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크랩, 제랄드 메이, 데이비드 베너와 함께 브레넌 매닝은 신간목록을 뒤적이며 기다리게 되는 저자다. 노년의 브레넌 매닝의 회고록 <모든 것이 은혜다>를 오늘 하루 칩거하며 다 읽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그에 대해서 알 만큼 아는 사이가 된 듯 하였다. 이전의 저서들을 통해서 읽었던 이야기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노년의 할아버지가 되어 회고하는 그! 이야기들은 내가 알던 그!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다.


왜 사람들이 유명해지면 초심을 잃고 거만해지다 망하는 뻔한 길을 자꾸만 갈까? 그러지 않을 수 없을까? 이미 반면교사는 충분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유명해지고도 유명세로 인해서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나 처절하게 정직해져야 하는 지를 노년의 브레넌 매닝이 보여준다. 구구절절 자신의 높아지고 성공했던 이야기가 아니라 결핍되고, 학대받고, 실패한 어두움의 드러내는 일을 누구라서 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이 은혜다.'라는 결론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희망의 빛이 비취는 게 아니라, 아바의 자녀로 사는 것이 이렇게 철저하게 정직해지는 길이라니……. 부랑아 복음을 전하며 떠돌던 한 전도자의 인생에 숙연해질 뿐이다.


전부터 브레넌의 책을 읽으면서 냄새가 났었다. <내 안의 접힌 날개> 리처드 로어 신부님과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영적여정에 도움을 받으셨단다. 반가워라. (가슴이 떨릴 정도로 반가웠다.)


* 내게 에니어그램을 배운 TNTer에게 일독을 권함. 진심 권함.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10



구민 : 모님!

모님
: 구민이 어서와. 얼굴이 왜 이리 부숭부숭해? 어디 몸이 안 좋니?

구민
: 아… 그게요. 늦잠을 자서요.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온 거예요. 흐흐흐….

모님
: 아하! 구민이가 잠자는 숲 속의 왕자님이지. 호호호. 그럼, 아무것도 안 먹었겠네. 커피랑 토스트 하나 해줄까? 아니면 반찬은 별로 없지만 밥 먹을래?

구민
: 괘… 괜찮아요. 저는 아무래도 괜찮은데 괜히 모님 귀찮게 해드리네요. 뭐 그냥 더 편하신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모님
: 에이그, 됐네요. 뭐 이런 게 귀찮어. 빨리 선택해주는 게 안 귀찮게 하는 거야.

구민
: 아, 네. 그럼 뭐… 토스트….

모님
: 그래 그래. 후다닥 해줄게. 잠깐 앉아 있어. 어디 보자. 커피는… 음… 우리 구민이 브라질 커피 한 잔 맛있게 내려줘야지. 잠시만….






구민 : 커피랑 이렇게 먹으니까 맛있네요. 브라질 커피라고 하셨어요?

모님
: 응, 언젠가 내가 얘기했던 것 같은데, 브라질 커피는 중성적인 맛을 갖고 있어서 블렌딩을 할 때 베이스로 많이 써. 희한하게 브라질 커피만으로는 딱히 개성이 없는데 블렌딩을 하면 다른 커피의 개성을 한층 더 살려준다고 하더라. 자체로는 살짝 맛이 밋밋하지. 

구민
: 마음에 드는데요. 브라질 커피!

모님
: 누구하고도 원만하게 잘 지내고, 겸손하고 관대한 구민이랑 비슷하네. 맘에 들게 생겼다. 호호호….

구민
: 제가 그… 그런가요?

모님
: 그럼~ 평화의 사람(자아 이미지) 구민이잖아! 남의 얘기 잘 들어주고 불화도 잘 조정하고 편견 없이 사람들을 대해서인지 내가 구민이 싫다는 애를 못 봤어.

구민
: 에이, 모님. 무슨요….

모님
: 니가 평화의 사람이란 거 인정 안 한다구? 싫다구?

