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22

 

 

(가평 깊은 산 속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한 동안 침묵이 흐릅니다. 각자 새롭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 위에 채색하여 만든 예쁜 동화를 이제야 알아차리기 시작한 탓일까요? 몸은 여기 있지만 각자 자신의 어린 시절로 떠났나 봅니다. ‘타닥타닥’ 잦아드는 모닥불이 타는 소리, ‘쓰르쓰르’ 가녀린 풀벌레가 내는 소리만이 ‘지금&여기’를 확인시켜 저는 것 같습니다. 침묵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리들이 그러합니다. 이대로 밤을 지새우는 침묵이어도 좋겠습니다.

모님은 조용히 일어나 새로운 커피를 준비합니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이라는 원두를 선택해서 핸드밀 뚜껑을 열고 싸르르르 한 스푼 씩 넣습니다. 사라락사라락 원두 가는 소리가 흡사 초등학교 입학 전 날 설레는 맘으로 돌리던 은빛 연필 깎기 소리 같습니다. 커피향이 퍼집니다. 쪼로로 물을 따르는 소리도 오늘따라 크게 들립니다. 안과 밖이 고요해지니 새삼스럽게 들리는 소리들이 많습니다.)


모님
: 오래 앉아 있으니 좀 쌀쌀하네. 따뜻한 커피 더 필요한 사람?

(저요, 저요.)

삼진 : 딱 커피가 고파지는 순간, 그 순간을 포착하시는 바리수타 모님의 센스!

칠규 : 이건 무슨 커피예요?

모님 : 인도네시아 만델링이야. 아라비카 커피 중 가장 강렬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 진하고도 부드러운 맛이 묵직하게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인데..... 느껴지니?

칠규 : 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커피란 얘기죠. 하하하하.

일경 : 쓰지만 싫지 않은 쓴맛이에요.

육미 : 그래그래. 고소한 쓴맛이라고 할까?

모님 : 맞아. 로스팅이 잘 된 만델링이야. 이게 개성이 강한 커피라서 말이야. 자칫 하면 쓴맛만 강조돼서 만델링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함의 조화로운 풍미가 없어진다고 하거든. 차가운 밤공기 때문인지 커피의 향이 하나하나 그대로 입 안에서 살아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만, 기억을 떠올리고 나누고 그 안에서 치유를 경험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가 이 마음의 작업을 통해서 지금 마시는 만델링 커피 같아졌으면 좋겠구나. 초록색 생두가 로스터기에 들어가 불 조절, 수분 조절, 연기 조절의 연단을 잘 받으면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내는 맛있는 원두가 돼.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생두라도 의미 없는 쓴맛만이 느껴질 수도, 고소한 맛과 달콤한 초콜릿 향까지 곁들여진 좋은 커피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사라 : 아.... 너무 좋아요. 모닥불, 커피, 마음, 사람, 어린 시절의 그네...... 음......

팔수 : 그네는 또 뭥미? 하하하. 아무튼 모님은 절묘하게 갖다 붙이기 진짜 잘하시는 것 같아요. 하하하.

이석 : 야, 그게 모님의 내공 아니겠냐. 커피와 에니어그램, 마음의 여정과 커피, 이걸 조화시키시는 게 아무나 못하는 거야. 이제 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들려주시는 거죠?

모님 : 그래. 일찍 한 부모님을 여읜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학창시절 내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편부, 편모가정' 또는 '결손가정' 이었어.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학기 초만 되면 가정환경 조사랍시고 '편부 편모가정 손들어라' 하는 그 무식한 조사가 정말 싫었지. 피한다고 내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어. 음악치료를 전공하면서 숱하게 들은 말이 '성인아이', '역기능 가정'이란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우리 가정은 외형적으로 결손가정일 뿐 역기능 가정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우리한테 얼마다 따뜻하고 희생적인 분인데.... 밤낮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기도 밖에 없고, 엄마랑 동생이랑 나랑 셋이 모이면 얼마나 즐겁고 속에 있는 얘기 다 하면서 행복했냐고?’ 하면서 말야. 실제로 우리 가정이 그랬어.

칠규 : 아, 죄송한데요. 역기능 가정이 구체적으로 뭐예요?

모님 : 일단 기능적 가정의 반대 의미지. 가정이 어린아이에게 제대로 기능을 한다는 건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잘 충족시켜 준다는 의미지. 신체적, 정서적, 영적인 욕구가 충족되며 자랐다면 독립된 성인으로 자라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겠지. 역기능 가정에서 아이는 반대로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충족이 돼. 그러면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되고 건전하지 못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는 거야.

