패를 회피하는 방식은 아니었을까 하는 거다. 너무 힘든 얘기지?

삼진 : 살짝 각오는 하고 왔지만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생각해 볼게요. (표정과 자세를 추스르며)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말씀해주세요.

모님 : 3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거짓과 기만인데 자신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진실을 가장한다는 의미야. 아까 말했지. 3유형에게 있어서 성공이 곧 선이고 진실이라고.

삼진 : 아, 제가 3유형에 관한 설명 읽어 봤는데요. 3유형이 거짓말을 잘한다고요?

모님 : 거짓말이라…. 성경 인물 중에 야곱이 3유형이거든. 야곱이 형 에서에게 장자권을 사는 장면, 형으로 변장해서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 받는 장면이 3유형의 거짓과 기만을 딱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성공하기 위해서 또는 성공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진실을 가장한다는 거야.

삼진 : 야곱이 3유형이었군요?

모님 : 응. 부부싸움을 하고도 모임에 가서 세상에 더없는 잉꼬부부처럼 행동하는 남편에게 기만이라고 했더니 3유형인 남편이 그러더래. '그 순간의 분위기에 충실했을 뿐이다. 나는 진실하다.'라고 말이야.

삼진 : 핫! 처음으로 공감이 가는 얘기네요.

모님 : 이렇듯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하고 가장 멋지고 성공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확인하려 하는 3유형이 쓰는 방어기제는 동일화야.

삼진 :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모님.

모님 : 자신의 일, 훌륭한 역할, 지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거야. 목사님이 그럴듯한 설교를 해놓고 그 설교가 자신인 줄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맨 처음 에니어그램을 소개할 때 말한 것처럼 역할이나 신분 등 내적 외적 페르조나는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쓰는 거잖아. 페르조나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순 없지. 3유형들은 자신의 성공한 이미지, 역할, 잘 나가는 회사 등을 유독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거야. 때문에 정직하게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누구보다 어려울지도 몰라.

삼진 : 휴우~ 좀 피곤해지려고 하네요.

모님 : 그래. 힘들 거야. 듣고만 있어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아까 야곱 이야기를 했다만, 야곱은 가능한 한 모든 계략을 동원해 하나님과 겨루고 사람과 겨루며 성공을 얻어내려고 해. 놀랍게도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사 41:14) 인물 야곱에게 복 주시길 거절하지 않으셨어. 성공과 실패의 잣대는커녕 그분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지. 삼진아, 3년 동안 함께 먹고 마시며 삶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이 실패한 조장이었다는 거 아니? 조원들로부터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배신을 당하고 조모임은 와해되고 홀로 십자가의 길로 가셨어. 십자가의 비밀은 실패의 비밀이란다. 곧 부활절이네. 철저한 실패와 사망 없이 부활은 없어. 삼진이 지금 많이 힘들지?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자. 남은 휴가 반나절은 몸을 좀 푹 쉬어주면 좋겠다.

삼진 : 그러게요.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네요. 하여튼 감사해요. 모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