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이는 중동 배낭여행 중이다. 제 몸 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공항 노숙을 불사하고 떠났다. 안전한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스스로 노선을 정하고, 그때그때 저렴한 숙소를 찾는 여행이다. 안식년 '꽃친'을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면서 짧고 굵은 갈등 속에 선택한 소명고등학교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고, 고등학교 생활에 어려움(현승이 자신의 어려움, 엄마로서 나의 어려움)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움과 갈등조차 좋았고 감사하다. 이번 여행 준비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감사가 두 배, 세 배로 커진다. 감사의 핵심은 사람, 선생님들이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만날 사람, 손!)

 

저렴한 항공권 덕에 부다페스트에서 긴 경유를 하고, 그 덕에 유명하다는 부다페스트 야경도 보았단다. 이집트로 넘어가 피라미드를 보고, 다합에서 스킨스쿠버를 하고, 무엇보다 밤에 시내산을 올라 시내산 일출을 보았다는데. 남편과 둘이 입을 헤 벌리고 영상과 사진을 보는데 "부럽다,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요르단으로 건너가 와디 럽(붉은 사막)으로 들어갔다는데, 와! "매드 맥스"에서 그 언니들이 달렸던 길이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남편은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다녀온 경험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모른다. 그땅, 육화 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걸으셨던 갈릴리 호수 변을, 사도바울이 디뎠던 땅을 걸었다는 경험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듣기 싫을 정도로 그 경험을 말하고 또 말하고, 설교에 인용하고, 말씀 묵상에 인용한다. 직접 가본다는 것을 그런 것이다. 사실 나는 여행을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성지순례를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좋아하지 않거나, 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갈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제치는 "여우의 신포도"인지도 모르겠다만.) 시내산 등반을 하고 일출을 바라보는 아이들 영상을 보면서 정말 가보고 싶다. 모세가 섰던 자리라니,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그 산이라니!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모 대상 강의를 하면서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잘해주고 질투한다."는 표현을 하면 대부분은 처음엔 갸우뚱 한다. 좋은 (특히 신앙이 좋은?) 부모일수록 갸우뚱의 각도가 크다. 어떻게 아이를 미워할 수 있지? 그래, 가끔 미울 수가 있다지만 질투를 한다고? 그렇다. 질투다. 나는 아이들을 질투한다. 내가 다 해주고도 질투한다. 내가 못 받아본 것을 주고, 나는 갈 수 없는 곳에 보내놓았기에 질투한다. "엄마빠가 그 정도 해줬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지, 더 잘해야지, 어디서 그런 막 돼먹은 태도야!" 못 누려본 것을 누리게 했으니 부모를 추앙하라! 이런 마음이 얼마나 자주 올라오는지 말이다. 질투와 시기심의 은근한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말이다. 

 

좋은 경험을 했으니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엄마빠 여행 보내줘, 이런 기대나 강요, 농담을 빙자한 허튼 말 따위도 하지 말아야지. 그저 너의 순간을 온전히 누리라고 해야지.

하지만 나는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현승이가 부럽다. 현승이 인생이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백 번 말해야지.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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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가 없으면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다.
#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다.

교회 젊은 부부들과 함께 하는 육아 세미나를 마쳤다. 『타고나는 부모는 없다』 오래된 책이고 고리타분한 책이다. 그럼에도 함께 읽을 충분한 가치가 있어서 선택했다. 육아의 기술이란 없고, 기독교 상담을 한다는 아빠의 실패담만 넘친다. 알 듯 모를 듯한 육아 원칙은 요즘 엄마 아빠들에게는 쉽게 다가가지도 않는 것 같다. 여백이 많은 책이다. 그래서 선택했다. 마지막 챕터는 '놀이'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책을 썼다면 "아이들은 그 어느 때도 아닌, 부모가 놀아줄 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라고 썼을 텐데. 역시나... '놀이에 대한 신학적 이해' 같은 소제목의 글로 '재미'를 쏙 빼고 글을 쓰셨다.

그러면서 결론은 위의 두 문장이다. 그러니까 단지 아이와 놀아주는 얘기가 아니다. 육아를 아이와 함께 하는 긴 놀이로 보는 것이다. 조금 확장하면 인생 자체를 놀이로 보자는 말이었는데. 성과에 목숨 걸지 말고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자는 뜻으로 나는 읽었다. 소명으로서의 놀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부여하신 소명은 "놀다 와라, 잘 놀다 와라"이다. 그러니 재미가 있어야 하고, 실패도 있어야 한다. 정말 나는 찰떡같이 알아들어진다.