오필 : 역기능 가정은 알코올 중독 부모님이 계시거나 그런 가정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모님 : 그렇지. 역기능 가정은 중독자가 있는 가정이야.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보통의 가정들이 이 정도인 경우는 드물지. 하지만 일중독, 돈 중독, 사랑 중독……. 이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래서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치유>를 쓴 존 브레드쇼는 현존하는 가정의 95%가 역기능 가정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이 분은 아직까지 나머지 5%에 해당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결국 우리는 모두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다는 거지.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로는 살짝 동의가 됐지만 ‘표현이 과하네. 누굴 모두 환자로 보나?’ 했었어.

육미 : 풉, 제가 지금 딱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모님 : 어린 시절 작업이라면 나도 할 만큼 했잖아 하면서 교만한 마음도 있었어. 어린 시절이 다 그렇지 뭐. 너무 인위적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을 끌어내고 짜 맞추는 거 아냐? 하면서 방어하기도 했던 것 같애. 그러면서 여러 내적 여정 훈련을 받았지. 내게 어린 시절 그러면 아직도 엄마가 해주시는 레퍼토리가 있어. ‘너처럼 사랑받고 큰 애는 없다. 너를 늦게 낳아 가지고, 느이 아버지가 자다가도 일어나서 불 켜고 앉아 너를 들여다보고 그랬단다. 내가 너를 안아볼 새가 없었다. 하도 너를 이뻐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 말이 내 의식에 새겨져 있어. 그래서 '나는 엄청 사랑받고 자란 아이야' 라고 머리로 믿고 있었던 거야. 의심의 여지없이 말이다. 헌데, 내 마음과 몸은? 이런 질문과 함께 이제껏 눌러놨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봇물처럼 생각나는 시점이 있더라. 더 중요한 건 기억과 함께 떠오른 당시의 느낌이야.

동네 친구 집에 갔던 기억이 나. 남자 애였는데 친구가 무슨 말을 하면서 막 까불었어. 그랬더니 친구의 엄마가 ‘저런 미친놈. 내가 못살어.’ 하면서 고개를 젖히고 웃으시는 거야. 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장면이 먼저 선명하게 떠올라.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서 동네 사람 모두 업신여기는 집이었지만 어린 나는 그런 엄마와 아들 사이가 부러웠던 거야. 기억해보면 목사님이었던 아버지는 교인들 앞에서, 아니 교인들 없는 곳에서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가족을 대하지 않으셨어. 엄마? 내 기억 속 엄마는 ‘사모님’일 뿐이었던 것 같애. 엄마는 언제나 곁에 없었다고 느껴져. 교인들 중에 아픈 사람, 힘든 사람을 찾아 심방을 가 계셨지. 그리고 집에 오시면 남편이기 이전에 ‘주의 사자’이신 목사님을 위해 열심히 밥을 하셨고. 밤이 되면 철야기도를 위해 교회당으로 가셨어. 나는 알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만 상황을 통합적으로 볼 수 없는 어린 나는 그저 ‘차가운 아버지’와 ‘부재중인 엄마’로 밖에는 인식할 수 없었다는 거야. 아주 가끔 나와 동생이 아버지가 쓰던 이북 사투리를 흉내 내고 온 몸을 던져 익살을 떨면 아버지가 아주 살짝 웃으셨어. 나는 아주 살짝 웃을락 말락 하는 그 웃음만 보아도 ‘나를 사랑한다는 뜻’인줄 알고 좋아했지.

(모님은 커피 한 모금을 길에 마신다. 한참 동안 말이 없다. 모두 말이 없다.)




모님
: 휴우, 내 얘기를 하는 게 생각보다 더 힘들구나. 나는 너희에게 보여주는 우아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에서는 엄청나게 손발을 놀리며 애를 쓰고 있어. 죽으나 사나 사람들의 재롱둥이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지. 별달리 흑심도 없어. 그저 내가 하는 말에 사람들이 웃고, 너 재밌다 말해주고, 어쩜 그리 귀엽고 재치 있냐고 말해주면 좋아서 환장을 하는 거야. 왜? 사람들의 그런 반응에 ‘아,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착각을 하거든.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내가 재롱을 떨어드려야 하는 분이더구나. 어떻게든 하나님께 이쁜 짓을 해서 그 얼굴에 미소 짓게 해 드리려고 마흔이 넘도록 교회봉사를 쉬어본 적이 없어. 청년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몇 년 전까지 기저귀도 못 뗀 아이들을 끌고 주일 아침 일곱 시부터 찬양대 지휘를 하러 가곤 했단다. 하나님 앞에서도 어떻게든 재롱을 떨어서 그저 내 턱을 한 번 긁어주시면 좋아서 혓바닥을 빼고 헥헥거리는 강아지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 표현하면 될 것 같애.