구민
: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좋죠. 평화의 사람이 되고 싶어요. 늘 평화롭고 싶구요.

모님
: 네 미니홈피 제목이 뭐였더라? '어제와 같은 오늘' 맞지?

구민
: 어, 알고 계시네요. 그냥 써 본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저는 오늘 뭔가 어제와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어요. 그… 그냥 별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으면 싶달까, 그래요.
모님 : 구민이가 말하는 평화가 그런 의미니?

구민
: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아닌가요? 평화가 뭐죠?

모님
: 9유형의 자아 이미지가 '나는 평화롭다'인 것은 결국 9유형이 집착하는 것이 안정과 평화라는 거야. 때문에 안락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있는 상황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하지.

구민
: 안락하고 편안한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모님
: 물론,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 평화, 안락함, 안정감…. 다 좋은데 여기에 집.착.한다는 거야. 각 유형이 집착하는 것들이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거기에 매여 있다는 게 문제지. 대체로 9유형들이 침착하고 느긋해 보이는데 어때? 구민이 내면도 그러니?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런가?

구민
: 복잡하죠. 딱히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솔직히 복잡해요. 아닌가? 모… 모르겠네요.

모님
: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거야. 어느 9유형이 그렇게 말하더라. 꼭 전화해야 할 데가 있는데 하루 종일 '전화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결국 안 하고, 전화 한 통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고.

구민
: 와, 완전 제 얘긴데요. 실은 아까 여기 오면서 버스를 탔는데요. 커브 돌자마자 햇빛이 쫙 들어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계속 직진이었는데 속으로 '자리 옮겨야지. 옮겨야지.' 하다가 내릴 때까지 그냥 있었어요. 이런 건가요?

모님
: 그래, 그래서 9유형들은 비폭력적인 힘을 쓰는 사람들이야. 중재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꾸물대고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고집을 부려 수동적인 공격을 한다는 거지.

구민
: 가만히 있는데 그게 어떻게 공격이 되나요? 저 자신이 별로 행동하는 게 없는데 공격이라구요?

모님
: 그래서 수동적인 공격이라는 거야. '나는 한 게 없다'고 하지만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 딱히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하지 않을 수 있잖아. 9유형들의 수동적 태도가 오래갈 때 다른 사람을 화나게 만들고,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주로 공격적인 유형들이겠지) 폭발하게 만든다고 해. 결국 9유형들이 그렇게도 지키고 싶은 평화는 가만히 문제만 안 일으키는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지.

구민
: 조금 어려운데요. 약간 알 듯도 하고…. 음… 그런데 좀 쉽게 설명해 주시면…. 제가 아까 제 속이 복잡하다곤 했지만 그건 그냥 뭐랄까? 가끔 저를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없을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구요. 실은 제가 단순한 사람이에요. 모님.

모님
: 구민이 마음이 좀 상했나? 유형의 어두운 부분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구민이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는 걸 계속 생각하면서 들어줘. 알았지? 늘 언제나 무균질의 평화를 일구고 싶은 9유형이 회피하는 건 갈등과 대결이야. 9유형들이 저항이 가장 적은 방향을 선호하고, 누군가 나서서 선택한 일에 묻어가곤 하는 게 아마 갈등과 대결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예일 거야. 갈등이 저절로 해결되거나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며 끝까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구민
: 아, 모님! 진짜 저는 싸움이나 그런 복잡한 일이 닥치면요 그냥 스위치가 나가는 것 같아요. 저번에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싸움을 하더라구요. 신기한 건, 싸움이 일어나니까 거의 자동적으로 제 귀가 막히는 느낌인 거예요. 제 몸에는 갈등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나 봐요. 감지되는 순간 모든 스위치가 나가요.