모임 마지막에 그렇게 말했다. "저는, 저와 현승이는 지금 대학입시 놀이 중이에요!" 말하고 나니 더욱 믿어졌다. 맞아, 결과 하나가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거야.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기 때문에 재미가 있고. 실패가 있어서 심장이 쫄리고 잠시 하늘이 내려앉기도 하지만, 과정이니까...

과연 실패도 있고, 재미도 있는 대입의 과정이었다. 잠시 희망의 속삭임이 마음을 간지르기도, 실패감의 먹구름이 덮치기도 하였다. 현승이 어깨가 툭 떨어지고, 말이 없어지자 가족 모두 생기를 잃었다. 슬픔과 막막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우리 현승이, 좋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보석 같은 선생님들을 만난 덕에 하루 이틀 고통의 터널을 지나 다시 희망을 붙들기로 했다. 고통 회피를 위한 긍정적 해석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자'는 뜻을 품게 되었다.

입맛을 돋궈서 밥이라도 많이 먹이려고 저녁으로 좋아하는 삼겹살과 파김치를 준비했다. '큰 그림'을 안고 학교에서 돌아온 현승이 얼굴이 편안하고 밝았다. 전날 저녁에는 꽉 막혔던 대화의 길도 활짝 열렸다. 둘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구운 삼겹살과 파김치를 두고 기나긴 이야기를 나눴다. 대입을 통과하고 뽀개는 재미, 실패를 마주하고 일어서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말을 잘한 거다. 우리는 대학입시 놀이 중이다.

현승이가 이번 가을에 혼자 먹은 파김치가 5kg이다. 3kg 씩 두 번 주문해서 거의 혼자 다 먹었다. 뜨거운 밥에 먹고, 짜파게티에 먹고, 삼겹살에 구워 먹고... 심지어 수능시험 보는 날 도시락 반찬 뭘 싸줄까 했더니 파김치를 주문할 정도. 파김치 5kg 먹어 치우면서 행복한 대입 준비였다. 여러 번 말했지만 행복 등급으로 치면 1등급, 대한민국 고3 상위 5%였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대학 입시 놀이 잘 끝났다. 재미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다.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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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두어 주 앞두고 있다. 애들 말대로 '어디 간다고 태워주고, 늦었다고 태우러 나가고...' 그런 삶을 살지 않는 부모라 큰 기대도 없다는데. 이제 와 좀 미안하기도 하고, 수능이 얼마 남지도 않아 마음의 위안이라도 줄까 싶어 때를 얻는 대로 운전기사를 자처하고 있다. 조금 더 자겠다고 학교 셔틀 보내고, 버스 타고 가겠다고 하는 걸 운전해서 등교시키고 왔다. 2,30분 차 안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가 꿀 같다.

현승 : 엄마, 내가 윤리와 사상에서 계속 철학자들을 공부하잖아. 그게 갑자기 순간적으로 떠오를 때가 있어.
엄마 : (잘 외우고 있다는 뜻인가? 뭐라고 반응해야 하지?) 오... 그래?
현승 : (뚱한 얼굴로) 엄마가 굳이 티맵을 또 보잖아. 가는 길이 늘 똑같다고 하는데도 굳이 티맵을 보잖아. 그럴 때 답답한데... 그건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하지 말란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을 고치는 수밖에 없어.
엄마 : (부끄러움인지 분노인지 미열이 나지만) 스토아학파 말하는 거야? 불편심?
현승 : 아니. 부동심. 아파테이아(apatheia). 정념에 휘둘리지 않는 것.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파테이아가 딱 떠올라. 엄마가 티맵을 다시 보든 안 보든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난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괜찮아져.
엄마 : (뭔가 자존심 상하고, 대견하고) 오... 생활 속 철학인데!
현승 : 철학자들의 말이 진짜 다 우리가 조금씩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더 알고 싶은 게 많아.
엄마 : 맞아, 철학은 제대로 살고 싶은 모든 사람이 다 각자 가진 생각이기도 해.
현승 : 그래서 철학사를 배우는 게 참 좋아. 크게 이해하게 되거든.
엄마 : 오, 엄마도 그런 생각 하는데... 조각조각 영성 공부를 했잖아. 영성사를 배우는 게 중요하더라고. 한 줄로 꿴다는 게... 엄마도 요즘 영성사 공부가 너무 재밌는데...
현승 : (뚱하게)그래. (철학, 아파테이아 얘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출발할 때 굳이 티맵 한 번 더 보느라고 시간 보내지 말자고, 진짜 짜증 난다고 하고 싶은 거였는데... 그 말은 귓등으로 듣고 철학 얘기만 하는 게 더 짜증 난 모양. 도통 얼굴이 펴지지 않고, 아파테이아가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
엄마 : 현승아, 너 정말 멋있어. 이게 공부의 여러 차원이 있거든. 스토아니 에피쿠로스니 이런 걸 달달 외우는 머리가 있고, 그 의미를 알아 들으면서 외우는 게 있고, 그 의미를 알아들으면서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지식 너머 지혜야. 상황을 읽는 지성과 자기 성찰 능력이 있어야 지혜가 되는데... 우리 현승이는 그걸 다 갖춘 것 같애. 아흐, 우리 현승이 정말 멋있어! 나는 청년들 중에도 이렇게 생각 있는 청년은 거의 못 만나봤어.
현승 : 그건... 아, 아니야.
엄마 : 왜? 그건 니가 엄마 아들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현승 : (계속 뭔가 못마땅)응.