사라 : 흑흑……. (그리고 몇몇이 따라 눈물을 찍어내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모님 : 그래, 눈물이 나지? 어린 시절 작업과 함께 여전히 어린 시절에 매여 그렇게도 애쓰며 사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수시로 눈물이 났어. 한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다녔지. 이제 나는 결손가정이며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나 자신을 인정한다. ‘너처럼 사랑받고 큰 애도 없다.’라는 엄마의 말로 채색된 어린 시절도 완전히 가짜는 아닐 거야. 하지만 지금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것처럼, 최선을 다하지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었던 부모님으로 인해 내 많은 욕구들은 좌절됐을 거야.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면서 나름대로 사랑받기 위해 애 쓴 것이 ‘웃기고 재롱떨며 귀염둥이가 되자.’였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 여기고 ‘뭐라도 해야 사랑받는다.’는 왜곡된 메커니즘을 견고히 해왔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이 감동적인 가사를 그렇게도 무미건조하게 부르던 이유가 아니겠니. 에니어그램을 통한 내적여정이 어린 시절의 여행으로 인도했고, 지금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이석 : 저……. 늘 모님께서 저희를 안아주셨는데 우리가 모님을 좀 안아드리면 안 돼요?

(누구랄 것 없이 모님을 허깅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깊이 허깅하며 긴 시간을 보낸다.)

모님 : 이 그림처럼 어린 시절의 미해결 욕구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해. 내 유형의 왜곡된 동기가 닿은 뿌리를 찾는 일이거든. 스캇 펙의 책 제목처럼 이 여정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고 우리 생의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는 여행>이 될 거야.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생두가 스스로 볶아지는 것이 아니라 로스터의 숙련된 손과 정성의 소산인 것처럼 우리의 인생길에 함께 하시는 분, 누구? 그래. 그 분 손잡고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여정으로 한 걸음 더 가는 거야. 어, 하늘 좀 봐봐. 별이 쏟아질 것만 같다. 후후후. 참 좋은 밤이구나.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21




(일경, 이석, 삼진, 사라, 오필, 육미, 칠규, 팔수, 구민이가 모님과 함께 1박 여행을 떠났습니다. 경기도 가평의 깊은 산 속 펜션을 찾았습니다. 숲으로 난 길을 걸어 봅니다. 가다가 작은 풀잎이 눈에 띄면 그 앞에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주는 자연의 품에 나를 맡겨봅니다. 무엇이 되라하지 않고, 좀 더 열심히 하라 채근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자연의 품에서 따스한 아바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저녁으로는 바비큐 파티입니다. 맛있는 포만감으로 기분 좋아진 친구들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모님의 카페는 여기까지 와서 문을 엽니다. 향 좋은 핸드드립 커피가 종이컵에 담겨 각자의 손에 들려집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찾음으로 얻은 유익을 나눕니다. 그리고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습니다. 생각지 못한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친구의 이야기가 내 안의 이야기를 건드려 잊었던 영화 속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생각지 못했던 지점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여 조용해진 공간을 ‘쓰르르 쓰르르’ 풀벌레가 채워줍니다. 누군가의 감탄사에 다 같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이 눈을 맞춰 줍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듯, 우리의 어린 시절 아니 우리가 생기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아련하게 반짝거립니다.)



모님
: 맨 처음 우리 집 거실에 모여서 ‘아홉 개의 거짓자아’ 에 대해 얘기했던 날이 기억나네. 그간 자신의 유형을 찾아가며 각자의 여정을 잘들 가고 있는 것 같아 새삼스레 고마워. 유형을 알고, 그 유형의 메커니즘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를 써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


오필
: 항상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동기’가 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 같아요. 제가 제 자신에게 정직해지지 않을 때 그 ‘동기’가 타인을 속일 뿐 아니라 저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미
: 저는 무엇이든 안전하게 대비하고 깨알 같은 책임감 속에 사는 것이 제가 괜찮은 사람이라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 동기가 ‘두려움’ 심지어 ‘공포’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도 됐구요.