모님
: 와, 그 표현 기가 막히다. 하하하. 그래서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일이 벌어지면 9유형들이 잠으로 많이 도피한다고 해. 회의하다 의견이 안 맞아서 언성이 높아지면 바로 팔짱 끼고 눈 감는 사람들? 눈 감으면 바로 코 고는 사람들? 흐흐흐….

구민
: 으아, 진짜요? 부끄럽다. 제가 잠의 왕자잖아요. 복잡할 땐 자는 게 딱인데….

모님
: 복잡할 때는 잠으로 도피하는 게 딱이고, 더 근원적인 내면의 갈등을 보고 싶지 않아서 쓰는 9유형의 방어기제는 잠보다 깊은 혼수상태, 최면상태라고 하지.

구민
: 풉! 혼수상태요? 이거 원래 9유형 설명에 있는 건가요, 절 놀리시는 건가요? 제가 대체로 정신줄을 놓고 있긴 하지만 혼수상태는 너무 심한 표현이신데요…. 그러잖아도 실은 어젯밤에 아버지께 또 한마디 들었어요.

모님
: 저런…. 취업 문제 때문에?

구민
: 네.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는 아버지는 제가 너무 답답하신가 봐요.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일단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열심히 안 한다고 속상해 하세요.

모님
: 구민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뭐야?

구민
: 글쎄요…. 그걸 잘 모르겠어요. 사실 웹디자인 쪽이 좀 끌리긴 해요.

모님
: 아, 그래서 작년인가 언제 학원 다니겠다고 하지 않았니?

구민
: 그러려고 했는데요. 제가 그걸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아직….

모님
: 9유형의 근원적인 죄가 뭔지 아니?

구민
: 아까 읽어봤는데 게으름이 더라구요. 그런데 모님, 저 그렇게 게으르진 않아요. 정리도 잘 하고…. 제 방에 한번 와 보세요. 남자방치고 깨끗하다고 하는데….

모님
: 하하하. 그런 의미의 게으름이 아니야. 뭐랄까? 삶 전반에 대한 게으름이지. 누울 수 있는데 왜 앉아? 앉을 수 있는데 왜 서 있지? 하면서 쉽게 살려고만 하는 것? 말하자면 자기 계발에 태만한 자세 같은 것들. '그걸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라고 너 스스로 말하잖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남이 이끌어주길 바라고, 밖으로부터 자극이 주어지길 바라지 않니?

구민
: 아버지가 제게 답답해 하시는 그런 얘기들이네요. 저도 이런 제가 싫어요. 모님.

모님
: 결국 9유형들의 게으름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시시한 존재로 여기는 '자기 비하'라는 함정에서 오는 걸 거야.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지.

구민
: 그런데 모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아까 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자기 비하'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로 낮게 생각하는데, 누구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저희 아버지처럼 답답해 하시는 거요?

모님
: 에니어그램 여정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자신의 유형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은 물론 결국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해. 나는 구민이가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화합하는 게 참 부러워.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난다. 헌데, 그 빛에만 만족하고 있으면 그 빛이 어느 새 어두움이 되기도 해. 평화에 매인 동기가 '갈등'을 회피하는 것임을 알고 인정하고 순간순간 멈출 때 구민이의 빛이 진실로 아름답게 빛나는 거지. 갈등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온몸으로 받아내고, 때로 나를 깨뜨리고 변화시켜서 얻는 게 진정한 평화일 거야.

구민
: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저를 깨뜨리고 변화시키는 걸요. 제겐 너무 어려운 일이죠.

모님
: 못하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9유형이 맛보는 성숙의 열매는 행동인데, 네가 단지 '이제부터 행동하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9유형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지. 말하자면 네 평화유지 자동시스템이 지나치게 작동된다고 느낄 때마다 멈추고, 멈추는 그 순간 너를 지으시고, 네 이름을 아시는 그 분의 손을 잡는 거야. 그거면 되는 거야. 참 쉽죠잉?^^ 쉽고도 어려운 길, 그 길을 우리 함께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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