이후 스토아, 에피쿠로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흄... 짧은 철학 토크를 했으나 '굳이 티맵을 보는' 엄마에 대한 짜증은 해결하지 못하고 하차하신 듯하다. 아파테이아에 이르지 못했다. 철학, 아무리 배우고 깨달아도 삶으로 도달하는 건 녹록치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수능 철학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꼬마 철학자는 이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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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선을 다해 살고 싶지 않다고!❞

중학교 어느 시험 기간에 (딴에는) 감정 폭발과 함께 내놓은 절규였다. 10시 안 되어 자려는 아이에게 '그래도 시험 기간인데 조금 더 공부를 하는 게 어떠냐?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뭔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다못해 엄마도 늘 하는 강의를 다시 고치고 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말에 분노 폭발하며 한 말이다. 그리고 시험공부가 다 끝났다고 했다. "어느 과목은 싫어하는 것이라 아예 안 하기로 했기 때문에 두 과목만 공부하면 된다고..."

과연 현승이는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다. 맹목적으로 최선을 다한다거나, 자기를 갈아 넣는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 고3이다. 수능을 한 달 정도 앞둔 어느 토요일 아침 <5분 뚝딱 철학>을 읽는 여유있는 모습이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이라는 자기 철학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가 어릴 적에 나를 잘 파악해준 것 같아."라고 말한 것은 수시 원서를 쓰고나서 였다. 국문과와 철학과를 지원했는데, 블로그 카테고리 중 '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가 딱이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다는 뜻이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내며 심리학과, 행정학과... 같은 전공도 찔러봤지만, 고3 되어 선생님과의 멘토링을 통해 확신하고 선택한 학과는 국문과와 철학과이다.

수능 최저를 위한 집중 공략 과목도 딱 '국어'와 '윤리와 사상'이다. 역시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얼마나 살아 있는 공부를 하는지, 아빠와 마주 앉으면 철학 이야기이다. 인문학 수업에서 배우고, '윤리와 사상' 수능 준비하며 외우는 철학 이야기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을 꿰면서 요즘은 철학자들의 에니어그램 유형을 추정하고 있다.

아빠가 주중에 <5분 뚝딱 철학>이라는 책을 사주었고, 주말 아침 머리에 까치집을 이고 5분 반짝 독서 중인 것이다. 학교 들어가기 전 어느 휴일, 혼자 일어나 늦잠 자는 엄마빠 깨우지 않고 <마법 천자문> 읽던 그날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아, 주로 서양철학을 더 많이 공부하긴 하지만 동양철학이 자신에게 더 맞다고 끌린다고 했다. 노자나 장자에 끌린다고. 무위자연... 최선을 다해 살지 않...


질풍노도의 중심에서 그는 쓰네

어렵사리 손에 넣은 중2의 시를 공개한다. 특히 두 번째 시에는 깊은 빡침과 함께 한 사람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 절절하게 담겨 있는데, 그 대상은 시인의 엄마이자 첫 번째 독자이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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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줌 강의, 

아빠는 한의원 진료 예약,

누나는 아침 영어 공부...

현승이 설거지할 수 있어?

어, 그 대신 이 옷 입고 하게 해 주면.

콜! 입어!

 

자칭 타칭 대한민국 행복한 고3 상위 1등급 아이는

토요일 아침에 설거지를 한다.