팔수
: 다들 자기 유형 전문가들이 된 건가? 나는 전에 들었던 거 다 까먹었는데…….


칠규
: 야, 까먹을 게 없어서 그걸 까먹냐? 그래도 다행이네. 껍질째 안 먹고 까먹어서. 큭큭큭. 그런데 모님, 좀 창피하긴 하지만 7유형의 죄가 ‘무절제’라는 걸 알았을 때 대~애박! 했었는데요...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요. 알아도 여전히 무절제 하거든요. 아, 물론 그것 아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되기는 했지요.

 

모님 : 아주 그냥 엄청나게 도움이 됐구나? 호호. 맞아. 이 그림을 한 번 볼래? 구원받은 우리는 ‘성화’의 과정에 있다고 하지? 성화, 즉 거룩해지는 여정에 있는 우리의 삶이 왜 이리 변하지 않을까? 나 자신은 물론이고 1년 내내 새벽기도 한 번 빠지지 않는 장로님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 신앙인들 말이다. 에니어그램이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 문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그 아래 동기라는 거지. 표에서 보는 것처럼 드러나는 행동은 거짓자아에 뿌리를 두고, 아홉 개의 거짓자아는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다고 할 때 이제 우리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아. 그래서 ‘어린 시절로의 여행’이라는 미명하에 이번 1박 여행을 꾸며봤단다. 지금 나눈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봤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첫 기억,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부모님들의 이미지, 소중하게 여겨졌던 경험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경험, 형제자매와의 관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꿈이나 자주 반복되었던 꿈 등을 얘기 했지? 그런 경험들과 연관 지어 ‘왜 이 유형이 되었을 지’ 간단히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 누가 먼저 얘기할까?


일경
: 제가 먼저 할게요. 빨리 하지 않으면 또 눈물이 날거 같아서요. 다섯 살인가, 아니면 더 어렸을 적이었던 것 같아요. 동생에게 함부로 했다고 목침 위에 올라가서 매 맞았던 기억, 그 장면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 때부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모든 것에서 결점을 찾는 버릇이 생겼어요. 저는 어렸을 적에 엄마한데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 자신도 뭔가 늘 올바르게 되어있지 않은 것에 꽂혀 짜증이 나고 그게 다 제 탓인 것 같아서 더 많은 일을 자꾸 짊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래서 저는 1번 유형이 된 것일까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건가? 하이튼, 여기까지요. 오빠 하세요.


이석
: 저는 사랑받고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머니가 좀 불쌍해 보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활달하고 친구를 좋아하셔서 밖에 나가시길 좋아하셨는데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해 하셨거든요. 부모님이 싸우시거나 또 일방적으로 엄마가 당하시는 게 싫어서 아버지가 전화해서 엄마 있냐고 하시면 잠깐 가게에 뭘 사러 가셨다,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어머니를 보호해야 했었어요. 학교 준비물이나 돈 내야할 것이 있으면 어머니께서 동생 먼저 챙겨주는 게 당연했어요. 어머니가 늘 ‘너 때문에 산다.’ 고 하셨고 딸 같은 아들이라고 하셨어요. 이런 기억들이 2유형의 행동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구요.


삼진
: 에니어그램 책에서 ‘3유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특별한 성취를 이룬 순간에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고 나왔던데요. 정말 딱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생각해보면 진짜 지기 싫어했고, 똑 부러진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칭찬받는 게 일상이었고 어린 나이에 그걸 즐겼던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들을 보면 ‘이 선생님이 어떤 스타일을 원한다.’를 딱 알았던 것 같아요. 친구를 사귈 때도 여러 애들을 사귀는 건 시간 낭비잖아요. 친구가 많은 애 하나를 사귀어서 한 방에 친구를 만들었던 기억도 있구요. 어린 것이 일찍부터 3번이었죠. 호호호.


사라
: 음.... 저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비오고 나서 아파트 단지 안에 생긴 물웅덩이가 기억이 나요. 왠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나는 혹시 주워온 아이가 아닐까? 병원에서 바뀐 아이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동생은 똑똑했고 뭔가 엄마 아빠에게 어울리는 아이 같았는데... 저는... 그냥, 제 엄마는 동생의 엄마 같아요. 모님께서 제 유형 설명해 주시면서 ‘감정이 네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는데 뭔가 말로는 잘 설명하기 어려운, 아니 설명하기 싫은 감정이 제 안에 늘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릴 적부터 왠지 난 ‘지금 이 곳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었어요.