엄마 뒷모습 연출하며 설거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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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내 얼굴 자체도, 화장도, 골라 입은 옷도 전반적으로 마음에 드는 날. 그런 날이었다. 주일 아침이었고. 아침 루틴, 눈 뜨자마자 기타를 껴안고 띵가딩가 하는 현승이 방 앞에 섰다. "엄마 갈게!"라고 했다. "엄마, 엠마 스톤 같애. 라라랜드." 와, 그대로 노란 원피스 ‘미아’가 되어 날아올랐다. 현승이에게 라라랜드는 '세상의 모든 영화'이고, 라라랜드가 세상의 모든 영화인 이유는 거기 나오는 엠마 스톤 때문이니까.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도서관에서 늦게 돌아온 현승이가 또 밤의 루틴 중이었다. 기타를 껴안고 띠디딩 딩딩 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 얼굴을 쑥 내밀고 "안녕? 엠마 스톤이라고 해."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몸서리 치듯 흔들었다. "아니야, 엠마 스톤 아니야. 내가 아침에 엠마 스톤이라고 했어? 아니야. 가." 종일 하늘을 날던 마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안방으로 가 거울을 봤다. 아침 그 사람이 아니다. 절레절레 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엠마 스톤 아니네. 아니야, 엠마 스톤."

나 그냥 엄마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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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율학습 하는 고3이라 마주앉아 긴 수다 떨 시간이 없네. 짧게라도 농담 따먹기 하는 게 참 재밌는 아들인데... 테이블 맞은 편 저 자리에 와 서성거리면 놀자는 얘긴데, 그럴 시간이 없다. 주말이 좋다. 오랜만에 돌아온 내 농담 따먹기 친구!


엄마, 나 음식 쓰레기 버리고 한 바퀴 돌고 올게. 돌고 올게. 알았지?
그래, 갔다 와.
엄마, 돌고 들어오면 엄마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어.
어떻게? 뭐? (상상이 안 되네)
돌았냐? 돌았어? 이렇게 한 마디 해 줘. 알았지?
깔깔깔깔.... 이런 개그 너무 좋아. 내 소중한 농담 친구!!!

아, 며칠 전 아침. 준비를 너무 빨리 했다면서 현관에 서서 밍기적거렸다. 그 짧은 시간, 취향저격 몇 말씀 남기고 등교하셨다. 애는 나갔는데 현관 근처에서 말의 여운이 종알종알 남았다. 혼자 키득거리며 기분 좋은 아침을 보냈었다. 옛날 에피소드도 떠오르고.

엄마, 내가 확실히 이제 다 큰 거 같애. 어른이 된 거 같애. 학교에서 똥 싸는 게 그렇게 어렵지가 않아. 아침에 배아프면 학교 가서 똥 마려울까봐 불안하고 그렇거든. 이젠 좀 그런 게 편해졌어. 그냥 학교에서도 편하게 화장실 가. 아, 물론 놀이터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 건 오래 됐지. (* 아래 글 참고)
그런데 맥도날드 보면 설레지?
당연하지!
그렇지? 아직 어른 아닌 거야. 빨리 학교나 가.


* 옛날 얘기 : 놀이터와 어린이 감별법

어린이 감별법

초6 현승이의 누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사춘기에 진입한 소녀다. 그런데, 현승이의 갑작스런 진단. 엄마, 누나 사춘기 아니다. 사춘기 척하는 거야. 내가 생각해 보니까 어린인 지 아닌 지 아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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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 되어 야자의 삶을 사는 현승이와 주말 데이트를 했다. 2001아울렛 지하에서 가성비 좋은 회전초밥을 맛있게 먹고 집에 오늘 길. 고3 맞이 몸만들기 운동 차 겨울 동안 다녔던 구미도서관 옆을 지나는 중이었다.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 애를 데리고 구미도서관에 한 번 오며 재밌겠다. 공부하던 곳도 보여주고, 매일 가던 미정국수에 같이 가서 밥도 먹고... 재밌겠지?"

 

"아빠가 너 도서관 갔다 온 날 늘 하는 얘기 있지? 엄마빠 헤어졌다가 우연히 다시 만났다는 고덕도서관. 거기서 자판기 커피에 초코칩 쿠기 먹고, 매점에서 우동 먹은 얘기 알지?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는 얘기. 거기 아빠가 대학생 때 다니던 도서관이거든. 아빠가 지금 너한테 고덕도서관에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아빠랑 같이 가서 자판기 커피 뽑아 먹고, 우동 먹고 그러자고 하면."