오필
: 저희 아버님이 7남매의 맏이시거든요. 저 어릴 적에는 고모, 삼촌들이 집에서 다 같이 살았어요. 비좁은 집에서 여러 식구가 살면서 어머니는 늘 힘겨우셨던 것 같고, 몸이 워낙 약하신 데다 집안이 넉넉지 않으니까 제가 아기였을 적 충분히 젖을 못 먹이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제게 유난히 신경을 많이 쓰시고 간섭도 많으셨어요. 저는 그게 참 싫었고요. 그 때문인지 혼자 있는 공간, 나를 숨길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도 그런 게 좀 남아 있는 듯해요. 그러나 그런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은 모두 5유형이 되는 건 아닐 텐데요. 잘 모르겠네요.


육미
: 저희 가족은 아빠의 기분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엄마와 동생 저 셋이서 늘 아빠의 눈치를 봤죠. 언제 버럭 화내실지 모르는 분이고, 늘 잔소리와 걱정이 많으셨어요. 저는 집에 들어갈 때는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들어가곤 했어요. ‘집에 들어가서 아빠가 와 계실 거고 기분이 엄청 안 좋으실 것이다.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실 것이다’ 이러고 들어가면 상상한 일은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다 방심하면 또 갑자기 혼나고.... 뭘 해도 아빠는 안 좋은 쪽으로 말씀하셨는데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제 유형 때문인지 아빠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깥세상은 늘 무서운 곳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칠규
: 저는 뭐 행복했어요. 아, 물론 제가 일곱 살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반전이 생기긴 했죠. 그래도, 엄마가 생활력이 강하셔서 나름 저한테는 부족함 없이 해주셨어요. 엄마가 가게를 하시면서 단골손님들이 많았는데 제가 많이 웃겨드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귀엽다고 돈도 주시고 했구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늘 상위권에 있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가니까 수학이며 이런 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그 때부턴 아예 손을 좀 놨죠. 큭큭.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저는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7유형이라서 그래.’ 이러실 거죠? 흐흐흐..


팔수
: 이 얘기 하면 다 뒤집어지던데.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나봐요.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욕탕에서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았어요. 잘못했단 소릴 안한다고 더 때린 것 같은데 지기가 싫더라구요. 어린놈이 오기가 생긴 거죠. 하이튼 어떻게 마무리가 되고 아버지가 목욕탕을 나가시려는데 제가 침을 탁 뱉었어요. 나가시던 아버지가 바로 다시 들어오셔서 진짜 기절 직전까지 맞았죠. 아버지가 엄마도 많이 때렸어요. 엄마가 맞는 걸 보면서 ‘나중에 힘이 세지면 내가 엄마를 꼭 지켜줘야지.’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이런데 제가 약한 놈이 될 수 있었겠어요?


구민
: 뭐... 저는 그냥 뭐 대체로 괜찮았던 것 같은데요. 그냥 조용히 놀고 그랬어요. 형이 워낙 성격도 까다롭고 그래서 부모님이 많이 힘드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순해서 엄마가 ‘너 같은 애는 열도 키운다.’ 고 하셨어요. 있는 듯 없는 듯 지냈지요. 지금 생각하면 형은 원하는 걸 다 하고 사는 것 같은데 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뭐 꼭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서 일까요? 지금 진로를 놓고 고민하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게 참 막막하니까요.


모님
: 어려운 얘기들 잘 정리해서 나눠줬구나. 고맙다. 어린 시절 작업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부모님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돼.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반역하는 느낌도 들 거야. 헌데 한 번 쯤은 넘어야 하는 것이 부모님이라는 산이고, 그것은 이런 의미로 이해하면 될 거야. 부모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지. 우리는 모두 온전한 사랑을 기대하고 그리는 존재들이지만 부모님들이 역시 인간이잖아. 그걸 인정하는 작업이 될 거야. 무방비 상태의 아기에게 부모님은 생사를 쥔 하나님 같은 존재야.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내 방식대로 각색되어 있을 거야. 이제 어른이 된 눈으로 각색되어 고착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단다. 중요한 것은 그림에서처럼 이것 역시 전부가 아니고, 내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야. 내 속사람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성령님의 손을 붙들고 그 분과 함께 가는 길임을 다시 잊어서는 안 될 거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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