 

"아, 안 되겠구나! 말도 안 되게 싫으네. 이런 거구나... 와, 나중에 아빠 같이 될 것 같은데... 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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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에서 쌤한테 전화 올 수도 있어.❞

 

기말고사 마지막 날, 시험 치고 온 현승이가 말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쓰는 에세이가 시험 문제였는데.

(일반 고등학교 아님)

답안을 쓰는데 분노의 볼펜질이 되었다고.

전투적으로 쓰고 있으니까 감독 쌤이 오셔서

"답안지 더 줘?" 먼저 물어보실 정도였다고.

결국 다 쓰고 마지막에 '전두환 개새끼'라고 써버렸단다.

그래서 쌤이 엄마한테 전화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쓰고 두 줄 그었으니까,

쌤이 뭐라고 하면 "아, 지웠는데 용케 보셨네요." 

하면 된단다.

어쩌면 쌤도 좋아하실 수도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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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닭껍질 좋아한다고!"

 

채윤이가 닭껍질 좋아하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후라이드 치킨, 백숙 가리지 않고 닭껍질은 다 좋아한다. 돼지고기 살코기 없이는 먹을 수 있지만 비계 없이 먹을 수 없다. 엄마지만, 어른이지만 진심 존경한다. 정말 나는 아직도 돼지고기 먹을 때 몰래 비계 떼어내고, 백숙 닭껍질은 먹을 생각도 못한다. 튀긴 닭 껍질의 고소한 맛을 겨우 좀 안다. 그것도 정말 채윤이 덕이다. 하도 어릴 적부터 "나 껍질만 먹으면 어때? 안 돼?" 했쌌길래 경쟁심에 먹어보다 맛을 들였다. 

 

얼마 전 닭 백숙을 먹다 현승이가 내지른 말이다. "나도 껍질 좋아한다고!" 누가? 누가? 현승이가? 니가 무슨 닭껍질을 좋아하냐고, 조금만 입에 껄끄러워도, 조금만 느끼해도 다 뱉어내는 놈이, 일찍이 "배트맨"이란 불렸던 놈이 무슨 닭껍질을? 했더니. 후라이드 치킨의 껍질은 싫어하지만 백숙은 아니란다. 백숙 닭껍질을 좋아한다며 뺏어가지 말라고 하는 말이었다. 와아~씨. 백숙 닭껍질이라니! 그걸 가지고 싸운다니!

 

현승이는 태어나서 며칠을, 아니 몇 달을 그렇게 울어댔다. 산후조리원부터, 집에 와서까지 조그만 자극에도 그렇게 울어댔다. 그때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고, 얘가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런가 두렵기만 했었는데. 현승인 낯선 모든 것이 힘든 아이였다. 태어나본 넓고 환한 세상이 낯설어서, 어쩔 줄 모르고, 벌쭘해서 그랬나 보다. 한 20년 가까이 키우면서 영혼의 생긴 모양을 보니 그렇다. 음식도 그랬다. 낯선 음식은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뱉고 봤다. 배트맨이었다.

 

그런 현승이가 회를 좋아하고, 육회에 환장하더니 흐물흐물 닭껍질까지 접수하는 것은 순전히 누나 효과이다. 누나 채윤이는 태어나본 세상이 만만했고, 맞서볼 만했다. 뭐든 오기만 와라 부딪혀 이겨줄 테니! 하며 다가가는 영혼이었다. 그런 누나를 앞잡이 삼아 놀고, 또 놀다 보니, 그런 누나의 살아 있는 장난감으로 생애 초기를 살다 생긴 감각이 있다. 닭껍질을 즐기는 감각이랄까. 그런 감각들.    

 

누나 효과 뿐이랴. 엄마 효과도 있고, 아빠 효과도, 어릴 적 키워주신 할아버지 효과도... 자라서는 친구 효과도 있었겠지. 닭껍질 먹는 열아홉 현승이 되기까지. 현승이 뿐이랴. 나도, (그리고 당신도) 인생길 걸어오면 만난 수많은 사람들 효과로 오늘 이 모양을 살고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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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사춘기. 내가 '신앙 사춘기'에 대한 글이나 강의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데. 진짜 사춘기가 그렇다. "엄마, 나랑 산책 한 번 할까? 오늘 한 번도 안 나갔잖아?" "오늘 친구랑 미금역에서 죽전역까지 걸었어. 얘기하면서 걸었지." 현승이가 이런 말을 할 때, '녀석 사춘기가 완전히 끝났네'라고 생각한다. 사춘기를 알리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걷기 싫어하기'로 그 신호탄을 터트렸다. 채윤이 5학년 때, 영월 하루 여행 갔다가 '걷기 싫어하기' 증상이 발현하여 '한반도 지형'을 코앞에 두고 보지 못하고 돌아온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 어간 설악산에 가서 흔들바위까지 걷고 돌아오는데, 어르고 달래고 혼내면서 울산바위 올랐다 내려온 에너지를 썼다고나 할까. 여행 가서 '기분 잡치기'의 시작은 생각해보면 '걷기'에 있다. 여하튼 두 아이 다 사춘기가 끝나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크게 문제가 없다. 성향이 다른 성인 넷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느낌. 여름휴가에서 모처럼 속 뒤집어지는 걸 경험했다. 날씨도 선선하여 걷기 딱 좋은 날씨, 양떼목장을 걷는 느낌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쓰레빠 신고 마스크로 가린 입이 댓 발 나온 한 녀석만 아니었으면 완벽했는데. 속은 뒤집어지지만 기분까지 잡치지 않기 위해 피차 조심하다 조용히 타협했다. "나는 저 아래 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셋이 갔다 와." 하이고, 바로 내가 하려던 말이었다. 셋이 마음 편히 신나게 걷고 사진 찍고 돌아 내려오니 나무 아래 저러고 먼 산 보고 앉아 계시는 분. 사춘기는 지나갈 듯 지나갈 듯, 쉽게 끝나지 않는다.

엄마빠 사이에서 '우웃짜' 하면 걷는 것 좋아하는 유아기.
엄마빠랑 어딜 가도 좋아서 뛰고 날고 하는 아동기.
엄마빠랑 어디 가는 게 귀찮고 싫고, 특히 걸어가는 건 더 싫은 사춘기.
엄마빠랑 어디 갈 때마다 맥락없는 지랄 떨었던 사춘기 시절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미안함으로 애써 함께 잘 놀아주는 성인 초기.
(여기까지 키워봤다.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중략)
.
.
.
(그러다 어쩌다)
걷는 게 무조건 좋은 중년기.


걷기로 보는 생애 발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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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만 업쒀~어!
여긴 내 공간이야아~!
이거 치우라고!
여기 앉아 있찌 말라고~오!"
라고 강짜를 놓으며 살고 있는데, 올여름은 좀 진심 미안하게 되고 있다.

말하자면 거실 탁자가 작업실인데, 글이 안 써지고 강의 준비가 풀리지 않으면 옆에 알짱거리는 아무라도 붙들고 신경질을 낸다. 너 때문에 지금 정신 산란해서 글이 안 써지는 거야!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집중을 할 수 있겠냐고! 그러고 보면 내 성질에 딱 맞는 작업실이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내게, 어떻게든 사람과의 끈이 있어야 일을 하는 내게 말이다. 그런데 여름이고, 뜻밖의 줌 강의가 상시로 있는 요즘. 에어컨 있는 유일한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니 보통 미안한 일이 아니다. 가족들은 각자 자기 방에 갇혀 선풍기 하나 씩 끌어안고 더운 공기를 돌리며 버티고 있다. 찍소리도 못 내고... 강의 쉬는 시간이면 찜질방 가족들 숨 쉬는 시간. "하아, 쉬는 시간이야?" 하고 나와 물 마시고, 에어컨 쐬고 들어간다. 과연 현승이가 별명을 잘 지었지. '마키아신실', JP&SS는 종필과 신실의 사랑이 아니라 '조폭신실'. 올여름 가족들에게 진심 미안하게 생각함. "미안해, 내 방이 제일 좋아!"

온종일 밥하고 먹을 때 외에는 거실 탁자에 앉아 있다. 일찍 자러 들어갔다 아침에 나온 현승이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 나를 보면 "엄마, 설마 어젯밤 그 상태로 밤새고 앉아 있는 건 아니지?"라고 한다. 안 놀아주고 노트북과 책만 들여다보는 엄마의 주의를 끌기 위해 별 짓을 다 하기도 한다. 현승이 어떤 면에서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인데, 방학이라 어디 발휘할 데도 없고, 그렇다고 전처럼 시를 쓰거나 하지도 않으니 쓸데없는 곳에 창의성을 과소비하고 있다. "현승아, 주방 가는 길에 냉장고에 있는 보이차 좀 갖다 줘." 주문하고 하던 일 하고 있으면, 괴이하고 귀여운 알바 복장으로 배달을 온다던가. 책상 위 아무거나를 걸치고 나와 노트북 너머에 가만 앉아 있는다든가, 호롱불 들고 베란다로 나가 유리창 사이에 두고 얼굴을 들이밀기도 한다. 적극적일 때는 남매가 같이 엽기춤을 만들어 말없이 추고 사라지기도.

쓸데없이 낭비하는 어떤 것들이 더운 격리 세상을 버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 창의력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현승이 사진들 올렸다 심의에 걸려 바로 내렸습니다. 줌 강의 준비하며 카메라를 거울 삼아 단장하는 엄마와 엄마를 찍는 채윤이, 엽기 댄스 추는 남매 사진 정도 허락받아 걸어봅니다. 조폭신실, 마키아신실 다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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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이번 금요일에 전교생 예배에서 대표기도 해야 돼.

그래, 기도문 미리 생각해서 잘 써.

알았어. 쓰면 좀 봐줘.
그래, 니네 엄마가 작가잖아. 엄마한테 검사받아.
알았어. 어? 그런데 아빠는 목사잖아. 고민이네. 작가한테 부탁해야 하나? 목사한테 부탁야 하나?

(늦게 들어온 누나에게 고민 상담)

누나, 나 학교에서 대표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문 써서 누구한테 봐달라고 해야 해? 작가한테? 목사한테?
콘셉트를 먼저 정해. 어떤 식으로 잘하고 싶은지. 작가처럼 잘하고 싶은지, 목사처럼 잘하고 싶은지.
그렇구나! 알았어.

아아, 괜찮다. 작가가 사모님이야.
됐네. 엄마네!

 

(왜? 사모님이 성직자도 아닌데, 사모님과 기도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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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백일이 안 된 아이가 끙끙 몸을 뒤틀다 뒤집는 걸 보면서 놀라고 행복해 뒤집어졌던 기억. 현승이 성장을 보며 잊을 수 없던 순간이었다. 성장과 발달. 먹이고 씻기고 재웠을 뿐인데 세워 안으면 끄덕끄덕 하던 목에 힘이 들어가고, 천장만 보던 아이가 뒤집고, 혼자 앉고, 배밀이로 기동력을 장착하는 것, '엄므, 엄므'하고 부르는 것.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몸과 마음이 발달하듯 신앙과 영성도 발달단계가 있다. 애 둘 쯤 키우고 나면 말이 조금 늦는다고 안달할 일이 아니구나, 알게 된다. 개인차가 있지만 결국 말을 하고, 응가를 가리게 되더라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성장한다. 

 

유아세례 받았던 현승이가 2020년 송년주일에 입교를 했다. 아이의 신앙 발달의 변화가 블로그에 그대로 남아있다. 다섯 살 현승이는 무소부재 하시는 성령님께 총을 쏠까 고민했었다. 열다섯 살 현승이는 차별과 폭력을 그대로 두시는 하나님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열여섯 쯤 되었을 때, 사춘기의 정점에선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운운하는 엄마 아빠를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교회를 싫어라 했고, 늘 분노에 차 있었다. "나는 하나님 안 믿어. 아빠가 목사니까 교회는 안 빠지고 가는 거야." 차라리 이렇게 말할 때가 낫다. 말보다 찰나의 눈빛, 그 강렬함이라니! 그 냉소의 눈빛은 좌우에 날이 선 검이 되어 내 마음을 베어냈다. 아이들은 내 말이 아니라 삶을 보고 배운다. 교회를 향한 실망, 그 이상의 절망, 절망 그 이상의 냉소는 내가 가르친 것일지 모른다. 강요로 얻는 건 강요하는 그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반발심일 뿐임을 안다. 더는 혼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강압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엄마, 나 하나님께 실망했어."라고 말하면 "엄마도 가끔 그래."라고 공감해 줄 수도 있었다. 헌데 그 차가운 눈빛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목사 아들이니 교회는 빠지지 않고 가지만 하나님께는 가까이 가지 않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그 지점에선 심장이 툭 떨어지고 기도만 나왔다. 기도하기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기대는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신앙 발달,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났지... 이제는 제 몫이고, 그분과 현승이 둘 사이의 문제야, 하면서. 

 

2020년 송년주일에 현승이가 입교를 했다. 자발적인 입교다. 신앙고백서를 썼다. 혼자 쓰고 입교를 집례 하는 목사인 아빠에게 제출했다. 현승이를 안고 나란히 서서 유아세례 받던 2003년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17년 후 목사가 되어 현승이 입교 집례를 하게 될 줄이야. 현승이 신앙 고백문을 읽으며 여러 대목에서 울컥했다. 유아세례는 우리 부부의 선택이었지만 입교는 현승이 자신의 선택이다. 부족한 내 삶과 신앙으로 내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했다. 그런 마음으로 키우겠노라 다짐하며 유아세례를 선택했다. 입교는 아이이 몫이다. 내 삶과 신앙이 너무 큰 걸림돌이 되지 않길. 우리 아이들이 자기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에서. 

 

신앙고백_김현승

나는 작년 그리고 제 작년에 입교를 받을 상황이 되었고 받는 게 시기상 맞았지만 받지 않았다. 스스로 입교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믿음에 확신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의심할 부분이 조금도 없는 사람만 입교를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주일학교 다른 형, 누나, 동생이 입교를 받는 것이 조금 섣불러 보였고 어리석게 보였다. 이런 내가 이번에 입교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내가 아주 간단하면서 어려운 사실을 하나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확신과 의심에 관한 사실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에 대한 질문이 많이 있었다.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성경에 오점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결과적으로 아셨을 것인데 그렇다면 왜 굳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놓으셨을까? 가룟 유다는 왜 스스로 죽었을까 부끄러움 때문인가? 가룟 유다가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 아닌가? 이렇게 성경에 대한 질문, 약간은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하는 질문을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생길 때마다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처음에는 ‘엥’ 했지만 결국에는 ‘아’하고 이해가 되었다. 아빠랑 입교에 관해 얘기하던 어느 날 아빠가 내가 입교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고 그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백 프로 확신이 없어도 입교를 받는 것도 괜찮다고 말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오래 생각해봤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백 프로 확신이 있나? 아니다. 그럼 나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나? 맞다. 나는 확신이 없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많다. 성경에 대한 질문이 많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이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힘들 때 좌절될 때 결국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이 힘들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때, 유럽 여행을 가서 친구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 못 해 두려워할 때 결국 나는 하나님께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을 믿고 확신이 있다는 증거 같다. 나는 질문이 생기는 확신은 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말을 듣고 내 삶에서 하나님을 찾아보니 내가 하는 하나님, 성경에 대한 질문은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구나 싶었다. 내가 질문하는 이유는 못 믿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알고 싶어서 질문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고 믿는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다. 더 궁금하고 더 알고 싶다. 이번 입교 교육을 받고 입교, 세례에 대해 생각했던 기간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성령님! 총 조심하세욧

엄마! 엄마!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셔? 내가 어디를 가든 항상 옆에 계셔? 그럼~ 왜 옆에 항상 계셔? 성령 하나님이 우리 현승이 도와주려고 항상 옆에 계시지. 그러며~언, 내가 지금 옆에 총 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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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나, 폭력과 하나님

영화를 좋아하는 현승이는 금요일 밤엔 무조건 영화 한 편이다. ‘피아니스트(2002)’를 보고 나오더니 괜히 카펫을 발로 차고 심술이 난 것처럼 왔다 갔다 한다. 혼잣말인지 들으라는 말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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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버릴 거야. 각자 살릴 인형 골라가!"

정리하고, 그다음에 정리한 다음 또 정리하는 나날. 정리 대장 아빠가 인형 보따리를 풀었다. 한 번씩 "이번엔 싹 다 버리자" 해놓고도 막상 하나 씩 눈을 맞추면 또 집어넣게 된다. 이건 할아버지가 사주신 거, 이건 학교 바자회에서 처음으로 산 것, 내가 이렇게 하고 들고 왔잖아... 한 놈 한 놈이 다 사연이 있다. 가장 오래된 미키 미니 인형은 데이트 시절 남편에게 처음을 받은 선물이다. 철학과 4학년 학생 JP가 나름 큰돈 썼던 거고, 당시 미키 미니 덕질에 빠져 있던 나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더랬다. 그래서 못 버림. 테디 베어 네 마리는 채윤이 현승이 각각 두 마리씩 소유인데, 어쩌면 그렇게 어릴 적 채윤 현승을 꼭 닮았다. 특히 교복 치마에 츄리닝 바지까지 입은 테디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채윤 그 자체. 그래서 못 버림. 결국 하나도 못 버리고 깨끗이 빨아 각자 사연의 주인공들이 끌어안고 흩어졌다. 

 

그 와중에 구원받을 것인가, 버려질 것인가, 기로에 서서 아니 누워서 운명의 선택을 기다리는 애들을 놓고 잔인한 놀이 중인 열여덟 살 현승이. 양손에 주방 집게 하나 씩 들고 '인형 뽑기' 놀이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노트북 쳐다보고 있다 옆에서 저러는 열여덟 살 보고 녹았다. 이런 게 그렇게 좋더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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